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2002. 9. 4. 오전 11: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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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히죽, 웃고 있는 저 고양이 하나

뭐가 그리도 좋은지 히죽히죽 웃고만 있을까?

 

오늘도 고양이는 나의 통행을 막아 서고 있다

뻔히 내가 지고말 신경전, 눈싸움

으르릉, 개소리도 내어보고 사나운 표정도 지어보지만

때론 달콤한 미소로 먹을 것도 주어 보며

고양이를 달래어보지만

고양이는 절대 나를 쳐다도 보지 않는다

단지 자기 자리에 엎드려 꼬리를 돌돌말고

빠꼼빠꼼 눈을 깜빡이다 하품도 한 번 하다

잠을 잔다-단지 시늉일지도 모르지만

눈을 감고 자는 척을 하니, ’나는 잠을 잔다’ 믿어 준다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아마 내일도 고양이는

이 자리를 지켜 서고 나의 통행을 막아서겠지

고양아, 고양아, 제발 나의 길을 비켜 주테이니?

라고 물어보아도 소용없는 노릇,

내가 길을 돌어가거나 같이 옆에 드러누워 시간을 죽이는 수밖에

 

그러나 오늘은 대중한 결단을 내린다

나의 길을 막아서는 저 고양이를 어떻게든 이겨보리라

어찌 보면 저 고양이 무어 그리 나와 상관없으렸다

고양이는 고양이의 일과를 저 통로에서 진행하고 있을 뿐이며

나에게는 갈 수 있는 길이 여럿 있지 않은가?

내가 그 길을 고집하지 않는다면

고양이는 나의 통행을 방해하고 있지 않는 것 아닌가?

고양이가 나를 쳐다도 보지 않는 것에 맘 쓸 이유도 없지 않은가?

원래 고양이와 나는 관계없는 존재들인 것을

 

그러나 인간의 무모한 집착과 쓰잘데기 없는 자존심

나는 그 인간의 한계를 이기지 못한채 오늘 고양이와의 한판을 결심한다

그러나, 어떻게 한다지?

생긴건 작고 유순하고 한 편의 동정심마저 불러 일으키는 저 고양이 어떻게 한다지?

고양이 목에 방울 걸기...

 

무턱대고 나는 꼬챙이를 들어 고양이를 찔러 버린다.

반응없는 고양이

한 번 더, 여전히 반응 없는 고양이, 잠을 잔다

발에 힘을 싫어 한 대 때려 버린다

너 때문에 내가 내 할일을 못하잖아

한 마디, 알아듣지 못할 인간의 언어로 고양이에게 소리친다

눈을 깜빡, 하품을 한 번, 기지개를 쫙 편후

고양이는 "옆집에 개가 짓나?"

내가 알아듣지 못할 말로 야옹, 거린다

입술에 힘이 들어간다 온 몸에 힘이 실린다 한 대 더 발로 고양이를 때려 본다

한 번 쓱, 나를 이제야 쳐다 보는 것 같다

외나무 다리 위에서의 고양이와 인간의 무모한 결투

따따따따...베토벤의 교향곡 5번이 내 귓가에 들리는 찰나이다

 

불쑥 고양이가 히죽 나에게 웃어 준다

나는 생각한다 누구 놀리냐?

인간이 알아듣지 못랄 말로 고양이는 말한다

"응, 네가 이 길을 지나기지 못해 화났나구? 그럼 내가 비켜 주면 되는 건가?"

고양이는 느긋하게 미소를 짓는다

나는 생각한다 누구 놀리냐?

야옹, 뭐라고 고양이가 말을 한다

나는 대답한다 비켜

고양이는 여전히 히죽 웃고 있다 야옹, 야옹, 야옹

 

 

무언가가 똑, 똑, 똑 내 이마 위로 떨어진다

비다.

고양이의 수염이 조금씩 빗물로 잦아든다

빗물에 젖어든다

고양이의 숨결과 웃음은 빗 속에서 더욱 거칠고 커져만 간다

히죽, 미소로 얼굴 근육이 미세하게 떨려간다 빗방울의 진동으로 수염도 같이 떨려간다

그리고 나도 빗속으로 잦아든다

빗물에 젖어든다

그리고 문득, 고양이가 기묘하게 생겼다는 생각이 든다

웃기다 이 빗속에서 고양이는 뭐가 그리 좋아

여전히 히죽, 나를 빠꼼히 쳐다 보고 웃고만 있을까?

한대 쳐 준게 고마워서 웃는 걸까?

고양이야, 넌 그렇게도 누군가에게 맞고 싶었더랬어?

히죽, 히죽, 고양이는 웃고만 있다

 

그러나 빗물에 몸이 흠뻑 젖어서야 나는 알았다

아니 고양이가 빗물에 흠뻑 젖어서야 알았다

나는 지금 고양이, 작고 약하게만 생겼던 그 고양이

뱃속에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뱃속에서 나는 알게 되었다

히죽 거리는 그 미소를 말꼼히 쳐다보고 있을 동안

내 팔과 다리들 그리고 내 몸통 내 얼굴 종내에 내 눈까지

모두 야금야금 먹힘을 당하고 있었다는 것을

약은 고양이 같으니라구...

 

고양이는, 그래서 히죽, 웃고만 있었다

고양이 뱃속, 생각보단 따뜻한군

나도 히죽, 웃을 수밖에 없다

고양이와 나는 서로가 알아듣지 못할 말로

대화를 한다

그러나 말보다 가까운 몸, 난 고양이 뱃속이다

무모한 집착과 한판 승부의 결과는 이렇게 끝이 났다

 

 

 

 

 

고양이는 여전히 히죽, 웃기만 하겠지?

어느 통로에 가만히 엎드려 잠을 자면서-혹은 잠을 자는 척을 하면서

그러나 나는 정말 잔다 영원한 잠을

히죽 웃고 있을 고양이 뱃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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