그림을 그린다고 달라지지는 않는다. 그림에 몰두하게 되면 달라질 뿐이다. 그냥 그리는 것과 그리는 사람 자신이 몰두해서 그리는 것은 보기엔 사소한 차이일지 모르지만 내용과 결과에 있어서 엄청난 차이가 난다. 그저 그리기만 한다고 좋아지는 경우는 없다. 하지만, 그 사람이 몰두할 수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아동이 행동상의 문제를 보인다고 하자. 혹은 정서상의 문제를 보인다고 하자. 어떻게 고칠 것인가? 그 아동이 여러 가지 문제로 인해 마음이 상했다면, 그리고 그 상한 시간이 하루 이틀이 아니라 몇 달 혹은 몇 년에 걸쳐 있다면, 적어도 아동의 마음이 수습되는 데에는 비슷한 기간이 필요하다(적어도 한두 달 내에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아동의 보호자는 다음 학기 시작 전까지 아동을 치료해놔야 한다고 주장한다. 슬픈 일이다).
칭찬해주거나 타이르고 야단치면 좋아지는가?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본인이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다. 즉, 결국에는 문제를 가진 그 사람 자신이 소화해내거나 풀어내야 한다. 고통의 소화는 옆에서 도와줄 수 있을지라도 사실 그 고통은 그 사람 혼자의 몫이며 혼자만의 외로운 여정이다. 아무리 그 사람이 나이가 적거나 혹은 많다고 하더라도.
고통을 가진 아동의 작품을 들여다보면, 아동이 가진 고통들이 그림에 그대로 투과되고 있음을 보게 된다. 특히 아동이 몰두해서 뭔가를 만들었다면, 그 작품 속에는 만든 사람의 생각과 감정, 사고, 느낌 들이 그대로 녹아 있다. 아픔을 가진 아동은 그런 식으로 자기의 아픔을 표출하면서 스스로를 달래고 있는 것이다. 치료사가 필요한 이유는 표출과 자기 치유가 안전하게 일어나도록 지지환경을 제공하기 위함이다.
충분히 표출되면 상처는 조금씩 낫기 시작한다. 충분히 곪은 상처가 터지고 난 후 새살이 돋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므로 치료사는 그가 만나는 내담자(치료를 받거나 상담을 하기위해 내담한 사람)가 충분히 표출하게끔 지지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 그리고 가장 탁월한 지지 환경은 아동으로 하여금 뭔가에 신나게 몰두할 수 있게끔 해주는 것이다.
미술작품은 내담자에겐 또 하나의 자아이다. 그러면서도 내담자와 다른 존재값을 갖는, 어떤 객체로서의 대상이다. 그 대상은 환자에게 자존감을 높여줄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 이러한 모든 개별과정은 치료사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더욱 명료하게 환자의 의식 위로 떠오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