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08월 25일 목요일
[연중 제21주간 목요일] 너희도 깨어 準備하라. (마태24,42-51)
제1독서<그리스도 안에서 어느 모로나 풍요로워졌습니다.>(1코린1,1-9)
1 하느님의 뜻에 따라 그리스도 예수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바오로와 소스테네스 형제가
2 코린토에 있는 하느님의 교회에 인사합니다. 곧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다른 신자들이 사는 곳이든 우리가 사는 곳이든 어디에서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는 모든 이들과 함께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여러분에게 인사합니다.
3 하느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에게 내리기를 빕니다.
4 나는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여러분에게 베푸신 은총을 생각하며, 여러분을 두고 늘 나의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5 여러분은 그리스도 안에서 어느 모로나 풍요로워졌습니다. 어떠한 말에서나 어떠한 지식에서나 그렇습니다.
6 그리스도에 관한 증언이 여러분 가운데에 튼튼히 자리를 잡은 것입니다.
7 그리하여 여러분은 어떠한 은사도 부족함이 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시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8 그분께서는 또한 여러분을 끝까지 굳세게 하시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흠잡을 데가 없게 해 주실 것입니다.
9 하느님은 성실하신 분이십니다. 그분께서 당신의 아드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친교를 맺도록 여러분을 불러 주셨습니다.
화답송시편 145(144),2-3.4-5.6-7(◎ 1ㄴ 참조) ◎ 주님, 영영 세세 당신 이름을 찬미하나이다.
○ 나날이 당신을 찬미하고, 영영 세세 당신 이름을 찬양하나이다. 주님은 위대하시고 드높이 찬양받으실 분, 그분의 위대하심 헤아릴 길 없어라. ◎
○ 세대가 세대를 이어 당신 업적을 기리고, 당신 위업을 널리 전하리이다. 당신의 위엄 그 찬란한 영광을 이야기하고, 당신의 기적을 노래하리이다. ◎
○ 경외로운 당신 업적 그 위력을 말하고, 당신의 크나큰 위업을 선포하리이다. 넘치는 당신 은혜를 기억하고 알리며, 당신 의로움에 환호하리이다. ◎
복음<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마태24,42-51)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42 “깨어 있어라. 너희의 주인이 어느 날에 올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
43 이것을 명심하여라. 도둑이 밤 몇 시에 올지 집주인이 알면, 깨어 있으면서 도둑이 자기 집을 뚫고 들어오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44 그러니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기 때문이다.
45 주인이 종에게 자기 집안 식솔들을 맡겨 그들에게 제때에 양식을 내주게 하였으면, 어떻게 하는 종이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이겠느냐?
46 행복하여라, 주인이 돌아와서 볼 때에 그렇게 일하고 있는 종!
47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주인은 자기의 모든 재산을 그에게 맡길 것이다.
48 그러나 만일 그가 못된 종이어서 마음속으로 ‘주인이 늦어지는구나.’ 하고 생각하며,
49 동료들을 때리기 시작하고 또 술꾼들과 어울려 먹고 마시면,
50 예상하지 못한 날, 짐작하지 못한 시간에 그 종의 주인이 와서,
51 그를 처단하여 위선자들과 같은 운명을 겪게 할 것이다. 거기에서 그는 울며 이를 갈 것이다.”
연중 제21주간 목요일 독서 (1코린1,1-9)
'그리하여 여러분은 어떠한 은사도 부족함이 없이'(7)
코린토 교회에 대한 바오로의 또 다른 감사의 조건은 은사에 부족함이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은사'로 번역된 '카리스마티'(charismati)는 문맥에 따라 '구원'(로마5,15), '일반적인 하느님의 선물'(로마11,29), '성령의 특별한 능력'(1코린12,4) 등의 의미를 지닌 '카리스마'(Charisma)의 여격이다.
본절에 이르기까지는 아직 특별한 은사들이 구체적으로 거론되지 않으므로, 여기서 언급된 은사는 특별한 은사들을 염두에 두었다기보다는, 코린토 교회에 있는 여러 은사 및 넓은 의미의 '구원'이란 의미로 사용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본문은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은사를 주셨으며, 구원받기에 필요한 것이 조금도 부족함이 없도록 부요하게 하셨다는 의미가 된다.
한편, 바오로는 '어떠한~~부족함이 없이'로 번역된 '메 휘스테레이스타이~메데니'(me hystereisthai en medeni)에서 부정어 '메'와 '메데니'란 이중 부정어를 사용하여, 코린토 교인들이 풍성한 영적 은사를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특히 여기서 '휘스테레이스타이'(hystereisthai)는 본래 '필요한 것이 부족하다'라는 뜻을 지닌 원형 '휘스테레오'(hystereo)의 부정사이다. 이는 교회의 통상적 수준과 비교해서 부족하다는 의미일 수도 있고(1코린16,17; 골로1,24; 1테살3,10), 더 풍부하게 부여받은 다른 교회들과 비교해서 부족하다는 뜻일 수도 있다(2코후11,5; 12,11).
본절은 이 두 가지 의미를 모두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코린토 교회가 이 양면, 즉 교회의 통상적 수준이나 타 교회와 비교할 경우, 그 어떤 경우에 있어서도 뒤지지 않는 교회였다는 의미를 나타낸다.
단적으로 말해, 코린토 교회는 지상의 모든 교회가 염원하는 풍성한 구원의 은혜를 받았으며, 모든 은사들에 있어서도 부족함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본절은 하느님께서 코린토 교회에 구원의 복음을 선물로 제공하셨을 뿐만 아니라 모든 영적 은사들까지 부족함없이 베푸셨다는 사실을 잘 나타낸다. 이처럼 표면적으로 볼 때, 코린토 교회는 그 어느 교회보다 구원의 은혜와 성령의 은사가 넘쳐나는 교회였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시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7)
원문을 보면, 본문 앞에는 쉼표가 있으므로, 상반절과 구분되는 코린토 교회에 대한 바오로의 또 다른 감사 조건이다. 그것은 코린토 교인들이 재림의 신앙을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나타나시기를'로 번역된 '아포칼립신'(apokalipsin)은 '~으로부터 멀리 떨어져'란 뜻의 전치사'아포'(apo)와 '덮다'.'감추다'라는 뜻이 들어 있는 '칼립토'(kalipto)의 합성어에서 유래하여 '덮개를 벗김','드러냄','묵시'(계시)란 뜻을 지닌 '아포칼립시스'(apokalipsis)의 목적격으로 본절에서는 감추었던 사실이 드러나는 것을 의미하는 종말론적인 용어로 쓰였다.
즉 본절에서 이 단어는 현재 우리가 생각하는 그리스도께 대한 진리는 완벽한 것이 아니어서 종말에 이르러서야 그 궁극적 의미가 완전히 드러날 것임을 암시한다.
그리스도인들이란 바로 이 그리스도의 재림의 때, 즉 종말의 때를 '기다리는'이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다리고 있습니다'로 번역된 '아펙데코메누스'(apekdechomenus)는 여기서 강조를 나타내는 접두어로 쓰인 '아포'(apo)와 그 자체로 이미 '기다리다'(요한5,3),'바라다'(히브11,10)란 의미가 있는 단어 '엑데코마이'(ekdechomai)의 합성어로서,'열심히 그리고 끈기있게 기다리다'(1베드3,20; 로마8,19.23.25; 갈라5,5)라는 뜻을 지닌 '아펙데코마이'(apekdechomai)의 현재 분사형으로,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코린토 교인들의 계속되는 강렬한 열망을 나타내고 있다.
당시 코린토 교인들은 그리스도의 재림의 약속을 굳게 믿었을 뿐 아니라 이러한 약속이 머지 않아 이루어질 것이라는 열망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이 이러한 종말에 대한 열망이 지나쳐 자칫 잘못된 신앙관을 가질 우려가 많았지만, 바오로는 일단 다시 오실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그들의 신앙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분께서는 또한 여러분을 끝까지 굳세게 하시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흠잡을 데가 없게 해 주실 것입니다.'(8)
앞의 4-7절에서 바오로는 코린토 교회의 긍정적인 측면에 대하여 감사의 뜻을 나타내었다. 이제 이어지는 8-9절에서는 이러한 코린토 교회를 성실하신 하느님께서 굳세게 지키시라는 바오로의 확신이 언급되고 있다.
그런데 코린토 교회를 끝까지 굳세게 할 주체가 '그분께서는'으로 번역된, 관계대명사 '호스'(hos)로 나와 있는데, 이러한 '호스'는 9절과 관련지어 '하느님 아버지'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러면 '하느님 아버지께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견고케 하실 것입니다'의 의미가 된다.
한편,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이라는 표현은 바오로 서간에서 그리스도의 재림을 나타내는 전문 용어로 나온다. 이 날은 믿는 자들에게는 축복의 날이요,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심판의 날(1코린3,13; 4,3; 아모5,2)이다.
이 표현은 아모스 5장 18~20절이나 요엘서 2장 31절 등에서 표현된 '주님의 날'을 바오로가 그리스도론적으로 차용한 것으로,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심판하신다는 사상(사도 17,31; 로마2,16)함축한다.
이 마지막 심판의 날은 그리스도께 대한 봉사 뿐 아니라 그 봉사하는 마음의 목적과 동기까지 드러나는 날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이 마지막의 날을 불안과 염려로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희망으로 고대한다.
'흠잡을 데가 없게 해 주실 것입니다'로 번역된 '아넹클레투스'(anengkletus)의 원형 '아넹클레토스'(anengkletos)는 '고소하다','비난하다'라는 뜻을 지닌 '엥칼레오'(engkaleo)와 부정 접두어 '아'(a)의 합성어로 '비방할 수 없을 만큼 흠이 없는 상태'를 지칭한다.
당시 코린토 교인들에게는 여러 가지 과오가 있었으나 장차 흠없는 상태가 될 수 있는 것은 그들 자신의 흠없기 위한 노력 때문이 아니라 그들을 끝까지 세우시는 하느님께서 성실하시기 때문이다(9절).
본절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이란 표현과 더불어 언급된 '흠잡을 데가 없게 해 주실 것'이라는 표현은 현재의 의로움과 구원의 의미라기 보다는 미래의 종말론적 '성화의 완성' 혹은 '영광'의 관점에서 보는 것이 적절하다(로마8,28-30).
한편,'굳세게 하시어'로 번역된 '베바이오세이'(bebaiosei)는 이미 6절에서 언급된 '튼튼히 자리를 잡은'으로 번역된 적이 있는 동사로서 '베바이오오'(bebaioo)의 미래형이다.
희랍어에서 미래형은 가정법과 달리 확실한 미래의 사실을 나타낼 때 주로 쓰인다. 본문에서도 이것은 하느님의 흔들리지 않는 약속의 효과를 나타낸다.
바오로는 이미 4-7절에서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코린토 교회에 풍성하고 부족함없이 은사를 베풀어주신 사실에 대해 감사했고, 9절에서 하느님의 성실하심을 선포하고 있기 때문에, '베바이오세이'가 '베바이오오'의 미래형으로 단순히 바오로의 소원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의 확신을 선포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영적 분별력과 통찰력, 지각력이 뛰어난 바오로는 코린토 교인들이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에 반드시 구원에 이를 것이라는 사실을 확정적으로 선포하고 있는 것이다.
2022년 08월 25일 목요일
[연중 제21주간 목요일] 매일묵상 (정용진 요셉 신부)
죽음은 우리에게 불현듯 닥쳐옵니다. 그러나 그 시간은 하느님께서 정하신 시간입니다.
우리가 죽음의 시간을 분명하게 알지 못하는 것은 우리의 본성에서 비롯하는 당연한 이치입니다.
생명은 그 자체로 신비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생명이 우리에게서 떠나가는 것은 우리가 우리의 생명을 소유하지 못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생명이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생명을 누릴 뿐입니다.
오늘 복음은 주인에 관하여 이야기합니다.
자신을 마치 집주인처럼 여기는 종은 예상치 못한 날에 주인의 처단을 받을 것입니다.
또한 자기 생명을 자기 것이라고 여기는 사람도 마침내 그것을 잃을 것입니다.
생명은 선물로 받은 것이기에 그것을 선물로 내줄 줄 아는 사람만이 생명을 잃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내 생명의 주인인 것처럼 살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모든 것을 소유하려는 탐욕으로 가득한 주인의 태도를 가지지 않아야 합니다.
자기 생명을 놓고 주인 행세를 하는 사람은 이미 그 생명을 잃은 사람입니다.
창세기의 ‘첫 사람’은 하느님과 같아져서 하느님처럼 생명의 주인 행세를 하려 하였지만 실패하였습니다(창세 3,5 참조).
사실 그의 생명은 그의 것이 아니라 주님께 받은 선물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님께 받은 생명을 형제들과 선물로 나누지 않으면,
우리는 더 이상 그들의 형제가 아니고 그분의 자녀도 아닙니다.
내 생명의 주인이 하느님이시라는 사실을 잊지 맙시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늘 하느님을 의식하며 살고,
생명의 주인이신 하느님 앞에서 우리 자신을 내놓고 사는 것이 깨어 있는 사람의 태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주님 것이라네, 세상과 그 안에 가득 찬 것들, 누리와 그 안에 사는 것들”(시편 24[23],1).
(정용진 요셉 신부)
2021년 8월 26일 [연중 제21주간 목요일]
참 기쁨, 자유가 있는 곳에 마음을~
복음(마태24,42-51)
42 “깨어 있어라. 너희의 주인이 어느 날에 올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 43 이것을 명심하여라. 도둑이 밤 몇 시에 올지 집주인이 알면, 깨어 있으면서 도둑이 자기 집을 뚫고 들어오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44 그러니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기 때문이다.
= 늘 깨어있으라는 말씀이다.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때에 오신단다. 우리의 힘으로는 불가능 하다는 말씀이다. 그래서 오늘 그 길, 방법(方法)을 알려주신다.
45 주인이 종에게 자기 집안 식솔들을 맡겨 그들에게 *제때에 양식을 내주게 하였으면, 어떻게 하는 종이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이겠느냐?
= 제때- 구약을 건너 신약이 완성된 성령의 때다. *구약의 상선벌악(賞善罰惡)의 하느님께서 그 악의 대속으로 아들 예수를 이 땅에 보내셨고, *신약에서 그 하느님의 뜻인 대속을 십자가(十字架)에서 “다 이루어졌다” 하신 그리스도의 때를 지나 *성령께서 그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의 진리로 증언(證言)하시며 죄인들의 무죄(無罪), 구원을 선포하신 때에 살고 있다.
곧 하느님의 율법(律法, 십계명과 제사)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대속(代贖)으로 다 이루시고, 성령께서 자유의 법을 선포하신 때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로마8,1-3) 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이들은 단죄를 받을 일이 없습니다. 2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생명을 주시는 성령의 법이 그대를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시켜 주었기 때문입니다. 3 율법이 육으로 말미암아 나약해져 이룰 수 없던 것을 하느님께서 이루셨습니다. 곧 당신의 친 아드님을 죄 많은 육의 모습을 지닌 속죄 제물로 보내시어 그 육 안에서 죄를 처단하셨습니다.
= 그러므로, 창조이전부터 그리스도(십자가)를 통한 구원을 계획하신 그 전지전능하신, 인간의 지각(知覺)으로는 알 수 없는 그 사랑의 창조주 하느님을, 그분의 말씀을 ‘착하게 살아라, 나쁜 짓하지 마라’ 하는(초등학교 교과서에나 나오는) 그 인간들이 합의(合意)한 계명, 법(法)의 하느님으로, 말씀으로 주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의 도리(道理)이지 구원의 조건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요한16,8~참조)
(마태7,21-23) 21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 22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에게, ‘주님, 주님! 저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고,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을 일으키지 않았습니까?’ 하고 말할 것이다. 23 그때에 나는 그들에게,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내게서 물러들 가라, 불법을 일삼는 자들아!’ 하고 선언할 것이다.”
= 하느님의 뜻을 실행(實行)하는 것, 종교행위를 열심히 하라는 말씀이 아니다. *예언(預言)- 성경을 통해 완성된 예언, 말씀을 주셨고, *기적(奇蹟)- 쓴물이 단물이 되는 곧 죄인을 의인으로 만드는 참 기적은 십자가(十字架)에서 다 이루어졌다. (보이는 기적은 사탄도 부린다. 마르13,22) *구마(驅魔)- 십자가의 대속, 그 하느님의 용서(容恕), 사랑(아가페)을 깨닫고 믿었을 때 일어난다. 말씀이 구마하신다.(마태8,16)
그러므로 제때에 양식을 내 준다는 것은 종교 행위도, 도덕과 윤리의 가르침도 아닌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용서, 구원, 그 무조건적 사랑의 새 계약을 주는 것이며 그것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것이다.
(히브9,15) 15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새 계약의 중개자이십니다. 첫째 계약 아래에서 저지른 범죄로부터 사람들을 속량하시려고 그분께서 돌아가시어, 부르심을 받은 이들이 약속된 영원한 상속 재산을 받게 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 율법(律法)이 죽고, 자유의 법이 부활한 것이다. 그 모든 것을 증언하시는 분이 우리의 보호자(保護者) 성령이시다.
(히브10,15-17) 15 성령께서도 우리에게 증언해 주시니, 먼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16 “그 시대가 지난 뒤에 내가 그들과 맺어 줄 계약은 이러하다. -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나는 그들의 마음에 내 법을 넣어 주고 그들의 생각에 그 법을 새겨 주리라.” 17 그리고 이렇게 덧붙이셨습니다. “나는 그들의 죄와 그들의 불의를 더 이상 기억하지 않으리라.”
= 이 시대, 제때에 고백성사의 짐을 지울 때가 아니라(진실(眞實)된 고백을 하는 이가 얼마나 될까? 양심을 속이는 위선(僞善), 거짓이라는 죄가 추가될 수도 있다) 하느님의 사랑의 법, 새 계약, 그 말씀을 주어야 할 때라는 것이다. 그래야 그 새 계약으로 양심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다.
(1요한3,18) 18 자녀 여러분, 말과 혀로 사랑하지 말고 행동으로 진리 안에서 사랑합시다.
= 사람 마음의 사랑이 아닌 진리(眞理) 안에서의 사랑, 곧 하느님의 사랑(아가페)을 전(傳)하는 그 행동을 말한다.
(1요한3,19-20) 19 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해 있음을 알게 되고, 또 그분 앞에서 마음을 편히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20 마음이 우리를 단죄하더라도 그렇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마음보다 *크시고 또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히브10,22) 22 그러니 진실한 마음과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하느님께 나아갑시다. 우리의 마음은 그리스도의 피가 뿌려져 악에 물든 양심을 벗고 깨끗해졌으며, 우리의 몸은 맑은 물로 말끔히 씻겨 졌습니다.
= 그리스도의 피, 새 계약의 피다. 성찬례(聖餐禮) 때에 그 새 계약을 먹게 해야 한다.
46 행복하여라, 주인이 돌아와서 볼 때에 그렇게 일하고 있는 종! 47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주인은 자기의 모든 재산을 그에게 맡길 것이다.
= 하느님의 모든 재산(財産), 곧 하느님의 모든 말씀을 깨닫게 해 주신다는 약속(約束)이다. 그리고 그 깨달음, 곧 자유의 법을 전해 받은 이웃이 하늘의 생명을 얻게 된다는 말씀이신 것이다.
(야고2,12) 2 여러분은 장차 자유의 법에 따라 심판받을 사람으로서 *말하고 행동하십시오.
48 그러나 만일 그가 못된 종이어서 마음속으로 ‘주인이 늦어지는구나.’ 하고 생각하며, 49 동료들을 때리기 시작하고 또 술꾼들과 어울려 먹고 마시면,
= 새 계약을 말하는 사람을 때리며(핍박 하며), 술에 취하면(술은 밀과 누룩이 섞여질 때 나온다), 곧 하느님의 말씀에 인간의 뜻을 섞어 사람의 마음을 만족시키는(취하게 하는) 삶을 살면~
(레위19,19) 19 너희 밭(마음)에 서로 다른 두 가지 씨앗을 뿌려서는 안 된다.
50 예상하지 못한 날, 짐작하지 못한 시간에 그 종의 주인이 와서, 51 그를 처단하여 위선자들과 같은 운명을 겪게 할 것이다. 거기에서 그는 울며 이를 갈 것이다.”
= 그리스도인은 성령(聖靈)에 취해야 한다. 그래야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한 무죄, 그 자유의 계약을 깨닫고 믿을 수 있다.(요한14,26 1코린2,10 참조)
(로마8,8-10) 8 육 안에 있는 자들은 하느님 마음에 들 수 없습니다. 9 그러나 하느님의 영이 여러분 안에 사시기만 하면, 여러분은 육 안에 있지 않고 성령 안에 있게 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을 모시고 있지 않으면, 그는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 10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면, 몸은 비록 죄 때문에 죽은 것이 되지만, 의로움 때문에 성령께서 여러분의 생명이 되어 주십니다.
= 옛 계약(율법)의 하느님의 영(율법- 죄를 알라고 주신 것), 새 계약(진리)을 이루신 그리스도의 영(대속으로 이루심) 곧 진리의 영, 성령께서 우리의 생명이 되어 주신다. 그 성령을 깨닫고(준비), 믿고, 의탁하는 것이 ‘늘 깨어있음’이다. 그러면 하느님의 영이시며 그분의 뜻을 통찰(洞察)하시는 성령께서 내 모든 것의 주인이 되시어 늘 지켜 주신다.
인간肉)의 마음 성찰, 마음 정화는 깨어있음이 될 수 없다. 작은 바람(試鍊)에 쉽게 흔들리곤 하기에 늘 깨어있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신약(新約), 성령의 시대란- 구약의 전통(傳統)에서는 감히 꿈도 꾸지 못할 하늘나라를 현세(現世)에서 누리며 살도록, 하느님의 무상 은총(은혜)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미 주신 것이다. 이것을 보고, 듣고, 깨달아 믿고, 살도록 가르쳐야하는 것이 그리스도교다. (冊 ‘황금률’ 중에서)
☨보호자 성령님! 성령으로 충만하게, 취하게 하시어 늘 깨어있는 삶을 살게 하소서. 참 기쁨, 자유가 있는 곳에 마음을 두게 하소서. 위선의 기쁨, 거짓의 자유에 취한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연중 제21주간 목요일 복음 (마태24,42-51)
"깨어 있으라. 너희의 주인이 어느 날에 올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 이것을 명심하여라. 도둑이 밤 몇 시에 올지 집주인이 알면, 깨어 있으면서 도둑이 자기 집을 뚫고 들어오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 (42~44)
예수님의 재림 시기를 알지 못하는 우리가 어떤 태도로 살아가야 할 지를 교훈하는 내용이다. '깨어 있으라'에 해당하는 '그레고레이테'(gregoreite; stay awake!)는 '지켜보다', '주의하다', '경계하다'라는 뜻을 가진 원형 '그레고류오'(gregoreuo)의 현재 명령형이다.
여기서 '지켜 보다'의 뜻은 단지 심판의 날을 눈을 뜨고 지켜 보는 것이 아니라 정신차리고 주의하여 그날을 예비하라는 의미이다.
무관심과 나태, 영적인 깊은 잠에 빠져서 그날을 갑작스럽게 당황해 하며 맞이하지 말고 (1테살 5,3) 영적으로 각성하여 언제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든지 주님을 맞을 준비가 된 상태로 살아가라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 동사가 현재 명령형이라는 것은 그러한 상태를 항상 현재처럼 유지하라는 뜻이다.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자도 항상 자신이 살아가는 현재에 그런 일이 일어날 것처럼 예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이것을 명심하여라'에 해당하는 '에케이노 데 기노스케테'(ekeino de ginoskete; but understand this; but know this)에서 '기노스케테'도 원형 '기노스코'(ginosko)의 2인칭 복수 현재 명령형으로 보아 '그러나 너희들은 이것을 알라'로 해석하는 것이 좋다.
도둑이 '밤 몇 시에 올지'에 해당하는 '포이아 퓔라케'(poia phylake; at what time of night; the hour of night when)에서 중요한 단어는 '퓔라케'(philake)이다.
'경점'(更點)으로 번역될 수 있는 '퓔라케'(phylake)는 망루나 성문에서 파수를 보는 병사가 경계하며 지키는 것을 의미하는 동사 '퓔랏소'(phylasso)에서 유래한 명사로서 '경계하는 것', '파수하는 것'을 의미한다.
신약에서는 46회 용례 중에서 36회가 '감옥'(prison)으로 번역되었는데, 감옥은 보초병이 죄수들의 동태를 지키기 위해 잠자지 않고 경계 근무를 서는 곳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본문에서는 보호병이나 성(城)의 파수병이 경계 근무를 서면서 교대병과 교대하는 시간을 나타내는 의미로 쓰였다.
하루의 저녁 6시부터 다음 날 새벽 6시를 '밤'으로 규정한다면, 이스라엘은 이 밤을 세부분으로 구분하였고, 로마의 지배 이후에는 밤을 네부분으로 구분하였다.
사실 도둑이 들어오는 시간을 현실적으로 아는 것이 불가능한 시간이다. 그 시간은 오전히 도둑의 마음에 달려 있다.
예수님께서 당신이 재림하시는 시간을 도둑의 시간에 비유하고 있다.
예수님께서 역사의 한 시점을 선택하여 재림할 것인데, 당신이 몸소 심판을 주도하신다는 뜻을 계시한 것이다.
그리고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기 때문이다'(for at an hour you do not expect, the Son of Man will come)라고 마태오 복음 24장 44절 후반의 동사가 미래적 의미로 번역되었다.
그러나 원문에서는 '올 것이기'에 해당하는 '에르케타이'(erchetai)는 원형 '에르코마이' (erchomai)의 현재 시제이다. 말하자면, 예수님의 재림은 매우 긴박한 일이며, 항상 현재성을 갖는다는 사실을 암시하기 위해서이다.
마태오 복음 24장 37절 이하에는 사람의 아들의 재림 때에도 노아 때처럼, 홍수가 닥쳐 모두 휩쓸어 갈 때까지 아무도 모르는 일과 같이 그럴 것이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다.
우리는 너무나도 자신의 영혼의 구원 문제나 생명의 말씀에 관심없이 이 땅에만 머리를 박고 세속적으로 살고 있기 때문에 영원을 놓칠 수 있는 가능성이 100%이다.
지구가 멸망하든, 태양계에 이상한 현상이 일어나든, 핵전쟁이 일어나든, 어느 분들이 에언한 것들이 그대로 내 눈 앞에서 이 지구상에 이루어지든 우리는 철학자 스피노자의 말처럼 한 그루의 사과 나무를 심어야 한다.
주님 재림 시기의 불(不)예측성처럼 나의 개인적 죽음의 시간도 불(不)예측성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언제 어떻게 죽고, 언제 주님께서 오시든지 그것은 아무 상관이 없다. 문제는 그런 일이 필연적으로 일어났을 때의 나의 영혼 상태가 중요한 것이다.
주님 심판 대전에 할렐루야로 응답할 수 있어야 하고, 주님의 십자가 앞에 부끄러움이 없어야 한다. 이것이 본질적인 것이다.
그러러면 미리미리 우리 영혼이 은총의 지위를 회복하여야 하고, 그 은총의 지위를 잘 관리해야 하고, 먼훗날 우리들의 모습속에서 성부 하느님께서 당신 아들 예수님의 모습과 성모님의 모습을 발견하고 기뻐하시고 안아주실 수 있도록 그분 뜻에 맞는 삶을 살아야 한다.
2022년 08월 25일 [연중 제21주간 목요일]
사도(使徒)여! 예수님의 복음(福音)을 듣고 싶습니다.((요한12,21)
복음(마태24,36-51)
36 “그러나 그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로지 *아버지만 아신다.
= 인간의 지혜, 의지, 노력으로는 절대 알 수 없는 ‘그날과 그 시간’이다. 어제 확인했듯 아버지의 뜻을 아시며 통찰(洞察)하시는 성령(聖靈)님만이 아신다.(1코린2,10)
37 노아 때처럼 사람의 아들의 재림도 그러할 것이다. 38 홍수 이전 시대에 사람들은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는 날까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하면서,
= 일상(日常)의 인간(人間)들의 삶이다.
39 홍수가 닥쳐 모두 휩쓸어 갈 때까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사람의 아들의 재림도 그러할 것이다.
= 하느님과 그분의 나라, 뜻에는 관심이 없고 자신들의 나라, 뜻에 정신이 팔려 살았다는 것이다. 곧 뱀의 유혹(誘惑)에 팔려 하느님처럼의 자리에 앉은 교만(驕慢)으로~, 성경은 그것을 어둠의 헛되고 헛된 삶, 죽음, 죄악(罪惡)이라 한다.
(갈라3,22) 22 그러나 성경은 모든 것을 죄 아래 가두어 놓았습니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믿는 이들이 약속을 받게 되었습니다.
40 그때에 두 사람이 들에 있으면,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이다. 41 두 여자가 맷돌질을 하고 있으면,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이다.
= 들에서 농사지어 맷돌질로 일용할 양식(糧食)을 구(求)하는 일을 할 때, 곧 구원의 양식을 구(求)하는 신앙(信仰)을 살 때 선과 악, 그 두 법으로, 곧 옛 계약을 행하며 ‘의롭다’하면 땅속에 놔두시고, 선과 악을 하나로, 곧 선이 악을 품고 죽어 용서(容恕), 생명을 주시는 ‘피의 새 계약’을 믿어 ‘의롭다’하면 ‘하늘로 데려 가신다’는 말씀이다. (로마3,20-25 10,1-4참조)
(히브10,9-10) 9 “보십시오,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두 번째 것(새 계약)을 세우시려고 그리스도께서 첫 번째 것(옛 계약)을 치우신 것입니다. 10 이 “뜻”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새 계약)이 단 한 번 바쳐짐으로써 우리가 거룩하게 되었습니다.
= 성령(聖靈)께서 증언(證言)하신다.(로마8,1-5 히브10,15-18참조)
42 그러니 깨어 있어라. 너희의 주인이 어느 날에 올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 43 이것을 *명심하여라. 도둑이 밤 몇 시에 올지 집주인이 알면, 깨어 있으면서 도둑이 자기 집을 뚫고 들어오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44 그러니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기 때문이다.
= 도둑이 언제 올지 모르는 것처럼 사람이 생각지도 못한 때에 오시는 주님을 인간의 지혜, 능력으로 어떻게 준비하고, 무슨 수로 깨어있겠는가? 불가능(不可能)하다. 하느님의 뜻, 생각을 통찰하시는 성령께 의탁하면 된다.
곧 피조물(被造物)인 인간들이 뱀의 유혹으로(거짓, 헛된 가르침) 자신들의 주인이신 창조주(創造主)의 자리에 앉아 하느님처럼 되어(창세3,5) ‘자신이 주인 노릇했던 그 교만(驕慢)의 자리’에서 내려오라는 말씀이다. 그리고 영원한 보호자로 오신 성령께 내어 드리라는 말씀이신 것이다.
(시편121,3) 3 그분께서는 네 발이 비틀거리지 않게 하시고 너를 지키시는 그분께서는 졸지도 않으신다.
*성령께서 하시는 일을 되새기며 믿는 것이 깨어있음이다.
45 주인이 종에게 자기 집안 식솔들을 맡겨 그들에게 제때에 양식을 내주게 하였으면, 어떻게 하는 종이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이겠느냐?
= 제때의 양식, 구약의 때가 아닌 신약을 지나 성령의 때다. 성령께 의탁하여 선악의 옛계약, 율법과 인간들의 계명, 지혜가 아닌, 그리스도의 대속, 그 피의 새 계약을 용서, 생명, 구원의 양식(糧食), 진리로 깨달아 주는 것이다. 그리고 은총(恩寵) 자체이신 성령님께 믿음을 낳게 하도록 기도(祈禱)하는 것이다. 그가 하느님의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이다.
46 행복하여라, 주인이 돌아와서 볼 때에 그렇게 일하고 있는 종!
= 하느님께는 어리석음인(1코린1,20) 세상의 의(義), 논리, 지혜를 가르침으로 주지도, 받지도 말라는 말씀이다.
아무리 훌륭한 말, 지혜(知慧)의 가르침을 해도 그 안에 하느님의 지혜(智慧)이신 그리스도와 십자가(十字架)가 들어있지 않으면 모두 헛된 것이다. (1코린1,8 2,1-7참조)
47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주인은 자기의 모든 재산을 그에게 맡길 것이다.
= 하느님의 모든 말씀을 구원의 진리(眞理), 지혜로 깨닫고 믿게 해 주신다는 약속이신 것이다. 슬기롭고 충실한 종으로 이웃에게 올바른 양식, 곧 하느님의 말씀을 ‘도덕(道德)과 윤리(倫理)의 사람의 말이 아닌 생명(生命)의 양식(糧食)으로 먹여 살리도록’말이다.(요한4,14 1테살2,13참조)
48 그러나 만일 그가 못된 종이어서 마음속으로 ‘주인이 늦어지는구나.’ 하고 생각하며, 49 동료들을 때리기 시작하고 또 술꾼들과 어울려 먹고 마시면,
= 술(酒)은 밀과 누룩이 섞어져 나온다. 곧 하느님의 말씀에 인간들의 말, 도리(道理)를 섞어 인간들의 입맛에 맞춘 가르침으로(마르8,15) 인간의 마음을 만족하게, 취하게 하는 술(酒)같은 말씀으로 준다면~
50 예상하지 못한 날, 짐작하지 못한 시간에 그 종의 주인이 와서, 51 그를 처단하여 위선자들과 같은 운명을 겪게 할 것이다. 거기에서 그는 울며 이를 갈 것이다.”
= 헛된 죽은 씨의 말씀, 곧 살아있는 씨(진리)의 말씀이 없으니 이(齒)를 갈게 할 뿐이다.
(1베드1,23.25) 23 여러분은 썩어 없어지는 씨앗이 아니라 썩어 없어지지 않는 씨앗, 곧 살아 계시며 영원히 머물러 계시는 하느님의 말씀을 통하여 새로 태어났습니다. 25 주님의 말씀은 영원히 머물러 계시다.” 바로 이 말씀이 여러분에게 전해진 복음입니다
= 말씀을 받아 진리로, 마음에 간직한 사람이 의롭고 정결한 사람이며, 그 에게 만이 새김질 할, 씹을 양식이 있는 것이다.(레위11,2 에페5,26참조) ‘말씀을 되새김질’하는 것이 하느님과의 만남이며 기도요 신자들의 특권(特權)이다.
그래서 가르침 중, 아무리 훌륭한 인물이라 해도 그 ‘사람의 의지(意志), 노력(努力), 열성(熱誠)을 본받자’고 한다면 앞서 확인했듯, 인간의 능력 밖이기에 깨어있음이 될 수 없으며 ‘구원의 믿음과도 상관없는 헛것’이 된다. 신자들을 헛갈리게 할뿐, ‘무거운 짐으로 헛된 신앙(信仰)을 살게 하는 것’이다.(로마10,1-3 에페2,7-9참조)
(마태15,14) 14 그들을 내버려 두어라. “그들은 눈먼 이들의 눈먼 인도자다. 눈먼 이가 눈먼 이를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질 것이다.”
(2티모4,3) 3 사람들이 건전한(진리) 가르침을 더 이상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을 때가 올 것입니다. 호기심에 가득 찬 그들은 자기들의 욕망에 따라 교사들을 모아들일 것입니다.
(1요한,4,1) 1 사랑하는 여러분, 아무 영(말)이나 다 믿지 말고 그 영(말)이 하느님께 속한 것인지 시험해 보십시오. *거짓 예언자들이 세상으로 많이 나갔기 때문입니다.
(사도17,11) 11 그곳 유다인들은 테살로니카의 유다인들보다 점잖아서 말씀을 아주 기꺼이 받아들이고, *그것이 사실인지 알아보려고 날마다 성경을 연구하였다.
= 말씀을 모르면 헛된 가르침을 받아도 분별(分別)할 수가 없다. (*저희와 나누는 복음을 매일 받으면 가능하다.)
(요한12,21) 21 그들은 갈릴래아의 벳사이다 출신 필립보에게 다가가, “선생님, 예수님을 뵙고 싶습니다.” 하고 청하였다.
= “신부님! 그리스도 예수님을 만나고 싶습니다.”
“사제(司祭)님! 교회 밖에서 이미 배우고 듣는 영화(映畵)이야기, 경제(經濟), 문화(文化), 사람들의 이야기 말고,(그런 이야기 들을 시간이 없습니다.) 교회(敎會) 안에서는 ‘그리스도의 복음(福音)’을 듣고 싶습니다. 갈급(渴急)합니다. 목이 마른줄도 모르는 영(靈)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 영원한 보호자 천주의 성령님!
저희 모두의 마음과 삶에 충만 허소서. 아버지의 나라(진리)가, 아버지의 뜻(더 큰일)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흙인 나)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