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거론,7년 대환란, 144,000
1)휴거론
세대주의자들에 의하면 예수 지상재림 7년 전에 공중재림을 하신다고 한다. 이것은 비밀재림이라고도 하는 데 이것은 성도들의 휴거가 일어나기 때문이라고 한다. 휴거라는 말은 세대주의자들의 전형적인 용어이다. 이것이 비밀재림인 이유는 예수가 공중에 재림을 했으나 지상의 사람들은 이 사실을 모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사실을 모른 채 일상생활로 돌아간다는 것이며, 일부 성도들만 주의 재림을 아는 것이다. 즉 일부 성도가 휴거를 한다는 것이다.
조용기 목사가쓴 책에 의하면 절반정도 휴거할 것이라고 말한다. 휴거 후에 지상에는 7년간의 대 환란이 시작된다. 앞의 3년 반을 전환란 시대, 뒤의 환란을 후환란시대라고 한다. 전반기에는 복음의 전파 가능성의 마지막 기회이다. 그리고 후환란시대에는 전무후무한 환란이 일어나며, 휴거하지 못한 성도는 죽게 된다고 한다. 그러나 휴거하게 되면 7년간의 어린양의 찬치에 참여하게 된다.
7년 환란 후에 예수의 지상 재림이 있고 이어서 1000년 왕국이 계속 된다. 그리고 그 후에는 곡과 마곡이 있고, 후에 백보좌 심판이 있고, 이어서 신천신지가 계속된다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것이 세대주의 종말론이다. 이 종말론은 주로 부흥운동 속에서 발전했다. 교파적으로는 오순절파에 영향을 주었고, 상당수의 오순절파는 이것을 교리로 가지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침례교와 성결교에도 영향을 미쳤다. 또 한국에서는 범교파적으로 영향을 받았다. 이와 같이 세대주의 종말론은 현실적으로 한국 교회를 지배하고 있는 종말론이다. 시중의 종말론 서적 가운데 열중 아홉은 이런 구조를 가지고 있다.
1992년 이장림은 철저히 이 종말론을 신봉하고 있었다. 그는 92년 10월 28일날 종말을 하면서 93년, 94년 만기의 통장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휴거를 하지 못하는 사람에 속할 것라고 생각했다. 휴거에 대한 직통계시를 받지 못했고, 남아서 복음을 전파하는 순교자의 반열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그래서 환란시에 복음 전파에 쓰려고 준비했었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는 통상적 이단이 가진 비도덕성과는 좀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는 철저히 신학적인 이단이다. 그가 그것을 믿었기 때문이다. 그의 책은 설득력이 있다. 논리적인 힘이 강하고 탁월하다. 결국 그는 잘 못된 신학수업으로 인해서 재능을 올바르게 실현하지 못했다. 따라서 바른 신학을 갖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세대주의 개념의 대표적 개념이 휴거론이다. 이것은 틀렸는데, 왜냐하면 성경 어디에도 휴거를 뒷받침 할 만한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혹자는 두 여자가 멧돌을 가는데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남았다는 구절을 휴거라고 말하지만 그것은 단순히 데려가신 것일 뿐이다.
그럴 법한 성경 구절이 살전 4:16-17에 있다.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이 본문을 휴거라고 생각한다. (지금부터 10분이 중요하다. 이 십분 동안 딴생각을 하면 평생 휴거가 있을 거라고 고집할 지도 모른다.) 핵심적 논점을 파악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중심이다. 먼저 개혁교회의 정통 종말론의 구조는 어떻게 되어 있는가?
재림▶ 새하늘 새땅▶ 지상재림▷
역사적으로 재림이 한 번 있고, 지상재림이 있으며, 이어서 새하늘과 새 땅이 건설된다는 것이다. 즉 주가 오시면 그것으로 끝이고 완전히 새세계가 열린다는 것이다. 이 종말론은 개혁교회 뿐 아니라 세계 대부분의 개신교회가 가르치는 종말론이기도 한다.
정통종말론과 세대주의의 차이; 세대주의 종말론은 주님의 재림이 두 번(공중과 지상) 있게 된다. 그래서 이 것을 예수의 이중적 재림을 특징으로 하는 종말론이라고 한다. 살전 4:16-17로 돌아와서 정통 종말론에 의하면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 즉 최후로 재림하실 때의 묘사로 이해하고 있다. 반면에 세대주의는 예수의 지상 재림 7년 전에 일어나는 공중 재림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어느 것이 옳은가?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 하나님의 나팔” 등의 표현이 공중에 살짝왔다 가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른체 자신의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겠는가?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 하나님의 나팔” 등의 표현은 고전 15장과 연결시켜 볼 때, 마지막 날을 표현하는 바울의 전형적인 표현이다. 이 표현들은 역사의 마지막 날이 왔다는 것을 알게 해 준다. 여기서는 죽은 자의 부활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일상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자들이 일어나고, 살아 남은 자들도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실 것인데, 공중은 무엇인가?
그것은 영접과 관련이 있는 단어이다.
예) 중요한 분이 공항에 오시면 공항에 나가서 영접한다.
이와 같이 우리가 어디에서 주를 영접하는가? 공중에서 영접하는 것이다. 그래서 공중에서 7년간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주가 건설하시는 신천신지에서 영원히 주님과 함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 휴거가 어디에 있는가? 혹자는 “공중에 올라가는 것이 있으니 휴거가 있는 것은 사실 아닌가?” 한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세대주의 종말론의 표현이라는 면에서 거부된다. 왜냐하면 이미 휴거라는 말을 사용함으로서 세대주의적인 생각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진정 중요한 것은 공중이 아니고 새 하늘과 새 땅이 중요한 것이다. 공중은 단순히 주님을 만나는 장소일 뿐이다. 구조적으로 7년간 어린양의 혼인잔치를 공중에서 한다면, 아래에서는 다른 성도가 도륙을 당하는데 거기에서 기분이 나겠는가 생각해 볼 것이다.
세대주의 종말론은 성경에 그 근거가 없기 때문에 쓰면 안되는 것이다. 그리고 세대주의 종말론의 중요한 개념이 7년 대환란이다. 7년 대환란도 성경에 없다. 왜냐하면 없기 때문에 없는 것이다. 아무리 찾아봐도 성경적인 근거가 없다. 그러면 그들이 있다고 하는 본문은 어디인가? 계 11:2-3 “성전 밖 마당은 측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저희가 마흔 두달(3년 반) 동안 짖밟으리라·········1260일(3년 반)············”. 계 12장 13-14절 “용이 ·············여자를 핍박하는 지라············광야에서 ·········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의 양육을 받으며(1년, 2년 반년)···········”. 여기서 전자의 3년 반과 후자의 3년 반을 합쳐서 7년간의 대환란이라고 주장한다.(지금부터의 10분간이 또 중요하다. 또 딴 생각을 하면 평생토록 7년 대환란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왜 7년 대환란이 없는가? 계 11장의 42달, 12장의 한 때, 두 때, 반 때가 나오기는 하지만 이것을 엮어서 7년 대환란을 만든 사람은 요한이 아닌 세대주의자들이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요한은 그냥 나열해 둔 것 뿐이다. 요한이 엮어 놓은 것이 아니다. 그리고 이것은 엮어서는 않되는 것이며, 절대로 엮을 수 없는 것이다.
그냥 3년 반이다. 여기서 3년 반이라는 숫자를 주의 해야 한다. 이 숫자는 상징적인 의미를 나타내는 데, 마귀의 통치를 나타내는 상징적인 숫자이다. 6이 마귀의 숫자가 아니고 3년 반이라는 숫자자 마귀와 관련되어 있는 숫자이다. 이 숫자는 유대 묵시 문학의 원조인 구약의 다니엘서에 등장한다. 단 7:25-27 “그가 장차 말로 지극히 높으신 자를 대적하며, ···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지내리라.” 여기에 한 때, 두 때, 반 때라는 즉 3년 반이라는 숫자가 나온다.
다니엘서는 아티오커스 에피파네스의 박해와 관련이 있는 책으로서 정확히 그 4세와 관련이 있다. 그는 유대의 종교를 뿌리채 뽑으려고 했고, 희랍 정신을 유대에 심으려고 했던 사람이다. 유대인의 골수에 밖힌 원수가 둘 있는데, 히틀러와 안티오커스 에비파네스이다. 그는 모세의 율법 읽는 것을 금지했다. 읽다가 들키면 죽여버렸다.
유대인은 생후 8일 만에 할례를 하는데, 그러면 그 아이와 제사장과 아버지를 그 자리에서 죽이고, 어머니는 죽은 아이의 시체를 목에 걸고 다녀야 했다. 유대인의 중심은 성전이었고, 더럽다고 생각하는 것이 돼지이다. 그런데 그는 성전으로 돼지를 몰고가게 했고, 제단 앞에서 돼지를 죽여서 그 피를 제단에 뿌리도록 했다. 유대 역사에서 이렇게 성전이 모욕을 받은 적이 없다.
이 때에 수많은 유대인들이 죽어 갔다. 믿음을 고백하는 사람은 혀를 뽑고 산채로 끓는 가마솟에 넣었다. 이렇게 온갖 박해가 가해 졌다. 그런데 이 박해가 약 3년 반 지속되었다. 그리고는 유다의 영웅 마카비의 저항에서 승리하고 성전이 정화되고 재건된다. 그래서 유대인에게는 12월에 하누카 절기가 있는데 이 절기는 마카비의 승리를 축하하는 절기이다. 3년 반이란 숫자는 여기에서부터 중요한 상징적 의미를 갖게 되었다. 즉 마귀의 통치기간을 나타내는 상징적 숫자가 되었다. 짧지는 않으나 길지도 않은 기간이다. 이 상징적인 숫자가 유대 묵시 문학에 깊은 영향을 주었고, 요한 계시록에도 연결되어 나타나 반복되고 있다.
계시록에서 3년 반은 전체적으로 어떤 기능을 하고 있는가?
3년반---1000년: 대비적 숫자; 마귀의 통치는 3년 반이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는 1000년(말할 수 없이 긴 시간을 의미하는 숫자이다) 동안 지속된다.
잠시---영원: 잠시와 영원의 대비로서 잠시를 반복하면서 환란을 이기도록 격려하고 그리스도의 나라는 영원하다는 것이다.
이 속에 요한의 역사관이 다 들어 있다. 도미시안의 박해 상황에서 마귀가 득세하는 시기를 우리가 경험하고 있다는는 것이다. 그러나 그 통치는 3년 반이라는 것이다. 때가되면 마침내 마귀는 결박을 당하고 영원히 꺼지지 않는 유황의 바다에 빠지고, 그리스도의 통치가 도래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1000년 그것도 모자라 영원히 지속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환난을 이기도록 격려하고 있는 것이다.
환란의 난동은 마귀가 힘이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잠시 허용하신 것이라는 것이다. 그 까닭은 미지근한 교회를 정화하기 위해서 잠시 허락하신 것이다. 따라서 이 환란은 믿음의 시련이라는 것이다. 그 믿음을 시험하는 시련의 기간이며, 그리 길게 허락하지 않으시고 3년 반으로 끈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3년 반은 두 개를 합쳐서 7년을 만드는 성격을 갖을 수 없는 것이다.
144,000이라는 숫자는 무엇인가?
이 숫자는 여호와의 증인과 관련된다. 마지막의 구원받는 사람의 총수가 144000이라는 것이다. 이 말의 배후의 의도를 잘 알아야 한다. 문자적으로 십사만 사천 명이다! 현재 전 세계 인구가 얼마며, 예수 당시의 그리스도인은 얼마며, 순교자들은 얼마인가? 그들을 제외하면 지금 남아있는 여유는 얼마나 될까? 현재 여호와 증인이나 천부교에 다니는 사람만 해도 144000이 넘는다.
이것은 종교적 에고이즘의 본질적 요소이다. 위대한 종교일수록 보편적이다. 성질이 사납고 고약할수록, 자기만, 자기 종파만 구원받기를 원한다. 따라서 그 배후의 의미는 지극히 적은 소수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성경의 의미를 보는 것이 중요하다.
계 7:4에 보면, 12 곱하기 12, 곱하기 1000을 하면 나오는 숫자인데, 완전수 12을 곱하고 거기에 어마어마한 숫자 1000을 곱한 것으로서 어마어마하게 많은 숫자를 의미하는 인상을 받는다. 이 인상이 옳은가? 요한은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라고 표현한다. 즉 요한 자신이 이 숫자를 어마어마하게 많은 숫자를 상징하는 말로 쓰고 있는 것이다.
계 14:4에 보면 이들이 누구인지를 설명한다. “이들은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자········”. 여기서 여자가 무엇인가? 여기서 여자는 큰 음녀 바벨론 즉 로마 제국을 나타내는 것이다. 따라서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한 자는 우상숭배를 하지 아니한 자를 말한다. 즉 이들은 믿음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을 말한다.
계7: 14에 보면 이들을 설명하기를 환란에서 나오며, 환란을 이긴 자들이 144000이나 된다는 것이다. 당시에 전 그리스도인은 다 해도 144000이 않되는데도 불구하고 요한은 이미 그 많은 숫자를 보았다고 하는 것이다. 환란으로 인한 좌절을 격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서 요한은 두려워하지 말 것을 말하고 있다. 이 싸움에서 이기는 사람이 144000이나 될만큼 많으므로, 하나님은 택한 백성과 함께 하셔서 승리하게 하신다는 희망을 주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144000은 어마어마하게 많은 숫자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또 이 숫자는 유대인만을 의미하는가? 14:9을 보면 각 나라, 각 족속, 백성과 방언 즉 전 지역에 흩어져 있는 헤아릴 수 없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동행하시므로 승리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영광의 찬송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성도들은 말세론이 어떠한가? 주를향한 믿음있나 아니면 세상이 두려운가? 이문제는 중요하다.성경은 앞뒤문장을 보는 것이 중요하다.한절만 빼면 주님께서도 그속에 역사하실까 깊이 묵상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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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수이트가 만든 휴거신학(神學)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너희가 하나님을 믿으니 또한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의 집에는 거주할 곳이 많으니라. 만일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리라. 나는 너희를 위하여 한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라.”(요 14:1-2)
지상의 왕국을 세우기 위한 프리메이슨과 로마 카톨릭의 두 가지 전략에 있어 주요양상은 지상에 그리스도의 재림 이전에 지상왕국을 건설함에 있다. 스코필드(Soofield)는 자신의 역할을 잘 수행하였으나 증거문헌이 필요했다. 이 교리의 역사적인 발달과 휴거라는 용어의 시작을 살펴보자. 먼저 “던칸 맥도날”목사가 쓴 소책자 ?성도의 휴거?라는 책의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이 책은 뉴저지의 O.F.P.M 출판사에서 1970년에 출간되었다. 맥도날(Macdougall)은 스코틀랜드의 자유교회(Free church) 목사로 임명되었는데 그곳은 오랫동안 성경의 가르침을 굳게 고수하는 곳으로 유명하였다.
“수백만의 진실한 신자들은 ‘성도들의 비밀스런 휴거’라고 하는 가르침과 그들이 휴거된 후 지상에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에 관한 가르침을 받아왔다. 그들의 이론에 따르면, 주님은 성도들에게 도적같이 임한다는 것이다. 세상에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은 채 공중에서 그분을 맞기 위해 들림받는 것(휴거)이다. 준비되지 않은 사람은 구원받지 못한 채로 남아있게 된다. 그 후에 ‘적그리스도’란 사람이 나타나서 세계의 지도자로 군림하면서 10개의 국가를 연맹으로 하여 고대의 로마제국을 부활시키고 그곳을 지배하며 유대인이 예루살렘 그들의 희생제사를 드릴 수 있도록 약속을 해주고는 3년 반이 끝난 후에는 그 약속을 깨뜨리고 그들을 핍박한다.”
“7년 후 예수님은 그분의 성도들과 함께 적그리스도를 물리치고 지상에 천년왕국을 세우기 위해 돌아온다. 이 모든 것들은 성경의 실제적인 가르침이며 약간의 사람들도 성경이 실제적으로 그것들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영향을 받고 있다.” 한시대에 잘못된 신학은 현세대까지 이어지고 있다. 제수이트가 만든 휴거신학(神學)이 그것이다.
① 로마황제에 대한 이론: 스페인 제수이트인 알카자(Alcazar)는 사도요한이 그의 시대로부터 수백년 후에 일어날 일을 예언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개념에서부터 시작했다. 그는 단지 그의 생애 중에 일어날 수 있는 일만을 기록하였기에 그가 말한 ‘적그리스도’는 아마 네로황제이거나 다른 초기의 핍박자 일 것이다(이 이론은 계시록에 나와 있는 카톨릭의 유혈 박해와 종교재판소의 견해에서 보는 카톨릭을 포함하여 많은 기독교인, 로마카톨릭교회와 교황을 탄압한다는 것이다. 즉 로마 카톨릭도 함께 고난 받는다는 설이다.)
미래주의를 정립한 리베라와 함께 주창했던 벨라민 추기경 
② 미래인물에 대한 이론: 또 다른 스페인 제수이트 회원인 리베라(Ribera)는 다음과 같은 극단적인 이론을 제시했다. 계시록 전체는 예수님의 재림 시점에 일어날 일과 관계된 것이기에 미래의 일이란 것이다. ‘적그리스도’란 이 통치의 끝에 가서야 나타나서 세계의 지도자가 된다는 것이다.
교황청 제수이트에 의해 자행된 바돌로메 대학살은 1572년에 일어났고 리베라(Ribera)는 그의 이론을 1580년경에 내놓았다. 하나님은 증명하셨다. “사악한 것은 그 누구도 이해할 수 없다.” 또한 오늘날의 수천의 ‘성경 교사’들은 리베라의 미래의 적그리스도란 개념에 여전히 머물러있다.
“250년 동안(1580-1830) 미래의 어느 날 나타난다는 적그리스도의 개념은 로마 교회의 승인된 가르침이었다.”
제수이트가 칠레에서 추방되었을 때 라쿤자(Lacunza)는 북부 이태리에 머물면서 “영광과 위엄의 구세주 오심”이란 책을 썼다. 제수이트와 교회가 "미래의 적그리스도" 리베라(Ribera)의 이론을 가르쳤을 때 라쿤자(Lacunza)는 이 가르침에 대해서 성도들의 ‘휴거’와 영광중에 나타날 실제적인 "메시야", 이 둘 사이에 간격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리스도는 두 번 오시는데 한 번은 그의 성도들을 위함이고 또 한 번은 그의 성도들과 함께 후일에 오는 것이라고 가르쳤다.
라쿤자(Lacunza)는 그의 책에서 이상한 말을 하였다. 그는 적그리스도가 로마에 나타나서 교회의 본부가 있는 곳을 강타할 것이라고 암시하였다. 그는 또한 평범하게 서술하기를 계시록 13장에 나오는 두 짐승은 로마교회의 성직자들을 의미하는 것으로 그들은 진정한 교회라고 위장할 것이라고 기록했다. 더 나아가서 그는 적그리스도에 관한 카톨릭의 가르침에 의문을 품고 개신교의 주장에 동의를 하면서 성경에서 말하는 적그리스도는 한 사람이 아니고 한 영에 의해 고무된 사람들의 집단 또는 강력한 체계로써 교회의 본부를 휩쓴 한 사령부가 통치하며 로마에 주둔한다는 것이다. 또한 라쿤자가 개신교에 동의하는 부분은 계시록 11:3-11의 ‘두 증인’은 두 개인이 아니고, 두 무리의 하나님의 신실한 성직자들로 그들은 적그리스도를 대항하여 결국에는 그를 이기는 자들이란 것이다.
라쿤자(Lacunza)가 시도한 것은 무엇인가? 맥도날 목사가 라쿤자의 저서를 주의 깊게 보고 발견한 것은 그가 하나가 아닌 두 개의 견해로 계시록을 보았다는 것이며, 이 둘은 누군가가 “왜 그는 이 책을 썼는가?” 하는 물음이 나올 정도로 초지일관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한 영에 의해 기름부음을 받은 세계적 권력자인 적그리스도가 있는 로마교회에 그의 이런 이론이 영향을 끼쳤다면 논법의 냉혹한 힘은 로마 카톨릭으로 하여금 역사가 이미 하나의 세상 권력을 만들어 냈기에 그것에 강제로 응해야함을 인식할 수 있도록 만든다. 다시 말하자면 로마는 개신교의 입장을 수용하도록 조정한 것처럼 보인 것이다.
그러나 만약 그가 프로테스탄트들로 하여금 적그리스도가 마지막 때가 이르기 몇 년 전에 나타난다는 견해를 수용하게 만들었다면, 이것은 동일하게 프로테스탄트가 적그리스도를 한 개인으로 나타내도록 생각하게 만든다. 즉 프로테스탄티즘은 로마의 핑계를 받아들이도록 강요받게 되는 것이다. 이 둘 중 어느 쪽이 라쿤자의 목적일까?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라쿤자의 책이 그 자신이 속한 교회의 믿음을 수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신실한 로마 카톨릭이 읽어서도 안되고 읽을 수도 없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로마의 가르침과 달라서 바티칸의 금서 목록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제수이트 사제가 개신교 독자들을 얻을 수 있었을까?
간단하다. 자신의 구세주로 그리스도를 영접한 한 유대인이 그의 교우의 견해로 쓴 것 밑에 가명으로 “랍비 벤 에즈라(Rabbi Ben Ezar)”라고 썼다. 얼마나 많은 신실한 현세의 작가와 교사와 목회자들이 단지 제수이트의 사제인 라쿤자가 가명을 붙여 쓴 책에 의해 영향을 받았나가 궁금하다. 그 책이 출판되기 전인 1801년에 라쿤자는 죽었다. 그 책은 1812년 스페인의 레온섬에서 처음으로 출판되었고, 즉시 이단 종교재판소의 공공연한 공격을 받았으며 결국엔 로마의 금서 목록에 남게 되었다.
다음에 그 책은 부에노스 아이레스 공화국의 외교상의 지점인 런던에서 1816년 출판되었고, 저자는 여전히 “랍비 벤 에즈라(Rabbi Ben Ezar)”로 되어 있었다. 그 책은 4권으로 쓰여 졌으며 신비하게 풀이된 그것은 컨터베리 주교의 도서관에 보관되었다.
그 내용은 계시록 전체는 몇 년간의 짧은 기간 내에 이루어지게 되며 개인적인 적그리스도가 세계의 지도자가 된다는 개념은 자연적으로 뒤따르는 것이었다. 메이트란드 박사가 그의 소책자를 통해 숨겨진 제수이트 가르침에 몰두하기에 바쁠 때 젊은 스코틀랜드의 장로교파 목사인 신비주의자 에드워드 어빙(Edward lrving)이 런던에서 스페인어로 편집된 랍비 벤 에즈라의 책을 영어로 번역하기에 힘썼다.
어빙(Irving)의 번역판은 1827년에 나왔으며, 그 책의 서문에서 그는 1816년 런던에서 인쇄된 스페인어 편집 후원자가 밝힌 것처럼 제수이트인 라쿤자를 실제 저자로 소개하였다. 그 책은 여전히 랍비 벤 에즈라란 이름 하에서 출판되었다.
(어빙을 추종하는 어빙교파
1827년: 바로 이때 어빙은 하늘로부터 성도들의 비밀스런 휴거를 설교하라는 소리를 들었다고 말했다. 이 목소리에 복종하여 그는 그리스도가 두 번 오심을 전파하기 시작하였다. 첫 번째는 ‘살며시 그의 성도들을 위해서, 그 후에 7년간 적그리스도의 통치가 있은 후 그의 성도들과 함께 영광스럽게 적그리스도를 쳐부수고 통치하기 위해 오는 것이다’고 가르쳤다. 그래서 제수이트인 라쿤자의 영리한 작업은 영국의 개혁교회 내에서 전파되기 시작했다. 에드워드 어빙은 1832년에 런던에 카톨릭 사도교회(Catholic Apostolic Church)를 설립하였다.
동포교회 운동: 아일랜드로 넘어가면 라쿤자의 비밀스런 휴거의 ‘씨앗’이 계속 잘 자라는 것을 보게 된다. 로마 카톨릭으로 자란 에드워드 크로닌의 지도하에 첫 번째 교우모임이 더블린에서 형성되었고 로마교회는 반은 카톨릭 나머지 반은 개신교 운동을 벌임으로써 자립하려했다. 만약 그것이 가능하다면 말이다.
1. 동포교회란 용어의 견해: 로마교회와 같은 입장인 것이며 만약 당신이 동포교회에 속해있지 않다면 당신은 그리스도의 자녀가 아니다.
2. 보이지 않는 교회는 크로닌이나 그의 지지자에게 결코 용납되어지지 않았다. 루터가 말하기를 신약에서 언급된 모든 개인교회는 각각 외적으로 볼 수 있게 조직된 것으로 진실로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의 모임이 그리스도의 진실한 몸체의 구성원이 될 수 없다. 그들은 함께 할 수 없는 사람들로 진실한 교회임을 증명할 수 없고 진실로 보이지 않는 몸체는 하나님 한 분이시다. 크로닌은 밀과 독보리는 여기서 구분된다고 생각하였다.
3. 코로닌과 교우들은 로마와 같이 모든 개신교 기독교인을 경멸하였다.
4. 동포교회는 로마와 같이 파문을 행하였다. 크로닌은 그 자신이 가르침의 희생물이 되었고 교회로부터 추방당했으며 만약 비밀의 휴거가 실제로 일어나게 되면 그들은 남게 되기에 상심하게 되었다.
5. 동포교회 운동은 J.N.다비(Darby)의 지도하에 그들 교인들이 읽을 수 있는 책을 쓰려고 노력하였다. 이 운동에 참가한 사람들은 로마와 금지된 책의 목록과 같은 타 종교의 견해에 대해 전혀 무지하였다. 이것을 강행할 수 있는 한 가지 길은 동포교회 작가들이 그들 회원만이 읽을 수 있도록 자료를 분류하여 보관하는 것이었고 또 그들은 그렇게 행하였다.
1827년: 동포교회운동, 또는 플리머드 동포교회의 창시자로 언급되는 J.N.다비는 더블린 회합에서 뉴먼 에드워드 크로닌을 만났다. 1833년: 죤 뉴먼(John H. Newman)과 옥스퍼드 운동: 뉴먼은 1801년 런던에서 태어나 1890년에 사망했다. 그는 1825년 미국의 사제가 되었다. 똑똑한 젊은 청년인 그는 1828년 옥스퍼드 대학교회의 성 마리의 교구목사가 되었으며 1832년 말타, 나폴리, 로마와 지중해를 여행하였다. 시실리 섬에서 열병에 걸려 거의 죽을뻔 하기도 했다. 옥스퍼드 운동이 시작될 무렵 뉴먼은 런던에 돌아와 즉시 그 운동의 지도자가 되었다.
옥스퍼드 운동은 영국교회로부터 개신교의 잘못과 로마교회의 무절제한 잔해들을 근절하는 역할을 하였다. 사실 이것은 국민들에게 카톨릭 사상을 가르치기 위한 시도였고 이 일은 뉴먼이 쓴 미래의 카톨릭과 숨겨진 카톨릭의 음모에 관한 수많은 소책자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들이 취한 입장은 영국교회는 최고의 정치 권위자로써의 교황은 거부하나 로마교회의 종교적 최고 우위성은 수용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약간의 성공을 거두었으나 배후에 그들이 남겨놓은 중요한 것은 우리의 생애 동안에 이루어지는 일들이다.
1879년 교황 레오13세는 뉴먼이 ‘우리의 생애 중 거둘 수 있는 씨앗을 뿌렸다’ 해서 그를 추기경으로 임명하였다.
1833년: 다비와 ‘비밀휴거’- 맥도날 목사는 ‘성도의 휴거’란 그의 저서에서 비판적인 질문을 제기하였다.
“성도들의 비밀스런 휴거란 다비에게 내린 성령님의 특별 계시인가? 그를 통해 동포교회운동이 내려진 것인가? 아니면 어빙으로부터 다비가 단순히 유추해 낸 것인가? 제수이트인 라쿤자로부터 얻은 것인가?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성령님에 의한 것인가? 아니면 제수이트에 의한 것인가? 하는 것이다.
우리는 다비가 6년 전 동포교회운동에 가입한 후에 지도자가 되어 1833년에는 일 년의 예언에 관한 모임에 초대되었음을 볼 수 있다. 이 모임의 창시자 에드워드 어빙은 1827년 이후 계속 비밀스런 휴거를 전파했다. 그의 영감은 1801년에 죽은 제수이트인 라쿤자가 쓴 책으로부터 받은 것이다. 사실, 비밀스런 휴거의 이론은 1827년에 어빙에 의해 영어로 번역되었다. 카톨릭으로 개종한 랍비 벤 에즈라의 이 가공적인 책은 비카톨릭에게도 받아들여졌으며 그 책 서문의 실제 저자는 제수이트인 라쿤자임을 밝혔다.
소위 ‘섭리의 진실’이라고 불리는 비밀스런 휴거론은 다비 자신의 계획에 아주 잘 맞았다. 거의 250년이 지난 후에 다비는 예언서 모임에서 제수이트의 미끼를 받아들였다. 이것은 성령님에 의한 하나님의 계시라기보다는 250년간의 로마교회의 제수이트의 고안이었다.
1833년 제수이트 교리인 비밀휴거는 두 개의 공격을 받게 되었다.
1. 옥스퍼드 운동은 로마를 위한 공감을 일깨우는 것으로 영국과 로마의 교회가 함께 하나의 목적과 뜻을 갖기 위하여 로마식 예배를 영국에 도입함으로써 비밀스럽게 영국과 로마교회 사이의 간격을 제거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2. 동포교회운동은 개신교 교회의 지지를 움츠러들게 하기 위해 가장 영감 있는 멤버를 꾐으로, 로마에 저항하는 것을 약화시켜 그들의 에너지를 헛된 싸움으로 돌리는 것이다. 복음적인 교회와 로마 사이의 구별을 가능한 한 모두 말살시키고 하나님이 바벨론의 우상숭배에 관해 경고하신 그릇된 것에 대한 적용도 없애자는 것이다.
그리고 로마에 대한 공감을 일깨우기 위해 사용한 옥스퍼드 운동 교리는 ‘동포교회운동은 과거의 모든 성도들에게 특히 개신교 교회들에게 보내진 하나님의 계시에 환호를 보낸다’는 것이다. 또한 그 교회는 성도들이 휴거된 후 개인적인 적그리스도가 나타날 미래에 관한 것이었다.
‘스코필드’가 주석한 이 부분의 강력한 암시는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서 거짓 왕국을 건설하도록 만들었다.
아! 만일 그들이 처음에 진정한 양식의 몫을 받았더라면 그들은 결코 속지 않았을 것이다. 스코필드의 주석은 성경을 해석하고 증거하는데 사용됐다. “단단한 음식은 성숙한 자들의 것이니, 그들은 자기의 감각을 단련시킴으로 활용하여 선과 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히 5:14).
라쿤자가 가명으로 랍비 벤 에즈라를 사용한 것이 다비에게 섭리의 진실을 이용해 유대인 메시아왕국의 견해를 주기에 충분한 암시가 되었다. 수백만의 크리스챤들이 미래의 환난과 개인적인 적그리스도가 출현하게 될 때 휴거를 기다리도록 유도되었다. 어떻게 그들은 교묘하게도 제수이트인 라쿤자에 의해 만들어진 이 세상 왕국 속으로 자신들을 넣고 문을 닫았을까? 플리머드 동포교회는 모든 다른 기독교인들에게 증오와 경멸을 보냈다. 적그리스도에 대한 그들의 가르침 중 하나는 그라 알시터 크로울리(Aleister Crowley)라는 것이다.
프리메이슨의 고위 지도자이며 사탄주의자인 크로울리(1875-1947)는 플리머드 동포교회 교역자의 아들로 다른 기독교인에 대한 사랑이 결핍된 자인데, 그는 결국 배도자가 된 것이다. 어떤 면에서 그는 성공했다. 신비주의 운동이 지상에서 그리스도의 이름을 없애려는 그의 가르침에 의해 잉태된 것이다.
“자기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두움 안에 있고, 어두움 가운데 행하며 자기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알지 못하나니, 이는 그 어두움이 그의 두 눈을 멀게 하였기 때문이라.”(요일 2:11).
“천년왕국은 세상의 혁신으로 종교를 갖지 않은 사람들이 기다린다. 이 가르침에 따르면, 미래에 있을 가능성의 범위 내에서 물질적인 천년왕국이 이루어지게 된다. 그들이 가르치기를 모든 민족은 자연히 무기력해짐과 질병의 비확산에 의한 개선과 갱신을 기대해야 하며 삶의 계급제도에 있어서는 계속적인 전진 속에서, 우리민족의 최고의 요소를 지속적으로 증가시켜야 한다.
세상에 있는 “왕”은 느부갓네살(바벨론의 왕 B.C 605-562)의 환상의 꿈을 가진 자다.
6은 사람의 수이다. 성경에서 우리가 6번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사탄왕국의 건축자들이 모퉁이의 머릿돌이며 진정한 돌인 그리스도를 거부하고 손 없이 산을 제거하는 것이다.
시편 118편 22절과 마태복음 21장 42절을 주의 깊게 읽은 후 마태복음 21장 44절을 주목하시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부서질 것이요, 이 돌이 누구 위에 떨어지든지 그를 가루로 만들 것이니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하는 말씀은 다니엘 2:44로 돌아가게 한다. “도리어 이 모든 나라를 쳐서 멸하고…” 그리고 다니엘 2:45 “산에서 뜨인 돌이 철과 놋과 진흙과 은과 금을 산사조각 내는 것을”
다시 우리는 건축자가 거부하는 돌을 포함하고 있는 4군데의 다른 성경구절을 찾아 볼 수 있다.
마가복음 12장 10절, 누가복음 20장 17-18절, 이사야 4장 10-12절과 베드로전서 2장 4-8절이다.
이 ‘반석’은 그리스어로 “페트라”(Petra)인데 이것은 바윗덩어리를 의미한다. 또 이것은 고린도전서 10장 4절의 “그들의 뒤를 따르던 그 영적인 반석…”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모퉁이 머릿돌이 되심으로”(엡 2:20-21).
세월이 지남에 따라 다니엘의 말이 얼마나 진실 되었는가를 보게 된다.
진정한 크리스챤들은 그들이 읽고 들음으로 삶과 육적인 죽음을 직면했을 때 평화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또 한 번이라는 이 말씀은 만들어진 것들로서 흔들리는 것들을 제거하고 흔들리지 아니하는 것들로 남아있게 하려하심이니라.”(히 12:27-28).
진정한 반석은 예수 그리스도로 반석이신 한 모퉁이 머릿돌이시다. 그분은 신약에서는 제자들에 의해, 구약에서는 선지자들에 의해 예언된 반석이시다(엡 2:19-22, 롬 9:31~33) 이 새로 만들어진 철학에 따르면, 천년왕국은 초자연적인 예수님에 의해서가 아닌 자연적으로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플라톤, 히틀러와 알버트 파이크는 재빨리 아멘! 이라고 말했을 것이다. 주기도문: “아버지의 왕국이 임하게 하옵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옵소서”(마 6:10, 요 17:5을 읽으시오). 수백만의 크리스챤들은 1833년 다비가 제수이트의 미끼로 축연을 베푼 이래 고문당하고 박해를 당했다. 기독교인들은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세주로 고백함으로 기독교인들은 죽임을 당하게 된다. 프리메이슨의 새 시대는 세속적인 인본주의를 이용하여 스코필드가 주석한대로 미국 내에서 그리스도의 형제? 자매들은 조용히 잠을 자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 메이슨과 카톨릭의 두 방향의 전략은 1957년판 미국백과사전 19권에 나와 있는 대로 천년왕국에 대해 이렇게 정의했다. 1833년의 제수이트 전략은 여전히 계속 되어갔다. 그들의 영리한 계획은 1909년 출판된 것으로 시러스 스코필드(Cyrus I. Scofield)박사의 ?하나님이 기록한 말씀?한 부분에 넣은 ‘섭리의 진실’과 잘 혼합되었다. 그 계획은 미국에서 성경을 믿는 수백만의 크리스챤들이 하나님의 말씀이 진정한 양식이라기보다는 하늘로부터의 ‘음식’으로써 받아들이게 하는 잘못을 저질렀다. 뉴먼은 성 마리의 영국교회에서 1843년 2월 2일에 교우 목사로서의 마지막 설교를 한 후 사임하였다.
1845년 10월 9일에 카톨릭교회를 받아들이고, 1846년 로마로 가서 신학공부를 계속하다가 1847년 5월 30일에 카톨릭 사제가 되었다. 로마는 매우 인내심이 강하다!!
1826년에 컨터베리 주교의 도서관원인 “메이트란드(Maitland)” 박사는 제수이트의 유혹으로 이미 제수이트가 250년간 가르쳐왔던 그 이론을 제공하는 일련의 예언서를 출판하기 시작했다. 메이트란드 박사의 생각은 유대인 지도자인 벤 에즈라를 변화시킬 수 있는 아이디어를 제공하겠다는 것이었으나, 그는 모든 독자를 논리적인 예정설 결론에 이끈 라쿤자(Lacunza)의 두 가지 견해의 지혜로운 계획에 말려든 희생자가 되었다. 다음으로 라쿤자는 리베라와 같은 제수이트 이론을 제시하였다.
1. 적그리스도의 출현: 두 증인들과 그에 관한 모든 예언의 성취는 여전히 미래의 일이다.
2. 매우 짧은 기간 동안 이루어질 그 모든 일들은 주님이 영광중에 재림하시기 직전에 일어난다. 임마누엘 라쿤자(Emanvel Lacunza): 랍비 벤 애즈라(Rabbi Ben Ezra)의 별명 그는 스페인계 칠레인으로 16세인 1747년에 교황청 제수이트가 되고 제수이트주의 계열인 장미십자회 비밀결사요원이 되어 수사(수녀)의 감독관이 되었다. 이 개념의 근원, 더 정확히 하나님의 말씀에 대항한 ‘음모’를 살펴보자.
그들 주위를 소용돌이친 바벨론의 신비주의를 처음으로 분별할 수 있었던 수백만의 기독교인들의 손에는 종교개혁으로 인한 성경이 들려있었다. 계시록은 무효화되었으며 제수이트(Jesuits)는 이와 관련한 일련의 이론들을 세웠고 당시 교회서도 모두는 서로 모순되고 혼동에 빠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