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틴어 |
Curia |
| [관련단어] 교황청 교구청 레지오 마리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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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꾸리아란 고대 로마의 행정 단위의 하나였는데 꾸리아에는 집회소가 있어 꾸리아 주민이 여기 모여 꾸리아의 중요 사항들에 대해 논의하였다. 그 후 차츰 꾸리아란 행정 단위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기보다는 집회소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다. 한편 로마에 전파된 그리스도교는 교계제도를 정비하고 교구마다 교회행정을 담당하여 재판을 여는 행정청을 개설하면서 그것을 꾸리아라고 불렀다. 중세시대 꾸리아라는 말은 교구청을 가르키는 단어로 완전히 정착하였다. 현재 꾸리아라는 말은 교구청(Diocesan Curia)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된다. (⇒) 교황청, 교구청
② 레지오 마리에의 조직단위를 가리키는 말이다. 레지오 마리에 조직으로서 꾸리아는 프레시디움(praesidium)의 상부조직이고, 세나투스(senatus)의 하부조직이다. (⇒) 레지오 마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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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르실료(Cursillo)란 '작은 여정'을 뜻하는 스페인어로 한국교회는 이 말을 달리 번역하지 않은 채 사용한다. 한마디로 그리스도교의 참된 정신과 생활을 사회 속에 구현하려는 목적으로 짧은 시간 안에 이루어지는 회심의 여정인 셈이다.
이 운동의 시발은 1931년 스페인에서다. 전쟁으로 혼란과 무신론이 팽배한 당시 스페인 사회를 복음화하기 위해서는 청소년 활동 단체부터 활성화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몇몇 평신도들이 모여 10일간의 성지순례를 마련하고 이를 '꾸르실료'라고 부른 것이 처음이다. 그 뒤 꾸르실료는 성지순례를 겸한 단기교육으로 진행되다가 1949년 스페인의 후한 에르바스 주교가 이를 교회 신심운동으로 발전시켜 꾸르실료 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됐으며, 교황 요한 바오로 6세는 1963년 이를 교회의 공식 신심운동으로 인정했다.
한국에 꾸르실료가 처음 도입된 것은 1967년. 주한 미 평화봉사단장으로 한국에 머물던 케빈 오도넬씨와 필리핀 꾸르실료 운동에 깊이 참여하고 있던 에드문도 카이모씨가 우연히 만나 한국에 꾸리실료 운동을 도입할 필요성을 공감하고, 서울 성수동성당에서 21명(신부 4명, 평신도 17명)이 모여 첫 꾸르실료를 개최한 것이 시작이다.
이후 한국교회 전역에 꾸르실료 운동이 널리 확산, 현재 꾸르실료 교육을 받은 꾸르실리스따는 13만여명에 이르고, 전국 각 교구에서 매년 5000~6000여명의 새로운 꾸르실리스따들이 배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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