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꽃나무라 늘 꽃 달고 있는건 아니다
꽃나무라고 늘
꽃 달고 있는 건 아니다.
삼백예순닷새 중 꽃 피우고
있는 날보다 빈가지로
그렇게 있는 날이 훨씬 더 많다
행운목 처럼 한생에 겨우
몇번 꽃을 피우는 것들도 있다
겨울 안개를 들판 끝으로
쓸어내는 나무들을 바라보다
나무는 빈 가지만으로도 아름답고
나무 그 자체로 존귀한 것임을 생각한다
우리가 가까운 숲처럼
벗이 되어주고
먼 산처럼 배경 되어주면
꽃 다시 피고 잎 무성해지겠지만
꼭 그런 가능성만으로
나무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 빈 몸
빈줄기로도 나무는 아름다운 것이다
혼자만 버림받은 듯
바람 앞에 섰다고
엄살떨지 않고 꽃 피던
날의 기억으로 허세부리지 않고
담담할 수 있어서
담백할 수 있어서 나무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것이다
꽃나무라고 늘 꽃 달고
있는게 아니라서 모든 나무들이
다들 꽃을 피우고 있는 게 아니라서
<도종환/부드러운 직선 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