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말
기도의 수련에는 두가지 방향이 있다. ’끊임없이 늘 기도하는’ 방향과 ’마음속 깊이 기도하는’ 방향이다.
이 두 방향의 ’척도’와 ’깊이’에 기도의 수련 전부가 담겨 있다. 둘 중에 하나를 잘 수련하면 나머지도 잘 하게 된다. 즉, ’늘 기도하는’ 수련을 하면 ’깊이 기도하게’되고 ’깊이 기도하는’ 수련을 하면 ’늘 기도하게’ 된다.
성베네딕도는 기도에 대해서 말하기를 "기도는 짧고 단순해야 한다"(규칙 20장)고 했다.
복잡한 현대사회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보다 단순하고 순수해질 수 있는 좋은 지름길은 오직 기도를 통해서 우리 마음을 정화시켜 가는 것이다. 우리 마음이 단순해지기 위해서는 우리가 바치는 기도 역시 단순한 기도이어야 한다.
가장 짧고 단순한 기도로서의 예수기도는 참으로 좋은 기도이다. 지금부터 ’늘 기도하는 계속적인 기도’의 수련법으로서 예수기도의 대표작인 [이름없는 순례자]에 대해 알아보고, 예수기도란 무엇이고 어떻게 하는 것인지에 대해 알아본다.
1. [이름없는 순례자] 책 소개
"이름없는 순례자"는 화살 기도의 수련법을 설명해 주는 아주 고전적이고 훌륭한 책이다. 하느님과 일치에 도달하는 길은 천차만별이지만 이 책은 누구나 쉽게 외울 수 있는 예수 기도를 통해서 하느님과 완전한 일치를 이루는 사실을 실례로써 설명해 준다.
저자는 제목 그대로, 누군지 알 수 없는 한 러시아인이며 그는 10년 이상이나 순례 생활을 하면서 러시아의 각지를 돌아다녔고 멀리 시베리아에까지 갔었다. 그후 자기의 순례 경험을 지도신부에게 털어놓았는데 신부는 이 모든 내용을 기록했다. 그 원본은 지금도 러시아의 까산시에 있는 성 미카엘 수도원에 보관되어 있다.
책 내용은 한 순례자가 ’예수기도’라고 하는 화살 기도를 끊임없이 바치게 된 과정을 묘사한 것으로, 그 과정을 순례에서 만나는 여러 사건들과 곁들여 흥미있게 서술하고 있다. 그러면서 기도 수련에 필요한 근본적인 사항을 세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 순례자는 러시아적 신심을 완수한 하나의 모델로 등장한다. 또 그의 신심은 무슨 학파나 독특한 교설을 만든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이 이야기는 인간의 신비의 의의, 고통과 죄에 대한 동정, 마음의 단순성, 그리스도의 생활을 본받음과 그 진리들의 표현법 등을 통한 러시아적 신심의 계승이다.
기도의 수련 역시 순례의 정신을 필요로 한다. 하느님 아버지를 항상 ’압바’라고 부르면서 살아가려면 현세의 일과 사물에 빠지지 말고 우리의 고향인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가려는 자세로 살아야 한다. 동시에 기도의 수련은 인간이 현세에서는 영원히 안주할 수 없고 언젠가는 천국으로 돌아가야만 한다는 사실을 더 깊이 깨닫게 해준다. 아무리 현세와 현세의 일들이 중요하다 하더라도 현세의 일들로 인간의 마음을 가득 채워서는 안되고 또 가득 채울 수도 없다. 인간의 마음을 가득히 채워주는 것은 오로지 한 분뿐이다.
2. ’예수기도’란 무엇인가?
예수기도란 "하느님의 아들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님, 죄인인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라는 문장을 끊임없이 바치는 기도를 말한다.
이 기도는 영광에 둘러싸여 있는 살아 계신 예수께로 마음을 집중하고 중심을 맞추는 기도이다. 또한 이 기도는 육(肉)의 눈으로 직접 보는 것이 아니라 영(靈)의 눈으로 예수를 볼 수 있도록 힘을 기울이는 믿음의 기도이다. 이 기도는 성령의 은총으로 믿음에 다시 활기를 되찾아주며, 자신의 마음을 통해서, 내적 자아의 중심을 통해서, 주님께로 우리를 이끌어가는 길이며 방법이 된다.
예수의 이름에 대한 존경은 신약성서에 여러 군데 나온다. 부활한 예수의 이름은 전 인류의 유일한 구원이며 교회의 유일한 재산인 동시에 유일한 힘이며 치유이다. 교회는 항상 ’예수의 이름으로’ 성화시키고, 기도하고, 가르친다. 그리스도인은 ’예수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욕을 당하게 된 것을 특권으로 생각하고 기뻐하는’ 사람들이다.
예수의 이름은 예수 자신과 다른 무엇인가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그의 이름은 바로 예수 - 자신을 가리킨다. 예수의 이름은 우리 마음 안에 그분의 고요함과 영적 현존을 심어준다. 왜냐하면 이 거룩한 이름은 그분의 인성과 천주성을 똑같이 아주 친근하게 다 드러내주기 때문이다. 그분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곧 그분과의 인격적인 만남 속으로 들어감을 의미한다. 그분의 이름이 우리의 정신 안으로 우리 마음속으로 들어온다는 것은 곧 그분과 깊은 친교를 이루는 것을 뜻한다.
실제로 초기교회 시대 때부터 그리스도인들은 일상생활 속에 예수의 이름을 부르면서 살았다. 초기교회의 교부들은 인류를 구원하는 이름은 예수의 이름밖에 없다는 것을 체험으로 확신했다("사도의 선고", 4,12).그러므로 예수의 이름을 자주 부르고 그에게 호소하도록 그리스도인들에게 호소했다.
’예수기도’는 모든 화살 기도 중에서 가장 우수하고 어떤 의미에서는 완전한 화살 기도하고도 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이 기도 안에 그리스도교의 모든 계시와 신비가 전부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아들이신’이란 말에 神論과 삼위일체론이 내포되어 있고, ’주 예수 그리스도’란 말에 그리스도론과 속죄론과 빠스카의 신비(그는 죽음에서 부활해서 주님이 되었다)가 내포되어 있다. ’죄인’이란 말에는 원죄론과 義化와 성사론이 내포되어 있고, ’나에게 자비를 베푸소서’란 말에는 은총론과 영성신학이 내포되어 있다.
’하느님의 아들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여, 죄인인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는 기도의 형태는 동방 교회의 은둔자들이 만든 것이다. 끊임없이 ’예수기도’를 외우는 행위는 사막의 은둔자들의 중심적인 수련이 되었다.
은둔자들은 ’예수기도’를 수련할 때는 힌두교의 짧은 경문 ’만트라’와 같이 처음에는 소리를 내어 외웠다. 그러다가 차츰 입에서 침묵으로 외우게 되었다. 그후 기도는 머리로 옮아가 지성적으로 뚜렷해지고 통합되었으며 머리에서 마음으로 옮아가 완성되었다.
기도에 관해 일반적으로 말해지는 것을 따를 때, 세 가지의 분명한 단계가 있는데, 바로 입, 정신, 마음이다. 의식적인 기도의 최고 단계는 기도가 정신에서 마음으로 옮아가는 것이며, 그 때에 기도는 인간의 가장 심오한 의식수준에서 자유로이 바쳐지고 영구적인 찬미가 되며 자발적인 탄원이 된다.
은둔자들은 ’예수기도’를 외울 때 먼저 ’신앙고백’과 ’자기포기’의 행위를 하도록 강조한다. 즉 자비와 치유를 드러내는 예수의 내재를 실현케 하는 것은 바로 신앙고백과 자기포기라는 것이다. ’예수기도’를 반복하면 잡념을 없애고 내적으로 초점을 맞추는데 도움이 된다. 기도를 어느 정도 계속해서 반복하면 사람은 내심 깊은 곳에 도달하게 되며 자기 안에 내재하는 삼위일체께 자신을 집중하게 된다. 은둔자가 성령의 힘으로 계속해서 부르는 예수는 은둔자로 하여금 ’성령의 산 체험’을 하게 해준다. 또 성령은 하느님 아버지의 ’압바’로서의 현존을 깊숙이 의식하게 해준다.
’예수기도’에 보다 익숙해 질 때 은둔자는 주님의 말씀이나 모습을 넘어서 주님 자신의 현존 안으로 이끌려 들게된다. 그 때는 ’예수기도’ 형태마저도 사라지고 완전한 침묵 속에서 주님을 직접 체험하게 된다. 예수의 이름을 계속해서 부름으로써 은둔자는 예수의 존재를 자각할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그 분의 내재를 의식적으로 깊이 또 순수하게 체험하게 된다. ’예수기도’ 목적은 주님의 내재를 ’언제나’, ’깊이’ 의식하는 데에 있다.
그러나 이 기도의 궁극적인 목적은 기도하는 사람이 더욱 더 ’그리스도化’ 되고 ’그리스도의 생명을 사는’ 데에 있다. 예수의 이름을 간단없이 부르는 자는 예수와 같은 마음으로 피조물을 사랑하게 되고, 예수와 같은 눈으로 만물을 보게 되고, 예수와 같은 손으로 일하게 된다. 예수의 이름을 부르면 부를수록 예수와 하나가 되고 예수로 변하게 된다.
3. 예수기도의 형태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이 기도에는 많은 형식이 있다. 우선 ’하느님의 아들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여, 죄인인 나에게 자비를 베푸소서’라는 기도는 ’예수기도’의 본 형태이다.
이 형태를 얼마든지 짧게 할 수도 있다. 예를 들면 "주 예수 그리스도여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주 예수여 자비를 베푸소서", "예수 그리스도여, 자비를 베푸소서", "예수님 자비를", "그리스도여 자비를", "예수님, 주님", "예수 그리스도여", "주 예수여", "예수님(가장 오래된 정식)"등이 있다.
이 가운데서 좋은 것을 택해서 자신의 기도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며, 이 예수기도문을 바치는 도중에 기도를 자주 바꾸는 것은 좋지 않다. 그리고 이 기도를 바칠 때 아무 생각없이 헛되이 그냥 단어만 반복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그분이 우리 앞에 현존하고 계심에 주의를 기울이면서 믿음을 가지고 이 기도를 바쳐야 한다.
’예수기도’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예수님’이라는 단어이다. 이 거룩한 이름 안에 모든 힘이 다 들어 있다. 예수의 이름과 현존을 부르는 행위는 죄와 분열을 없애고 연약함과 병을 고치는 예수의 힘을 믿고 그 분에게 탄원하는 행위이다. 예수의 이름과 현존을 부르는 것 자체는 벌써 그 분의 개혁하는 힘을 발동케 하고 발휘케 하는 일이기도 하다. 예수의 이름이야말로 자비와 치유와 구원을 뜻하고, 뜻하는 바를 실현케 하는 성사이며 모든 성사의 ’원 성사’이다.
예수의 이름을 부를 때 소리내어 부를 수도 있고 마음속으로 부를 수도 있다. 이 두 가지 다 좋은 방법이다. 처음에는 소리내어 부르고, 그 다음에는 진심으로 고요히 마음속으로 부른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이 짧은 기도는 우리로 하여금 소리내어 하는 기도에서 마음의 기도로 쉽게 이끌어준다. 뿐만 아니라 천천히 생각에 잠기면서 이 호칭기도를 소리내어 반복한다면 이 기도는 우리를 마음 깊은 곳까지 이끌어줄 뿐만 아니라 우리 영혼을 깊은 관상 속으로 잠기게 해 준다.
4. ’예수기도’ 양식
예수기도는 따로 분리된 기도가 아니며, 마음의 기도로 가기 위한 전단계의 기도이다. 즉 예수기도는 마음을 다스리고 맑게 만들어 내면 속으로 깊게 잠기게 하고, 그 안에서 예수님의 현존을 체험하게 하고, 현존과 하나가 되게 하는 기도이다.
이 예수기도를 성체조배와 병행한다면, 보다 나은 성체조배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예수기도를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은 예수의 현존과 하나가 되는 것이며, 성체는 다른 그 무엇보다도 예수님의 현존이 확실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눈으로 보는 것을 마음 속으로 초대할 수 있다.
지금부터 소개하는 2가지 수련 방법을 성체조배를 할 때 시행해 본다면 성체조배의 시간이 더욱 풍요로와 질것이다.
1)예비단계
① 먼저 신앙고백과 함께 평화와 잠심을 유지한다. 그 다음 우리의 마음속에 성령이 임하시어 우리를 인도해주시도록 기도 드린다.
② 무엇보다도 단순한 마음으로 이 기도를 시작해야 한다. 한가지 주의할 점은 자신의 강한 내적 열망과 감정을 이 기도에 연관시키면 안 된다. 다만 고요히 이 거룩한 이름을 평안한 마음을 갖고 반복해서 부르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이 수련은 내적 생활을 보다 깊이 체험하려는데 그 동기를 두어야 한다.
③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이 기도를 일시적인 기분에 사로잡혀 기분내키는 대로 불러서는 안되며, 이 이름은 하느님에 의해 인도되는 특별한 부르심에 대한 순종에서부터 우러나와야 한다.
2)수련의 두 단계
수련에는 두 가지 단계가 있다. 첫째 단계는 ’예수기도’를 심장의 고동에 맞추어 외우는 것이며 둘째 단계는 호흡에 맞춰 외우는 것이다. 여기에서 첫째 단계는 생략해도 상관없다.
㉠ 첫째 단계 : 심장의 고동에 맞춰 외운다.
① 조용한 곳에 앉아 눈을 감는다.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힌다.
② 자기 심장에 주의를 기울이고 심장을 마치 보는 것처럼 생생하게 상상한다. 또 심장의 고동소리에도 주의를 기울여서 마치 그 소리를 듣고 있는 것처럼 상상한다. 이 수련을 계속해서 되풀이하면 차츰 심장의 모양과 고동을 뚜렷이 상상하고 느끼게 된다.
③ 심장의 고동에 맞춰 ’예수기도’를 외우되, 각 고동마다 한 단어씩 외운다.
④ 각 고동마다 천천히 여유있게 외우기 위해서는 두개 이상의 긴 단어를 한 고동에 집어넣지 말아야 한다.
⑤ 기도를 외우는 동안에는 잡념과 분심을 멀리하고 감각과 상상력을 기도에만 집중시켜야 한다.
⑥ 차음 의식적인 노력과 콘트롤을 빼가면서 절로 흘러 나오게 한다. 어느 정도 계속해 나가면 심장의 고동과 함께 기도가 심장에서 뛰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이리하여 기도는 전신으로 흘러가는 혈액과 함께 온몸에 퍼져가게 된다.
⑦ 얼마 후, 심장은 평온하고 아늑해지며 심장의 고동도 느려진다.
이렇게 마음의 고동에 기도를 일치시키는 사람은 기도를 결코 중단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기도는 그 존재의 생명적 기능으로서 변화되기 때문이다.
㉡ 둘째 단계 : 호흡에 맞춰 외우는 방법
① 조용한 곳에 앉아 눈을 감고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힌다.
② 심호흡을 천천히 하면서 자기가 들이쉬고 내쉬는 호흡에 주의를 집중한다.
③ 호흡에 맞춰 ’예수기도’를 염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먼저 숨을 들이쉬면서 ’주 예수 그리스도여’를 외우고, 내쉬면서 ’나에게 자비를 베푸소서’를 외운다. 각 부분이 너무 길다고 느끼면 줄여서 할 수도 있다.
④ 처음에는 작은 소리로 외우기 시작하지만 얼마 후에는 입술만 움직이게 되고 소리는 없어진다. 그 다음에는 입술도 움직이지 않고 내심으로 외우게 된다.
⑤ 이 기도를 호흡과 일치하면서 계속 해도 좋고 아니면 "예수님"하고 한 단어만 부드럽게 그리고 길게 부르는 것도 좋다. 예수님이란 단어가 의식(기억)에서 점점 사라질 때 때때로 그것은 내적으로 깊은 심층의 단계에 와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어느 정도 예수와 인격적으로 직접 대면해 있는 상태에 와 있음을 뜻한다.
⑥ 기도를 계속해서 바치는 가운데 몸과 정신은 더욱더 차분해진다. 하느님의 사랑스러운 현존 안에 있다는 것을 자각하게 되면 더 이상 말이 필요 없게 된다. 완전한 정적과 침묵 속에서 몸과 정신은 맑은 의식으로 수면보다 더 깊은 휴식을 맛보게 된다.
⑦ 완전히 텅 비워진 평온한 마음의 기능 그대로를 간직하고, 이러한 마음상태에서 구원의 사건과 그리스도의 신비 혹은 그밖의 것을 묵상할 때 즉시 풍요로운 수확과 결실을 맺을 수 있는 묵상 안에서 살게 된다.
⑧ 하느님의 사랑의 현존 안에 다소 머문 뒤 정신이 산란해지면 다시 ’예수기도’를 외우면서 정신통일을 한다.
예수기도를 하면서 기도자의 의식 속에 무엇이 들어오든지 항상 받아들이려는 긍정적인 자세를 취해야 한다. 즉 그냥 들어오도록 내버려두어야 한다. 단지 오로지 순수한 마음으로 꾸준히 기도 안에 머물러 있으면 된다. 자기 자신에게 어떤 것을 강요도 하지 않고, 또한 자신이 직접 처리하여 이끌어가려는 선입견을 없애면서 오로지 기도문이 이끄는 대로 자신을 내맡기면서 따라가는 것, 기도의 주도권을 예수님께 맡길 수 있음은 이 기도에 있어 아주 본질적인 것이다.
이것은 ’예수기도’를 통해서 관상하는 방법이지만 이 수련을 계속한다면 점차 다른 시간에도 ’예수기도’를 바치게 된다. 우선 간단하고 단조로운 일을 하는 동안에 ’예수기도’를 자주 반복하는 습관을 기른다. 그 후에는 복잡하고 지성적인 일을 할 때도 ’예수기도’를 자주 반복하도록 한다. 이렇게 인내와 끈기를 다해 계속 수련해 나가면 반드시 ’끊임없는 기도’의 경지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모든 수련은 끈기와 인내와 열성을 다해서 하되, 열성은 어디까지나 ’내적인 열성’이어야 한다. 또 가급적이면 모든 긴장과 과격적인 연습도 피해야 한다.
5. ’예수기도’의 효과
’예수기도’ 수련의 효과는 일상생활을 실존적으로 체험케 하고 주변의 세계와 자기자신을 깊이 깨닫게 해 준다. 하루를 생활하면서 예수기도로 자기 내면을 활성화한다면 이 기도 안에서 큰 힘을 얻게 된다. 또한 이 기도를 사용하면 할수록 이 예수기도와 함께 묵상하는 것이 더욱 쉬워진다.
예수기도의 일반적인 효과를 나열해 보면, 기도를 하면 할수록 더 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지고, 심적 상태는 언제나 평온하고 무슨 일이 생겨도 기쁨으로 충만하게 되며, 만나는 모든 사람을 다 자기의 친형제나 자매처럼 느끼게 되고, 남의 모욕도 달게 받으며, 생활의 애로, 고통, 슬픔, 질병 등을 심하게 느끼지 않는다. 또한 노여움이나 괴로움도 사라진다. 그리고 끊임없이 우리 영혼을 돌보아주며, 죄를 피하도록 도와준다.
’예수기도’가 마음 깊숙히 들어가 ’내심의 기도’가 되었을 때 다른 결과도 생긴다. 이 세상이 매우 아름답게 보이고, 대자연의 모든 것이 친밀하게 보인다. 둘레의 자연 전체가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의 표시로 보인다. 그리고 하느님의 현존을 생생하게 실감하고 그의 사랑을 깊이 체험한다. ’하느님 나라는 바로 너희 가운데 있다’(루가 17,21)는 말씀을 몸소 경험한다. 또한 피조물의 정신을 이해하게 되며 동시에 여러 피조물들과 대화하고 친교하는 방법도 깨닫게 된다. 또한 우주의 삼라만상은 다 창조주를 찬양하기 위하여 존재하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 마지막으로 여러 형태의 황홀감에 도취되고 탈혼 상태에까지 빠지게 된다.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이 기도의 세부적인 면을 살펴볼 때, 이 기도는 하느님께 흠숭과 예배를 드리는 기도이다. 우리의 기도는 너무도 자주 간구, 중재와 속죄의 기도로 제한되어 있다. 예수의 이름 역시 이러한 기도방법으로 사용될 수 있다. 그러나 하느님의 위대하심을 보며, 그분께 찬미를 드리는 사심없는 기도, 그분에 대한 무한한 존경과 사랑에서 우러나오는 탄성의 기도, 그분께로 모든 관심과 주의가 집중된 기도가 모든 기도의 첫 자리에 놓여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 기도는 우리를 보다 순수하고 완전한 흠숭의 길로 인도한다. 왜냐하면 예수기도는 우리 마음안에 예수께서 꼭 임하도록 해주며, 하느님은 우리의 모든 것이 되시고 동시에 우리 자신은 아무것도 아님을 깨닫게 되는데, 이러한 인식을 통해 우리는 주님을 흠숭하고 경배하게 되기 때문이다.
또한 예수의 이름은 그분의 현존 그 이상의 것, 바로 구원을 가져다 준다. 예수는 구세주로서 당신 이름 안에 현존하고 계신다. 예수기도를 통해 예수를 우리의 주님으로, 우리 한사람 한사람의 구세주로서 인식할 수 있다. 또한 예수의 이름은 우리들이 지은 죄를 씻어주는 용서와 화해를 가져다준다. 그러하기에 하느님의 자비를 체험하게 해 준다.
예수기도는 또한 우리 자신을 육화의 신비 안으로 깊이 잠기게 한다. 분명 이 기도는 우리를 주님과 일치시키는 큰 힘이며 접착제이다. 주님과의 일치는 묵상과 현존보다 훨씬 더 큰 것이다. 말씀의 육화와 우리 안에 거룩한 이름이 내재하는 사이에는 비슷한 점이 있다. 말씀이 육화되어 사람이 되셨듯이, 예수 이름의 내적 실재가 우리 영혼 안으로 젖어 들어올 때 우리 육신은 온전히 그분으로 가득 차게 된다.
거룩한 이름은 세상을 그리스도화(化)시키는데 큰 도움이 된다. 다시말해 이름을 부르는 기도는 곧 거룩한 변모의 한 방법인 것이다. 이것은 자연계에 있어서도 똑같다. 모든 창조물은 육화를 중심으로 한 점으로 모이게 된다. 모든 창조물은 신비스로운 마음으로 예수의 이름을 드러낸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자연 안에서 들을 수 있는 것은 이 이름을 드러내는 소리이다. 자연 사물을 향해 예수의 이름을 부를 때 믿는 이들은 이 사물들 안에 숨겨져 있는 비밀을 소리내어 드러내게 된다. 우리는 모든 피조물들과 일치를 이루면서 예수의 이름을 부르게 되는 것이다. 또한 거룩한 변모를 인간관계를 통하여 체험하게 된다. 우리는 특별히 우리를 귀찮게 하고 우리와 성격이 맞지 않는 사람들까지 포함해서 모든 형제자매들에게 다가가야 하고, 봉사와 봉헌 그리고 흠숭의 마음으로 그분의 이름 안에서 그분의 이름으로 그들의 이름을 부름으로써 그들을 통해 그리스도를 흠숭하고, 그들 안에서 그리스도께 봉사할 수 있다. 예수기도를 통해서 모든 사람을 향해 예수를 부르고, 모든 사람 안에서(그 사람이 악과 범죄 속에 있는 사람일지라도) 예수를 보게 될 때, 우리 모두는 변화되어 거룩하게 될 것이다.
예수가 계신 곳에 또한 교회도 거기 있다. 예수 안에 있는 사람은 누구든지 교회 안에 있는 것이다. 거룩한 이름을 부르는 이 기도는 주님과 일치를 가져다 줄 뿐만 아니라, 결코 인간의 죄악으로 물들지 않는 교회와 일치하도록 해준다.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기도는 우리로 하여금 보편적인 사제직의 실천으로써 그리스도의 영원한 제사를 영적으로 실제적이고 현실적인 제사가 되도록 우리를 도와준다. 성찬은 영원한 하느님 왕국에 대한 예시(豫示)이다. 예수의 이름을 성찬적으로 사용할 때 이 이름은 우리를 주님의 재림과 종말과 관련지으며 이름을 부르는 기도에로 이끌어간다.
우리는 "예수님" 하고 부르면서 주님의 이름의 완전성과 충만 안에서 휴식을 누리게 된다. 이 거룩한 이름은 그리스도의 모든 것을 다 지니고 있으며 그분의 완전한 현존 안으로 이끌어간다. 이 완전한 현존은 현실적으로 모든 실재의 본질적인 것이며, 이름은 모든 실재-구원, 육화, 거룩한 변모, 교회, 성찬, 성부와 성령-에로 가까이 가도록 해준다.
나가는 말
지금까지 예수기도의 정의와 형태와 양식과 효과에 대해 알아보았다. 예수기도는 우리의 영성생활을 단순하게 해 주고 한군데로 집중할 수 있도록 해 준다. 우리의 모든 생활의 유일한 초점이 되는 이 거룩한 이름, 이 단 한 마디 기도보다 더 단순한 기도는 없다. 복잡한 기도는 우리를 피곤하게 만들고 우리의 생각을 흩어지게 한다.
예수기도는 시간과 장소에 구애됨이 없이 항상 할 수 있는 기도이며, 그러하기에 우리 삶의 모든 것을 항상 예수님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 이 예수기도의 가장 큰 장점이다.
현대인들은 복잡한 사회 속에서 살고 있기에 흔히들 시간이 없어서 기도를 못한다고 한다. 이렇게 바빠서 도무지 기도할 틈이 없다고 하는 이들에게 이 기도는 더없이 좋은 기도가 될 수 있으리라 본다. 또한 이 기도를 통해서 기도를 하지 않는 이유가 기도할 시간이 없어서가 아니라 기도할 마음과 열망이 없기 때문임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기도는 우리 생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 모든 것에 앞서서 기도를 우리 생활에서 항상 첫 자리를 두어야 한다. 진정으로 기도하기를 원하고 기도하는 방법을 배우려 한다면 먼저 뜨거운 마음으로 기도하기를 열망해야 하고, 그 밖의 모든 것은 성령께서 친히 알려주시고 이끌어주신다.
예수기도를 통해 복잡한 마음을 다스리고 맑게 만들면서 어린아이와 같이 단순한 마음으로 돌아가고, 온전히 우리 마음을 예수님께 활짝 열어 보이면서 그분 안으로 들어가 잠길 수 있도록 일할 때나 공부할 때나 길을 걸을 때나 차를 타고 있을 때나,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에도 모든 생활 안에서 이 기도와 함께 생활할 수 있도록 하며, 이 예수기도가 많은 신자들에게 알려지기를 희망하며 이 글을 마친다.
◎참고문헌◎
1. 익명의 수도자,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기도, 오무수 옮김, 1991년
2. 김보록, 기도의 신학 (Ⅲ), [신학전망] 53호(1981년 여름)
3. 김보록, 기도의 신학 (Ⅲ), [신학전망] 57호(1982년 여름)
4. "어느 러시아인의 순례 이야기"[이름없는 순례자], 최익철 역, 가톨릭 출판사, 1979년
5. 토마스 슈피드릭, 마음의 기도, 곽승룡 역, 성 바오로출판사 근간
6. 토마스 슈피드릭, 동방그리스도교 영성, 곽승룡 역, 10장(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