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마태오 복음사가 축일] 나는 죄인을 부르러 왔다. (마태9,9-13)

2023. 9. 21. 오전 6:43:06

글자

 

20230921일 목요일


[성 마태오 복음사가 축일] 나는  죄인을 부르러 왔다. (마태9,9-13)

 


1독서<그리스도께서 어떤 이들은 사도로 어떤 이들은 복음 선포자로 세워 주셨다.>(에페4,1-7.11-13)

1 주님 안에서 수인(囚人)이 된 내가 여러분에게 권고합니다. 여러분이 받은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가십시오.

2 겸손과 온유를 다하고, 인내심을 가지고 사랑으로 서로 참아 주며, 3 성령께서 평화의 끈으로 이루어 주신 일치를 보존하도록 애쓰십시오.

4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실 때에 하나의 희망을 주신 것처럼, 그리스도의 몸도 하나이고 성령도 한 분이십니다.

5 주님도 한 분이시고 믿음도 하나이며 세례도 하나이고,

6 만물의 아버지이신 하느님도 한 분이십니다. 그분은 만물 위에, 만물을 통하여, 만물 안에 계십니다.

7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나누어 주시는 은혜의 양에 따라, 우리는 저마다 은총을 받았습니다.

11 그분께서 어떤 이들은 사도로, 어떤 이들은 예언자로, 어떤 이들은 복음 선포자로, 어떤 이들은 목자나 교사로 세워 주셨습니다.

12 성도들이 직무를 수행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성장시키는 일을 하도록, 그들을 준비시키시려는 것이었습니다.

13 그리하여 우리가 모두 하느님의 아드님에 대한 믿음과 지식에서 일치를 이루고 성숙한 사람이 되며 그리스도의 충만한 경지에 다다르게 됩니다.

 

화답송 시편19(18),2-3.4-5ㄱㄴ(5) 그 소리 온 누리에 퍼져 나가네.

하늘은 하느님의 영광을 말하고, 창공은 그분의 솜씨를 알리네. 낮은 낮에게 말을 건네고, 밤은 밤에게 앎을 전하네.

말도 없고 이야기도 없으며, 목소리조차 들리지 않지만, 그 소리 온 누리에 퍼져 나가고, 그 말은 땅끝까지 번져 나가네.

 

복음<나를 따라라.” 그러자 마태오는 일어나 예수님을 따랐다.>(마태9,9-13)

9 예수님께서 길을 가시다가 마태오라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라.” 그러자 마태오는 일어나 그분을 따랐다.

10 예수님께서 집에서 식탁에 앉게 되셨는데, 마침 많은 세리와 죄인도 와서 예수님과 그분의 제자들과 자리를 함께하였다.

11 그것을 본 바리사이들이 그분의 제자들에게 말하였다. “당신네 스승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이오?”

12 예수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튼튼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13 너희는 가서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배워라. 사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성 마태오 사도 복음사가 축일 제1독서 (에페4,1-7.11-13)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나누어 주시는 은혜의 양에 따라 우리는 저마다 은총을 받았습니다."  (7)

 

사도 바오로는 에페소서 4장 1-6절에서 교회 일치를 위한 권면과 교회 일치의 근거 및 당위성에 대해 제시함으로써 교회 공동체의 하나됨을 강조하였다.

하지만 전환의 접속사 '데'(de; but)가 사용된 에페소서 4장 7절 이후로는, 그리스도께서 주신 은총을 받은 교회 구성원들의 독특성을 말하며, 나아가 그들의 다양한 봉사의 직분으로써 하나된 교회의 일치와 성장을 위해 힘써야 한다는 사실을 말한다.

 

사도 바오로는 에페소서 4장 7절에서 그리스도께서 교회 구성원 각 사람에게 분량에 따라 은총을 주셨음을 밝힌다.

여기서 '은총'으로 번역된 '헤 카리스'(he charis; grace)는 성경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된 '죄의 용서'의 의미가 아니라, 성도에게 주어진 '봉사의 직분'을 가리킨다. 이 봉사의 직분은 선물로 주어진 것이므로 '은사'(charisma)라고도 할 수 있다.

 

하느님께서는 교회를 하나의 몸으로 부르시는데, 각 지체의 개성을 무시한 채 획일적으로 부르신 것이 아니다. 하느님께서는 각 지체에게 다양한 은사를 주셔서 각 은사를 통해(1코린7,7 ; 고유한 은사)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한 몸이 된 교회를 위해 효과적으로 봉사하게 하셨다(로마1,11).

 

에페소서 4장 7절을 새 성경은 능동태로 번역했지만, 원문은 수동태이다. 직역하면 '그러나 이 은총이 우리 각 사람에게 주어졌다'(But to each one of us grace was given)이다.

여기서 '은총'('헤 카리스'; he charis; grace)이 주어로 사용된 것은 은총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고, '주어졌다'('에도테'; edothe)라는 수동태로 쓰여진 것은 은사 분배자이신 그리스도의 시혜성(施惠性)을 드러낸다.

또한 이 시제는 부정 과거 시제인데, 이것은 은사의 분배가 이미 이루어졌으며, 이제 필요한 것은 인간 편에서 이것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함을 말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나누어 주시는 은혜의('테스 도레아스'; tes doreas; of the gift) 양에 따라'

이것은 성도 개개인에게 주어진 은총이 그리스도께서 주시고자 하시는 분량에 따라 주어졌음을 말한다. 여기서 '양에 따라'에 해당하는 '카타 토 메트론'(kata to metron)은  '알맞게 측정된 것에 따라서'(according to the measure)라는 의미이다.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몸인 교회 구성원들인 성도 각자에게 가장 알맞은 은사가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측정하시고, 그에 적합한 봉사의 직분을 주신다는 것이다 (Christ apportioned it).

따라서 우리는 자신에게 주이진 은사의 중요성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다른 사람의 은사를 무시하거나 자신의 은사만을 높여서는 안된다.

 

반대로 자신에게 주어진 은사가 다른 사람이 잘 알아주지 않는 일과 연관되어 있다고 불평하거나 평가 절하해서도 안된다. 그 누구보다도 가장 잘 아시는 하느님께서(로마8,29) 나에게 가장 알맞은 은사를 주셨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할 일은 그 은사를 자랑하거나 불만삼는 것이 아니라 그 은사로써 오직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 교회와 지체를 위해 봉사하면 되는 것이다(에페4,12).

 

 "그분께서는 어떤 이들은 사도로, 어떤 이들은 예언자로, 어떤 이들은  복음 선포자로, 어떤 이들은 목자와 교사로 세우셨습니다."  (11)

에페소서 4장 7-10절에서 사도 바오로는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구성원인 성도들에게 저마다 분량대로 은총을 베푸셨음을 말하였다.

이에 이어지는 에페소서 4장 11절과 12절에서 사도 바오로는 은혜의 선물의 분량을 따라 각 지체에게 부여된 각 직분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세우는 공통의 목적을 갖는다 사실을 말한다.

 

그리고 에페소서 4장 11절에는 초대 교회 당시 있었던 대표적인 직분들을 나열한다. 먼저 '사도'에 해당하는 '아포스톨루스'(apostolus)는 원형 '아포스톨로스'(apostolos)의 복수형이다. '아포스톨로스'는 '사명을 주어 자신의 대리자로 파견하다'라는 의미를 지닌 동사 '아포스텔로'(apostello)에서 유래한 단어로서 '파견된 자'(使者)라는 문자적 의미를 지닌다.

 

예수님께서는 12제자를 부르시고 그들을 사도로 칭하였으며(루카6,13) 복음을 전하기 위해 보내셨다(마태10,1-8). 그런데 예수님의 사도가 되려면 세 가지 조건이 채워져야 한다.

첫째, 그리스도께로부터 직접 사명을 받은 사람이어야 한다(마태10,5; 갈라1,1).

둘째,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목격하고 이를 증거할 사명을 맡은 사람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목격증인) 이어야 한다(사도1,21.22).

셋째, 성령님의 특별한 영감을 받은 자이어야 한다(요한14,26).

 

이러한 조건이 모두 충족되는 사람은 예수님께서 공생활 동안에 먼저 부르신 열 두 제자 밖에 없다. 따라서 가장 좋은 의미로서의 사도는 이들로 제한되고 국한된다.

그런데 가리옷 사람 유다가 예수님을 배반하고 목매어 자살한 뒤에, 열한 사도는 그를 대신하여 마티아를 제비뽑아 빈 자리를 보충했다(사도1,15.16). 그리고 그 후에는 바오로와 바르나바가 사도의 대열에 들어섰고(사도14,4; 갈라1,15-17) 주님의 동생이라고 여겨지는 야고보도 사도로 불리워졌다(갈라1,19).

 

다음으로 '예언자', 즉 '프로페타스'(prophetas)의 원형 '프로페테스'(prophetes)는 '~앞에'라는 의미의 전치사 '프로'(pro)와 '말하다'라는 의미의 동사 '페미'(phemi)의 합성어에서 유래한 것으로, 문자적으로는 '미리 말하는 자'라는 뜻이다.

구약에서 예언자 하느님께서 주신 영감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대신 전하며 장래의 일을 미리 말하는 역할을 하였다.

 

신약에서는 이 용어가 개별적으로 사용되기 보다는 '사도'라는 용어와 자주 함께 언급된 것을 보면(에페2,20; 3,5; 묵시18,20) 예언자의 역할은 사도의 그것과 유사했으며, 또한 두 직분은 초대 교회를 세우는 양대 기둥의 역할을 했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사도의 메시지가 일반적이고 교리적이었다면, 예언자의 메시지는 실질적이었다는 점에서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다.

 

구약의 예언자가 이스라엘 백성의 신앙을 인도하는 일에서 주도권을 가진 자로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면,  신약의 예언자는 사도들의 사목을 도와 교회내에서 '덕을 세우며 격려하고 위로하는' 역할을 하였다(1코린14,3).

신약 시대의 유명한 예언자로는 안티오키아 교회의 유다와 실라스(사도15,32) 등이 있었고, 이러한 예언자의 역할은 A.D. 2세기 경까지 이어졌다.

 

또한 '복음 선포자'는 선교사처럼 복음이 아직 전해지지 않은 곳에 가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복음을 전하는 자들을 가리킨다. 여기에 해당하는 '유앙겔리스타스'(euanggellistas)의 원형 '유앙겔리스테스'(euanggellites)는 '복음을 전하다'라는 의미를 지닌 동사 '유앙겔리조'(euanggellizo)에서 유래한 단어이다.

이것은 신약에서 단 세 번 밖에 사용되지 않았는데, 사도행전 21장 8절에는 필립포스에게, 그리고 티모테오 후서 4장 5절에는 티모테오에게 사용되었다.

 

한편, 사도(apostles), 예언자(prophetes), 복음 선포자(euanggelistes)는 원문에서 모두 복수형으로 사용되었다.

계속해서 교회 내의 다양한 봉사의 직무들이 소개되고 있는데, '목자'로 번역된 '포이메나스'(poimenas; pastors)의 원형 '포이멘'(poimen)은  본래 '보호하다'라는 의미를 지닌 어근에서 유래한 단어로서 '양치는 목자', '가축지기'를 말한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가리켜 '나는 착한 목자이다'라고 하셨을 때에도 이 단어가 쓰였다(요한10,11). 같은 어근에서 파생된 '포임네'(poimne)가 '양떼'를 의미한다는 것(루카2,8; 1코린9,7)이 '포이멘'이 양과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는 자임을 잘 나타낸다.

 

그 다음 '목자'를 바로 이어서 등장하는 '교사'를 가리키는 '디다스칼루스'(didaskalus; teachers)앞에 관사 '투스'(tus)가 없다는 점에서, '목자'와 '교사'를 동일한 직분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이 견해를 따르면 '목자'는 곧 '가르치는 자'(교사)라는 것이다. 코린토 전서 12장 28절에서 사도와 예언자 다음에 교사만 언급하는 점도 이 견해를 지지한다고 볼 수 있다.

한편 '목자'와 '교사'를 다른 직분으로 보는 경우에는 '목자'를 감독과 원로로 나뉘어서 교회를 다스리는 직분으로 보고, '교사'를 성경을 해석하고 그 내용을 가르쳐 영적으로 인도하는 직분으로 본다.

 


 

 

  

[성 마태오 사도 복음사가 축일] 오늘의 묵상 (강수원 베드로 신부)

 

세리 마태오는 다른 공관 복음서들에서 ‘레위’로 소개됩니다(마르 2,14; 루카 5,27 참조).

주님께서 마치 시몬에게 ‘베드로’라는 이름을 주셨듯이,

레위에게 마태오라는 새 이름을 주신 듯합니다.

마태오라는 이름은 히브리 말 이름 ‘마티트야’에서 온 것으로 ‘주님의 선물’이라는 뜻입니다.

동족에게 세금을 걷어 로마에 바치는 세리였던 그가 제자로 부르심을 받은 일은 정녕 주님의 선물이었습니다.

“‘나를 따라라.’ 그러자 마태오는 일어나 그분을 따랐다.”

소명과 응답이라는 이 단순한 장면은 그 자체로 언제나 감동을 줍니다.

예수님께서 사시던 카파르나움(마태 9,1; 마르 2,1 참조)의 세리였던 마태오는

예수님에 관하여 이미 많은 소문을 들었을 것입니다.

그가 평소에 세리라는 수입이 보장된 직업과 매국노라는 비난 사이에서 깊이 고뇌하며

떳떳하고 기쁜 삶을 살고 싶은 열망을 품지 않았다면,

어찌 예수님의 말씀 한마디에 모든 것을 버리고 따라나설 수 있었겠습니까?

 

하느님의 예언자라고 들어 알고 있던 분께서 죄인인 자신에게 “나를 따라라.” 하셨을 때,

지독히도 원망스러운 그 모든 과거를 온전히 용서받고 새 삶으로 초대받은 그 순간에,

마태오가 느꼈을 전율과 환희가 생생히 느껴집니다.

죄와 부덕함을 인정하며 하느님의 자비에 자신을 온전히 열었을 때,

탐욕과 억압의 장소인 세관이, 그리고 죄인들과 세리들의 식탁이,

하느님의 은총이 베풀어지는 구원의 자리가 되었습니다.

주님과 죄인들을 탓하며 구원의 기쁨에서 스스로 멀어졌던 바리사이들이 아니라,

‘부르심받은 사람답게 겸손과 온유 그리고 인내와 사랑을 실천하면서’(제1독서 참조)

우리 모두 주님의 사랑받는 제자로 살아갑시다.

 

(강수원 베드로 신부)

 

 

 

 

9월 21일 [성 마태오 사도 복음사가 축일]

 

그리스도의 몸도 하나고 성령도 한 분이십니다.

 

독서 (에페 4,1-7)

1ㄱ 주님 안에서 *囚人이 된 내가 여러분에게 권고합니다.

앞 3,1 그리스도 *예수님 때문에 이민족 여러분을 위하여 수인이 된 나 바오로가 말합니다.

= 사도 바오로는 사람들의 시기로 그들의 고발에 의해 감옥에 갇혔던 것이다. 그런데 그 사람들에 대한 원망이 아닌, 주님 안에서 예수님 대문에 갇혔다고 말하고 있다. 그 모든 것이 하느님의 뜻(일)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요한15,20-21) 20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다.’고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을 기억하여라. 사람들이 나를 박해하였으면 너희도 박해할 것이고, 내 말을 지켰으면 너희 말도 지킬 것이다. 21 그러나 그들은 내 이름 때문에 너희에게 그 모든 일을 저지를 것이다. 그들이 나를 보내신 분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필리1,29) 29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위하는 특권을, 곧 그리스도를 믿을 뿐만 아니라 그분을 위하여 고난까지 겪는 특권을 받았습니다.

= 바오로사도 자신을 비롯한 모든 죄인들을 용서로 구원하시는 그 하느님의 사랑을 알았기에 감옥에서도 믿음과 감사로 충만해 있었던 것이다.

부르심 받은 자신이 감옥생활을 한다는 것이 혹여 하느님의 저주로 오해하여 다른 이들에게 걸림돌이 될까 염려되어 쓴 편지이다.

 

(지혜3,2-4) 2 어리석은 자들의 눈에는 의인들이 죽은 것처럼 보이고 그들의 말로가 고난으로 생각되며 3 우리에게서 떠나는 것(죽음)이 파멸로 여겨지지만 그들은 평화를 누리고 있다. 4 사람들이 보기에 의인들이 벌을 받는 것 같지만 그들은 불사의 희망으로 가득 차 있다.

 

(코헬7,15) 15 내 허무한 생애 중에 나는 이 모든 것을 보았다. 의롭지만 죽어 가는 의인이 있고 사악하지만 오래 사는 악인이 있다.

 

1ㄴ 여러분이 받은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가십시오.

= 우리 죄를 예수님 당신의 몸으로 속량하시어~ 하늘의 영원한 평화와 생명을 주시기 위해 부르신 것이다.

 

(골로3,15) 15 그리스도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을 다스리게 하십시오. 여러분은 또한 한 몸 안에서 이 평화를 누리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감사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히브9,15) 15 그리스도께서는 새 계약의 중개자이십니다. 첫째 계약 아래에서 저지른 범죄로부터 사람들을 속량하시려고 그분께서 돌아가시어, 부르심을 받은 이들이 약속된 영원한 상속 재산을 받게 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에서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히신 것이다. 부르심, 그것이 우리 죄인들의 복인 것이다.

(마태9,13) 13 "너희는 가서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배워라. 사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2 겸손과 온유를 다하고, 인내심을 가지고 사랑으로 서로 참아 주며, 3 성령께서 평화의 끈으로 이루어 주신 *일치를 보존하도록 애쓰십시오.

= 우리 인간들의 겸손, 사랑으로 일치를? 그러나 그것이 안 되고 있음을 우리의 신앙의 역사가 증명하지 않는가?~

그러니 먼저 겸손, 온유, 사랑이신 예수님을 믿고(입고) 성령의 이끄심으로 일치를 이루도록 애쓰는 것이다(로마13,14 골로3,12-14참조) 그러면 하느님의 뜻인 구원의 진리이신 예수님을 깨닫게 되어 그 예수님 안에서 예수님으로 일치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에페4,14-15) 14 그러면 우리는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닐 것입니다. 어린아이들은 사람들의 속임수나 간교한 계략에서 나온 가르침(거짓)의 온갖 풍랑에 흔들리고 이리저리 밀려다닙니다. 15 우리는 *사랑으로 진리를 말하고 모든 면에서 자라나 그분에게까지 이르러야 합니다. 그분은 머리이신 그리스도이십니다.

= 십자가의 대속, 그 사랑을 진리로 말하는 것, 그것이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는 길이다.

 

4ㄱ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실 때에 *하나의 희망을 주신 것처럼,

= 하나의 희망~ 구원, 곧 예수님과 하나 되는 그 한가지인 것이다.

 

(로마8,24) 24 사실 우리는 희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보이는 것을 희망하는 것은 희망이 아닙니다. 보이는 것을 누가 희망합니까?

= 예수님께서는 죄인들의 구원, 그 한 가지 일만 하셨다.

 

(요한7,21) 2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한 가지 일을 하였을 뿐인데 너희는 모두 놀라워한다.

 

(1베드1,13) 13 그러므로 마음을 가다듬고 정신을 차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 받을 은총에 여러분의 *모든 희망을 거십시오.

 

4ㄴ 그리스도의 몸도 하나이고 성령도 한 분이십니다. 5 주님도 한 분이시고 믿음도 하나이며 세례도 하나이고,

= 새 계약의 그리스도의 몸, 성령의 이끄심, 우리의 믿음과 세례, 그 모두가 죄인들의 구원을 위한 것이다.

하늘의 복도 받고 세상의 복도 받는 그 두 가지, 양다리 신앙이 아닌 것이다.

 

6 만물의 아버지이신 하느님도 한 분이십니다. 그분은 만물 위에, 만물을 통하여, 만물 안에 계십니다.

= 우주 만물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말씀으로 창조하셨다. 그 만물 속에 죄인들의 구원을 위한 하느님의 변하지 않는 사랑이 들어 있는 것이다. 그러니 그 어디든 하느님께서 함께 하시는 것이다.

 

(로마1,20) 20 세상이 창조된 때부터, 하느님의 보이지 않는 본성 곧 그분의 영원한 힘과 신성을 조물을 통하여 알아보고 깨달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변명할 수가 없습니다.

= 깨닫고 나면, 그 어디나 다 하늘나라~~~

 

7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나누어 주시는 은혜의 양에 따라, 우리는 저마다 은총을 받았습니다.

= 각 사람의 문화와 환경, 성향에 따라 알맞게 주셨다는 것, 그래서 누구나 그리스도와 하나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에페5,29-30) 29 아무도 자기 몸을 미워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하여 하시는 것처럼 오히려 자기 몸을 가꾸고 보살핍니다. 30 우리는 그분(그리스도) 몸의 지체들입니다. 

아멘.

 


 

 

성 마태오 사도 복음사가 축일 복음(마태9,9-13)

 

"건강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다." (12)

 

이 구절은 세리, 죄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시는 예수님의 행위를 비난하는 율법학자와 바리사이들에게 예수님께서 일침을 가하시는 대목이다.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를 통해 메시야이신 당신의 사명이 바로 스스로 죄인임을 인정하는 이들을 불러 회개시키러 온 것임을 밝히고 있다.

 

여기서 '건강한'에 해당하는 '휘기아이논테스'(hygiainontes; healthy; whole)는 '건전하다', '바르다', '참되다'는 뜻을 지닌 '휘기아이노'(hygiaino)의 현재 분사로서, 육체적으로 건강하다는 뉘앙스를 지니고 있지만, 그보다는 '도덕적, 윤리적으로 바르다'는 뉘앙스를 더 강하게 띄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여기서 말씀하시는 스스로 '건강한 이들'이란, 종교적, 윤리적으로 올바른 이들이 아니다.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스스로 올바르다고 자부하면서, 인간의 영적 악함을 깨끗하게 하러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불필요하다고 하며 거부하는 이들을 말한다.

 

이들은 바로 당시 직접적으로 예수님을 비방하던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 그리고 유대 종교 지도자들을 모두 지칭하며, 그 외에도 예수님을 필요하지 않다고 거부하는 영적으로 교만한 자들 모두를 포함한다.

그리고 '병든'에 해당하는 '카코스'(kakos; sick)도 육체적으로 병들고 허약한 것 뿐만 아니라 도덕적으로 악한 것을 의미하는 단어이기에, '병든 이들'이라는 표현에도 '죄인들'이라는 뜻이 있다.

 

이들은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정해 놓은 종교적 기준에 도달하지 못하는 사람들로서, 하느님 대전에 진실로 구원자를 필요로 하여 자신의 죄에 대해 가슴을 치는 모든 이들을 가리킨다.

'의사'에 해당하는 '이아트루'(iatrou; a physician; a doctor)이신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들을 위해 오신 분이며, 마태오 복음에서 잔치에 초대되어 온 모든 죄인들도 그 중에 포함될 것이다.

 

자신을 죄인으로 인정하며, 예수님이 구원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죄인들은 예수님께 선택 받을 수 있지만,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처럼 계속해서 자신들의 의로움을 자랑하며 율법주의와 형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들은 구원자이신 예수님의 선택에서 영원히 제외될 것이다.

'회개시키러'로 번역된 '메타노이아'(metanoia)는 '마음을 고치다'라는 동사 '메타노에오'(metanoeo)에서 유래한 명사로서 '마음을 바꿈'이라는 뜻이다.

 

루카 복음 5장 31절에서 예수님께서 막연히 죄인들을 선택하신 것이 아님을, 루카 복음 5장 32절에서 죄인들을 선택한 목적을 분명하게 언급하시면서 밝히신다 .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무가치함과 죄를 인식하고 참회하는 죄인들의 마음을 고쳐서 새롭게 만들기 위해서,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부정하게 여겨 접촉하는 것을 꺼리는 죄인들과 함께 친교를 나눔을 밝히신 것이다.

 




 

 

20230921일 목요일

[성 마태오 복음사가 축일] 오늘의 묵상 (정천 사도요한 신부)

 

우리는 모두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부르심이 응답에 앞선다는 사실을 기억하여야 합니다.

이는 관계의 주도권이 우리가 아닌 하느님께 있다는 뜻입니다.

그분께서 불러 주시지 않는데, 우리가 어떻게 응답하고 믿을 수 있겠습니까?

따라서 부르심은 그 자체로 은총의 선물입니다.

이 선물은 특별히 죄인들을 위하여 마련된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그 시대에 죄인으로 취급받던 세리 마태오를 제자로 부르시고,

그런 부류의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시며 식사하십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불편하게 여기는 바리사이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튼튼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이는 자칫 예수님께서 의인들을 부르시지 않겠다는 말씀으로 오해될 수 있으나,

사람은 누구나 죄인이기에 부르심에서 제외되는 이는 사실 아무도 없습니다.

다만 자신이 건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의사를 찾지 않듯이,

자기 자신을 의롭게 여기는 사람은 예수님을 찾지 않고 그분의 부르심에도 응답하지 않습니다.

오늘 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권고합니다.

여러분이 받은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가십시오. 겸손과 온유를 다하고, 인내심을 가지고 사랑으로 서로 참아 주며, 성령께서 평화의 끈으로 이루어 주신 일치를 보존하도록 애쓰십시오.”

죄인인 우리가 은총의 부르심을 받아 하느님의 거룩한 자녀가 되었다면,

이제는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당신 삶으로 그 본보기가 되어 주셨습니다. 제자는 스승을 닮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스승께서 온유하시고 겸손하신 분이셨듯이(11,29 참조), 우리도 겸손과 온유를 다하여야 하고,

스승께서 당신 사랑으로 끝까지 제자들을 인내하시고 참아 주셨듯이(17,17 참조),

우리도 형제들의 부족함을 인내하고 참아 주어야 하며,

스승께서 아버지와 하나이셨듯이, 우리도 성령 안에서 서로 일치하여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요한 17,11.20-24 참조).

마태오 사도는 비록 세리였지만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사도가 되어 죽기까지 스승을 닮고자 노력하였던 참된 제자였습니다.

오늘 축일을 기리는 성 마태오 사도를 본받아 우리도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가도록 노력합시다.

 

(정천 사도 요한 신부)

 

 



 

 

 

9월 21일 [성 마태오 사도 복음사가 축일]

 

구원 받으셔야 할 하느님?”

 

독서(에페4,1-7.11-13)

주님 안에서 *수인이 된 내가 여러분에게 권고합니다여러분이 받은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가십시오.

= “주님 안에서 수인(囚人)이 되어서” - 세상(世上)에서는 자유(自由)하다는 것이다.

합당하게 - ’악시오스‘는 두가지 의미가 들어있다. ①먼저 조화(調和)다, 곧 천칭(天秤)저울, 양쪽에 똑같은 물체가 올려져 수평(水平)조화를 이루듯, ②또한 말씀이 들어가면, 말씀에 어울리는 출력(出力)이 나와야 된다는 뜻이다.

우리(교회- 에끌레시아)는 ‘에크’-밖으로, “레시아‘- 부르심. 밖으로 불러내심을 받은 이들이다. 어둠에서 빛으로, 죽음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죄에서 하늘의 거룩으로, 땅(뱀, 세상)나라에서 하느님나라로, 곧 세상에 살면서 하늘을 사는 이들이라는 말이다.

세상의 힘의 논리가 아닌 하늘의 진리로 사는 사람들인 것이다. 그래서 세상(인본주의) 사람들에게 별난, 이상한 소리하는 사람이라는 말을 들을 수밖에 없고,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다. (요한1,18)

세상 힘의 원리인 과학, 문명, 경제, 논리가 죽음의 문화요, 돈, 명예, 영광이 진리가 아니라고, 허무요 헛되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하늘의 대속(代贖)으로 받는 상속(相續) 재산인 하늘의 의(義), 영광(榮光), 생명(生命)만이 진리(眞理)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받는 의(義), 거룩, 생명, 그 하느님의 상속 재산이 세상을 사는 동안 우리에게 희망(希望), 힘인 것이다. 하늘의 희망, 부르심에 합당한 ‘악시오스’ 조화로운, 어울리는 삶이다.

 

겸손과 온유를 다하고인내심을 가지고 사랑으로 서로 참아 주며,

= 겸손(謙遜), 온유(溫柔)이신 그리스도로, 그분 안에서다.(골로3,1-17참조)

 

(골로3,12.14) 12 하느님께 선택된 사람거룩한 사람사랑받는 사람답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동정과 호의와 겸손과 온유와 *인내를 입으십시오. 14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입으십시오사랑은 완전하게 묶어 주는 끈입니다.

= 한없이 부족한 우리이기 때문이다.

 

성령께서 평화의 끈으로 이루어 주신 일치를 보존하도록 애쓰십시오.

= 성령(聖靈)께서 십자가(十字架)의 대속(代贖), 그리스도의 죽음이 구원(救援)의 진리(眞理)임을 증언(證言)하심으로(요한15,26) 죄인(罪人)인 우리가 무죄(無罪)로, 의(義), 거룩으로,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었음을 알려주신다.

 

(로마8,1-5) 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이들은 단죄를 받을 일이 없습니다. 2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생명을 주시는 성령의 법이 그대를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시켜 주었기 때문입니다. 3 율법이 (육으로 말미암아나약해져 이룰 수 없던 것을 *하느님께서 이루셨습니다곧 당신의 친아드님을 죄 많은 육의 모습을 지닌 *속죄 제물로 보내시어 그 육 안에서 죄를 *처단하셨습니다. 4 이는 육이 아니라 성령에 따라 살아가는 우리 안에서율법이 요구하는 바가 채워지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5 무릇 육을 따르는 자들은 육(세상)에 속한 것을 생각하고성령을 따르는 이들은 성령(하늘)에 속한 것을 생각합니다.

= 성령으로 보존(保存), 지킬 수 있도록 애(哎)써야 한다. 우리의 힘인 희망(希望)을....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실 때에 *하나의 희망을 주신 것처럼그리스도의 몸도 *하나이고 성령도 한 분이십니다. 5 주님도 한 분이시고 믿음도 *하나이며 세례도 하나이고,

= ‘하나, 하나, 하나,’ 하늘의 생명, 희망, 그 하나에 대한 한분, 구원자라는 말씀이다. 곧 ‘땅의 것을 위한 하느님이 아니시다’라는 말씀이다. 양다리 신앙이 아니라는 말씀이다.(1열왕18,21 1코린15,19참조)

 

만물의 아버지이신 하느님도 한 분이십니다그분은 만물 위에만물을 통하여만물 안에 계십니다.

= 온 우주(宇宙) 만물(萬物)이 하느님의 하나의 뜻을 담고 있음이다.

 

(로마1,20) 20 세상이 창조된 때부터하느님의 보이지 않는 본성 곧 그분의 영원한 힘과 신성을 조물을 통하여 알아보고 깨달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따라서 그들은 변명할 수가 없습니다.

= 구름은 하늘의 영광을, 물은 생명수로, 말씀으로, 바람은 모든 것을 날려줄 성령을, 나무는 그리스도의 대속인 십자나무로, 하느님의 맹세, 약속인 구원의 계약을, 곧 우주 모든 만물이 삼위 하느님의 구원의 열정, 열심, 사랑, 말씀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나누어 주시는 은혜의 양에 따라우리는 저마다 *은총을 받았습니다.

= 은혜(恩惠), 은총(恩寵)은 같은 언어 ‘케리스’, 곧 그리스도를 통해 거저주시는 하느님의 선물(膳物)인 것이다. (개인적으로 은총을 은혜로 바꾸어 읽을 때, 하느님의 마음, 사랑을 더 느껴, 좋다)

그런데 ‘은혜의 양에 따라’? - 곧 각자의 환경에 따라 알맞게, 충분히, 주신다는 말씀이다.

 

11 그분께서 어떤 이들은 사도로어떤 이들은 예언자로어떤 이들은 복음 선포자로어떤 이들은 목자나 교사로 세워 주셨습니다. 12 성도들이 직무를 수행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성장시키는 일을 하도록그들을 준비시키시려는 것이었습니다.

= 우리를 그리스도의 몸, 지체(肢體)로다. 하느님 구원(救援)의 뜻이다.(에페1,10)

 

13 그리하여 우리가 모두 하느님의 아드님에 대한 믿음과 지식에서 일치를 이루고 성숙한 사람이 되며 그리스도의 충만한 경지에 다다르게 됩니다.

= 이 세상에 육(肉)을 입고 살지만 그리스도로, 하느님의 영광, 생명, 사랑의 품안에 사는 우리다.

*하느님도 아들들에게 구원 받지 못하면 영원히 감추어진다.? (어스틴)

- 하느님의 아들들(진리를 깨달은 이들)이 나타나서 피조물들에게 하느님을 올바로 설명해 주지 않으면, 하느님이 감추어진, 그 의미로 구원받지 못한 하느님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누군가는 말한다. 이 세상에 인간이 만들어낸 ‘로봇 하느님’만이 있다고, 이것을 해달라면 해주고, 저것을 해달라 굶어가며 조르면 해주는, ‘인간들의 소원(所願)을 들어주는 하느님’말이다. 하느님을 모욕(侮辱)하는 기도(祈禱), 단식(斷食)이다. 그러니 진리를 깨달은 아들들의 말(소식)이 얼마나 소중(所重)한가.

 

(로마10,15) 15 파견되지 않았으면 어떻게 선포할 수 있겠습니까이는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마태6,10) 너희는 10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 세상 나라에 하느님의 나라가 오시길,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祈禱)하는 것, 부르심 받은 이들의 합당(合當)한 기도다. 빛 안에 영원(永遠)을 사는 길이기 때문이다.

 

합당한 기도를 할 줄 모르는 우리를 위해 탄식으로 기도 하시며우리의 눈발이 되어 주시어 진리의 길로 이끄시는 천주의 성령님!

그리스도 안에서 영의 자유안식의 삶을 살게 하소서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아버지의 나라가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매일말씀묵상

목록 전체보기 →
[연중 제24주간 토요일]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 (루카8,4-15)23.09.23조회 31[연중 제24주간 금요일] 여자들이 예수님 일행에게 시중들다. (루카8,1-3)23.09.22조회 24[성 마태오 복음사가 축일] 나는 죄인을 부르러 왔다. (마태9,9-13)23.09.21조회 14[연중 제24주간 수요일]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 (루카7,31-35)23.09.20조회 14[연중 제24주간 화요일] 젊은이야, 일어나라. (루카7,11-17)23.09.19조회 7[연중 제24주간 월요일] 백인대장의 믿음 (루카7,1-10)23.09.18조회 8[연중 제23주간 토요일]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사람 (루카6,43-49)23.09.16조회 14[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 십자가 곁에 마리아 (요한19,25-27)23.09.14조회 14[성 십자가 현양 축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요한3,13-17)23.09.14조회 15[연중 제23주간 수요일] 하느님의 나라가 너희 것. (루카6,20-26)23.09.13조회 18[연중 제23주간 화요일] 열두 사도(司徒) (루카6,12-19)23.09.12조회 10[연중 제23주간 월요일] 안식일에 “손을 뻗어라.” (루카6,6-11)23.09.11조회 25[연중 제22주간 토요일] 안식일 법(法) (루카6,1-5)23.09.08조회 19[연중 제23주간 금요일] 자비로운 사람 (루카6,27-38)23.09.08조회 20[복되신 동정 마리아 탄생 축일] 그 이름 예수(구원자) (마태1,1-16.18-23)23.09.08조회 38[연중 제22주간 목요일] 말씀대로 그물을 내리겠습니다. (루카5,1-11)23.09.07조회 22[연중 제22주간 수요일]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 (루카4,38-44)23.09.06조회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