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 탐욕(貪慾)을 경계(警戒)하여라. (루카12,15-21)

2021. 9. 21. 오전 4: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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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921일 화요일


[한가위] 탐욕(貪慾)을 경계(警戒)하여라. (루카12,15-21)


요엘 예언자는, 우리가 한껏 배불리 먹고, 우리에게 놀라운 일을 하신 하느님의 이름을 찬양하리라고 한다(1독서). 요한은, 구름 위에 앉아 계신 분이 땅 위로 낫을 휘두르시어 땅의 곡식을 수확하시는 환시를 본다(2독서).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며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드신다(복음).

 

1독서<타작마당은 곡식으로 가득하리라.>(요엘2,22-24.26ㄱㄴㄷ)

22 들짐승들아, 두려워하지 마라. 광야의 풀밭이 푸르고 나무가 열매를 맺으며 무화과나무와 포도나무도 풍성한 결실을 내리라.

23 시온의 자손들아, 주 너희 하느님 안에서 즐거워하고 기뻐하여라. 주님이 너희에게 정의에 따라 가을비를 내려 주었다. 주님은 너희에게 비를 쏟아 준다. 이전처럼 가을비와 봄비를 쏟아 준다.

24 타작마당은 곡식으로 가득하고 확마다 햇포도주와 햇기름이 넘쳐흐르리라.

26 너희는 한껏 배불리 먹고 너희에게 놀라운 일을 한 주 너희 하느님의 이름을 찬양하리라.

 

화답송 시편 67(66),24.56.7-8(7)

온갖 열매 땅에서 거두었으니, 하느님, 우리 하느님이 복을 내리셨네.

하느님은 자비를 베푸시고 저희에게 복을 내리소서. 당신 얼굴을 저희에게 비추소서. 하느님, 민족들이 당신을 찬송하게 하소서.

겨레들이 기뻐하고 환호하리이다. 하느님, 민족들이 당신을 찬송하게 하소서. 모든 민족들이 당신을 찬송하게 하소서.

온갖 열매 땅에서 거두었으니, 하느님, 우리 하느님이 복을 내리셨네. 하느님은 우리에게 복을 내리시리라. 세상 끝 모든 곳이 그분을 경외하리라.

 

2독서<그들이 한 일이 그들을 따라가리라.>(묵시14,13-16)

나 요한은 13 “‘이제부터 주님 안에서 죽는 이들은 행복하다.’고 기록하여라.” 하고 하늘에서 울려오는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러자 성령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 그들은 고생 끝에 이제 안식을 누릴 것이다. 그들이 한 일이 그들을 따라가기 때문이다.”

14 내가 또 보니 흰 구름이 있고 그 구름 위에는 사람의 아들 같은 분이 앉아 계셨는데, 머리에는 금관을 쓰고 손에는 날카로운 낫을 들고 계셨습니다.

15 또 다른 천사가 성전에서 나와, 구름 위에 앉아 계신 분께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낫을 대어 수확을 시작하십시오. 땅의 곡식이 무르익어 수확할 때가 왔습니다.”

16 그러자 구름 위에 앉아 계신 분이 땅 위로 낫을 휘두르시어 땅의 곡식을 수확하셨습니다.

 

복음<사람의 생명은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루카12,15-21)

예수님께서 15 사람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주의하여라.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

1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어떤 부유한 사람이 땅에서 많은 소출을 거두었다.

17 그래서 그는 속으로 내가 수확한 것을 모아 둘 데가 없으니 어떻게 하나?’ 하고 생각하였다.

18 그러다가 말하였다. ‘이렇게 해야지. 곳간들을 헐어 내고 더 큰 것들을 지어, 거기에다 내 모든 곡식과 재물을 모아 두어야겠다.

19 그리고 나 자신에게 말해야지. , 네가 여러 해 동안 쓸 많은 재산을 쌓아 두었으니, 쉬면서 먹고 마시며 즐겨라.

20 그러나 하느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 그러면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

21 자신을 위해서는 재화를 모으면서 하느님 앞에서는 부유하지 못한 사람이 바로 이러하다.”

 



      


한가위 제1독서 (요엘2,22-24.26ㄱㄴㄷ)


"시온의 자손들아, 주 너희 하느님 안에서 즐거워하고 기뻐하여라. 주님이 너희에게 정의에 따라 가을비를 내려 주었다. 주님은 너희에게 비를 쏟아 준다. 이전처럼 가을비와 봄비를 쏟아 준다." (23)


이스라엘 지역은 우리나라와 정반대로 양력 10월에서 3월까지 6개월이 우기(雨期)이며, 여름에는 거의 비가 내리지 않는 극심한 건기(乾期; 양력4월~9월)를 보이는데, 건기도 6개월이다.

또한 이스라엘 지역은 전국적으로 비슷한 양의 비가 내리는 것이 아니라 지중해 해안 지역, 요르단 동편이나 갈릴리 상,하류, 유다지역의 산지 등 각 지역의 위도나 고도에 따라 강수량의 편차가 크다.


통상적으로 이스라엘에서는 비를 이른 비('요레'; yore; 가을비; 양력10~11월), 장마비('게쉠'; geshem; 겨울비; 양력12~1월; 에제34,26; 에즈10,9.13), 늦은 비(봄비; 양력 2~3월; 예레5,24; 호세6,3)의 세 가지 구분한다.


우리의 개념으로는 이른 비가 봄비가 되어야 하는데, 이 지역은 우리와 반대 개념을 가지고 있다.

이른 비(가을비)는 보리 파종 직후인 양력 10월에 내리는 비 파종을 위한 밭갈이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비 말한다.

여름철에 비가 한 방울도 내리지 않아 거칠고 메말라 있는 땅을 적시며 내리는 이른 비는 생존뿐 아니라 농사에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만일 이때 비가 내리지 않으면, 씨앗을 뿌려도 발아가 되지 않는다.

이 지역은 비의 절대적인 양도 적지만, 내린 비를 저장할 수 있는 하천이나 호수 등의 수자원 시설이 부족하다.


따라서 농사는 거의 하늘에서 내리는 비에 의존하기에, 이른 비(가을비)의 비중이 그만큼 크다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늦은 비(봄비)도 농사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비다. 보통 해안 지방에서는 양력 3월내륙 지방에서는 양력 4월이면 비가 줄기 시작한다.

이때는 농번기철로 식물이 성장하는 유일한 시기이다.

이때 내리는 비는 풍부한 물과 함께 높은 기온 조건으로 농작물 성장에 절대적인 역할을 준다.


봄에 늦은비(봄비)가 내리지 않으면, 수확이 대폭 줄게 되고, 또 늦서리가 내려 농작물 피해를 입을 가능성도 커진다.

이스라엘 농민들은 비가 계속해서 많이 내릴수록 좋아한다.

특히 5월부터는 비가 거의 오지 않기에 먹을 물을 저장하기 위해서라도, 이때 내리는 비는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리고 이스라엘에서 추수 기간의 날씨는 뜨겁고 건조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아침 일찍 일어나서 시원한 아침 시간에 재빠르게 일을 한다(잠언10,6).

이 방법은 약탈하는 사람들, 전염병, 그리고 낱알이 떨어지는 것으로부터 보호하는 방법이기도 했다.


수확기에 이른 곡식의 낱알이 떨어지기 않게 하기 위해서는 신속한 추수가 진행되어야 했다.

왜냐하면, 오순절(추수절; 양력 6월; 월력 3월; 시반) 이전까지, 즉 양력 4월 초에서 6월 초까지 이스라엘 날씨는 비록 동쪽에서 불어오는 따뜻한 바람(아라비아 사막에서 불어오는 동풍)의 영향을 받기는 하지만, 습기가 있었던 지중해의 영향력(지중해에서 내륙쪽으로 부는 바람은 서풍)과 교차하는 시기이다.

그래서 날씨는 더워지기도 하지만 가끔 뇌우를 동반한 소나기가 내리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비는 이 기간에 행해지는 보리와 밀 추수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이다. 한참 추수를 기다리던 보리나 밀이 소나기를 맞으면서 수확량이 급격히 감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1사무12,17).


야고보서간 5장 7절에도 "주님의 재림 때까지 참고 기다리십시오. 땅의 귀한 소출을 기다리는 농부를 보십시오. 그는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맞아 곡식이 익을 때까지 기다립니다."라고 하면서 고난과 시련속에서도 끝까지 주님의 말씀에 충실한 자에게 축복이 내림을 선포하고 있다.


신명기 11장 13절~15절에도,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계명을 잘 들어,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하고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그분을 섬기면, 주님께서 너희 땅에 제때에 비를,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내려 주시어, 너희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거두게 해 주실 것이다.


또 너희 들에서는 가축에게 풀을 주시어, 너희가 배불리 먹게 해 주실 것이다." 하면서 이른 비(가을비)와 늦은 비(봄비)가 이스라엘이 하느님의 계명을 준행한 결과로서 받는 주님의 크나큰 축복으로 나온다.


주님께서 왜 이런 기후를 이스라엘에게 허락하셨는가를 묵상해 본다.

영적으로 주님의 뜻이 들어 있는 계명준수로 주님과 올바른 관계를 절대적으로 잘 맺을 때, 이땅에서의 먹고 사는 생존과 생계의 문제가 주님의 축복으로 해결된다는 가르침이다.


우리가 주님 대전에 영적으로 올바로 살아서 은총의 단비, 성령의 단비를 제때에 받을 때, 이 땅의 생계와 생존의 문제는 주님의 축복으로 자동적으로 해결된다는 것이다.



[한가위]

간절한 마음이 율법을 만나면 내 열심히 나오고, 진리(십자가)를 만나면 하느님의 열심, 하늘의 생명을 낳는다.

(루카12,14-21)

14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관이나 중재인으로 세웠단 말이냐?”

= 땅의 법과 재물의 중재인이 아니시라는 것이다.

 

15그리고 사람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주의하여라.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

= 탐욕-에피뚜미아   에피(강하게)+ 뚜미아(희생제사), 탐욕은 돈을 탐하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교만은 나의 모든 것을 위해 열심히 희생제사 드리는 것이다.

나의 가치가 되는 지혜, 의로움, 영광, 그 모든 것이 부자, 돈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에게 ‘그들은 돈을 좋아 한다’고 하셨던 것이다.

곧 자기 의로움, 영광은 하늘의 생명과는 상관이 없음을 오늘 말씀하신다. 그러니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교만은 영적 교만으로 깨닫고 봐야 하는 것이다.

물론 하느님의 진리를 모르는 부자, 그 도한 하늘의 생명과는 상관이 없다.

예수님께서 그 모든 것의 중재자가 아니심을 먼저 앞14절에서 말씀하신 후 오늘 말씀으로 이어진 것이다.

 

1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어떤 부유한 사람이 땅에서 많은 소출을 거두었다.

= 땅의 소출(가치)을 위한 율법과 제사의 신앙을 열심히 살았다는 것이다.

 

17 그래서 그는 속으로 ‘내가 수확한 것을 모아 둘 데가 없으니 어떻게 하나?’ 하고 생각하였다. 18 그러다가 말하였다. ‘이렇게 해야지. 곳간들을 헐어 내고 더 큰 것들을 지어, 거기에다 내 모든 곡식과 재물을 모아 두어야겠다. 19 그리고 나 자신에게 말해야지. ′자, 네가 여러 해 동안 쓸 많은 재산을 쌓아 두었으니, 쉬면서 먹고 마시며 즐겨라.′’

= 세상 사람들의 쉼인 것이다.

 

20 그러나 하느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 그러면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

= 세상의 쉼이 왜 나쁜가? 그러나 어리석다 하신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로 쉼(안식, 자유)을 누리는 존재이다.

 

(요한8,31-32) 31 예수님께서 당신을 믿는 유다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내 말 안에 머무르면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된다. 32 그러면 너희가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 예수님의 말씀이 자유를 주는 진리라는 것이다.

 

(2코린3,17) 17 주님은 영이십니다. 그리고 주님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습니다.

 

(1코린7,22) 22 주님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종은 이미 주님 안에서 해방된 자유인입니다. 마찬가지로 부르심을 받은 자유인은 그리스도의 종입니다.

 

21 자신을 위해서는 재화를 모으면서 하느님 앞에서는 *부유하지 못한 사람이 바로 이러하다.”

= 자신의 뜻을 위해 구하면서 하느님의 뜻을 구하지 않는 신앙인 이다. 자신의 길을 걸으면서 하느님의 길을 외면하는 신지들~ 그들에게 하늘의 용서, 자유, 생명, 구원은 없다.

 

(로마10,3) 3 하느님에게서 오는 의로움을 알지 못한 채 자기의 의로움을 내세우려고 힘을 쓰면서, 하느님의 의로움에 복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로마3,25) 25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속죄의 제물로 내세우셨습니다. 예수님의 피로 이루어진 속죄는 믿음으로 얻어집니다. 사람들이 이전에 지은 죄들을 용서하시어 당신의 의로움을 보여 주시려고 그리하신 것입니다. 아멘!!!

 

 


 

 한가위 복음(루카12,15~21)


"그러나 하느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이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 그러면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 자신을 위해서는 재화를 모으면서 하느님 앞에서는 부유하지 못한 사람이 바로 이러하다."  (20~21)


'어리석은 자야'에 해당하는 '아프론'(aphron; you fool)은 부정적 의미의 접두사 '아'(a)와 '지혜' 또는 '지각'을 뜻하는 명사 '프렌'(phren) 합성된 것으로서, '무분별함', '지혜없음'을 가리킨다.


이 부자의 어리석음은 참된 가치가 어디에 있는지를 분별하지 못한 데 있다. 그는 이 세상의 풍요로움만을 최고의 가치로 여겼던 것이다.

그는 루카 복음 12장 5절에 나오는 '탐욕'의 노예가 된 사람이다.


'탐욕'에 해당하는 '플레오넥시아스'(pleoneksias; greed; covetousness)의 기본형 '플레오넥시아'(pleoneksia) '더 많은'이라는 뜻의 '플레이온'(pleion) '가지다'는 뜻의 동사 '에코'(echo)에서 파생된 '엑시아'(eksia)가 합성된 것으로서 어원적으로 '자신의 분수에 넘치도록 더 많이 가지려고 하는 욕심'을 가리킨다.


루카 복음 12장 5절에서는 '물질'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과도하게 욕심을 부리게 되는 세상에 속한 모든 것을 그 대상으로 한다.

또한, 이 부자의 어리석음은 그의 소유를 지혜롭게 사용하지 못한 데 있다.

그는 자기 자신만을 위해 재화를 쌓았을 뿐, 이것을 가지고 이웃을 구제하거나 하느님께 봉헌함으로써 하느님 앞에서 부유한 자가 되지 못하였다(21절).


결국 여기서 말하고 있는 그의 어리석음이란그 부자가 이 세상의 창고에만 자신의 재화를 쌓았을 뿐, 영원한 하느님 나라를 위해서는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았기 때문에, 겉으로는 풍요롭게 보였지만 내면적으로는 아무것도 얻지 못한 공허한 삶이었음을 가리킨다.


'오늘 밤에'


여기서 '오늘 밤에'에 해당하는 '타우테 테 뉙터'(taute te nykti; this night) 앞선 19절의 '여러 해 동안'('에이스 에테 폴라'; eis ete polla; for many years)와 대조를 이룬다.


'이 밤에'로 직역되는 이 표현은 부자가 여러 해 동안 쉬면서 먹고 마시고 즐길 계획을 세운 바로 그날 밤을 가리킨다.

부자는 '여러 해' 동안 향락을 누리려고 계획했지만, 하느님께서는  계획한 바로 그날 밤에 그의 영혼을 되찾아 갈 것이다.

이것은 그의 계획이 완전히 수포로 돌아가게 된 것 뿐만 아니라, 이 세상의 재물을 의지하는 것이 얼마나 덧없고 허무한 것인가를 보여 준다.


'하느님 앞에서는 부유하지 못한 사람'


'하느님 앞에서는'에 해당하는 '에이스 테온'(eis theon; toward God) '자신을 위해서는'으로 번역된 '헤아우토'(heauto; for himself)와 대조를 이룬다. 

이러한 대조는 재물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는 것이 중요한 지를 보여 주고 있다.

 

즉 자기 자신만을 위하여 재화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하느님께 쌓아 두는 것이 올바르게 재화를 사용하는 것임을 교훈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하느님께 쌓아 두는 것은 하느님의 구원 사업에 협력하고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봉헌하고 협조하는 것과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웃에 대한 애덕의 실천인 자선과 나눔을 말한다(루카12,31.33참조).



 

연중 제25주간 월요일 제1독서 (에즈1,1-6)


"나는 너희 가운데 그분 백성에 속한 이들에게는 누구나 그들의 하느님께서 함께 계시기를 빈다. 이제 그들이 유다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 집을 짓게 하여라. 그분은 예루살렘에 계시는 하느님이시다." (3)


페르시아의 임금 키루스(Cyrus)가 정복한 영토 중에는 바빌론에 의해 포로로 잡혀온 유다 지파와 벤야민 지파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 이전에 앗시리아에 의해 끌려온 나머지 지파 즉 북부 이스라엘 백성들도 있었다.

그리고 키루스의 칙령에 의해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사람들 중에는 남부 유다 백성들뿐만 아니라 북부 이스라엘 사람들도 있었다.


에즈라기 1장 3절에서 새 성경의 '그분 백성에 속한 이들'이라는 표현은 애매하지만,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암모'(ammo)는 분명히 '그의 백성'(his people) 즉 '하느님의 백성'이라는 뜻을 갖는다.

또한 '너희 가운데'에 해당하는 '빠켐'(bakem; among you)은 키루스의 칙령을 받는 자들, 즉 키루스의 지배를 받는 페르시아의 모든 백성들을 가리킨다.


따라서 본문은 키루스의 통치 지역에 거주하는 자들 중에 하느님의 백성이면 누구든지 그 지파와 신분을 막론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성전을 건축할 사람에 해당된다는 의미이다.

즉 하느님의 백성으로서 남부 유다와 북부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성전을 건축할 대상으로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바빌론 유배 생활 50년만에 실제 포로 귀환으로 약속의 땅으로 돌아가 성전 재건 및 선민 공동체 회복에 기여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에즈라기에는 키루스의 칙령에 따라 귀환한 사람들의 명단이 구체적으로 언급되어 있다.

즉 에즈라는 에즈라기 2장에서 무려 70절이나 할애하여 제1차 귀환자들의 가계별 인원수를 정확하게 밝혔으며, 에즈라기 8장에서는 20절을 할애하여 제2차 귀환자들의 가계별 인원수를 정확하게 밝혔다.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의 집을 짓게 하여라'


여기에 해당하는 원문은 '웨이벤 에트 베트 예흐와 엘로헤 이스라엘' (weiben eth beth yehwa ellohe israel; and build the temple of the Lord , the God of Israel)이다.

그들이 지어야 할 '집'은 하느님께서 간택하시고 계약을 맺으셨던 '이스라엘'의 전능하신 '하느님'이신 주님의 '집'인 것이다.


여기서 '집'에 해당하는 '뻬트'(beth)의 원형 '빠이트'(baith)는 '짓다'(욥기27,18), '세우다'(룻기4,11), '건축하다', '세우다'(민수32,28) 등의 뜻을 지닌 동사 '빠나'(bana)에서 유래하여 건물로서는 '집'을 의미한다.


본문에서는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의 수식을 받으므로, 이것은 의심할 바 없이 하느님 임재의 상징적 처소인 '성전'(2열왕16,18; 1역대29,3)을 가리킨다.

하지만 이 단어가 상징적 의미로 사용될 때에는 '가족'(창세5,22), '씨족'(민수1,2)등을 나타내기도 한다.

사실 본문에서도 이면적으로는 이러한 의미를 지닌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에즈라기 전체는 선민 이스라엘의 회복과 재건 과정을 언급하는데, 그 과정이 표면적으로는 포로 귀환 및 예루살렘 성전과 성곽의 재건으로 나타내지만, 내면적으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느님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것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에즈라기 전반부 1-6장은 즈루빠벨의 주도로 이루어진 제1차 포로 귀환과 성전 재건을 다루지만, 후반부 7-10장은 에즈라 주도로 이루어진 제2차 포로 귀환과 신앙 쇄신과 개혁을 다룬다.

따라서 이 모든 내용의 서론적 성격을 지니는 에즈라기 서두에 나오는 키루스의 칙서에서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의 집' 재건은 일차적으로 예루살렘 성전의 재건을 가리키지만, 더 나아가서는 하느님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적 회복의 의미까지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그들의 하느님꼐서 함께 계시기를 빈다'


여기에 해당하는 원문은 '예히 엘로하이우 임모'(yehi ellohiau immo; may his God be with him)이다.

원문은 '그들의 하느님'이 아니고 '그의 하느님'('엘로하이우'; ellohaiu)이다.

여기서 3인칭 단수형으로 쓰인 '그'는 하느님의 백성된 사람 하나하나를 가리키는 표현이다. 즉 키루스는 하느님께서 그의 백성 하나하나와 함께 하시기를 기원했던 것이다.


'이 백성의 남은 자들이 머무르고 있는 모든 지방의 사람들은' (4)


'남은 자들'에 해당하는 '한니쉬아르'(hannishiar; remainders; survivors)는 '남다'(창세32,8)라는 뜻의 동사 '샤아르'(shaar)의 수동 분사형에 정관사 '하'(ha)가 결합된 형태로서 '그 남아 있는 자들'이라는 뜻이다.

이것은 남아 있는 원인이 스스로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외부적 요인에 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이 표현은 일차적으로 하느님의 은혜에 의해 소멸되지 않고 남겨진 자란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인간의 의지가 완전히 배제된 것이 아니다.


하느님의 뜻은 범죄한 남부 유다를 멸망시켜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가게 함으로써 그곳에서 죄를 깨닫고 회개하면 회복시키는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예레27,1-15; 31,1-14), 이를 거부하고 이집트로 피신한 자들이 있었다(예레42-44장).

뿐만 아니라 바빌론에 포로된 자들 가운데서는 그곳 이방 문화에 동화된 자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 자신들이 포로된 시건이 갖는 진정한 의미를 깨닫고 회개하며 하느님을 섬기는 자들이 있었다. 그들이 바로 본절에 나오는 '그 남아 있는 자들','이 백성의 남은 자들'인 것이다.


참고로 에즈라기는 B.C.538년 페르시아 임금 키루스의 포로 귀환 칙령으로부터 B.C.444년 느헤미야 주도의 제3차 포로 귀환 직전,즉 제2차 포로 귀환 시대까지를 다루는 책으로서, 제2성전인 즈루빠벨 성전의 건축과 에즈라의 신앙 개혁을 중심으로 한 선민 이스라엘 역사의 영속성을 강조하고 있다.






히브리 성경 전통에서는 에즈라와 느헤미야기는 저자의 이름을 따서 에즈라서로 불리며,

단일작품으로 여겨졌으며, 1세기에 간행된 히브리 성경에서 구분이 이루어졌다.

저자는 바빌론 유배 이후 한 세기 동안의 사건들을 보고한다.

작중연대는 어림잡아 키루스 칙령(BC539년경)부터 아그타크세르크세스 1세(BC464-424) 말년 까지로 잡으면 된다.   

최종 편집은 느헤미야의 공적 활동이 끝난 뒤인 BC400년경에 이루어졌다고 본다.


에즈라.느헤미야기의 관심사는 세 가지이다.

성전 건립.예루살렘 도성 복구.하느님 백성의 쇄신이며, 이 세가지는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

성전 건립과 예루살렘 도성 복구는 이스라엘의 외적 조건을 회복하는 것이다.

외적 조건을 아무리 완벽하게 회복하더라도, 진정한 내적 쇄신을 이루지 않으면, 이스라엘은 또 다시 정체성을 잃고, 이민족들 사이에서 방황하게 될 것이다.

에즈라와 느헤미야는 둘 다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성전 건립과 도성 복구와 더불어 그 옛날 하느님께서 모세를 통해 자기네 조상들에게 내려주신 율법을 바탕으로 시나이 계약을 회복하고, 백성을 쇄신하는데 심혈을 기울인다.

바빌론 유배를 끝내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성전과 도성을 재건하고, 새로운 계약 공동체로 다시 태어나게 된, 유배 이후의 시대를 '제 2의 이집트 탈출' 이라 부른다.

에즈라('도움'이란 뜻)서는 전반부(1-6장)과 후반부(7-10장)으로 나뉘는데, 전반부는 유배자들의 귀환과 성전의 건립 및 봉헌을 다루고, 후반부는 귀환자들의 쇄신을 다룬다.


성전 건축을 명하는 공식 문서인 키루스 칙령은 세 번(1,2-4;,5,13-15;6,3-5)나오는데,

오늘 독서의 내용이 바로 그것이다.

솔로몬이후 우상숭배와 계명 불이행으로 왕국 분열이 일어나고, 북부 이스라엘은 앗시리아에 의해 BC 722년에 멸망하고, 남부 유다는 신바빌로니아에 의해 BC 587년 멸망하고, 나라를 끌고 갈 만한 엘리트들이 유배를 간다.


이제 때가 차서, 혼종혼과 더불어 야훼 유일신 신앙을 버리고 혼합종교에 빠진 유다는 성전건립을 통해 무너진 주님과의 관계 정립과 회복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작업이 유다 자체의 힘으로 가능한가? 그렇지 않다. 하느님 만이 하실 수 있는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하신 말씀과 약속은 반드시 이루신다. 그것도 생각지도 못한 적대국의 사람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바로 유배로 끌려간 페르시아 임금 키루스를 통해 이루어진다.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하느님께서는 하시고자 하시면 못하실 일이 없으시다. 적대국의 왕도, 원수도 주님 손에 들어 있고, 주님이 그들을 유다를 위한 당신 섭리의 도구로 쓰신다.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같지 않고, 너희 길은 내 길과 같지 않다. 주님의 말씀이다. 하늘이 땅 위에 드높이 있듯이 내 길은 너희  길 위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 위에 드높이 있다."(이사 55,8-9)


우리는 이러한 주님의 말씀과 일련의 역사하심을 깊이 묵상하면서 회개해야 하고, 주님 품으로 빨리 돌아와야 한다.

"주님께서는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시려고, 페르시아 임금 키루스의 마음을  움직이셨다. 그리하여 키루스는 온 나라에 어명을 내리고 칙서를 선포하셨다."(1,1)


 



 

 연중 제25주간 월요일 복음(루카8,16~18)

 

"그러므로 너희는 어떻게 들어야 하는지 잘 헤아려라.  정녕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줄로 여기는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18)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루카8,4~15)와 등불의 비유의 결론으로서 예수님께서는 부익부 빈익빈의 경제 원리를 빗대어 말씀하시며, 복음을 듣고 실천하는 믿음의 자세를 촉구하신다.

 

또한 이 말씀은 탈란트의 비유의 결론 부분에도(마태25,29), 미나의 비유의 결론에도(루카19,26), 그리고 본절과 병행 구절인 마르코 복음의 등불의 비유에도 등장한다(마르4,25).

 

여기서 예수님께서는 '가진 자'와 '가진 것이 없는 자'를 비교하신다. 여기서 반복하여 나오는 '호스 안'(hos an)은 '~하는 자는 누구든지' (whosoever)라는 의미로서 '가진 자'와 '가진 것이 없는 자'를 총칭하는 표현이다.

그리고 여기서 '가진 자' 하느님의 말씀이 선포될 때 그것을 환영하고 잘 활용하여 실천하는 자들을 의미한다.

이들은 마치 좋은 땅에 떨어진 씨앗이 풍성한 열매를 맺듯이(루카8,15)  계속적으로 삶의 더 많은 기쁨과 은총을 경험하게 된다.

 

반면에 '가진 것이 없는 자'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서도, 그리고 그 말씀의 중요성을 인식하면서도 그것을 경시하고 하찮게 여기며 실천하지 않는 자를 가리킨다.


그런데 '가진 것이 없는 자'에게 있어서 치명적인 함정은 자신들에게 분명히 없는데, '가진 줄'로 안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사람들을 향해 '가진 줄로 여기는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고 말씀하신다.

 

마태오 복음 25장 29절과 마르코 복음 4장 25절, 그리고 루카 복음 19장 26절에는 빼앗기게 되는 대상이 모두 '가진 것', 즉 '호 에케이'(ho echei)로 되어 있다.

즉 루카 복음 8장 18절의 '~줄로 여기는'에 해당하는 '도케이'(dokei)가 없다.


 '도케이'(dokei)는 '사실은 그렇지 않는데 그러하다고 독단적으로 생각하거나 잘못 믿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루카 복음 8장 18절의 '(가진 것이) 없는 자'는 사실은 자신에게 없는 것을 자신이 가지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자는 실제로 가지고 있는 것이 없으므로 빼앗길 것도 없다. 그런데 루카 복음사가는 8장 18절에서 그것조차도 빼앗길 것이라고 기록했다.

이것은, 사실은 없는데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자가 결국 그 마음이 완고해지고 사악해져서 하느님의 은총과 구원의 길에서 더 멀어질 것이라는 의미를 가르쳐주는 것이다.

 

그는 전에 이미 하느님께로부터 은총과 말씀을 깨닫는 통찰력, 그리고 풍성한 은사들을 받았지만, 그후 말씀에 부주의하고 말씀 듣기를 싫어하고, 순종하지 않는 삶을 사는 중에 그러한 것들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러한 사실도 모른 채 자신 안에 그러한 것들이 여전히 남아 있는 줄 알고, 계속해서 하느님께서 원치 않는 방향으로 흘러 결국에는 하느님의 구원의 은혜에서조차 멀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즉 예수님께서는 자본주의의 부조리요 모순인 경제적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가지고서, 복음에 대한 자세가 결국 내적(內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의 원인이 될 것임을 가르쳐주신 것이다.

 

 




2021년 9월 20일 [연중 제25주간 월요일]


학식 높은 도울이 왜 성경(말씀)그리스도를 반박할까?


복음 (루카8,16-18)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16 “아무도 등불을 켜서 그릇으로 덮거나 침상 밑에 놓지 않는다등경 위에 놓아 들어오는 이들이 빛을 보게 한다.

= 등경(燈檠)은 교회(敎會)를, 그릇은 사람을, 등불은 교회의 빛, 주인이신 주님을 뜻한다. 그러니까 교회에 들어오는 이들이 하느님의 사랑, 의로움, 그 영광의 빛을 보도록 인간들의 의로움, 영광으로 덮지 말라, 가리지 마라는 말씀이다.


(이사64,5) 5 이제 저희는 모두 부정한 자처럼 되었고 저희의 의로운 행동이라는 것들도 모두 개짐과 같습니다저희는 모두 나뭇잎처럼 시들어 저희의 죄악이 바람처럼 저희를 휩쓸어 갔습니다.


(이사57,12) 12 내가 너의 의로움과 너의 행실들을 밝혀내리니 그것들은 너에게 소용이 없으리라.


(이사45,24) 24 말하리라. “주님께만 의로움과 권능이 있다그분께 격분하는 자들은 모두 그분 앞에 와서 부끄러운 일을 당하리라.


(시편143,11) 11 주님당신 이름을 보시어 저를 살리소서당신의 의로움으로 제 영혼을 곤경에서 이끌어 내소서.


17 숨겨진 것은 드러나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져 훤히 나타나기 마련이다.

= 성경(聖經) 말씀 안에 숨겨진, 그리고 그 말씀을 인간들의 법(法)으로 받아 감추어진 하느님의 진리(眞理)는 드러나고, 나타나기 마련이라는 말씀이다. 또한 인간의 의로움 속에 숨겨진, 감추어진 속셈, 이타의 사랑이 아닌 이기적 자기 사랑도 나타나고 드러나기 마련이라는 말씀이다.


(히브4,13) 13 하느님 앞에서는 어떠한 피조물도 감추어져 있을 수 없습니다그분 눈에는 모든 것이 벌거숭이로 드러나 있습니다이러한 하느님께 우리는 셈을 해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 피조물의 모든 행위는 하느님께 벌거숭이, 곧 없음이라는 것이다.


18 그러므로 너희는 어떻게 들어야 하는지 잘 헤아려라정녕 가진 자는 더 받고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줄로 여기는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 어떻게 들어야 하나 - 인간들의 의로움을 위한 말씀으로? 하느님의 의로움을 드러내는 말씀으로? 문자 그대로 도덕(道德)과 윤리(倫理)로? 문자(文字) 안에 숨겨진 하느님의 뜻으로? 구약의 율법(제사와 윤리)으로? 신약의 진리(眞理)로?


(루가8,25) 25 예수님께서는 그들(제자들)에게, “너희의 믿음은 어디에 있느냐?” 하셨다그들은 두려워하고 놀라워하며 서로 말하였다. “도대체 이분이 누구시기에 바람과 물에게 명령하시고 또 그것들이 이분께 복종하는가?”

= 믿음이, 율법(律法)에 의한 것이냐? 깨달은 진리(眞理)의 있는 것이냐? 물으신 것이다. 제자들은 하느님의 뜻을 깨닫지 못했기에 두려워한 것이다.


큰 계명(誡命)을 묻는 율법(律法)교사에게~

(루가10,26) 26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율법에 무엇이라고 쓰여 있느냐너는 어떻게 읽었느냐?”

= 율법(律法) 그대로 읽었느냐? 율법의 실체인 진리(眞理)로 읽었느냐? 물으신 것이다.


(묵시3,3) 3 그러므로 네가 가르침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들었는지 되새겨그것을 지키고 또 회개(悔改)하여라.

= 구약(舊約)은 신약(新約)의 예표(豫表)요 신약은 구약의 실체(實體)라 했다. 곧 율법(제사와 윤리) 그 옛 계약을 십자가(十字架)에서 대속의 죽음으로 완성하신 그 새 계약(契約)의 그리스도를 진리(眞理)로 받아들여 지키라는 것이다. 곧 그리스도로 받은 하늘의 생명(生命)을 지키는 것이다.


(1코린2,10) 10 하느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그것들을 바로 우리에게 계시해 주셨습니다성령께서는 모든 것을그리고 하느님의 깊은 비밀까지도 통찰하십니다.


(2베드1,21) 21 예언(말씀)은 결코 인간의 뜻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사람들이 성령에 이끌려 하느님에게서 받아 전한 것입니다.

= 인간의 지혜로는 절대 하느님의 뜻을 깨달을 수도 없고, 믿을 수도 없다. (학식(學識)이 뛰어난 도울 김용욱씨가 성경 말씀을 반박(反駁)하는 이유다) 그래서 하느님의 영(靈), 성령(聖靈)을 우리의 보호자로 보내주신 것이다.


(1코린2,12-16) 12 우리는 세상의 영이 아니라하느님에게서 오시는 영을 받았습니다그래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을 알아보게 되었습니다. 13 우리는 이 선물에 관하여인간의 지혜가 가르쳐 준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가르쳐 주신 말로 이야기합니다영적인 것을 영적인 표현으로 설명하는 것입니다. 14 그러나 현세적 인간은 하느님의 영에게서 오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그러한 사람에게는 그것이 어리석음이기 때문입니다(도울 김용욱의 지혜로는 하느님의 말씀이 어리석음이니 반박할 수밖에~)그것은 영적으로만 판단할 수 있기에 그러한 사람은 그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15 영적인 사람은 모든 것을 판단할 수 있지만그 자신은 아무에게도 판단받지 않습니다. 16 “누가 주님의 마음을 알아 그분을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지니고 있습니다.

= 성령이 함께 하시지 않으면 우리는 흙의 티끌, 고기 덩어리일 뿐이다. 다시, 성령을 모시고 있지 않은 사람, 곧 성령께 의지하지 않으며 그분의 이끄심, 도우심을 청(請)하지 않는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아닌 것이다.(로마8,9참조)


(시편51,12) 12 하느님깨끗한 마음을 제게 만들어 주시고 굳건한 영을 제 안에 새롭게 하소서.


다윗의 기도 응답~

(예제36,26) 26 너희에게 새 마음을 주고 너희 안에 새 영을 넣어 주겠다너희 몸에서 돌로 된 마음을 치우고살로 된 마음을 넣어 주겠다.


이루심~

(히브10,16-17) 16 “그 시대가 지난 뒤에 내가 그들과 맺어 줄 계약은 이러하다. -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나는 그들의 마음에 내 법을 넣어 주고 그들의 생각에 그 법을 새겨 주리라.” 17 그리고 이렇게 덧붙이셨습니다. “나는 그들의 죄와 그들의 불의를 더 이상 기억하지 않으리라.”

= 하느님의 계획, 약속을 그리스도께서 대속(代贖)으로 다 이루시고 새 계약, 새 계명으로 우리 마음과 생각에 넣어 주시어 우리가 새 마음, 새 영의 사람이 되었다.


☨ 보호자 성령님! 오늘 말슴과 가르침을 누가 믿겠습니까? 그러나 저희를 가르치시며 탄식(歎息)으로 기도(祈禱)하시어 새 마음(영)을 주시어 믿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2021년 9월 21일 화요일[한가위]


새 마음을 약속하신 하느님!


복음(루카12,15-21)

13 군중 가운데에서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스승님, 제 형더러 저에게 유산을 나누어 주라고 일러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14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관이나 중재인으로 세웠단 말이냐?”

= 예수님은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 곧 세상의 질서를 위한 중재자, 구원자로 오신 분이 아니시라는 말씀이다.

참조~

(요한3,16) 16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17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18 아들을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았다. 하느님의 외아들의 이름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15 사람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주의하여라.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 1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어떤 부유한 사람이 땅에서 많은 소출을 거두었다. 17 그래서 그는 속으로 ‘내가 수확한 것을 모아 둘 데가 없으니 어떻게 하나?’ 하고 생각하였다. 18 그러다가 말하였다. ‘이렇게 해야지. 곳간들을 헐어 내고 더 큰 것들을 지어, 거기에다 내 모든 곡식과 재물을 모아 두어야겠다. 19 그리고 나 자신에게 말해야지. ′자, 네가 여러 해 동안 쓸 많은 재산을 쌓아 두었으니, 쉬면서 먹고 마시며 즐겨라.′’

= 작은 예로~ 옛적에는 냉장고가 없었기에 이웃과 음식을 나누는 삶을 살았다. 살 수 밖에 없었다. 요즘엔 냉장고가 하나있는 집이 드물다. 그 만큼 나눔이 아닌 더 많은 것을 소유하기 위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사람을 병들게 하는 탐욕의 문화 속에 살고 있다.

가끔은 불법이 들통나 집안 금고에 현금이나 금괴 등을 가진 사람이 검찰에 잡혀가는 모습을 뉴스로 보곤 한다. 인간의 탐욕, 욕심이 부른 죄, 죽음이다.


20 그러나 하느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 그러면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

= 우리의 목숨은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하느님의 것이다. 하느님께서 부르시면 가야하는 목숨이다


21 자신을 위해서는 재화를 모으면서 하느님 앞에서는 부유하지 못한 사람이 바로 이러하다.”

= 돈만 인색한 부자만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다. 하느님 앞에 부유하지 못한 사람은 우리의 속죄 제물로 내주신 그 예수를 믿지 못하는 것이다. 그분을 진리로 깨닫지 못한 사람이다. 그 진리가 거저 주시는 의로움을 받지 못한 사람이다.


(로마10,2-3) 2 나는 그들에 관하여 증언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하느님을 위한 열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깨달음에 바탕을 두지 않은 열성입니다. 3 하느님에게서 오는 의로움을 알지 못한 채 자기의 의로움을 내세우려고 힘을 쓰면서, 하느님의 의로움에 복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 무엇을 했는가로 받는 구원이 아니다. 누구인가로 받는 구원이다. 그리스도의 대속 그 진리로 의롭게 되어 그분의형제로~ 하느님의 자녀로 그 신분으로 받는 구원이다. 우리의 구원은 하느님께서 계획하시고 아드님 그리스도께서 이루시고 성령께서 완성하셨다. ‘다 이루어졌다.’ 그러나 믿지 못하면 잃어버리는 구원이다.


(갈라6,7-8) 7 착각하지 마십시오. 하느님은 우롱당하실 분이 아니십니다. 사람은 자기가 뿌린 것을 거두는 법입니다. 8 자기의 육에 뿌리는 사람은 육에서 멸망을 거두고, 성령에게 뿌리는 사람은 성령에게서 영원한 생명을 거둘 것입니다.

= 자기 육의 힘(돈, 의)을 믿고 그 육(자신)을 의지하는 사람은 영원한 땅속으로 들어갈 것이며, 우리의 구원을 완성하신 보호자 성령께 의탁, 의지하는 사람은 하늘의 용서, 하늘의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 우리에게 새 마음, 새 영을 넣어주신다 약속하신 하느님 이 땅의 것이 사라질 그림자 연기 일뿐임을 깨닫게 하소서~보호자 설령님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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