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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6월 10일 성 바르나바 기념일 주일에 스페인 마드리드의 주교좌 성당메서 주일미사를 보았습니다.호텔에서 일러준 3개의 성당 중 아래의 주교좌 성당을 찾아 아래와 같이 미사를 드렸습니다.
Cateral del S. Isidrol
Plaza Mayor 남쪽 약 500미터 지점
가까운 전철역은 1호선 Tirso de Molina 역이다. 역에서 나와 서쪽 방면으로 한블록 지나 만난 교차로에서 남단으로 위치한다.
주일미사시간
오전 9시, 10시, 11시, 12시
오후 1시, 2시
성당 건물에 인접하여 신학원으로 보이는 Institute 가 있다.
다른 나라 성당에서의 교중미사 시간을 참고하면 오전11시가 교중미사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 시간에 맞추어 성당을 찾아 갔다.
미사는 스페인어로 진행되어 좇아하기 어려웠다. 복음말씀 낭독 중에는 미리 수첩에 적어간 복음말씀을 속으로 읽었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 10,7-13
그때에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다.
“가서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
앓는 이들을 고쳐 주고 죽은 이들을 일으켜 주어라.
나병 환자들을 깨끗하게 해 주고 마귀들을 쫓아내어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전대에 금도 은도 구리 돈도 지니지 마라.
여행 보따리도 여벌 옷도 신발도 지팡이도 지니지 마라.
일꾼이 자기 먹을 것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어떤 고을이나 마을에 들어가거든,
그곳에서 마땅한 사람을 찾아내어 떠날 때까지 거기에 머물러라.
집에 들어가면 그 집에 평화를 빈다고 인사하여라.
그 집이 평화를 누리기에 마땅하면
너희의 평화가 그 집에 내리고,
마땅하지 않으면 그 평화가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다.”
사실 복음말씀과 성체영하는 것이 미사의 핵심이므로 최소한으로 필요한 것은 충족시켰다.
신자들은 대부분이 나이든 사람들이었고 남녀의 비율은 약 3:7 정도이었다. 미사포를 쓴 자매들은 아무도 없었다. 장괘가 설치되어 있는데, 장괘를 하는 사람도 있었고 서 있는 사람도 있었다.
아쉬운 것은 성가나 반주가 한곡도 들어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11시 미사가 끝난 다음 제대와 코너를 돌며 사진을 찍다보니, 12시 미사를 준비하러 성가대가 2층에 모여들고 있었다. 나는 12시 미사도 참례하기로 작정하였다.
12시 미사는 그레고리안 성음악 전례로 진행되었다. 기리에, 글로리아, 쌍뚜스, 베네딕뚜스, 아뉴스데이 등 성가에서 사용되는 단어가 친근하게 들렸다. 국제화를 위하여 그레고리안 성음악 전례와 영어를 사용하는 미사를 시도하고 늘려가야 하겠다. 그것이 또 한편으로 세계를 이끌어가는 역활이고 그러한 역활을 늘려가야 하는 것이 우리에게 맡겨진 시대적 소명임을 느낀다.
성가대는 불과 10여명이었고 한 명의 남자 깐뚜스 선창자의 선창과 후렴으로 이루어 지는 형태이었다.
미사가 끝나고 밖에 나가 성당 외부 사진을 한 장 찍고 다시 성당 안에 들어와 보니 과연 오후 1시가 교중미사이었다. 혼성합창단의 화려한 성가로 기리에가 진행되고 있었다. 언제 다시 올 수 있으랴, 나는 다소 느껴지는 서늘함과 배고품과 소변의 고통을 참고 자리를 끝까지 지켰다.
과연 주교좌 성당의 교중미사 다웠다. 모든 전례의 성가는 파이프 올갠의 반주와 성가대의 4부 성가 (주의 기도, 주님깨 나라와 권능이, 신자들의 기도 후렴은 성가가 사용되지 않았다)가 주도하였다, 특별히 응송과 알렐루야는 여성 한 명이 제대에서 아주 전문적으로 선창하였다. 정말 보기를 잘 했다. 앞서 두 대의 미사와는 달리 미사의 분위기는 활기차고 장엄하였다. 그러나 성가대원의 숫자는 불과 15명 정도였다. 그나마 남자는 3명 정도이었다. 웅장한 반주와 잘 맞춰진 3대의 마이크가 잘 받쳐 주었다. 그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인원수에 관계없이 확실하게 각 파트를 담당하는 것이리라. 테너 파트는 한 명인 듯 한 사람의 성가가 아주 돋보였다.
끝부분에 성체현양이 있었는데 제대에서 전례를 주도하시던 신부님과 복사, 독서자, 응송과 알렐루야 선창자, 10여명의 신자들로 이루어진 행렬이 성당 현관 문 밖까지 나갔다가 제대로 돌아갔다.
교중미사는 1시간을 10정도 넘긴 시간에 끝났다. 이어 바로 오후 2시 미사가 시작되었다. 봉헌 바구니를 돌리는 봉사를 하는 자매님들은 성당 뒷자리 별도의 테이블과 의자에 앉아 있다 계속하여 봉사를 하여 주었다.
제대 오른 쪽에 두 대의 고해소가 있는데, 신부님이 기다리는 동안에는 전등이 환하게 켜진 문을 열어 놓아 신부님이 고백성사를 주려고 기다리고 있음을 알려 주는데, 고백성사를 받는 동안은 문을 걸어 닫으셨다.
미사 중에도 일부 관광객들은 좌우의 코너를 조용히 구경하고 다녔다.
가톨릭이 아주 생활 깊숙히 자리 잡고 있는 모습이지만, 약간은 느슨한 것 같아 보였다.
나는 결국 3 대의 미사를 계속하여 참례하게 되었다. 그래서 알게 된 것은 오전 12시 미사는 그레고리안 전례로, 오후 1시 미사는 성음악 미사로 봉헌되는 교중미사라는 것이다. 물론 첫번째에 성체를 영하였으므로, 두번째와 세번째에는 성체를 영하지 않았다.
우리 성당인 광장동 성당에서 미사드리는 것이 얼마나 편하고 고마운 일인지 새삼느낀 주일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