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6주간 수요일] “나를 따라라.” (루카9,57-62)

2022. 9. 28. 오전 4:4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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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28일 수요일

 

[연중 제26주간 수요일] 나를 따라라.” (루카9,57-62)


   


1독서<사람이 하느님 앞에서 어찌 의롭다 하겠는가?>(욥기9,1-12.14-16)

1 욥이 친구들의 말을 받았다.

2 “물론 나도 그런 줄은 알고 있네. 사람이 하느님 앞에서 어찌 의롭다 하겠는가?

3 하느님과 소송을 벌인다 한들 천에 하나라도 그분께 답변하지 못할 것이네.

4 지혜가 충만하시고 능력이 넘치시는 분, 누가 그분과 겨루어서 무사 하리오?

5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산들을 옮기시고 분노하시어 그것들을 뒤엎으시는 분.

6 땅을 바닥 째 뒤흔드시어 그 기둥들을 요동치게 하시는 분.

7 해에게 솟지 말라 명령하시고 별들을 봉해 버리시는 분.

8 당신 혼자 하늘을 펼치시고 바다의 등을 밟으시는 분.

9 큰곰자리와 오리온자리, 묘성과 남녘의 별자리들을 만드신 분.

10 측량할 수 없는 위업들과 헤아릴 수 없는 기적들을 이루시는 분.

11 그분께서 내 앞을 지나가셔도 나는 보지 못하고 지나치셔도 나는 그분을 알아채지 못하네.

12 그분께서 잡아채시면 누가 막을 수 있으며 누가 그분께 왜 그러십니까?’ 할 수 있겠나?

14 그런데 내가 어찌 그분께 답변할 수 있으며 그분께 대꾸할 말을 고를 수 있겠나?

15 내가 의롭다 하여도 답변할 말이 없어 내 고소인에게 자비를 구해야 할 것이네.

16 내가 불러 그분께서 대답하신다 해도 내 소리에 귀를 기울이시리라고는 믿지 않네.”

 

화답송시편 88(87),10ㄴㄷ-11.12-13.14-15(3참조) 주님, 제 기도 당신 앞에 이르게 하소서.

주님, 저는 온종일 당신께 부르짖으며, 당신 향해 저의 두 팔을 쳐드나이다. 죽은 이들에게 당신이 기적을 이루시리이까? 그림자들이 일어나 당신을 찬송하리이까?

무덤 속에서 누가 당신 자애를, 멸망의 나라에서 당신 진실을 이야기하리이까? 어둠 속에서 누가 당신 기적을, 망각의 나라에서 당신 의로움을 알리리이까?

주님, 저는 당신께 부르짖나이다. 아침에 드리는 저의 기도 당신께 다다르게 하소서. 주님, 어찌하여 제 영혼을 버리시나이까? 어찌하여 당신 얼굴을 제게서 감추시나이까?

 

복음<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스승님을 따르겠습니다.>(루카9,57-62)

예수님과 제자들이 57 길을 가는데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스승님을 따르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58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여우들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

59 예수님께서는 다른 사람에게 나를 따라라.” 하고 이르셨다. 그러나 그는 주님, 먼저 집에 가서 아버지의 장사(葬事)를 지내게 허락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60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죽은 이들의 장사는 죽은 이들이 지내도록 내버려 두고, 너는 가서 하느님의 나라를 알려라.” 하고 말씀하셨다.

61 또 다른 사람이 주님, 저는 주님을 따르겠습니다. 그러나 먼저 가족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게 허락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62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

 




 

 

연중 제26주간 수요일 제1독서(욥기9,1-12.14-16)

 

"그분께서 내 앞을 지나가셔도 나는 보지 못하고, 지나치셔도 나는 그분을 알아뵙지 못하네." (11)

 

앞선 5-10절은 하느님의 전능하신 능력과 우주적 주권과 위엄에 대한 욥의 고백이었다. 이제 11-14절에서 욥은 자신이 당하는 고통스런 재난과 관련해, 하느님의 절대 주권과 그분의 역사하심에 전혀 깨달을 수 없는 자신의 답답한 상황을 서술한다.

 

새 성경에는 나타나지 않지만, 원문은 이 새로운 단락을 '보라' 란 뜻을 가진 감탄사 '헨'(hen)으로 시작한다. 여기서 '헨'(hen)은 앞으로 말할 하느님의 절대 주권에 대하여 사람들의 관심을 유발시키기 위하여 사용되었다.

그런데 '헨'(hen)은 문맥에 따라 '만일'(if)이란 조건 접속사로서의 역할도 한다.(욥기40,23 ; 이사54,15 ; 예레3,1 ; 다니2,5.6 ; 3,15.18)

 

본문의 '헨'은 이 두가지의 의미를 다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을 감안하면, 먼저 본절은 자신 앞에서 절대자이신 하느님이 무언가를 행하시는 놀라운 광경이 벌어지고 있다는 의미를 함축한다.

 

여기서 '그분께서 지나가셔도', '지나치셔도' 란 표현은 궁극적으로 자신에게 이루어진 모든 비극적인 일을 포괄하는 의미를 지닌다.

즉 자신에게 이루어진 이 모든 재난의 원인이 하느님께 있으며, 거기에 특별한 하느님의 뜻이 있음을 나타내는 의미를 전달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만일' 의 의미도 포함된다. 즉 만일 하느님께서 자신의 앞을 지나가시며 지나치신다 해도, 자신은 그것을 감지할 수 없으며, 더 구체적으로 지금 자신에게 이루어진 모든 일에 대해서도 도무지 알 수가 없다는 답답한 탄식의 말을 내뱉는 것이다.

이것은 본절에서 '나는 알아채지' 에 해당하는 '아빈'(abin)이 지닌 의미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 단어의 원형인 '삔'(bin)은 '이해하다', '지각하다', '식별하다' 란 뜻을 지니며, '이해로 이끄는 분별력' 의 개념을 포함한다.

 

그래서 이 동사는 단순한 자료 수집을 넘어선 종합적이고 체계화된 '지식'(knowledge)을 가리킬 때 사용된다. 성경에서 대개 '알다' 라는 의미로 사용되는 동사는 '야다으'(yadah)인데, 이것은 일반적으로 인간이 경험을 통해서 지식을 얻어가는 과정을 나타낸다.

그렇지만 '삔'(bin)은 이때 얻은 지식의 진위를 기리는 판단 능력과 예민한 통찰력을 의미한다.

 

따라서 본문에서 욥이 '삔'(bin)을 사용한 것은 그가 하느님의 자기 현현 곧 그분의 계시를 감지할 만한 판단 능력이 부족함을 고백한 것으로 알 수 있다.

즉 본문에서 욥은 하느님께서 자신에게 직접 오셔서 그가 당한 고난에 대한 비밀을 계시하려고 하실지라도, 자신에게는 그 계시를 받아 이해할 만한 능력이 없음을 한탄하는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욥이 하느님의 현현을 말하며, 그 계시에 관심을 두는 것은 자신이 왜 이같은 극심한 고난을 당해야 하는지에 대한 하느님의 뜻을 알 수 없음을 한탄하는 의미를 지님과 동시에 친구들 역시 욥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는 의미를 전달하기 위함이다.

당시 욥에게 있어서 가장 큰 문제는 재산의 상실이나 육체적 고통, 더 나아가 친구들의 몰이해가 아니었다.

 

사실 욥을 가장 괴롭히는 것은 하느님께서 왜 자신에게 고난을 주시는지 그 원인을 찾을 수 없는 것이었다.

즉 욥은 설혹 하느님께서 자신에게 찾아오신다고 하더라도 깨달을 수 조차 없다는 표현을 통해, 자신에게 이러한 재난을 내리신 이유가 도대체 무엇 때문이지 모르는 자신의 답답한 상황을 친구들 앞에 호소하며, 그들이 자신을 섣불리 판단하고 정죄하는 것이 합당치 못함을 증거하고 있다.

 

 





 

 

연중 제26주간 수요일 복음(루카9,57-62)

  

20220928일 수요일

[연중 제26주간 수요일] 오늘의 묵상 (강수원 베드로 신부)

 

오늘 복음은 예수님을 따라나서려던 세 사람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이들이 예수님과 나눈 대화마다(루카 9,57.59.61 참조)

주님을 추종하여 따름을 표현하는 특별한 그리스어 동사 아콜루테오’(따르다)가 사용되는데,

이 단어는 앞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과 마태오가 그분을 따라나선 대목에서도 사용됩니다(루카 5,11.27.28 참조).

이를 통하여 루카 복음사가는,

이 세 사람의 어정쩡한 태도를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나섰던 제자들의 모습과 병행시켜 대조적으로 드러냅니다.

첫 번째 사람은 어디로 가시든지예수님을 따르겠다고 장담하지만,

이는 마땅한 거처도 없이

공생활 내내 떠돌아다니시던 예수님과 일행의 삶을 알지 못한 채 드린 공허한 다짐일 뿐입니다.

또 두 번째와 세 번째 사람은 각각 아버지의 장례와 가족들과의 작별 인사를 더 우선시합니다.

물론 유다인들에게 장례는 자식의 마땅한 도리고(토빗 4,3-4; 14,11-13 참조) 가족들과의 작별 인사 또한 인지상정이지만,

그 어떤 관행이나 기본적인 도리도 결코 주님을 따르는 일보다 앞설 수는 없습니다.

 

1독서에서 욥은 그분께서 잡아채시면 누가 막을 수 있으며,

누가 그분께 왜 그러십니까?’ 할 수 있겠나?”라며,

하느님께 순명하는 데는 그 어떤 조건이나 타협도 있을 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우리가 차마 세상의 방식대로 할 수 없어 무엇인가를 포기해야만 하고 신앙 때문에 불편을 겪을 때마다,

그래, 내가 지금 주님을 올바로 따르고 있구나!’라고 확신하며 기뻐해야 합니다.

사람의 일이 결코 하느님의 일보다 먼저일 수 없다는 소신을 품고서,

쟁기를 잡고 뒤돌아보지 말고 단호히 구원 여정을 이어 갑시다.

 

(강수원 베드로 신부)

 

 





[연중 제26주간 월요일]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스승님을 따르겠습니다

(루카9,57-62)

예수님과 제자들이 57 길을 가는데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스승님을 따르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 예수님께서 하늘로 가실 때가 되어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이었다. 곧 죄인들의 죗값으로 십자가를 지러 가시는 확실한 진리의 길이다,

그러나 오를 이 어떤 사람은 예수님의 길을 모르고 따르겠단다. 그저 기적과 능력의 예수님을 따르면 자신에게 좋은 일이 있을 것라 생각한 것이다. 신앙의 목적에서 벗어났다.

그렇게 많은 신자들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이 구원의 진리임을 모르는 신앙생활을 한다.

 

(1베드1,9) 9 여러분의 믿음의 목적인 영혼의 구원을 얻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 예수님의 십자가가 내 죄를 대속하신 내 십자가임을 모르면서 성당에 다닌다. 예수님의 대속으로 받는 용서를 모르고 그 십자가의 의로움으로 구원, 하늘의 생명을 받는 것을 모르고, 그러니 자기 열심, 자기 의로움으로 복을 얻기 위해 열심을 부린다.

 

58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여우들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

= 가난하셨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구원자 그 예수님을 우리의 머리로 구원의 진리로 믿는이가 없다는 것이다.

 

(콜로1,18) 18 그분은 또한 당신 몸인 교회의 머리이십니다. 그분은 시작이시며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맏이이십니다. 그리하여 만물 가운데에서 으뜸이 되십니다.

 

(1코린6,15) 15 여러분의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라는 것을 모릅니까? 그런데 그리스도의 지체를 떼어다가 탕녀의 지체로 만들 수 있겠습니까?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신앙의 올바른 목적지부터 ‘찾으라’ 하신다. 헛된 신앙생활를 ‘버리라’ 하시는 것이다.

과녁을 벗어나다- 하마트리아-죄(罪)

 

59ㄱ 예수님께서는 *다른 사람에게 “나를 따라라.” 하고 이르셨다.

= 앞절, 그 신앙의 목적지, 과녁을 벗어난 그 사람과 다른 사람이다.

 

59ㄴ그러나 그는 “주님, 먼저 집에 가서 아버지의 장사를 지내게 허락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60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죽은 이들의 장사는 *죽은 이들이 지내도록 내버려 두고, 너는 가서 하느님의 나라를 알려라.” 하고 말씀하셨다.

= 아버지의 장사(葬事)를 외면하라는 말씀이 아니라, 죽은 이를 위한 신앙생활이 아닌 그 죽은 이, 곧 죄인을 살리는 하느님나라를 선포하는 신앙을 살라 하시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늘의 생명(진리)을 갖지 못한 사람을 어둠(죄)으로 죽었다고 한다.(갈라3,22참조) 그 죽은 이를 살리는 것이 하느님나라의 기쁜 소식, 복음이다.

 

(마태4,23) 23 예수님께서는 온 갈릴래아를 두루 다니시며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백성 가운데에서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

= 모두 용서로 살려 주셨다는 것이다.

 

하늘나라의 복음,

(이사53,4-5) 4 그렇지만 예수님은 우리의 병고를 메고 갔으며 우리의 고통을 짊어졌다. 그런데 우리는 그를 벌받은 자, 하느님께 매맞은 자, 천대받은 자로 여겼다. 5 그러나 그가 찔린 것은 우리의 악행 때문이고 그가 으스러진 것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다. 우리의 평화를 위하여 그가 징벌을 받았고 그의 상처로 우리는 나았다.

 

(루가4,18-19.21) 18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19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2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

 

61 그리고 또 다른 사람이 “주님, 저는 주님을 따르겠습니다. 그러나 먼저 가족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게 허락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62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쟁기에 손을 대고*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

= 쟁기에 손을 댄 사람~

 

(집회38,25) 25 쟁기를 다루면서 막대기 휘두르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고 황소를 몰면서 *자기 일에 몰두하며 송아지 이야기밖에 할 줄 모르는 자가 어떻게 지혜로워질 수 있겠느냐?

= 자기일, 자기 의로움을 자랑하는 사람, 곧 제사밖에 할 줄 모르는 자가(황소, 송아지는 제물) 하늘의 구원의 지혜를 어떻게 알 수 있겠느냐? 제사는 십자가에서 단 한번으로 다 이루어진 것이다,

 

그리고 돌아보는 자,

(창세19,17.26) 17 그들(천사)은 (화려한 삶의 소돔과 고모라에서) 롯의 가족을 밖으로 데리고 나와 말하였다. “달아나 목숨을 구하시오. 뒤를 돌아다보아서는 안 되오. 이 들판 어디에서도 멈추어 서지 마시오. 휩쓸려 가지 않으려거든 산으로 달아나시오.” 26 그런데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다보다 소금 기둥이 되어 버렸다.

= 하느님의 일을 하려는 사람은 *자기의 뜻을 이루려는 신앙을~ *그 헛된 죽음의 신앙을~ 그리고 *세상이 주는 편안의 삶을 돌아보면 재앙이다. 곧 하늘의 십자가의 대속, 그 진리의 길, 그 생명의 말씀(물) 신앙에서, 제사 그 피의 신앙으로 돌아가면 재앙이다. 그것이 물이 피로 변한 곧, 생명이 죽음이 된 이집트의 첫째 재앙이다.(탈출7,14~)

 

(갈라3,3) 3 여러분은 그렇게도 어리석습니까? 성령(생명)으로 시작하고서는 육(죽음)으로 마칠 셈입니까?

= 그 죽음의 문화, 죽음의 신앙에서 자유로워야 한다. 돌아보면 인된다.

 

(갈라5,1) 1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자유롭게 하시려고 해방시켜 주셨습니다.(죽으셨다) 그러니 굳건히 서서 다시는 종살이의 멍에를 메지 마십시오. ~아멘.!!!

 

 


영원한 행복을 위한 선택과 몰입 

- 기 프란치스코 신부 -


인생은 길입니다. 하루 일과를 시작하며 집을 나서 귀가할 때까지 길을 걷지요. 그렇게 우리는 늘 길 위에 있습니다. 길은 의미와 정서를 발생시키고 만남과 소통을 가능케 하는 무대이기도 하지요. 우리는 살기 위해, 버리기 위해, 나를 찾기 위해, 누군가와 함께 하기 위해 길을 걷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도 십자가 죽음이 기다리는 예루살렘을 향하여 길을 가고 계십니다.

길 위의 예수님께서는 여러 사람을 만나십니다. 제자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부르심에 응답하여 함께 걷습니다. 그러나 아직은 그 길이 어떤 길이며 왜 가는지 알아차리지 못한 채 따라가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예수님께서 부르시기 전에 자발적으로 따르겠다고 했으나 어떤 길인지 잘 모르는 사람도 있습니다(9,57-58).

예수님께서 길을 걷다가 만난 사람 중에는 그분께서 부르시자 자기 일을 더 중요시하여 예수님을 따르는 일을 미루는 사람도 있었습니다(9,59-60). 또 따를 의지도 있고, 따르기 위해 애착을 두는 것들에서 떠날 의지도 확고하지만 하느님 나라를 선택하고 거기에 몰입하는 것이 얼마나 긴박한 일인지 알아차리고 못한 채 안일한 태도를 보인 사람도 만나셨습니다(9,61).

나는 어떤 길을 걷고 있을까요? 행복을 원하면서도 행복하지 않고 기쁨을 느끼지 못하며 살아가고 있다면, 뭔가 잘못된 길이나 공연히 헛수고를 하며 돌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행복의 길이 무엇인지 알고 그 중요성을 인식하면서도 자꾸만 미루고 있지는 않습니까? 어떻게 행복하게 길을 걸어야 할까요?

진정 행복을 원한다면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만난 사람들과는 달라야하지 않을까요? 눈에 보이는 것, 나만을 위한 만족을 찾는 자세를 버리고 마음의 눈으로 보이는 가치 있는 것들에 눈을 떠야 합니다. 그냥 사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가치와 소중한 것들을 추구하며, 눈에 보이는 것 너머의 하느님의 손길을 읽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행복으로 가는 길은 가난의 길이요, 비움의 길입니다.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는”(9,58) 예수님의 길, 곧 운명과 처지를 받아들여 그분과 함께 걸을 때 비로소 우리는 행복을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행복은 낭만적인 풍경도 아니요 일시적인 감각의 자극으로 맛보는 감상적 충족감도 아닙니다. 행복은 고통과 어둠을 겪어냄으로써 만나는 선물입니다.

행복으로 가는 길은 버리고 떠나는 길입니다. 불확실하고 불안정한 하느님의 미래를 향해 과감히 자신을 던질 줄 알아야 합니다. 애착이 많아 버리지 못하고 생각과 행동이 묶여있다면 나는 결코 행복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상태에서는 자유롭게 행복 자체이신 예수님을 따를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소유와 애착이 있는 길은 폐쇄되고 말 것입니다. 영(靈)의 숨결이 막혀버리지요.

영원한 행복을 원한다면 내 인생에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를 명확히 인식하고 그 소중한 것을 위해 '즉각적으로' 찾아나서고 '뒤를 돌아봄 없이' 몰입하며 항구히 투신해야겠지요. 주님께서 먼저 부르셨든, 주님께서 나에게 영감을 주시어 내가 자발적으로 따라나섰든 예수님께서 걸으셨던 사랑의 길, 영원한 생명의 길을 선택하고 망설임없이 걸어갔으면 합니다. 거기에 참 행복이 있기 때문입니다.




 

2022년 09월 28일 [연중 제26주간 수요일]

 

빗나간 먼저~, 먼저~.”

 

복음(루카9,57-62)

57 예수님과 제자들이 길을 가는데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스승님을 따르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어떤 사람은물론 율법주의(律法主義사람이다어디로 가시든지어제 확인했듯이 예수님께서 죽으러 가시는 길이다그 죽음의 길을 따르겠다는 말? - 그러면 사는데아니 반드시 그래야 산다.

*어제묵상<율법(律法), 그 옛 계약의 심판(審判)으로 죽어야할 죄인들을 살리시기 위해(로마,20 야고2,10 갈라,10) 율법이 요구하는 죗값을 치루고 믿는 이들에게 의로움을 전가(傳家)시켜 주시기 위해(로마,21-24 히브7,18-19) 저주(詛呪)의 십자가(十字架)에 대신(代身달리시러곧 대속(代贖), 그 희생의 제사의 제물(祭物)이 되시기 위해 율법의 본거지(本據地)인 예루살렘에 가시는 것이다.>

예수님의 대속(代贖), 그 십자가(十字架)가 생명(生命), 구원(救援)의 길진리(眞理)이니 반드시 따라야한다그것이 자기 버림부인(否認)의 삶이다. (루가9,23)

 

(갈라2,19) 19 나는 하느님을 위하여 살려고율법과 관련해서는 이미 율법으로 말미암아 죽었습니다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율법(律法)이 내 죄()를 드러냈고그 죄()를 그리스도께서 대속(代贖)하셨다그래서 세상에 대해서 죽었고끊어졌고이제 그리스도로 사는 것그분과 함께 십자가(十字架)에 못 박힘이다.

 

(갈라5,24) 24 그리스도 예수님께 속한 이들은 자기 육을 그 욕정과 욕망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58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여우들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

예수님이 우리 모두의 머리이시다.

 

(1코린12,12.27) 12 몸은 하나이지만 많은 지체를 가지고 있고 몸의 지체는 많지만 모두 한 몸인 것처럼그리스도께서도 그러하십니다. 27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몸이고 한 사람 한 사람이 그 지체입니다.

 

(에페3,5-6) 5 그 신비가 과거의 모든 세대에서는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지만지금은 성령을 통하여 그분의 거룩한 사도들과 예언자들에게 계시되었습니다. 6 곧 다른 민족들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복음을 통하여공동 상속자가 되고 *한 몸의 지체가 되며 약속의 공동 수혜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자신의 뜻소원(所願)을 위해 각자의 머리(생각)로 살아가고 있기에 예수님께서 머리로 계실 곳이 없다 하심이다곧 예수님(머리)의 명령대로 살지움직이지 못하는 중풍병자(中風病者)하늘의 용서생명을 상속(相續)받지 못하는 헛된 신앙(信仰)을 살고 있음이다.

 

59 예수님께서는 다른 사람에게 나를 따라라.” 하고 이르셨다그러나 그는 주님, *먼저 집에 가서 아버지의 장사(葬事)를 지내게 허락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60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죽은 이들의 장사는 죽은 이들이 지내도록 내버려 두고너는 가서 하느님의 나라를 알려라.” 하고 말씀하셨다.

숨겨진 뜻은, ‘죽은 이들의 장사(葬事)’는 예수님께서 새 계약(契約)으로 치우신 옛 계약그 없음인 율법(律法)의 일이므로 하지 말라 하심이다. *먼저십자가의 대속그 새 계약으로 얻는 하늘의 용서(), 안식자유생명평화~’ 그 하느님 나라를 알고 선포(宣布)하라 하심이다.

 

61 또 다른 사람이 주님저는 주님을 따르겠습니다그러나 *먼저 가족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게 허락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62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

하느님 나라의 도구(道具), 곧 하느님의 계약(스타오로스), 그 십자가(스타오로스)의 복음(福音)을 듣고 뒤를 돌아봄은 옛 것에 대한 미련(未練), 애착(愛着)이 남아있음을 지적(指摘)하심이다.

먼저 하느님의 말씀을 진리(眞理)로 깨달아 믿고 전()해야곧 그리스도의 십자가(十字架)의 대속(代贖), 그 피의 새 계약(契約)을 가족들에게 선포(宣布)해야가족들이 그리스도(머리)의 지체(肢體)로 하늘의 상속(구원)을 받게 됨이 합당(合當)하다는 말씀이다.

 

(로마4,14) 14 율법에 따라 사는 사람들이 상속자라면믿음은 의미가 없어지고 약속은 무효가 됩니다.

율법(律法), 제사(祭祀)와 윤리(倫理), 교리(敎理)의 의()로는 구원(救援)받지 못한다. (로마3,20-24 야고2,10) *먼저율법(제사윤리교리)을 잘 지켜 착하게 살아야 하느님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성당(聖堂)활동전례(典禮)등에 열심하지 않으면 잘못이라 생각했다그러나 그 열심한 행위는 신앙이믿음이 아니었다믿음이 없기에 본당활동전례에 더 열심을 부렸던 것이다.

하느님의 뜻구원의 약속계약인 십자가의 대속그 그리스도의 죽음이 진리임을말씀을 통해 깨닫고 나니믿음으로 모든 것에서 자유하게 되었다.

 

(갈라3,22-25) 22 *성경은 모든 것을 죄 아래 가두어 놓았습니다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믿는 이들이 약속을 받게 되었습니다. 23 믿음이 오기 전에는 우리가 율법 아래 갇혀믿음이 계시될 때까지 율법의 감시를 받아 왔습니다. 24 그리하여 율법은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게 되도록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우리의 감시자 노릇을 하였습니다. 25 그러나 믿음이 온 뒤로 우리는 더 이상 감시자 아래 있지 않습니다.

 

☨ 영원한 보호자진리의 길로 인도하시는 천주의 성령님!

그리스도 안에 구원이진리가 있음을 먼저 깨닫고알고믿음으로 살게 하소서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아버지의 나라가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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