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교육의 부재 (이규정/스테파노님의 글)

2005. 7. 31. 오후 1:40:01

글자

가정교육의 부재(1)

 

좀 전이었다. 시내버스를 탔더니 중학생 또래의 소년들만 단체로 앉아 있었고, 빈 자리는 하나도 없어 딱 나 혼자 서 있게 되었다. 이런 경우 나는 어른들 앞에 섬으로써 앉은 젊은이가 자리 양보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도록 한다. 그러나 이 날은 소년들뿐이니 그들 앞에 서지 않을 수 없었는데, 아이들은 구김살이라곤 없었다.

어른을 세워 두고 앉은 젊은이는 대개 눈을 감고 있거나 불쾌한 표정을 짓고 있다. 왜 하필 내 앞에 서 있느냐? 하는 불만 때문이다. 그런데 이 중학생들은 그런 갈등이라고는 전혀 없어 보였다.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아예 느끼지 못하는 순수한(?) 태도였다. 어쩌면 가정이나 학교에서 자리양보란 말조차 들어 보지 못한 것 같았다. 나는 내가 나가는 성당에서 고교 교사인 한 형제에게 물었다. “요즘 학교에서는 어른들에게 자리를 양보하라는 말은 하지 않습니까?” “하지 않는다기보다 더 급한 게 있으니 그런 일에 신경 쓸 수가 없는 겁니다. 그리고 그런 건 가정교육이 맡을 일 아니겠습니까?” “더 급한 일이란 뭔가요?” “교과 수업이지요. 저희들에게는 교과 이상 중요한 게 없습니다.” 나는 그 형제의 말을 충분히 이해했다. 나도 젊은 시절 한때는 입시 전문교사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입시 교육을 하면서도 인성 교육에 끊임없는 열을 쏟았다. 그때는 그런 게 가능해서 교실에서 인성교육이 이른바 먹히던 때였다.

며칠 뒤 어느 자리에서 마침 사범대 출신의 인문고 교사직에 있는 제자를 만나 같은 질문을 했다. 현직 교사의 고민을 들을 수 있었다. “수업시간에 교사가 한 마디라도 교과 외의 말을 하면 당장 학부모들이 그냥 있지 않습니다. 그러니 저희들인들 어쩌겠습니까? 인성교육을 몰라서가 아니고 그런 걸 강조할 분위기가 아닙니다. 심지어 흡연 지도도 제대로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요즘 일부 학부모들의 잘못된 극성이 공교육을 망치고 있습니다. 그런 학부모일수록 자녀의 과잉보호에는 철저해도 가정교육은 아예 모릅니다. 지금 교실은 옛날 70년대의 저희들 때와는 완전히 다릅니다. 선생님께서는 참 좋은 시절에 고등학교에 계셨던 겁니다.” 나는 이 사람들을 끝으로 대학으로 갔지만 현실이 참으로 아득하기만 했다. 그가 이었다. “학교에서 교사가 사명감을 가지지 못하는 이 시대가 서글픕니다.” 내가 침통하게 말했다. “교육의 기초는 가정교육에서 이루어지는데 요즘 부모들이 이걸 모르니 낭패네. 지금 초?중?고등학생들의 부모가 다 그렇지는 않겠지?”

댓글 1

  • 2005년 8월 4일 오후 10:14

    부모님들과 다함께 살때는 자연적으로 예를 중요시 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