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0월 05일 목요일
[연중 제26주간 목요일]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루카10,1-12)
제1독서<주님을 찬양하자 온 백성이 “아멘, 아멘!” .>(느헤8,1-4ㄱ.5-6.7ㄴ-12)
1 온 백성이 일제히 ‘물 문’ 앞 광장에 모여, 율법 학자 에즈라에게 주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명령하신 모세의 율법서를 가져오도록 청하였다.
2 에즈라 사제는 남자와 여자, 그리고 말귀를 알아들을 수 있는 모든 이로 이루어진 회중 앞에 율법서를 가져왔다. 때는 일곱째 달 초하룻날이었다.
3 그는 ‘물 문’ 앞 광장에서, 해 뜰 때부터 한낮이 되기까지 남자와 여자와 알아들을 수 있는 이들에게 그것을 읽어 주었다. 백성은 모두 율법서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다.
4 율법 학자 에즈라는 이 일에 쓰려고 만든 나무 단 위에 섰다.
5 에즈라는 온 백성보다 높은 곳에 자리를 잡았으므로, 그들이 모두 보는 앞에서 책을 폈다. 그가 책을 펴자 온 백성이 일어섰다.
6 에즈라가 위대하신 주 하느님을 찬양하자, 온 백성은 손을 쳐들고 “아멘, 아멘!” 하고 응답하였다. 그런 다음에 무릎을 꿇고 땅에 엎드려 주님께 경배하였다.
7 그러자 레위인들이 백성에게 율법을 가르쳐 주었다. 백성은 그대로 서 있었다.
8 그들은 그 책, 곧 하느님의 율법을 번역하고 설명하면서 읽어 주었다. 그래서 백성은 읽어 준 것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9 느헤미야 총독과 율법 학자며 사제인 에즈라와 백성을 가르치던 레위인들이 온 백성에게 타일렀다.
“오늘은 주 여러분의 하느님께 거룩한 날이니, 슬퍼하지도 울지도 마십시오.” 율법의 말씀을 들으면서 온 백성이 울었기 때문이다.
10 에즈라가 다시 그들에게 말하였다. “가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단 술을 마시십시오. 오늘은 우리 주님께 거룩한 날이니, 미처 마련하지 못한 이에게는 그의 몫을 보내 주십시오. 주님께서 베푸시는 기쁨이 바로 여러분의 힘이니, 서러워하지들 마십시오.”
11 레위인들도 “오늘은 거룩한 날이니, 조용히 하고 서러워하지들 마십시오.” 하며 온 백성을 진정시켰다.
12 온 백성은 자기들에게 선포된 말씀을 알아들었으므로, 가서 먹고 마시고 몫을 나누어 보내며 크게 기뻐하였다.
화답송 시편19(18),8.9.10.11(◎9ㄱㄴ) ◎ 주님의 규정 올바르니 마음을 기쁘게 하네.
○ 주님의 법은 완전하여 생기 돋우고, 주님의 가르침은 참되어 어리석음 깨우치네. ◎
○ 주님의 규정 올바르니 마음을 기쁘게 하고, 주님의 계명 밝으니 눈을 맑게 하네. ◎
○ 주님을 경외함 순수하니 영원히 이어지고, 주님의 법규들 진실하니 모두 의롭네. ◎
○ 금보다 순금보다 더욱 값지며, 꿀보다 참꿀보다 더욱 달다네. ◎
복음<너희의 평화가 그 사람 위에 머무를 것이다.>(루카10,1-12)
1 주님께서는 다른 제자 일흔두 명을 지명하시어, 몸소 가시려는 모든 고을과 고장으로 당신에 앞서 둘씩 보내시며,
2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3 가거라.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
4 돈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말고,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마라.
5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먼저 ‘이 집에 평화를 빕니다.’ 하고 말하여라.
6 그 집에 평화를 받을 사람이 있으면 너희의 평화가 그 사람 위에 머무르고,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되돌아올 것이다.
7 같은 집에 머무르면서 주는 것을 먹고 마셔라. 일꾼이 품삯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이 집 저 집으로 옮겨 다니지 마라.
8 어떤 고을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받아들이면 차려 주는 음식을 먹어라.
9 그곳 병자들을 고쳐 주며, ‘하느님의 나라가 여러분에게 가까이 왔습니다.’ 하고 말하여라.
10 어떤 고을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한길에 나가 말하여라.
11 ‘여러분의 고을에서 우리 발에 묻은 먼지까지 여러분에게 털어 버리고 갑니다. 그러나 이것만은 알아 두십시오.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습니다.’
12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날에는 소돔이 그 고을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연중 제26주간 목요일 제1독서(느헤8,1~4ㄱ.5~6.7ㄴ~12)
그는 '물 문'앞 광장에서,해 뜰때부터 한낮이 되기까지 남자와 여자와 알아들을 수 있는 이들에게 그것을 읽어 주었다~ 그 책, 곧 하느님의 율법을 번역하고 설명하면서 읽어 주었다. 그래서 백성은 읽어준 것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느헤미야총독과 율법학자며 사제인 에즈라와 백성을 가르치던 레위인들이 온 백성에게 타일렀다. "오늘은 주 여러분의 하느님께 거룩한 날이니, 슬퍼하지도 울지도 마십시오." 율법의 말씀을 들으면서 온 백성이 울었기 때문이다.(8,3.8-9)
'물 문' 앞 광장에서(3)
느헤미야서 3장 26절에도 나오지만, '물 문'앞 광장이란 예루살렘 동쪽 성벽에 있던 성문인 '수문(水門; 샤아르 함마임; shaar hammaim; the Water Gate) 앞에 있는 사람들이 많이 모일 수 있는 넓은 광장을 말한다.
동쪽 '물 문'(동편 수문)은 성 밖에 있던 기혼샘과 느티님(the Nethinims)사람들의 거주지인 오펠(Ophel)사이에 있는 문을 말한다.
이 문이 기혼샘과 가까이 있었기 때문에 수문(水門)으로도 불리워졌으며, 식수를 얻기 위하여 사람들이 이 문으로 많이 드나들었다. 뿐만 아니라 이곳에는 공중 집회를 가질 수 있는 넓은 광장도 있었다(느헤8,1).
'그 책, 곧 하느님의 율법을 번역하고 설명하면서 읽어 주었다'
여기서 '번역하고'로 해석된 '메포라쉬 웨솜'(mephorash wesom; making it clear; gave distiinctly)에서 '메포라쉬'(mephorash; clearly; distinctly)는 에즈라에 의해서 봉독된 율법책의 말씀을 백성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레위인들이 통역하였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설명하고 해석하였음을 묘사하는 단어라고 할 수 있다.
당시 오랜 기간 동안 바빌론 지역에서 생활하였던 이스라엘 후손 가운데는 모국어인 히브리어를 잊어 버렸거나 능통하게 사용하지 못해서 히브리어로 봉독된 율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자들이 있었기 때문에 일종의 통역이 필요했다는 견해가 나름대로 설득력을 갖는다.
동시에 하느님의 뜻이 담겨있는 내용을 분명하고 정확하게 알아들을 때까지 뚜렷하게 설명해 주었다는 의미도 가지고 있다.
'오늘은 주 여러분의 하느님께 거룩한 날이니, 슬퍼하지도 울지도 마십시오.'
느헤미야와 에즈라 및 가르치는 일을 맡았던 레위인들은 백성들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통회하며 울자 그들에게 '슬퍼하지도 울지도 마십시오'고 권고하였다.
비록 그 슬픔과 눈물이 그들의 죄에 대한 자각과 하느님의 말씀에 대한 깨달음에서 오는 긍정적인 것이었지만 그들이 울지 말아야 할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오늘은 주 여러분의 하느님께 거룩한 날'이기 때문이었다.
원문은 '하이욤 카도쉬 후 라이흐와 엘로헤켐'(haiyom qadosh- hu laihwah ellohekem; This day is sacred to the LORD your GOD)이다.
여기서 새 성경에서 번역이 불분명하게 된 히브리어 '후'(hu)는 인칭 대명사 3인칭 단수로 '그' 곧 '주 여러분의 하느님'을 가리킨다.
또한 이 '후'(hu)가 '거룩한 날'에 해당하는 '카도쉬'(qadosh)와 '막켑'(-)으로 직접 연결됨으로써, 그 거룩한 날이 바로 '그'와 밀접하게 관계되어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는 거룩한 날의 근거가 바로 주 하느님께 있음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새 성경이 '주(의)'로 번역한 '라이흐와'(laihwah)는 '주'를 뜻하는 '예흐와'(yehwah)에 전치사 '레'(le)가 결합된 형태이다. 전치사 '레'(le)는 여기서 '~에게 속한'이란 소유의 의미를 갖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즉 원문은 '오늘'이 누구에게 속한 날인지를 강조하여 표현하고 있다. 다시 말해 본문은 '오늘은 거룩한 날이다. 너희 주 하느님께 속한, 바로 그분의 거룩한 날이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오늘의 주인공은 바로 주 하느님이시고 모든 것은 그분을 중심으로 그분의 뜻대로
그분의 말씀대로 행해져야만 되었다.
여기서 '오늘'은 유대 종교력으로 칠월 초하루인데, 나팔을 불어 기념일임을 알리고 거룩한 모임을 열어야 하는 날이다.
이 날은 주님을 위한 향기로운 번제물로 황소 한 마리와 숫양 한 마리와 일 년 된 흠 없는 어린 숫양 일곱 마리를 바쳐야 하고, 이와 함께 기름을 섞은 고운 곡식 가루를 곡식 제물로 곁들일 뿐 아니라 숫 염소 한 마리를 속죄 에식을 드리는 매우 특별한 날이다(레위 23,24.25; 민수29,1-6; 여호6,21; 1사무 22,19; 1역대16,3).
이 칠월 초하루에는 모든 노동을 금하였을 뿐 아니라 남녀노소 모두가 참여하는 거국적인 절기였다. 유대 종교력으로 7월은 새해가 시작하는 첫날이며, 유대 민간력으로는 1월이다.
이스라엘 후손들은 이 날, 새해 첫날을 하느님께 바침으로써 그밖의 모든 날도 하느님의 날임을 고백하고 하느님의 뜻대로 살기를 다짐함으로서 자신이 하느님의 백성임을 확인하는 날이다.
하느님께 이 날을 드림으로써 한 해 전체를 하느님의 뜻에 합당하게 살기를 다짐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오늘' 칠월 초하루는 주님의 말씀에 따라 기쁘고 즐거운 축제일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레위23,24.25; 민수29,1-6; 신명12,7.12).
'온 백성이 울었기 때문이다'
느헤미야서 8장 4절에서 8절까지 에즈라가 율법을 봉독하고 레위인들이 그 말씀을 알기 쉽게 해석해 주어 백성들로 하여금 깨닫게 하였음을 보도하였다.
이제 본문은 이에 대한 백성들의 반응을 보도한다. 율법의 말씀을 듣고 깨달은 백성들은 모두 울었다.
여기서 '울었기'에 해당하는 '보킴'(bokim)은 '울다'라는 뜻의 동사 '빠카'(baka)의 분사형이다. 이처럼 분사형이 사용된 것은 백성들이 잠시 잠깐 운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흐느껴 울었음을 보여준다.
바빌론에서 돌아온 유다 귀환민들은 율법책에 기록된 말씀을 듣고 울지 않을 수 없었다.
즉 율법에 대한 바른 이해를 통하여 진정한 회개 운동이 일어난 것이다.
연중 제26주간 목요일복음(루카10,1~12)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가거라.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 (2~3)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의 갑작스런 도래와 함께 그때 올 악한 자에 대한 심판의 준엄함에 대해 '그날에는 소돔이 그 고을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루카12,12)고 말씀하셨다.
복음을 직접 전해 듣고 회개할 시간을 충분히 가진 고을들이 그렇지 못한 소돔보다 훨씬 더 무거운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하느님의 나라가 이런 심판의 엄정섬을 전제하고 급격하게 온다면, 시급하게 선교가 이루어져야 할 것은 당연하다.
따라서 추수하는 행동은 그들을 하느님의 나라로 모으는 종말론적인 과업을 뜻한다.
여기서 '수확'에 해당하는 '테리스모스'(therismos; harvest)는 '수확' 그 자체 뿐만 아니라 수확의 대상인 거두어 들여야 할 곡식 및 수확의 과정을 의미할 때도 사용된다.
무르익은 곡식을 거두어 들이는 수확은 농경 사회의 사람들에게는 평범한 주제이다.
하지만 '수확'이란 예수님께 있어서 하느님의 나라의 여러 국면들을 설명하는 좋은 소재였다.
여기서는 하느님께서 이미 복음을 받아들일 소지를 미리 마련해 놓으셨기 때문에, 사람들은 수확을 기다리는 완전한 무르익은 곡식과도 같다는 의미를 전달해 준다.
따라서 여기서의 예수님의 명령은 사람들로 하여금 하느님의 나라로 빨리 들어오게 하라는 말씀이다.
루카 복음 10장 2절은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는 일이 시급한 데 비해서, 이 일을 몸소 행할 일꾼이 너무나 부족하다는 안타까움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내용이다.
또한 지금 파견을 받고 있는 일흔두 제자들의 책임이 중대하다는 사실도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부르심을 받은 일꾼들은 자신들의 책임을 다할 뿐만 아니라 동시에 주인에게 또 다른 일꾼들을 더 보내달라고 요청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로 번역된 '데에테테'(deethete; ask; pray)는 단순히 '요청하다'는 의미 이상의 '기도하다', '간구하다'는 뜻을 가진 동사 '테오마이'(deomai)의 부정 과거 명령법으로서, '너희들은 간구하라'는 매우 간절하면서도 강력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천국의 복음이 전해지기 시작할 당시의 그 복음을 알지 못한 채 죽어가는 영혼들을 보시는 주님의 안타까움이 묻어있는 말씀이다.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사실은 루카 복음 10장 3절과 유사한 내용을 담고 있는 마태오 복음 10장 16절에는 제자들을 상징하는 단어가 '양'('프로바타'; probata)이라고 되어 있는 반면에, 여기서는 '어린 양'('아렌'; aren; lamb)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루카 복음사가는 마태오 복음사가보다 이 단어를 통해 제자들의 '연약함'을 더 부각시키고 있다.
양은 목자의 보호가 없으면 이리에게 무방비 상태로 당할 수 밖에 없는 나약한 짐승이다.
또한 '양'이 착한 것의 상징이라면, '이리'는 악한 것의 상징이다.
그러니까 이 구절은 양과 같은 제자들이 이리 떼와 같은 세상의 악한 세력들과 영적 싸움을 수행해야 한다는 것을 나타낸다.
특히 '가운데로'에 해당하는 '엔 메소'(en meso; among)라는 전치사구는 이미 그 자체로 '가운데'라는 뜻이 있는 '메소'(meso)와 '~안에'라는 뜻의 전치사 '엔'(en; in)이 결합되어 '한가운데 속에'라는 뜻이다.
이것은 어린 양과 같이 연약하고 착한 예수님의 제자들이 선교하기 위해 험악하고 공격적인 세상 한가운데로 들어가지 않으면 안된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그러기에 복음 전파자들은 험하고 공격적인 세상 속에서 마땅히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온순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마태10,16).
2023년 10월 05일 목요일
[연중 제26주간 목요일] (사제 정진만 안젤로)
어제 복음에서 ‘따름’이라는 주제를 다루었다면, 오늘 복음의 중심 주제는 ‘파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에서 제자가 되는 방법을 가르쳐 주신 다음
제자들을 파견하시어 당신께서 걸어가실 길을 준비하게 하십니다.
제자들이 파견되어야 하는 이유는 ‘수확할 것이 많은데 일꾼이 적기’ 때문입니다(10,2-3 참조).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추수할 일꾼을 보내 달라고 하느님께 청할 것을 요청하시며,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제자들은 파견됩니다.
선교의 결과를 농작물의 추수 개념을 빌려 설명하는 방식은 다른 복음서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마태 9,37-38; 요한 4,36-38 참조).
예수님께서는 이미 앞서 9장 1-6절에서 열두 제자들을 보내시며 복음 선포의 사명을 부여하셨고,
추가로 일흔두 명의 제자들을 파견하십니다.
유일하게 루카 복음서에서 제자들의 파견에 대한 이야기를 두 번에 걸쳐 다루고 있습니다.
이로써 복음서 저자는 제자들의 파견과 복음 선포 임무가 열두 제자에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제자들도 예수님을 증언하고 복음을 선포하는 사명에 참여하여야 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일흔두 명의 제자 파견과 더불어 제자들이 파견되는 장소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점은
루카 복음서 저자가 여기에서 유다를 넘어 모든 민족들을 향한 선교를 준비하고 있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제자가 된 우리도 복음 선포의 사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요청합니다.
복음 선포는 예수님 시대의 과제일 뿐 아니라, 오늘날 교회에게 주어진 과제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우리를 파견하십니다. “가거라.”
(정진만 안젤로 신부)
[연중 제26주간 목요일]
말씀을 늘 되새기는 사람, 그는 제때에 열매를 맺으리라.
독서(느헤8,1-4ㄱ.5-6.7ㄴ-12)
9 느헤미야 총독과 율법 학자며 사제인 에즈라와 백성을 가르치던 레위인들이 온 백성에게 타일렀다. “오늘은 주 여러분의 하느님께 거룩한 날이니, 슬퍼하지도 울지도 마십시오.” 율법의 말씀을 들으면서 온 백성이 울었기 때문이다. 10 에즈라가 다시 그들에게 말하였다. “가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단 술을 마시십시오. 오늘은 우리 주님께 거룩한 날이니, 미처 마련하지 못한 이에게는 그의 몫을 보내 주십시오. *주님께서 베푸시는 기쁨이 바로 여러분의 힘이니, 서러워하지들 마십시오.”
= 율법의 실체는 기쁨이라는 것이다. 그 기쁨이 바로 우리의 힘인데 *공동번역성서로 보면~ 10 “야훼 앞에서 기뻐하면, 너희를 지켜 주시리라." *개신교 개역개정 성경으로 보면~ 10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곧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회개하며 기뻐할 줄 아는 사람은 이웃과 나누는 삶을 살아야 되며 그것을 하느님은 기뻐하시며, 그 기쁨이 우리의 힘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하느님을 나누는 것이다. 그분의 마음을, 사랑을 나누는 것이다. 곧 우리의 나눔이 세상 사람들의 나눔과는 달라야 한다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의 나눔(선)은 다른 이들에게 훌륭한 평가를 얻기 위해서 다. 이웃에게 악평을 듣는 것이 무섭고, 창피를 당하는 것이 두려워 선(善)을 행한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사람들의 평가는 무시(無視)해야 한다. 우리는 ‘하느님이 우리를 어떻게 평가하실까, 하느님이 지금 나의 행동을 기뻐하실까?’로 우리의 행위를 선택해야 한다. 우리는 이렇게 하느님의 영광만을 위해 존재하는 사람들이다. 우리의 모든 초점은 하느님께 모아지게 되어있다.
(이사43,3-7) 3 나는 주 너의 하느님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 너의 구원자이다. 내가 이집트를 너의 몸값으로 내놓고 에티오피아와 스바를 너 대신 내놓는다. 4 네가 나의 눈에 값지고 소중하며 내가 너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내가 너 대신 다른 사람들을 내놓고 네 생명 대신 민족들을 내놓는다.
=나를 힘들게 하는 세상(이집트) 사람들이 나를 훈련, 교육하시는 도구라는 것이다.
5 내가 너와 함께 있으니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해 뜨는 곳에서 너의 후손들을 데려오고 해 지는 곳에서 너를 모아 오리라. 6 내가 북녘에 이르리라. ‘내놓아라.’ 남녘에도 이르리라. ‘잡아 두지 마라. 나의 아들들을 먼 곳에서, 나의 딸들을 땅 끝에서 데려오너라. 나의 이름으로 불리는 이들, 7 나의 영광을 위하여 내가 창조한 이들, 내가 빚어 만든 이들을 모두 데려오너라.’”
*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우리가 선(착한)한 일을 하고 거짓말을 안 하고 도적질을 안 하는 이유는 나를 위해 당신 아드님 예수를 우리의 속죄 제물로 십자가에 달리게 하신 그 사랑(아가페)의 하느님이 내 안에 계시기에 이제 그 하느님과 화목해지는 관계 속에서 하느님을 근심하게 만들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하느님께 선택 받은, 구원 받은 그분의 자녀로 , 그 신분에 합당하게 어울리는 삶을 살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의 힘만으로는 되지 않기에 성령의 이끄심, 도우심을 받아야 한다. 그래서 하느님의 모든 일도 성령의 도우심으로 해야 하는 것이다.
성령을 청(請)하고 의탁해서 그분의 가르침, 지혜(知慧), 힘, 이끄심으로 해야 한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성령을 청하라고 하신 것이다.
복음(루카10,1-12)
1 주님께서는 다른 제자 일흔두 명을 지명하시어, 몸소 가시려는 모든 고을과 고장으로 당신에 앞서 둘씩 보내시며, 2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 밭은 세상(世上)이고 수확할 일꾼은 성령(聖靈)이시다. 곧 사람은 씨(말씀)를 뿌리는 일꾼일 뿐이다.
(마태13,39) 39 가라지를 뿌린 원수는 악마다. 그리고 수확 때는 세상 종말이고 일꾼들은 천사들이다.
= 그래야 하느님의 말씀을 세상의 평화가 아닌 하늘의 평화(平和)로 줄 수 있다.
(로마6,13) 13 그리고 여러분의 지체를 불의의 도구로 죄에 넘기지 마십시오. 오히려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살아난 사람으로서 자신을 하느님께 바치고, 자기 지체를 의로움의 도구로 하느님께 바치십시오.
*비겁함은 주님 대전에서 통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말씀(성령)이 육신을 다스리게 해야지 육욕(肉慾)에 질질 끌려 다니면 안 됩니다. 나는 지금 어떠한가, 내가 육신의 욕망을 절제합니까, 아니면 육욕에 의해 지배를 받습니까?
(로마8,13) 13 여러분이 육에 따라 살면 죽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힘으로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 것입니다.
= 나는 얼마나 성령의 이끄심을 저버렸는가~ 주님! 앞으로는 저의 충동(衝動)보다 당신의 뜻으로 살게 하소서, 당신과 일치(一致)하기를 원(願)합니다.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연중 제26주간 목요일]
말씀을 늘 되새기는 사람, 그는 제때에 열매를 맺으리라.
독서(느헤8,1-4ㄱ.5-6.7ㄴ-12)
9 느헤미야 총독과 율법 학자며 사제인 에즈라와 백성을 가르치던 레위인들이 온 백성에게 타일렀다. “오늘은 주 여러분의 하느님께 거룩한 날이니, 슬퍼하지도 울지도 마십시오.” 율법의 말씀을 들으면서 온 백성이 울었기 때문이다. 10 에즈라가 다시 그들에게 말하였다. “가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단 술을 마시십시오. 오늘은 우리 주님께 거룩한 날이니, 미처 마련하지 못한 이에게는 그의 몫을 보내 주십시오. *주님께서 베푸시는 기쁨이 바로 여러분의 힘이니, 서러워하지들 마십시오.”
= 율법의 실체는 기쁨이라는 것이다. 그 기쁨이 바로 우리의 힘인데 *공동번역성서로 보면~ 10 “야훼 앞에서 기뻐하면, 너희를 지켜 주시리라." *개신교 개역개정 성경으로 보면~ 10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곧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회개하며 기뻐할 줄 아는 사람은 이웃과 나누는 삶을 살아야 되며 그것을 하느님은 기뻐하시며, 그 기쁨이 우리의 힘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하느님을 나누는 것이다. 그분의 마음을, 사랑을 나누는 것이다. 곧 우리의 나눔이 세상 사람들의 나눔과는 달라야 한다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의 나눔(선)은 다른 이들에게 훌륭한 평가를 얻기 위해서 다. 이웃에게 악평을 듣는 것이 무섭고, 창피를 당하는 것이 두려워 선(善)을 행한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사람들의 평가는 무시(無視)해야 한다. 우리는 ‘하느님이 우리를 어떻게 평가하실까, 하느님이 지금 나의 행동을 기뻐하실까?’로 우리의 행위를 선택해야 한다. 우리는 이렇게 하느님의 영광만을 위해 존재하는 사람들이다. 우리의 모든 초점은 하느님께 모아지게 되어있다.
(이사43,3-7) 3 나는 주 너의 하느님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 너의 구원자이다. 내가 이집트를 너의 몸값으로 내놓고 에티오피아와 스바를 너 대신 내놓는다. 4 네가 나의 눈에 값지고 소중하며 내가 너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내가 너 대신 다른 사람들을 내놓고 네 생명 대신 민족들을 내놓는다.
=나를 힘들게 하는 세상(이집트) 사람들이 나를 훈련, 교육하시는 도구라는 것이다.
5 내가 너와 함께 있으니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해 뜨는 곳에서 너의 후손들을 데려오고 해 지는 곳에서 너를 모아 오리라. 6 내가 북녘에 이르리라. ‘내놓아라.’ 남녘에도 이르리라. ‘잡아 두지 마라. 나의 아들들을 먼 곳에서, 나의 딸들을 땅 끝에서 데려오너라. 나의 이름으로 불리는 이들, 7 나의 영광을 위하여 내가 창조한 이들, 내가 빚어 만든 이들을 모두 데려오너라.’”
*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우리가 선(착한)한 일을 하고 거짓말을 안 하고 도적질을 안 하는 이유는 나를 위해 당신 아드님 예수를 우리의 속죄 제물로 십자가에 달리게 하신 그 사랑(아가페)의 하느님이 내 안에 계시기에 이제 그 하느님과 화목해지는 관계 속에서 하느님을 근심하게 만들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하느님께 선택 받은, 구원 받은 그분의 자녀로 , 그 신분에 합당하게 어울리는 삶을 살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의 힘만으로는 되지 않기에 성령의 이끄심, 도우심을 받아야 한다. 그래서 하느님의 모든 일도 성령의 도우심으로 해야 하는 것이다.
성령을 청(請)하고 의탁해서 그분의 가르침, 지혜(知慧), 힘, 이끄심으로 해야 한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성령을 청하라고 하신 것이다.
복음(루카10,1-12)
1 주님께서는 다른 제자 일흔두 명을 지명하시어, 몸소 가시려는 모든 고을과 고장으로 당신에 앞서 둘씩 보내시며, 2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 밭은 세상(世上)이고 수확할 일꾼은 성령(聖靈)이시다. 곧 사람은 씨(말씀)를 뿌리는 일꾼일 뿐이다.
(마태13,39) 39 가라지를 뿌린 원수는 악마다. 그리고 수확 때는 세상 종말이고 일꾼들은 천사들이다.
= 그래야 하느님의 말씀을 세상의 평화가 아닌 하늘의 평화(平和)로 줄 수 있다.
(로마6,13) 13 그리고 여러분의 지체를 불의의 도구로 죄에 넘기지 마십시오. 오히려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살아난 사람으로서 자신을 하느님께 바치고, 자기 지체를 의로움의 도구로 하느님께 바치십시오.
*비겁함은 주님 대전에서 통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말씀(성령)이 육신을 다스리게 해야지 육욕(肉慾)에 질질 끌려 다니면 안 됩니다. 나는 지금 어떠한가, 내가 육신의 욕망을 절제합니까, 아니면 육욕에 의해 지배를 받습니까?
(로마8,13) 13 여러분이 육에 따라 살면 죽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힘으로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 것입니다.
= 나는 얼마나 성령의 이끄심을 저버렸는가~ 주님! 앞으로는 저의 충동(衝動)보다 당신의 뜻으로 살게 하소서, 당신과 일치(一致)하기를 원(願)합니다.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 살아있는 복음이 되어 걸어가는 복음선포자 ♣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일흔 두 제자를 뽑아 당신이 가실 여러 마을과 고장으로 파견하십니다. 그분께서는 파견하시면서 제자들이 가져야 할 마음가짐과 사명을 알려주십니다. 오늘 복음말씀은 특히 아씨시 성 프란치스코의 초기 삶에 있어 복음적 생활양식을 따르는 삶의 방향을 제시해준 중요한 말씀이기도 하지요.
특히 성 프란치스코는 이 말씀에 영감을 받아 거룩한 복음을 실행하며 모든 이에게 회개와 평화를 선포하라는 사명을 받습니다. 그는 그 사명을 실행함에 있어서 “돈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말라.”(10,4)는 말씀을 깊이 인식하게 됩니다. 따라서 그는 예수님처럼 가난한 순례자의 모습으로 세상을 순례하며 예수님의 말씀과 삶을 그대로 실행하고자 온힘을 기울였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일흔 두 제자를 파견하는 것은 의미심장한 변화입니다. 이제 예수님의 사명이 열두 사도라는 작은 제자공동체에 한정되지 않고, 그분을 따르는 모든 이들에게 맡겨진 것입니다. 사실 제자들에게 맡겨진 자비와 치유, 해방과 평화를 선포하는 일은 미룰 수 없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마음과 자세로 제자들에게 주어진 사명을 실행해야 할까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돈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말고,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마라.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먼저 ‘이 집에 평화를 빕니다' 하고 말하여라.”(10,4-5)
그렇습니다! 복음을 선포하는 일은 뒤로 미루거나 다른 일을 한 다음에 시간나면 할 수도 있는 그런 일이 결코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매순간 내가 살아가는 삶의 자리에서 ‘지금’ 복음을 선포하라 하십니다. 그러니 안전을 보장해줄 여장을 꾸리고, 일일이 인사치레를 다 하고, 악의로 복음을 거부하는 이들을 설득하느라 시간을 허비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 시급한 사명 수행을 위해 현세의 그 어떤 것에도 의지하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나에게 주어진 그 사명만을 바라고 그것에만 집중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을 소유하지 않고서 하느님의 기쁜 소식을 선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자신의 영광과 안락, 개인의 이익과 세상의 가치들에 마음을 빼앗긴다면 결코 하느님의 얼굴이 드러나지 않는 까닭이지요.
아울러 우리는 모든 이에게 하느님의 평화를 선포해야 합니다. '평화를 빕니다!’라는 인사는 평화이신 하느님께서 함께하길 기원하는 축복입니다. 그것은 하느님 나라의 선포가 평화를 가져다주는 자비와 정의를 실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 사람 안에, 이 세상에 하느님의 자비와 정의가 실현되기를 바라는 축복을 전해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때때로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받아들이지 않는 이들을 만나기도 하지요. 그럴 때에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그들과 씨름하느라 헛되이 시간을 보낼 필요가 없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통해서 전해지는 생명과 해방의 선물을 거절함으로써 하느님과 예수님을 배척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스스로를 심판한 셈입니다.
우리 모두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가난한 순례자로서 ‘지금 여기서’ 하느님의 자비와 생명, 자유와 평화를 선포하는 ‘걸어가는 복음’으로 살았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