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제2주일]회개 (루카 3,1-6)

2018. 12. 8. 오후 6:2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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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2월 9일 주일

[대림 제2주일]회개 (루카 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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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룩 예언자는, 하느님께서 당신 영광의 빛 속에서 이스라엘을 즐거이 이끌어 주시리라고 한다. (바룩서 5,1-9)
예루살렘아, 슬픔과 재앙의 옷을 벗어 버리고  하느님에게서 오는 영광의 아름다움을 영원히 입어라.
2 하느님에게서 오는 의로움의 겉옷을 걸치고  영원하신 분의 영광스러운 관을 네 머리에 써라.
3 하느님께서 하늘 아래 어디서나 너의 광채를 드러내 주시고
4 ‘의로운 평화, 거룩한 영광’이라는 이름으로 영원히 너를 부르실 것이다.
5 예루살렘아, 일어나 높은 곳에 서서 동쪽으로 눈을 돌려 보아라. 네 자녀들이 거룩하신 분의 말씀을 듣고  하느님께서 기억해 주신 것을 기뻐하면서  해 지는 곳에서 해 뜨는 곳까지 사방에서 모여드는 것을 보아라.
6 그들은 원수들에게 끌려 너에게서 맨발로 떠나갔지만  하느님께서는 그들을 왕좌처럼 영광스럽게 들어 올려 너에게 데려오신다.
7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이 당신 영광 안에서 안전하게 나아가도록  높은 산과 오래된 언덕은 모두 낮아지고  골짜기는 메워져 평지가 되라고 명령하셨다.
8 하느님의 명령으로 숲들도 온갖 향기로운 나무도  이스라엘에게 그늘을 드리우리라.
9 하느님께서는 당신에게서 나오는 자비와 의로움으로  당신 영광의 빛 속에서 이스라엘을 즐거이 이끌어 주시리라.


바오로 사도는 필리피 신자들에게, 순수하고 나무랄 데 없는 사람으로 그리스도의 날을 맞이하기를 빈다고 한다. (필리 1,4-6.8-11)
형제 여러분, 나는 4 기도할 때마다 늘 여러분 모두를 위하여 기쁜 마음으로 기도를 드립니다.
5 여러분이 첫날부터 지금까지  복음을 전하는 일에 동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6 여러분 가운데에서 좋은 일을 시작하신 분께서  그리스도 예수님의 날까지 그 일을 완성하시리라고 나는 확신합니다.
8 사실 나는 그리스도 예수님의 애정으로  여러분 모두를 몹시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나의 증인이십니다.
9 그리고 내가 기도하는 것은, 여러분의 사랑이 지식과 온갖 이해로 더욱더 풍부해져

10 무엇이 옳은지 분별할 줄 알게 되는 것입니다.그리하여 여러분이 순수하고 나무랄 데 없는 사람으로  그리스도의 날을 맞이하고,
11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오는 의로움의 열매를 가득히 맺어, 하느님께 영광과 찬양을 드릴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하느님의 말씀이 내리자 요한은 요르단 부근의 모든 지방을 다니며,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의 세례를 선포한다. (루카 3,1-6)
1 티베리우스 황제의 치세 제십오년, 본시오 빌라도가 유다 총독으로, 헤로데가 갈릴래아의 영주로, 그의 동생 필리포스가 이투래아와 트라코니티스 지방의 영주로, 리사니아스가 아빌레네의 영주로 있을 때,
2 또 한나스와 카야파가 대사제로 있을 때,
하느님의 말씀이 광야에 있는 즈카르야의 아들 요한에게 내렸다.
3 그리하여 요한은 요르단 부근의 모든 지방을 다니며,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의 세례를 선포하였다.
4 이는 이사야 예언자가 선포한 말씀의 책에 기록된 그대로이다.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그분의 길을 곧게 내어라.
5 골짜기는 모두 메워지고 산과 언덕은 모두 낮아져라. 굽은 데는 곧아지고 거친 길은 평탄하게 되어라. 6 그리하여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




 

 대림 제2주일 제2독서 (필리피1,4-6.8-11)

 

"그리고 내가 기도하는 것은, 여러분의 사랑이 지식과 온갖 이해로 더욱 더 풍부해져, 무엇이 옳은지 분별할 줄 알게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이 순수하고 나무랄 데 없는 사람으로 그리스도의 날을 맞이하고"  (9-10)

 

'지식과 온갖 이해로'


여기에서 '~으로'라는 도구적 의미로 번역된 전치사 '엔'(en)은 오히려 상태의 의미를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바오로 사도는 이 전치사구를 통해 사랑에 겸비해야 할 것으로 지식과 온갖 이해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본절에서 '지식'으로 번역된 '에피그노세이'(epignosei)원형 '에피그노시스'(epignosis)일반적인 보통의 지식을 일컫는(1코린1,5 ;8,1 ;1베드3,7)   '그노시스'(gnosis)에 '~위에', '~에 더하여' 또는 '철저한' 이란 의미가 있는 전치사 '에피'(epi)가 더해진 것으로서, 신약 성경에서 20회 사용되었다.


이것은 종교적이고 도덕적인 것과 관련된 것으로서, '그노시스'(gnosis)보다 완전하고 진보된 깊은 지식을 가리킨다(1코린13,21). 즉 이것은 하느님의 자기 계시를 통해 가능하게 된 하느님을 아는 지식을 말한다.


한편, '이해'로 번역된 '아이스테세이'(aisthesei)의 원형 '아이스테시스'(aisthesis)감각적으로 꿰뚫어보는 통찰력과 분별력을 말하는 것으로서, '감각', '지각', '경험' 모두 포함한 도덕적인 이해와 분별력을 말하는데, 신약에서는 이곳에서만 사용되었다(잠언1,4.7.22; 3,20 ;5,2)


그리고 '이해' 앞에 수식된 '온갖'으로 번역된 '파세'(pase)는 이해의 완전성을 말하기 보다는 이해의 깊이를 말한다(히브5,14).

바오로 사도가 사랑에 지식과 온갖 이해가 더하여지기를 기도한 것은, 하느님께 대한 사랑과 열정에는 반드시 하느님의 의(義)를 분별하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분별력'이란 바로 악에서 선한 것을 가려내는 능력이며, 선을 택하고 악을 배격하며 중요하지 않은 것과 중요한 것을 구별하여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말 할 수 있다. 분별력이 결핍된 사랑은 무분별한 헌신을 초래할 수 있다. 또한 지식없는 열정은 오류에 빠지기 쉬운 법이다.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께 대한 바른 시기과 이해가 없이 '하느님의 의'를 저버리고 '자기들의 의'를 세우려 했던(로마10,2.3)  유대인들의 어리석음을, 필리피 교인들이 답습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아가페 사랑에 올바른 지식과 이해를 더불어 가지게 되기를 기도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사랑에는 참된 지식과 올바른 분별력이 겸비되어야 한다.

 

'더욱 더 풍부해져'


'풍부해져'로 번역된 '페릿슈에'(perissue) '페릿슈오'(perisseuo)의 가정법이다. '페릿슈오''풍부하다', '충분하다' 란 의미의 동사로서, 신약 성경에 39회 사용되었는데, 그 중 바오로 사도가 26회 사용하였다.

이것은 복음이 가져온 결과를 한마디로 특징짓는 단어라고 할 수 있다.


하느님의 계시로 인하여 지혜가 풍성해짐(2코린8,7; 에페1,8)과 동시에 그리스도 안에서 은총과 사랑이 충만히 넘쳐나는 것을 말한다(로마5,15-17). 이러한 현상은 하느님께서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이루시는 일이다.

 

'무엇이 옳은지 분별할 줄 알게되는 것입니다'  (10)


9절에 이어지는 10절은 필리피 성도들이 무엇인 옳은지 분별하고, 순수하고 나무랄 데 없이 그리스도의 재림을 맞이하게 되기를 바라는 바오로 사도의 두번 째 기도 내용이다.

이러한 본절을 시작하는 '에이스 토'(eis to)라는 전치사구는 10절이 9절의 결과(so that ~ may)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로써 지식과 온갖 이해를 겸비한 사람은 무엇인 옳은지 분별할 줄 알게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무엇이 옳은지'로 번역된 '디아페론타'(diapheronta)'~을 통하여' 란 뜻의 전치사 '디아'(dia)와 '가져가다'(마태14,11), '데려오다'(마르1,32)란 의미가 있으며, 실제로는 '전파하다'(사도13,49), '배를 몰아가다'(사도27,27), '~보다 귀하다'(마태6,26 ;루카12,7)등의 다양한 뜻으로 번역되는 '디아페로'(diaphero)의 분사형이다.


'도키마제인 ~타 디아페론타'(dokimazein ~ ta diapheronta)'~보다 귀하다' 라는 의미을 따라 '탁월한 것들을 분별해내다' 라는 의미로 이해 할수 있다. 지식과 이해를 지닌 사랑은 '가장 탁월한 선한 것'이 무엇인지를 시험하여 분별해내는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분별할'로 번역된 '도키마제인'(dokimazein)의 원형 '도키마조'(dokimazo)금속의 순도를 시험하거나 화폐의 진위를 시험하는 것을 나타내는 기술 용어이지만, 신약에서는 대체로 도덕적인 문제나 진리인지의 여부와 관련하여 '주의 깊에 조사하다', '시험하다'(루카12,56 ;1코린11,28 ; 2코린13,5 ;갈라6,4 ;에페5,10 ;히브3,9), 모든 조사와 시험이 끝난 후 '순수한 것으로 증명되다','가치있게 여기다'(로마14,22;1코린16,3; 2코린8,22 ;1테살2,4) 등의 뜻으로 쓰인다.

여기서는 '악한 것에 대하여 선한 것을 분별하는 것'과 '선한 것 중에서 지극히 선한 것을 구별하는 것' 모두를 말한다.


'순수하고 나무랄 데 없는'


본문은 지식과 이해를 겸비한 사랑이 풍부해질 때 오는 두번째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그것은 필리피 교인들이 보다 온전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순수'로 번역된 '에일리크리네이스'(eilikrineis)원형 '에일리크리네 '(eilikrines)'햇빛'이란 뜻의 명사 '헤일레'(heile)와 '판단하다'라는 뜻의 동사 '크리노'(krino)의 합성어로, '해가 비침으로 분명하게 드러나는 어떤 것의 확실함' 을 의미하며, 이것이 '흠없는', '투명한','섞이지 않은'이란 의미로 발전하였다.

여기서도 '섞이지 않고 더렵혀지지 않은 순수한'이란 뜻으로 사용되어, 도덕적으로 순결한 것을 말한다(1베드3,1).


또한 '나무랄 데 없는' 으로 번역된 '아프로스코포이'(aproskopoi)원형 '아프로스코포스'(aproskopos)'넘어지게 하지 않는', '범죄케 하지 않는','불쾌감을 주지 않는'(1코린10,32), '깨끗한'(사도24,16)이란 뜻인데, 집에서 어떤 장애물에 걸려 '넘어져서 상처를 입지 않고', 그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하는 것에 대한 비유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바오로 사도는 필리피 교인들이 더러운 세속에 물들지 않고, 순수하게 자신을 지킬 뿐 아니라 자신을 통해 다른 사람이 실족하거나 넘어지지 않도록 하는, 성숙한 신앙의 사람이 되기를 위해 기도한 것이다.




- “주님의 길을 마련하십시오.” -

- 바룩5,1-9 필리1,4-6.8-11 루카3,1-6 


많은 사람이 앞날에 대해 두려워하고 불안해합니다. 하여 날로 출산율도 낮아지는 것 같습니다.

앞을 보나 좌우사방을 보나 희망적인 표지는 잘 보이지 않습니다. 갈수록 어둡고 힘들어지는 세상입니다.

바로 이게 광야입니다. 세상 광야, 인생 광야입니다.

옛 구도자들도 하느님을 찾아 광야에 갔듯이 바로 이 삶의 광야에서 하느님을 찾아야 합니다.

요즘 초겨울 수도원의 주변의 분위기는 그대로 광야를 연상케 합니다.

하늘과 땅, 겨울의 나목들이 참 단순 투명해 보이는 광야입니다.


밤의 어둠을 밝히며 떠오르는 찬란한 태양, 그대로 어둔 광야인생을 살아가는 우리를 찾아오시는 주님을 상징합니다.

이런 태양 같은 주님께 희망을 두고, 오시는 주님을 기다리고 찾으며 살아갈 때 비로소 희망찬 인생이 됩니다.

과연 여러분은 누구를 기다립니까? 과연 여러분의 희망은 무엇입니까? 또 무엇을 찾습니까?

주님을 기다려야 합니다. 주님께 희망을 두어야 합니다. 주님을 찾아야 합니다. 이런 이들이 진정 풍요로운 삶을 삽니다.

이래야 길 잃어 허무와 절망의 어둠속에 방황하지 않습니다.


오시는 주님을 기다리는 광야의 대림시기입니다.

바로 우리 믿는 이들의 삶을 압축하는 대림시기입니다. 광야인생 희망차게 살 수 있는 방법을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광야에서 주님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하느님의 말씀이 광야에 있는 즈카리야의 아들 요한에게 내렸을 때 요한의 인생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말씀이 요한을 완전한 회개로 이끌었고 주님의 용사로 만들었습니다.

요한은 즉시 주님의 말씀에 응답하여 모든 지방을 다니며,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의 세례를 선포합니다.

주님을 찾는 이에게 주님의 말씀이 내립니다. 주님의 말씀은 그대로 주님의 현존입니다. 이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받아들일 때 영혼도 살아나고 희망, 믿음, 사랑도 살아납니다.

말씀을 즐겨 찾아 먹지 않으면 영혼도 죽고 내적 힘도 잃습니다. 말씀은 살아있고 힘이 있습니다.

말씀은 빛이며 생명입니다. 광야 세상, 외롭고 쓸쓸해하지 말고 즉시 하느님을 찾아 그분의 말씀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밖의 외딴 광야를 찾아 나설게 아니라 지금 여기의 광야에서 깨어 하느님을 말씀을 읽고 듣는 것입니다.


하루 중 하느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구체적으로 고독과 침묵의 광야 시간과 장소를 마련하는 것도 지혜입니다.

광야의 만나인 말씀을 먹어야 어둡고 험한 광야 세상 몸과 마음 다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주님은 오늘도 광야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를 생명의 오아시스 미사잔치에 초대해 주셔서 말씀과 성체로 충만케 하십니다.

바룩 예언자의 말씀처럼, 주님은 슬픔과 재앙의 옷을 벗겨 주시고 하느님에게서 오는 영광의 아름다움을 입혀 주십니다.


둘째, 광야에 주님의 길을 마련하십시오.

주님의 살아있는 말씀이 우리에게 주님을 기다리는 마음을 불러일으키고 부단히 회개로 이끕니다. 막연한 기다림으로가 아닌 적극적 회개의 실천을 통해 마련되는 주님의 길입니다. 우리가 마련하는 길을 통해 오시는 주님이시요, 이 길을 통해 주님을 마중 나가는 우리들입니다.

수도자만 주님의 길을 닦는 게 아니라 모든 믿는 이들 또한 주님의 길을 닦는 수도자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평생 주님의 길을 닦는 우리들이지만 특히 이 은총의 대림시기, 집중적으로 주님을 위해 인생광야에 주님의 길을 마련하는 때입니다.


과연 여러분은 어는 정도 주님의 길을 닦았습니까? 아무도 내 대신 주님의 길을 닦아 줄 수 없습니다.

사람마다 다 각기 다른 자기 고유의 주님의 길입니다. 눈에 보이는 길이 아니라 회개를 통한 내적 길이요 마음의 길입니다.

내외적 분열로 이한 골짜기는 화해로 메워지게 하고, 산과 언덕의 교만은 겸손으로 낮아지게 하며 굽은 부정적인 마음은 긍정적인 곧은 마음으로 바꾸고, 거친 길의 마음은 온유와 겸손의 평탄한 길로 바꾸는 것입니다.

바로 이게 구체적 회개의 열매요 마음의 길, 주님의 길을 잘 닦는 방법입니다. 혼자 닦는 주님의 길이 아닙니다.

우리가 닦는 주님의 길을 향해 주님 역시 길을 닦으며 오십니다. 우리를 향해 오시는 주님을 향해 주님의 길을 닦으며 마중 나가는 우리들입니다.

주님의 길을 마련하는 데 항구하십시오. 우리의 모든 수행이 주님의 길을 마련하는 방편입니다.

주님께서도 우리를 도와주시어 우리의 사랑이 지식과 온갖 이해로 더욱더 풍부해져, 무엇이 옳은지 분별할 줄 알게 하시며, 순수하고 나무랄 데 없는 사람으로 그리스도의 날을, 성탄을 맞이하게 합니다.


셋째, 주님의 구원을 보십시오.

성탄이 아닌 지금 주님의 길을 마련하는 지금 여기서부터 주님의 구원을 보는 것입니다. 살아계신 주님을 만나는 것이 바로 주님의 구원을 보는 것입니다.

아기 예수님을 팔에 안고 감격에 넘쳐 고백하는 시메온의 기도 잘 기억하실 것입니다. “주님 제 눈이 당신 구원을 보았습니다.”

주님의 구원을 보라고 있는 눈입니다. 눈 만 열리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구원입니다. 주님의 길을 닦는 수행에 항구할 때 마음은 깨끗해지고 깨끗한 마음의 눈에 보이는 구원입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

마음이 깨끗하지 않아, 주님의 길을 잘 마련하지 못해 마음의 눈이 가려져 보지 못하는 주님이십니다.

미사 시 감사송을 끝내며 거룩하시도다 중 ‘온 누리의 하느님, 하늘과 땅에 가득한 그 영광’이라 노래하지 않습니까? 관상의 절정이 지복직관 하느님의 얼굴을 뵙는 것입니다.

눈만 열리면 어디에나 가득한 하느님의 영광이요 하느님의 얼굴입니다.


오늘 날씨 춥지만 얼마나 아름답고 투명합니까?

바로 이런 자연을 바라보며 하느님의 진선미로 가슴을, 또 이 아름다운 미사 전례 중에 살아계신 주님을 마라보며 주님의 신망애 삼덕으로 가슴을 가득 채우는 것입니다.

바로 이게 지금 여기서의 복된 구원의 체험입니다.

미사 중 말씀 전례는 마음의 귀를 열어 살아계신 주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이고, 성찬전례는 마음의 눈을 열어 현존하시는 주님을 보는 시간입니다.
밤의 어둠을 밝히며 떠올라 우리를 찾아오는 태양처럼, 끊임없이 광야여정 중의 우리를 찾아오시는 태양 같은 주님이십니다.

광야의 고독과 침묵 중에 들려오는 주님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생명과 빛의 말씀을 모셔야 광야인생 행복하게 희망차게 살 수 있습니다.

주님의 길을 마련하십시오. 오시는 주님을 향해 적극적으로 구체적으로 주님의 길을 닦으며 주님을 마중 나가십시오.

깨어 부지런히 적극적인 회개의 실천으로 주님의 길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아무도 대신 마련해 줄 수 없는 내가 마련해야 할 내 주님의 길입니다.


주님의 구원을 보십시오. 간절히 주님을 찾고 기다리며 기도할 때, 또 주님의 길을 마련하는 수행에 충실할 때 마음의 눈 활짝 열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주님의 얼굴이요 주님의 구원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에게서 나오는 자비와 의로움으로, 당신 영광의 빛 속에서 우리를 즐거이 이끌어 주십니다. 바로 대림시기, 우리에게 주어진 복된 과제입니다.

우리 가운데에서 좋은 일을 시작하신 분께서 그리스도 예수님의 날까지 그 일을 완성하실 것입니다.

오늘도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주님의 길을 닦아 온 우리 모두에게 당신 구원을 앞당겨 보여주시고 생명과 사랑으로 우리를 충만케 하십니다.

- 아멘. 주님의 평화를 빕니다^^*





복음은 세례자 요한의 표상을 하느님의 구원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려 주는 표징으로 제시합니다.

온전한 그리스도인 성소의 특징이 세례자 요한 안에서 드러납니다.

성소는 하느님의 심오한 선택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구약 성경의 위대한 예언자들의 전통을 보면 하느님 말씀은 광야에 있는 세례자를 향하여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요한을 태중에서부터 선택하셨는데, 마리아의 태중에 계신 예수님에 힘입어 거룩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요한의 역사는 사랑의 역사이고 그를 위한 하느님의 사랑을 보여 줍니다.

그렇게 즈카르야의 아들 요한은 예언자가 되고 메시아의 선구자가 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세례와 교회에 속함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선택을 받아 그분의 자녀가 되고, 하느님의 가장 큰 관심을 받는 대상이며 그분께서 우리의 가장 큰 관심을 받으셔야 할 분이라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또 그리스도인 성소는 하느님의 소중한 도구라는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광야에서 요한은 하느님께서 그를 당신의 도구로 삼으실 수 있도록 증명해 보였습니다.

우리도 하느님께 우리를 당신의 도구로 맡겨 드리고 그분의 가르침을 따라야 합니다.


끝으로 성소는 강한 선교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요한은 하느님께만 매여 있지 않았고 하느님과 하느님의 모든 피조물에게도 심오하게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자신의 백성이 회개할 필요성을 온전하게 느끼는 감수성이 흘러나왔습니다.

우리도 하느님의 소유가 되어, 다가오는 새 시대에 교회 선교의 선구자라는 의식을 갖고 새 복음화를 위하여 계약의 하느님과 협력하는 자세를 취해야 합니다.

(안봉환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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