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영혼의 속삭임 |
| ||
|
물, 또는 젖은 꿈
이 태 수(아킬레오)
흐르면서 깊어진다. 물은, 지나온 길 지우며 푸르고 맑아진다. 마음 끼얹어도 물길 따라 내려가 보아도, 나는 푸르게 깊어지지 않는다. 맑아지지 않는다.
흘러흘러 여기까지 왔지만, 더듬어가는 길, 하늘마저 무겁게 흔들린다. 길은 안 보이고 물은 아래로 아래로 흐른다. 해가 저문다. 별이 뜨고 달이 간다. 내 마음의 집, 모든 방들이 흔들린다. 어두워지다 지워진다. 하지만 물은 흐르면서 더욱 깊어진다. 모든 길들을 지우며 푸르고 맑아진다. 나는 서럽도록 들여다본다. 물아래 다시 집을 짓고, 그 안쪽 방에 창을 낸다.
풋풋하게 눈뜨고 말들을 기다린다. 별빛 흩어지는 물아래 풍경 소리 아득하고 불현듯 탑 하나 솟는다. 내 마음도, 발바닥도 하늘의 옥빛 속에 들어 젖은 꿈을 꾼다. | ||||
|
새해입니다. 새해가 되면, 작게는 우리 자신과 우리들의 가정에서부터 크게는 국가와 민족, 세계평화에 이르기까지 우리들은 아주 ‘순수하고 깨끗한 마음가짐’으로 여러 가지 결심과 기원을 하게 되지요. ‘순수하고 깨끗한 마음가짐’을 가질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이 바로 ‘물’에 있다는 점을 위의 시에서는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시에 나타나 있는 바와 같이 “내 마음의 집”에서 우리들은 온갖 생각들을 하게 되지요. 지난 한 해를 아쉬워하고 후회하기도 하고, 새로운 한 해를 설계하고 꿈꾸기도 하면서 “물아래 다시 집을 짓고, 그 안쪽 방에 창”을 내게 되지요. 이 시에서의 ‘물’은 “나는 다만 물로 세례를 베풀 따름이요”(요한복음, 1장 25절) |
|
라는 세례자 요한의 말에 관계되기도 하고,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 오시자 홀연히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성령이 비둘기 모양으로 당신 위에 내려오는 것이 보였다”(마태복음, 3장 16절)의 말씀에 관계되기도 합니다. 이와 같은 ‘물’은 우리들 가톨릭 신자들에게 지상의 세계와 천상의 세계를 연결시켜주는 중요한 매개체에 해당합니다. 새해에는 맑고 깨끗한 성령의 ‘물’로 우리들의 육신과 영혼을 씻으면서 하루하루를 열심 기도한다면, “내 마음도, 발바닥도/ 하늘의 옥빛 속에 들어 젖은 꿈”을 이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윤호병 빈첸시오, 문학평론가, 추계예술대학교 교수)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