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08월 26일 토요일
[연중 제20주간 토요일] 너희는 모두 형제다. (마태23,1-12)
제1독서<주님께서 그대에게 대를 이을 구원자가 끊어지지 않게 해 주셨다.>(룻기2,1-3.8-11; 4,13-17)
엘리멜렉의 아내 1 나오미에게는 남편 쪽으로 친족이 한 사람 있었다. 그는 엘리멜렉 가문으로 재산가였는데 이름은 보아즈였다.
2 모압 여자 룻이 나오미에게 말하였다. “들로 나가, 저에게 호의를 베풀어 주는 사람 뒤에서 이삭을 주울까 합니다.” 나오미가 룻에게 “그래 가거라, 내 딸아.” 하고 말하였다.
3 그래서 룻은 들로 나가 수확꾼들 뒤를 따르며 이삭을 줍는데, 우연히 엘리멜렉 가문인 보아즈의 밭에 이르게 되었다.
8 보아즈가 룻에게 말하였다. “내 딸아, 들어라. 이삭을 주우러 다른 밭으로 갈 것 없다. 여기에서 멀리 가지 말고 내 여종들 곁에 있어라.
9 수확하는 밭에서 눈을 떼지 말고 있다가 여종들 뒤를 따라가거라. 내가 종들에게 너를 건드리지 말라고 분명하게 명령하였다. 목이 마르거든 그릇 있는 데로 가서 종들이 길어다 놓은 물을 마셔라.”
10 그러자 룻은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며 그에게 말하였다. “저는 이방인인데, 저에게 호의를 베풀어 주시고 생각해 주시니 어찌 된 영문입니까?”
11 보아즈가 대답하였다. “네 남편이 죽은 다음 네가 시어머니에게 한 일과 또 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네 고향을 떠나 전에는 알지도 못하던 겨레에게 온 것을 내가 다 잘 들었다.”
4,13 이렇게 보아즈가 룻을 맞이하여 룻은 그의 아내가 되었다. 그가 룻과 한자리에 드니, 주님께서 점지해 주시어 룻이 아들을 낳았다.
14 그러자 아낙네들이 나오미에게 말하였다. “오늘 그대에게 대를 이을 구원자가 끊어지지 않게 해 주신 주님께서는 찬미받으시기를 빕니다. 이 아이의 이름이 이스라엘에서 기려지기를 바랍니다.
15 그대를 사랑하고 그대에게는 아들 일곱보다 더 나은 며느리가 아들을 낳았으니, 이제 이 아기가 그대의 생기를 북돋우고 그대의 노후를 돌보아 줄 것입니다.”
16 나오미는 아기를 받아 품에 안았다. 나오미가 그 아기의 양육자가 된 것이다.
17 이웃 아낙네들은 그 아기의 이름을 부르며, “나오미가 아들을 보았네.” 하고 말하였다. 그의 이름은 오벳이라 하였는데, 그가 다윗의 아버지인 이사이의 아버지다.
화답송 시편128(127),1-2.3.4-5(◎4) ◎ 보라,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복을 받으리라.
○ 행복하여라,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 그분의 길을 걷는 모든 사람! 네 손으로 벌어 네가 먹으리니, 너는 행복하여라, 너는 복을 받으리라. ◎
○ 너의 집 안방에 있는 아내는 풍성한 포도나무 같고, 너의 밥상에 둘러앉은 아들들은 올리브 나무 햇순 같구나. ◎
○ 보라,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이렇듯 복을 받으리라. 주님은 시온에서 너에게 복을 내리시리라. 너는 한평생 모든 날에, 예루살렘의 번영을 보리라. ◎
복음<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마태23,1-12)
1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과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모세의 자리에 앉아 있다.
3 그러니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는 것은 다 실행하고 지켜라. 그러나 그들의 행실은 따라 하지 마라.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
4 또 그들은 무겁고 힘겨운 짐을 묶어 다른 사람들 어깨에 올려놓고, 자기들은 그것을 나르는 일에 손가락 하나 까딱하려고 하지 않는다.
5 그들이 하는 일이란 모두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성구갑을 넓게 만들고 옷자락 술을 길게 늘인다.
6 잔칫집에서는 윗자리를,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를 좋아하고,
7 장터에서 인사받기를, 사람들에게 스승이라고 불리기를 좋아한다.
8 그러나 너희는 스승이라고 불리지 않도록 하여라. 너희의 스승님은 한 분뿐이시고 너희는 모두 형제다.
9 또 이 세상 누구도 아버지라고 부르지 마라. 너희의 아버지는 오직 한 분, 하늘에 계신 그분뿐이시다.
10 그리고 너희는 선생이라고 불리지 않도록 하여라. 너희의 선생님은 그리스도 한 분뿐이시다.
11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12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제1독서(룻기2,1~3.8~11;4,13~17)
"오늘 그대에게 대를 이을 구원자가 끊어지지 않게 해 주신 주님께서는 찬미받으시기를 빕니다. 이 아이의 이름이 이스라엘에서 기려지기를 바랍니다." (14ㄴ,ㄷ)
베틀레헴 아낙네들은 룻에게 아들을 낳게 하신 분이 바로 주 하느님이심을 알고 찬미하고 있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찬미받으시기를 빕니다'에 해당하는 '빠루크 예흐와'(baruk yehwa; praise be to the LORD)에서 '빠루크'(baruk)는 '축복하다'는 뜻을 지닌 동사 '빠라크'(barak)의 수동태 분사로서 '축복을 받는', '찬양을 받는'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이것은 '주님께서 찬미를 받으신다'는 뜻이다.
즉 베틀레헴 아낙네들은 나오미에게만 주님을 찬미하라고 명령하지 않고, 나오미와 더불어 주님을 찬송한 것이다. 룻이 아들을 낳은 사실이 그들에게도 커다란 기쁨이 되었기 때문이다.
'주님께서~~않게'로 번역된 '히쉬비트'(hishybith; has left without)의 원형 '샤바트'(shabath) 동사가 전치사 '민'(min)을 수반하지 않고 사역 능동형 완료로 사용되어 '끝나게 하다', '그치게 하다'는 뜻이 된다.
이 동사 자체가 부정적 의미를 나타내기 때문에 앞의 부정어 '로'(lo)는 이 문장이 이중으로 부정된 상태임을 드러내어 강한 긍정의 표현이 된다.
즉 아낙네들은 후손이 없어 영원히 그 가문의 이름이 없어질 위기에 처했으나 주님으로 말미암아 대를 이을 자가 생겨 기뻐하고 있는 나오미에게 부정을 통한 강한 긍정으로 축하했던 것이다.
한편 대를 이을 자가 구체적으로 보아즈인지 아니면 룻이 낳은 아들인지에 관해 의견이 많지만, 룻기 4장 14절 후반절과 15절의 내용이 룻이 낳은 아들에 관한 것임을 볼 때 후자로 이해된다.
그리고 아낙네들이 나오미에게 한 축복의 말들은 룻기 1장 21절("나 아쉬움 없이 떠나갔는데 주님께서 나를 빈손으로 돌아오게 하셨답니다. 그런데 어찌 그대들은 나를 나오미라 부르나요? 주님께서 나를 거칠게 다루시고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불행을 안겨 주셨답니다.")과 상당히 대조된다.
룻기 1장 21절에서 나오미는 자신의 처지를 거의 절망적으로 표현했지만, 여기서 베틀레헴 아낙네들은 나오미의 그때의 상황이 완전히 뒤바뀌었음을 말하고 있다.
한편 '이 아이의 이름'으로 번역된 '셰모'(shemo; his name)는 '그의 이름'이라는 뜻이며, '기려지기를 바랍니다'로 번역된 '웨익카레'(weiqqare; that may be famous)는 접속사 '와우'(wau)와 '부르다'는 뜻을 가진 '카라'(qara)의 단순 수동형 미완료 남성 3인칭 단수형이 결합된 형태로 '그리고 그가 불리워질 것이다'라는 뜻이다.
그런데 여기서 미완료는 화자의 염원, 기원을 나타내는 권유형이므로 '그리고 그가 불리워지기를 바라노라'가 된다. 그리고 여기에 나타난 이스라엘은 하느님의 계약의 백성 모두를 지칭한다.
룻기 4장 11절의 보아즈에 대한 축복에서는 같은 지역인 '에프라타와 베틀레헴'이 언급되었으나 여기서는 이스라엘을 언급함으로써, 축복의 영역이 확대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베틀레헴 출신의 이스라엘 임금 다윗과 더 멀게는 온 인류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스라엘'과 '모든 계약의 백성'에게 끼칠 축복을 보여준다.
연중 제20주간 토요일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
(마태 23,1-12)
1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과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모세의 자리에 앉아 있다. 3 그러니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는 것은 다 실행하고 지켜라. 그러나 그들의 행실은 따라 하지 마라.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
= 모세의 자리, 구약(모세오경)은 모두가 예수님의 이야기인 것이다.
(요한5,39-46) 39 너희는 성경(구약)에서 영원한 생명을 찾아 얻겠다는 생각으로 성경을 연구한다. 바로 그 성경이 나를 위하여 증언한다. 40 그런데도 너희는 나에게 와서 생명을 얻으려고 하지 않는다. 44 자기들끼리 영광을 주고받으면서 한 분이신 하느님에게서 받는 영광은 추구하지 않으니, 너희가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느냐? 45 그러나 내가 너희를 아버지께 고소하리라고 생각하지는 마라. 너희를 고소하는 이는 너희가 희망을 걸어 온 모세다. 46 너희가 모세를 믿었더라면 나를 믿었을 것이다. 그가 나에 관하여 성경에 기록하였기 때문이다.
= 구약에서 영생을 주시는 분을 깨닫고, 믿는 그 실행(킵)이 아닌 사람의 규정과 교리, 계명으로 받아 인간의 의로움, 영광 그 가치를 챙기는 행위, 그 행실을 따라 하지 말라 하시는 것이다.
(요한6,27) 27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 그 양식은 사람의 아들이 너희에게 줄 것이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사람의 아들을 인정하셨기 때문이다.”
= 영생의 양식은 예수님의 길, 십자가의 대속 그 예수님을 구원의 진리로 먹는 것, 믿는 것이다.
(요한14,6) 6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4 또 그들은 무겁고 힘겨운 짐을 묶어 다른 사람들 어깨에 올려놓고, 자기들은 그것을 나르는 일에 손가락 하나 까딱하려고 하지 않는다.
= 구약의 법에서 신약의 대속으로 살리시는 그 진리의 길로 옮기는 그 일을 하지 않는 것, 곧 예수님의 대속으로 용서 받아 거저 의롭게 되어 하늘의 생명을 얻는 그 후하신 하느님의 계명, 말씀을~ 용서 받지 못하는 인간들의 규정(계명) 교리로 만들어 신앙이 짐이 되게, 그래서 온갖 질병, 곧 죄 의식 이라는 병을 치유하는데 손가락 하나 까닥 하지 못하는 지도자들인 것이다.
(골로1,13) 13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어둠의 권세에서 구해 내시어 당신께서 사랑하시는 아드님의 나라로 옮겨 주셨습니다.
5 그들이 하는 일이란 모두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성구갑을 넓게 만들고 옷자락 술을 길게 늘인다.
= 보이는, 사람의 의로움을 위한 신앙을 산다는 것이다.
(로마8,24) 24 그러나 사실 우리는 희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보이는 것을 희망하는 것은 희망이 아닙니다. 보이는 것을 누가 희망합니까?
(2코린4,18) 18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우리가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보이는 것은 잠시뿐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합니다.
(히브11,1.3) 1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의 보증이며 보이지 않는 실체들의 확증입니다. 3 믿음으로써, 우리는 세상이 하느님의 말씀으로 마련되었음을, 따라서 보이는 것이 보이지 않는 것에서 나왔음을 깨닫습니다.
6 잔칫집에서는 윗자리를,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를 좋아하고, 7 장터에서 인사받기를, 사람들에게 스승이라고 불리기를 좋아한다.
= 율법학자, 바라사이파들의 육적 거만으로 거들먹거렸다고 생각하면 안된다. 그들은 그런 유치한 사람들이 아니였다. 율법을 사람의 규정과 계명, 교리로 열심히 지킨, 그 자기 의로움, 영광이 큰 사람이었던 것이다.
하늘의 영생을 얻지 못하는 그 자기 의로움의 그들을 지적하시는 말씀인 것이다.
(마태5,20) 20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 인간의 의로움을 능가하는 것, 곧 차원이 다른 하늘의 의로움, 십자가의 대속, 그 예수님의 의로움이다.
8 그러나 너희는 스승이라고 불리지 않도록 하여라. 너희의 스승님은 한 분뿐이시고 너희는 모두 형제다. 9 또 이 세상 누구도 아버지라고 부르지 마라. 너희의 아버지는 오직 한 분, 하늘에 계신 그분 뿐이시다.
= 아버지는 한 분, 흙의 그 없음의 존재인 나를 하늘의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 육의 생명을 창조하신 그 하느님 아버지 시다.
10 그리고 너희는 선생이라고 불리지 않도록 하여라. 너희의 선생님은 그리스도 한 분뿐이시다.
= 인간의 의로움이 아닌 구원을 위한 하늘의 의로움을 주시는, 그 가르침을 주시는 실체이신 그리스도 이신 것이다.
11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 내게 거저 주신 하늘의 의로움, 곧 십자가의 복음을 이웃에게 알려주는 그 섬김인 것이다.
12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 자기 의로움을 고집하면 낮아지고, 그 자기 의로움이 구원의 가치, 능력 없음을 깨닫고 인정하는, 그 자기 부인, 버림을 하면 높아지는 것이다. 그것이 하늘의 영원한 생명을 얻는 참 길인 것이다.
주님~! 내 뜻을 높이 세우려는 그 고집, 아집의 우리가 되지 않게 하시고, 내 뜻을 낮추는 그 낮은 사람이 되게 하소서. 천주의 성령이시여! 의탁하나이다. 아멘.
연중 제20주간 토요일 복음(마태23,1~12)
"그들이 하는 일이란 모두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성구갑을 넓게 만들고 옷자락 술을 길게 늘인다." (5)
마태오 복음 23장 5~7절까지는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외적인 경건 과시(5절), 높아지고자 하는 마음과 끝없는 명예욕(6절), 그리고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얻고자 하는 마음(7절)에 대한 대표적 예이다.
'성구갑'으로 번역된 '퓔라크테리아'(phylakteria; phylacteries)의 원형 '퓔라크테리온'(phylakterion)은 모세 율법 중에서 탈출기 13장 1~10절, 11~16절, 신명기 6장 4~9절, 11장 13~21절 등의 네 부분을 작고 긴 양피지 조각에 기록하여 그것을 작은 상자 속에 봉해 넣은 것을 가리킨다.
유대인들은 '이것을 네 손에 감은 표징과 네 이마에 붙인 표지로 여겨라'는 말씀(탈출13,16; 신명6,8)에 근거하여, 위의 네 부분의 율법의 구절을 기록한 경문을 넣은 성구갑을 이마와 왼팔에 가죽끈으로 고정하여 틈나는 대로 보면서 경건에 힘썼던 것이다.
마태오 복음 23장 5절에서 '넓게 만들고'에 해당하는'플라튀누신'(platynusin; they make wide; they make broad)은 다른 사람들의 눈에 쉽게 띄도록 그 성구갑의 크기를 크게 한다는 뜻이다.
시행 초기인 바빌론 유배 포로기 직후에는 하느님의 말씀을 기억하기 위한 순수한 목적으로 성구갑을 달고 다녔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유대인들은 타인에게 자신의 경건을 과시하기 위한 목적으로 달고 다녔다.
과시욕이 지나치다 못해 어떻게 하면 더 크게 해서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띄게 할까 고민했던 것이다.
한편, '옷자락 술'로 번역된 '크라스페다'(kraspeda; the tassels of their garments)의 원형 '크라스페돈'(kraspedon)은 '망토 또는 외투의 가장자리에 털실을 꼬아 매달리게 장식한 작은 부속물'을 의미한다.
유대인들은 민수기 15장 37~40절의 말씀에 근거하여 흰색과 청색 실로 짠, 이와 같은 부속물을 겉옷의 가장자리에 매달았다.
그것은 그들로 하여금 하느님의 모든 계명을 기억하여 실천하게 하는 기능을 하며, 마음과 눈이 쏠리는 데로 욕심을 따라 방종하게 살아 배신하지 않도록 하는 기능을 해 주었다(민수15,39).
그러나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그러한 율법의 정신을 따르려는 마음보다는, 단지 사람들에게 자신을 거룩하게 보이려는 열망으로 '옷자락 술'을 더 크게 만들어 그것을 즐겨 입고 다녔던 것이다.
[연중 제20주간 토요일]
모세의 자리
복음(마태23,1-12)
1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과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마태22,45) 45 이렇게 다윗이 메시아를 주님이라고 부르는데, 메시아가 어떻게 다윗의 자손이 되느냐?”
= 메시아, 주님은 육(肉)으로는 다윗의 후손으로 오셨지만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말씀하신 것이다. 성경 전체는 그 주님의 이야기이다.
(루가24,27) 27 그리고 이어서 *모세와 모든 예언자로부터 시작하여 성경 전체에 걸쳐 당신(예수)에 관한 기록들을 그들에게 설명해 주셨다.
= 당시에는 신약이 없었으니 성경은 구약(舊約)을 말한다. 그러니 신약은 물론 구약까지 모두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말씀인 것이다. 구약은 신약의 구원자께서 오실 것을 예표(豫表)했다. 그 말씀에 이어진 오늘의 말씀이다.
2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모세의 자리에 앉아 있다. 3 그러니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는 것(율법)은 다 실행하고 지켜라. 그러나 그들의 행실은 따라 하지 마라.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
= 실행과 행실은 무슨 차이일까? 실행(實行)은 율법의 진의, 곧 메시아를 통한 구원을 진리로 깨달아, 스스로 구원에 이르겠다고 열심을 부렸던 그 자신을 내려놓는 그 자기 버림의 낮은 자리에 앉는 것, 실행이다.
행실(行實)은 613가지로 늘려 열심히 지킨 그 자기 의로움으로 구원에 이르겠다는 모든 행실이다. 그러나 그 행실, 율법(제사와 윤리)을 열심히 지킨 그 사람의 의로움으로는 구원을 받지 못한다. 그래서 메시아, 곧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오신 것이다.
(로마3,20-21) 20 어떠한 인간도 율법에 따른 행위로 하느님 앞에서 의롭게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율법을 통해서는 죄를 알게 될 따름입니다. 21 그러나 이제는 율법과 상관없이 하느님의 의로움이 나타났습니다. 이는 율법과 예언자들이 증언하는 것입니다.
= 율법(십계명)의 모든 죄를 십자가에서 대속하신 예수 그리스도다. 내 뜻(생각)으로 살았던 모든 것을 부인(否認)하고 예수님의 뜻, 말씀을 먹고 마시는 것, 그리고 따르는 것, 실행이다.
4 또 그들은 무겁고 힘겨운 짐을 묶어 다른 사람들 어깨에 올려놓고, 자기들은 그것을 나르는 일에 손가락 하나 까딱하려고 하지 않는다.
= 율법을 613가지로 늘린 신앙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하느님의 뜻을 하나도 실행하지 않았다는 말씀이다. 오늘날도 사람의 생각이 ‘교리(敎理)로 더 보태어져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지 않음을 알아들으라.’는 말씀이다.
5 그들이 하는 일이란 모두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성구갑을 넓게 만들고 옷자락 술을 길게 늘인다.
= 보이는 자기 의로움을 위해 말씀을 늘 몸에 지니며 착하게(의롭게) 살았다.(마태5,20참조) 자기 의로움으로 구원에 이르러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는? ....
6 잔칫집에서는 윗자리를,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를 좋아하고, 7 장터에서 인사받기를, 사람들에게 스승이라고 불리기를 좋아한다.
= 깨달음 없는 잘못된 열성 때문이다.
(로마10,2) 2 나는 그들에 관하여 증언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하느님을 위한 열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깨달음에 바탕을 두지 않은 열성입니다.
8 그러나 너희는 스승이라고 불리지 않도록 하여라. 너희의 스승님은 한 분뿐이시고 너희는 모두 형제다.
= 구원의 길을 가르치시고 이끌어 주시는 분은 보호자 성령(聖靈)뿐이시다.(요한14,26 15,26 16,13 로마8,26)
9 또 이 세상 누구도 아버지라고 부르지 마라. 너희의 아버지는 오직 한 분, 하늘에 계신 그분뿐이시다.
(히브12,10) 10 육신의 아버지들은 자기들의 생각대로 우리를 잠깐 훈육하였지만, 그분(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유익하도록 훈육하시어 우리가 당신의 거룩함에 동참할 수 있게 해 주십니다.
10 그리고 너희는 선생이라고 불리지 않도록 하여라. 너희의 선생님은 그리스도 한 분뿐이시다.
(1코린8,6) 6 우리에게는 하느님 아버지 한 분이 계실 뿐입니다. 모든 것이 그분에게서 나왔고 우리는 그분을 향하여 나아갑니다. 또 주님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 계실 뿐입니다. 모든 것이 그분으로 말미암아 있고 우리도 그분으로 말미암아 존재합니다
11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 예수님도 죽기까지, 끝까지 우리를 섬겨 주셨듯이 말이다.
(마르10,45) 45 사실 사람의 아들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 그리고 영원토록 하느님 나라에서 사랑하실 것이다.
12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 율법, 십계명을 법으로 열심히 지킨 그 자기 의로움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 이는 절대 낮아질 수 없다. 그래서 하늘의 의로움을 주는 그 섬김을 할 수 없어 낮은 자리, 곧 땅에 영원히 묻힐 것이다. 율법(律法)의 진의를 알면....
다시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곧 그분의 길, 십자가의 대속, 그 의로움이 구원의 진리임을 깨달아 받아드려 믿으면 자신을 낮출 수 있고, 그는 높으신 하느님 아버지와 높은 곳에 계신 주님과 영원한 삶을 살 것이다.
오늘독서 (롯기 4,16-17) 16 나오미는 아기를 받아 품에 안았다. 나오미가 그 아기의 양육자가 된 것이다. 17 이웃 아낙네들은 그 아기의 이름을 부르며, “나오미가 아들을 보았네.” 하고 말하였다. 그의 이름은 오벳이라 하였는데, 그가 다윗의 아버지인 이사이의 아버지다.
= 며느리 룻이 재가 하여 낳은 아들을 나오마가 ‘아들을 보았네’ 낳았다고 한다. 그것은 앞 16절에 아기를 받아 품고, 그 아기를 키우면 자신이 낳은 것이 된다는 것이다. 곧 말씀(예수)을 받아먹고 마시며 공부하면(양육하면) 십자가의 예수가 나의 구원자(아들) 그리스도로 깨닫게(낳게) 된다는 것이다. 고통(苦痛), 쓰다, 쓴물(마라)인 그 자신에서 나오미(사랑, 기쁨)로 다시 회복된다는 것이다. 베들레햄에서 이방 지역으로 떠나 그 이방인들(세상)의 양식을 먹고 살았기에 남편과 두 아들을 잃고 돌아 왔을 때 ~
(룻기1,20) 20 나오미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나를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마라라고 부르셔요. 전능하신 분께서 나를 너무나 *쓰라리게 하신 까닭이랍니다.
(탈출15,22-23.25) 22 모세가 이스라엘을 갈대 바다에서 떠나게 하니, 그들이 수르 광야로 나아갔다. 광야에서 사흘 동안을 걸었는데도, 그들은 물을 찾지 못하였다. 23 마침내 마라에 다다랐지만, 그곳 마라의 물이 *써서 마실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그 이름을 *마라라 하였다. 25 모세가 주님께 부르짖으니, 주님께서 *나무 하나(십자가)를 보여 주셨다. 모세가 그것을 물에 던지자 그 물이 *단 물이 되었다. 그곳에서 주님께서는 백성을 위한 규정과 법규를 세우시고 그곳에서 주님께서는 백성을 시험하셨다.
= 나무 하나, 곧 우리의 고통의 죄로 죽으시고 구원하실 분은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 한 분 뿐이시고, 그 십자가의 예수께서 우리 구원의 규정과 법규임을 깨달아 그분으로 말미암아 있고, 그분으로 말미암아 존재(存在)함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결론은 말씀을 열심히 먹고,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공부(工夫)해서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마르4,31-32) 31 하느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땅(나)에 뿌릴 때에는 세상의 어떤 씨앗보다도 작다. 32 그러나 땅에 뿌려지면 *자라나서 어떤 풀보다도 커지고 큰 가지들을 뻗어, 하늘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수 있게 된다.”
(1베드2,2) 2 갓난아이처럼 영적이고 순수한 젖을 갈망하십시오. 그러면 그것으로 *자라나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 성경을 문자(文字) 그대로 도덕과 윤리, 법(法)으로 먹지 말고 아버지의 마음(뜻) 그대로(순수하게) 먹으면 곧 십자 나무의 대속, 그 진리로 먹으면 믿음이, 내 영(靈)이 자라나 구원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1코린2,10) 10 하느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그것들을 바로 우리에게 계시해 주셨습니다. 성령께서는 모든 것을, 그리고 하느님의 깊은 비밀까지도 통찰하십니다.
(1테살2,13) 13 우리는 또한 끊임없이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가 전하는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때, 여러분이 그것을 사람의 말로 받아들이지 않고 사실 그대로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그 말씀이 신자 여러분 안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 은총의 성령님! 하느님의 뜻을 통찰하시며 우리를 가르치시고, 기도(간구)로 이끌어 주시니 감사합니다. 섬김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2023년 08월 26일 토요일
[연중 제20주간 토요일] 오늘의묵상 (정용진 요셉 신부)
참 신자(信者)는 어떤 사람입니까?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충실한 종교인이라고 자부하는 바리사이들의 위선과 거짓을 경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행실은 따라 하지 마라.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들으며 그 시대 바리사이들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 이를테면 부모들과 교육자들, 그리고 사제들의 모습이 어떠한지 생각할 수 있습니다.
말하거나 가르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모범을 보이는 생활이 중요합니다.
술 취하거나 태만한 부모, 품행이 바르지 않은 스승, 세상 것에 심취한 목자가 자기 자녀와 제자들 그리고 자기 양들에게, 정작 자신은 지키지 못하는 것을 지키도록 가르치며 스스로 거짓말쟁이가 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마태오 복음사가는 당시 교회 안에 있던 두 가지 교회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하나는 바리사이 같은 교회의 모습으로, 명예와 권력을 좇는 지도자들로 말미암아 겉은 화려하고 번지르르하지만 속은 텅 빈, 잘못된 권위주의와 형식주의에 매인 모습입니다.
다른 하나는 그리스도적인 교회의 모습으로 직무와 책임을 맡은 이들이 서로 친구요 형제로 대하며 말을 넘어 행동으로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지키는 공동체의 모습입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 교회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오신 그분 자신을 삶의 지표로 삼아 다양한 역할과 책임을 맡은 이들이 겸손하게 형제들을 섬깁니다(20,26 참조).
부끄럽지만 우리 자신의 모습을 바라볼 용기를 냅시다.
우리를 위하여 한없이 자신을 낮추어 스스로 우리의 종이 되신 예수님의 겸손과 사랑을 기억하며 형제들에게 다가가 말뿐 아니라 행실로도 그들을 섬깁시다.
(정용진 요셉 신부)
[연중 제20주간 토요일]
주님은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하러 오셨다.
주님은 왜 착하고 롭게 살아온 율법학자, 바리사이를 제자로 삼지 않으시고, 베드로 등, 배반할 죄인들을 제자로 삼으셨을까?(그들이 배반할 것을 미리 아셨다)
복음(마태23,1-12)
1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과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모세의 자리에 앉아 있다.
= 모세는 하느님의 뜻으로 민족(民族)을 이집트의 노예(奴隸)생활에서 탈출(脫出)시킨 구원(救援)자다. 그리스도의 예표(豫表)다. 곧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이 어둠의 세상에서 노예생활을 하는 민족을 영원한 빛의 나라로 탈출시킬 구원의 임무를 맡은 사람이라는 말씀이다.
3 그러니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는 것은 다 실행하고 지켜라. 그러나 그들의 행실은 따라 하지 마라.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
=그들이 전하는 모세의 말을 지키라는 말씀인데, 그들의 행실은 모세의 말을 실행한 것이 아니라는 말씀이다. 실행(實行)은 ‘모세의 말’ 안에 들어있는 하느님의 뜻인 구원의 진리를 깨달아 믿음으로 마음 안에 간직, 지키는 것이다. 그리고 깨닫고 믿은 말씀을 말하며, 선포하며 이웃과 나누는 것이 실행이다.
그러나 율법학자와 바리사이들은 모세의 말을 법으로 받아 깨달음이 아닌, 행위로 지켜 자기 의(義)로 챙겼기에 ‘그 행위를 따라 하지 말라’ 하셨던 것이다.(로마10,1-3참조)
깨달음이 없는 자신의 뜻으로 한 실천은 하느님의 뜻을 무시(無視), 죽이는 것이다. 그래서 의롭게 살았던 그들이 하느님의 뜻이며 ‘구원의 진리(眞理)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을 죽인 것이다.
(요한8,37-38) 37 나는 너희가 아브라함의 후손임을 알고 있다. 그런데 너희는 나를 죽이려고 한다. 내 말이 너희 (마음) 안에 있을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38 나는 내 아버지에게서 본(호라우) 것을 이야기하고, 너희는 너희 아비에게서 들은 것을 실천한다.”
= 예수님이 본 것(호라우-깨달음으로), 곧 창조이전 하느님께서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계획하시고 완성하셨던 하느님의 나라(히브4,3), 그 하늘의 의로움, 구원의 말씀을 전(傳)하시고, 선포(宣布)하셨고, 율법 자들은 들은 것,(뱀의 유혹인 선악의 말-요한8,44) 곧 말씀을 선악(善惡)의 계명(誡命), 법(法)으로 받아 자신들의 뜻, 의(義)를 위해 실천한 것이다.
4 또 그들은 무겁고 힘겨운 짐을 묶어 다른 사람들 어깨에 올려놓고, 자기들은 그것을 나르는 일에 손가락 하나 까딱하려고 하지 않는다.
= 모세의 말을 600가지 넘는 율법으로 만들어 무겁고 힘든 짐 같은 신앙을 살게 했던 것이다. 율법학자(律法學者), 바리사이들이 그 율법(律法)을 지키지 않았다는 말이 아니시다. 그들은 율법을 철저히 지키며 착하게, 의롭게 살았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하늘로의 탈출(脫出)’을 위한 깨달음, 믿음을 위한 일은 전혀 하지 않았다는 말씀이다.
(마르7,7) 7 그들은 사람의 규정을 교리로 가르치며 나를 헛되이 섬긴다.’
5ㄱ 그들이 하는 일이란 모두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다.
= 보이는 신앙생활, 곧 자신의 뜻, 의(義), 영광을 위한 종교(宗敎)행위에 열심을 부렸다는 말씀이다.
5ㄴ그래서 성구갑을 넓게 만들고 옷자락 술을 길게 늘인다. 6 잔칫집에서는 윗자리를,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를 좋아하고, 7 장터에서 인사받기를, 사람들에게 스승이라고 불리기를 좋아한다.
= 자신들이 의롭게 살았던 만큼, 권위(權威)의식(意識)도 대단히 컸다.
(마태5,20) 20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 율법(律法)의 의로움을 능가하는 의로움? 하늘의 의로움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十字架)의 대속(代贖), 그 피의 새 계약으로 받는 의(義)를 진리(眞理)로 믿는 것이다.
(로마3,21-24) 21 그러나 이제는 율법과 상관없이 하느님의 의로움이 나타났습니다. 이는 율법과 예언자들이 증언하는 것입니다. 22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오는 하느님의 의로움은 믿는 모든 이를 위한 것입니다. 거기에는 아무 차별도 없습니다. 23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하느님의 영광을 잃었습니다. 24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진 속량을 통하여 그분의 은총으로 거저 의롭게 됩니다.
8 그러나 너희는 스승이라고 불리지 않도록 하여라. 너희의 스승님은 한 분뿐이시고 너희는 모두 형제다.
= 하늘의 한 분만이 구원의 진리(眞理), 지혜(智慧)이시다.
9 또 이 세상 누구도 아버지라고 부르지 마라. 너희의 *아버지는 *오직 한 분, 하늘에 계신 그분뿐이시다.
= 하늘의 한 분, 하느님만이 모든 것을 영원히 책임(責任)져주실 아버지시다.
10 그리고 너희는 선생이라고 불리지 않도록 하여라. 너희의 *선생님은 그리스도 *한 분뿐이시다.
= 하늘의 한 분, 그리스도만이 구원자시다. 곧 하늘아래 모든 것은 믿음, 구원과는 상관없는 부질없는, 헛것이라는 말씀이다.
(코헬1,14) 14 나는 태양 아래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일을 살펴보았는데 보라, 이 모든 것이 허무요 바람을 잡는 일이다.
(코헬4,1) 1 나는 또 태양 아래에서 자행되는 모든 억압을 보았다. 보라, 억압받는 이들의 눈물을! 그러나 그들에게는 위로해 줄 사람이 없다. 그 억압자들의 손에서 폭력이 쏟아진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위로해 줄 사람이 없다.
(시편39,6-8) 6 보소서, 당신께서는 제가 살 날들을 몇 뼘 길이로 정하시어 제 수명 당신 앞에서는 없는 것과 같습니다. 사람은 모두 한낱 입김으로 서 있을 뿐. 7 인간은 한낱 그림자로 지나가는데 부질없이 소란만 피우며 쌓아 둡니다. 누가 그것들을 거두어 갈지 알지도 못한 채. 8 그러나 이제 주님, 제가 무엇을 바라겠습니까? 저의 희망은 오직 당신께 있습니다.
11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 하늘의 한 분으로 거저 의롭게, 가장 높아진 사람은, 이웃 또한 그 한 분으로 높아지도록 그 한 분을 알려주는 그 섬김을 해야 한다. 곧 말씀을 생명의 양식으로 주는 것이다.
<사제(司祭)께서>그리스도께서 당신 자신을 우리에게 내어 주셔서 우리의 자존(自存)감을 회복시켜 주시는데 그 확실한 표로 성체(聖體)를 영(迎)하는 사람들이, 성경(聖經)만 읽으며 되뇌는 것보다 훨씬 강하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느끼게 된다는 것입니다.
= 하셨는데 과연 그럴까? 성체(聖體)를 모신다고 용서(容恕), 자유(自由), 구원(救援)에 대한 믿음이 생길까? 주님은 당신의 몸을 피(血)의 새 계약(契約)으로 주셨고,(루가22,20) 또한 성경(聖經)말씀을 하느님의 뜻으로 올바로 깨달아 믿는 것이 생명, 용서, 자유, 안식, 평화, 구원, 구마(驅魔)인데(마태8,16 로마10,17 야고1,18참조), 그러니 먼저 하느님의 뜻을 올바로 깨달아 믿을 수 있도록 ‘말씀 안에 늘 머무르는 공부(工夫)를 하라’해야 하지 않을까?(요한8,31-32참조)
*성경(聖經)을 모르는 것은 그리스도를 모르는 것이다.(성 예로니모)
12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 하늘의 높으신 한 분과 하나 되기 위한 낮아짐이다. 스스로 높이려는 이는 땅속으로 떨어지기까지 낮아진다.(로마10,1-3참조) 그러나 자신의 모든 것이 허무(虛無)요 헛됨을 깨닫고 인정하는 그 낮아짐으로 그리스도의 지체(肢體)로 들어가 그분과 한 몸이 되면 그 높으신 그리스도, 그 분 안에서 높아지게 된다. *무엇이든지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진다.
(2코린10,17) 17 그러므로 “자랑하려는 자는 주님 안에서 자랑해야 합니다.”
(에페2,6) 6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우리를 그분과 함께 일으키시고 그분과 함께 하늘에 앉히셨습니다.
(골로1,14) 14 이 아드님(예수) 안에서 우리는 속량을, 곧 죄의 용서를 받습니다.
(1테살5,9-10) 9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진노의 심판을 받도록 정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을 차지하도록 정하셨습니다. 10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살아 있든지 죽어 있든지 당신과 함께 살게 하시려고,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셨습니다. (~~아멘)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 나)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