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담은 열의가 식어갈수록 유혹에 대한 저항력이 약해져 [파멸]합니다.
다시말해 영적 건조인 상태로 수분이 고갈된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냉담은 영혼의 고질병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고질화 되어 영혼을 파멸로 이끌어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육체의 중병에 걸렸을 때는 즉시 큰 병원으로 가 정확환 정밀 진단을 통해 그 병명을 알아내고 온갖 약물요법이나 또는 수술을 한다든지하여 될 수 있는대로 빨리 회복하려고 힘을 기울이지만 오랜 잠복기를 거쳐 천천히 증세를 나타내는 고질적인 만성질병이나 악성질병은 어떻게 고쳐 볼 가망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이러한 냉담자를 두고 묵시록은 초자연적 생명을 좀먹는 가공할 병으로 처벌되어야 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너는 이렇게 뜨겁지도, 차지도 않고 미지근 하기만 하니
차라리 나는 너를 입에서 밷어 버리겠다.(묵시 3,15)
이러한 하느님의 준엄한 말씀에도 불구하고 소위 현대의 향락적 풍조에서 오는 냉담한 생활이 오늘날 세상에는 만연되어 있습니다. 아니 이제는 더 이상 채워질 수없을 정도도로 창궐해 있습니다. 더우기 인터넷이라는 매체를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향락과 즐거움만을 찾으려 하고 혼자서도 얼마든지 잘못될 수 있는 결과들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신앙인은 물론 성직자나 수도자들마저도 이러한 냉담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을 우리는 경험을 통해 얼마든지 볼 수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 없습니다.
냉담은 교회에 오랫동안 나오지 않거나 교회법에 명시된 대로 3년간 판공성사를 보지 않은 것만이 냉담이 아닙니다.우리가 성당에는 열심히 나가나 하느님을 마음에 받아들이지 않으면 냉담입니다. 결혼한 부부가 결혼하지 않은 부부처럼 사랑이 식어버린것과 같습니다. 이러한 것은 성직자나 수도자는 물론 일반 평신도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입니다.
완덕수행의 초보적인 열성이 식어버리면 수도자나 성직자라 할지라도 자신의 생활이 고통스러운 짐이 되어 의욕을 잃고 본분에 소흘해 지며 결국 유혹을 받는 빈도수가 점점 많아지게 됩니다.
그러한 사람은 공허한 마음을 채우고 다른 만족을 위해 [신앙적인 일보다는 다른 일에 몰두하게 되는데] 이것이 방치되면 완전히 타락하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우리가 냉담상태를 겁내고 두려워하는 동안 우리의 영혼이 하느님과 일치하려고 한다면 냉담할 위험은 없다고 볼수 있습니다. 그 반대로 [냉담을 두려워 하지 않고 피하지도 않는 자]는 이미 냉담 상태에 빠져 어두움 속을 방황하고 있다고 보아도 틀림없는 것입니다.
틀림없이 이러한 사람들의 마음안에는 내적 평화가 없고 불평불만과 더불어 삶의 고단함을 절실하게 느낄 것입니다. 더우기 완덕의 길에 나아가는데 있어 이러한 정체는 곧 퇴보와 좌절을 의미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