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룡촌공소]
1.박해시대 마지막까지 교난 피해 정착한 전라도 지방 회문산과 고당산.
2.
오룡촌에 신자가 살게 된 동기는 1839년 기해박해 이후 1866년 병인박해에 이르러 경기, 충청도에서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전라도로 내려오면서 부터라고 전해진다.
확실한 것은 오룡촌 공소가 1876년 조선에 문호가 개방되고, 1886년 종교 자유가 주어지면서 회문산 일대와 고당산 일대에 살고 있던 신자들이 내려와 신자들끼리 함께 살았던 교우촌이었으며, 주변 공소 신자들의 중심 공소였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오룡촌 공소는 박해 시기와 그 후에도 전라도 남부지역, 회문산과 고당산 자락의 공소들 중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한 교우 촌으로서 역사적으로 중요한 곳이다.
공소가 설립(본당 신부의 판공 시점)된 것은 1889년 베르모렐 신부가 담당하면서 부터라고 전해진다. 그리고 1905년 개운리 공소와 함께 뮈텔 주교의 방문이 있었고, 1924년 드망즈 주교가 오룡촌 공소를 방문하여 견진 성사를 베풀었다.
1929년 남부 지역 본당이 설립 될 당시에 가장 많은 신자들이 살고 있었으며, 1929년 8월 15일 성모 승천 축일에 오룡촌 공소에서 축일을 지내는데 600명이 고백성사를 보고, 300명이 첫 영성체를 하였다고 교회사는 기록하고 있다.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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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치성당] -- 오룡촌공소를 담당하는 현재의 쌍치성당 전경입니다.
-쌍치성당: 전북 순창군 쌍치면 면소재지
-오룡촌공소: 전북 순창군 쌍치면 학선리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