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1월 9일 월요일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 이 성전을 허물어라. 요한 2,13-22)
그가 힘찬 소리로 외쳤습니다. “무너졌다, 무너졌다, 대바빌론이! 바빌론이 마귀들의 거처가 되고 온갖 더러운 영들의 소굴, 온갖 더러운 새들의 소굴, 더럽고 미움 받는 온갖 짐승들의 소굴이 되고 말았다.(묵시18,2)
제1독서<성전 오른쪽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보았네.>(에제 47,1-2.8-9.12)
천사가 1 나를 데리고 주님의 집 어귀로 돌아갔다. 이 주님의 집 정면은 동쪽으로 나 있었는데, 주님의 집 문지방 밑에서 물이 솟아 동쪽으로 흐르고 있었다. 그 물은 주님의 집 오른쪽 밑에서, 제단 남쪽으로 흘러내려 갔다.
2 그는 또 나를 데리고 북쪽 대문으로 나가서, 밖을 돌아 동쪽 대문 밖으로 데려갔다. 거기에서 보니 물이 오른쪽에서 나오고 있었다.
8 그가 나에게 말하였다. “이 물은 동쪽 지역으로 나가, 아라바로 내려가서 바다로 들어간다. 이 물이 바다로 흘러들어 가면, 그 바닷물이 되살아난다.
9 그래서 이 강이 흘러가는 곳마다 온갖 생물이 우글거리며 살아난다. 이 물이 닿는 곳마다 바닷물이 되살아나기 때문에, 고기도 아주 많이 생겨난다. 이렇게 이 강이 닿는 곳마다 모든 것이 살아난다.
12 이 강가 이쪽저쪽에는 온갖 과일나무가 자라는데, 잎도 시들지 않으며 과일도 끊이지 않고 다달이 새 과일을 내놓는다. 이 물이 성전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 과일은 양식이 되고 잎은 약이 된다.”
화답송 시편 46(45),2-3.5-6.8-9(◎ 5)
◎ 강물이 줄기줄기 하느님의 도성을, 지극히 높으신 분의 거룩한 거처를 즐겁게 하네.
○ 하느님은 우리의 피신처, 우리의 힘. 어려울 때마다 늘 도와주셨네.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네. 땅이 뒤흔들린다 해도, 산들이 바다 깊이 빠진다 해도. ◎
○ 강물이 줄기줄기 하느님의 도성을, 지극히 높으신 분의 거룩한 거처를 즐겁게 하네. 하느님이 그 안에 계시니 흔들리지 않네. 하느님이 동틀 녘에 구해 주시네. ◎
○ 만군의 주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네. 야곱의 하느님이 우리의 산성이시네. 와서 보아라, 주님의 업적을, 이 세상에 이루신 놀라운 일을! ◎
복음 환호송
2역대 7,16 ○ 주님이 말씀하신다. 내가 이 집을 선택하여 성별하고 이곳에 내 이름을 영원히 있게 하리라.
복음 <예수님께서 성전이라고 하신 것은 당신 몸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다.>(요한 2,13-22)
13 유다인들의 파스카 축제가 가까워지자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다.
14 그리고 성전에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파는 자들과 환전꾼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15 끈으로 채찍을 만드시어 양과 소와 함께 그들을 모두 성전에서 쫓아내셨다. 또 환전상들의 돈을 쏟아 버리시고 탁자들을 엎어 버리셨다.
16 비둘기를 파는 자들에게는, “이것들을 여기에서 치워라.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마라.” 하고 이르셨다.
17 그러자 제자들은 “당신 집에 대한 열정이 저를 집어삼킬 것입니다.”라고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 생각났다.
18 그때에 유다인들이 예수님께, “당신이 이런 일을 해도 된다는 무슨 표징을 보여 줄 수 있소?” 하고 말하였다.
19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
20 유다인들이 말하였다. “이 성전을 마흔여섯 해나 걸려 지었는데, 당신이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는 말이오?”
21 그러나 그분께서 성전이라고 하신 것은 당신 몸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다.
22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신 뒤에야,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그분께서 이르신 말씀을 믿게 되었다.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 제1독서(에제 47,1-2,8-9.12)
에제키엘 47장을 보면, 주님의 집 문지방 밑에서 물이 솟아 동쪽으로 흐르고 있다.
만남의 천막을 고려한다면, 지성소의 계약의 궤(서쪽)에서 물이 나와 동쪽 입구쪽으로 물이 흘러 내리는 셈이다.
천사는 그 물길을 따라 동쪽으로 이동하면서 이동거리를 측량하였고, 천 암마(천 척; 약 530m: 1암마는 팔꿈치에서 중지까지의 길이로 보통 45~55cm를 말한다)를 진행한 뒤에, 에제키엘에게 물을 가로질러 건널 것을 명령하였다.
이렇게 천 암마를 재고서는 물을 건너게 했을 때, 물이 "발목'까지 찼다(47,3)고 한다.
여기서 '발목까지'에 해당하는 '오프싸임'(ophsaim)은 '발목'에 해당하는 명사 '에페쓰'(ephes)의 복수형이다. 발목에 해당하는 명사 '에페쓰'는 '끝'이나 '아무 것도 아님'이라는 의미의 단어이다.
문자적인 의미로서는, 성전으로부터의 일천 암마를 잰 지점에서의 수심은 물이 거의 없는 상태이거나 겨우 발바닥에 이를 정도라고 보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를 '발바닥의 물'이라고 번역하지 않고, '발목의 물'('메 오프싸임; me ophsaim; waters of the ankles)라는 의미로 번역했다.
성전으로부터 530여 미터 정도 흘러온 물이 발바닥에 닿을 정도라면, 거의 물이 흐르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우리 신앙인의 성숙 단계로 보면, 하느님과 교회에 속한 자이지만, 이제 새롭게 신앙을 시작하는 단계를 말한다.
처음 신앙 생활을 시작하면, 하느님의 말씀과 성사를 그저 "기본적인 말씀이나 의식"인 것 처럼, "아무 것도 아닌 것"과 같이 받아들이는 어린 신앙의 기초 단계를 말한다.
이 단계는 하느님의 말씀과 성사의 은총을 알고자 하는 단계에 까지 이르러야 된다.
에제키엘서 47장 4절(ㄱ)을 보면, 거기에서 다시 천 암마까지 성전에서 흘러온 물이 '무릎'까지 찬다.
이 "무릎"은 히브리어 "베레크"(berek)로서 "사랑하는 자의 자리"라고 말한다.
사랑과 대화를 나누는 자세와 자리를 의미한다.
하느님과 대화하는 자리, 기도의 자리에 있는 사람이 이 단계에 속한다.
기도하는 사람, 대화하는 사람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입으로 고백하는 사람이며, 성사의 은총으로, 특히 성체성사의 은혜로 하느님께 사랑받는 자인 것이다.
47장 4절(ㄴ)을 보면, 다시 거기에서 천 암마까지 흘러온 물을 재니, 물이 "허리"(엉덩이)까지 찼다.
"허리"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모템"(motem)인데, "묶는 것"을 상징한다.
하느님의 말씀과 성사의 은총이 나에게 힘이 되는 단계를 말한다(욥기40,16참조).
약속의 말씀과 생명의 양식이 나에게 힘이 되고, 원동력이 되며, 의미와 가치가 되는 단계이다.
"그분만이 내 바위, 내 구원, 내 성채, 나는 흔들리지 않으리라. 내 도움과 내 영광이 하느님께 있으며, 내 견고한 바위와 피신처가 하느님 안에 있네."(시편62,7~8)
다윗이 이렇게 노래한 것처럼, 하느님의 말씀을 의지하고, 성사의 은총을 신앙생활의 원동력으로 삼아 모든 것을 이루어 나가며, 하느님의 일을 하는 사람이 이 단계에 속한다.
47장 5절을 보면, 또 다시 거기에서 천 암마를 가면, 물이 "건널 수 없는 강"이 되었다고 한다. 원문은 "메 사후"(me sahu)로서, "헤엄칠만한 물"(헤엄칠 곳)이란 뜻이다.
하느님의 말씀이 살아 있고 운동력이 있어서 좌우의 날선 검처럼 지켜주고 축복을 주는 단계이다.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어던 쌍날칼보다도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사람 속을 꿰찔러 혼과 영을 가르고 관절과 골수를 갈라, 마음의 생각과 속셈을 가려냅니다."(히브4,12)
이 단계에서 살아 계시고 존귀하신 하느님을 경험하고 성체안에서 하나가 되면, 에제키엘 47장 8절~12절의 축복을 받게 된다.
"이 물은 동쪽 지역으로 나가, 아라바로 내려가서 바다로 들어간다. 이 물이 바다로 흘러 들어 가면, 그 바닷물이 되살아난다. 그래서 이 강이 흘러가는 곳마다 온갖 생물이 우글거리며 살아난다. 이 물이 닿는 곳마다 바닷물이 되살아나기 때문에, 고기도 아주 많이 생겨난다. 이렇게 이 강이 닿는 곳마다 모든 것이 살아난다~~~
이 강가 이쪽저쪽에는 모든 과일나무가 자라는데, 잎도 시들지 않으며 과일도 끊이지 않고 다달이 새 과일을 내놓는다. 이 물이 성전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 과일은 양식이 되고 잎이 된다."
여기서 "되살아나다"로 해석되는 히브리어 "라파"(rapha)는 '고치다','치료하다','건강하게 하다'는 뜻이다.
하느님의 말씀과 성체의 사랑이 우리 안에 가득 넘칠 때,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치유가 임하고, 축복이 흘러 넘치게 된다.
이렇게 물의 양이 많아진 이유는 염도가 너무 높아 생물이 도저히 살 수 없는 사해의 염도를, 생명체가 살 수 있을 정도로까지 낮추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즉 천사가 47장 8~12절에 말한 것처럼, 사해 즉 죽은 바다로 흘러간 물이 바다를 살리고
생명체가 번식하게 되고, 풍성한 어족을 되돌아 오게 만들기 위해서는 막대한 양의 생수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천사가 에제키엘에게 성전으로부터 흘러나온 물을 그냥 관찰하게만 하지 않고, 4~5절에서 직접 물안으로 들어가 체험하게 한 것은, 물의 양이 사해 바다를 되살리기에 충분한 양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하느님의 말씀을 믿고 성전에서 흘러넘치는 성령, 곧 주님 은총의 샘인 성심에서 흘러나오는 성령을 받으면 우리는 변화된다. 이것을 믿어야만 한다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 복음(요한2,13~22)
"그리고 성전에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파는 자들과 환전꾼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끈으로 채찍을 만드시어 양과 소와 함께 그들을 모두 성전에서 쫓아내셨다. 또 환전상들의 돈을 쏟아 버리시고 탁자들을 엎어 버리셨다. 비둘기를 파는 자들에게는, "이것들을 여기에서 치워라.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마라." 하고 이르셨다." (14~16)
요한 복음 2장 13~25절은 예수님께서 하신 제1차 성전 정화 사건과 이로 말미암아 야기된 유대인과의 언쟁 및 기적을 보고 믿는 자들에 대한 예수님의 반응이 기록되어 있다.
이 사건을 제1차 성전 정화 사건이라고 부르는 것은 예수님의 생애 후반에 제2차 성전 정화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다(마태21,10~18; 마르11,15~19; 루카19,45.46).
그런데 제1차 성전 정화 사건은 요한 복음에만 기록되어 있는 반면에, 제2차 성전 정화 사건은 공관 복음에만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공관 복음서 저자들이 유사한 두 사건 가운데서 예수님의 구속 사업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는 십자가상 죽음과 밀접하게 관련된 후기 사건만을 기록한 반면에, 요한 복음사가는 이러한 공관 복음서의 내용을 염두에 두고 초기 성전 정화 사건만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특히 요한 복음사가는 예수님의 활동 초기에 있었던 이 사건을 기록함으로써, 성전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던 유대인들의 종교적 부패상을 부각시키며, 예수님의 이들의 위선과 죄악상을 깨우치기 위한 새로운 역할이 필연적이었음을 보여 주려고 했다.
요한 복음 2장 14절의 '보시고'에 해당하는 '휴렌'(huren; found)는 '휴리스코'(hurisko)의 부정 과거이다. 이 동사는 그 무엇을 집요하게 찾다가 본 것이 아니라 우연히 발견하거나 만난 것을 나타낸다.
시기적으로 이때는 예수님께서 활동을 시작하신 첫 해 겨울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성전 안에서 자행되던 불법 행위들은 너무나 쉽게 목격되는 일반적인 현상이며, 예수님께서는 파스카 축제를 지키고자 예루살렘에 와서 성전에 들어가셨다가 우연히 이러한 현상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한편, '성전'에 해당하는 '히에론'(hieron)은 '성소'(sanctuary), '성전'(temple) 이라는 뜻인데, 여기서는 정관사 '토'(to)와 같이 쓰여서 예루살렘 성전을 지칭한다.
'히에론'(hieron)은 성전 건물 그 자체를 가리키는 '나오스'(naos)보다는 더 넓은 의미를 가지는데, 성전의 건물은 물론이고 마당(뜰)까지도 모두 포함된다.
예수님께서는 매매와 환전이 이루어지던 성전 마당의 이방인 뜰을 유심히 보셨다.
하느님께서 성별하신 이런 성전 영역 안에서 불법이 행해진다는 것은 당시 유대인들의 영적 타락의 심각성을 보여 준다.
성전에서 공공연히 자행되던 범죄는 제물로 바쳐진 짐승들을 팔며 돈을 바꾸는 일과 관련 되어 있다.
멀리서 성전을 방문하는 순례자들은 희생 제물을 가져올 수 없어서 예루살렘에서 구해야 했다. 이 제물은 흠없는 것이어야 했고, 사제가 적격 여부를 심사했다.
비록 흠없는 제물이라 할지라도 멀리서 가져온 경우, 사제들은 쉽게 트집을 잡아 불합격 판정을 내렸다.
사제들은 가져갈 수 없는 제물들을 헐값에 사들여서 성전에서 비싼 값에 되팔았다.
결국 성전에서 파는 제물들은 불합격을 받을 우려가 없어서 선호되었고, 대사제 무리들은 이것을 이용해서 막대한 이득을 올리고 있었다.
또한 환전 행위는 많은 순례자들이 성전을 찾는 기회를 이용해서 매년 바쳐야 하는 성전세 반 세켈을 바치는 것과 관련된다.
전 세계에 흩어져 있던 20세 이상의 유대인 남자는 성전세를 바쳐야 하는데, 이것은 이방의 군주나 우상의 얼굴이나 각명이 들어 있지 않으면서 순도가 높은 은으로 만들어진 세겔 주화여야 한다.
유대인들은 보통 두 사람이 한 조가 되어 이 주화를 바쳤다(마태17,27).
파스카 축제 약 20일 전부터 환전소가 예루살렘 성전에 설치되었고, 이때 환전 수수료는 12.5% 정도였다. 대사제 무리들은 자신들의 직권을 이용해서 이러한 일에 관여하여 큰 이익을 얻을 수 있었다.
따라서 당시 대사제 무리들은 큰 부(富)를 누렸고, 이렇게 모은 돈으로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는 데 사용하였다.
예수님께서는 요한 복음 2장 19절에서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고 하신다.
여기서 '성전'에 해당하는 '나온'(naon)은 2장 14절의 성전 경내 전체를 가리키는 '히에론'(hieron)보다 좁은 의미로 쓰였는데, 이것은 비유적으로 예수님의 몸과 성도의 몸(1코린6,19), 교회(1코린3,16.17; 에페2,21) 등을 가리킨다.
여기서도 예수님께서 염두에 두신 성전은 바로 자신의 몸이며, 그분은 이것을 허물어 보라고 하신 것이다.
예수님의 이 말씀 안에는 돌로 지은 예루살렘 성전과 그 안에서 행해지던 일체의 의식들이 이 땅에서 소멸되고 없어질 수 있지만, 예수님을 통한 구원 사업은 아무도 막거나 없애지 못한다는 중요한 메시지가 함축되어 있다.
요한 복음 2장 20절에서 사람들이 말하는 '나오스'(naos)라는 성전은 '헤로데 성전'으로서 B.C.19년에 착공하여 A.D.46년에 이르러셔야 완공이 되었기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때는 아직도 20 여년 가까이 앞둔 시점이었다.
예수님께서 요한 복음 2장 19절에서 성전을 허문다는 것은 위의 성전이 아니라, 인류 구속 사업이라는 아버지 하느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십자가 상에서 죽어야 하는 당신 육체의 죽음을 가리키며,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는 것은 사흘 안에 부활하시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2020년 11월 9일 월요일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
“무너졌다, 무너졌다, 대바빌론이! 바빌론이 마귀들의 거처가 되고 온갖 더러운 영들의 소굴, 온갖 더러운 새들의 소굴, 더럽고 미움 받는 온갖 짐승들의 소굴이 되고 말았다.(묵시18,2)
(요한 2,13-22)
13 유다인들의 *파스카 축제가 가까워지자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다.
= 파스카의 어린양의 죽음, 곧 당신의 죽음에 관한 말씀을 하시겠다는 것이다.
14 그리고 성전에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파는 자들과 환전꾼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15 끈으로 채찍을 만드시어 양과 소와 함께 그들을 모두 성전에서 쫓아내셨다. 또 환전상들의 돈을 쏟아 버리시고 탁자들을 엎어 버리셨다.
= 하느님께 흠 없는 제물을 바쳐야 하는데(레위22,19~) 거리가 멀면 오는 도중에 제물이 상하게 되니 돈으로 가져와 양이나 소를 사서 바쳐야 했다. 그런데 예수님은 왜 화가 나셨을까?
16 비둘기를 파는 자들에게는, “이것들을 여기에서 치워라.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마라.” 하고 이르셨다.
= 하느님의 율법(뜻)대로 자신들의 번제물, 속죄 제물로, 그리고 감사의 제물로 바쳐야할 것을 자신들의 뜻,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바치는, 하느님과 거래하는 그 속셈을 아셨기에 화가 나셨던 것이다.
우리 俗言에 ‘제사에는 맘이 없고 젯밥에만 맘이 있다’ 하듯이 하느님의 뜻에는 관심이 없고 자신들의 뜻에만 관심있는, 그래서 하느님과 장사하듯 거래로 제물(헌금)을 드리는 그들의 속셈을 아시고 화를 내신 것이다.
그리고 짐승들ㅇ로 드리는 제사는 구원의 그림자일 뿐, 실체가 아닌 것이다.
(히브10,4.6-7.10) 4 황소와 염소의 피가 죄를 없애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6 번제물과 속죄 제물을 당신께서는 기꺼워하지 않으셨습니다. 7 그리하여 제가(예수) 아뢰었습니다. ‘보십시오, 하느님! 두루마리(성경)에 저에 관하여 기록된 대로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 10 이 “뜻”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단 한 번 바쳐짐으로써 우리가 거룩하게 되었습니다.
= 예수님께서 단 한번의 속죄 제물로 십다가에서 죽으심으로 제사는 완성되었는데 계속해서 자신들의 뜻 목적을 위해 사람의 규정과 교리의 제사로 자신들의 열성(의로움)을 부리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의 열정이 義怒로 타오르신 것이다. 지금은 제사가 아닌 하느님께 靈과 眞理로 예배드릴 대라는 것이다.(요한4,23)
17 그러자 제자들은 “당신 집에 대한 열정이 저를 집어삼킬 것입니다.”라고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 생각났다. 18 그때에 유다인들이 예수님께, “당신이 이런 일을 해도 된다는 무슨 표징을 보여 줄 수 있소?” 하고 말하였다. 19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 20 유다인들이 말하였다. “이 성전을 마흔여섯 해나 걸려 지었는데, 당신이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는 말이오?” 21 그러나 그분께서 성전이라고 하신 것은 당신 몸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다.
= 이 聖殿, 곧 당신을 허물어라 하신 것, 예수님께서 당신의 죽음을 예고하신 것인데, 보이는 건물 성전을 기념하며 축제를 지내는 그 사람의 관습을 없애라, 허물어라 하시는 것이고 또 보이는 육을 입으신 예수님을 섬기는 기적과 치유로 사람의 뜻을 이루어줄 그 메시아로 섬기고 보지 말라는 의미로 당신을 허물어라, 죽여라 하셨던 것이다.
그리고*사흘 안에 하신 것은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사흘 후 *부활하심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 예수님의 죽음과 사흘 후에 부활은 모두 죄인들을 살리시기 위한 하느님의 구원의 뜻이었던 것이다.
육을 입으신 예수님은 우리 안에 들어오실 수 없으셨지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영으로 우리와 함께 하신다. 예수님의 죽음(피)으로 깨끗해 졌고, 그 의롭고 거룩하신 분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는 그분의 성전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독서에서~
(1코린3,17-18) 17 누구든지 하느님의 성전을 파괴하면 하느님께서도 그자를 파멸시키실 것입니다. 하느님의 성전은 거룩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바로 하느님의 성전입니다. 18 아무도 자신을 속여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 가운데 자기가 이 세상에서 지혜로운 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가 지혜롭게 되기 위해서는 어리석은 이가 되어야 합니다.
= 하느님의 성전인 우리(사람), 그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사람의 말로 慣習으로 주게 되면 그 사람(성전)을 파괴하는, 죽이는 것이다. 곧 하늘의 대속, 그 십자가의 의로움으로 죄를 덮으시는 그 진리의 말슴을 도덕과 윤리 그 사람의 말, 법으로 주어 그 사람이 자기 의로움을 위한 신앙을 살게되면, 하느님의 진리도 모르고 하느님의 용서도 못 받게되어 그 사람이 죽는, 성전이 파괴 되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의 말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이다.
그 만큼 가르침을 주는 자리에있는 이들, 그리고 사제들은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성경을 , 기도하고 묵상하고 또 묵상해서 가르쳐야 한다. 인터넷에 올라온 세상이야기, 사람들의 감동적인 이야기로 하느님의 가르침을 준다는 것은, 그분의 정해진 양식을 주지 못하는 職務遺棄다.(루가12,42참조) 안될 일이다, 제발 ~안될 일이다. 왜? 세상이 추구하는 것과 그리스도인이 추구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이다.
(1코린2,12-13) 12 우리는 세상의 영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오시는 영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은총, 은혜, 구원)을 알아보게 되었습니다. 13 우리는 이 선물에 관하여, *인간의 지혜가 가르쳐 준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가르쳐 주신 말로 이야기합니다. 영적인 것을 영적인 표현으로 설명하는 것입니다.
= 어제도 묵상했듯이 세상적인 미사 강론에 의지하지 말고, 내 안에 계신 성령께 의탁해서 말씀을 묵상합시다.
(요한8,31-32) 31 예수님께서 당신을 믿는 유다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내 말 안에 머무르면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된다. 32 그러면 너희가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 기쁜 약속, 주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놓치지 말자, 그 복된 약속의 말씀을 늘 기억하자, 그래서 말씀을 믿는, 말씀이 살아계셔 일하시는 성전이 되자.
22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신 뒤에야,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그분께서 이르신 말씀을 믿게 되었다.
= 의심이 생길 때, 구원의 확신이 없을 때 약속의 말씀을 기억(기도)하면 믿음을 지킬 수 있다. 행위의 열심히지키는 것은 믿음과 관계없기에 용서와 구원의 확신이 없다. 그래서 더욱더 열심을 부려보지만 그럴수록 구원의 확신이 없음을 확인할 뿐이다.
개신교 신자들 보다 우라 천주교 신자들이 구원의 확신이 없음은 무엇인가~ 그들은 구원의 약속을 성경에서 찾고 우리 천주교는 자신들의 종교 행위로 찾으려 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규정과 교리로 지킨 그 모든 행위로는 믿음을 갖을 수 없다.
(로마3,20-22) 20 어떠한 인간도 율법에 따른 행위로 하느님 앞에서 의롭게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율법을 통해서는 죄를 알게 될 따름입니다. 21 그러나 이제는 율법과 상관없이 하느님의 의로움이 나타났습니다. 이는 율법과 예언자들이 증언하는 것입니다. 22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오는 하느님의 의로움은 믿는 모든 이를 위한 것입니다. 거기에는 아무 차별도 없습니다. ~아멘!!!
☞그래서 11월 위령성월에 하고픈 말,♡
구원은 믿음으로 얻는 것인데~ 아무 무덤이든 죽은 이를 위해 연도 바치라는 활동을 주시는데~
(갈라3,26) 26 여러분은 모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믿음으로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로마4,25 5,1) 25 이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잘못 때문에 죽음에 넘겨지셨지만, 우리를 의롭게 하시려고 되살아나셨습니다. 1 그러므로 *믿음으로 의롭게 된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과 더불어 평화를 누립니다.
(요한14,6) 6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 믿음이 없으면 그 누구도, 아무도 받지 못하는 구원이다. 그런데 누구인지도 모르는 무덤에 가서 기도를 한다? 성경 어디에도 그 약속의 말씀은 없다.
(루가16,26) 26 우리와 너희 사이에는 큰 구렁이 가로놓여 있어, 여기에서 너희 쪽으로 건너가려 해도 갈 수 없고 거기에서 우리 쪽으로 건너오려 해도 올 수 없다.’
(마태25,11-12) 11 나중에 나머지 처녀들이 와서 ‘주인님, 주인님, 문을 열어 주십시오.’ 하고 청하였지만, 12 예수님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너희를 알지 못한다.’ 하고 대답하였다.
= 교회를 다녔어도 기름(성령을 통한 깨달음, 믿음)을 준비하지 못한 처녀들~ 말씀을 믿는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 그분 뜻대로 삽시다.
하나 더, 우리의 구원이 우리 신앙의 최종 목적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해 주신 그 하느님께 감사의 영광을 드리는 것, 그것이 신앙의 최종 목적지다. 그런데 아무도 모르는 죽은자의 무덤에 가서 기도를 한다니?~
성경 말씀과 맞지가 않다. 들을 귀가 있는 사람만 들으시오.
*우리를 위하여 탄식하시며 기도하시는 천주의 성령님, 저희 교회를 의탁합니다.~아멘!!!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저 모든 것을 보고 있지 않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기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고 다 허물어지고 말 것이다.(마태24,2)
“자, 성읍을 세우고 꼭대기가 하늘까지 닿는 탑을 세워 이름을 날리자. 그렇게 해서 우리가 온 땅으로 흩어지지 않게 하자.” 그러자 주님께서 내려오시어 사람들이 세운 성읍과 탑을 보시고 말씀하셨다. “보라, 저들은 한 겨레이고 모두 같은 말을 쓰고 있다. 이것은 그들이 하려는 일의 시작일 뿐, 이제 그들이 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든 못할 일이 없을 것이다. 자, 우리가 내려가서 그들의 말을 뒤섞어 놓아, 서로 남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게 만들어 버리자.” 주님께서는 그들을 거기에서 온 땅으로 흩어 버리셨다. 그래서 그들은 그 성읍을 세우는 일을 그만두었다. 그리하여 그곳의 이름을 바벨이라 하였다. 주님께서 거기에서 온 땅의 말을 뒤섞어 놓으시고, 사람들을 온 땅으로 흩어 버리셨기 때문이다. (창세11,4-9)
나는 또 그 짐승과 땅의 임금들과 그 군대들이 말을 타신 분과 그분의 군대에 맞서 전투를 벌이려고 모여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다가 그 짐승이 붙잡혔습니다. 그 짐승 앞에서 표징들을 일으키던 거짓 예언자도 함께 붙잡혔습니다. 그 거짓 예언자는 그 표징들을 가지고, 짐승의 표를 받은 자들과 짐승의 상에 경배하는 자들을 속였던 것입니다. 그 둘은 유황이 타오르는 불 못에 산 채로 던져졌습니다. 남은 자들은 말을 타신 분의 입에서 나온 칼에 맞아 죽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새들이 그들의 살을 배불리 먹었습니다. (요한묵시19,19-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