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독도이름의 유래
날 사용되는 [독도](獨島)라는 명칭의 유래는 이 섬이 동해 한복판에 외로이
있기 때문에 독도(獨島)라 하였다는 견해가 있으나, 이 섬 자체가 바위, 즉 돌로
성립되어 있고, 경상도 방언에 돌을 독이라 하므로 [돌섬]이라는 뜻에서 [독도]라
고 불렀다는 견해가 더 설득력이 있다고 하겠다.
2. 독도의 역사
512년 : 新羅 지증왕 13년 鬱陵島와 獨島는 于山國 이라는 나라를 형성하고 있었는데
이사부라는 신라군주가 이를 정복하여 신라 領土에 소속시켰다.
고려시대(918∼ 1392)
930년 : 고려 태조13년, 본토와의 조공관계 유지.
11세기초(현종 9년,13년) : 우산국을 중앙정부 지배하에 편입 및 중앙정부에서 관원 파견.→ 통치권행사.
1141년 : 인종19년, 명주도감찰사 이양실이 관원을 파견하여 특산품을 진상케 함.
1157년 : 본토인의 이주를 위한 조사.
1243년 : 고종30년, 본토인의 이주를 추진.
高麗史 (1451년 간행) 권 58 지리지 東界 울진현조에 于山島(독도) 및 武陵島(울릉도)의 관계기사를
수록하여 이를 고려 영토로 인식.:
‘于山島와 武陵島는 본래 두 섬으로 서로 거리가 멀지 않아 날씨가 맑으면 바라볼 수 있다.’
조선시대(1392∼1897)
1416년 : 태종16년, 공도정책(空島政策) 실시 :
우산도와 무릉도 두섬이 존재함을 분명히 인식하고 이에 대한 실효적 지배권 행사의 일환으로 공도정책 실시
1425년 : 세종7년, 김린우를 ‘우산무릉등처안무사’로 임명하고 울릉도로 파견.
1432년 : 세종14,세종실록지리지 강원도 울진현조에 우산도 및 무릉도 관계기사 수록.
‘우산·무릉 두 섬이 울진현의 正東 海中에 있다. ☞사진자료보기
두 섬은 서로 멀리 떨어져있지 않아 날씨가 청명하면 바라볼 수 있다.’
1531년 : 중종26, ‘신증동국여지승람’권45 울진현조에 우산 및 울릉 관계기사 수록.
‘우산도·울릉도가 ∼ 正東 海中에 있다. 일설에는 우산과 울릉이 본디 한 섬이라고 한다.’
1667년 : 일본최초로 울릉도,독도 관계기록, 울릉도 독도가 한국의 영토이며 일본의 영토가 아님이라고 인식하였음.
1693년 : 安龍福사건,부산 동래 어부 안용복이 울릉도 근해에서 왜인을 발견하고 퇴거시켰다.
그후 안용복은 일본 은기도를 거쳐 도일하여 일본 관백의 울릉도 출어 금지 공한을 받았다.
그리고 울릉도의 일본어민을 소환케 하였다. 안용복의 민간활동으로 독도가 조선 영토임을
확인시켰다.
1697년 : 숙종23, 일본 막부, 죽도(독도)가 조선영토임을 확인하고, 일본어민의 渡海禁止令을 발포.
1714년 : 숙종40, 강원도지사 조석명의 보고서 : "울릉의 동쪽으로 도서가 잇따라 있고 이 섬들은 倭國의
경계와 접하게 된다."
1809년 :순조9,「만기요람」 울릉도와 우산도는 모두 우산국의 땅이며 우산도는 왜인들이 말하는 松島이다.
1881년 : 고종18, 이때부터 독도의 명칭이 나타난다.
일본어민의 울릉도 침입에 대하여 조선정부가 일본정부에 엄중히 항의하였다.
1882년 : 고종19, 울릉도 개척령을 발표하여 울릉도 이주정책을 취함.
1883년 : 고종20, 일본정부가 울릉도에 불법체류중이던 일본인 254명 전원 철수시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