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0주간 토요일] 이 세상 누구도 아버지라고 부르지 마라. (마태23,1-12)

2022. 8. 19. 오후 6:13:17

글자


 

20220820일 토요일


[연중 제20주간 토요일] 이 세상 누구도 아버지라고 부르지 마라. (마태23,1-12)

 

1독서<주님의 영광이 주님의 집으로 들어갔다.>(에제43,1-7)

천사가 1 나를 대문으로, 동쪽으로 난 대문으로 데리고 나갔다.

2 그런데 보라, 이스라엘 하느님의 영광이 동쪽에서 오는 것이었다그 소리는 큰 물이 밀려오는 소리 같았고, 땅은 그분의 영광으로 빛났다.

3 그 모습은 내가 본 환시, 곧 그분께서 이 도성을 파멸시키러 오실 때에 내가 본 환시와 같았고, 또 그 모습은 내가 크바르 강 가에서 본 환시와 같았다. 그래서 나는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렸다.

4 그러자 주님의 영광이 동쪽으로 난 문을 지나 주님의 집으로 들어갔다.

5 그때 영이 나를 들어 올려 안뜰로 데리고 가셨는데, 주님의 집이 주님의 영광으로 가득 차 있었다.

6 그 사람이 내 곁에 서 있는데, 주님의 집에서 나에게 말씀하시는 소리가 들렸다.

7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사람의 아들아, 이곳은 내 어좌의 자리, 내 발바닥이 놓이는 자리다. 내가 이스라엘 자손들 가운데에서 영원히 살 곳이다.”

 

화답송<시편 85(84),9ㄱㄴㄷ10.11-12.13-14>(10참조) 주님 영광 우리 땅에 머물리라.

하느님 말씀을 나는 듣고자 하노라. 당신 백성, 당신께 충실한 이에게, 주님은 진정 평화를 말씀하신다. 그분을 경외하는 이에게 구원이 가까우니, 영광은 우리 땅에 머물리라.

자애와 진실이 서로 만나고, 정의와 평화가 입을 맞추리라. 진실이 땅에서 돋아나고, 정의가 하늘에서 굽어보리라.

주님이 복을 베푸시어, 우리 땅이 열매를 내리라. 정의가 그분 앞을 걸어가고, 그분은 그 길로 나아가시리라.

 

복음<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마태23,1-12)

1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과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모세의 자리에 앉아 있다.

3 그러니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는 것은 다 실행하고 지켜라. 그러나 그들의 행실은 따라 하지 마라.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

4 또 그들은 무겁고 힘겨운 짐을 묶어 다른 사람들 어깨에 올려놓고, 자기들은 그것을 나르는 일에 손가락 하나 까딱하려고 하지 않는다.

5 그들이 하는 일이란 모두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성구갑을 넓게 만들고 옷자락 술을 길게 늘인다.

6 잔칫집에서는 윗자리를,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를 좋아하고,

7 장터에서 인사받기를, 사람들에게 스승이라고 불리기를 좋아한다.

8 그러나 너희는 스승이라고 불리지 않도록 하여라. 너희의 스승님은 한 분뿐이시고 너희는 모두 형제다.

9 또 이 세상 누구도 아버지라고 부르지 마라. 너희의 아버지는 오직 한 분, 하늘에 계신 그분뿐이시다.

10 그리고 너희는 선생이라고 불리지 않도록 하여라. 너희의 선생님은 그리스도 한 분뿐이시다.

11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12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연중 제20주간 토요일 제1독서(에제43,1~7ㄷ)

 

"그러자 주님의 영광이 동쪽으로 난 문을 지나 주님의 집으로 들어갔다.(4) 그때 영이 나를 들어 올려 안뜰로 데리고 가셨는데,  주님의 집이 주님의 영광으로 가득 차 있었다. (5)  사람의 아들아, 이곳은 내 어좌의 자리, 내 발바닥이 놓이는 자리다. 내가 이스라엘 자손들 가운데에서 영원히 살 곳이다."(7)


'그러자 주님의 영광이 동쪽으로 난 문을 지나 주님의 집으로 들어갔다.'(4)

성전 동쪽에 임하였던 주님의 영광이 성전 안으로 들어가는 장면에 관한 묘사이다. 주님의 영광이 예루살렘 성전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사용한 문은 예루살렘 동쪽으로 난 문이었다.

에제키엘서 9장 3절에서 성전 문지방에 머물던 하느님의 영광이 10장 18절과 19절에서 성전 문지방을 떠나 커룹들 위에 머물고 있던 곳도 동쪽으로 난 문이었다.


또한 11장 1절 보면, 하느님께서 하느님의 영으로 에제키엘을 데리고 와서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심판과 회복에 대한 메시지를 선포하신 장소 동쪽 대문이었고, 이어지는 11장 22절~24절에서 하느님의 영광이 성전을 완전히 떠나는 장소도 동쪽 대문이었다.

또한 새 성전에 대한 환시의 보도인 40장 6절 보면, 이 동쪽 대문은 천사의 인도를 받은 에제키엘이 성전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사용되었고, 주님의 영광이 성전 안으로 들어간 곳도 동쪽 대문이었다.


에제키엘은 성전 멸망에 관한 보도에서 주님의 영광이 떠나시는 장소였던 동쪽 대문을 통해 다시 돌아오는 장면을 강조함으로써, 새 성전이 "파괴된 예루살렘 성전의 회복"의 성격을 지닌 것으로 부각시킨다.

이러한 장면 묘사를 통해 에제키엘은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에게 심판을 선언하시고 시행하신 이후에, 다시 찾아오셔서 은혜의 회복을 선포하실 것임을 우회적으로 전달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또한 특별히 에제키엘 44장 2절에서는 성전 밖, 동쪽으로 난 대문을 영원히 닫을 것을 명령하신다. 이러한 동쪽 대문 폐쇄 명령은 이 성전에서 주 하느님께서 가장 높으신 분이심을 부각시키는 것이며, 동시에 이 성전에 주 하느님께서 영원 무궁히 임재하실 것임을 확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때 영이 나를 들어 올려 안뜰로 데리고 가셨는데,  주님의 집이 주님의 영광으로 가득 차 있었다.' (5)

하느님의 영광에 압도되어 엎드려 있는 에제키엘을 하느님의 영이 데리고 안뜰로 들어가게 하셨다.

에제키엘서 40~42장에서는 천사가 에제키엘을 데리고 다니면서 성전의 각 건물들을 측량하고 설명하는 일을 하였고, 40장 1절 보면 주님의 영광이 임재하실 성전 밖, 동쪽 대문 앞으로 인도한 것도 천사, 즉 40장 3절의 표현에 의하면 빛나는 구리와 같은 모습을 지닌 사람이었다.

그런데 주님의 영광이 임재한 성전 안으로 에제키엘을 들어가게 하신 것 더 이상 천사가 아니고 하느님의 영이었다.


에제키엘이 하느님의 영의 인도를 받은 것은 에제키엘서 3장 12절,14절 등에도 나온다. 거기에보면, 크바르 강가에서 하느님으로부터 소명을 받을 때에 에제키엘은 하느님의 영의 강한 감동과 인도하심을 받은 적이 있다. 

에제키엘서 43장 5절 본문에서 '나를 들어'에 해당하는 '왓팃솨에니'(wathisaeni)는 (일반)능동형이고, '데리고 가셨는데'에 해당하는 '왓테비에니'(wathebieni)는 사역형이다.

따라서 엎드려 있는 에제키엘이 일어나게 된 것 하느님의 영의 직접적인 역사에 의한 것이고, 에제키엘이 동쪽 대문을 지나 성전 안으로 들어간 것 성령의 인도나 강력한 역사하심에 의해 따라 들어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하느님의 영은 군대의 웅성거림과 같은 웅장한 소리와 온 땅을 밝히고도 남을 만한 강한 빛으로 압도되는 영광스러운 주님의 현현에 대한 경외심과 두려움으로 인해 정신을 잃다시피 하였을 에제키엘에게 일어설 수 있는 강한 힘을 주셨고, 그 힘으로 인해 성전 안뜰로 들어갈 수 있게 된 것이다.

한편, 성전 안으로 들어간 에제키엘은 그곳에 가득 찬 주님의 영광을 볼 수 있었다.


여기서 '가득 차 있었다'로 번역된 '말레'(malle)는 탈출기 40장 34절, 35절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께서 자신들에게 지시한 대로 만남의 천막(성막)을 다 지은 후에 주님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게 임한 사실을 묘사함에도 사용되었고, 열왕기 상권 8장 10절,11절에서 솔로몬이 성전을 다 짓고 완성된 성전으로 주님의 계약궤를 옮겼을 때 주님의 영광이 성전에 구름을 통해 가득 참을 나타낼 때도 사용되었다. 그리고 이들 각각의 용례에서 '말레'(malle)는 두 번씩 반복 사용되었다.

다시 말해서 에제키엘은 탈출기와 열왕기 상권 저자가 사용한 '말레'(malle)라는 동일한 동사를 사용하여 새 성전에 충만한 주님의 영광이 탈출기에서 성막에 임했던 주님의 영광이었으며, 솔로몬의 성전에 가득하였던 주님의 영광이었다는 사실을 거듭 강조한 것이다. 


또한 탈출기의 성막이나 솔로몬 성전의 경우에도 주님의 영광이 가득찼던 것은 성막과 성전 건축이 모두 완결된 이후였다. 이것은 새 성전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새 성전은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으므로, 천사에 의한 성전의 각 부분에 대한 측량이 마쳐진 뒤에 주님의 영광이 가득찼다.

성막이나 성전은 모두, 그 건축물 자체로는 큰 의미를 가지지 못하고 주님의 영광이 임할 때 비로소 의미를 가진다. 이것을 감안할 때, 새 성전에 주님의 영광이 가득 차 있었다는 것은 과거에 성전을 떠났던 주님의 영광의 회복이라는 측면을 강조하는 것이라는 사실과 함께 새 성전의 완전한 완성이라는 의미를 지닌 사건으로도 이해된다.


'사람의 아들아, 이곳은 내 어좌의 자리, 내 발바닥이 놓이는 자리다. 내가 이스라엘 자손들 가운데에서 영원히 살 곳이다.'(7)

성소로부터 들려온 하느님의 말씀이 본절인 43장 7절 이하 12절에 다시금 소개된다. 그 가운데 43장 7~9절의 내용은 주님께서 영원히 임재하신다는 약속과 더불어, 그 조건으로 성전이 하느님께서 현존하시는 거룩한 처소이므로 거룩함을 훼손하는 죄악을 버리고 거룩함에 관한 성전의 법도를 지켜야 함을 그 내용으로 한다.

그리고 43장 7절은 성전이 거룩한 이유를 설명하는 내용이다. 성전이 거룩한 이유는 먼저 성전에 하느님의 어좌(옥좌, 보좌)가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성전은 먼저 '내 어좌의 자리(처소)'로 소개된다. 여기서 '내 어좌'에 해당하는 '키쓰이'(kissyi)의 원형 '카싸'(kassa)는 권력의 자리를 의미한다.

'카싸'가 창세기 40장 40절에서는 왕좌라는 의미로 사용되었고, 사무엘 상권 1장 9절에서는 사제가 앉는 자리란 의미로 사용되었으며, 시편 94장 20절에서는 재판관이 판결을 위해 앉는 자리란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런 용례를 보면, '카싸'(kassa)는 왕이나 재판관이나 사제가 갖는 정치,사법, 종교적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능력과 권한이라는 의미를 가진 단어이다.

에제키엘에서는 '카싸'(kassa)가 총 5회 사용되었는데, 세상 왕의 왕좌를 묘사한 26장 16절을 제외하고는, 모두 환시 중에 본 하늘의 보좌를 가리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한편, '내 어좌의 자리'와 병행되어 제시되는 '내 발바닥이 놓이는 자리'라는 표현은 역대기 상권 28장 2절, 시편 99장 5절, 이사야 60장 15절에서 모두 하느님께서 현존하시는 성전을 가리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때 성전은 사람들이 하느님께 경배를 드리는 장소로 언급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발'은 어떤 존재가 살아가기 위해 딛고 살아가는 자신의 거주지와 땅을 염두에 둔 표현이다.

따라서 하느님의 발바닥이 놓이는 자리라는 것은 하느님의 발만이 아니고, 발이 상징하는 바 거주하는 장소라는 의미를 갖는다.


그러므로 새 성전을 가리켜 '내 어좌의 자리'라고 한 것이나 '내 발바닥이 놓이는 자리'라고 한 것은 모두 하느님의 임재(현존)가 새 성전에서 계속해서 이루어질 것임을 강조하기 위한 반복적 표현이다. 그런데 이 두 표현은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댓구를 이루는 반복이다.

즉 '내 어좌의 자리'라는 표현에서 어좌는 모든 권력의 근원인 하늘의 어좌를 의미하므로 하늘의 이미지를 강조하고, '내 발바닥이 놓이는 자리'라는 표현에서 발은 거주하는 장소로서의 땅의 이미지를 강조하는 표현이다.


또한 '내 어좌'라는 표현은 이 세상의 모든 정치, 종교, 사법적 권력을 아우르는 온 우주적 권력을 상징하고'내 발(바닥)'이라는 표현은 경배의 대상으로서의 하느님의 현존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결국 본문은 성전을 하늘과 땅, 즉 온 우주, 혹은 우주에 대한 통치의 축소판으로 그리고 있다.


이를 통해 성전은 모든 이들이 와서 경배해야 할 만유의 절대 주권자이며 통치자요, 심판자가 계신 거룩한 장소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에 이어지는 '내가 이스라엘 자손들 가운데에서 영원히 살 곳이다' 표현은 주님께서 새 성전에 영원히 현존(임재)하실 것이란 약속이다.

즉 이것은 앞으로 완성될 하느님의 나라 단절없는 완전한 하느님의 통치와 백성들의 경배가 계속되는 곳이 될 것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제 에제키엘서 43장 7절의 의미를 종합하면, 43장 7절의 표현은 단순히 하느님의 임재가 그분의 살아계심을 나타내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새 성전을 중심으로 하여 온 세상을 통치하시며 모든 나라와 백성들로부터 경배를 받으실 뿐 아니라, 인간의 사언행위(思言行爲)의 심사와 그 의로움과 불의함에 따라 심판을 단행하실 권력을 갖고 계심을 선명하게 드러내기 위한 의도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연중 제20주간 토요일(8/26)


   20220820일 토요일

[연중 제20주간 토요일] 매일묵상 (정용진 요셉 신부)


복음서에서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은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적대자로, 대개 이른바 나쁜 사람들로 등장합니다.

그런데 이들은 바로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입니다.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는 우리와 비슷한 사람들입니다.

가정에 충실한 이들이었고, 자기 일에 매우 헌신적인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유혹에 직면하고, 많은 이가 교만해집니다.

우리 가운데 누가 자기를 드러내고 싶은 유혹을 받지 않겠습니까?

영예로운 자리에서 자기 자신을 높이며 다른 사람들에게 주목받고 중요한 사람으로 여겨지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복음서의 모든 구절이 교회를 위한 말씀입니다. 바리사이와 율법 학자들은 결국 우리 자신입니다.

우리 안에 그들이 있음을 인식하도록 오늘 복음은 우리를 겨냥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의 중심에 하느님을 두고 하느님 말씀을 내세우는가,

아니면 우리 자신을 우선 순위로 두고 앞에 내세우고 싶은가, 이것이 오늘 복음의 중심 주제입니다.

죄는 하느님의 자리에 내가 올라서는 것에서 비롯됩니다.

죄를 부끄러워해야 하지만, 우리의 약점이나 결점에 대하여 지나치게 괴로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적어도 그것이 우리를 더 겸손하게 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면, 그 또한 은총입니다.

우리가 정말 스스로 낮출 줄 아는 사람이 되면 그리스도의 마음을,

그분의 자비와 연민을 지금보다 더 잘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정용진 요셉 신부)

 


 

 

 [연중 제20주간 토요일]

모세의 자리

 

복음(마태23,1-12)

1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과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마태22,45) 45 이렇게 다윗이 메시아를 주님이라고 부르는데메시아가 어떻게 다윗의 자손이 되느냐?”

= 메시아, 주님은 육(肉)으로는 다윗의 후손으로 오셨지만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말씀하신 것이다. 성경 전체는 그 주님의 이야기이다.

 

(루가24,27) 27 그리고 이어서 *모세와 모든 예언자로부터 시작하여 성경 전체에 걸쳐 당신(예수)에 관한 기록들을 그들에게 설명해 주셨다.

= 당시에는 신약이 없었으니 성경은 구약(舊約)을 말한다. 그러니 신약은 물론 구약까지 모두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말씀인 것이다. 구약은 신약의 구원자께서 오실 것을 예표(豫表)했다. 그 말씀에 이어진 오늘의 말씀이다.

 

2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모세의 자리에 앉아 있다. 3 그러니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는 것(율법)은 다 실행하고 지켜라그러나 그들의 행실은 따라 하지 마라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

= 실행과 행실은 무슨 차이일까? 실행(實行)은 율법의 진의, 곧 메시아를 통한 구원을 진리로 깨달아, 스스로 구원에 이르겠다고 열심을 부렸던 그 자신을 내려놓는 그 자기 버림의 낮은 자리에 앉는 것, 실행이다.

행실(行實)은 613가지로 늘려 열심히 지킨 그 자기 의로움으로 구원에 이르겠다는 모든 행실이다. 그러나 그 행실, 율법(제사와 윤리)을 열심히 지킨 그 사람의 의로움으로는 구원을 받지 못한다. 그래서 메시아, 곧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오신 것이다.

 

(로마3,20-21) 20 어떠한 인간도 율법에 따른 행위로 하느님 앞에서 의롭게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율법을 통해서는 죄를 알게 될 따름입니다. 21 그러나 이제는 율법과 상관없이 하느님의 의로움이 나타났습니다이는 율법과 예언자들이 증언하는 것입니다.

= 율법(십계명)의 모든 죄를 십자가에서 대속하신 예수 그리스도다. 내 뜻(생각)으로 살았던 모든 것을 부인(否認)하고 예수님의 뜻, 말씀을 먹고 마시는 것, 그리고 따르는 것, 실행이다.

 

또 그들은 무겁고 힘겨운 짐을 묶어 다른 사람들 어깨에 올려놓고자기들은 그것을 나르는 일에 손가락 하나 까딱하려고 하지 않는다.

= 율법을 613가지로 늘린 신앙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하느님의 뜻을 하나도 실행하지 않았다는 말씀이다. 오늘날도 사람의 생각이 ‘교리(敎理)로 더 보태어져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지 않음을 알아들으라.’는 말씀이다.

 

그들이 하는 일이란 모두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다그래서 성구갑을 넓게 만들고 옷자락 술을 길게 늘인다.

= 보이는 자기 의로움을 위해 말씀을 늘 몸에 지니며 착하게(의롭게) 살았다.(마태5,20참조) 자기 의로움으로 구원에 이르러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는? ....

 

잔칫집에서는 윗자리를회당에서는 높은 자리를 좋아하고, 7 장터에서 인사받기를사람들에게 스승이라고 불리기를 좋아한다.

= 깨달음 없는 잘못된 열성 때문이다.

 

(로마10,2) 2 나는 그들에 관하여 증언할 수 있습니다그들은 하느님을 위한 열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그러나 그것은 깨달음에 바탕을 두지 않은 열성입니다.

 

그러나 너희는 스승이라고 불리지 않도록 하여라너희의 스승님은 한 분뿐이시고 너희는 모두 형제다.

= 구원의 길을 가르치시고 이끌어 주시는 분은 보호자 성령(聖靈)뿐이시다.(요한14,26 15,26 16,13 로마8,26)

 

또 이 세상 누구도 아버지라고 부르지 마라너희의 아버지는 오직 한 분하늘에 계신 그분뿐이시다.

 

(히브12,10) 10 육신의 아버지들은 자기들의 생각대로 우리를 잠깐 훈육하였지만그분(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유익하도록 훈육하시어 우리가 당신의 거룩함에 동참할 수 있게 해 주십니다.

 

10 그리고 너희는 선생이라고 불리지 않도록 하여라너희의 선생님은 그리스도 한 분뿐이시다.

 

(1코린8,6) 6 우리에게는 하느님 아버지 한 분이 계실 뿐입니다모든 것이 그분에게서 나왔고 우리는 그분을 향하여 나아갑니다또 주님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 계실 뿐입니다모든 것이 그분으로 말미암아 있고 우리도 그분으로 말미암아 존재합니다

 

11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 예수님도 죽기까지, 끝까지 우리를 섬겨 주셨듯이 말이다.

 

(마르10,45) 45 사실 사람의 아들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 그리고 영원토록 하느님 나라에서 사랑하실 것이다.

 

12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 율법, 십계명을 법으로 열심히 지킨 그 자기 의로움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 이는 절대 낮아질 수 없다. 그래서 하늘의 의로움을 주는 그 섬김을 할 수 없어 낮은 자리, 곧 땅에 영원히 묻힐 것이다. 율법(律法)의 진의를 알면....

다시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곧 그분의 길, 십자가의 대속, 그 의로움이 구원의 진리임을 깨달아 받아드려 믿으면 자신을 낮출 수 있고, 그는 높으신 하느님 아버지와 높은 곳에 계신 주님과 영원한 삶을 살 것이다.

 (롯기 4,16-17) 16 나오미는 아기를 받아 품에 안았다나오미가 그 아기의 양육자가 된 것이다. 17 이웃 아낙네들은 그 아기의 이름을 부르며, “나오미가 아들을 보았네.” 하고 말하였다그의 이름은 오벳이라 하였는데그가 다윗의 아버지인 이사이의 아버지다.

= 며느리 룻이 재가 하여 낳은 아들을 나오마가 ‘아들을 보았네’ 낳았다고 한다. 그것은 앞 16절에 아기를 받아 품고, 그 아기를 키우면 자신이 낳은 것이 된다는 것이다. 곧 말씀(예수)을 받아먹고 마시며 공부하면(양육하면) 십자가의 예수가 나의 구원자(아들) 그리스도로 깨닫게(낳게) 된다는 것이다. 고통(苦痛), 쓰다, 쓴물(마라)인 그 자신에서 나오미(사랑, 기쁨)로 다시 회복된다는 것이다. 베들레햄에서 이방 지역으로 떠나 그 이방인들(세상)의 양식을 먹고 살았기에 남편과 두 아들을 잃고 돌아 왔을 때 ~

 

(룻기1,20) 20 나오미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나를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마라라고 부르셔요전능하신 분께서 나를 너무나 *쓰라리게 하신 까닭이랍니다.

 

(탈출15,22-23.25) 22 모세가 이스라엘을 갈대 바다에서 떠나게 하니그들이 수르 광야로 나아갔다광야에서 사흘 동안을 걸었는데도그들은 물을 찾지 못하였다. 23 마침내 마라에 다다랐지만그곳 마라의 물이 *써서 마실 수가 없었다그리하여 그 이름을 *마라라 하였다. 25 모세가 주님께 부르짖으니주님께서 *나무 하나(십자가)를 보여 주셨다모세가 그것을 물에 던지자 그 물이 *단 물이 되었다그곳에서 주님께서는 백성을 위한 규정과 법규를 세우시고 그곳에서 주님께서는 백성을 시험하셨다.

= 나무 하나, 곧 우리의 고통의 죄로 죽으시고 구원하실 분은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 한 분 뿐이시고, 그 십자가의 예수께서 우리 구원의 규정과 법규임을 깨달아 그분으로 말미암아 있고, 그분으로 말미암아 존재(存在)함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결론은 말씀을 열심히 먹고,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공부(工夫)해서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마르4,31-32) 31 하느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에 뿌릴 때에는 세상의 어떤 씨앗보다도 작다. 32 그러나 땅에 뿌려지면 *자라나서 어떤 풀보다도 커지고 큰 가지들을 뻗어하늘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수 있게 된다.”

 

(1베드2,2) 2 갓난아이처럼 영적이고 순수한 젖을 갈망하십시오그러면 그것으로 *자라나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 성경을 문자(文字) 그대로 도덕과 윤리, 법(法)으로 먹지 말고 아버지의 마음(뜻) 그대로(순수하게) 먹으면 곧 십자 나무의 대속, 그 진리로 먹으면 믿음이, 내 영(靈)이 자라나 구원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1코린2,10) 10 하느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그것들을 바로 우리에게 계시해 주셨습니다성령께서는 모든 것을그리고 하느님의 깊은 비밀까지도 통찰하십니다.

 

(1테살2,13) 13 우리는 또한 끊임없이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우리가 전하는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때여러분이 그것을 사람의 말로 받아들이지 않고 사실 그대로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그 말씀이 신자 여러분 안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 은총의 성령님! 하느님의 뜻을 통찰하시며 우리를 가르치시고, 기도(간구)로 이끌어 주시니 감사합니다. 섬김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연중 제20주간 토요일 복음(마태23,1~12)


"그들이 하는 일이란 모두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성구갑을 넓게 만들고 옷자락 술을 길게 늘인다." (5)


마태오 복음 23장 5~7절까지는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외적인 경건 과시(5절), 높아지고자 하는 마음과 끝없는 명예욕(6절), 그리고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얻고자 하는 마음(7절)에 대한 대표적 예이다.


'성구갑'으로 번역된 '퓔라크테리아'(phylakteria; phylacteries)의 원형 '퓔라크테리온'(phylakterion)은 모세 율법 중에서 탈출기 13장 1~10절, 11~16절, 신명기 6장 4~9절, 11장 13~21절 등의 네 부분을 작고 긴 양피지 조각에 기록하여 그것을 작은 상자 속에 봉해 넣은 것을 가리킨다.


유대인들은 '이것을 네 손에 감은 표징과 네 이마에 붙인 표지로 여겨라' 말씀(탈출13,16; 신명6,8)에 근거하여, 위의 네 부분의 율법의 구절을 기록 경문을 넣은 성구갑을 이마와 왼팔에 가죽끈으로 고정하여 틈나는 대로 보면서 경건에 힘썼던 것이다.

마태오 복음 23장 5절에서 '넓게 만들고'에 해당하는'플라튀누신'(platynusin; they make wide; they make broad) 다른 사람들의 눈에 쉽게 띄도록 그 성구갑의 크기를 크게 한다는 뜻이다.


시행 초기인 바빌론 유배 포로기 직후에는 하느님의 말씀을 기억하기 위한 순수한 목적으로 성구갑을 달고 다녔지만시간이 흐르면서 유대인들은 타인에게 자신의 경건을 과시하기 위한 목적으로 달고 다녔다.

과시욕이 지나치다 못해 어떻게 하면 더 크게 해서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띄게 할까 고민했던 것이다.


한편, '옷자락 술'로 번역된 '크라스페다'(kraspeda; the tassels of their garments)의  원형 '크라스페돈'(kraspedon)은 '망토 또는 외투의 가장자리에 털실을 꼬아 매달리게 장식한 작은 부속물'을 의미한다.

유대인들은 민수기 15장 37~40절의 말씀에 근거하여 흰색과 청색 실로 짠, 이와 같은 부속물을 겉옷의 가장자리에 매달았다.


그것은 그들로 하여금 하느님의 모든 계명을 기억하여 실천하게 하는 기능을 하며, 마음과 눈이 쏠리는 데로 욕심을 따라 방종하게 살아 배신하지 않도록  하는 기능을 해 주었다(민수15,39).

그러나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그러한 율법의 정신을 따르려는 마음보다는, 단지 사람들에게 자신을 거룩하게 보이려는 열망으로 '옷자락 술'을 더 크게 만들어 그것을 즐겨 입고 다녔던 것이다.



연중 제20주간 토요일(8/26)


 

2022년 08월 20일 [연중 제20주간 토요일]

 

주님은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하러 오셨다.

주님은 왜 착하고 롭게 살아온 율법학자바리사이를 제자로 삼지 않으시고베드로 등배반할 죄인들을 제자로 삼으셨을까?(그들이 배반할 것을 미리 아셨다)

 

복음(마태23,1-12)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과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모세의 자리에 앉아 있다.

모세는 하느님의 뜻으로 민족(民族)을 이집트의 노예(奴隸)생활에서 탈출(脫出)시킨 구원(救援)자다그리스도의 예표(豫表)곧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이 어둠의 세상에서 노예생활을 하는 민족을 영원한 빛의 나라로 탈출시킬 구원의 임무를 맡은 사람이라는 말씀이다.

 

그러니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는 것은 다 실행하고 지켜라그러나 그들의 행실은 따라 하지 마라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

=그들이 전하는 모세의 말을 지키라는 말씀인데그들의 행실은 모세의 말을 실행한 것이 아니라는 말씀이다실행(實行) 모세의 말’ 안에 들어있는 하느님의 뜻인 구원의 진리를 깨달아 믿음으로 마음 안에 간직지키는 것이다그리고 깨닫고 믿은 말씀을 말하며선포하며 이웃과 나누는 것이 실행이다.

그러나 율법학자와 바리사이들은 모세의 말을 법으로 받아 깨달음이 아닌행위로 지켜 자기 의()로 챙겼기에 그 행위를 따라 하지 말라’ 하셨던 것이다.(로마10,1-3참조)

깨달음이 없는 자신의 뜻으로 한 실천은 하느님의 뜻을 무시(無視), 죽이는 것이다그래서 의롭게 살았던 그들이 하느님의 뜻이며 구원의 진리(眞理)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을 죽인 것이다.

 

(요한8,37-38) 37 나는 너희가 아브라함의 후손임을 알고 있다그런데 너희는 나를 죽이려고 한다 말이 너희 (마음안에 있을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38 나는  아버지에게서 (호라우것을 이야기하고너희는 너희 아비에게서 들은 것을 실천한다.” 

예수님이 본 것(호라우-깨달음으로), 곧 창조이전 하느님께서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계획하시고 완성하셨던 하느님의 나라(히브4,3), 그 하늘의 의로움구원의 말씀을 전()하시고선포(宣布)하셨고율법 자들은 들은 것,(뱀의 유혹인 선악의 말-요한8,44) 곧 말씀을 선악(善惡)의 계명(誡命), ()으로 받아 자신들의 뜻()를 위해 실천한 것이다.

 

또 그들은 무겁고 힘겨운 짐을 묶어 다른 사람들 어깨에 올려놓고자기들은 그것을 나르는 일에 손가락 하나 까딱하려고 하지 않는다.

모세의 말을 600가지 넘는 율법으로 만들어 무겁고 힘든 짐 같은 신앙을 살게 했던 것이다율법학자(律法學者), 바리사이들이 그 율법(律法)을 지키지 않았다는 말이 아니시다그들은 율법을 철저히 지키며 착하게의롭게 살았다그러나 이 세상에서 하늘로의 탈출(脫出)’을 위한 깨달음믿음을 위한 일은 전혀 하지 않았다는 말씀이다.

 

(마르7,7) 7 그들은 사람의 규정을 교리로 가르치며 나를 헛되이 섬긴다.’ 

 

5ㄱ 그들이 하는 일이란 모두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다.

보이는 신앙생활곧 자신의 뜻(), 영광을 위한 종교(宗敎)행위에 열심을 부렸다는 말씀이다.

 

5그래서 성구갑을 넓게 만들고 옷자락 술을 길게 늘인다. 6 잔칫집에서는 윗자리를회당에서는 높은 자리를 좋아하고, 7 장터에서 인사받기를사람들에게 스승이라고 불리기를 좋아한다.

자신들이 의롭게 살았던 만큼권위(權威)의식(意識)도 대단히 컸다.

 

(마태5,20) 20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너희의 의로움이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율법(律法)의 의로움을 능가하는 의로움하늘의 의로움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十字架)의 대속(代贖), 그 피의 새 계약으로 받는 의()를 진리(眞理)로 믿는 것이다.

 

(로마3,21-24) 21 그러나 이제는 율법과 상관없이 하느님의 의로움이 나타났습니다이는 율법과 예언자들이 증언하는 것입니다. 22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오는 하느님의 의로움은 믿는 모든 이를 위한 것입니다거기에는 아무 차별도 없습니다. 23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하느님의 영광을 잃었습니다. 24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진 속량을 통하여 그분의 은총으로 거저 의롭게 됩니다

 

그러나 너희는 스승이라고 불리지 않도록 하여라너희의 스승님은 한 분뿐이시고 너희는 모두 형제다.

하늘의 한 분만이 구원의 진리(眞理), 지혜(智慧)이시다.

 

또 이 세상 누구도 아버지라고 부르지 마라너희의 *아버지는 *오직 한 분하늘에 계신 그분뿐이시다.

하늘의 한 분하느님만이 모든 것을 영원히 책임(責任)져주실 아버지시다.

 

10 그리고 너희는 선생이라고 불리지 않도록 하여라너희의 *선생님은 그리스도 *한 분뿐이시다.

하늘의 한 분그리스도만이 구원자시다곧 하늘아래 모든 것은 믿음구원과는 상관없는 부질없는헛것이라는 말씀이다.

 

(코헬1,14) 14 나는 태양 아래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일을 살펴보았는데 보라 모든 것이 허무요 바람을 잡는 일이다

 

(코헬4,1) 1 나는  태양 아래에서 자행되는 모든 억압을 보았다보라억압받는 이들의 눈물을그러나 그들에게는 위로해  사람이 없다 억압자들의 손에서 폭력이 쏟아진다그러나 그들에게는 위로해  사람이 없다

 

(시편39,6-8) 6 보소서당신께서는 제가  날들을   길이로 정하시어  수명 당신 앞에서는 없는 것과 같습니다사람은 모두 한낱 입김으로  있을 .  7 인간은 한낱 그림자로 지나가는데 부질없이 소란만 피우며 쌓아 둡니다누가 그것들을 거두어 갈지 알지도 못한 . 8 그러나 이제 주님제가 무엇을 바라겠습니까저의 희망은 오직 당신께 있습니다

 

11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하늘의 한 분으로 거저 의롭게가장 높아진 사람은이웃 또한 그 한 분으로 높아지도록 그 한 분을 알려주는 그 섬김을 해야 한다곧 말씀을 생명의 양식으로 주는 것이다.

 

<사제(司祭)께서>그리스도께서 당신 자신을 우리에게 내어 주셔서 우리의 자존(自存)감을 회복시켜 주시는데 그 확실한 표로 성체(聖體)를 영()하는 사람들이성경(聖經)만 읽으며 되뇌는 것보다 훨씬 강하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느끼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셨는데 과연 그럴까성체(聖體)를 모신다고 용서(容恕), 자유(自由), 구원(救援)에 대한 믿음이 생길까주님은 당신의 몸을 피()의 새 계약(契約)으로 주셨고,(루가22,20) 또한 성경(聖經)말씀을 하느님의 뜻으로 올바로 깨달아 믿는 것이 생명용서자유안식평화구원구마(驅魔)인데(마태8,16 로마10,17 야고1,18참조), 그러니 먼저 하느님의 뜻을 올바로 깨달아 믿을 수 있도록 말씀 안에 늘 머무르는 공부(工夫)를 하라해야 하지 않을까?(요한8,31-32참조)

*성경(聖經)을 모르는 것은 그리스도를 모르는 것이다.(성 예로니모)

 

12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하늘의 높으신 한 분과 하나 되기 위한 낮아짐이다스스로 높이려는 이는 땅속으로 떨어지기까지 낮아진다.(로마10,1-3참조그러나 자신의 모든 것이 허무(虛無)요 헛됨을 깨닫고 인정하는 그 낮아짐으로 그리스도의 지체(肢體)로 들어가 그분과 한 몸이 되면 그 높으신 그리스도그 분 안에서 높아지게 된다. *무엇이든지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진다.

 

(2코린10,17) 17 그러므로  “자랑하려는 자는 주님 안에서 자랑해야 합니다.” 

 

(에페2,6) 6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우리를 그분과 함께 일으키시고 그분과 함께 하늘에 앉히셨습니다

 

(골로1,14) 14  아드님(예수안에서 우리는 속량을 죄의 용서를 받습니다

 

(1테살5,9-10) 9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진노의 심판을 받도록 정하신 것이 아니라우리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을 차지하도록 정하셨습니다. 10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살아 있든지 죽어 있든지 당신과 함께 살게 하시려고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셨습니다. (~~아멘)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아버지의 나라가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연중 제20주간 토요일(8/26)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매일말씀묵상

목록 전체보기 →
[연중 제21주간 화요일] 잔(盃) 속을 깨끗이 (마태23,23-26)22.08.23조회 55[연중 제21주간 월요일] “不幸하여라, 너희 僞善者들아! (마태23,13-22)22.08.21조회 55[연중 제20주간 토요일] 이 세상 누구도 아버지라고 부르지 마라. (마태23,1-12)22.08.19조회 54[연중 제20주간 금요일] 律法과 豫言書의 정신은 사랑 (마태22,34-40)22.08.19조회 56[연중 제20주간 목요일] 婚姻 잔치에 招待받은 이들 (마태22,1-14)22.08.18조회 55[연중 제20주간 수요일] 포도밭 주인 비유 (마태20,1-16)22.08.17조회 54[연중 제20주간 화요일] 꼴찌가 첫째 되는 이들 (마태19,23-30)22.08.15조회 64[성모 승천 대축일]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 (루카1,39-56)22.08.15조회 59[연중 제19주간 토요일] 하늘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 (마태19,13-15)22.08.12조회 57[연중 제19주간 금요일] 스스로 고자가 된 이들 (마태19,3-12)22.08.12조회 64[연중 제19주간 목요일] 용서(容恕) (마태18,21-19,1)22.08.11조회 69[성 라우렌시오 순교자 축일]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요한12,24-26)22.08.09조회 78[연중 제19주간 화요일] 어린이처럼 (마태18,1-5.10.12-14)22.08.08조회 58[연중 제19주간 월요일] 성전 세(稅) (마태17,22-27)22.08.07조회 58[주님의 거룩한 변모 축일] 내가 선택한 아들.(루카9,28ㄴ-36)22.08.06조회 50[연중 제18주간 금요일]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마태16,24-28)22.08.04조회 62[연중 제18주간 목요일]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 (마태16,13-23)22.08.04조회 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