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1월 4일 수요일
[연중 제31주간 수요일]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루카14,25-33)
제1독서 <여러분 자신의 구원을 위하여 힘쓰십시오.>(필리2,12-18)
12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늘 순종하였습니다. 내가 함께 있을 때만이 아니라 지금처럼 떨어져 있을 때에는 더욱더 그러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여러분 자신의 구원을 위하여 힘쓰십시오.
13 하느님은 당신 호의에 따라 여러분 안에서 활동하시어, 의지를 일으키시고 그것을 실천하게도 하시는 분이십니다.
14 무슨 일이든 투덜거리거나 따지지 말고 하십시오.
15 그리하여 비뚤어지고 뒤틀린 이 세대에서 허물없는 사람, 순결한 사람, 하느님의 흠 없는 자녀가 되어, 이 세상에서 별처럼 빛날 수 있도록 하십시오.
16 생명의 말씀을 굳게 지니십시오. 그러면 내가 헛되이 달음질하거나 헛되이 애쓴 것이 되지 않아, 그리스도의 날에 자랑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17 내가 설령 하느님께 올리는 포도주가 되어 여러분이 봉헌하는 믿음의 제물 위에 부어진다 하여도, 나는 기뻐할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와 함께 기뻐할 것입니다.
18 여러분도 마찬가지로 기뻐하십시오. 나와 함께 기뻐하십시오.
화답송 시편 27(26),1.4.13-14(◎ 1ㄱ)
◎ 주님은 나의 빛, 나의 구원이시다.
○ 주님은 나의 빛, 나의 구원. 나 누구를 두려워하랴? 주님은 내 생명의 요새. 나 누구를 무서워하랴? ◎
○ 주님께 청하는 오직 한 가지, 나 그것을 얻고자 하니, 내 한평생 주님의 집에 살며, 주님의 아름다움 바라보고, 그분의 성전 우러러보는 것이라네. ◎
○ 저는 산 이들의 땅에서, 주님의 어지심을 보리라 믿나이다. 주님께 바라라. 힘내어 마음을 굳게 가져라. 주님께 바라라. ◎
복음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루카14,25-33)
25 많은 군중이 예수님과 함께 길을 가는데,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돌아서서 이르셨다.
26 “누구든지 나에게 오면서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자녀, 형제와 자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27 누구든지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라오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28 너희 가운데 누가 탑을 세우려고 하면, 공사를 마칠 만한 경비가 있는지 먼저 앉아서 계산해 보지 않느냐?
29 그러지 않으면 기초만 놓은 채 마치지 못하여, 보는 이마다 그를 비웃기 시작하며,
30 ‘저 사람은 세우는 일을 시작만 해 놓고 마치지는 못하였군.’ 할 것이다.
31 또 어떤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가려면, 이만 명을 거느리고 자기에게 오는 그를 만 명으로 맞설 수 있는지 먼저 앉아서 헤아려 보지 않겠느냐?
32 맞설 수 없겠으면, 그 임금이 아직 멀리 있을 때에 사신을 보내어 평화 협정을 청할 것이다.
33 이와 같이 너희 가운데에서 누구든지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연중 제31주간 수요일 제1독서 (필리2,12~18)
"그러므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여러분 자신의 구원을 위하여 힘쓰십시오." (12ㄷ)
'여러분 자신'으로 번역된 '헤아우톤'(heauton)은 복수형 재귀 대명사로 '너희 자신'으로 번역될 수 있다.
이것은 다른 사람의 구원이 아니라 바로 그들 자신의 구원을 이루어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또한 복수형의 표현을 통해 사도 바오로의 권면은 교회 공동체 전체를 향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구원을'로 번역된 '소테리안'(soterian)의 원형 '소테리아'(soteria)는 거듭남(새로남)으로써 얻는 구원의 의미 뿐만 아니라, 하느님 대전에 받아들여지는 종말론적 구원의 의미까지 아우르는 단어이다.
말하자면, 물과 성령으로 새로 나서 하느님의 자녀로서의 품위와 지위와 신분을 되찾는 세례성사적 측면의 구원만이 아니라, 성령 충만으로 거룩하게 되어 가는 성화(聖化)적 측면에서의 구원 및 종말론적인 측면에서의 구원을 통틀어 말한다.
또한 '구원을 위하여 힘쓰십시오'라는 말은 필리피 교회가 완전한 모습을 이룰 때까지 이기심이나 불화 등을 없애고, '영적 성숙'을 위해 힘쓰라는 의미도 된다.
그리고 '힘쓰십시오'로 번역된 '카테르가제스테'(katergazesthe)의 원형 '카테르가조마이'(katergazomai)는 '성취하다', '실행하다', '애써 완성하다'라는 뜻인데, 여기서는 명령법 현재 시제로 사용되었다.
이것은 계속해서 실행해 나가라는 뉘앙스를 가진다.
즉 지속적 상태나 행위를 나타내는 현재 시제를 사용해서 구원이 완전히 이루어질 때까지 나태하지 말고, 계속 영적 성숙을 위해 힘쓰라고 권면하는 것이다.
믿음으로 이미 시작된 구원은 장차 확실히 완성될 구원이지만, 그 과정에서 하느님의 자녀들은 자기 자신을 부단히 단련하고 채찍질하여 영적 성숙을 도모해야 하는 것이다.
연중 제31주간 수요일 복음(루카14,25~33)
"누구든지 나에게 오면서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자녀, 형제와 자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누구든지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라오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26~27)
루카 복음 14장 26절에서 '미워하지'에 해당하는 '미세이'(misei; hate)의 원형 '미세오'(miseo)는 단순히 '미워하다'(히브1,9)는 문자적 의미로 이해해서는 안된다.
여기에서 '미세오'라는 동사는 셈족어에서 자주 사용되는 과장법적 표현으로 쓰였고, 실제적으로는 '덜 사랑하다'는 의미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마태6,24).
본절과 유사한 내용을 담고 있는 마태오 복음 10장 37절에 나오는 '더 사랑하다'는 표현 속에서 그 어떤 대상도 예수님보다 더 사랑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니까 본절은 마태오 복음 사가의 표현과 관련지어 볼 때에도, 여기에 열거된 사람들을 실제로 미워하라는 뜻이 아니라, 예수님보다 덜 사랑하라는 셈어적 표현인 것이다.
여기서 '미워하다'는 말이 가리키는 '덜 사랑하다'는 뜻은 상대적으로 가장 우선 순위에 놓아야 할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별하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모든 것에 우선하여 예수님을 사랑하라는 강조적 표현이다.
그러나 '마세오' 동사는 위의 의미 뿐만 아니라 '근본적 단절'이라는 뜻도 있기에 예수님을 위해서라면 본절에 열거된 대상들과 단절도 할 수 있는 사람이 진정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될 수 있다는 뜻도 들어 있다.
결국 예수님께서는 그 어떤 무엇보다 우선하여 예수님을 따를 수 있는 사람만이 진정한 제자임을 강조하기 위하여, 오히려 예수님 외에 다른 모든 것을 '미워하라' 는 셈어적 과장법을 사용하여 말씀하신 것이다.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루카 복음 14장 27절은 26절에 이어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하여 갖추어야 할 두번째 조건을 말하고 있다. 그것은 자기 십자가를 짊어지고 예수님을 따라가야 한다는 것이다.
'짊어지고'에 해당하는 '바스타제이'(bastazei; bear; carry)의 원형 '바스타조'(bastazo)는 '옮겨가다', '참다', '짐을 지다'는 뜻으로서 십자가를 지고 가는 사람의 고난의 모습을 다각도로 묘사한다.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는 마태오 복음 10장 38절에서는 '취하다'는 뜻의 '람바노'(lambano) 동사를 사용하고 있으며, 또한 루카 복음 14장 27절의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는 표현 대신에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는 표현을 쓰고 있다.
그러니까 두 구절을 비교해 보면, 마태오 보다 루카 복음사가가 더욱 더 강한 어조로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의 조건을 제시하고 있다.
즉 예수님께서는 참된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어떠한 고난이라도 감수해야 함을 당시 로마 세계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사형 방법이었던 십자가 처형까지 예를 들면서 강조하신 것이다
2020년 11월 4일 [연중 제31주간 수요일]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여러분 자신의 구원을 위하여 힘쓰십시오.
(필리2,12-18)
12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늘 순종하였습니다. 내가 함께 있을 때만이 아니라 지금처럼 떨어져 있을 때에는 더욱더 그러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여러분 자신의 구원을 위하여 힘쓰십시오.
= 어떻게?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서 일하심을 알고 믿는 그 떨이는 마음으로~~
13 하느님은 당신 호의에 따라 여러분 안에서 활동하시어, 의지를 일으키시고 그것을 실천하게도 하시는 분이십니다.
= 하느님의 말씀이 활동하시는 것이다. 말씀은 살아있고 힘이 있으시기 때문이다.(히브4,12)
(1테살2,13) 13 우리는 또한 끊임없이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가 전하는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때, 여러분이 그것을 사람의 말로 받아들이지 않고 *사실 그대로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그 말씀이 신자 여러분 안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14 무슨 일이든 투덜거리거나 따지지 말고 하십시오.
= 우리에게는 언제나 힘들게 하는 사건들이 일어난다. 그러나 그 힘든 시련의 사건들이 하늘의 생명을 받기위한, 그리고 그 하늘의 삶의 원리를 배우는 교육의 과정이라면, 그리고 그것을 믿는다면 투덜거리고 따지겠는가?
(히브12,6-7) 6 주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이를 훈육하시고 아들로 인정하시는 모든 이를 *채찍질하신다.” 7 여러분의 시련을 *훈육으로 여겨 견디어 내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자녀로 대하십니다. 아버지에게서 훈육을 받지 않는 아들이 어디 있습니까?
(야고1,12) 12 시련을 견디어 내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그렇게 *시험을 통과하면, 그는 하느님께서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화관을 받을 것입니다.
= 이 세상에서 肉(목숨)을 위해 대학을 가고 회사에 들어가기 위해, 또 어떤 자격증을 따기위해 힘든 공부와 훈련을 따져가면서 받는 사람이 있는가? 곧 끝나버릴 한 순간, 꿈(연기) 같은 이 세상의 것을 위해 그렇게 열심히 살면서 영원한 생명을 위한 힘든 인생 공부는 왜 그렇게 투덜대고 따지게 되는지 모르겠다.
오늘 복음에서 말씀하신 나의 것들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루가14,33) 33 ‘이와 같이 너희 가운데에서 누구든지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 내가 버려야할 것들, 교회 활동에 열심을 부렸던 나, 이웃을 위해 착한일한 나, 여러 봉사활동에 애쓴 나, 그 나의 가치, 의로움을 버려야 한다. 그래야 예수님의 십자가가 주는 구원을 위한 하늘의 의로움을 받을 수 있다.
또한 하느님의 말씀, 계명으로 받아 열심히 지킨, 그 나의 의로움뿐만 아니라 그 계명에 의한 죄의식까지 다 버려야 한다. 왜? 예수님의 십자가가 내 모든 죄를 대속하셨으니까.
예수님께서 그렇게 따지기 좋아하는 너희들, 영적인 문제도 좀 따져보라 하시는 것이다. 우리가 소유한 모든 것들이 하느님께서 소유하신 모든 것을 이길 수 있는지, 가치가 있는지 따져보고 이길 수 없는, 가치가 없는 것이라면 다 버리고 따라오라 하시는 것이다. (착한일 많이 하는 것 맞다 인간의 도리이니까 그러나 그것을 구원의 가치, 의로움으로 챙기면 안된다는 것이다.)
15 그리하여 비뚤어지고 뒤틀린 이 세대에서 허물없는 사람, 순결한 사람, 하느님의 흠 없는 자녀가 되어, 이 세상에서 별처럼 빛날 수 있도록 하십시오.
= 내 지혜, 내 생각으로 한 착한 일을 해서가 아닌, 훌륭한 일을 많이 한 거룩한 사람이 아닌, 그 모든 것을 성경은 의롭다, 거룩하다 하지 않으시니, 흠과 허물없이 순결하시 분, 빛이시며 의롭고 거룩하신 분, 곧 그 예수님과 한몸이 되는 그분의 뜻, 길과 하나 되는 그 삶으로다.
(1코린1,30) 30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살게 해 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하느님에게서 오는 지혜가 되시고, 의로움과 거룩함과 속량이 되셨습니다.
= 하느님의 智慧, 義, 거룩, 그리고 속량이 되는 그 말씀이 구원(생명)의 약속, 하느님의 말씀임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16 생명의 *말씀을 굳게 지니십시오. 그러면 내가 헛되이 달음질하거나 헛되이 애쓴 것이 되지 않아, 그리스도의 날에 자랑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 하느님의 말씀(지혜, 계명)은 하늘의 생명을 약속한 것이지 땅의 것을 약속하신 것이 아니다. 말씀을 사람의 말, 도덕과 윤리로 읽으면, 받으면 헛되이 달음질해서 헛되이 애쓴, 헛된 신앙을 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말씀을 올바로 하느님의 뜻으로, 곧 예수님의 십자가로 의롭고 거룩한 사람이 되는, 그래서 하늘의 생명을 얻는 그 진리의 말씀으로 받아 믿는다면, 오늘 독서 13절에서처럼 그 하느님의 말씀이 내 안에서 활동하셔서 사도와 같은 의지도 일으켜 주신다.
17 내가 설령 하느님께 올리는 포도주가 되어 여러분이 봉헌하는 믿음의 제물 위에 부어진다 하여도, 나는 기뻐할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와 함께 기뻐할 것입니다.
= 우리의 믿음을 위해, 우리의 구원을 위해 사도 자신의 희생, 죽음을 기쁘게 바치겠다는 것이다. 사도가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하느님의 능력이 하시는 것이다.
사도처럼 돼야지, 성인 성녀들처럼 돼야지 가 아닌, 그분들을 통해서 일하시는 하느님의 열정, 그분의 전능하신 사랑의 힘을 깨달아야 한다.
18 여러분도 마찬가지로 기뻐하십시오. 나와 함께 기뻐하십시오.
= 사도의 마음, 예수님의 마음이다.
(요한11,14-15) 14 그제야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분명히 이르셨다. “라자로는 죽었다. 15 내가 거기에 없었으므로 너희가 믿게 될 터이니, 나는 너희 때문에 기쁘다. 이제 라자로에게 가자.”
= 우리의 믿음을 너무나 기뻐하시는 예수님이시다.
(마태18,13) 13 그(하느님)가 양을 찾게 되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는데, 길을 잃지 않은 아흔아홉 마리보다 그 한 마리를 두고 더 기뻐한다.
= 죄를 지어 하느님 곁을 떠났던, 그래서 하늘가는 길을 잃어 버렸던 그 죄인 하나를 찾으시고 기뻐하시는 하느님! 그분이 우리 아버지시다. 나를 말씀으로 낳으시고(창조) 기르시는 나의 全 人生, 삶을 책임져 주시는 아버지시다.
肉이 아버지는 나의 영혼까지는 책임져 주시지 못하지 않는가.
(필리4,4) 4 주님 안에서 늘 기뻐하십시오. 거듭 말합니다. 기뻐하십시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