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2주간 토요일] 안식일의 주인 (루카6,1-5)

2021. 9. 4. 오후 8:0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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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94일 토요일

[연중 제22주간 토요일] 안식일의 주인 (루카6,1-5)

   


1독서<하느님께서는 여러분과 화해하시어 거룩하고 흠 없게>(골로1,21-23)

21 여러분은 한때 악행에 마음이 사로잡혀 하느님에게서 멀어지고 그분과 원수로 지냈습니다.

22 그러나 이제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하여 그분의 육체로 여러분과 화해하시어, 여러분이 거룩하고 흠 없고 나무랄 데 없는 사람으로 당신 앞에 설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23 다만 여러분은 믿음에 기초를 두고 꿋꿋하게 견디어 내며 여러분이 들은 복음의 희망을 저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그 복음은 하늘 아래 모든 피조물에게 선포되었고, 나 바오로는 그 복음의 일꾼이 되었습니다.

 

화답송 시편 54(53),3-4.68(6)

보라, 하느님은 나를 도우시는 분이시다.

하느님, 당신 이름으로 저를 구하시고, 당신 권능으로 제 권리를 찾아 주소서. 하느님, 제 기도를 들으시고, 제 입이 아뢰는 말씀에 귀를 기울이소서.

보라, 하느님은 나를 도우시는 분, 주님은 내 생명을 떠받치는 분이시다. 저는 기꺼이 당신께 제물을 바치리이다. 주님, 좋으신 당신 이름 찬송하리이다.

 

복음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오?>(루카6,1-5)

1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를 가로질러 가시게 되었다. 그런데 그분의 제자들이 밀 이삭을 뜯어 손으로 비벼 먹었다.

2 바리사이 몇 사람이 말하였다. “당신들은 어째서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오?”

3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다윗과 그 일행이 배가 고팠을 때, 다윗이 한 일을 읽어 본 적이 없느냐?

4 그가 하느님의 집에 들어가, 사제가 아니면 아무도 먹어서는 안 되는 제사 빵을 집어서 먹고 자기 일행에게도 주지 않았느냐?”

5 이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

 

 

 

 연중 제22주간 토요일 제1독서 (콜로1,21-23)


"그러나 이제 하느님께서는 당신 아드님의 죽음을 통하여  그분의 육체로 여러분과 화해하시어,  여러분이 거룩하고 흠없고 나무랄데 없는 사람으로  당신 앞에 살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22)


'당신 아드님의 죽음을 통하여 그분의 육체로'로 번역된 '엔 토 소마티 테스 사르코스 아우투 디아 투 타나투'(en to somati tes sarkos autu dia tu thanatu; in the body of his flesh through death)는 번역하면 '그의 살의 몸 안에서 죽음을 통하여' 가 된다.


보통 '육체'를 표현할 때 '소마'(soma) 혹은 '사륵스'(sarx)중 한 단어만으로도 표현 가능하고, 그런 표현이 자연스러움에도 불구하고 사도 바오로는 여기서 굳이 두 단어를 다 쓰고 있다.


이러한 중첩적 표현으로 사용한 이유는초대 교회 때부터 유포되고 있었던 그리스도가 육체가 아닌 영이라는 주장과 그리스도께서 육체의 죽음을 겪지 않고 다만 죽은 것처럼 보였다는 가현설(decetism)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다.


사도 요한 역시 그런 배경을 염두에 두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에 대해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했다.


 예수님께서 육체의 고난을 당하셨다는 사실을 말하기 위해 '목마르다'(요한19,28)라는 십자가상의 말씀을 기록하였고, 육체의 죽임을 당하지 않고 단지 고난당하고 죽은 것처럼 보였다는 가현설에 반박하기 위해 십자가상에서 숨이 끊어진 예수님의 옆구리를 군사 하나가 창으로 찔렀고, 그때 '피와 물이 나왔다'는 사실을 기록하였던 것이다(요한19,34).


이러한 그리스도의 육체의 수난과 죽음은 우연이 아니라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인 것이었으며, 이것은 무려 700여년 전 이사야 예언자의 구체적인 예언을 통해 이미 예고된 사건이었다(이사53,1-5).


'거룩하고 흠없고 나무랄 데 없는 사람으로  당신 앞에 설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본문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독생 성자를 피흘려 죽게 하신 목적 무엇인지 보여준다.

하느님께서는 성도들과 당신과의 화해만을 원한 것이 아니다. 화해한 성도들이 영적 성숙을 통해 점점 성화되어 하느님 대전에 어떠한 부끄럼도 없는 완전한 존재로 서기를 원하신다.


첫째'거룩하고'로 번역된 '하기우스'(hagius)의 원형은 '하기오스'(hagios)이다. 이 단어는 '봉헌된', '하느님께 성별된'이라는 뜻으로  하느님께 바쳐지는 거룩한 산 제물을 뜻한다(로마12,1.2).

하느님의 어린양의 보배로운 구속 성혈로 말미암아 모든 죄에서 깨끗해진 성도들은 자신을 위해 돌아가신 하느님의 어린양을 위해 거룩한 산 제사를 드리는 삶을 살아야 함을 보여주는 표현이다.


둘째, '흠없고'로 번역된 '아모무스'(amomus)의 원형은 '아모모스'(amomos)이다. 이 단어는 부정 접두어 '아'(a)와 '흠이 있는'이라는 뜻의 '모모스'(momos)의 합성어로서 일점의 티도 없는 깨끗한 상태를 뜻한다.

마치 방금 세탁한 흰 옷과 같이 조금도 더러움이 없는 상태를 가리킨다(묵시7,14). 특히 이 단어는 유다인들의 정결 의식 묘사할 때에 주로 사용되는 단어로서 하느님께 바쳐지는 일체의 흠이 없는 최고의 제물을 뜻한다.

 

셋째, '나무랄 데 없는 사람'으로 번역된 '아넹클레투스'(anengklletus)의 원형은 '아넹클레토스'(anengklletos)이다.

이 단어는 부정 접두어 '아'(a)와 '책임지우다', '결점을 찾아내다'라는 뜻의 '엥칼레오'(engkalleo)의 합성어에서 유래하며, 어떤 일에 대하여 결점이나 비난, 문책같은 것이 없는 상태로서, 특히 비난받을 만한 죄가 없는 상태를 가리킨다. 

이 단어는 '흠없고'라는 단어보다 그 의미가 몇 배나 강한 단어로서  단순히 흠이 없다는 데서 그치지 않고 책망할 것이 없는 온전한 제물을 말한다.


사도 바오로는 서목 서간에서 이 단어를 사용해 봉사자들과 교회 지도자들인 원로와 감독 등이 이러한 상태에 이르러야 하며(1티모3,10; 티토1,6.7)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마지막 종말의 심판 때에 이러한 상태가 될 것이라고(1코린1,8) 말 한 적이 있다.

위의 세 개의 형용사는 결국 성도들이 하느님 대전에 가서 서게 되는 그날까지 끊임없이 밟아나갈 성화(聖化)의 과정을 묘사하고 있다.



사도 바오로는 이런 단어들을 사용하여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그리스도와 같이 변하게 될 성도들의 영광스런 모습(로마8,29.30; 에페4,13)이 성도들을 부르신 하느님의 목표이며 십자가 죽음의 목적이라고 말하고 있다.



 

하느님께서는 죄인들을 통해 독생 성자를 십자가에 넘기시고 그들을 양자로 삼으셨지만,  그들이 하느님의 자녀된 이후에는 거룩하고 흠없고 나무랄 데 없는 모습으로 성장해 가기를 원하시며,  완전히 성화된 사람을 천국으로 맞아들이실 것이다.


한편 '설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로 번역된 '파라스테사이'(parastesai; to present) '옆에'라는 전치사 '파라'(para)와 '두다'라는 뜻의 동사 '히스테미'(histemi)의 합성어로서 '곁에 두다', '가까이에 두다'라는 뜻이다.

이것은 하느님 가까이에 성도를 둔다는 의미인데, 일차적으로는 마지막 종말 심판 때에 성도들이 부끄럼과 두려움 없이 하느님 대전에 서게 될 것이라는 미래적 의미를 갖고 있다.

또한 이차적으로는 그리스도인들의 매일의 삶, 일상의 삶이 하느님께서 받으실 만한 영적 예배의 산 제사로 봉헌되어야 한다는 현재적 의미가 있다(로마12,1).


성도들은 마지막 날 주님 심판 대전에 온전한 모습으로 서기 위해 날마다의 삶 속에서 하느님 대전에 자신을 거룩한 산 제물로 부단히 봉헌해야 하는 것이다.

 모든 성도들은 매 순간 그리스도 가까이에 자신의 삶을 두는 거룩한 하느님 대전의 삶, 즉 '코람 데오'(coram deo)의 삶을 살아야 한다.




[ 연중 제22주간 토요일]

예수님이 안식일의 주인인 것이다.

(루카 6,1-5)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를 가로질러 가시게 되었다그런데 그분의 제자들이 밀 이삭을 뜯어 손으로 비벼 먹었다.

뒤 5절에서 예수님은 당신이 안식일의 주인이라 하신다그러니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 이삭(열매), 곧 죄인들의 생명의 양식인 빵(밀 이삭)을 먹는 행위는 올바른 것이다.

 

(요한6,35) 35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내가 생명의 빵이다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요한12,23-24) 2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될 때가 왔다.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예수님께서 땅세상에 밀알로 오셔서 죽어 세상 죄인들의 생명의 양식이 되셨다는 것안식일의 그 예수님의 죽음으로 얻는 생명그 안식의 의미를 모르고 주일을 교리로 지키는 그 행위에만 열심하게 되면 헛것이다.~ 유대인들이 그랬다.

 

바리사이 몇 사람이 말하였다당신들은 어째서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오?”

안식일을 법의 행위전례행사로 지키려는 그들은 정작 안식일에 해서는 안되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다윗과 그 일행이 *배가 고팠을 때다윗이 한 일을 읽어 본 적이 없느냐? 4 그가 하느님의 집에 들어가사제가 아니면 아무도 먹어서는 안 되는 제사 빵을 집어서 먹고 자기 일행에게도 주지 않았느냐?”

다윗은 배가 고픈이(죄인)들이 먹는 그 하느님의 빵(대속자비)으로 먹었던 것당시 목숨이 위태로울 때는 안식법을 적용시키지 않았다.(200주년 주석성서 참조)

 

이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

안식은 하늘로부터 받는 죄의 용서로 누리는 자유그 안식인 것이다그리고 그 하늘의 죄의 용서는 사람의 아들 그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그래서 예수님이 안식일의 주인인 것이다.

 

(루가22,20) 20 또 만찬을 드신 뒤에 같은 방식으로 잔을 들어 말씀하셨다이 잔은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내 피로 맺는 새 계약이다.”

주일 성찬례에서 예수님의 몸을 파스카의 살과 피로 먹고 마시는 그 전례행위에 만족한다면 안식일(주일)에 해서는 안되는 일을 하는 것이다.(루가22,16참조)

예수님의 몸과 피는 구원의 새 계약으로 먹어야 하는 것곧 육이 아닌 영으로 먹고 마셔야 하는 것이다.

 

참조~(요한6,63) 63 영은 생명을 준다그러나 육은 아무 쓸모가 없다내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영이며 생명이다.

 

(2코린3,6) 6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새 계약의 일꾼이 되는 자격을 주셨습니다이 계약은 문자가 아니라 성령으로 된 것입니다문자는 사람을 죽이고 성령은 사람을 살립니다아멘~!!!

 




 연중 제22주간 토요일 복음(루카6,1~5)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 (5)


루카 복음사가는 마르코 복음 2장 27절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생략하고 있다.

또한 마태오 복음에서 장황하게 기록된 안식일에 대한 해설 부분인 마태오 복음 12장 1~8절도 생략했다.


이것은 루카 복음사가에 있어서 안식일 규정에 대하여 흥미를 가지지 않았던 이방인 독자들에게 안식일 규정을 깊이 설명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이것을 생략하고 예수님 자신이 안식일의 주인인 것만을 나타내어도 제자들의 행위가 충분히 변호되기 때문이다.


본절과 관련지어 연상되는 레위기 23장 3절에 의하면, 안식일은 주 하느님께 한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 안식일의 소유권을 메시야인 자신에게 귀속시키고 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성부 하느님의 권한을 월권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 즉 '인자'(人子)가 곧 안식일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 하느님이라는 사실을 암시한 것이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의 주인으로서 안식일의 참된 의미를 잘못 해석하여 사람들에게 무의미한 형식적 규정으로 무거운 짐을 지운 바리사이들에게 올바른 권위로 책망하실 수 있는 것이다.


원문을 보면, '인자'에 해당하는 '호 휘오스 투 안트로푸'(ho hyos tu anthropu; the son of man) 앞에 '안식일'이란 뜻을 가진 '투 삽바투'(tu sabbatu; of the sabbath)를 먼저 기록하고 있다.

희랍어에서는 언제나 강조하고자 하는 단어를 문두에 두는 경향이 있다.

루카 복음사가도 본문에서 쟁점이 바로 '안식일'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하여 '인자'보다 앞에 둔 것이다.



(녹) 연중 제22주간 토요일 - 9월09일

 


2021년 9월 4일 [연중 제22주간 토요일]

 

창조(創造)의 목적은 안식(安息)이다.

(안식(安息)은 재창조새창조안식씨밧일곱 번 말하다)


복음(루카6,1-5)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를 가로질러 가시게 되었다그런데 그분의 제자들이 밀 이삭을 뜯어 손으로 비벼 먹었다.

예수님과 안식일그리고 밀과 그 밀()을 먹는 제자들그 관계(關係)와 의미(意味), 정신(精神)을 말씀 하시려 하신다미리 먼저 알고 가자 뒤 5절에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安息日)의 주인(主人)이다.” 하셨다.


바리사이 몇 사람이 말하였다. “당신들은 어째서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오?”

안식일의 주인 앞에서안식일을 율법의 행위로교리로 지키는 그 헛된 자신들이 옳은 줄 알고 오히려 따진다주객(主客)이 전도된자신의 자리를 벗어난 모습이다그 벗어난 자리에 내가 앉아있는 것은 아닌지....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다윗과 그 일행이 배가 고팠을 때다윗이 한 일을 읽어 본 적이 없느냐? 4 그가 하느님의 집(성전)에 들어가사제가 아니면 아무도 먹어서는 안 되는 제사 빵을 집어서 먹고 자기 일행에게도 주지 않았느냐?”

구약은 신약의 예표(豫表)이니율법의 제사 빵은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다그러니 영원한 사제요 성전(聖典), 그리스도이신 당신과 함께 먹고 하는 일은 다 옳다고 하시는 것이다제사(祭祀)()은 모든 이에게 먹혀야 하는 것이 목적(目的)이다.


이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

예수님께서 안식일의 주인이심을 확인(確認)하자.


하느님의 안식(安息)부터 보자~

(창세1,31. 2,1-2) 31 하느님께서 보시니 손수 만드신 모든 것이 참 좋았다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엿샛날이 지났다. 1 이렇게 하늘과 땅과 그 안의 모든 것이 *이루어졌다. 2 하느님께서는 하시던 일을 *이렛날에 다 이루셨다그분께서는 하시던 일을 모두 마치시고 이렛날에 쉬셨다.

창조는 육(6)일에 다 이루셨다그런데 이레(7)날의 쉼 까지가 창조(創造)라는 것이다.


(창세2,3) 3 하느님께서 *이렛날에 *복을 내리시고 그날을 *거룩하게 하셨다하느님께서 창조하여 만드시던 일을 모두 마치시고 그날에 쉬셨기(안식때문이다.

이렛날(7)의 쉼이 완전한 복()이며 거룩이다그래서 이렛(7)날의 쉼안식까지가 창조라는 것이다곧 육일간의 창조는 안식을 향한 것이고그 6일안에 들어있는 하느님의 뜻을 깨닫게 되면 쉼(안식)을 누릴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6)일간의 창조를 보자~

(창세1,2) 2 땅은 아직 꼴을 갖추지 못하고 비어 있었는데어둠이 심연을 덮고 하느님의 영이 그 물 위를 감돌고 있었다.

꼴을 갖추지 못하고 비어있는 상태가 어둠(흑암,黑暗)이다곧 빛(말씀)이 없어 비어있는 그 어둠()의 상태없음의 우리의 모습이다그 어둠들 위에 하느님의 영()이 감돌고(라하프 덮으심계심으로 창조가 시작된다.

*첫날빛 *둘째날윗물 *사흗날땅을 위한 씨의 희생모두 하늘을 뜻하며 그렇게 하늘(3)을 세우시고 *넷째날별 *다섯째날아랫물에 온갖 종류대로 생물들을, *여섯째날짐승들과 사람으로 완성(完成)하신다.

첫날과 넷째날은 빛의 하나 됨이며둘째날과 다섯째날은 물의 하나 됨이며사흗날의 씨와 여섯째날의 사람()을 짝하여 하나를 이루셨다.

그러니까 하늘의 생명의 빛씨가 땅으로 내려와 땅의 어둠의 빛죽음의 물(없음)의 사람과 하나 되어그 죽음인 없음 들이 생명있음의 하늘이 되게 하시겠다는 것이 창조하느님의 뜻이다그 없음의 존재들은 자신들이 있음(하늘)이 되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음을 보여주신 것이 하느님의 창조이다.

그래서 사람에게 필요한 빛그 모든 것을 다 만들어 놓으신 후마지막 날에 사람을 창조하시고 바로 다음날 안식을 주신 것이다.(그것을 믿는 것이 창조창조론이다.) 하느님께서 다 이루시겠다는 것이다.


(에페1,4) 4 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시어우리가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사랑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십자가를 통해그 없음의 존재들을 하늘의 존재로 완성하시겠다는그 사랑을 담은 것이 하느님의 창조다창조 6일 동안에 그리스도가 있는 것이다곧 십자가의 복음이 들어 있는 것이다.


(요한19,30) 30 예수님께서는 신 포도주를 드신 다음에 말씀하셨다. “다 이루어졌다.” 이어서 고개를 숙이시며 숨을 거두셨다.

그래서 예수님이 안식일의 주인이시다그 모든 것을 깨닫고 피조물인 인간은 자신의 힘으로는 안 되는 것이구나를 깨닫고 하느님만을 바라고의지하여 한 몸이 될 때 안식을 누리게 된다.

그러나 어둠인 우리는 빛이신 하느님과 하나가 될 수 없다빛을 입어야한다그래서 하느님께서 당신 아드님을 이 땅에 보내신 것인데그분 역시 빛이시기에 그냥 들어오실 수가 없으셔서 십자가라는 대속을 통해 들어오신 것이다곧 십자가에서 어둠그 죄의 대속으로 죽으시고 당신의 생명()을 우리에게 넣어 주셔서 어둠인 우리가 하느님과 함께 영원한 쉼안식을 누리게 된 것이다.


(요한14,6) 6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십자가의 예수님을 구원의 진리로 믿어 그분과 하나한 몸이 된다면곧 육()을 부인(否認)하는 그 죽음으로 예수님의 지체로 붙어 영으로 다시 태어난다면 그것이 안식을 사는 재창조인 것이다그러나 없음의 그 피조물들이 아담처럼 자신의 힘지혜의로움으로 하늘에 오르겠다고스스로 안식에 들어 갈 수 있다고 한다면 영원한 멸망으로 가는 망상어리석음교만이다그들이 율법주의인본주의인 바리사이와 세상이다.


(로마1,20) 12 다시 말하면내가 여러분과 같이 지내면서 여러분의 믿음과 나의 믿음을 통하여 다 함께 서로 격려를 받으려는 것입니다.


(골로1,15-16) 15 그분은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모상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맏이이십니다. 16 만물이 그분 안에서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하늘에 있는 것이든 땅에 있는 것이든 보이는 것이든 보이지 않는 것이든 왕권이든 주권이든 권세든 권력이든 만물이 그분을 통하여 또 그분을 향하여 창조되었습니다.


(히브1,2-3) 2 이 마지막 때에는 아드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하느님께서는 아드님을 만물의 상속자로 삼으셨을 뿐만 아니라그분을 통하여 온 세상을 만들기까지 하셨습니다. 3 아드님은 하느님 영광의 광채이시며 하느님 본질의 모상으로서만물을 당신의 강력한 말씀으로 *지탱하십니다그분께서 죄를 깨끗이 없애신 다음하늘 높은 곳에 계신 존엄하신 분의 오른쪽(진리)에 앉으셨습니다.


(요한12,23-24) 2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될 *때가 왔다.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하느님의 뜻을 이루실 십자가의 대속그 때이다예수님께서 땅세상에서 밀씨앗으로 오시고 먹히셔서 세상 죄인들이 주님의 제자가 되고하느님의 자녀로 하늘의 생명안식을 누리게 되었다는 것이다그래서 그 하느님의 사랑이 너무 감사해서 함께 모여 하느님께 찬미찬양으로 영광을 돌려 드리는 것이 안식일의 의미정신이다.

그 안식의 의미정신을 모르고교리(敎理)의무(義務)로 주일을 지키는 것으로 만족해 한다면 하늘의 대속그 주님의 죽음그 사랑을 모독(冒瀆)하는 것이다.


은총의 천주의 성령님안식(安息)은 나를 버렸을 때 이뤄짐을오늘 심어주신 말씀(씨앗)이 자라나 안식의 열매를 맺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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