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당구 이야기

2009. 12. 23. 오후 7:4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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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판의 당구 이야기를 읽으니 옛날 생각에 웃음이 나온다.
보통 10대 20대에 배우는 당구를 나는 40대에 배웠다.
그 때는 그만한 사연이 있었고 그 후 먹고 살기 바빠 포기했다가 늦게 배운 것이다.

청년시절엔 다 그렇듯이 나도 안 하면 안 했지 하면 최고가 돼야 직성이 풀렸다.
그 최고라는 것이 친구들 또는 자주 만나는 주변 사람들 중에 최고를 의미하지만...
그런데도 주변에 실력이 만만치 않은 이들이 많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릴적부터 이상하게 바둑과 장기를 잘 두는 아마 고수급 친구들이 여러명 있었고
당구와 화투는 물론 키타와 하모니카에 어떤 친구는 피리도 잘 불었으며
운동도 유도는 정규과목이었고 방과 후 태권도와 합기도장에 다니는 친구도 많았다.

나도 다행히 각 방면에 소질이 있어 배우는 건 어렵지 않았지만 학원비가 문제였다.
그때가 50년대 후반 60년대 초이니 얼마나 어려운 시절인가.
학생들 거의 대부분이 분기마다 내는 등록금이 어려워 절절매던 시대였으니 말이다.

그래도 재간 좋은 친구들은 참고서 산다는 거짓말로 돈을 타 내 학원을 다녔는데
나는 거짓말이 서툴렀던지 맏형에게 들켜 크게 야단 맞은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아버지에게 참고서 산다고 거짓말 한 것은 키타학원을 다니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몇 달 다니다가 큰 형에게 꼬리를 밟힌 것이다.
그때 태권도학원도 다녔지만 그건 학교에서 다니라 했다고 우겨 간신히 통과했었다.
유도가 정식과목인 터라 의심쩍어 하면서도 다행히 학교에 확인하지는 않았다.

당시 당구가 유행이었고 꼭 배우고 싶었지만 돈이 덜드는 키타학원을 택한 것인데 
겨우 3개월 정도 기초 졸업단계에서 중단했으므로 배운 것도 아니다.
여하튼 당구는 사회에 나와 배우겠다고 미룰 수밖에 없었고 흐지부지 나이만 먹었다.

그런데 40줄에 들면서 배우기 곤란할 때 처가에 행사가 있는 날 문제가 되었다.
바둑 장기는 6남매 맏사위 체면에 문제 없고 화투도 괜찮은데 당구는 아니지 않은가.
하지만 당구도 필수 내기게임 종목이었고 여럿이 즐기는 메인 코스였다.

게다가 처가의 모임은 앞으로 계속될 일이다.
동네 당구장에 가서 알아 보니 200정도는 약 6개월에 50만원이면 가능할 것이라고.
당시 월급이 50만원 쯤이라 쉬운 결심이 아니었지만 다행히 아내가 허락했다.

평일은 퇴근 후 두시간 쯤, 토요일 오후와 일요일 공휴일은 당구장에서 살았다.
그렇게 5개월이 다 되고 비용도 40만원 가까이 소진되었을 때 처가 행사가 있었는데
그 무렵은 그 당구장 단골들이 250이 짜다며 불평하던 상태였다.

250정도면 처남의 1000 에겐 당연히 안 되지만 그 외 동생들은 상대가 되지 않았다.
더구나 250도 아니고 200을 치면서 약하다며 엄살 떨었으니 질 까닭이 없다.
물론 좀 야비?하여 양심 가책은 있었지만 눈 딱 감았고 게임비와 술과 안주를 샀다.

그리고 그렇게 배운 당구는 회사에서 회식할 때도 빛을 발했는데
그때까진 너무 오래 치지않아 녹슬어 안 된다며 아예 당구장에 가지도 않았었다.
그러다가 어느날 갑자기 술 깬 다음에 운전하는 것이 좋겠다며 태도를 바꾼 것이다.

그리고 능구렁이 짓으로 손 큐걸이를 엉터리로 했더니 그럼 안 된다며 고쳐 주는데
그동안 당구 배운 일을 일체 말하지 않아 직원들이 알 턱이 없다.
처음에는 능청부리며 너무 오래되어 잘 안 된다면서 계속 잃어주니 좋아들 했지만....

그렇게 원칙 중시의 내 업무 스타일에 힘들어 하는 직원들 스트래스를 풀어 주면서
음주운전하지 않는 데도 크게 도움되었음은 물론이다.
매일 새벽 출근하는 터라 아무리 취해도 차를 가지고 가야 안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왕년에 300쳤는데 너무 오래되어 녹 슬었다며 100을 치겠다고 하니 안 된다고 했다.
돈을 잃어도 그렇지 체면이 있지 않느냐며 최하 200은 놓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바쁜 회사생활에 어쩌다 치는 그들이 맨날 치다시피한 나를 이길 수는 없다.

녹 슬은 것이 벗겨진? 후부터 게임이 되지 않았지만 2차는 항상 보태야 가능했다.
회사를 사직하고 사업할 때도 당구가 유용하게 활용되었는데
60 가까운 내가 당구를 친다 생각한 직원들이 없었던 터라 모두가 반기며 좋아했다.

사업장이 지방인데다 도시 변두리에서 다소 먼 시골이라 여가를 즐길데가 없었는데
다행히 당구장이 있어 회식 때면 직원들과 게임을 했다. 
그 때도 200을 쳤지만 그건 속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내려 150 정도가 맞았다. 

나이가 많아지며 시력이 나빠진데다 또 취하면 정확성이 크게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잃거나 따거나 결국 회사가 처리할 것이기 때문에 신경 쓸 일도 아니다.
힘들게 일하는 직원들과 잠시나마 함께 하는 것이 목적이었고 매우 효과적이었다.

사업을 그만 둔 지금은 60이 훨씬 지났지만 이제는 장성한 아들들과 치게 되었다.
물론 아버지 아들 상관없이 지는 쪽이 게임비 내고 내기게임도 몇 번 쳤다.
아버지에게 돈 잃는 것이 아까울리 없겠지만 공을 보는 눈빛이 날카롭기 그지 없다.

나도 물론 돈 잃는 것이 아까울 턱 없다.
그러나 게임은 상대가 누구든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것이 나의 지론인 것이다.
아직은 내가 이길 때가 더 많은 편인데 시력이 자꾸 나빠지고 있어 그것이 문제다.

아들에게 지는 건 좋지만 부자간에 유일한 유대의 끈이 당구 밖에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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