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소문 행형지 확인 (2012.12.5포럼+2012.12.16평화신문)-지도:첨부파일

2013. 5. 27. 오후 4:10:43

글자



-조광교수님을 만났습니다.(2013.5.24 교회사연구소 연구실)


-그간 여러가지 이론들을 정리할 수 있는 구체적 자료를 통하여

행형장을 다시 비정할 수 있었습니다.

마침 현재의 순교탑 자리가 행형장임이 밝혀진 것은 우연의 일치로 보기에는

너무나도 신비로운 일입니다.


-교회가 인정하고 밝히고 있는 '서소문밖 순교성지' 행형장 위치를

현양회에서도 통일 된 목소리로 설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첨부파일에 그 위치를 여러 지도와 함께 올려 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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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행형지,서소문근린공원으로 확인돼

(평화신문2012. 12. 16발행 [1195호] )

 한국교회사연구소 '천주교 문화유산' 포럼서 밝혀져

1915년 총독부 지형도 등 통해 만초천변 위치 실증

전문가 현장 검증 통해 서소문역사문화공원 조성 탄력  

 

서소문 밖 행형지가 현재의 서소문 순교자현양탑이 세워져 있는 서소문공원으로 확인됐다.
 
 이같은 사실은 지난 5일 서울역사박물관에서 한국교회사연구소가 주최한 '한국 천주교 문

화유산 실태조사 및 활용방안 연구' 포럼에서 밝혀졌다.
 

 근대건축 학자이자 서울시 문화재전문위원인 안창모 경기대 교수는 이날 서소문 참형터
 
고증에 나서 참형터 위치는 현재 서울시 중구 의주로2가 16-4 서소문근린공원 내에 있다고
 
밝혔다.
 

 최근 서소문 행형지 위치 비정(批正)에 결정적 근거인 '이교(흙다리) 건너 만초천변 모래사

장터'에서의 이교가 기존 임광빌딩 남쪽 광장 옆 철도 건널목이 아니라 현재의 브라운스톤 아

파트와 서소문근린공원 상부인 재활용집하장 사잇길에 위치했으며 만초천변 백사장이 서소

문공원 내에 있었다는 자료들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 1915년 총독부 지형도. 의주로와 서소문로가 만나는 서소문 밖 네거리에 우물정(井)자가

표기돼 있고 서소문로가 만초천과 만나는 지점에 이교, 곧 흙다리가 있었다는 표시가 돼 있

다. 
 

▲ 경기대 대학원 건축설계학과 안창모 교수는 역사문화환경보존 프로그램을 통해 1912년
 
지적지도와 2012년 네이버지도를 겹쳐 당시 만초천변 행형장이 서소문근린공원 내에 있었다

는 사실과 이교, 뚜께우물 등의 위치도 밝혀냈다. 가운데 굵은선이 만초천이다.

  1995년 극동건설이 중구청에 제출한 서소문공원 지하쓰레기 중계처리시설 건설사업 기본

설계 보고서(토목분야)에 따르면, 서소문공원 시추작업시 채취된 시료를 검토한 결과, 전반적
 
토질은 모암인 화강암류가 완전 풍화돼 토사화된 상태로 존재하고 있음이 확인됐다. 특히 지

하 3.8m 아래 퇴적층을 구성하는 토질의 단면은 상층부가 점토를 썩힌 세립질 모래가 우세

하고 하부로 갈수록 중립질과 조립질 모래가 점차 우세해지는 것으로 나타나 당시 만초천이
 
현재의 서소문 공원을 가로지르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또 만초천이 행형지였음을 실증할 망나니우물, 곧 뚜께우물(개정)의 위치도 '1915년 조선총

독부 지형도'와 '1912년 지적지도' 등에서 현재의 중앙일보사 방향으로 서소문공원 상부 오른

쪽 경의선 철로로 나뉘어져 있는 자투리 공원부지에 가까운 곳으로 확인됐다. <지도 참조>
 

 이에 따라 지난해 12월 서울문화사학회 주최로 열린 학술심포지엄에서 서소문형장이 행정

구역상 서울시 서대문구 미근동 267번지, 임광빌딩 남쪽 광장에 해당된다는 최영준 고려대

명예교수의 주장을 비롯해 그동안 서소문행형지와 관련, 정확한 장소 확인에 대한 논란은 일

단락 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대주교는 9일 서소문역사문화공원 조성을 위한 전문가 자문회

의 자문위원 15명과 중구청 관계자 등이 함께한 가운데 현장을 돌아보고 검증하는 자리를 마

련했다.
 

 서소문역사문화공원 조성위원회 사무국장인 원종현(서울 응암동본당 주임) 신부는 "서소문
 
밖 참형터 위치가 현재의 서소문공원부지로 확인됨에 따라 18세기 말에서 19세기 말까지 천

주교 박해가 이뤄졌던 서소문 밖 행형지가 완벽하게 복원될 수 있는 길이 열렸다"고 말했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

댓글 1

  • 2013년 5월 28일 오후 5:51

    하느님의 역사는 여기 서소문 밖에서도 이루어 지고 있습니다. 수고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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