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녀 안젤라 메리치 동정(St ANGELA MERICI VIRGO)

2010. 2. 6. 오후 4:34:36

글자
안젤라 메리치 자매님이 성경쓰기에 참여하셔서
찾아보니 지난 1월 27일이 축일이었군요.
늦었지만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안젤라 메리치 동정 성녀의 자료를 찾아 보았습니다.
 
필요하시면 이 게시판의 내용을 스크랩하시고
혹시 그림이 보이지 않으면
icon@paran.com 으로 e-mail 주시면
그림을 다시 검색해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성경쓰기에 참여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축일 : 1월 27일 성녀 안젤라 메리치 동정
St Angela Merici, Third Order Franciscan
St.Angela de’Merici, OSU V (RM)
Sant’ Angela Merici Vergine
 
21 March 1474 at Desenzano, Lake Garda, Italy -24 January 1540 at Brescia, Italy;
relics in the church of Saint Afra, Brescia, Italy; body incorrupt
Beatified :1768 by Pope Clement XIII Canonized :1807 by Pope Pius VII
Name Meaning : angel; messenger (=Angela) Foundress: The Ursuline Sisters
 
 
The painting shows Angela Merici with Saint Anthony of Padua and Saint Luigi Gonzaga.
Angela was beatified by the Church on the 30th April 1768.
church of Saint Afra (now Saint Angela’s sanctuary) in Brescia
 
성녀 안젤라 메리치의 유언에서그분은 만사를 은혜로이 대해 주셨습니다
 

 
 

  
안젤라 메리치는 자선의 면에서나 교육의 면에서커다란 업적을 남긴 성녀로서 1474년 3월 21일 북 이탈리아의 덕망있는 부호 [메리치] 가문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신심이 두터웠던 그녀는, 당시 세력을 펼치고 있는 新 異敎主義에 대항하여 싸우기 위해서는
가족 단위의 신앙 유대가 견고히 서야만 함을 절감하고 장래 가정의 어머니가 될 같은 또래의 소녀들을 모아 [우술라] 회를 설립하게 되었다.
 
일반 신앙 도덕의 앙양과 소년 소녀의 교육을 목적으로한 수도원 내에 기거를 같이하며 힘을 합하여
 박애 육영 사업에 종사하기로 마음 먹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안젤라의 이상을 실현하려고 노력하는 [우술라] 수도원의 시초이다.
 
소년 소녀의 문화적 정도를 성인의 수준까지 끌어 올리면서 안젤라 메리치는
가정의 정신에 새로운 혁신을 불러 일으켰으며
결혼한 신자의 가정에 사랑 안에서 더욱 친밀한 결합을 이룰 수 있는 정신적 기초를 확립하였다.
그러나 오늘 날까지 소년 소녀의 교육과 가정의 문제는 심각하게 남아 있는 것은 사실이다.
 
 
수많은 성인 성녀의 예처럼 안젤라도 주님의 뜻에 의해
일찍부터통의 십자가를  짊어지지 않으면 안 되었다.
즉 15세 때 그리운 부모를 여의고 나서
또 가장 사랑하던 언니마저 세상을 떠나 아주 고독한 신세가 되었던 것이다.
 
어느 날 의탁할 데 없는 적적함에 못 이겨 안젤라가 뜨거운 눈물로 하느님께 기도할때
갑자기 많은 천사들의 호위를 받은 성모마리의 발현을 보았는데,
그 중에는 언니의 모습도 있었다.
 
그와 동시에 안젤라의 마음에는 “네가 걷기 시작한 길을 어디까지나 걸어야 한다.
그러면 너도 언젠가는 우리의 즐거운 단란 속에 낄 수 있을 것이다”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를 듣자 이상하게도 지금까지의 마음의 적막한 감이나 슬픔은
감쪽같이 사라지고 명랑한 마음의 기쁨 그녀에게 충만해졌다고 한다.
 
그러나 곧 그보다 더 심하고 혹독한 시련이 안젤라에게 닥쳐왔다.
그것은 이제까지 천사와 같이 정결하던 그녀의 마음에
악마의 소행인지 더러운 생각이나 상상이 자꾸만 머리에 떠올라
밤이나 낮이나 그녀의 마음을 산란케 하고 번뇌와 고민에 허덕이게 되었다.
 
그러나 그녀는 끝까지 하느님을 신뢰하고 그와 같은 악마의 공격에 굴하지 않았다.
그녀는 열렬히 기도하고 단식재를 지키고 자신의 몸을 다스리며
필사적으로 지옥의 무리들과 싸워 마침내 시련의 시기가 지나 깊은 천상의 평화가 충만하게 되었다.
 
안젤라는 매일 영성체를 모시며 주 예수와 일치하는 생활을 하며,
또 수도원에는 들어가지 않았을 지라도 상속받은 재산을 모두 가난한 이들에게 희사하고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가 세운 제3회원이 되어 수녀처럼 검소한 극욕 극기의 생활을 했다.
 
그녀가 자신의 사명을 깨달은 것은 이 때인데,
그 뒤 자신의 물건을 희사하기도 하는 등 자선 사업의 활동을 시작했다.
 
물론 이와 같은 탄복할만한 행위가 반향을 일으키지 않을 수 없었다.
곧 그녀에게는 같은 뜻을 가진 소녀 수명이 모여와서
그녀의 지도하에 숭고한 박애 사업에 종사하게 되었다.
 
안젤라가 당시 살고 있던 곳은 고향의 마을이 아니라 브레쉬아 시였는데,
마침 독일에서 일어나 순식간에 전국에 퍼진 마르틴 루터의 이단은
급류와 같은 힘으로써 브레쉬아를 거쳐 이탈리아에도 침입하려고 했다.
 
하느님께서는 이 이단의 탁류를 막기 위해 안젤라 등의 사업을 한 방파제로 사용하셨다.
즉 그녀가 무죄한 아이들의 마음에 정성을 들여 심어준 그리스도교의 진리는
후에 자라서도 소멸되지 않고 이단의 함정에 빠지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아 영성에 관해 교훈을 받으러 오는 이들 중에는
학식면으로는 훨씬 그녀보다 훌륭한 신학박사나 신분이 높은 귀족들도 있었다.
 
그녀의 감화력은 무척 위대해 그가 성녀라는 것을 느끼게 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브레쉬아 시의 백작 두 사람은 다년간 원수로 지내오며
어떠한 사람이 중개해도 화목하지 않기를 고집해 왔으나,
안젤라가 그들에게 십자가를 보이며 두 세 마디의 말을 하자
하느님의 은총을 받았음인지두 사람은 서로 상대자를 포옹하고 눈물을 흘리며
서로 죄를 용서하며 그 후부터는 절친한 사이가 되었다고 하는데,
이를 보더라도 그녀의 감화력이 얼마나 컷던가를 가히 짐작할 수 있다.
 
그 뒤 브레쉬아에 있는 안젤라의 동료는
점차 증가해 일반 신앙 도덕의 앙양과 소년 소녀의 교육을 목적으로 하는
우르술라회라는 수도원을 창립하기로 결정하고
 
1535년 11월 25일, 12명의 동료들과 더불어 새로이 수도 서원을 세워 규정한 회칙을 지킬 것을 맹세했다.
그러나 종전과 같이 회원이 어린이를 모으고
병자를 간호하고 빈민을 돌보고 죄수들을 위로할 수 있도록 당분간 각자 친척집에 살았으나
수도회가 크게 발전해 2년 내 회원수가 76명이 증가하자
한 수도원에 기거하며 박애사업에 종사하기로 했다.
이것이 안젤라의 이상을 실현하려고 노력한 우르술라 수도원의 시초이다.
 
 
안젤라의 성덕은 임종시에 한층 더 빛났다.
그때 그녀는 겸손한 마음에서 성 프란치스코의 통회의 의복을 입고
한 묶음의 볏짚 위에 누워
 
“성부여, 내 영혼을 당신 손에 맡기나이다”라는 말을 최후로 숨을 거두어
영원한 복을 누리기 위해 천국으로 향했다.
때는 1540년 1월 27일이었다.
 
안젤라 메리치는 최초의 교육 수녀회인 우르술라회를 조직한 사람이다.
그는 수녀회를 창립하면서 우르술라를 수호 성인으로 모시고, 수녀회의 이름도 그에게 헌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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