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제1주일]늘 깨어 기도하여라 (루카 21,25-28.34-36)

2018. 12. 3. 오전 4:4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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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02

[대림 제1주일]늘 깨어 기도하여라 (루카 21,25-28.34-36)





예레미야 예언자는, 주님께서 그날과 그때에 다윗을 위하여 정의의 싹을 돋게 하실 것이라고 한다.(예레 33,14-16)
14 보라, 그날이 온다. 주님의 말씀이다.
“그때에 나는 이스라엘 집안과 유다 집안에게 한 약속을 이루어 주겠다.
15 그날과 그때에 내가 다윗을 위하여 정의의 싹을 돋아나게 하리니, 그가 세상에 공정과 정의를 이룰 것이다.
16 그날에 유다가 구원을 받고 예루살렘이 안전하게 살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예루살렘을 ‘주님은 우리의 정의’라는 이름으로 부를 것이다.”




 바오로 사도는,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하느님 아버지 앞에서 흠 없이 거룩한 사람으로 나설 수 있게 되기를 빈다고 한다. (1테살 3,12―4,2)
형제 여러분, 12 여러분이 서로 지니고 있는 사랑과 다른 모든 사람을 향한 사랑도, 여러분에 대한 우리의 사랑처럼 주님께서 더욱 자라게 하시고 충만하게 하시며,
13 여러분의 마음에 힘을 북돋아 주시어, 우리 주 예수님께서 당신의 모든 성도들과 함께 재림하실 때, 여러분이 하느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흠 없이 거룩한 사람으로 나설 수 있게 되기를 빕니다. 아멘.
4,1 그러므로 형제 여러분, 끝으로 우리는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여러분에게 당부하고 권고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어떻게 해야 하느님 마음에 들 수 있는지 우리에게 배웠고, 또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더욱더 그렇게 살아가십시오.
2 우리가 주 예수님의 권위로 여러분에게 지시해 준 것들을  여러분은 잘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아들이 오시는 그날이 덫처럼 갑자기 덮치지 않게 하라고 하신다. (루카 21,25-28.34-36)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5 “해와 달과 별들에는 표징들이 나타나고, 땅에서는 바다와 거센 파도 소리에 자지러진 민족들이 공포에 휩싸일 것이다.
26 사람들은 세상에 닥쳐오는 것들에 대한 두려운 예감으로 까무러칠 것이다. 하늘의 세력들이 흔들릴 것이기 때문이다.
27 그때에 ‘사람의 아들이’ 권능과 큰 영광을 떨치며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볼 것이다.
28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하거든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라. 너희의 속량이 가까웠기 때문이다.
34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여, 방탕과 만취와 일상의 근심으로  너희 마음이 물러지는 일이 없게 하여라. 그리고 그날이 너희를 덫처럼 갑자기 덮치지 않게 하여라.
35 그날은 온 땅 위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들이닥칠 것이다.
36 너희는 앞으로 일어날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나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는 힘을 지니도록 늘 깨어 기도하여라.”







 대림 제1주일 제1독서 (예례33,14-16)






"그날과 그때에 내가 다윗을 위하여 정의의 싹을 돋아나게 하리니, 그가 세상에 공정과 정의를 이룰 것이다." (15)




예레미야서 33장 1~13절은 경비대 울안에 구금된 상태에 있는 예레미야를 향하여 하느님께서 심판을 경유한 이후 회복의 은혜를 베푸시겠다는 예언이 주어진 사실이 제시되었다.


이제 이어지는 33장 14절~26절은 한걸음 더 나아가 회복된 선민위에 세우실 다윗 왕가레위 지파 사제직도 회복될 것이란 첫번째 약속을 제안한다.


이것은 미래의 메시아 왕궁에 대한 예언으로 해석되는데, 그 가운데서도 특히 15절과 16절예레미야서 23장 5절과 6절의 메시아 예언과 거의 동일한 내용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와같이 이스라엘 자손의 고향땅으로의 회복에 대한 예언이 주어지고 있는 맥락에서, 미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성될 메시아 왕궁에 대한 예언이 주어짐으로써, 주님의 구원 역사가 단순히 바빌론 포로에서 해방시켜 고향땅으로 귀환게 하는 정치적 차원에서 멈추지 않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영혼을 구원하게 하는 영적 차원까지 확장되어 나간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제 예레미야서 33장 15절이하 17절에서는 그날에 이루어질 다윗 혈통의 한 정의의 싹 통한 다윗 왕가의 영원한 이스라엘 왕권 회복이 예언된다.


여기서 말하는 다윗은 역사적 인물 다윗이 아닌 다윗의 계보를 의미한다. 역사적 인물인 다윗은 이미 죽은 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윗의 계보에서 나온 정의의 싹은 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한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윗의 계보에서 난 사실을 '다윗의 자손이시며 아브라함의 자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라는 표현으로 부각시켰고(마태1,1). 사도 바오로'그분께서는 육으로는 다윗의 후손으로 태어나셨고' 라는 표현으로 강조하였다(로마1,3).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육신적 의미로 국한하여 이해할 수 없다. 그리스도께서는 성령의 권능을 통해 잉태되시어, 동정녀의 몸에서 탄생하셨기 때문이다(이사7,41; 마태1,18-25). 따라서 이것은 구약 시대에 주님을 대리하는 통치자로서 가장 이상적이었던 다윗 왕의 통치를 계승하여 그것을 완성시킬 왕으로 오신다는 사실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여기에서 '정의의 싹'으로 표현된다. 여기서 '정의의'에 해당하는 '체다카'(tsedaqah)라는 표현은 본절 15절과  이어지는 16절에서 명사형으로 다시 사용되고 있다.




이 '체다카''올바름', '공의', '공정', '의로움', '합법성' 등의 의미로 사용되는 표현으로서, 하느님의 대표적인 속성이기도 하다(신명9,4; 판관5,11). 


이것은 일차적으로 다윗의 계보에서 오는 왕이 합법적인 정통성을 지닌 왕이라는 사실을 나타낸다.




남부 유다 왕국의 말기에는 역사의 질곡으로 인하여 적법한 절차에 의해서 정통적 있는 인물에게 왕위가 넘어가지 못한 경우가 있었다.  대표적으로 엘야킴(여호야킴 ;2열왕23,34)과 남부 유다의 마지막 왕인 치드키야가 그러하다. 이들은 직계 혈통으로 왕위를 계승한 자들이 아니었다.


또한 왕위가 자체적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외세의 뜻에 따라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이러한 점에서 남부 유다 말기의 몇몇 왕들은 정통성이나 합법성에 있어서 치명적인 결함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장차 오실 '정의의 싹'은 이러한 왕들과 전혀 다른 정통성있고 적법한 왕이 될 것이다.




그리고 두번째는 과거의 모든 왕들과 달리 하느님의 정의를 실현하실 왕이라는 의미를 나타내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가 세상에 공정과 정의를 이룰 것이다'


주님께서 계약 백성에게 보내실 메시아는 구약 시대 이스라엘의 열왕들과 전혀 다른 완전한 왕이 될 것이다.그들 모두가 이루지 못했던 것을 온전히 이루며, 실패했었던 것을 성공으로 이끌 것이다.


여기서 '공정'과 '정의'는 모두 하느님의 속성이다.


메시아의 통치는 이방의 왕들이 다스리는 것과는 달리 인간의 통치가 아니라 하느님의 통치하심을 구현하는 것이 될 것이라는 선언인 것이다. 메시아의 다스림은 하느님의 다스림이 될 것이라는 의미이다.




이러한 본문의 표현에는, 정치적으로 합당한 결정이 내려지고, 사법적으로 정의로운 판결이 내려진다는 의미를 넘어서서,  모든 사람의 안정과 평화를 보장하는 다스림이 실행될 것이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


또한 치드키야가 그러했던 것처럼,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는 방향으로 하느님의 백성들을 이끌어서,결국은 그들을 파멸시켰던 것과는 달리, 하느님께로부터 축복을 받을 수 있는 방향으로 이끌어간다는 의미를 나타낸다.




본문에서는 이러한 공정과 정의의 실현이 '세상'에서 이루어질 것이라고 언급한다. '세상'으로 번역된 '빠아레츠'(baaretz) '이 땅'(in the land)이라는 의미이다.


이것은 남부 유다 왕국의 지경을 나타내는 표현인데, 정관사 '하'(ha)가 결합된 형태로 이것을 특별히 언급하고 있는 이유는, 바로 이곳에서 지금까지 불법과 불의가 판을 치고 악이 횡행했기 때문이다.




본문은 그러한 절망과 고통의 땅이 메시아의 출현으로 말미암아 공정과 정의가 구현되는 복된 땅이 될 것임을 나타내고 있다.


그리고 이것을 더욱 확대 해석한다면,예수 그리스도의 강생과 재림으로 말미암아 온 세상이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고,온 세상이 공정과 정의가 구현되는 종말론적인 상황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대림 제1주일 복음 (루카21,25-28. 34-36)




"그때에 '사람의 아들이' 권능과 큰 영광을 떨침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볼 것이다.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하거든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라. 너희의 속량이 가까웠기 때문이다."  (27~28)




루카 복음 21장 27절예수님의 영광스런 재림을 직접적인 어휘로 묘사하고 있다.


루카 복음 21장 25절과 26절종말에 두려워 떨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묘사한 반면에, 21장 27절그리스도께서 권능과 큰 영광으로 오시는 너무나 대조적인 모습이 기록되어 있다.




사실 21장 27절다니엘서 7장 13절과 14절의 배경을 가지고 있는 구절로서 '사람의 아들'(인자,人子)의 재림에 대해 묘사하고 있다.


특히 이 모습은 승천하신 예수님의 모습과 깊은 관련이 있는데(사도1,9~12), 하늘로 올라가실 때의 영광스러운 모습이 재림 때에도 동일하게 재현될 것임을 보여 준다.




한편 루카 복음 21장 28절'이러한 일들'로 번역된 지시 대명사 '투톤'(tuton; these things)이 무엇을 가리키는 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많은 학자들은 그리스도의 재림 직전에 나타나는 우주적 징조를 가리킨다고 생각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재림 시기의 정확한 때와 시간을 알 수 없지만, 말씀에 예언된 나타나는 징조들을 통해 그 시기가 다가오고 있음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동시에 재림의 시간에는 사람들이 극단의 대조적인 모습을 보일텐데, 그것은  그 재림의 날이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영원한 벌에 처해지는 두려움과 고통의 날이 될 것이며, 믿는 사람들에게는 영원한 생명과 구원을 얻는 완전한 기쁨의 날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믿는 사람들에게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라'로 권고하신다. 이 표현은 공관 복음의 병행 기사에서 루카 복음에만 나온다.


마태오와 마르코 복음에는 예수님께서 직접 천사를 보내어 선택하신 이들을 모으실 것이라는 예수님의 약속이 나온다(마태24,31; 마르13,27).


 


이러한 차이는 마태오와 마르코 복음사가가 마지막 날에 하실 예수님의 일을 중심으로 기록하였고, 루카 복음사가는 예수님을 믿는 신앙인들을 중심으로 기록했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말하자면, 마태오와 마르코 복음사가의 시선은 하늘에 있었고, 루카 복음사가의 시선은 땅에 있었다. 


루카 복음사가가 이렇게 기록한 것은 특별히 예수님을 따름으로 인해 고난을 당하는 이들에게 용기와 격려를 주기 위한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허리를 펴고'라는 뜻으로 번역된 '아나큅사테'(anakypsate; stand up)의 원형 '아나큅토'(anakypto)'스스로 일으키다','치켜 올리다'는 뜻이다. 그러나 비유적으로는 사람의 정신이나 원기'돋우어주다','고무시키다'는 뜻도 있다. 


그리고 '들어라'로 번역된 '에파라테'(eparate; lift up)의 원형 '에파이로'(epairo)는 자신의 신체의 일부, 즉 '손'(1티모2,8)이나 '머리'등을 '높이 들어올리다'는 뜻이다.


 


따라서 세상의 마지막 때에 예수님께서 재림하시기 전에 나타나는 여러 가지 징조를 볼 때, 신앙인들은 머리를 들고 그 징조들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주님의 재림의 때를 기다리라는 것이다. 


믿지 않는 이들은 세상의 마지막 때에 두려움으로 숨을 곳을 찾게 될 것이지만, 신앙인들은 그 때에 세상의 모든 것에 미련을 두지 말며 세상적인 관심을 내려놓고, 오로지 도래할 하느님 나라의 영광을 바라보며, 새롭게 펼쳐질 새 하늘과 새 땅을 기대하고 희망을 가지라는 말씀이다.







오늘 교회는 전례주년으로 '다'해를 맞이합니다. ‘대림’이라는 낱말은 ‘오심’, ‘도착’을 뜻합니다. 이 시기에 교회는 우리에게 오시는 그리스도를 기쁘게 맞이하도록 준비하라고 권고합니다.


성탄 때에 오시는 그리스도의 ‘첫 번째 오심’과 세상 종말에 다시 오시는 그리스도의 ‘두 번째 오심’을 준비하는 것이지요.
예수님께서는 죄만 빼고 모든 면에서 우리와 똑같은 사람, 참인간이 되셔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분께서는 베들레헴에서 처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셨고, 서른 살이 되실 때까지 나자렛에서 사셨습니다. 그 뒤에 팔레스티나 전역을 두루 다니시며 기쁜 소식을 전하셨고, 수난하시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죽음에서 부활하시고, 성부 오른편에 다시 앉으셨으며, 약속하신 대로 성령을 보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지상에 살아 계실 때 이루신 구원 행위를 통하여 모든 이에게 구원으로 가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인간과 세상 구원을 위한 그리스도의 과업은 이 세상의 마지막 한 사람이 구원될 때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께 오르실 때 인류 구원의 과업을 교회에 맡기셨고, 당신의 구원 행위를 우리 안에서, 특히 전례와 성사를 거행할 때 재현하십니다. 예수님의 재림 목적은 모든 이의 구원입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은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동안 우리가 살아야 할 단순하고도 분명한 방식을 보여 줍니다. 깨어 있는 마음으로 항구하게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향한 참된 사랑은 우리 신앙생활의 잣대가 되는 이웃을 위한 사랑으로 표현되어야 합니다. 끝으로 하느님께서 우리의 삶에 맡기신 일을 충실하게 수행함으로써 하느님의 뜻을 늘 실천하는 것입니다.


(안봉환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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