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3월 3일 수요일
[사순 제2주간 수요일] 섬기는 사람 (마태20,17-28)
제1독서<어서 그를 치자.>(예레18,18-20)
18 유다 사람들과 예루살렘 주민들이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자, 예레미야를 없앨 음모를 꾸미자. 그자가 없어도 언제든지 사제에게서 가르침을, 현인에게서 조언을, 예언자에게서 말씀을 얻을 수 있다. 어서 혀로 그를 치고, 그가 하는 말은 무엇이든 무시해 버리자.”
19 주님, 제 말씀을 귀담아들어 주시고 제 원수들의 말을 들어 보소서.
20 선을 악으로 갚아도 됩니까? 그런데 그들은 제 목숨을 노리며 구덩이를 파 놓았습니다. 제가 당신 앞에 서서 그들을 위해 복을 빌어 주고 당신의 분노를 그들에게서 돌리려 했던 일을 기억하소서.
화답송 시편 31(30),5-6.14.15-16(◎ 17ㄴ 참조)
◎ 주님, 당신 자애로 저를 구하소서.
○ 숨겨진 그물에서 저를 빼내소서. 당신은 저의 피신처이시옵니다. 제 목숨 당신 손에 맡기오니, 주님, 진실하신 하느님, 저를 구원하소서. ◎
○ 정녕 저는 많은 이들의 비방을 듣나이다. 사방에서 두려움이 밀려드나이다. 저에게 맞서 그들이 함께 모의하고, 제 목숨 빼앗을 음모를 꾸미나이다. ◎
○ 주님, 저는 당신만 믿고 아뢰나이다. “당신은 저의 하느님!” 제 운명 당신 손에 달렸으니, 원수와 박해자들 손에서 구원하소서. ◎
복음<그들은 사람의 아들에게 사형을 선고할 것이다.>(마태20,17-28)
17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실 때, 열두 제자를 따로 데리고 길을 가시면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18 “보다시피 우리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있다. 거기에서 사람의 아들은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넘겨질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사람의 아들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19 그를 다른 민족 사람들에게 넘겨 조롱하고 채찍질하고 나서 십자가에 못 박게 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아들은 사흗날에 되살아날 것이다.”
20 그때에 제베대오의 두 아들의 어머니가 그 아들들과 함께 예수님께 다가와 엎드려 절하고 무엇인가 청하였다.
21 예수님께서 그 부인에게 “무엇을 원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 부인이 “스승님의 나라에서 저의 이 두 아들이 하나는 스승님의 오른쪽에, 하나는 왼쪽에 앉을 것이라고 말씀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22 예수님께서 “너희는 너희가 무엇을 청하는지 알지도 못한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하고 물으셨다. 그들이 “할 수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2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내 잔을 마실 것이다. 그러나 내 오른쪽과 왼쪽에 앉는 것은 내가 허락할 일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정하신 이들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24 다른 열 제자가 이 말을 듣고 그 두 형제를 불쾌하게 여겼다.
25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가까이 불러 이르셨다. “너희도 알다시피 다른 민족들의 통치자들은 백성 위에 군림하고, 고관들은 백성에게 세도를 부린다.
26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27 또한 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한다.
28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사순 제2주간 수요일 제1독서 (예레18,18-20)
"선을 악으로 갚아도 됩니까? 그런데 그들은 제 목숨을 노리며 구덩이를 파 놓았습니다. 제가 당신 앞에 서서 그들을 위해 복을 빌어 주고 당신의 분노를 그들에게서 돌리려 했던 일을 기억하소서." (20)
예레미야서 18장 14절에서와 마찬가지로 의문문을 이끄는 의문사'하'(ha)가 서두에 나와 본문을 수사 의문문으로 이끌고 있다.
선을 악으로 갚는 일은 도무지 있을 수 없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일이 선민 이스라엘 공동체의 현실 가운데서 일어나고 있음을 예레미야는 주님께 탄원하고 있는 것이다.
예레미야는 멸망으로부터 동족을 구하려는 열정으로 주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한편, 주님께 이 백성을 위한 중재(중보)기도를 올렸다(예레14,7~15,9).
그런데도 이 백성은 오히려 그를 핍박하고 목숨을 해치려고 구덩이를 파기까지 했다.
그렇기 때문에 예언자는 이 백성의 포악한 행태를 참다 못해 주님께 아뢰며, 자신을 불쌍히 여겨주심을 간구할 뿐만 아니라 그들의 악행을 고발하고 그에 대한 책벌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한편 성경에서 '구덩이'는 숨을 수 있는 '굴'(2사무17,9)이라는 긍정적인 의미로도 사용되지만, 대부분의 경우 '감옥','저수 동굴'(예레38,1~13), '웅덩이', '함정', '구렁'(시편35,7), '올무','올가미','덫'(시편140,6) 등의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된다.
여기서도 부정적인 의미로도 사용되었는데, 일차적으로는 '함정'이란 의미로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러나 더 나아가서 '감옥'과 '매장지'라는 의미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남부 유다 백성은 예레미야를 저수 동굴(구덩이로 된 감옥)에 가두었고(예레38,1~13) 죽이려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 목숨을 노리며 구덩이를 파 놓았습니다'란 표현은 그들이 단지 예레미야를 적대시하였다는 의미 뿐만 아니라 그를 해치고 제거하기 위해 집요하게 노력했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제가 당신 앞에 서서 그들을 위해 복을 빌어 주고 당신의 분노를 그들에게서 돌리려 했던 일을'
'제가 당신 앞에 서서'에서 '서다'라는 뜻의 동사 '아마드'(amad)는 일차적으로 '서다'란 육체적 행동을 표현하는 말이지만, 구약 성경에서 본문처럼 '주님 앞에 서다'라는 표현은 신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말이다.
그것은 전형적인 중재(중보) 기도의 자세를 나타내는 문구이기 때문이다(창세18,22; 신명4,10).
예레미야는 '주님의 분노를 그들에게서 돌리려 했던~~그들을 위해 복을' 주님께 고하며 중재기도를 드렸던 것이다.
본문에서 예레미야는 이러한 사실을 기억해 줄 것을 주님께 간청한다.
이것은 단순히 자신이 주님 앞에서 옳게 행했음을 변론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선을 악으로 갚는 백성의 거역을 고발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을 향하여 하느님께서 판단하시고 그에 합당한 벌을 내리실 것을 간구하는 것이다.

사순 제2주간 수요일
십자가의 의로움이 드러나야 구원입니다.
(마태 20,17-28)
17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실 때, 열두 제자를 따로 데리고 *길을 가시면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 길이라는 단어를 굳이 넣은 것은 예수님께서 하느님 나라의 의로움을 위한 일, 곧 하늘의 길을 가고 계심을 뜻합니다.
(요한14,6)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로마3,24)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진 속량을 통하여 그분의 은총으로 거저 의롭게 됩니다.
= 하늘의 의로움, 그 진리의 길을 대적하는 예루살렘을 향해 가십니다.
죄인들의 죗값을 치루기 위해 속죄 제물로 가시는 길입니다. 그들에게 하늘의 의로움을 주시기 위해~~
18 “보다시피 우리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있다. 거기에서 사람의 아들은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넘겨질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사람의 아들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19 그를 다른 민족 사람들에게 넘겨 조롱하고 채찍질하고 나서 십자가에 못 박게 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아들은 사흗날에 되살아날 것이다.”
= 사흗날~ 창조 사흗날입니다.(창세1,13) 빈 땅을 위해 씨가 들어가 대신 죽어 맺은 열매, 사흗날의 일입니다. 곧 구원을 위한 하늘의 의로움의 열매를 맺을 수 없는 죄인(빈 땅)들을 위해 대신 죽으시고 부활하시는 예수님(씨)입니다.
(로마4,25) 이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잘못 때문에 죽음에 넘겨지셨지만, 우리를 의롭게 하시려고 되살아나셨습니다.
= 그렇게 우리 죄인들을 위해 하늘의 일을 하시려 당신의 죽음의 길을 가시는 그때에~
20 그때에 제베대오의 두 아들의 어머니가 그 아들들과 함께 예수님께 다가와 엎드려 절하고 무엇인가 청하였다. 21 예수님께서 그 부인에게 “무엇을 원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 부인이 “스승님의 나라에서 저의 이 두 아들이 하나는 스승님의 오른쪽에, 하나는 왼쪽에 앉을 것이라고 말씀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 여자가 땅의 길, 예루살렘이 추구하는 인간들의 명예, 욕망을 청합니다. 하늘의 길을 깨닫지 못한 사람의 모습입니다.
오른쪽- 하늘나라입니다. 왼쪽- 땅의 나라입니다. (땅에 영원히 갇히는 것, 지옥입니다.)
그 의미를 모르는 엄마입니다. 오늘날 부모들이 자식을 위해 ‘무엇을 청하는지~기도하는지 생각하라’ 하십니다.
22 예수님께서 “너희는 너희가 무엇을 청하는지 알지도 못한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하고 물으셨다. 그들이 “할 수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 죽음의 잔입니다.
2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내 잔을 마실 것이다. 그러나 내 오른쪽과 왼쪽에 앉는 것은 내가 허락할 일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정하신 이들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24 다른 열 제자가 이 말을 듣고 그 두 형제를 불쾌하게 여겼다.
= 모든 제자들 또한 다른 두 제자와 같은 마음이었기에 엄마까지 와서 특별히 청하니 불쾌합니다. 당신을 따라 오려면 그 땅의 욕망, 그 자신을 버리고 따르라 하셨는데(마태16,24) 제자들 모두는 버린척, 아닌척 예수님을 따랐던 것입니다. 그래서~~
25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가까이 불러 이르셨다. “너희도 알다시피 다른 민족들의 통치자들은 백성 위에 군림하고, 고관들은 백성에게 세도를 부린다. 26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27 또한 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한다. 28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제자(죄인)들이 예수님 당신의 사흗날의 대속의 죽음과 부활로 하늘의 생명을 얻도록 그들을 섬겨 주셨습니다.
그럼 우리도 똑같이 하라는 말씀? 그런데 그렇게 대신 죽어줄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의 섬김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복음을 전해주어 이웃이 하늘의 생명을 얻도록 도와주는 그 섬김입니다. 낮은 종의 자세로 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나 자신이 그 복음을 깨달아 간직해야 합니다. 성경(구약, 신약)의 모든 말씀을 십자가의 복음으로 깨닫는 것입니다.
(로마1,2) 이 복음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예언자들을 통하여 미리 성경에 약속해 놓으신 것으로,~
(요한5,39) 너희는 성경에서 영원한 생명을 찾아 얻겠다는 생각으로 성경을 연구한다. 바로 그 성경이 나를 위하여 증언한다. 그래서~~
(요한8,31-32) 31 예수님께서 당신을 믿는 유다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내 말 안에 머무르면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된다. 32 그러면 너희가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성경은 예수님의 의로움을 받으라는 말씀이지 우리 스스로 의롭게 되라는 책이 아닙니다. (물론 구원을 위한 의로움입니다.)
♡ 아멘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또한 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한다. 사람의 아들도 섬기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26~28)
'너희 가운데에서'에 해당하는 '엔 휘민'(en hymin; among you)이란 표현은 제자들을 다른 대상과 구분짓는 말로서, 이미 제자들은 이 세상 나라와는 구별되는 하느님 나라에 속한 자임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처럼 제자들이 하느님 나라에 속한 자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사고방식은 전혀 변화되지 않았기에, 예수님께서는 사랑과 겸손, 섬김이 기본이 되는 천국의 본질과 관련해서 역설적인 진리를 가르치신다.
여기서 '섬기는 사람'으로 번역된 '디아코노스'(diakonos; minister; servant)는 '심부름을 가다'라는 뜻이 있는 '디아코'(diako)에서 유래하여 '일꾼', '하인'(요한2,5.9), '하인'(마태22,13)이라는 의미를 지녔다.
초대 교회 때 교회 공동체 안에서 봉사하는 자를 가리키는 '봉사자', '집사' (필리1,1; 1티모3,12)라는 호칭이 이 단어에서 유래되었다.
한편, 마태오 복음 20장 27절에서 '첫째가'에 해당하는 '프로토스'(protos; first; chief)는 장소나 시간에 대해 '~보다 앞에'라는 뜻을 지닌 전치사 '프로'(pro)에서 유래한 단어로서, 여기서는 지위나 계급 등에 있어서 '제일 높은 자'를 가리킨다.
반면에 '종'에 해당하는 '둘로스'(doulos; servant; slave)는 '묶다'(마태13,30), '묶다', '결박하다'(마태12,29)라는 뜻이 있는 동사 '데오'(deo)에서 유래하여 주인에게 완전히 예속된 '노예'(slave)를 의미한다.
종은 자신이 아니라 주인을 위하여 필요하다면 자신의 목숨까지도 바쳐야 한다.
사랑과 겸손, 섬김이 기본이 되는 하느님 나라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이처럼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여 상대방을 섬기는 자기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위의 마태오 복음 20장 28절의 말씀은 단순히 예수님께서 육화(강생)하신 목적만을 밝히시기 위해 주어진 말씀이 아니고, 제자들로 하여금 당신을 본받아 하느님 나라에 속한 자로서 합당한 자질을 갖도록 촉구하는데 있다.
여기서 '몸값'에 해당하는 '뤼트론'(lytron; a ransom)은 '풀다'(마태16,19), '벗다'(사도7,33) 등으로 번역되는 '뤼오'(lyo)에서 유래하여 '의무나 속박에서 풀어 주는 것'을 말한다.
말하자면 타인의 속박아래에 있는 노예나 죄수에게 자유를 부여해 주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바로 죄로 말미암아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들을 죄와 죽음의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나게 하여 참된 자유와 평화를 주시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인간들의 이러한 죄와 죽음과 사탄의 속박을 끊기 위해서는 예수님께서 무죄하신 당신 자신의 목숨을 그들을 대신하는 제물로 바쳐야 했다.
인간들의 죄로 말미암아 상처받은 하느님 아버지의 마음과 의노를 풀어드리기 위해, 하느님 아버지와 위격이 같으신 무죄하신 예수님께서 죄지은 인간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상에서 대속 (代贖; redemption)을 해야 하는 것이다.
한편, 예수님께서 십자가 상에서 대속물로서 죽으신 것은 '많은 이들'을 위해서이다.
'많은 이들'로 번역된 '폴론'(pollon; many)의 원형 '폴뤼스'(polys)는 수적으로 많다는 의미만이 아니라, 시간적으로 길다는 뜻과 정도에 있어서 광범위하다는 의미도 가지고 있다.
특히 여기서 우리는 '모든'이라는 뜻이 있는 '파스'(pas)라는 단어가 사용되지 않았다는 데에 유념해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시지만, 모든 사람은 아니라는 것이다.

2021년 3월 3일 [사순 제2주간 수요일]
내 죄로 팔아넘겨지는 예수님.
(마태20,17-28)
17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실 때, 열두 제자를 따로 데리고 길을 가시면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18 “보다시피 우리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있다. 거기에서 사람의 아들은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넘겨질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사람의 아들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19 그를 *다른 민족 사람들에게 넘겨 조롱하고 채찍질하고 나서 십자가에 못 박게 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아들은 *사흗날에 되살아날 것이다.”
=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의 식민지로 사형재판권이 없기에 자신들의 불의, 곧 하느님의 뜻이 아닌 자신들의 뜻을 위한 그 헛된 신앙으로 죽을 수밖에 없는 그들을 살리시려 지적하시는 예수님을, 다른 민족(로마)에게 넘겨 사형선고를 받게 했던 것이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사흗날에 되살리신다. 물론 그 모든 것은 죄인들의 구원을 위한 대속, 하느님의 계획안에 들어 있었던 것이다.
(마태26,24) 24 사람의 아들은 자기에 관하여 *성경에 기록된 대로 떠나간다. 그러나 불행하여라, 사람의 아들을 *팔아넘기는 그 사람!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자신에게 더 좋았을 것이다.”
빌라도가 예수님을 심문할 때~
(요한19,10-11) 10 빌라도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나에게 말을 하지 않을 작정이오? 나는 당신을 풀어 줄 권한도 있고 당신을 십자가에 못 박을 권한도 있다는 것을 모르시오?” 11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네가 *위로부터 받지 않았으면 나에 대해 아무런 권한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를 너에게 *넘긴 자의 죄가 더 크다.”
*오늘 ‘예수님을 팔아 넘겼다’를 묵상하고자 한다.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탈출 시키시고 그들이 가나안에 들어갈 때 까지, 이스라엘의 길을 방해하는 나라(민족)들을 그들의 손에 넘겨주셨다. 그리고 당부의 말씀을 하셨다.
(신명12,29-30) 29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가 가서 쫓아내려는 민족들(가나안)을 너희 앞에서 제거하시면, 또 너희가 그들을 쫓아내고 그들의 땅에 자리 잡으면, 30 그들이 너희 앞에서 멸망한 다음, 그들의 뒤를 따르려는 *유혹에 넘어가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또한 ‘이 민족들이 자기네 신들을 어떻게 섬겼을까? 나도 그렇게 하고 싶다.’ 하며 그들의 *신들을 찾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여라.
(신명18,9) 9 “너희는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에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거든, 그 민족들의 *역겨운 짓을 배워 그대로 해서는 *안 된다.
= 그러나 이스라엘은 가나안에 들어가자 바로 그들의 풍습과 신들을 섬기기 시작했다.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보이지 않는 하늘의 福보다 가안족들의 보이는 땅의 풍요를 더 좋아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느님은 이스라엘을 이웃나라, 그 이민족들의 손에 넘겨버리신 것이다. (가나안, 그 판관의 시대는 하느님의 약속을 사는 지금 우리 신앙인들의 모습인 것이다.)
(판관2,14-19) 14 그리하여 주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시어 그들을 약탈자들의 손에 넘겨 버리시고 약탈당하게 하셨다. 또한 그들을 주위의 원수들에게 팔아넘기셨으므로, 그들이 다시는 원수들에게 맞설 수 없었다. 15 주님께서 이르신 대로, 주님께서 그들에게 맹세하신 대로, 그들이 싸우러 나갈 때마다 주님의 손이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셨다. 그래서 그들은 심한 곤경에 빠졌다.
16 주님께서는 판관들을 세우시어, 이스라엘 자손들을 약탈자들의 손에서 구원해 주도록 하셨다. 17 *그런데도 그들은 저희 판관들의 말을 듣지 않을뿐더러, 다른 신들을 따르며 *불륜을 저지르고 그들에게 경배하였다. 그들은 저희 조상들이 주님의 계명에 순종하며 걸어온 길에서 빨리도 벗어났다. 그들은 조상들의 본을 따르지 않았다.
18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들을 위하여 판관들을 세우실 때마다 그 판관과 *함께 계시어, 그가 살아 있는 동안 내내 그들을 원수들의 손에서 구원해 주도록 하셨다. 억압하는 자들과 학대하는 자들 앞에서 터져 나오는 그들의 탄식을 들으시고, 주님께서 그들을 가엾이 여기셨기 때문이다. 19 *그러나 판관이 죽으면 그들은 조상들보다 더 타락하여, 다른 신들을 따라가서 그들을 섬기고 경배하였다. 그들은 이렇게 자기들의 *완악한 행실과 길을 버리지 않았다.
= 판관기 전체의 반복되는 이야기이다.
(판관3,8) 8 그래서 주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시어, 그들을 아람 나하라임 임금 쿠산 리스아타임의 손에 팔아넘기셨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덟 해 동안 쿠산 리스아타임을 섬겼다.
(판관4,2) 2 그래서 주님께서는 하초르를 다스리는 가나안 임금 야빈의 손에 그들을 팔아넘기셨다. 그의 군대 장수는 하로셋 고임에 사는 시스라였다.
(판관10,6-7) 6 이스라엘 자손들이 다시 주님의 눈에 거슬리는 악한 짓을 저질렀다. 그들은 바알들과 아스타롯, 아람의 신들, 시돈의 신들, 모압의 신들, 암몬 자손들의 신들, 필리스티아인들의 신들을 섬겼다. 그들은 이렇게 주님을 저버리고 그분을 섬기지 않았다. 7 주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시어, 그들을 필리스티아인들과 암몬 자손들의 손에 팔아넘기셨다.
그리고 판관기 끝이-
(판관21,25) 25 그 시대에는 이스라엘에 *임금이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저마다 *제 눈에 옳게 보이는 대로 하였다.
= 하늘의 임금의 듯이 아닌 인간의 뜻으로 멋대로 살았다는 것이다. 판관기는 그렇게 끝이 나고 다음 룻기에서 다윗의 탄생이 나온다. 곧 다윗의 후손으로 오실 하늘의 임금, 그리스도를 예비하시는 것이다. 인간들은 안 된다(가망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대속으로 죽으실 수밖에 없으신 것이다.
오늘 제자들도 자신들의 스승이며 주님이신 그 예수님의 넘겨지심, 죽음을 말씀하시는 그 앞에서 자신들의 욕망을 청하고 있지 않는가~
20 그때에 제베대오의 두 아들의 어머니가 그 아들들과 함께 예수님께 다가와 엎드려 절하고 무엇인가 청하였다. 21 예수님께서 그 부인에게 “무엇을 원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 부인이 “스승님의 나라에서 저의 이 두 아들이 하나는 스승님의 *오른쪽에, 하나는 *왼쪽에 앉을 것이라고 말씀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오늘 독서에서도~
(예레18,18) 18 그들이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자, 예레미야를 없앨 음모를 꾸미자. 그자가 없어도 언제든지 사제에게서 가르침을, 현인에게서 조언을, 예언자에게서 말씀을 얻을 수 있다. 어서 *혀로 그를 치고, 그가 하는 말은 무엇이든 *무시해 버리자.”
= 하느님의 뜻, 말씀을 전하는 그 예레미야(예수의 모형)의 말 보다 자신들의 뜻을 만족시켜줄 혀, 가르침을 원하는 죄악의 모습을 보여준다. 예나 지금이나 같다.
(2티모4,3-4) 3 사람들이 건전한 가르침을 더 이상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을 때가 올 것입니다. 호기심에 가득 찬 그들은 자기들의 *욕망에 따라 교사들을 모아들일 것입니다. 4 그리고 진리에는 더 이상 귀를 기울이지 않고 *신화 쪽으로 돌아설 것입니다.
=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들의 구원을 위해 팔아 넘겨지시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죄로 다른 민족들에게 팔아넘기셨던 당신의 백성을 다시 찾으시겠다는 것이다. 그들을 하늘임금께서 잃어버리셨다고 하는 것이다.(루가15,6)
(요한18,33-37) 33 그리하여 빌라도가 다시 총독 관저 안으로 들어가 예수님을 불러, “당신이 유다인들의 임금이오?” 하고 물었다. 34 예수님께서는 “그것은 네 생각으로 하는 말이냐? 아니면 다른 사람들이 나에 관하여 너에게 말해 준 것이냐?” 하고 되물으셨다. 35 “나야 유다인이 아니잖소? 당신의 동족과 수석 사제들이 당신을 나에게 넘긴 것이오. 당신은 무슨 일을 저질렀소?” 하고 빌라도가 다시 물었다. 36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다면, 내 신하들이 싸워 내가 유다인들에게 넘어가지 않게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하지 않는다.” 37 빌라도가 “아무튼 당신이 임금이라는 말 아니오?” 하고 묻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임금이라고 네가 말하고 있다. 나는 *진리를 증언하려고 태어났으며, 진리를 증언하려고 세상에 왔다. 진리에 속한 사람은 누구나 *내 목소리를 듣는다.”
= 다윗 임금 시대의 풍요, 곧 육의 욕망을 위한 임금이 아니라, 영의 구원을 위해 팔아 넘겨지시는 임금으로, 그렇게 섬기러 오신 그 진리의 그리스도이시라는 말씀이다.
28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주님! 영원한 죽음에 넘겨저야 할 저희를 위해 대신 팔아 넘겨지시고 그것이 진리라 하시니 염치없는 감사를 드립니다.
천주의 성령님! 오늘도 함께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