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신교 신학자 가운데 틸리히(Paul Tillich)라는 분이 있는데,
이 사람은 '믿음이 무엇이냐?'라는 질문에 대해
"The courage to accept the acceptance"
(내가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용기)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자주, '하느님께서 과연 부족한 우리 자신을 정말 사랑하실까?'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마치 하느님께서는 정말 당신 마음에 들만큼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만
우리를 사랑하실 것같이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성인이 되어야만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면
아마도 우리는 죽을 때까지 아무도 하느님의 사랑을 받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어떠한 사람도 완전하신 하느님께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완벽한 성인은 결코 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느님의 사랑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의 못난 모습, 부족함을 다 아시면서도
하느님께서는 그러한 우리를 사랑하시고 받아주시고 인정해 주십니다.
그러면 왜 용기(Courage)라고 그랬을까요?
하느님의 사랑을 믿는 건데 거기에 무슨 용기가 필요한 것이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그 사랑의 손에 자기를 완전히 내어 맡기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의 손은 우리가 측량할 수도 없는 깊은 심연과 같은 것입니다.
그 끝을 모르는 그런 심연과 같은 것이 하느님의 사랑인데,
그러한 깊고 깊은 하느님의 사랑의 바다에 자기를 완전히 내맡기고 띄워내리는 것,
그러니까 하느님의 사랑을 믿는다는 것은 이처럼 하느님께 완전히 투항하는 것을 필요로 합니다. '완전 투항'이라고 하니까 꼭 전체주의 같기는 하지만
이 'total surrender'라는 표현은 영성 생활에서 가끔 언급되는 표현입니다.
이에 대해 어떤 분이 이러한 비유를 들었습니다.
믿음이란 우리가 아주 높은 곳에 올라가서,
우리 같으면 63빌딩 같은 높은 곳으로 올라가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저 아래서
'나를 믿고 뛰어내리라'는 소리만 듣고 몸을 던지는 그러한 용기라고.
믿음이란 이처럼 캄캄한 어두움,
하느님 사랑의 바다의 캄캄한 어두움 속에 모든 것을 그분께 맡기고 뛰어내리는 것을 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