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3주간 월요일] “손을 뻗어라” (루카6,6-11)

2021. 9. 6. 오전 4:5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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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96일 월요일

[연중 제23주간 월요일] 손을 뻗어라 (루카6,6-11)

  


1독서<과거의 모든 시대에 감추어져 있던 신비를 선포하는 일>(콜로1,24-2,3)

24 이제 나는 여러분을 위하여 고난을 겪으며 기뻐합니다. 그리스도의 환난에서 모자란 부분을 내가 이렇게 그분의 몸인 교회를 위하여 내 육신으로 채우고 있습니다.

25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위하여 당신 말씀을 선포하는 일을 완수하라고 나에게 주신 직무에 따라, 나는 교회의 일꾼이 되었습니다.

26 그 말씀은 과거의 모든 시대와 세대에 감추어져 있던 신비입니다. 그런데 그 신비가 이제는 하느님의 성도들에게 명백히 드러났습니다.

27 하느님께서는 다른 민족들 가운데에 나타난 이 신비가 얼마나 풍성하고 영광스러운지 성도들에게 알려 주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 신비는 여러분 가운데에 계신 그리스도이시고, 그리스도는 영광의 희망이십니다.

28 우리는 이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사람으로 굳건히 서 있게 하려고, 우리는 지혜를 다하여 모든 사람을 타이르고 모든 사람을 가르칩니다.

29 이를 위하여 나는 내 안에서 힘차게 작용하는 그리스도의 기운을 받아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2,1 사실 여러분과 라오디케이아에 있는 이들, 그리고 내 얼굴을 직접 보지 못한 모든 이들을 위하여 내가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를 여러분이 알기 바랍니다.

2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은 여러분과 그들이 마음에 용기를 얻고 사랑으로 결속되어, 풍부하고 온전한 깨달음을 모두 얻고 하느님의 신비 곧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갖추게 하려는 것입니다.

3 그리스도 안에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물이 숨겨져 있습니다.

 

화답송 시편 62(61),6-7.9(8)

내 구원, 내 영광 하느님께 있네.

오로지 하느님에게서 내 희망이 오리니, 내 영혼아, 그분을 고요히 기다려라. 그분만이 내 바위, 내 구원, 내 성채. 나는 흔들리지 않으리라.

백성아, 언제나 그분을 신뢰하여라. 그분 앞에 너희 마음을 쏟아 놓아라. 하느님은 우리의 피신처이시다.

 

복음<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을 고쳐 주시는지>(루카6,6-11)

6 안식일에 예수님께서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셨는데, 그곳에 오른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있었다.

7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을 고발할 구실을 찾으려고, 그분께서 안식일에 병을 고쳐 주시는지 지켜보고 있었다.

8 예수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일어나 가운데에 서라.” 하고 이르셨다. 그가 일어나 서자

9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묻겠다.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10 그러고 나서 그들을 모두 둘러보시고는 그 사람에게, “손을 뻗어라하고 말씀하셨다. 그가 그렇게 하자 그 손이 다시 성하여졌다.

11 그들은 골이 잔뜩 나서 예수님을 어떻게 할까 서로 의논하였다.

 

 


  연중 제23주간 월요일 제1독서(콜로1,24~2,3)

 

"이제 나는 여러분을 위하여 고난을 겪으며 기뻐합니다.  그리스도의 환난에서 모자란 부분을 내가 이렇게 그분의 몸인 교회를 위하여  내 육신으로 채우고 있습니다." (24) 


사도 바오로는 콜로새서 1장 24~29절에서 복음의 일꾼이 된 자신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위하여 고난을 겪으며 수고를 아끼지 않고 있음을 전하면서 콜로새 교회 내의 복음의 일꾼들을 격려하고 있다.


사도 바오로는 먼저 콜로새 교인들을 위해서 겪는 고난을 기뻐한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사실 사도 바오로는 콜로새 교회를 직접 설립하거나 사목을 담당하지 않았기 때문에 들로 말미암아 받았던 직접적인 괴로움은 없었다.


그렇다면, 왜 사도 바오로는 '여러분을 위하여' 고난을 겪는다고 말하는가?

그것은 이방인 출신 교인들을 위해서 유다인들로부터 받는 고난을 염두에 둔 말이다. 그러한 고난 역시 이방인인 콜로새 교인들을 위해 고난을 겪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사도 바오로는 이러한 고난을 기뻐한다고 말한다.


여기서 '기뻐합니다'로 번역된 '카이로'(chairo)는 '기뻐하다', '즐거워하다'라는 뜻으로서 행복과 번영, 평화와 평안에서 오는 감정을 가리킨다.


사도 바오로는 이 단어를 자주 사용하였는데, 놀라운 것은 도무지 기뻐할 수 없는 상황 가운데 처했을 때 이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사도16,25; 2코린11,16~33; 로마5,3; 필리2,18).


사도 바오로가 세상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이러한 기쁨을 지닐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그를 구속하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또한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희망을 가질 성도들로 말미암아 그의 마음에서 솟아나는 기쁨과 평화 때문이었다.


본 서간을 쓰는 당시의 상황으로 볼 때, 사도 바오로는 투옥이라는 암담한 상황 가운데 있었지만, 사도 바오로의 내면을 감싸고 있던 것은 성령 하느님의 충만한 영이었다.

이러한 성령의 충만함 가운데서 그는 어떤 상황에 처해지더라도 진심으로 기뻐했던 것이다. 

 

'그리스도의 환난에서 모자란 부분을 ~ 채우고 있습니다' 


사도 바오로는 여기서 복음을 전하다가 겪는 고난을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 

혹은 '모자란고난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모자란'으로 번역된 '휘스테레마타'(hysteremata; which is behind; what is still lacking)의 원형 '휘스테레마'(hysterema)는 '부족', '모자라는 것'으로서 부족함이 보충되어야 할 사람이나 사물에 대하여 사용된다.

그러나 이러한 표현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상 고난이 인류를 구원하기에 부족하다는 뜻이 결코 아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극도의 고난을 경험하심으로써 완전한 구속(救贖; Redemption)을 이루셨다(요한19,30).

그러나 사도 바오로가 이 구원의 복된 소식을 전파하기 위해, 또한 그리스도의 구원 사업이 계승되는 교회의 성장을 위해 필요한 고난이 사도 바오로 자신에게는 물론이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까지 남겨져 있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 이런 표현을 쓴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구원 사업을 땅 끝까지 전파하는 것을 교회의 가장 중요한 사명으로 맏기셨다(마태28,18~20).


사도 바오로는 이 점에서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에 합당한 사도로서 복음 선교를 감당한다는 자부심을 가졌고, 또한 복음 선교 도중에 자신이 고난 겪는 것은 곧 자신과 영적으로 일치되어 있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고난 겪으시는 것과 같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복음 선교 과정에서 겪었던 그 모든 고난의 흔적을 예수님의 흔적으로 생각했던 것이다(갈라6,17).


사도 바오로는 마지막 날 예수님을 만나게 될 때, '바오로야, 참 수고했다. 나를 위해 겪은 너의 고난은 바로 나의 고난이다'라고 말씀하실 예수님의 이 한마디를 늘 염두에 두고 고난을 기뻐했을 것이다.

이러한 자기 확신을 가진 사도 바오로는 고난 가운데 기뻐할 수 있었고, 심지어는

그리스도의 환난에서 모자란 부분을 채우고 있다고 고백했던 것이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영성적으로 사도 바오로 시대의 콜로새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상 구속 사업 공로를 헛되이 돌리는 죄인들 때문에 예수님께서 또 다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실 수 없으시니까, 사도 바오로 자신이 또 하나의 그리스도 예수가 되어 그들의 구원을 위한 대속적 고난을 바쳐야 된다는 믿음과 충성에서 나온 말씀으로도 해석할 수 있겠다.


한편, '채우고 있습니다'로 번역된 '안타나플레로'(antanapllero; fill up)의 원형 '안타나플레로오' (antanaplleroo)는  그 자체로서 이미 '번갈아 채우다'라는 뜻이 있으며, 특히 여기서는 계속과 반복을 나타내는 현재형으로 사용되어 계속적으로 새로운 고통으로 가득가득 채운다는 의미를 전달한다.


이것은 자신에게 베풀어 주신 은총에 비하면 매번 새로운 고통이 자신의 육신에 와도 부족하며, 날마다 고난을 극복하는 생활을 계속한다는 고백이다.


더구나 그 고난을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의 육신으로' 혹은 '자신의 육신 안에'(in my flesh) 채우고 있다는 것은 그 고난이 아무런 목적없이 당하는 것이 아님을 말해준다.

복음으로 인해 겪는 사도 바오로의 고난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위한 고난이었다.


하느님께서 가장 기뻐하시고 원하시는 사목이 무엇인지를 알아듣고, 하느님의 은총을 깊이 깨달았던 사도 바오로는 교회에 맡겨진 복음을 땅 끝까지 전하라는 주님의 지상 절대 명령에 최선을 다해야 하며, 그 사목중에 겪게 되는 고난을 상급으로 생각하고 기쁨으로 감당했던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지금도 사도 바오로와 같은 복음의 신실한 일꾼들을 교회안에서 찾고 계신다고 보아야 한다.





[연중 제23주간 월요일]

손을 뻗어라.”

(루카 6,6-11)

안식일에 예수님께서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셨는데그곳에 오른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있었다.

앞 1~5절에서 안식일의 주인이 예수님이시라는 말씀을 들었고 묵상했다안식은 하느님으오부터 받는 죄의 용서로 누리는 자유쉼인 것이고그 하늘의 죄의 용서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그 죽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 묵상했다.

 

그런데~7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을 *고발할 구실을 찾으려고그분께서 안식일에 병을 고쳐 주시는지 지켜보고 있었다.

안식일의 의미를 깨달으려 하지 않고 법으로 지키려는 그들이다그러나 예수님의 죽음으로 얻는 죄의 용서그 자유안식을 알려주어 죄로 죽을 죄인을 다시 살리는 것이 안식일에 해야 할 일이다.

 

그래서~8 예수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일어나 가운데에 서라.” 하고 이르셨다그가 일어나 서자

손이 오그라든예수님의 십자가로 안식을 얻는 그 말씀을 믿지 못하는그래서 받아들이지 않는 마음이 오그라든 사람이다.

율법학자와 바리사이들그들의 선악(율법)의 그 이원론적 마음이 오그라든 사람이라는 것.

그리고 일어나 가운데 서라’ 그 받아들이지 않는 오그라든 마음 그 자리에서 *일어나 예수님의 말씀 그 *가운데에 들어와 하늘 아버지를 향해*서라는 뜻이다. (더 깊은 뜻은 에덴 가운데 선악과를 묵상해야 하는데~~ 다음 기회로,,,)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묻겠다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하늘의 합당한 좋은 일이란~

 

 (1코린5,5-7) 5 그러한 자(불륜-)를 사탄에게 넘겨 그 육체는 파멸하게 하고 그 영은 주님의 날에 구원을 받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웃의 잘못을 지적하고 말씀으로 그의 영을 살리는 것,

 

여러분의 자만은 좋지 않습니다적은 누룩이 온 반죽을 부풀린다는 것을 모릅니까?

하느님의 말씀을 인간의 말에 섞으면 누룩과 같이 사람의 말음을 자만으로 부풀게 한다.

 

묵은 누룩을 깨끗이 치우고 새 반죽이 되십시오여러분은 누룩 없는 빵입니다우리의 파스카 양이신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힘이 아닌 예수님의 죽음 그 대속희생으로 얻는 안식인 것이다.

 

10 그러고 나서 그들을 모두 둘러보시고는 그 사람에게, “손을 뻗어라.” 하고 말씀하셨다그가 그렇게 하자 그 손이 다시 성하여졌다.

말씀이 치유 하신다말씀이 창조하시고(창세 1,3 6 9 11 14 외 다수우주 만물 또한 그 말씀으로 지탱하신다.(히브1,3 지혜9,1 2베드3,5 참조)

그 말씀의 힘~

참조-(시편119,133) 133 당신 *말씀으로 제 발걸음을 굳건히 하시고 어떠한 불의도 저를 다스리지 못하게 하소서.

 

(지혜18,22) 22 그가 그 격분을 이겨 낸 것은 육체의 힘도 아니고 무기들의 효력도 아니었습니다조상들에게 주어진 맹세와 계약을 상기시키면서 *말씀으로 징벌자를 누그러뜨렸습니다.

 

(집회42,15) 15 나는 이제 주님의 업적을 기억하고 내가 본 것을 묘사하리라주님의 업적은 그분의 *말씀으로 이루어졌고 그분의 결정은 선의에서 나왔다.

 

(마태8,16) 16 저녁이 되자 사람들이 마귀 들린 이들을 예수님께 많이 데리고 왔다예수님께서는 *말씀으로 악령들을 쫓아내시고앓는 사람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

 

(야고1,18) 18 하느님께서는 뜻을 정하시고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시어우리가 당신의 피조물 가운데 이를테면 첫 열매가 되게 하셨습니다.

성모님이 말씀을 잉태하여 예수(말씀깨달음)님을 낳았듯이,

 

(묵시12,11) 11 우리 형제들은 어린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 그자를 이겨 냈다그들은 죽기까지 목숨을 아끼지 않았다.

 

(마태4,4) 4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성경에 (신명8,3)기록되어 있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

그 모든 능력의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와 함께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도 우리 가운데 늘~함께 계신다.

 

(요한1,14) 14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신 아버지의 외 아드님으로서 지니신 영광을 보았다.

 

11 그들은 골이 잔뜩 나서 예수님을 어떻게 할까 서로 의논하였다.

그 말씀을 마음 한가운데 모시지 않고 의지하지 않는또한 그 말씀을 사람의 말로 듣고 만든 사람의 말계명으로 지킨 그 자신의 힘(의로움)을 의지하는 이들은 말씀을 거짓으로 만드는 것그것이 예수님(말씀)을 죽이는 것이다.

참조~

(잠언30,6) 6 그분의 말씀에 아무것도 보태지 마라그랬다가는 그분께서 너를 꾸짖으시고 너는 거짓말쟁이가 된다.

 

(이사57,12) 12 내가 너의 의로움과 너의 행실들을 밝혀내리니 그것들은 너에게 소용이 없으리라.

 

(예레2,21-22) 21 나는 좋은 포도나무로옹골찬 씨앗으로 너를 심었는데 어찌하여 너는 낯선 들포도나무로 변해 버렸느냐? 22 네가 비록 잿물로 네 몸을 씻고 비누를 아무리 많이 쓴다 해도 죄악의 얼룩은 그대로 내 앞에 남아 있다주 하느님의 말씀이다.

잿물과 비누같이 사람의 지혜로 만들어낸 그 법으로 지킨 의로움은 사람의 죄를 없앨 수 없다.

 

(에페1,7) 7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그리스도의 피를 통하여 속량을곧 죄의 용서를 받았습니다이는 하느님의 그 풍성한 은총에 따라 이루어진 것입니다.

 

(에페2,8-9) 8 여러분은 믿음을 통하여 은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이는 여러분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9 인간의 행위(의로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니 아무도 자기 자랑을 할 수 없습니다.

아멘~!!!

 




연중 제23주간 월요일 복음(루카6,6~11)
 

"예수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일어나 가운데에 서라" 하고 이르셨다."  (8)


루카 복음 6장 8절의 서두에서 루카 복음사가는 마르코와 마태오가 표현하고 있지 않은 것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루카 복음사가는 예수님께서 그들에 대해서 무엇인가를 아셨다고 기록한다.

여기서 '아시고'로 번역한 '에데이'(edei; knew)는 '알다'라는 동사 '오이다'(oida)의 과거 완료로서 이미 완료된 동작의 남은 결과의 상태가 유지되고 있음을 뜻한다.

즉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엿보고 있었던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생각을 이미 아셨다는 것을 말한다.

 

이들이 가지고 있었던 생각은 루카 복음 6장 7절에 밝혀져 있듯이 예수님을 책잡아  고발하려는 불순한 음모였다.


루카 복음사가는 아마도 사람들의 생각을 예수님께서 신적인 통찰력으로 간파하고 계셨음을 강조하고 싶어서 독자적으로 표현했을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일어나 가운데에 서라'고 말씀하신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을 고발하려는 구실을 찾기 위한 목적으로 무리들 가운데에 자신들을 숨기고 있는 반면에, 이 사실을 간파하신 예수님께서는 오히려 손이 오그라든 사람의 병을 고치는 행위를 그들이 잘 볼 수 있도록 그를 사람들이 있는 한가운데로 서게 하신다.


악한 목적을 가진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자신을 숨기고 있지만, 선을 행하시는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공개적으로 행하신다.


예수님께서 공개적 치유를 행하신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안식일의 올바른 의미를 깨닫도록 가르치시기 위한 목적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이러한 행위가 적대자들의 반발을 불러 일으킬 것을 알고 계셨지만, 조금도 위축되지 않으시고 당신께서 하실 일을 당당하게 행하셨다.



  


2021년 9월 6일 [연중 제23주간 월요일]

 

주시옵소서가 아닌 이미 주셨음에 감사하는 깨달음을 위한 것이 신앙생활이다.

 

복음(루카6,6-11)

다른 안식일에 예수님께서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셨는데그곳에 오른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있었다.

오른손은 '오른올바르다'의 하느님의 뜻진리를 뜻한다곧 오른 안식()에 대한 생각마음이 오그라든 사람이다아담처럼하느님의 말씀을 자신의 뜻욕망을 위해 선악과(善惡果)로 따먹은 손이다.


(창세3,4-6) 4 그러자 뱀이 여자에게 말하였다. “너희는 결코 죽지 않는다. 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너희 눈이 열려 *하느님처럼 되어서 선과 악을 알게 될 줄을 하느님께서 아시고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6 여자가 쳐다보니 그 나무 열매는 *먹음직하고 소담스러워 보였다그뿐만 아니라 그것은 *슬기롭게 해 줄 것처럼 탐스러웠다그래서 여자가 열매 하나를 따서 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자그도 그것을 먹었다.

뱀의 유혹(誘惑)을 먹고뱀의 눈으로 보고하느님의 뜻(말씀)을 자신의 욕망(慾望)을 위한 선악과로 따먹은 손이다곧 하느님의 자리에 자신이 앉은 것이다그래서 하느님의 선악(善惡)을 자신이 주관하게 되었으니,

즉 선이 악을 품고(대속생명(안식)을 주시는 그 하느님의 약속계약의 말씀에서 떨어졌으니 스스로 선은 행하고악은 짓지 않는 그 스스로의 열심의로움으로 안식(安息)에 이르려 하느님의 말씀을 선악(善惡)사람의 규정(規程)과 교리(敎理)로 열심히 지켜야 했기에 쉼안식을 누려야 하는 안식일에법을 지켜야하는 그 안식일 법(교리)에 매여 무거운 짐 같은 신앙을 사는오른 안식의 의미정신을 잃어 다른 안식()을 살았던 그 생각(生覺), 마음이 오그라든 사람이다.

십자가의 대속으로 완성된 그 안식의 의미신비를 올바로 깨달았다면 주일(主日)이 어찌 짐 같이 느껴지겠는가안식이신 주님과 함께하는 그 시간(주일)을 고대 하며 기다릴 것이다.


오늘독서(콜로1,27) 27 하느님께서는 다른 민족들 가운데에 나타난 이 신비가 얼마나 풍성하고 영광스러운지 성도들에게 알려 주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그 신비는 여러분 가운데에 계신 그리스도이시고그리스도는 영광의 희망이십니다.


오늘 안식이신 분 앞에서 그분을 몰라보는 자리에 앉아있는 모든 이들그들이 마음(생각)이 오그라든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래서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을 고발할 구실을 찾으려고그분께서 안식일에 병을 고쳐 주시는지 지켜보고 있었다. 8 예수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일어나 가운데에 서라.” 하고 이르셨다그가 일어나 서자

뱀의 유혹을 먹고창조주(創造主하느님의 자리에 앉은 욕망의 자리그래서 스스로 선악을 판단(判斷), 주관(主管)하는 자리그래서 아담 처럼 스스로 부끄럽다’. 자신을 판단한 자리그래서 늘 죄의식에 시달렸던 그 자리에서 일어나라는 말씀이다그리고 너희들 가운데 있는 너희의 죄악(罪惡)을 대속(代贖)하시고너희에게 안식(安息)을 주시는 분 앞에 서라는 말씀이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묻겠다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 ’안식일에 너희 선악의 법으로 사람에게 부끄러움()을 주는 그 심판(審判)으로 남을 해치는(죽이는)것이 합당(合當)하냐하느님께서 선이 악을 대속 하시고 생명을 주시는 그 진리로 부끄러움()을 없애는 그 용서(容恕)로 사람을 살리는 것이 합당하냐?‘ 물으시는 것이다.


10 그러고 나서 그들을 모두 둘러보시고는 그 사람에게, “손을 뻗어라” 하고 말씀하셨다그가 그렇게 하자 그 손이 다시 성하여졌다.

말씀은 듣는 가운데 이루어진다.(루가4,21) 신비(神秘)그 신비(미스테리온-비밀)의 말씀으로 오늘도내일도 그리고 영원을 사는 것이다.


(히브1,3) 3 아드님은 하느님 영광의 광채이시며 하느님 본질의 모상으로서만물을 당신의 강력한 말씀으로 지탱하십니다그분께서 죄를 깨끗이 없애신 다음하늘 높은 곳에 계신 존엄하신 분의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

말씀을 진리(眞理)로 받으면 하늘의 용서생명평화그 안식을 받지만 율법(제사와 윤리)과 사람의 규정과 교리도덕과 윤리로 받으면 늘 부끄러움곧 죄의식에 시달리게 된다.

율법(제사와 윤리)의 모든 것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셨기에’ 그 완성된 안식은 이미 우리에게 주어져있다많은 이들이 그것을 놓치고 있다예수님의 다 이루어졌다” 하심을 잊고 놓친그 잘못된 생각(마음)으로 오그라든 신앙(信仰)을 살고 있는 것이다첫째는 성경(聖經말씀을 모르기 때문이다그리고 오른 가르침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본기도하느님저희를 구원하시어 사랑하는 자녀로 삼으셨으니 저희를 인자로이 굽어보시고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에게 참된 자유와 영원한 유산을 주소서.라고 기도하며 미사를 드리면 안 된다.

그래서 하느님저희를 구원하시어 사랑하는 자녀로 삼으셨으니 저희를 인자로이 굽어보시고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에게 참된 자유와 영원한 유산을 주셨으니 감사합니다로 기도하며 미사를 드려야 한다그러나 그 믿음이 없으면 믿음을 달라고깨닫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하는 것이다그래야 오늘의 안식을 누릴 수 있다.

성령(聖靈)께 의탁(依託)해서 말씀을 열심히 보고묵상 하고기도하면 반드시 깨닫고 믿게 해 주신다고 하셨다.(요한14,26 15,7참조)

미사(Missa)는 물론성사생활묵주기도를 열심히 하라고 할 것이 아니라, 그 이전에 말씀을사람의 지혜의 말이 아닌 하느님의 진리(眞理)로 가르치며 그 진리의 말씀을 열심히 보고묵상(黙想)하고기도(祈禱)하라고 가르쳐야 하는 것이 먼저다.

그래서 화답송으로 드리는 시편의 기도(62,6-9) 또한 이미 다 이루어졌음을(받았음을아는시편을 그렇게 보는 실력(實力)자가 되어야 한다그러니 예수님 처럼 실천하자!, 실천하라!’ 하기 전()에 내가 먼저 예수님의 실천(實踐)하심을 받아야 한다그런 존재(存在)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예수님의 사랑(안식)을 내가 먼저 받았을 때오른 사랑(안식)을 이웃에게 전()할 수 있는 것이다하느님의 선악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인간들의 선악으로 신앙생활(信仰生活)을 한다면그래서 다른 하느님다른 사랑(안식)을 이웃에게 전한다면 모두 멸망(滅亡)의 구렁텅이에 빠트리게 되는 것이다.(마태15,14 참조

 

11 그들은 골이 잔뜩 나서 예수님을 어떻게 할까 서로 의논하였다.


(입당송하느님당신께서는 의로우시고 당신의 법규는 바릅니다.(시편119,137)


천주의 성령님우리 가운데 계신안식이신 주님 앞에 서게 하소서. “손을 뻗어라하신 말씀이 우리 마음에 아루어지게 하소서.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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