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년, '베트남전쟁'이란 악령은 물러갔을까?
[신간] 한정광 장편소설 <정글 피쉬> / 홍성식(2008.09.04)
"42년을 묵혀온 상처를 어떤 방식으로든 털어내지 않고서는 도저히 제대로 살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죽고 죽이는 전쟁의 참상을 고스란히 겪어내야 했던 젊은이의 고통을 보통사람은 짐작조차 못할 겁니다. 이전의 나는 몸속에 광기를 내재한 일종이 휴화산이었습니다."
1966년 12월 24일 성탄 전야. 고교 시절엔 트럼펫을 불던 낭만소년이었으며, 팝음악과 할리우드 영화에 열광하던 한 청년이 동료군인 150여 명과 함께 김포공항에서 출발한 특별기를 타고 베트남을 향한다. 해병대 청룡부대 파월군인의 일원이 된 것이다.
총알이 머리 위로 날아다니고, 포탄 파편이 동료들의 가슴팍에 박히는 처참한 전장에서의 1년. 청년은 살기 위해서 '적'을 죽여야 하는 끔찍한 현실을 온몸으로 겪어내야만 했다.
밤새 계속된 야간전투에서 월맹 정규군과 목숨을 건 육박전을 벌이고, 매복작전을 나갈 때면 베트남 무장게릴라(일명 베트콩)의 신출귀몰하는 습격을 고스란히 받아내야 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전우들이 죽거나 다쳤다. 그 시절 겪은 동료들의 죽음은 청년의 가슴 안에 지워지지 않을 상처로 고스란히 남았다.
지옥 같았던 베트남전쟁의 현장에서 1년 만에 귀국했다. 그러나, 적응이 쉽지 않았다. 눈만 감으면 어두컴컴한 정글이 보였고, 그 속에서 튀어나온 베트남 군인과 게릴라들이 총을 난사하고 칼을 휘둘렀다. 전사한 동료들의 모습 또한 시시때때로 튀어나왔다. 계속되는 환청과 환시. 한국에서의 삶 역시 전쟁터와 마찬가지로 지옥에 다름 아니었다.
끊임없이 악몽을 강요하는 '베트남전쟁'이란 이름의 악령. 청년은 그 악령에게 생과 존재 전체를 위협받고 있었다.
그 악령으로부터 청년을 구한 것은 산(山)과 아내였다. 한국은 물론 알프스와 히말라야를 비롯한 전세계의 산을 돌아다니며 참혹했던 베트남 정글에서의 전투를 차츰 잊어갔고, 아내의 극진한 희생과 사랑이 폭력과 광기로 번득이던 청년의 눈빛을 평범한 사람의 그것처럼 누그러뜨렸다.
그리고, 2008년 늦여름. 예순 셋의 장년이 된 그 청년은 태어나 처음으로 소설이란 걸 썼다. 베트남전쟁과 그로 인한 상처, 그 상처의 극복과정까지를 원고지 980매에 차곡차곡 옮겨 쓴 것이다. 그 소설의 제목은 < 정글 피쉬 > (노마드북스 펴냄).
홀가분하게 모든 것을 털어놓은 청년은 이제 전쟁이란 비극이 강제한 지우기 힘든 상처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된 것일까? 42년 동안 곁에 머물며 끈질기고 광폭하게 청년을 괴롭힌 악몽과 악령은 이제 온전히 물러난 것일까?
실화가 주는 감동... 전쟁의 상처는 어떻게 치유되는가
'사회적응이 어려워 격리되다시피 한 나를 산은 그 넉넉한 품으로 아무런 조건 없이 품어주었다. 산은 어머니처럼 항상 나의 상처를 어루만져주고, 축 늘어진 나의 어깨를 토닥여주고, 나의 사소한 투정까지 모두 받아주었다. 말하자면 베트남이 산으로 바뀌어 다시 내게 다가온 것이다. 산은 또 하나의 베트남 정글이었다.'
- 위의 책 318쪽 내용 중 일부.
'이젠 오랜 미망, 그 허망한 꿈에서 깨어나고 싶었다. 그리하여, 정글 피쉬처럼 운명에 굴복하지 않고 넓은 바다로 힘차게 나아가고 싶었다.'
- 위의 책 352쪽 내용 중 일부.
최근 출간된 < 정글 피쉬 > 는 앞서 언급된 '청년'의 이야기를 담아낸 장편소설이다. '소설'이라는 외피를 입고 있지만 기실은 '수기'에 더 가깝다. 허구가 아닌 사실을 근간으로 작성된 글인 것이다.
책의 저자인 한정광(63)은 베트남 파병과 현지에서의 전투, 우여곡절 끝의 귀국과 제대란 간단치 않은 세파를 겪은 이후 뒤늦게 대학에 입학했고, 이후 중고교 국어교사로 아이들을 가르치며 살아왔다.
아직도 아내가 곁에 없으면 정서적으로 안정이 되지 않고, 산이 주는 위로와 위안이 없다면 세상살이를 견뎌내기가 힘들다고 말하는 한정광. 그는 소설을 쓰게 된 이유를 묻자 이렇게 답했다.
"이전까지 베트남전쟁을 소재로 한 많은 소설과 영화들은 참전 군인들의 비참한 최후에만 집착을 해온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다른 방식으로 말하고 싶었습니다. 전쟁의 고통과 악몽을 떨쳐내고 제대로 살고 있는 사람도 있다는 것, 그것을 알려주는 것이 내 몫의 사명이라고 믿었습니다."
포탄에 의해 불바다가 된 정글, 그 정글에서 팔열지옥의 모습을 봐야 했던 스무 살 남짓의 어린 군인들, 그 군인들이 타의에 의해 입어야 했던 지울 수 없는 생채기, 오랜 세월에 걸쳐 반복적으로 겪어야 했던 청년기의 악몽, 그리고 악몽과 악령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는 인간의 모습….
실화여서 더 생생한 감동을 가감 없이 담아낸 진솔한 소설 < 정글 피쉬 > 를 읽는다는 것은 한 인간의 영혼 안에 자리한 고통을 이해하고, 그 극복과정에 동참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런 까닭에 전쟁이 초래하는 비극을 겪지 못한 세대들에게도 이 책은 유의미하다.
덧붙여 하나 더. 책의 제목이 된 '정글 피쉬'는 태풍에 의해 정글 속에 떨어진 아프리카 바닷가에 사는 물고기를 뜻한다. 누구나 짐작가능하다시피 이는 베트남전쟁의 불길 속에 갇힌 군인들을 우회적으로 지칭하고 있는 것이다.
정글피쉬 / 저자 한정광 | 출판사 노마드북스
베트남의 정글 속에서 펼쳐지는 한 청년의 삶과 사랑!
베트남 전쟁을 배경으로 한 청년의 삶과 사랑을 그린 실화소설『정글피쉬』. 베트남 최전선에 전투병으로 참가했던 작가의 실제 체험을 바탕으로 하였다. 베트남 전쟁의 분위기와 당시 파병군인들의 심리를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1960년대 베트남과 한국에서 펼쳐지는 한 청년의 삶을 통해 전쟁의 상처로 고통받은 사람들에게 위로의 메시지를 전한다.
1부는 비행기를 타고 베트남으로 향하는 주인공 유정우와 파병군인들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베트남의 정글, 그 참혹한 현장에서 유정우는 사랑, 전쟁, 이념, 갈등, 동지애, 연민 등 기본적인 인간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그는 태풍에 휩쓸려 정글에 떨어진 '정글피쉬'처럼 자신이 있을 자리가 아닌 전혀 다른 곳에 던져진 채 운명의 끝을 기다린다.
2부는 군을 제대한 후 사회 부적응자가 된 유정우의 고통과 상처를 보여준다. 전쟁에서 아끼던 부하 김성렬 수병을 잃고 인간의 삶과 운명에 대한 고민으로 방황하던 유정우는 김 수병의 누나 송희를 찾아간다. 몸을 팔 수밖에 없는 송희의 인생과 남매의 고단했던 삶. 유정우는 김 수병에게 인간애를 느꼈던 것처럼, 송희에게 깊은 애정을 느끼게 되는데….
<출판사 서평>
푸른 정글 속에 펼쳐지는 한 청년의 휴먼드라마 / 그리고 붉은 단풍 같은 가슴 저미는 사랑
이 작품은 작가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 현장감 넘치는 장편소설이다. 베트남 전쟁으로 빚어지는 한 청년의 삶과 사랑이 60년대 베트남과 한국에서 드라마틱하게 펼쳐진다. 베트남 전쟁의 분위기와 그 당시 파월군인들의 마음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감정과 분위기가 주인공을 중심으로 잘 드러나 있다. 구성은 1부 출국과 2부 귀국으로 되어 있다.
1부 출국
베트콩은 여러분에게 공격신호를 보내지 않는다. 불시에 바로 코앞에 나타나 목을 따거나 배 속에 칼을 담근다. 여러분의 운명은 이미 던져졌다. 그 운명이 살 길은 오직 총알과 칼이 여러분의 몸을 피해가는 것밖에 없다. 총알과 칼을 피할 수 있다는 생각은 지금부터 버려라. 여긴 그런 곳이 아니다. 피하면 죽는다. 살려고 하면 더 빨리 죽는다. 해는 하루 종일 떠 있지 않는다. 내일 뜨는 해는 다른 해다. 행운을 빈다! - 본문 중에서
이야기는 비행기를 타고 베트남에까지 가는 주인공 유정우와 월남 파병군인들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전쟁이라는 극한상황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는 명확한 이미지 중심의 간결한 문체로 이어진다. 소설 속의 상황묘사는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를 넘나들며 직접 총을 들고 베트남의 정글을 통과하는 듯한 착각에 빠져들게 한다. 전장에서 직접 맞닥뜨린 전우의 죽음을 시작으로 주인공은 참혹한 살육의 현장 속에서 인간의 사랑, 전쟁, 이념, 갈등, 동지애, 연민 등 가장 기본적인 인간의 모습을 발견하는 과정이 담겨 있다.
주인공의 처지는 흡사 ‘정글피쉬’처럼 본인이 있을 자리가 아닌 전혀 외딴 곳에 운명을 던져놓고 그 운명의 끝맺음이 어떻게 될지를 기다리고 있다.
“아프리카에 바닷가에 사는 물고기들이 있다. 그런데 그 물고기들 중 상당수가 태풍이나 폭풍이 치면 근처 숲속으로 날려가 떨어진다. 그 물고기들을 예로부터 ‘정글피쉬’라고 한다. 물고기의 꿈은 넓은 바다로 다시 나가는 것이다.
그렇지만 불행하게도 정글에 떨어져 파닥거리다가 결국 죽고 만다. 우리의 운명도 그 정글피쉬의 운명과 다를 바 없다. 그러나 여러분은 이 정글에서 반드시 살아남아 넓은 바다로 돌아가는 물고기가 되기를 바란다.” - 본문 중에서
하지만 김성렬 수병과의 만남은 그의 운명을 다시 한 번 바꿔놓게 된다. 두 사람은 생사가 눈앞에서 오가는 전쟁터에서 서로에게 동지애를 넘어선 깊은 인간애를 느끼게 된다. 그때부터 유정우는 어떻게든 김 수병을 살려 귀국시키려는 강한 의지로 군 생활을 이어간다. 하지만 김성렬 수병은 베트콩의 총에 죽고 만다.
2부 귀국
2부의 귀국은 군을 제대한 후 사회 부적응자가 된 유정우의 고통과 상처를 보여준다. 전쟁에서 아끼는 부하인 김성렬을 잃은 뒤 인간의 생과 사, 운명에 대한 주체할 수 없는 깊은 괴로움과 고민으로 방황하다 문득 김 수병의 하나밖에 없는 누나 송희를 찾아간다. 몸을 팔수밖에 없는 송희의 인생, 그로 인해 고단했던 두 남매의 지나온 삶 그리고 동생의 죽음을 받아들여야 하는 누나의 운명에 유정우는 마치 김 수병에 대한 애틋한 감정이 고스란히 옮겨진 듯 깊은 애정을 부정할 수 없었다. 마침내 베트남 전쟁에서 돌아와 운명의 갈피를 찾지 못해 암흑 속에 빠져 있던 유정우와 송희 사이의 애절한 이야기가 시작된다.
스님이 담담한 표정으로 내 눈을 한동안 들여다보더니 물었다. “젊은이, 그 권총은 왜 차고 다니나?” “….” “앞으로는 사람 쏘지 말고 자네 아집이나 쏘게. 눈빛을 보니 잘 맞추겠구먼.” “….” 내가 여전히 잠자코 있자 노스님은 더 이상 말을 읽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일 아침 떠나게. 그리고 백화는 이제 더 이상 속세의 여자가 아니야!” - 본문 중에서
베트남 전쟁에서 극적으로 살아남아 남은 삶을 이어갔던 그의 일생은 전쟁과 이별로 인해 지울 수 없는 상처를 가슴에 묻고 살아오다 마침내 세례를 받으며 아련하고 차분하게 그의 고통을 끝맺는다. 이 소설은 단지 전쟁이나 그로 인한 상처에서 오는 사랑 이야기를 실감나게 묘사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전쟁을 통한 인간의 괴로움, 인간애, 한 순간에 결정되는 운명적인 생과 사의 갈림 그리고 구원 등을 내포하며 아직도 그때의 전쟁에서 상처받아 황폐해진 영혼을 가진 채 살아가는 이들을 위로하고 있다.
[작가의 말]
“당신은 휴화산이야! 가슴 깊은 곳에서 들끓고 있는 걸 토해내지 않으면 그 고통으로부터 결코 해방될 수 없을 거야. 지금도 늦지 않았으니 빨리 뱉어내요.” 목줄기에 핏대를 세우고 넋잃은 사람마냥 흐릿한 눈동자로 멍하니 허공만 응시하고 있는 나를 볼 때마다 참다 못한 아내가 매번 던진 독설이다. 정말, 긴 장고 끝에 펜을 잡았다. 그리곤 40년 동안 고여온 우물을 퍼내기 시작했다. 막상 퍼서 쓰다 보니 생각보다 힘들진 않았다. 마흔 살 무렵에도 한 번 시도해본 적이 있었다. 그 땐 쉽게 써지지가 않았다. 일단 고인 물을 퍼내면 다시 물이 고일 때까지 기다려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젠 물이 넘쳐 가슴 속에서 부글부글 끓으며 터질 것 같았다. 수위가 한계에 차 퍼내지 않고는 곪아 썩어서 더 이상 견디기가 힘들게 된 것이다.
이 책을 읽고 있는 동안 독자들은 자신이 어느새 베트남 정글 속에 있게 될 것이고, 또 한국의 오대산 단풍 속에 있게 될 것이며, 문득 자신이 주인공으로 변해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어차피 다 사람 사는 얘기니까 극히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겠는가.
그동안 베트남 전쟁을 소재로 한 많은 영화와 소설을 접해 본 필자로서는 다소 불만스러운 부분도 없진 않았다. 대부분 뒤끝이 좋지 않았다. 실성해 미쳐 날뛰다가 길바닥에 비명횡사 하는 경우도 있었다. 가슴이 찢어졌다.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물론 상처가 그만큼 깊었기 때문이겠지만, 같은 전우로서 어찌 마음이 편할 수 있겠는가. 그렇지만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부여안은 채 겨우겨우 버티며 진실하게 살아가고 있는 많은 베트남 전우들이 있다. 난 그것을 알리고 싶었고, 또 작게나마 이 글이 그들에게 위안이라도 될 수 있다면 더 이상 뭘 바라겠는가. 베트남 정글에서는 새들의 노래도 베트콩의 암호로 들린다. 이제 모두 그 노래가 암호가 아닌 진짜 노래로 들렸으면 좋겠다.
정글피쉬 / 한정광 지음 / 노마드북스. 352쪽. 1만원 [연합뉴스] 2008.9.4
실제로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작가가 체험을 바탕으로 쓴 장편소설.
1960년대 베트남과 한국을 배경으로 한 청년의 치열과 삶과 사랑이 그려진다.
정글피쉬(한정광 지음) [대전일보] 2008.9.5
실제로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작가가 체험을 바탕으로 쓴 장편소설. 베트남 전쟁으로 빚어지는 한 청년의 삶과 사랑이 60년대 베트남과 한국에서 드라마틱하게 펼쳐진다. 작품에는 베트남 전쟁의 분위기와 당시 파월군인들의 심정이 잘 드러나 있다. <노마드북스, 1만원>
정글피쉬(한정광 지음, 노마드북스, 352쪽, 1만원) [중앙일보] 2008.9.6
베트남 전쟁에 직접 참여했던 작가의 실제 체험을 바탕으로 쓰여진 장편 소설. 푸른 정글 속에서 펼쳐지는 한 청년의 뜨거운 휴먼드라마가 생생히 그려져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