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30주간 목요일] 사흘째 되는 날에는 내 일을 마친다.(루카13,31-35)

2020. 10. 30. 오전 7:3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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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29일 목요일

[연중 제30주간 목요일] 사흘째 되는 날에는 내 일을 마친다.(루카13,31-35)

1독서 <하느님의 무기로 완전한 무장을 갖추십시오.>(에페 6,10-20)

형제 여러분, 10 주님 안에서 그분의 강한 힘을 받아 굳세어지십시오.

11 악마의 간계에 맞설 수 있도록 하느님의 무기로 완전히 무장하십시오.

12 우리의 전투 상대는 인간이 아니라, 권세와 권력들과 이 어두운 세계의 지배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령들입니다.

13 그러므로 악한 날에 그들에게 대항할 수 있도록, 그리고 모든 채비를 마치고서 그들에게 맞설 수 있도록, 하느님의 무기로 완전한 무장을 갖추십시오.

14 그리하여 진리로 허리에 띠를 두르고 의로움의 갑옷을 입고 굳건히 서십시오.

15 발에는 평화의 복음을 위한 준비의 신을 신으십시오.

16 무엇보다도 믿음의 방패를 잡으십시오. 여러분은 악한 자가 쏘는 불화살을 그 방패로 막아서 끌 수 있을 것입니다.

17 그리고 구원의 투구를 받아 쓰고 성령의 칼을 받아 쥐십시오. 성령의 칼은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18 여러분은 늘 성령 안에서 온갖 기도와 간구를 올려 간청하십시오.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인내를 다하고 모든 성도들을 위하여 간구하며 깨어 있으십시오.

19 그리고 내가 입을 열면 말씀이 주어져 복음의 신비를 담대히 알릴 수 있도록 나를 위해서도 간구해 주십시오.

20 이 복음을 전하는 사절인 내가 비록 사슬에 매여 있어도, 말을 해야 할 때에 이 복음에 힘입어 담대해질 수 있도록 말입니다.


화답송 시편 144(143),1.2.9-10(1)

나의 반석 주님은 찬미받으소서.

나의 반석 주님은 찬미받으소서. 그분은 내 손가락에 싸움을, 내 손에 전쟁을 가르치셨네.

그분은 나의 힘, 나의 산성, 나의 성채, 나의 구원자, 나의 방패, 나의 피난처, 민족들을 내 밑에 굴복시키셨네.

하느님, 당신께 새로운 노래 부르오리다. 열 줄 수금으로 찬미 노래 부르오리다. 당신은 임금들을 구원하시고, 당신 종 다윗을 구하시나이다.


복음<예언자는 예루살렘이 아닌 다른 곳에서 죽을 수 없다.>(루카13,31-35)

31 그때에 바리사이 몇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와, “어서 이곳을 떠나십시오. 헤로데가 선생님을 죽이려고 합니다.” 하고 말하였다.

32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가서 그 여우에게 이렇게 전하여라. ‘보라, 오늘과 내일은 내가 마귀들을 쫓아내며 병을 고쳐 주고, 사흘째 되는 날에는 내 일을 마친다.

33 그러나 오늘도 내일도 그다음 날도 내 길을 계속 가야 한다. 예언자는 예루살렘이 아닌 다른 곳에서 죽을 수 없기 때문이다.’

34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예언자들을 죽이고 자기에게 파견된 이들에게 돌을 던져 죽이기까지 하는 너! 암탉이 제 병아리들을 날개 밑으로 모으듯, 내가 몇 번이나 너의 자녀들을 모으려고 하였던가? 그러나 너희는 마다하였다.

35 보라, 너희 집은 버려질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은 복되시어라.’ 하고 말할 날이 올 때까지, 정녕 나를 보지 못할 것이다.”

 



연중 제30주간 목요일 제1독서 (에페6,10~20)


"우리의 전투 상대는 인간이 아니라, 권세와 권력들과 이 어두운 세대의 지배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령들입니다."(12)


에페소서 612절은 이유를 나타내는 접속사 '호티'(hoti; for)로 시작된다. 따라서 612절은 앞선 11절에 나오는 것, 즉 하느님의 백성들이 왜 하느님의 무기 <'전신갑주'(全身甲胄); the full armor of God>로 무장해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이유를 보여준다.

그것은 하느님 백성의 싸움이 연약한 인간에 대한 것이 아니라, 초자연적인 능력을 발하는 악한 영들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전투'에 해당하는 '팔레'(pale; wrestle; struggle; fighting)'진동하다', '던지다'라는 뜻의 동사 '팔로'(pallo)에서 유래한 명사이다.

이것은 단순한 씨름이 아니라 몸을 던져 맞붙어 겨루는 '레슬링'(wrestle) 혹은 생사(生死)를 가르는 치열한 '싸움'(fighting)을 의미한다.


또한 '인간'에 해당하는 '하이마 카이 사르카마'(haima kai sarka)'혈과 육'으로 번역되는데, 인간의 죄악된 본성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연약한 인간 자체를 가리킨다(히브2,14; 갈라1,16).

하느님의 백성은 하느님을 믿지 않는 자들처럼 연약한 본성(성품과 감정)을 가진 동료 인간들을 싸움의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된다. 인간들은 사랑의 대상이요 복음화의 대상이지, 싸움의 대상이 아니다.


에페소서 612절의 후반절은 '그러나'라는 뜻을 지닌 '알라'(alla; but)라는 접속사로 시작되는데, 상반절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표현이 이이서 등장함을 나타낸다.

'알라'(alla) 이하에 나오는 네 가지 존재들은 앞서 나온 연약한 존재를 가리키는 '인간'( 혈과 육)에 대조되는 존재로서, 모두 인간 세상에서는 그 형체를 볼 수 없는 악한 영들을 가리킨다.


원문에는 이 네 가지 영적 존재들 앞에 전치사 '프로스'(pros; against)를 사용함으로써, 하느님의 백성이 이 네 가지 존재들에 대해 각각 대항해야 함이 강조되고 있다.

먼저 '권세와 권력들'은 거의 함께 언급되는 관용어이다(콜로2,15). 여기서 '권세'에 해당하는 '아르케'(arche)'통치자'(the prinsipalities)라는 의미이며, '권력들'에 해당하는 '엑수시아'(eksusia)는 말 그대로 '권력'(the powers)이라는 의미이다.


본문에서 이 표현들은 영적 존재 중에서 특정 계급에 속한 영들을 가리키는데, 이들은 반드시 악한 천사들만을 가리키지 않고 선한 천사들도 포함되는데, 여기서는 악한 천사들을 말한다.

또한 '권세와 권력들'은 위격적(位格的)인 존재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에페1,21참조). 그러나 여기서는 전자의 의미로 보는 것이 더 일반적이다.


한편, '이 어두운 세계의 지배자들'에 해당하는 '코스모크라토라스'(kosmokratoras)의 원형 '코스모크라토르'(kosmokrator)'세상'(마태5,14), '세계'를 뜻하는 '코스모스'(kosmos)'권력'(1베드5,11), ''(루카1,51)을 가리키는 '크라토스'(kratos)의 합성어에서 유래하여 '세계의 지배자들'('세상의 주관자들'; the world rulers of this present darkness)이란 의미를 나타낸다.


여기서 세상은 하느님을 불신하는 부정적인 의미로서의 세상이다.

요한 복음사가는 어두움에 속한 세상이, 빛이신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 그분을 영접하지 않았다고 묘사하였다(요한1,4.5). 세상을 어두움에 속한 것으로 말한 것은 세상이 어두움의 세상 지배자(주관자)의 권세에 놓여 있음을 의미한다.


끝으로 '하늘에 있는 악령들'(the spiritual hosts of wickedness in the heavenly places)은 영적인 세계에서 하느님을 대항하여 사탄의 편에 선 졸개들인 마귀들을 총칭하는 표현들이다.

이들은 공중의 권세를 잡은 자로 묘사되는 사탄의 부하들로서, 세상에 대한 제한적인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다.

사도 바오로는 당시 사람들이 영적 세력을 묘사하는데 사용한 이와 같은 용어로써, 하느님의 백성들이 싸워야 할 대상이 바로 하느님을 대적하는 사탄의 하수인인 마귀들임을 보여주고 있다.




연중 제30주간 목요일 복음 (루카13,31-35)
"가서 그 여우에게 이렇게 전하여라.  '보라, 오늘과 내일은 내가 마귀들을 쫓아내어 병을 고쳐주고,  사흘째 되는 날에는 내 일을 마친다.  그러나 오늘도 내일도 그 다음날도 내 길을 가야 한다.  예언자는 예루살렘이 아닌 다른 곳에서 죽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예언자들을 죽이고 자기에게 파견된 이들에게 돌을 던져 죽이기까지 하는 너!  암탉이 제 병아리들을 날개 밑으로 모으듯, 내가 몇 번이나 너의 자녀들을  모으려고 하였던가? 그러나 너희는 마다하였다." (32ㄴ~34)
헤로데의 살해 음모를 전해들은 예수님께서는 헤로데에 대해 공식적으로 책망하시며, 루카 복음 13장 32절과 35절에서 헤로데가 당신의 사명을 막을 수 없음을 예언하신다.예수님께서는 여기서 헤로데의 간교함 때문에 그를 '여우'라고 표현하신다. 아마도 루카 복음 13장 31절에서 바리사이들을 사주하거나 합세하여 예수님을 쫓아내기 위해 위협하는 자가 바로 헤로데라고 지적하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헤로데는 갈릴래아와 베레아 지방을 다스리던 '헤로데 안티파스' (Herod Antipas; B.C.4~A.D.39)를 가리킨다.그는 한때 세례자 요한이 죽은 후 예수님을 보고 싶어한 적도 있었지만(루카9,7~9), 이제는 예수님의 선하신 행동과 명성에 부담을 느끼고서 노골적으로 적의를 드러내고 있다.
13장 32절의 '오늘', '내일' 그리고 '사흘 째 되는 날'은 예루살렘에서 십자가 수난을 받으시고 부활하심으로써 구속 사업을 완성하시는 때를 가리킨다. 그리고 13장 32절의 '마귀들을 쫓아내며 병을 고쳐주고'라는 표현은 하느님의 나라를 확장하시는 예수님의 전형적인 사목의 모습을 보여 주는 표현이다.
한편, '마친다'에 해당하는 '텔레이우마이'(teleiumai; I will reach my goal; I shall be perfected)는 '텔레이오오'(teleioo)의 현재형으로서 여기서는 미래적 의미를 갖는다.말하자면, 미래에 반드시 성취될 예수님의 사명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결국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의 확실성을 보여 준다.
특히 여기에 나오는 '사흘째 되는 날'이라는 표현은 예수님의 구속 사업의 완성이 예루살렘에서의 죽음과 사흘 후의 부활로 성취될 것임을 예언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본다.그래서 루카 복음 13장 33절은 예수님께서 당신 사명의 완성을 위해 반드시 예루살렘에 가야만 한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여기서 '그러나'로 번역된 접속사 '플렌'(plen; nevertheless; in any case)은 13장 32절의 후반부에서 말하고 있는 구속 사업의 완성에 앞서서, 반드시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예루살렘으로 가는 일이 선행되어야 함을 가리킨다.또한 예루살렘으로 가야하는 필연성을 묘사하기 위해 '~해야 한다'는 뜻의 동사 '데이'(dei; must)를 사용해서 '내 길을 가야 한다'고 번역했다.
예수님께서 이처럼 예루살렘에 가야 하는 이유는, 바로 그곳에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으로 성부 하느님께서 요구하시는 인류 구속 사업을 완성하심으로써, 이 땅에 오신 당신의 사명을 성취하셔야 하기 때문이다.또한 13장 33절에서 '예언자'에 해당하는 '프로페텐'(propheten; a prophet)은 단수인데, 이전에 예루살렘에서 죽임을 당한 많은 예언자들을 전제한 상태에서 예수님 당신 자신을 가리키는 데 사용되고 있다.
그러니까 모든 예언자들이 예루살렘에서 죽임을 당했다는 일반적인 법칙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예루살렘이 예언자들을 죽이기 때문에 예언자로서 예수님 역시 거기서 죽는 것이 타당하다는 당위성을 가리키고 있다고 본다.'예루살렘아 ~ 모으려고 하였던가?  그러나 너희는 마다하였다'
루카 복음 13장 34절과 35절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죽으실 것이라는 사실을 예언한 13장 31절~33절에 이어 당신 자신의 구속 사업을 이해하지 못하고, 오히려 적대하고 죽이고 말 예루살렘의 멸망을 매우 애통스러운 어조로 예언하고 있는 부분이다.
이 문장이 마태오 복음 23장 37절에도 거의 동일하게 나오는데, 마태오 복음사가는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의 위선을 책망하는 문맥에서 말하고 있고, 루카 복음사가는 예수님께서 구속사업을 완성하시기 위해서 반드시 예루살렘에서 죽어야 된다는 것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말하고 있다.13장 34절은 죄악으로 가득차서 심판을 눈앞에 둔 예루살렘 대한 예수님의 안타까운 마음을 전달해 줌과 동시에, 예수님 당신의 죽음에 대해 예루살렘 도성이 직접적으로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예루살렘아'에 해당하는 '이에루살렘'(Ierusalem; O Jerusalem)은 예수님께서 도시를 마치 사람인 것처럼 의인화하여 표현하신 것이다. 이런 표현은 예루살렘에 살고 있는 모든 유대인들을 통칭하는 대표적 표현이다.예수님께서는 다가올 예루살렘의 멸망을 내다보면서,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당해야 하는 고통을  보셨기에, 안타까운 심정으로 예루살렘을 반복해서 부르시는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이사야 예언자를 통해 '둥지 위를 맴도는 새들처럼 만군의 주님이 예루살렘을 지켜 주리라. 지키고 건져 주며 감싸고 구원해 주리라'(이사31,5)고 말씀하셨다.이것은 독수리와 같은 맹금류가 둥지를 공격해 올 때, 어미새가 날개를 크게 벌려 그 새끼들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것처럼, 하느님께서도 당신께서 택하신 예루살렘을 보호하실 것이라는 비유적 표현이다.
그러나 여기 본문의 주체는 예수님 자신이다. 육화(강생)하신 예수님께서는 환난에 처한 예루살렘을 실제로 보호하신 적이 없다. 따라서 이러한 표현은 예수님께서 이 세상이 만들어지기 전부터 영원으로부터 선재(先在)하신 성자 하느님으로서 육화하시기 이전부터(요한1,1~4; 17,5) 예루살렘을 계속해서 보호해 오셨다는 사실을 나타낸다고 본다.
여기서 '날개'로 번역된 '프테뤼가스'(pterygas; her wings)의 원형 '프테뤽스'(pteryks)는 '새의 날개'를 의미하며, 여기서는 복수형으로 쓰였는데, 안전한 피난처와 보호의 그늘을 상징한다. 그리고 '암탉'으로 번역된 '오르니스'(ornis; a hen)는 '새'(bird)를 의미하는 단어이다.구약에서 이 두 단어는 모두 당신 백성을 보호하시는 하느님을 상징하는 말로 쓰였다(시편17,8; 91,4; 이사31,5).
또한 '모으다'에 해당하는 '에피쉬나게이'(episynagei; gathers)는 현재 시제 동사인데, 이것은 어미새가 그 본성상 습관적으로 그 새끼들을 날개 아래 모으는 생태를 묘사한다. 하느님 역시 당신 백성들을 과거나 현재나 미래를 불문하고 언제나 변함없이 보호하시는 것이다.
'내가 몇 번이나 너의 자녀들을 모으려고 하였던가?'
여기서 '내가 ~ 하였던가?'로 번역된 '에텔레사'(ethelesa; I would; I have longed)의 원형 '텔로'(thelo)는 '원하다', '바라다'는 의미를 지닌 동사로서 여기서는 직설법 부정과거로 쓰였다.이 동사는 여기서 부정사로 쓰인 '모으려고'에 해당하는 '에피쉬나가게인'(episynagagein; to gether)을 목적어로 받고 있다. 따라서 '에텔레사 에피쉬나가게인'(ethelesa episynagagein)은 '내가 모으는 것을 원했다'는 뜻이다.
그리고 '몇 번이나'에 해당하는 '포사키스'(posakis; how often)는 '얼마나 자주', '몇 번이나'라는 뜻을 지닌 부사로서, 여기서는 ‘상당히 자주'라는 의미를 강조적으로 나타낸다.이러한 표현은 그 보호하심을 거부한 사람들에게 죄책감을 더욱 가중시키는 기능을 한다.
이러한 표현은 범죄한 이스라엘을 회복시키려고 예언자들을 통해 회개의 메시지를 끊임없이 전하셨던 하느님의 실제적인 행동을 가리킨다.하느님께서는 오늘날도 변함없이 당신 백성들을 그 안전한 날개 아래 모으려고 애쓰신다.




 

2020년 10월 29일 [연중 제30주간 목요일]

예언자는 예루살렘이 아닌 다른 곳에서 죽을 수 없다.

(루카13,31-35)

31 그때에 바리사이 몇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와, “어서 이곳을 떠나십시오헤로데가 선생님을 죽이려고 합니다.” 하고 말하였다. 32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가서 그 여우에게 이렇게 전하여라. ‘보라오늘과 내일은 내가 마귀들을 쫓아내며 병을 고쳐 주고사흘째 되는 날에는 내 일을 마친다.

말씀으로 하늘의 것도 챙기고자신의 뜻도 챙기려는 헤로데 그 여우다그리고 예수님께서 사흘째(3) 되는 날에 완성하실 일이란 창조 사흗날의 일이다오는(첫날)과 내일(이튿날)은 사흘째 되는 날을 위한 준비를 말씀하시는 것이다,

 

(창세1,11)그 사흩(3)날에 ~ 11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땅은 푸른 싹을 돋게 하여라씨를 맺는 풀과 씨 있는 과일나무를 제 종류대로 땅 위에 돋게 하여라.” 하시자그대로 되었다.

빈 땅이 무슨 수로 *씨를 맺는 풀과 과일나무를 내겠는가?~ 그런데 그 빈땅이 씨를 맺는 나무를 돋아나게 했단다.

분명그것은 능력이 없는 땅을 위해 씨가 스스로 들어가 대신 썩어지는 그 죽음으로씨의 풀과 나무를 만들어 낸 것이다.

그 씨의 희생죽음을신의 죽음, 3의 죽음이라 하는 것이고~그것이 곧 죄인들의 구원을 위한 십자가의 대속그 예수님의 사흗날의 죽음과 부활인 것이다.

 

(1코린15,2-5) 2 내가 여러분에게 전한 이 복음 말씀을 굳게 지킨다면또 여러분이 *헛되이 믿게 된 것이 아니라면여러분은 이 복음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3 나도 전해 받았고 여러분에게 무엇보다 먼저 전해 준 복음은 이렇습니다곧 그리스도께서는 성경 말씀대로 우리의 죄 때문에 돌아가시고 묻히셨으며성경 말씀대로 사흗날에 되살아나시어, 5 케파에게또 이어서 열두 사도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우리의 죄 때문에 돌아가신 신의 죽음예수님의 대속그 십자가의 복음을 진리로 믿는 것이 참 신앙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복음이 오늘 독서에서 말씀하시는 하느님의 무기인 것이다우리를 속여 죽이려는 사탄의 거짓말그 불화살을 막아줄 하늘의 진리구원의 의로움인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그분의 사흗날의 죽음과 부활그 복음인 것이다.

 

33 그러나 오늘도 내일도 그다음 날도 내 길을 계속 가야 한다예언자는 예루살렘이 아닌 다른 곳에서 죽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율법이 요구하는 것을 이룰 수 없기에 예수님께서 대신 당신의 몸으로 갚으시기 위해 율법의 본부인 예루살렘에서 죽으시는 것이다.

그것이 사흘째 날의 일이며그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은 이천년전 골고타 산위에서 완성 되었다그러므로 구원의 말씀그 기쁜 소식은 계속 선포되어져야 한다선택된 모든 이들의 구원을 위해서~~

이세상의 종말까지도 개인의 이 세상에서의 삶이 마감될 때까지그 복음 선포를 제자인 우리들이 하는 것 같지만 그리스도의 영성령의 보호하심과 이끄심으로 하는 것이기에예수님께서 오늘도 내일도 계속 가야한다고 하신 것이다그래서 제자들을 뽑으셨고그 부족한 이들을 복음 선포에 보내신 것이다.

당신의 치유의 힘과 구마의 권한을 주셔서 보내신 것이 당신께서 늘 함께 하심인 것이다.

 

34ㄱ 예루살렘아예루살렘아예언자들을 죽이고 자기에게 파견된 이들에게 돌을 던져 죽이기까지 하는 너!

예루살렘은 율법의 총화(總和), 본고지그곳 율법학자들이 자신들의 구원을 위한 신의 죽음, 3(사흩날)의 대속의 죽음인 그 기쁜소식을 믿지 않았다받아들이지 않았다그리고 자신들의 구원자 그 예수님을 죽였다.

그들은 하늘의 대속그 하늘의 의로움이 필요없다는 것이다사람의 의로움자신들이 영심히 드린 제사와 착한 행위의 그 의로움으로 하느님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그것이 참 구원의 길이라고 헛된 생각으로 우기는 것이다.

오늘날에도 십자가의 대속그 예수님의 의로움보다 사람의 열심착한 행위(실천)로 하느님나라에 간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요한14,6) 6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에페2,8-9) 8 여러분은 믿음을 통하여 은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이는 여러분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9 인간의 행위(의로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니 아무도 자기 자랑을 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사람이 착하게 살지 않아도 된다는 것그런말이 아니라는 것은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34ㄴ 암탉이 제 병아리들을 날개 밑으로 모으듯내가 몇 번이나 너의 자녀들을 모으려고 하였던가그러나 너희는 마다하였다.

()이 하늘의 씨를 받아야 존재가 되듯이 사람은 하느님으로만 존재할 수 있다.사람은 창조주 하느님의 피조물이니까그러니내가 안전하다고 만들어 놓은 나의 열심의로움그 모든 것이 구원의 진리가 될 수 없음을 깨닫지 못라고 하늘의 씨하느님의 품을 거부한다면~

본문 앞28절 너희는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과 모든 예언자가 하느님의 나라 안에 있는데 너희만 밖으로 쫓겨나 있는 것을 보게 되면거기()지옥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또한 오늘 현세에서부터 이를 가는 지옥을 살게 된다는 말씀이다.

 

35 보라너희 집(성전의로움)은 버려질 것이다내가 너희에게 말한다너희가 주님(야훼)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은 복되시어라.’ 하고 말할 날이 올 때까지정녕 나를 보지 못할 것이다.”

예수님께서하느님의 이름()으로 오신 우리의 속죄 제물로 보내신 구원자이심을그 예수님이 우리의 이심을 깨달아 믿고 고백한다면오늘도 일하시는 그 예수님의 이끄심으로 아버지 하느님의 품안에서 그분의 자녀로 하늘의 안식을 살게누리게 되는 것이다.

 

*천주의 성령님 사랑하는 아이들과 사랑하는 모든 이들을 의탁합니다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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