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0월 17일 토요일
[연중 제28주간 토요일] 성령을 모독하는 말 (루카 12,8-12)

제1독서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를 교회에 머리로 주셨습니다.>(에페 1,15-23)
15 나는 주 예수님에 대한 여러분의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여러분의 사랑을 전해 듣고,
16 기도 중에 여러분을 기억하며 여러분 때문에 끊임없이 감사를 드립니다.
17 그 기도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느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여러분에게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시어 여러분이 그분을 알게 되고,
18 여러분 마음의 눈을 밝혀 주시어, 그분의 부르심으로 여러분이 지니게 된 희망이 어떠한 것인지, 성도들 사이에서 받게 될 그분 상속의 영광이 얼마나 풍성한지 여러분이 알게 되기를 비는 것입니다.
19 또 우리 믿는 이들을 위한 그분의 힘이 얼마나 엄청나게 큰지를 그분의 강한 능력의 활동으로 알게 되기를 비는 것입니다.
20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 능력을 펼치시어, 그분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시고 하늘에 올리시어 당신 오른쪽에 앉히셨습니다.
21 모든 권세와 권력과 권능과 주권 위에, 그리고 현세만이 아니라 내세에서도 불릴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신 것입니다.
22 또한 만물을 그리스도의 발아래 굴복시키시고, 만물 위에 계신 그분을 교회에 머리로 주셨습니다.
23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모든 면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그리스도로 충만해 있습니다.
화답송 시편 8,2와 3ㄷㄹ.4-5.6-7ㄱ(◎ 7ㄱ 참조)
◎ 당신 손으로 지으신 작품들을 아드님이 다스리게 하셨나이다.
○ 주님, 저희 주님, 온 땅에 당신 이름, 이 얼마나 크시옵니까! 하늘 위에 당신 영광 높사옵니다. 당신은 아기와 젖먹이들의 찬양으로, 요새를 지으셨나이다. ◎
○ 우러러 당신 손가락으로 빚으신 하늘하며, 굳건히 세우신 달과 별들을 바라보나이다. 인간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기억해 주시나이까?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돌보아 주시나이까? ◎
○ 천사보다는 조금 못하게 만드셨어도, 영광과 존귀의 관을 씌워 주셨나이다. 당신 손으로 지으신 작품들을 다스리게 하셨나이다. ◎
복음 <너희가 해야 할 말을 성령께서 그때에 알려 주실 것이다.>(루카 12,8-12)
8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안다고 증언하면, 사람의 아들도 하느님의 천사들 앞에서 그를 안다고 증언할 것이다.
9 그러나 사람들 앞에서 나를 모른다고 하는 자는, 사람의 아들도 하느님의 천사들 앞에서 그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10 사람의 아들을 거슬러 말하는 자는 모두 용서받을 것이다. 그러나 성령을 모독하는 말을 하는 자는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11 너희는 회당이나 관청이나 관아에 끌려갈 때, 어떻게 답변할까, 무엇으로 답변할까, 또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12 너희가 해야 할 말을 성령께서 그때에 알려 주실 것이다.”
연중 제28주간 토요일 (에페1,15-23)
"그 기도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느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여러분에게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시어 여러분이 그분을 알게 되고, 여러분 마음의 눈을 밝혀 주시어, 그분의 부르심으로 여러분이 지니게 된 희망이 어떠한 것인지, 성도들 사이에서 받게 될 그분 상속의 영광이 얼마나 풍성한지 여러분이 알게 되기를 비는 것입니다." (17-18)
앞의 17절에서 성도 그리고 교회위에 부어진 지혜와 계시의 성령께서는 그들에게 하느님께 대한 참된 지식을 제공한다. 일찍이 구약의 이스라엘은 하느님을 아는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였고(호세4,6), 하느님은 그 백성들에게 하느님 알기를 요청하였다.(호세6,6) 이러한 지식은 단지 사색하고 성경을 읽음으로 생겨나지 않는다. 하느님께 대한 객관적 지식이 곧 하느님을 안다는 바른 지식이 될 수 없다.
17절에 '여러분이 그분을 알게 되고' 에서, 하느님을 안다는 것이 무엇인가? 여기서 '알게' 로 번역된 '에피그노세이'(epignosei)의 원형 '에피그노시스'(epignosis)는 그 자체로 이미 '알다' 라는 의미가 있는 '기노스코'(ginosko)에 강조를 나타내는 접두어 '에피'(epi)가 붙어 '철저하고 정확히 안다' 라는 의미를 지닌 동사 '에피기노스코'(epiginosko)에서 유래한 명사이며, '정밀하고 정확한 지식' 을 의미한다.
특히 이것은 개인적이고 인격적인 친밀한 관계를 통해서 그 대상을 아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앎은 단지 성경을 읽거나 인간적 탐구를 통하여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성령의 역동적인 역사를 통해서만 이루어진다.(예레31,33.34)
그리고 그러한 지식은 결코 아는 것에 머물지 않고,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데에로까지 나아가게끔 만든다.(예레36,26.27) 바오로는 바로 이러한 앎이 성도들에게 있기를 기도하는 것이다.
이제 18절과 19절에서는, 성령께서 '마음의 눈을 밝혀 주시어' ① 부르심의 희망과 ② 그분 상속의 영광의 풍성과 ③ 믿는 이들에게 베푸시는 그분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인지를 알게 되기를 기도하고 있다.
이러한 세 가지 사항에 대한 바른 깨달음은 하느님께서 성도들의 마음의 눈을 밝히실 때 비로소 이루어질 수 있다.
여기서 '마음'으로 번역된 '카르디아스'(kardias)는 일차적으로 신체 기관 중 하나인 '심장'(heart)를 지칭한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어떤 원문에서는 '카르디아스'가 아닌 '디아노이아스'(dianoias)로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은 '이해하고 느끼고 생각하는 기능으로서의 마음' 을 의미한다.
특히 요한1서 5장 20절에서는 이 단어가 이해력을 뜻하는 '지각'(understanding)으로 번역되어 있어 그 의미의 이해를 돕는다. 성령께서 바로, 전에 알지 못하던 영적 부분에 대한 사실을 깨닫게 하는 영이라는 사실이 이러한 본문을 통해 보다 잘 드러나는 것이다. 성령께서 주시는 이런 통찰력을 통해 18절, 19절에 묘사된 세 가지 사항에 대한 깨달음이 비로소 가능해진다.
1)'그분의 부르심으로 여러분이 지니게 된 희망'
바오로는 먼저 에페소 교인들의 마음의 눈이 밝아져, 하느님의 부르심의 희망이 무엇인지 알게 되기를 간구했다. 하느님께서 믿는 이들을 부르신 데에는,그리고 이방인을 믿음의 공동체인 교회로 불러 들이신 데에는 그에 상응하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이 희망은 하느님께서 증표로 주신 성령으로 인해 미래에 있을 완전한 구원에 대한 망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상 죽으심을 통해 우리를 구속하신 하느님의 사랑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갖는 이 희망은 온전하며 부끄럽지 않다.(로마 5,5.6) 그리고 완전한 구원에 대한 이 희망은 곧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는 그날에 하느님께서 우리를 티없고 흠없는 거룩한 교회로 세우실 것에 대한 희망이다.(에페5,27)
2)'그분 상속의 영광이 얼마나 풍성한지'
바오로가 에페소 교인들의 마음의 눈이 밝아져 깨닫게 되기를 간구하는 두번째 것은 하느님의 상속(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에 대한 것이다. 그런데 하느님의 상속(기업)이란 말이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상속(기업)' 을 가리키는지, 아니면 하느님께서 '소유하시는 상속(기업)' 인지는 애매하다.
하느님의 상속(기업)을 '소유하시는 상속'으로 보는 견해는 구약의 문맥과 특히 관련을 갖는다. 구약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느님의 상속(기업)으로 묘사되어 있으므로(신명4,20 ; 2사무21,3 ; 시편33,12) 신약에서는 교회가 하느님의 상속(기업)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견해이다.(에페1,11)
이런 관점에서는 본문이 하느님으로부터 받을 '우리의 상속(기업)' 아니고, 하느님의 '상속(기업)이 되는 우리'를 나타내는 것이 된다.
한편, 하느님의 상속을 '베푸시는 상속'으로 보는 경우에는 바오로가 기록한 콜로새서의 문맥과 특히 관련을 갖는다. 콜로새서 1장 12절을 보면, 하느님께서는 성도들이 빛의 나라에서 받는 상속의 몫을 차지할 자격을 주셨다. 이런 관점에서는 성도들은 하느님으로부터 풍성한 상속(기업)을 받은 자들이다.
원문으로 볼 때, 이 두가지 견해가 다 가능하고, 전체적으로 볼 때 이 두 가지 견해가 모순되는 것도 아니다. 하느님의 상속(기업)인 성도들이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풍성한 상속(기업)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3)'또 우리 믿는 이들을 위한 그분의 힘이 얼마나 엄청나게 큰지를 그분의 강한 능력의 활동으로 알게 되기를 비는 것입니다.' (19)
바오로는 에페소 교인들의 마음의 눈이 밝아져 깨닫게 되기를 간구하는 세번째 것은 하느님께서 믿는 성도들에게 베푸시는 능력의 크심에 대한 것이다. 하느님의 우리를 위한 사랑의 가장 큰 표현이 독생성자 예수님의 대속적 죽음이라면, 우리를 위한 능력의 가장 큰 표현은 그리스도의 부활이다.
또한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 자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믿는 이들의 부활로 이어진다. 즉 자신의 영으로 죽은 예수님을 일으키신 하느님께서 또한 자신의 영으로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 성도들을 다시 살리실 것이다.(로마 8,11) 우리를 향하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은 곧 부활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가 마지막 날 부활할 것을 가리킨다.
18절과 19절에 '그분의' 에 해당하는 '아우투'(autu)가 계속 나오는 것은 인칭대명사로서 강조를 위해 사용된 것이고, 이것은 부르심의 희망도, 상속의 영광도, 능력의 지극히 크심도 모두 하느님의 것이요,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것이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알게 되기를' 에서 '알게'에 해당하는 '에이데나이'(eidenai)의 원형 '오이다'(oida)는 본래 '보다' 또는 '봄으로써 인식하다' 라는 뜻인데, 이론적인 지식이 아니라 경험적인 지식으로서의 앎을 나타내는 단어이다. 즉 직접적인 삶의 체험을 통해 얻어진 지식을 가리킨다.
그러니까 18절과 19절에 세 가지는 구원받은 성도들이 하느님과의 밀접한 관계를 통해 체험적으로 얻게 되는 영적 지식들이다
무서운 성령 모독죄
내전(內戰)이 거듭되는 한 선교지 선교사 형제가 겪은 가슴 아픈 이야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지속되는 부족 간의 내전에 나라 전체가 대혼란에 빠졌습니다. 각국의 대사관에서는 자국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신속히 탈출하도록 교통편을 제공했습니다. 부자들과 정치인들은 다들 앞다투어 해외로 빠져나갔습니다. 결국 죽어나는 사람들은 가난한 백성들과 힘없는 아이들이었습니다.
그 와중에도 우리 선교사 형제들은 끝까지 전쟁터에 남아 아이들을 지켰습니다. 한 선교사 형제께서 아이들 먹거리를 구하기 위해, 차를 몰고 시장을 보고 돌아올 때였습니다.
수도원을 거의 목전에 두고 한 검문소를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칡뿌리로 막은 보잘 것 없는 검문소였는데, 총을 든 군인들은 신부님을 차에서 내리게 했습니다. 그날따라 잘못 걸린 것입니다. 무례하기 짝이 없는 군인들은 신부님을 땅 바닥에 무릎 꿇린 다음 몇 시간 동안이나 갖은 욕설을 퍼붓고 폭력을 가했습니다.
계속되는 협박과 모욕 앞에 “저는 이 땅의 가난한 청소년들을 위해 일하는 천주교 신부입니다.”라고 말했더니, 그 군인들이 하는 말. “네가 신부면 나는 하느님이다!” 우여곡절 끝에 가진 것 다 빼앗기고, 간신히 풀려났지만, 너무나 속상하고 큰 충격에 휩싸였던 신부님께서는 다음 날 새벽 미사를 봉헌하면서 미사를 이어가지 못했습니다.
이 세상 살아가다보면 대놓고 하느님과 성령을 모독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습관적으로 성모님과 예수님의 이름으로 욕설을 해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온 율법학자들이 그랬습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외아들이신 예수님을 보고 베엘제불이 들렸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 마귀를 쫒아댄다고 말했습니다.
해도해도 너무한 그들을 향해 진노하신 예수님의 음성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였습니다.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용서를 받지 못하고 영원한 죄에 매이게 된다.”(마르코3,29)
사람의 아들을 거슬러 말하는 자는 용서받을 것이다. 그러나 성령을 거슬러 말하는 자는 현세에서도 내세에서도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마태오12,32)
사람의 아들을 거슬러 말하는 자는 모두 용서받을 것이다. 그러나 성령을 모독하는 말을 하는 자는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루가12,10)
혹시라도 오늘 우리 역시, 자신도 모르게 하느님과 성령을 모독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겠습니다. 우리의 말과 행실로 하느님의 이름과 성령을 욕되게 하는 일은 없는지 성찰해봐야겠습니다.
어찌 보면 우리 인간 각자는 하느님의 성령께서 현존하고 계시는 성령의 궁전입니다. 비록 부족한 죄인인 우리 인간이지만, 우리 안에 하느님의 성령께서 살아 숨쉬고 계십니다. 이토록 소중한 성령의 현존 장소인 인간 존재를 모독하는 일 역시, 일종의 성령 모독죄입니다.
하느님께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고 희망하시는 나를 향해, “나는 틀렸어!” “내 인생을 끝났어.”라고 외친다면, 이것 역시 성령 모독죄입니다. 하느님께서 매일같이 인내하시며, 든든한 성채처럼 지켜주고 계시는 그를 향해, “너는 도저히 안되!” “너는 희망이 없어!”라고 말한다면, 이것 역시 일종의 성령 모독죄입니다.
2020년 10월 17일 [연중 제28주간 토요일]
예수님과 한 몸이 되는 것, 곧 말씀과 하나 되는 것, 구원입니다. *땅의 남자를 받아들여 한 몸이 되면 남자의 사람이 되듯, 하늘의 남자를 받아 한 몸이 되면 그 남자(예수)로 하늘의 존재가 되는 것, 구원입니다.
(루카 12,8-12)
8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안다고 증언하면, 사람의 아들도 하느님의 천사들 앞에서 *그를 안다고 증언할 것이다.
= 사람들에게 나는 예수님을 어떻게 말할까?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을~,
그분을 믿으면 복, 평화를 얻는다? 그 정도는 마귀들도 알고 믿는 사실이다. 어제 우리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지혜와 통찰력을 다 하시어 세우신 그 그리스도를 통한 죄인들의 구원의 약속, 그 하나의 약속은 잊지 않으신다고 묵상했다. 그 구원의 약속, 그 사랑, 그 하나를 가진 자, 외아들 모노게네스(하나를 갖은 이) 곧 예수님.
그분은 하느님의 약속, 말씀이시고 우리의 생명이시며 세상(나)의 죄를 없애시는 분이시다.(요한1~2장 참조)
세상의 福, 平和를 주시는 분으로 알고, 말하는지~(요한14,327참조)
(요한3,16) 16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모노게네스)을 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1요한2,2) 2 그분은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이십니다. 우리 죄만이 아니라 온 세상의 죄를 위한 속죄 제물이십니다.
(사도4,12) 12 그분 말고는 다른 누구에게도 구원이 없습니다. 사실 사람들에게 주어진 이름 가운데에서 우리가 구원받는 데에 필요한 이름은 이 이름밖에 없습니다.”
= 그래서 오늘 독서 에페소서에서 말씀 하셨듯 교회의 머리이시다.(1,21) 그리고 예수님(말씀)을 안다는 것은 그분의 뜻과 하나 되어 한 몸이 되는 것이다.
오늘 입당송 바오로처럼~
(갈라 2,19-20) 율법의 나, 죄인인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으니, 이제는 내가()죄인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사시는 것이다.(대속의 말씀, 약속이 사시는 것) 그래서 나는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바치신 하느님의 아드님에 대한 믿음으로 사노라.
~그렇듯, 하느님의 계약(약속)인 십자가에서 예수님과 내가 하나(한몸)가 되는 것이 아는 것이다. 그러면 당연히 하느님의 심판권을 가진 천사가 예수님과 한 몸이 된 나를 심판 못한다.
9 그러나 사람들 앞에서 나를 모른다고 하는 자는, 사람의 아들도 하느님의 천사들 앞에서 그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 내 밖에 예수님을 향해, 주님! 주님! 하고 찾는 것, 그렇게 예수님을 시중드는 섬김의 행위의 신앙은 하느님의 뜻인 예수님을, 구원을 모르는 것이다.(마태7,21 루가10,38-42참조)
10 *사람의 아들을 거슬러 말하는 자는 모두 용서받을 것이다. 그러나 *성령을 모독하는 말을 하는 자는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 사람의 아들, 그 예수님의 말씀을 도덕과 윤리로 받아 그 법대로는 살지 못하는 것, 용서 받는다.
그러나 그분께서 우리의 속죄 제물로 죽으셔서 우리가 하늘의 존재(생명)로 살게 되었다는, 그 진실(진리)을 증언하시는 성령의 말을 믿지 않는 것이 성령을 모독하는 것이다.(요한15,26 로마8,1~ 히브10,15~참조)
그러면 예수님의 십자가(대속)가 주시는 하늘의 용서, 생명, 곧 구원을 받지 못한다.
11 너희는 회당이나 관청이나 관아에 *끌려갈 때, 어떻게 답변할까, 무엇으로 답변할까, 또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 예수님을 올바로 전했을 때, 박해를 받게 된다는 말씀이다. 십자가에 못 박하시기 전에도 말씀 하셨듯이(요한15,18)~
12 그때 너희가 해야 할 말을 성령께서 그때에 알려 주실 것이다.”
= 예수님을 안다면, 그 분의 뜻과 하나 되어 한 몸이 되었다면 내안에 그분의 모든 말씀을 성령께서 기억하게 하시어 알려 주신다는 것이다.
(요한14,26) 26 보호자,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 주실 것이다.
(1요한2,27) 27 그래서 여러분은 그분에게서 기름부음(성령)을 받았고 지금도 그 상태를 보존하고 있으므로, 누가 여러분을 가르칠 필요가 없습니다. 그분께서 기름부으심으로 여러분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십니다. 기름부음은 진실하고 거짓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그 가르침대로 그분 안에 머무르십시오.
= 하느님의 지혜의 말씀, 그 안에 머물면 인간의 지혜로 가르치는 헛된 것에 넘어가지 않아 하늘의 용서, 생명, 그 구원을 빼앗기지 않고 지키게 되는 것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