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나를 사랑하느냐
2003년 벌써 아득한 옛일이 된 느낌이지만 볼리비아 땅을 밟던 그날의 기억은 내게 생생하기만 하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라파스 공항에서 처음 겪는 고산증으로 호흡곤란과 현기증으로 쓰러질 것 같았지만 아무튼 목적지인 코차밤바행 비행기를 탔다. 시내는 운전자들의 데모로 도로 곳곳이 차단되고 차량 한 대도 눈에 띄지 않았다. 덕분에 우린 첫날부터 뜨거운 태양아래서 숙소인 수녀원까지 한시간이 넘도록 걸어서 이동할 수 밖에 없었다. 5개월간의 스페인어 언어과정을 마친 후, 과달루페 성모성당 소속의 일곱 개 공소가 있던 곳에서 어설프게나마 사도직을 시작하였다. 첫영성체, 견진 및 혼인교리를 하고 주로 아주머니들을 대상으로 성서묵상모임등을 동반했다. 늘 언어에 어려움이 따랐지만 어려움 자체에 조금씩 익숙해져갔다. 돌이켜보면 우리의 말을 알아들어 준(?) 선교지분들이 그저 고마울 뿐이다. 선교지는 여러모로 자신의 작음을 체험하고 더욱 하느님을 필요로 하는 은총의 장소임에 틀림없겟으나 쏟아지는 은총만큼 늘 그 값을 치루곤 했다. 2007년 당시의 총원장방문 시에 수녀원과 공부방 건축을 계획하였고, 과연 할 수 있을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우리는 미래의 꿈을 종이 위에 그려넣었다. 그리고 2009년이후 우리들의 휴가는 온전히 건축모금에 바쳐졌다. 모금을 하면서 선교사는 두 나라와 민족과 문화 사이에서 서로를 하나로 묶어주는 가교임을 깨달았다. 우리를 보고 한국사람들은 볼리비아를 기억했고, 볼에서는 한국사람들을 떠올렷으니까...
2010년에 수녀원이, 2013년엔 최요한 공부방 센터가 완공되었다. 우리의 꿈이 결실을 보는 순간의 감격으로 나는 남몰래 눈물을 흘렸다. 우리를 작은 도구로 삼아 당신의 일을 이루어 가시는 하느님의 크신 사랑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손으로 만질 수 있었던 까닭이다. 마침내 공부방이 문을 열었을 때 먼저 하느님아버지께 영광을 드리고, 다음으로는 해외선교에 대한 열정으로 고령에도 한국외방선교회, 한국외방선교 수녀회를 창설하신 최재선 요한 주교님께 감사와 사랑과 존경을 드리고 싶었다. 주교님의 선교의 뜻을 기리고자 공부방의 이름은 ‘최요한 공부방센터’라고 하엿다. 그리고 2014년 2월 총회에 참석하기 위해서 휴가차 왔던 내게 다시 총원장의 직책이 맡겨졋다. 선교지에서 11년을 보내고야 이제 겨우 말도 좀 트이고, 어린이 공부방도 열었겠다 아이들이랑 재밌게 살려고 맘먹고 잇던 차였다. 그러나 내내 나를 떠나지 않던 주님의 말씀 “나를 사랑하느냐?” 선교사는, 수도자는 주님의 부르심에 늘 새롭게 응답하는 자이다. 인간적인 아쉬움도 있고, 아이들도 눈에 밟히고 어쩌고 저쩌고 ..그럼에도 그 무엇도 주님의 뜻보다 앞세울 수는 없으니까..그래도 참 억울햇음인지? 눈물도 많이 나긴 했다. 하지만 모든 것들을 주님 손에 의탁할 뿐이다...볼리비아의 코차밤바 선교지 한곳만 책임지면 되었던 어제는 떠나갔고....볼리비아를 포함하여 대만, 방글라데시, 모잠비크 선교지가 속한 아시아, 아메리카, 아프리카 세 개의 광활한 대륙을 가슴에 품어야할 오늘이 내 앞에 있다....벅차다고 하기엔 막막하고...먹먹한가? 하지만 한편으론 그저 믿음에 믿음을 더할 뿐이다. 오늘 이 시간까지 우리를 사랑으로 이끌어주시고 몸소 힘과 위로가 되어 주셨던 주님이 계시니...게다가 선교사들과 한마음이 되어 기도와 희생으로 늘 함께 해 주시는 해외선교후원회의 후원회 분들이 계시니 참 든든하질 않나? 이 자리를 빌어 모든 분들께 감사와 사랑을 전해드리면서, 하느님 나라를 위해서 끝까지 함께 가자고 웃음가득 손을 맞잡고 힘차게 흔들어 보고도 싶다. 덕분에 외롭지 않았노라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