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세례 축일] (루카 3,15-16.21-22)

2019. 1. 13. 오전 8:08:12

글자

  

[주님 세례 축일] (루카 3,15-16.21-22)


이사야 예언자는 “여기에 나의 종이 있다. 그는 내 마음에 드는 이다.”라는 주님의 말씀을 전한다. (이사 42,1-4.6-7)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1 “여기에 나의 종이 있다. 그는 내가 붙들어 주는 이, 내가 선택한 이, 내 마음에 드는 이다. 내가 그에게 나의 영을 주었으니 그는 민족들에게 공정을 펴리라.
2 그는 외치지도 않고 목소리를 높이지도 않으며  그 소리가 거리에서 들리게 하지도 않으리라.
3 그는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리라. 그는 성실하게 공정을 펴리라.
4 그는 지치지 않고 기가 꺾이는 일 없이 마침내 세상에 공정을 세우리니  섬들도 그의 가르침을 고대하리라.
6 ‘주님인 내가 의로움으로 너를 부르고 네 손을 붙잡아 주었다. 내가 너를 빚어 만들어 백성을 위한 계약이 되고 민족들의 빛이 되게 하였으니
7 보지 못하는 눈을 뜨게 하고 갇힌 이들을 감옥에서, 어둠 속에 앉아 있는 이들을 감방에서 풀어 주기 위함이다.’”


베드로 사도는, 하느님께서 나자렛 예수님께 성령과 힘을 부어 주셨다고 한다. (사도 10,34-38)
그 무렵 34 베드로가 입을 열어 말하였다. “나는 이제 참으로 깨달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시고,
35 어떤 민족에서건  당신을 경외하며 의로운 일을 하는 사람은 다 받아 주십니다.
36 하느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곧 만민의 주님을 통하여  평화의 복음을 전하시면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보내신 말씀을
37 여러분은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요한이 세례를 선포한 이래 갈릴래아에서 시작하여  온 유다 지방에 걸쳐 일어난 일과,
38 하느님께서 나자렛 출신 예수님께 성령과 힘을 부어 주신 일도 알고 있습니다.
이 예수님께서 두루 다니시며 좋은 일을 하시고  악마에게 짓눌리는 이들을 모두 고쳐 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 그분과 함께 계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를 하시는데, 성령께서 내리시고,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라는 소리가 들려온다. (루카 3,15-16.21-22)
그때에 15 백성은 기대에 차 있었으므로, 모두 마음속으로 요한이 메시아가 아닐까 하고 생각하였다.
16 그래서 요한은 모든 사람에게 말하였다. “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준다. 그러나 나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 오신다.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 자격조차 없다. 그분께서는 너희에게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
21 온 백성이 세례를 받은 뒤에 예수님께서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를 하시는데, 하늘이 열리며 22 성령께서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분 위에 내리시고, 하늘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주님 세례 축일 제1독서(이사42, 1~4.6~7)


"그는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리라. 그는 성실하게 공정을 펴리라." (3)

 

첫번째 주님의 종의 노래인 이사야서 42장 1~9절 중에서 42장 1절 이하 4절까지는 주님께서 소개하시는 주님의 종의 선한 성품과 하시는 일들 제시된다.


이사야서 42장 3절의 습지나 물가에서 자라나는 갈대 유프라테스 강 하류와 나일강 주위 뿐만 아니라 성경의 주된 무대인 팔레스티나의 요르단 강 유역에서도 많이 자라나기 때문에 당시 사람들에게 익숙한 식물이었으므로 고대 근동 문학과 성경에서도 상징적, 비유적 표현으로 자주 등장한다.


갈대는 연약하여 바람에 잘 흔들리므로 연약한 인간의 면모와 관련하여 종종 사용된다.

"주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치셔서, 갈대가 물속에서 흔들리는 것처럼  만들어 놓으실 것입니다." (1열왕14,15) 

"너희는 무엇을 구경하러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마태11,7)


여기에서 '부러진 갈대'(상한 갈대)에 해당하는 '카네 라추츠'(qaneh ratsuts; a bruised reed)는 문자 그대로 반쯤 부러진 상태의 갈대 나타낸다.

비유적으로 육체적 정신적으로 돌이킬 수 없을 만큼 큰 타격을 입은 상태와 특별히 죄악으로 인해 영혼이 더러워진 인간의 상태 말한다.


여기에서 '꺾다'는 의미에 해당하는 '이쉬뽀르'(yishibor; break)의 원형 '샤바르'(shabar)완전히 박살내 버리는 것을 의미한다(레위6,21; 1열왕19,11). 사실 상한 갈대는 아무런 이용 가치가 없기 때문에 박살내 버려도 전혀 아깝지 않다.

이러한 상한 갈대 조차 꺾지 않는다는 것 주님의 종이 육체적, 정신적, 영적 상태 모든 면에서 절망적인 상황, 비관적인 상황에 처한 인간들을 세상의 임금들처럼 무자비하게 심판하는것이 아니라 그들을 치유하며 새 생명을 주신다는 것을 나타낸다.


한편 일상생활의 필수품인 등불 역시 갈대와 마찬가지로 고대 근동의 문학에서 비유와 상징으로 자주 사용된다.

'꺼져가는 심지' 해당하는 '피쉬타 케하'(pishitah kehah; a smoldering wick)'희미한 심지'(꺼져가는 등불), '연기나는 심지'라는 의미이다.


즉 이사야서 42장 3절의 등불은 기름이 없어서 깜빡이면서 이제 막 꺼져버리려는 순간이나 혹은 꺼져서 연기가 나는 상태의 등불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경우 그 등불은 연기가 날 뿐 등불로서는 아무런 가치가 없다. 이러한 상태의 등불은 꺼버리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주님의 종 이런 등불을 결코 끄지(quench) 않으신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필요없다고 꺼서 내버릴지라도 주님의 종 이러한 상태의 등불도 소중히 여기신다. 

이것은 주님의 종 그 어떤 사람도 거부하지 않고 자비와 사랑으로 용납하여 주심 보여준다.

이러한 주님의 종의 봉사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 생활에서 그대로 실현되었다.


'그는 성실하게 공정을 펴리라'


여기서 '공정을 펴리라'에 해당하는 '요치 미쉬파트'(yotsi mishiphat; he establishes justice)는 이사야서 42장 1절 끝 부분에 사용된 표현과 어순을 제외하면 동일하다.

즉 이사야 예언자는 앞의 문장 구조와 더불어 동일한 표현을 반복하여 주님의 종이 공의로운 세상이 되게 할 것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는 이사야서 42장 1절과는 달리 '성실하게'라는 표현을 쓰고 있는데, 이에 해당하는 '레에메트'(leemeth)라는 표현은 전치사 '레'(le)'진리','진실','충성','성실'로 번역되는 '에메트'(emeth)가 결합된 표현이다.


세상의 지도자들은 어떤 목표와 결과를 얻기 위해 불의하고 잘못된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기도 하고 때로는 목표를 달성해 가는 과정에 있어서 불성실하고 게으른 행위를 할 수도 있지만, 주님의 종은 결코 그렇지 않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세례를 통하여 모든 신자는 하느님의 자녀로 새로 태어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하느님의 자녀임에도 하느님의 자녀처럼 살지 못하는 이유는,

 세례를 물로만 받고 성령으로는 받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믿음’을 선물합니다.
내가 하느님의 자녀임을 믿어야 하느님의 자녀가 됩니다.

 늑대에게 키워진 아이는 자신이 늑대라고 믿을 것입니다.

 자신이 늑대라고 믿으면 사람처럼 두 발로 걸어 다닐 수는 없습니다.

아이가 사람이 되려면 자신이 사람임을 믿어야 합니다.

사람은 믿는 대로 되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세례를 받으시고,

하늘에서 들려오는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라는 소리를 들으십니다. 세례는 이렇듯 내 정체성이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의 자녀’,

곧 ‘하느님’임을 확고하게 믿게 만드는 예식입니다.
하느님의 아들은 하느님입니다.

사람의 자녀는 사람으로 살고,

하느님의 자녀는 하느님으로 삽니다.

사람의 자녀는 세상에 집착하며 살고,

하느님의 자녀는 하느님 뜻에 ‘순종’하며 삽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자녀는 오늘 제1독서에서처럼 또한 “종”이기도 한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께 순종하는 자녀를 사랑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세례를 받으시고 하느님의 자녀로서 하느님께 순종하시어,

오늘 제2독서에서 증언하는 것처럼,

세상을 두루 다니시며 좋은 일을 많이 하셨습니다.

사람이 사람임을 믿으면 두 발로 걷지 않을 수 없는 것처럼,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본성상 사랑을 실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주일복음강론

목록 전체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