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들의 통공을 믿으며

2008. 10. 30. 오전 5:55:32

글자
성인들의 통공을 믿으며  

11월은 죽은 영혼들을 위해 특별히 기도하는 위령성월이면서, 오늘(11월 2일)은 세상을 떠난 모든 신자들을 기억하는 위령의 날이기도 합니다.

오늘 이렇게 특별히 기도하는 것은, 성인품에는 오르지 못했지만 그리스도를 믿고 살아온 평범한 백성에게도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승리로 인한 몫이 부여되기를 바라는 희망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우리가 죽은 이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또 이미 돌아가신 성인들께 기도를 부탁드릴 수 있는 것은 “성인들의 통공”을 믿고 고백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인 의미에서 성인(聖人)은 은총의 상태에 있는 모든 사람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성인들의 통공”은 세례 받은 모든 이를 삼위일체의 신비 안에 하나로 결합시키는 신앙과 사랑의 통교를 의미합니다.

그러니 지상에 있는 신도들과 천상에 있는 복자들과 연옥 영혼들이 모두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며 영적인 것들을 서로 나누는 것이 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죽은 이들을 위해서 기도할 수 있고, 또 이미 하늘나라에 오르신 성모님과 복자들께는 우리를 위한 기도를 청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죽은 이를 기억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날인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의 행복선언이 담겨있는 진복팔단을 들려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행복하다고 하시는 사람들은 세상의 눈으로 보면 행복할 것 없는 사람들입니다. 소위 고생을 사서 하는 사람들, 자신만 배불리기를 포기한 사람들, 편안하게 살기를 포기한 사람들, 불의와 타협하기를 포기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을 행복하다고 하시는 이유를 보면, 예수님의 행복의 기준은 하늘나라에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지금이 슬픈 것도 아닙니다.

하느님 나라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며 살기를 지향하고 계명을 지키며 살아가는 모습이 세속적인 가치관으로 보면 고생스럽고 멍청해 보이지만, 그들에게는 남들이 보지 못하는 희망과 기쁨을 보고 누릴 수 있기 때문에 더 행복합니다.

그것은 부모들이 사랑하는 자녀를 위해 세상의 각박함 속에서 기쁘게 힘을 내서 일하는 것이나, 출산 때 나올 아이를 위해 태교에 정성을 들이고 산모들이 고통을 참아내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희망을 지상에 두지 말고 하느님 나라에 두어야 합니다.

세례를 통해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게 된 것을 기뻐해야 하고, 많은 어려움과 유혹과 고난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지켜내야 합니다.

하느님 나라에서 누릴 것을 희망하며, 지상에서의 힘겨운 삶을 이겨내는 사람이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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