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아~!! 몇가지만 가물가물 할 뿐 소소한 추억까지 생각 날 정도입니다..
우선 딱지..남학생들에게 딱지라면 여학생들에겐 뭐니뭐니해도
종이 인형..종이 인형의 검정 라인을 같이 오려서 쓰느냐 아니냐에 따라
그아이의 성품도 알 수있었다..종이 인형의 제목은 갈 수록 드라마의
제목을 도용했고 아무래도 그것은 제작자의 게으름 때문이였거나
여학생들로 하여금 드라마와 빗대어 상상력을 발휘에 인형놀이를 할때
충분히 그 힘을 발휘하라는 배려가 아니였을까한다(ex: 내마음 별과같이, 사랑과 욕망)
에스테반은 약간 가물거린다..
아아~~~~~! 천!사!들!의! 합!창!
그것을 시청하기위해 저녁이면 즐기던 동네배 고무줄 놀이를 저버리고
TV앞에 어김없이 앉아있었다..그...또 기억안나넹..중국소년...아아..그아이를 무척 사모했었다..그때 시절 나의 남성관을 엿볼 수 있다...
아폴로는 손으로 비비면 길게 나와 아주 깨끗하게 먹을 수 있었다..
그것 또한 성격이 어릴적부터 차분한 아이들만이 끝까지 그렇게 먹었다..
난 결국 이빨로 물어 뜯어가며 먹었다..내 사촌 동생중에 이유없이
그 껍질을 모으는 아이도 있었다...정말,,이상도 하지..
A특공대도 머독이란 이름만 기억난나...으..
바야바..그가 등장하면 카메라가 줌으로 당겨지면서 언덕위에 바야바가 나타났다.
동정심이 많은 성격이 였던 나는 바야바를 무척 좋아했다..
난 오로지 불쌍하게 생긴 남성을 좋아하는 이상한 아이였다..
송골매중에도 배철수를 사모했었다...- -; 현재는 털 많은 아이를 놀릴때 쓴다
부루마블은 말도 마라..최근까지도 즐겼었으니...황금열쇠로 삐진 오빠가 판을 엎고
대판 싸움 났었다...우리에게 각나라의 수도 및 산 지식을 알려주었다..
사회과부도 안가지고 온 놈들은 벌을 받았다..이상한 것은 정작 수업시간에
사회과 부도를 핀 횟수는 거의 열손에 안 꼽히는데도 말이다...
갤러그는 울 오빠가 오락실에서 캡 망신당하고 집에 끌려와 뒤지게 맞는 동기를
부여했다..그때 못 모르고 따라갔다가 오빠만 두배로 맞았다...
구니스를 보고 오빠와 나는 우리도 언젠간 저런위기의 상황이 올지모르니
대처하자는 어처구니 없는 생각에 집안의 물건을 동원해 구니스 놀이를 했다..
후레쉬맨 놀이도 함께 병행했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첫 앨범 사진이 모 스포츠 신문에 난것을 보고
오려다가 학교에 가져갔다가 아이들이 돌려보다 선생님께 걸려
산산조각났다..울먹이는 나를 위해 친구들이 정성스레 붙여준 신문을 난
3년간 간직했다..특히 ’이제는’이란 곡과 ’이밤이 깊어가지만’을 즐겨들었고
서태지의 영어발음이 훌륭했다고 생각했었지만..지금 들으면...
개구리 소년때문에 우린 엄청난 교육을 받았었다..
낮선사람 따라가지 말아라를 하루에 열두번도 더 듣고...인간시대란 푸로를
가족끼리 보며 온갖 추리가 난무했다..
서울우유병...나도 실은 서울에선 보지 못했고..외갓댁의 오빠야들만 먹는걸 보았다..
(언니들은 절대 먹지 못했다..- -;)
그때 얻어먹었는데..확실히 다른 것보다 고소했다...왜일까..?
뚜껑이 따로 없고 두꺼운 도화지 같은걸로 되있었다..
하이테크기술의 필통! 남자아이들은 연필을 꼽고 세운후에 탱크라고
부르며 놀았고, 그필통의 푹신한 겉면은 베고 자기에도 좋았고
양면으로 사용 할 수 있었다..아아아~
나만큼 말괄량이 삐삐를 많이 본 아이도 없었다..
아마도 그후의 나의 성격형성에 무지한 영향을 미쳤다..우리집에는
SONY에서 나온 (울 아부지는 그것이 한국에서 처음나온 비됴라했다 그래서
몇십년만 가지고있으면 엄청난 호가에 팔 수 있다 믿고계신다) 비됴가 있었는데
(물론 베타 버전이다..) 그것으로 오후반 수업이 있는 날은 어김없이 삐삐를 보았다.
대사도 외웠었다..그녀의 명랑한 목소리..
더이상은 숨차다..헥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