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2월 16일 화요일
[연중 제6주간 화요일] 바리사이들의 누룩과 헤로데의 누룩 (마르8,14-21)
제1독서 <내가 창조한 사람들을 이 땅 위에서 쓸어버리겠다.> (창세6,5-8; 7,1-5.10) <26/35-36>
5 주님께서는 사람들의 악이 세상에 많아지고, 그들 마음의 모든 생각과 뜻이 언제나 악하기만 한 것을 보시고,
6 세상에 사람을 만드신 것을 후회하시며 마음 아파하셨다.
7 그래서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창조한 사람들을 이 땅 위에서 쓸어버리겠다. 사람뿐 아니라 짐승과 기어 다니는 것들과 하늘의 새들까지 쓸어버리겠다. 내가 그것들을 만든 것이 후회스럽구나!” 8 그러나 노아만은 주님의 눈에 들었다.
7,1 주님께서 노아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네 가족들과 함께 방주로 들어가거라. 내가 보니 이 세대에 내 앞에서 의로운 사람은 너밖에 없구나. 2 정결한 짐승은 모두 수놈과 암놈으로 일곱 쌍씩, 부정한 짐승은 수놈과 암놈으로 한 쌍씩 데려가거라.
3 하늘의 새들도 수컷과 암컷으로 일곱 쌍씩 데리고 가서, 그 씨가 온 땅 위에 살아남게 하여라.
4 이제 이레가 지나면, 내가 사십 일 동안 밤낮으로 땅에 비를 내려, 내가 만든 생물을 땅에서 모두 쓸어버리겠다.”
5 노아는 주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다 하였다.
10 이레가 지나자 땅에 홍수가 났다.
화답송 시편 29(28),1ㄱ과 2.3ㄱㄷ과 4.3ㄴ과 9ㄷ-10(◎ 11ㄴ)
◎ 주님이 당신 백성에게 강복하여 평화를 주시리라.
○ 하느님의 아들들아, 주님께 드려라. 그 이름의 영광 주님께 드려라. 거룩한 차림으로 주님께 경배하여라. ◎
○ 주님의 소리 물 위에 머무네. 주님이 넓은 물 위에 계시네. 주님의 소리는 힘차고, 주님의 소리는 장엄도 하네. ◎
○ 영광의 하느님 천둥 치시네. 그분의 성전에서 모두 외치네. “영광이여!” 주님이 큰 물 위에 앉아 계시네. 주님이 영원한 임금으로 앉으셨네. ◎
복음 <바리사이들의 누룩과 헤로데의 누룩을 조심하여라.> (마르8,14-21)
14 제자들이 빵을 가져오는 것을 잊어버려, 그들이 가진 빵이 배 안에는 한 개밖에 없었다.
15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너희는 주의하여라. 바리사이들의 누룩과 헤로데의 누룩을 조심하여라.” 하고 분부하셨다.
16 그러자 제자들은 자기들에게 빵이 없다고 서로 수군거렸다.
17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아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어찌하여 빵이 없다고 수군거리느냐?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 마음이 그렇게도 완고하냐?
18 너희는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너희는 기억하지 못하느냐?
19 내가 빵 다섯 개를 오천 명에게 떼어 주었을 때, 빵 조각을 몇 광주리나 가득 거두었느냐?” 그들이 “열둘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20 “빵 일곱 개를 사천 명에게 떼어 주었을 때에는, 빵 조각을 몇 바구니나 가득 거두었느냐?”그들이 “일곱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2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연중 제6주간 화요일 제1독서(창세6,5~8; 7,1~5.10)
주님께서는 사람들의 악이 세상에 많아지고, 그들 마음의 모든 생각과 뜻이 언제나 악하기만 한 것을 보시고, 세상에 사람을 만드신 것을 후회하시며 마음 아파하셨다. (5~6)
창세기 6장 5절의 '보시고'에 해당하는 '와야르'(wayar)에서 '보다'에 해당하는 '라아'(rah)는 '조사하다', '주목하다', '진단하다'는 뜻이 있다.
이것은 주 하느님께서 깊은 관심을 가지고 이 세상 사람들을 면밀히 살펴보셨음을 뜻한다.
창세기 6장 5절은 '하느님께서 보시니 좋았다'는 창조 때에 사용된 문장과 대조를 이룬다.
창조 때의 하느님의 시선에는 기쁨과 만족, 충만감이 있었는데, 지금 여기서 비추어지는 주 하느님의 시선에는 의노와 아픔이 서려 있다.
인간은 자신의 죄악을 사람들 앞에서는 감출 수 있으나, 눈동자처럼 이 세상을 살피시는 전지 전능하신 하느님 앞에서는 아무 것도 감출 수 없다(예레17,10).
여기서 '악이 세상에 많아지고'에 해당하는 '랍바 라아트'(rabah raath)에서 '라아트'(raath)는 '라아'(raah)의 연계형으로서 '깨트리다', '악하게 되다'는 뜻을 지닌 '라아'(raah)에서 유래하여 외형적 범죄라는 범위를 넘어 '해로움', '불행', '슬픔'을 가져다 주는 모든 '잘못된 것', '나쁜 것', '사악한 것'등을 포괄하는 용어이다.
그리고 '세상에 많아지고'로 번역된 '랍바'(rabah)는 '라브'(rab)의 여성 형용사이다.
이것은 창세기 6장 1절에서 '늘어나다', '번성하다'로 번역된 '라바브'(rabab)에서 유래한 말로 '풍성한', '큰', '넓은', '강대한', '범람한' 등의 다양한 뜻을 지닌다.
이것을 볼 때 노아 홍수 이전의 세상에는 하느님의 심판 경고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도덕적으로 조금도 개선되지 않고, 외부적인 범죄와 부조리만이 아니라 각 개인의 심성 안에 온갖 악함이 흘러 넘치는 등 사회가 온통 부패했음을 알 수 있다.
'그들 마음의 모든 생각과 뜻이'
히브리어로 '마음'(heart)을 가리키는 용어는 여기 나오는 '레브'(leb)와 '레바브'(lebab)가 있는데, 성경에서는 여기에 처음 등장한다.
히브리인에게 있어서 마음은 지, 정, 의(知情意)의 원천으로 간주된다.
말하자면, 마음은 지식과 지혜의 자리이며, 감정의 자리이기도 하고(탈출4,14; 판관16,25), 양심과 도덕의 자리로 간주되기도 한다(욥기27,6; 2사무24,10).
따라서 마음은 인간 자신을 대표하기도 하며(잠언4,4), 모든 사고, 욕망, 말과 행동의 원천으로 간주된다(창세20,5; 잠언17,9).
그런데 노아 시대 사람들은 이러한 마음이 오염되어 죄악으로 가득찼기 때문에 생각이나 감정이나 의지 역시 오염되었고, 말이나 행동도 죄악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생각'에 해당하는 '마하샤바'(mahashabah)는 '숙고', '책략', '계교' 등의 뜻이 있으며, '뜻'에 해당하는 '예체르'(yatser)는 토기장이가 진흙을 가지고 그릇을 만들거나 조각가가 심혈을 기울여 조각하는 것을 묘사할 때 사용되는 '모양으로 만들다', '꼴을 이루다'에 해당하는 '야차르' (yatsar)에서 나온 단어로서 심사숙고하여 세밀하게 계획을 세우는 것을 말한다.
그러니까 노아 시대 사람들은 우발적으로 범죄를 저지를 뿐만 아니라, 세밀하게 뜻을 세워서 악한 일을 도모했음을 알 수 있다.
더욱이 '모든'에 해당하는 '콜'(kol)은 뒤이어 나오는 '언제나'와 동일한 단어로서 모든 개체 전부와 모든 시간 전부를 가리킨다.
이것을 볼 때, 인류의 조상 아담이 범죄한 이래 원죄(原罪)아래 있는 모든 인간 전체가 예외없이 타락 가운데 있으며, 아담의 타락한 인간성과 원죄성이 계속됨을 지적한다.
'만드신 것을 후회하시며 마음 아파하셨다'
원래 하느님의 창조 사업을 대표하는 단어가 '창조하다'에 해당하는 '빠라'(bara)이다.
이 단어는 이미 존재하는 재료를 가지고 만들어 내는 형상과 산물에는 결코 쓰이지 않고, 오로지 하느님의 창조 사업을 표현할 때만 쓰인다.
이 단어는 '만들다'에 해당하는 '아사'(asah)와 '짓다'에 해당하는 '야차르'(yatsar) 동사를 동반하기도 한다(창세1,26; 2,7).
비록 인간 창조의 장엄성과 하느님의 개입을 강조하기 위해 쓰인 단어가 '빠라'(bara)였지만(창세1,27), 본래 인간 창조의 의도를 얘기하실 때에는 '아사'(asah)가 쓰였다(창세1,26).
창세기 6장 6절에서 '빠라'(bara)가 쓰이지 않고, '아사'(asah)가 쓰인 것은 인간 창조의 과정이나 결과보다는 인간을 창조하시기로 의도하셨던 하느님의 마음을 부각시키기 위한 것이다.
하느님의 모상과 유사성을 따라 만들 것을 의도하고 창조했던 인간이 하느님께서 만드셨던 그 본래 의도와는 다르게 제 마음대로의 길로 달려가는 것을 마음 아파하시는 하느님의 심정을 드러내기 위해 '아사'(asah)가 쓰인 것이다(에페2,10참조).
여기서 '후회하시며'에 해당하는 '와인나헴'(wainnahem; was grieved; it repented)은 '나함'(naham)의 단순 재귀형으로서 '뉘우치다', '후회하다', '슬퍼하다', '애도하다' 등의 뜻이 들어 있다.
이것은 문자 그대로 하느님께서 스스로 후회하셨다거나 슬퍼하셨다는 뜻이 아니다.
왜냐하면, 전지전능하신 하느님께서는 미래에 일어날 일에 대해서 미리 다 아실 뿐 아니라, 당신의 뜻에 따라 행하신 것에 대해 전혀 후회하실 일이 없으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것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모상대로 창조하신 소중한 피조물인 인간이 범죄함으로써 벌받아 멸망할 수 밖에 없게 된 상황에 대한 안타까움을, 인간이 이해하기 쉽도록 인간적인 측면에서 묘사한 것으로 생각해야 한다.
연중 제6주간 화요일 복음(마르8,14~2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너희는 조심하여라. 바리사이들의 누룩과 헤로데의 누룩을 조심하여라." 하고 분부하셨다.(15)
마르코 복음 8장 15절의 두 동사는 모두 현재 2인칭 복수 명령형으로 되어 있는데, 예수님의 말씀이 결코 잊어서는 안되는 명령임을 드러낸다.
'너희는 주의하여라'에 해당하는 '호라테'(horate; take heed; be careful)의 원형 '호라오'(horao)는 눈만이 아니라 마음으로도 보고 실체를 알고서 조심하고 주의하는 것을 뜻하는 동사이다.
그리고 '조심하여라'에 해당하는 '블레페테'(blepete; beware; watch out)의 원형 '블레포'(blepo) 역시 사물이나 현상을 눈만이 아니라 마음으로 보고 통찰하는 것과 어떤 것에 유의하고 조심하는 것을 뜻하는 동사이다.
한 문장에서 동일하게 비슷한 뜻의 동사가 함께 연속해서 명령형으로 사용되었다는 사실은 예수님께서 제자들로 하여금 바리사이들의 누룩과 헤로데의 누룩을 자세히 살피고 주의해야 할 것을 매우 강조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여기서 '누룩'에 해당하는 '쥐메스'(zymes; leaven)의 원형 '쥐메'(zyme)는 밀가루 반죽에 넣어 부풀어 오르게 하는 '효모'를 가리키는 단어인데, 침투성과 영향력이 강한 악(惡)의 상징적, 비유적 매개체로 성경에서 쓰이고 있다.
따라서 '누룩'은 바리사이들과 헤로데가 타인에게 강하게 미칠 수 있는 악한 성향을 가리킨다고 말할 수 있다.
바리사이들은 하늘로부터 오는 분명한 표징을 보아야만 예수님을 믿을 수 있다는 불신과 악의를 가지고 있었고, 형식주의에서 비롯한 그들의 독선과 위선을 가지고 있었다.
헤로데는 그를 추종하는 헤로데 당원들과 더불어 정치적이며 세속적인 성향에서 비롯되는 불경건과 불신앙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었고, 바리사이들처럼 예수님께 눈에 보이는 표징을 구했다.
병행 구절인 마태오 복음 6장 11절에서는 '바리사이들과 사두가이들의 누룩' 으로 나오는데, 마태오 복음과 마르코 복음사이에 '사두가이들'과 '헤로데'라는 차이가 있다.
사두가이들은 천사, 영적 존재와 영적 세계 그리고 부활을 부정하는 등 비신앙적이고 세속적인 성향을 가진 자들이며, 성전 중심의 종교 지도자들이었다.
헤로데 당원들도 역시 정치적이며 불경건하고 비신앙적인 삶을 사는 세속주의자, 현세주의자들이므로, 두 집단이 공통점이 있다.
예수님께서는 실제로 바리사이, 사두가이, 헤로데 모두를 말씀하셨는데, 그 중에서 마태오 복음사가는 바리사이와 사두가이를 강조하여 기록했고, 마르코 복음사가는 헤로데를 강조하여 기록했을 것이다.
2021년 2월 16일 [연중 제6주간 화요일]
홍수는 새 창조를 위한 은총의 바다.
(창세6,5-8; 7,1-5.7.10.23)
5 주님께서는 사람(아담)들의 악이 세상에 많아지고, 그들 마음의 모든 생각과 뜻이 언제나 악하기만 한 것을 보시고,
= 아담- 사람이라는 뜻,
아담들, 그들의 악한 생각과 뜻~(창세2,16-17 3,4-6)
2,16 그리고 주 하느님께서는 사람에게 이렇게 명령하셨다. “너는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에서 열매를 따 먹어도 된다. 17 그러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는 따 먹으면 안 된다. 그 열매를 따 먹는 날, 너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
3,4 그러나 뱀이 여자에게 말하였다. “너희는 결코 죽지 않는다. 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 너희 눈이 열려 *하느님처럼 되어서 선과 악을 알게 될 줄을 하느님께서 아시고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6 여자가 쳐다보니 그 나무 열매는 *먹음직하고 소담스러워 보였다. 그뿐만 아니라 그것은 슬기롭게 해 줄 것처럼 *탐스러웠다. 그래서 여자가 열매 하나를 따서 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자, 그도 그것을 먹었다.
= 사람의 욕망을 위해 하느님의 뜻, 말씀을 무시해 버렸다.
(마르7,9) 9 또 이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너희의 *전통을 고수하려고 *하느님의 계명을 잘도 *저버린다
* 카인(또 다른 아담)은 어제 묵상했듯이 자기 재물(열심, 수고)을 지키기 위해, 하느님께 올바른 제물을 드린, 곧 모든 것을 살 게할 아벨을 죽이고 하느님을 떠나 놋(방황)땅에 자리를 잡고 살았다.
카인의 후예들(또 다른 아담들)은 자신들의 이름으로 성읍(세상)을 짓고 그 세상에 필요한 온갖 기구들과 문화와 문명을 만들어 하느님이 아닌 자신들이 만들어 낸 것들에 만족하며 살았다. 생명이 아닌 현대의 죽음의 문화, 문명의 시작인 것이다.
(창세4,22) 22 칠라도 투발 카인을 낳았는데, 그는 *구리와 쇠로 된 온갖 도구를 만드는 이였다. 그리고 투발 카인의 누이는 *나아마였다.
= 청동기, 철기 문화는 이때부터 있었던 것이다. 나아마(아름답다). 그들의 힘(세상의 힘)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창세4,23) 23 라멕이 자기 아내들에게 말하였다. “아다야, 칠라야, 내 소리를 들어라. 라멕의 아내들아, 내 말에 귀를 기울여라. 나는 내 상처 하나에 사람 하나를, 내 생채기 하나에 아이 하나를 죽였다.
= 하나 이어야 할 짝, 아내를 둘 이상 만들었고, 남을 밟아 버리고 죽이는 그 힘을 자랑하는 세상의 모습이다.
(창세4,24) 24 카인을 해친 자가 일곱 갑절로 앙갚음을 받는다면 라멕을 해친 자는 일흔일곱 갑절로 앙갚음을 받는다.”
= 하느님의 법을 인간들의 법으로 만들었다. 하느님의 법을 폐기 시키고 자신들을 위한 법을 만든 것이다.
(마르7,7.13) 7 지금 사람들도 ‘사람의 규정을 교리로 가르치며 나를 헛되이 섬긴다.’ 13 너희는 이렇게 너희가 전하는 *전통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폐기하는 것이다. 너희는 이런 짓들을 *많이 한다.
이렇게 사람들의 마음, 모든 생각과 뜻이 언제나 악하기만 한 것을 보시고 ~
6 세상에 사람을 만드신 것을 후회하시며 마음 아파하셨다.
= 후회하셨다?- 하느님의 뜻(계획)이, 실패하여 후회하셨다는 것이 아니다. 하느님께 실패란 없다. 전지전능하신 분이 아니신가. 우주의 만물을 보면 알 것이다. 하느님께서 후회하셨다는 것은, 마음 아파하셨음을 강조한 표현이다.
오늘의 묵상글 중에서 - ‘하느님께서 만드신 세상은 참 좋은 세상이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에 의하여 악이 세상에 들어오고, 악은 점점 많아지고, 참 좋았던 세상이 악으로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7 그래서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창조한 사람들을 이 땅 위에서 쓸어버리겠다. 사람뿐 아니라 짐승과 기어 다니는 것들과 하늘의 새들까지 쓸어버리겠다. 내가 그것들을 만든 것이 후회스럽구나!”
= 새 창조를 위한 분리, 구별이다. 하느님나라와 세상나라의 분리다. 곧 사람의 힘을 원하는 이들(카인)과 하느님을 원하는 이들(아벨)의 분리다. 이스마엘과 이사악을, 에사우와 야곱을 분리하듯, 그리고 이집트에서 이스라엘을 분리시키듯 말이다.
8 그러나 노아만은 주님의 눈에 들었다.
= 하느님의 은총의 눈이시다. 노아가 뭘 잘해서가 아니라 하느님의 은총을 입어 의인이 되는 것이다.(티토3,5)
7,1 주님께서 노아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네 가족들과 함께 방주로 들어가거라. 내가 보니 이 세대에 내 앞에서 의로운 사람은 너밖에 없구나.
= 하늘의 의로움을 입은 노아다. 그리스도의 대속, 십자가로 거저 얻은 의로움이 숨겨져 있는 것이다.(로마3,24) 성경은 인간의 의로움을 개짐(걸레)일 뿐이라 하셨다.(이사64,5) 구원의 의로움은 오직 십자가에 있다. 십자가는 창세기 1장에서부터 숨겨져 있다.
(로마16,25) 25 하느님은 내가 전하는 복음으로, 곧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선포로, 또 오랜 세월 *감추어 두셨던 신비의 계시로 여러분의 힘을 북돋아 주실 능력이 있는 분이십니다.
(루가24,27) 27 그리고 이어서 모세와 모든 예언자로부터 시작하여 성경(구약) *전체에 걸쳐 당신에 관한 기록들을 그들에게 설명해 주셨다.
2 정결한 짐승은 *모두 수놈과 암놈으로 *일곱 쌍씩, 부정한 짐승은 수놈과 암놈으로 *한 쌍씩 데려가거라. 3 하늘의 새들도 수컷과 암컷으로 *일곱 쌍씩 데리고 가서, 그 씨가 온 땅 위에 살아남게 하여라.
= 정결한 짐승에게만 ‘모두’가 들어가 있다. 부정한 것들은 정결하게 하기 위한 도구로 필요한 것이다.
4 이제 *이레가 지나면, 내가 *사십 일 동안 밤낮으로 땅에 비를 내려, 내가 만든 생물을 땅에서 모두 쓸어버리겠다.” 5 노아는 주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다 하였다. 7 노아는 아들들과 아내와 며느리들과 함께 홍수를 피하여 방주로 들어갔다. 10 *이레가 지나자 땅에 홍수가 났다.
= 이례-7, 안식. 홍수는 ‘하늘의 안식의 비’다.
23 그분께서는 사람뿐 아니라 짐승과 기어 다니는 것들과 하늘의 새들까지, 땅에 사는 모든 생물을 쓸어버리셨다. 이렇게 그것들은 땅에서 쓸려 가 버렸다.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는 사람과 짐승만 남았다.
= 방주의 설계도를 보면 3층으로 되어있다. 곧 방주는 하늘(삼위) 성자 하느님 그리스도를 豫表하는 것이다. 그래서 방주,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남는 것이다.
(1베드3,20) 20 옛날에 노아가 방주를 만들 때 하느님께서는 참고 기다리셨지만 그들은 끝내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몇몇 사람 곧 여덟 명만 *방주에 들어가 *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방주, 그리스도께서 죽음의 물 위를 걸으셨다.
(마태14,24-27. 32) 24 배는 이미 뭍에서 여러 스타디온 떨어져 있었는데, 마침 맞바람이 불어 파도에 시달리고 있었다. 25 예수님께서는 새벽에 호수(물) 위를 걸으시어 그들 쪽으로 가셨다. 26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호수 위를 걸으시는 것을 보고 겁에 질려 “유령이다!” 하며 두려워 소리를 질러 댔다. 27 예수님께서는 곧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32 그러고 나서 그들이 배에 오르자 바람이 그쳤다.
(창세7,18)18 물이 불어나면서 땅 위로 가득 차 오르자 *방주는 물 위를 떠다니게 되었다.
사도는 이 부분을 洗禮라 말한다.
앞 베드로서~
(1베드3,20-21) 20 옛날에 노아가 방주를 만들 때 하느님께서는 참고 기다리셨지만 그들은 끝내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몇몇 사람 곧 여덟 명만 방주에 들어가 *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200주년 성서) 20 이 영들은 하느님께서 너그러이 기다리시던 때, 곧 방주가 건조되던 노아 시대에 순종하지 않았던 자들입니다. 몇몇 사람만이 물을 *통과해서 방주로 들어가 구원을 받았는데 그 수효는 여덟 사람이었습니다.
= 죽음의 물을 건너야(지나야), 곧 버리고 구별되어 받는 구원이라는 것이다.
사도는 이것을 세례라고 한다.
21 이제는 그것이 가리키는 본형인 *세례가 여러분을 구원합니다. 세례는 몸의 때를 씻어 내는 일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힘입어 *하느님께 바른 양심을 청하는 일입니다.
= 죄를 씻어내는 법의 행위가 아니라 하느님의 새 계약, 곧 그리스도의 피로 더러운 양심이 깨끗해지는 새 계약의 새 마음, 바른 양심을 갖는 것이다.(예제36,25~ 예레31,31~ 히브10,15~) 바른 양심(에피로테마),- ‘선한마음이 하느님을 간구하게 한다’. 라는 뜻이다.
(히브10,22) 22 그러니 진실한 마음과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하느님께 나아갑시다. 우리의 마음은 그리스도의 피가 뿌려져 악에 물든 양심을 벗고 깨끗해졌으며, 우리의 몸은 맑은 물로 말끔히 씻겨졌습니다.
= 세상의 것을 추구하며 세상의 생각, 뜻의 자신이 헛 것임을 깨닫고 인정하는 그 자기부인, 버림으로 얻을 수 있는 그리스도의 피로 씻겨 얻는 바른 양심이다.
☨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우리의 방주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죽음의 물을 통과 시키시어 새창조, 구원을 이루시니늘 감사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