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4월 4일 월요일
[사순 제5주간 월요일] 나는 세상의 빛이다(요한8,12-20)
제1독서<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저는 이제 죽게 되었습니다.>(다니13,41ㄹ-62)
41 회중은 수산나에게 사형을 선고하였다.
42 그때에 수산나가 크게 소리 지르며 말하였다. “아, 영원하신 하느님! 당신께서는 감추어진 것을 아시고 무슨 일이든 일어나기 전에 미리 다 아십니다.
43 또한 당신께서는 이자들이 저에 관하여 거짓된 증언을 하였음도 알고 계십니다. 이자들이 저를 해치려고 악의로 꾸며 낸 것들을 하나도 하지 않았는데, 저는 이제 죽게 되었습니다.”
44 주님께서 수산나의 목소리를 들으셨다.
45 그리하여 사람들이 수산나를 처형하려고 끌고 갈 때, 하느님께서는 다니엘이라고 하는 아주 젊은 사람 안에 있는 거룩한 영을 깨우셨다.
46 그러자 다니엘이 “나는 이 여인의 죽음에 책임이 없습니다.” 하고 큰 소리로 외쳤다.
47 온 백성이 그에게 돌아서서, “그대가 한 말은 무슨 소리요?” 하고 물었다.
48 다니엘은 그들 한가운데에 서서 말하였다. “이스라엘 자손 여러분, 여러분은 어찌 그토록 어리석습니까? 신문을 해 보지도 않고 사실을 알아보지도 않고, 어찌 이스라엘의 딸에게 유죄 판결을 내릴 수가 있습니까?
49 법정으로 돌아가십시오. 이자들은 수산나에 관하여 거짓 증언을 하였습니다.”
50 온 백성은 서둘러 돌아갔다. 그러자 다른 원로들이 그에게 말하였다. “자, 하느님께서 그대에게 원로 지위를 주셨으니 우리 가운데에 앉아서 설명해 보게.”
51 다니엘이 “저들을 서로 멀리 떼어 놓으십시오. 제가 신문을 하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52 사람들이 그들을 따로 떼어 놓자, 다니엘이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을 불러 말하였다.
“악한 세월 속에 나이만 먹은 당신, 이제 지난날에 저지른 당신의 죄들이 드러났소.
53 주님께서 ‘죄 없는 이와 의로운 이를 죽여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는데도, 당신은 죄 없는 이들에게 유죄 판결을 내리고 죄 있는 자들을 놓아주어 불의한 재판을 하였소.
54 자, 당신이 참으로 이 여인을 보았다면, 그 둘이 어느 나무 아래에서 관계하는 것을 보았는지 말해 보시오.” 그자가 “유향나무 아래요.” 하고 대답하였다.
55 그러자 다니엘이 말하였다. “진정 당신은 자기 머리를 내놓고 거짓말을 하였소. 하느님의 천사가 이미 하느님에게서 판결을 받아 왔소. 그리고 이제 당신을 둘로 베어 버릴 것이오.”
56 다니엘은 그 사람을 물러가게 하고 나서 다른 사람을 데려오라고 분부하였다. 그리고 그자에게 말하였다. “유다가 아니라 가나안의 후손인 당신, 아름다움이 당신을 호리고 음욕이 당신 마음을 비뚤어지게 하였소.
57 당신들은 이스라엘의 딸들을 그런 식으로 다루어 왔소. 그 여자들은 겁에 질려 당신들과 관계한 것이오. 그러나 이 유다의 딸은 당신들의 죄악을 허용하지 않았소.
58 자 그러면, 관계하는 그들을 어느 나무 아래에서 붙잡았는지 나에게 말해 보시오.” 그자가 “떡갈나무 아래요.” 하고 대답하였다.
59 그러자 다니엘이 말하였다. “진정 당신도 자기 머리를 내놓고 거짓말을 하였소. 하느님의 천사가 이미 당신을 둘로 잘라 버리려고 칼을 든 채 기다리고 있소. 그렇게 해서 당신들을 파멸시키려는 것이오.”
60 그러자 온 회중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당신께 희망을 두는 이들을 구원하시는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61 다니엘이 그 두 원로에게, 자기들이 거짓 증언을 하였다는 사실을 저희 입으로 입증하게 하였으므로, 온 회중은 그들에게 들고일어났다. 그리고 그들이 이웃을 해치려고 악의로 꾸며 낸 그 방식대로 그들을 처리하였다.
62 모세의 율법에 따라 그들을 사형에 처한 것이다. 이렇게 하여 그날에 무죄한 이가 피를 흘리지 않게 되었다.
화답송 시편 23(22),1-3ㄱ.3ㄴㄷ-4.5.6(◎ 4ㄱㄴㄷ)
◎ 어둠의 골짜기를 간다 하여도 당신 함께 계시오니 두려울 것 없나이다.
○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 푸른 풀밭에 나를 쉬게 하시고, 잔잔한 물가로 나를 이끄시어, 내 영혼에 생기 돋우어 주시네. ◎
○ 당신 이름 위하여, 나를 바른길로 이끌어 주시네. 어둠의 골짜기를 간다 하여도, 당신 함께 계시오니, 두려울 것 없나이다. 당신의 막대와 지팡이, 저에게 위안이 되나이다. ◎
○ 원수들 보는 앞에서 제게 상을 차려 주시고, 머리에 향유를 발라 주시니, 제 술잔 넘치도록 가득하옵니다. ◎
○ 제 한평생 모든 날에 은총과 자애만이 따르리니, 저는 오래오래 주님 집에 사오리다. ◎
복음<나는 세상의 빛이다>(요한8,12-20)
그때에 예수님께서 바리사이들에게 12 말씀하셨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르는 이는 어둠 속을 걷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다.”
13 바리사이들이 “당신이 자신에 관하여 증언하고 있으니, 당신의 증언은 유효하지 않소.” 하고 말하자,
14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나 자신에 관하여 증언하여도 나의 증언은 유효하다. 내가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너희는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 또 내가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한다.
15 너희는 사람의 기준으로 심판하지만 나는 아무도 심판하지 않는다.
16 그리고 내가 심판을 하여도 내 심판은 유효하다. 나 혼자가 아니라, 나와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함께 심판하시기 때문이다.
17 너희의 율법에도 두 사람의 증언은 유효하다고 기록되어 있다.
18 바로 내가 나 자신에 관하여 증언하고 또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도 나에 관하여 증언하신다.”
19 그들이 예수님께 “당신의 아버지가 어디 있소?” 하고 묻자,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너희는 나를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나의 아버지도 알지 못한다.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나의 아버지도 알았을 것이다.”
20 이는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실 때에 헌금함 곁에서 하신 말씀이다.
그러나 아무도 그분을 잡지 않았다. 그분의 때가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순 제5주간 월요일 제1독서(다니13,1~9.15~17.19~30.33~62)
"수산나는 눈물이 가득한 채 하늘을 우러러보았다. 마음으로 주님을 신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35)
"주님께서 수산나의 목소리를 들으셨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수산나를 처형하려고 끌고 갈 때, 하느님께서는 다니엘이라고 하는 아주 젊은 사람 안에 있는 거룩한 영을 깨우셨다." (44~45)
"그러자 온 회중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당신께 희망을 두는 이들을 구원하시는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다니엘이 그 두원로에게, 자기들이 거짓 증언을 하였다는 사실을 저희 입으로 입증하게 하였으므로, 온 회중은 그들에게 들고 일어났다. 그리고 그들이 이웃을 해치려고 악의로 꾸며낸 그 방식대로 그들을 처리하였다. 모세의 율법에 따라 그들을 사형에 처한 것이다. 이렇게 하여 그날에 무죄한 이가 피를 흘리지 않게 되었다." (60-62)
다니엘서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부분(1~6장)은 다니엘과 세 친구가 바빌론과 메디아 왕궁에서 겪는 공적인 이야기를 다루고,
둘째 부분(7~12장)은 다니엘이 혼자 환시를 보는 사적인 이야기를 다룬다.
그리고 마지막 셋째 부분(13~14장)은 13장의 '수산나 이야기'와 14장의 '벨 신상과 큰 뱀 이야기'다.
이것은 그리스어 성경에만 나오는 내용이며, 개신교에서는 외경으로 취급하여 나오지 않는다. 이 세 이야기는 다니엘이 문제를 지혜롭게 해결했다는 공통분모 때문에 그리스어 성경 다니엘서로 편입되었을 것이다.
다니엘서 13장은 정숙한 한 유다 여인 수산나가 욕정에 눈이 어두운 두 원로의 모함에 빠져 목숨을 잃을 뻔했다가 다니엘 예언자의 지혜로 구출된 이야기다.
수산나는 무죄하면서 고통받는 사람이다. 신앙심이 깊고 아름다운 여인인 수산나가 음욕을 품고 탐하려 한 재판관인 두 원로의 거짓 증언에 의하여 곤경에 처하게 된다.
그는 명망을 짓밟혔고 간통죄로 사형을 받을 뻔하였다. 그가 잘못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는 원로들의 음욕에 동조하는 대신 "주님 앞에 죄를 짓느니"(23)
하느님의 정의를 확고히 신뢰한다. 원로들이 법정에서 수산나를 거짓 고발하자
수산나는 눈물이 가득한 눈으로 하늘을 우러러 본다(35).
두 원로는 자신의 욕심이 실패하자 자신들의 지위를 이용하여 수산나를 사형에 처하게 한다. 수산나는 사형이 선고되었을 때에도 하느님께 기도하며 다시 한번 자신의 무죄를 확인한다(42~43).
그러자 주님께서는 다니엘 예언자를 통해서 진실을 밝히시고 수산나를 구해 내신다.
이 이야기에서 완전한 전환점은 하느님께서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는 수산나의 외침에 응답하는 데서 비롯된다. "주님께서 수산나의 목소리를 들으셨다."(44)
그리고 다니엘은 수산나의 결백을 입증하고 그를 죽음에서 구하여 가족에게 돌아가게 하는 도구로 드러난다.
수산나의 이야기는 고통 한가운데서 하느님을 신뢰하고 하느님께 기도할 때 그 기도가 큰 힘을 발휘한다는 것과 하느님께서 다니엘이 받은 지혜의 은사를 이용하신다는 사실을 밝혀준다.
여기서 저자는 이교도들의 땅 바빌론에서도 모세의 율법은 지켜야 하며 죽음을 무릅쓰고 율법에 충실한 의인들은 반드시 구원을 받는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2022년 04월 04일 월요일
[자] 사순 제5주간 월요일 [오늘의 묵상] (김상우 바오로 신부)
요한 복음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자기 계시’입니다.
그래서 이 넷째 복음서는 1장에서
“한 처음에 말씀이 계셨다.”(요한 1,1)라고 장엄하게 선포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이신 예수님을 소개한 다음,
성부 하느님의 창조 행위가 성자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졌고
그분께서 바로 메시아, 곧 세상의 구원자이시며 세상의 빛이시라고 복음서 전체에서 전합니다.
이로써 요한복음서의 저자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모든 이가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증언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바리사이들은 예수님께서 당신 자신에 관하여 증언하고 계시기 때문에,
그 증언은 유효하지 않다고 이의를 제기합니다.
이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사람의 기준으로 심판하지만 나는 아무도 심판하지 않는다.
그리고 내가 심판을 하여도 내 심판은 유효하다.
나 혼자가 아니라, 나와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함께 심판하시기 때문이다.”라고 대답하십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을 메시아, 곧 그리스도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심판의 기준이 된다는 뜻입니다.
이어서 예수님께서 “너희는 나를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나의 아버지도 알지 못한다.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나의 아버지도 알았을 것이다.”라고 바리사이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일상생활 속에서 우리는 생각과 말과 행위로 예수님을 메시아로 받아들입니까?
그분께서 세상의 구원자이시며 세상의 빛이시라고 고백하며 증언합니까?
인간적 두려움, 근심과 걱정 앞에, 또는 ‘상대적 박탈감’이라는 벼랑 끝에 서서,
과연 우리 신앙인들은
주님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될 것이라는 희망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지요?
(김상우 바오로 신부)
나는 세상의 빛이다.
예수님 자신이 학교라는 제도를 통해 체계적인 교육과정을 이수한 것이 아닌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이 점은 요한 복음 7장 15절에 보면 예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실 때 유대인들이 놀라며 "이 사람이 배우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글을 알고 있는가"하는 반응을 소개하는데서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예수께서 제도교육의 이수자가 아니였기에 오히려 예수님의 가르침은 고정된 틀을 지니지 않는 참신함을 보여주기도 하고 어떤 때는 알아듣기가 매우 어려울 때도 있습니다.
오늘도 예수님은 바리사이파 사람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세상의 빛입니다". 이 말씀을 하신 장소는 예루살렘 성전이고, 때는 초막절 축제가 진행되던 시기였습니다. 초막절 축제란 이스라엘 백성이 에집트의 노예살이에서 탈출한 후 40년 동안 사막을 유랑하면서 초막에서 생활했던 기억을 기념하는 큰 명절이었습니다. 그래서 성전 안뜰에는 축제를 맞아 등불들이 켜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침 일찍부터 예수님은 이미 한 사건을 겪으셨습니다. 율사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간음하다 붙잡힌 여자를 데려와 모세 율법의 처벌 방법을 내세우며 예수님을 몰아쳤던 일입니다. 그들은 범죄에 대한 법집행의 합법성과 정당성을 이유로 예수님이 율법을 위반하도록 몰아갑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들이 놓은 덫에 빠지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다시피 예수님은 다음과 같은 한 마디 말씀으로 이들의 음모에 대처하십니다. "당신들 가운데서 죄없는 사람이 먼저 이 여자에게 돌을 던지시오". 이 말씀을 들은 사람들은 나이 많은 이들을 비롯하여 하나씩 떠나갔다고 복음서는 전합니다.
"나는 세상의 빛입니다"라는 주님의 말씀은 이런 맥락에서 나온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전에 켜져 있는 등불을 보시면서 빛을 떠올리신지도 모릅니다. 간음하다 붙잡힌 여인도, 그 여인에게 돌팔매질을 하려다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서 팔을 내렸던 사람들도 모두 죄라는 어둠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실제로는 그 속에 있으면서 자신이 그 속에 있음을 깨닫지 못하는 바를 일깨워주십니다. 자신이 죄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돌을 던져라는 말씀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어둠을 자각하게 만듭니다. 이런 자각이 없었다면 그들은 죄인인 주제에 죄인을 단죄하는 죄를 지었을 것이고 그들 삶안에 있는 죄의 어둠은 더 깊어졌을 것입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죄가 주는 어둠을 경험합니다. 불신, 의혹, 협잡, 비리, 음모, 분노, 짜증 등 어둠의 언어들이 우리의 의식을 지배할 때가 많습니다. 어둠 속에 있을 때, 우리는 긴장합니다. 앞이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답답하고 힘듭니다. 그러나 어둠도 익숙해지는 법입니다. 처음 어둠 속에 갑자기 들어가게 되면 앞이 캄캄해져서 꼼짝도 못할 만큼 불안해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의 눈은 어둠 속에 적응해 갑니다. 이렇게 해서 어둠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어둠의 환경에 빠져들게 되면 빛이 싫어지고 빛을 피하게 됩니다. 오히려 어둠이 편하게 여겨지기도 합니다.
에집트의 노예살이에서 벗어나 자유를 향한 여정을 선택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많은 고비를 맞게 됩니다. 자유와 해방이란 참으로 힘든 댓가를 치뤄야 얻을 수 있는 열매였기 때문입니다. 그 고비 가운데 가장 자주 등장하는 것은 에집트의 노예살이가 주었던 안락함에 대한 기억이었습니다. 주인에게 저항하지 않고 고분고분 말잘 듣는 개는 주인이 주는 맛있는 먹이를 먹습니다. 그리고 주인에게 꼬리를 칩니다. 주인은 머리를 쓰다듬어 줍니다. 개는 너무나 편안해 합니다.
우리도 이런 유혹을 자주 받습니다. 만사가 힘들고 귀찮아지면 어둠 속에 자신을 감추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자기 합리화의 충동이 우리를 어둠 속으로 이끌어 갑니다. 이렇게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어둠의 동굴 속에서 살아야 하는 운명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비록 빛이 아니지만 빛 속에서 살도록 불렸습니다. 세례 때 우리는 빛의 자녀로 살아야 한다는 뜻으로 촛불을 받습니다. 어둠의 자식이 아니라 빛의 자녀로 살아야 하는 것이 우리의 길이며 과제라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스스로 빛을 내는 발광체가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는 빛을 받아 살아야 하는 존재입니다. 빛이 만들어 내는 생명의 약동하는 기운을 듬뿍 취하면서 활발하게 살아야 하는 것이 우리 모두의 팔자요 운명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둠 앞에서 스스로 빛을 밝혀보려고 애쓰지 말아야 합니다. 빛이 아닌 존재가 빛이 되려고 애쓰면 오히려 어둠이 짙어질 수 있습니다. 의심과 회의가 일어나고 그래서 자신 안의 어둠에 갇혀 버리기도 합니다.
오늘 예수께서는 이런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세상의 빛입니다. 나를 따라오는 사람은 어둠 속을 걷지 않고 오히려 생명의 빛을 얻을 것입니다". 이처럼 주님이 나의 빛, 내 구원임을 믿고 주님의 말씀이 내 발의 등불이 되어 나의 어둠을 밝히도록 언제나 주님을 우리 안에 모십시다.
[노영찬 신부]
파스카 축제, 곧 하느님 구원의 심판, 죄와 죽음에 거둔 예수님의 결정적인 승리가 가까이 다가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사실을 알고 계십니다.
이 때문에 간음한 여자를 단죄하지 않으시고 고소한 이들의 정체를 폭로하시면서 당신의 단죄도 거두어들이십니다.
반면에 우리는 다른 이들을 판단하려는 타고난 성향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이들에게 죄를 씌우는 것을 매우 자연스럽게 여깁니다.
다른 이들을 가혹하게 고소하면서 그들보다 훨씬 낫다고 여깁니다.
이는 어리석은 환상이요 근시안적 태만입니다.
우리는 하느님 앞에서 다 죄인이고 불완전한 피조물입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스스로 인정하고 진심으로 반성하고 회개한다면, 하느님께서는 우리 죄를 신문하거나 질책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우리를 용서해 주시고 사랑받고 다시 태어난 사람으로 받아들이시며 우리의 존엄을 회복시켜 주십니다.
정결한 수산나에게 음욕을 품은 두 원로는, 다른 사람의 눈에 있는 티는 잘 보면서 자신 안에 있는 들보를 깨닫지 못하는 우리와 크게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웃 형제들을 심판하고 가혹하게 대하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는 일입니다.
심판은 인간의 심리적 상태와 자유의 한계 그리고 각자의 책임과 죄의식을 통하여 사람들의 마음속까지 모두 알고 계시는 하느님의 고유 권한입니다.
이 때문에 예수님께서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래야 너희도 심판받지 않는다. 너희가 심판하는 그대로 너희도 심판받고,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받을 것이다.”(마태 7,1-2)라고 하십니다.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사랑과 용서는 죄인의 권리를 회복시켜 주고 다시 태어나게 해 줍니다.
(안봉환 스테파노 신부)
2022년 4월 4일 [사순 제5주간 월요일]
나는 세상의 빛이다
복음(요한8,12-20)
예수님께서 다시 바리사이들에게 12 말씀하셨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르는 이는 어둠 속을 걷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다.”
= 예수님이 우리 죄인(罪人)들의 생명, 빛, 구원의 말씀이다.(요한1,1-14 참조) 온 세상 만물(萬物)은 말씀으로 창조(創造)되었고(낳았고) 하늘의 빛을 받아 존재(存在)하며 살아간다. 그것을 믿지 못하는 세상이 어둠이다.(갈라3,22) 그러나 그것을 깨닫고, 믿고, 받아들인 사람은 빛이다.(마태5,17)
(야고1,18) 18 하느님께서는 뜻을 정하시고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시어(새 창조), 우리가 당신의 피조물 가운데 이를테면 첫 열매(생명)가 되게 하셨습니다.
(히브1,3) 3 아드님은 하느님 영광의 광채이시며 하느님 본질의 모상으로서, 만물을 당신의 강력한 말씀으로 지탱하십니다. 그분께서 죄를 깨끗이 없애신 다음, 하늘 높은 곳에 계신 존엄하신 분의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
(2베드3,7) 7 지금의 하늘과 땅도 불에 타 없어질 때까지 같은 말씀으로 보존됩니다. 불경한 사람들이 심판을 받아 멸망하는 날까지만 유지되는 것입니다.
(필립2,16) 16 (그러니) 생명의 말씀을 굳게 지니십시오. 그러면 내가 헛되이 달음질하거나 헛되이 애쓴 것이 되지 않아, 그리스도의 날에 자랑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13 바리사이들이 “당신이 자신에 관하여 증언하고 있으니, 당신의 증언은 유효하지 않소.” 하고 말하자, 14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나 자신에 관하여 증언하여도 나의 증언은 유효하다. 내가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너희는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 또 내가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한다.
= 그리스도인(人)인 우리는 안다.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성자(聖子) 아드님께서 이루시려 하늘에서 내려오시어 십자가(十字架)에서 죽기까지 순종(順從)하셨고 하느님의 오른쪽, 곧 진리(眞理)의 자리에 앉으신다. 예수님께서 모든 만물의 진리(眞理)시라는 말씀이다.
(필리2,6-11) 6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7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이렇게 여느 사람처럼 나타나 8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9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도 그분을 드높이 올리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그분께 주셨습니다. 10 그리하여 예수님의 이름 앞에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에 있는 자들이 다 무릎을 꿇고 11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주인)이시라고 모두 고백하며 하느님 아버지께 영광을 드리게 하셨습니다.
15 너희는 사람의 기준으로 심판하지만 나는 아무도 심판하지 않는다.
= 인간들의 선악(善惡)의 계명(誡命)은 심판(審判)이지만, 악(惡)을 덮기위한 선(善 그리스도)의 대속(代贖), 죽음인 하느님의 새 계명, 새 계약은 심판하지 않는다. 오히려 믿고 받아들이는 이들은 하늘의 생명(의, 거룩)을 얻는다.
16 그리고 내가 심판을 하여도 내 심판은 유효하다. 나 혼자가 아니라, 나와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함께 심판하시기 때문이다. 17 너희의 율법에도 두 사람의 증언은 유효하다고 기록되어 있다. 18 바로 내가 나 자신에 관하여 증언하고 또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도 나에 관하여 증언하신다.” 19 그들이 예수님께 “당신의 아버지가 어디 있소?” 하고 묻자,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너희는 나를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나의 아버지도 알지 못한다.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나의 아버지도 알았을 것이다.”
= 자신들의 뜻, 소원(所願)을 위해 열심히 제사(祭祀) 드리며 의(義)로움을 행한, 그 자신의 힘을 의지(依支)하는 이는 예수님도 모르는 것이다. 앞 필리비서 2,6이하의 말씀을 되새기자.
20 이는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실 때에 헌금함 곁에서 하신 말씀이다. 그러나 아무도 그분을 잡지 않았다. 그분의 때가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 성경은 왜 헌금함(獻金函) 곁에서 하신 말씀이라 얘기할까? 헌금(獻金)은 자신의 힘, 생명인 돈을 드리는 것이다. 그런데 하느님께서 바오로도 쓰레기로 여겼던 인간의 돈(錢), 재물(財物)을 받아서 무엇에 쓰겠는가. 곧 자신의 힘을 빼라는 것이다. 자신을 비우고 낮아져야 담을(알아들을) 수 있는 말씀이라는 것이다.
예수님을, 그분의 말씀을 받아들여 빛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모든 것을 부인(否認)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늘 아래 헛됨, 새것이 없음을 봐야한다. 그래야 비울 수 있다. 그래야 하늘의 생명, 빛이 될 수 있다.
(코헬1,2.9) 2 허무로다, 허무! 코헬렛이 말한다. 허무로다, 허무! 모든 것이 허무로다! 9 있던 것은 다시 있을 것이고 이루어진 것은 다시 이루어질 것이니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이란 없다.
(2코린5,17) 17 그래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옛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것이 되었습니다.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예수님께서 우리와 한 몸이 되시기 위해 하늘 왕좌의 자리를 버리시고, 비우시고 사람의 육(肉)을 입는 그 낮아지심으로 였듯, 땅(어둠)의 재물, 명예, 의(義)를 추구하며 살았던 우리 자신을 비우고 낮아져 참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한 몸이되어 빛이되게 하소서. 저희 모두의 마음에 성령의 불을 놓으소서.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