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나무라고 늘 꽃을 달고 있는 건 아니다

2008. 7. 3. 오전 9:30:20

글자

 

 

 

 

 

 * 꽃나무라 늘 꽃 달고 있는건 아니다

 

꽃나무라고 늘 꽃 달고 있는 건 아니다. 삼백예순닷새 중 꽃 피우고 있는 날보다 빈가지로 그렇게 있는 날이 훨씬 더 많다 행운목 처럼 한생에 겨우 몇번 꽃을 피우는 것들도 있다 겨울 안개를 들판 끝으로 쓸어내는 나무들을 바라보다 나무는 빈 가지만으로도 아름답고 나무 그 자체로 존귀한 것임을 생각한다 우리가 가까운 숲처럼 벗이 되어주고 먼 산처럼 배경 되어주면 꽃 다시 피고 잎 무성해지겠지만 꼭 그런 가능성만으로

나무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 빈 몸 빈줄기로도 나무는 아름다운 것이다 혼자만 버림받은 듯

바람 앞에 섰다고 엄살떨지 않고 꽃 피던 날의 기억으로 허세부리지 않고 담담할 수 있어서 담백할 수 있어서 나무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것이다 꽃나무라고 늘 꽃 달고 있는게 아니라서 모든 나무들이 다들 꽃을 피우고 있는 게 아니라서

<도종환/부드러운 직선 中에서>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좋은글/따뜻한글

목록 전체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