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제1주간 수요일>
모든 영광을 하느님께!
제 1독서 : 이사 25,6-10ᄀ (주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잔치를 베푸시고 그들의 얼굴에서 눈물을 닦아 내신다.)
복 음 : 마태 15,29-37 (예수님께서 많은 병자를 고쳐 주시고 빵을 많게 하셨다.)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많은 병자를 고쳐 주신 이야기와 빵을 많게 하신 기적 이야기가 함께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호숫가를 지나서 산으로 올라가시어 병자들을 고쳐주시고 빵의 기적을 행하시는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거기에서 갈릴래아 호숫가로 옮겨가셨다. 그리고 산에 오르시어 거기에 자리를 잡고 앉으셨다. 그러자 많은 군중이 다리저는 이들과 눈먼 이들과 다른 불구자들과 말못하는 이들, 그리고 또 다른 많은 이들을 데리고 예수님께 다가왔다. 그들을 그분 발치에 데려다 놓자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고쳐 주셨다. 그리하여 말못하는 이들이 말을 하고 불구자들이 온전해지고 다리저는 이들이 제대로 걸으며 눈먼 이들이 보게 되자, 군중이 이를 보고 놀라 이스라엘의 하느님을 찬양하였다."(마태15,29-31)
이렇게 병자 치유 사건이 마무리되는데 이 치유 기적은 예수님이 바로 메시아이심을 드러내는 사건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군중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을 기적으로 채워줌으로써 하느님의 현존을 보여주셨습니다. 특히 이사야 예언자는 메시아의 도래를 예언했던 예언자로 유명한데 이사야서 35장에는 메시아가 오시는 날에 일어날 일들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때에 눈먼 이들은 눈이 열리고 귀먹은 이들은 귀가 열리리라. 그 때에 다리저는 이는 사슴처럼 뛰고 말못하는 이의 혀는 환성을 터뜨리리라. 광야에서는 물이 터져 나오고 사막에서는 냇물이 흐르리라."(이사 35,5-6)
메시아가 오시는 날 일어날 이러한 일들이 오늘 복음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병자를 고쳐주시는 예수님이 바로 구약에 예언된 메시아의 모습이었던 것입니다.
오늘은 병자들을 고쳐주신 기적에서 보여지는 군중들의 반응을 함께 묵상해보고자 합니다. 많은 군중이 온갖 병자들을 예수님의 발 앞에 데려다 놓았고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모두 고쳐주셨습니다. 놀라운 일이지요.
"그리하여 말못하는 이들이 말을 하고 불구자들이 온전해지고 다리저는 이들이 제대로 걸으며 눈먼 이들이 보게 되자, 군중이 이를 보고 놀라 이스라엘의 하느님을 찬양하였다."(마태 15,31)
그런데 여기에 우리가 주목할 대목이 있습니다. 군중이 크게 놀라 이스라엘의 하느님을 찬양하였다는 것입니다. 치유를 받은 사람들과 그것을 본 군중들은 모두 예수님의 치유 행위로 하느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신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지요.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만약 지금 이 자리에서 병 고침의 기적이 일어났다면 어떤 일들이 벌어질 것 같습니까?
‘정말 치유를 받았을까?’
만져보고 뜯어보고 흔들어보며 치유 받은 사람에게로 모든 시선이 집중될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고쳐준 사람을 주목하겠지요.
‘어떻게 이런 일이… 대단하구나!’
사람들의 마음과 시선이 치유자와 치유 받은 사람에게로 집중하게 되어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 나오는 군중은 좀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들은 치유해주신 예수님을 주목하지도 않았고 치유 받은 병자들을 주목하지도 않았습니다. 군중은 이스라엘의 하느님을 찬양하였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그 일로 인한 모든 영광과 능력을 하느님께로 돌리셨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모든 영광과 능력을 하느님께 돌렸기 때문에 군중들은 기적을 보고 즉시 하느님을 찬양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삶의 중요한 지혜를 배울 수가 있습니다. 우리의 모든 능력과 일, 그리고 그 일의 결과를 하느님께 돌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으면 사소한 일들로 불협화음이 생깁니다. 공동체가 시끄러워지고 개인들은 성장하지 못하게 되지요.
예를 들어서 본당에서 사목 회장을 하고 사목 위원이나 구역장, 반장, 단체장 등의 일을 하면서 결과가 좋으면 그 일의 영광을 하느님께 돌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때 하느님께 돌리지 않고 마치 자기가 잘해서 그런 것처럼 이야기를 하면 갈등이 시작됩니다. 시기와 오해가 생기고 끊임없이 비교하고 평가를 하며 인간적인 바램을 기대하면서 실망하고 상처받는 일이 생기게 됩니다.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지난번에 우리 본당 성모회에서 쌀 1Kg을 만 원씩에 판매한 적이 있었습니다. 300포대가 순식간에 팔려나갔지요. 그 때 장사가 잘 된 것을 놓고 이렇게 이야기 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밖에 나가서 쌀가게를 차려도 잘 할거야. 우리의 능력이 얼마나 탁월한 지 몰라."
이것은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는 모습이 아니지요. 왜 그렇게 장사가 잘 되었겠습니까? 하느님의 집에서 그 목적을 세상적 이익이 아닌 어려운 이웃을 도와 준다는 명목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일이 마치 자기가 능력이 있어서 일어난 일처럼 이야기한다면 우스워진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잘 팔았냐고 주위에서 감탄을 하면 이렇게 대답할 줄 아는 신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한 일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집에서, 하느님께서 도와주셨기에 가능한 일이지요."
모든 영광과 결실을 하느님께 돌리지 않으면 어려움은 생기게 마련입니다.
또 주위에서 신자들이 아름답고 튼튼하게 성전을 잘 지었다고 칭송하며 "얼마나 힘드셨어요?"하고 물으면 대뜸 "그러게 말입니다.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모르겠어요. 매일같이 장사한다, 모금한다 뛰어다니고… 설움도 많이 받았지요." 자랑스럽게 얘기하겠지요.
이 대답에는 하느님이 안 계시지요. 생각이 말이 되어 나오는 법입니다.
"하느님께서 이끌어 주시고 도와주시지 않았다면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었겠어요? 하느님의 놀 라우신 자비로 저희가 이렇게 훌륭한 성전을 짓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대답하는 신자들이야말로 아름다운 성전을 지은 주인공들일 것입니다.
실제로 그렇습니다. 성당을 짓기 위하여 다른 성당으로 모금을 가고 물건을 팔러 가면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관심을 보이며 도움을 주려고 노력합니다. 우리의 얼굴을 보고 팔아주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하느님 때문이지요. 그 이익이 하느님의 성전을 짓는 데에 사용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도움을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느님은 제쳐두고 사람이 불쑥 튀어나오면 많은 오해와 다툼이 생기는 것이지요. 우리는 하느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안될 때는 시기와 질투, 비판과 상처로 빈 수레처럼 요란한 열매 없는 신앙 생활이 되기가 쉽습니다. 우리는 어떤 일을 할 때 "하느님의 도구로서 최선을 다하고자 노력했는데 부족한 것이 많습니다. 하느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릴뿐입니다."하고 말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하느님께 영광을 돌릴 때 우리의 인간적인 아쉬움들은 위로를 받게 될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이스라엘 군중들은 예수님의 치유 행위를 보고 크게 놀라 하느님을 찬양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영광을 하느님께 돌렸을 때 그 공동체는 더욱 일치되고 복음적인 공동체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의 결실을 풍요롭게 하시는 분은 오직 하느님 한 분뿐이십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영광을 하느님께 돌렸듯이 최선을 다한 우리의 역할과 노력을 기쁘게 하느님께 봉헌할 때 더욱 풍요롭고 평화로운 신앙 공동체가 만들어 질 수 있을 것입니다. 모든 영광을 하느님께 돌리는 우리들이, 그리고 우리 신앙 공동체가 되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