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5주간 수요일]파견 (루카 9,1-6)
에즈라는 주 하느님께서 종살이하는 그들을 버려두지 않으시고 하느님의 집을 다시 세우게 해 주셨다며 기도를 드린다. (에즈 9,5-9)
저녁 제사 때에, 나 에즈라는 5 단식을 그치고 일어나서, 의복과 겉옷은 찢어진 채 무릎을 꿇고 두 손을 펼쳐,주 나의 하느님께 말씀드렸다.
6 “저의 하느님, 너무나 부끄럽고 수치스러워서, 저의 하느님, 당신께 제 얼굴을 들 수가 없습니다. 저희 죄악은 머리 위로 불어났고, 저희 잘못은 하늘까지 커졌습니다.
7 저희 조상 때부터 이날까지 저희는 큰 잘못을 저지르며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저희의 죄악 때문에 오늘 이처럼, 임금들과 사제들과 더불어 저희가 여러 나라 임금들과 칼에 넘겨지고, 포로살이와 약탈과 부끄러운 일을 당하도록 넘겨지고 말았습니다.
8 그러나 이제 잠깐이나마 주 하느님께서 은혜를 내리시어, 저희에게 생존자를 남겨 주시고, 당신의 거룩한 곳에 저희를 위하여 터전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저희 눈을 비추시고, 종살이하는 저희를 조금이나마 되살려 주셨습니다.
9 정녕 저희는 종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종살이하는 저희를 버려두지 않으시고, 페르시아 임금들 앞에서 저희에게 자애를 베푸시어 저희를 되살리셔서, 하느님의 집을 다시 세우고 그 폐허를 일으키도록 해 주셨고, 유다와 예루살렘에 다시 성벽을 쌓게 해 주셨습니다.”
화답송 토빗 13,2.3ㄷ-4.6ㅁㅂㅅㅇ.6ㅈㅊ.6ㅋㅌㅍ(◎ 1ㄴ)
◎ 영원히 살아 계신 하느님은 찬미받으소서.
○ 그분은 벌을 내리시지만, 자비를 베푸시고, 깊은 저승으로 내리기도 하시지만, 무서운 파멸에서 올리기도 하신다. 그분 손에서 벗어날 자 아무도 없으리라. ◎
○ 그분은 너희를 민족들 사이로 흩으셨지만, 바로 거기에서 당신의 위대함을 드러내셨다. 살아 있는 모든 것 앞에서 그분을 높이 받들어라. 그분은 우리 주님, 우리 아버지, 영원하신 우리 하느님이시다. ◎
○ 이제 너희에게 베푸신 것을 보고, 소리 높여 그분을 찬양하여라. 의로우신 주님을 찬미하고, 영원하신 임금님을 높이 받들어라. ◎
○ 나는 이 유배의 땅에서 그분을 찬양하고, 죄 많은 민족에게 그분의 권능과 위엄을 드러내리라. ◎
○ 죄인들아, 돌아와 그분 앞에서 의로운 일을 하여라. 그분이 너희를 받아들이시어, 자비를 베푸시지 않겠느냐? ◎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를 불러 모으시어,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고 병자들을 고쳐 주라고 보내신다. (루카 9,1-6)
그때에 1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를 불러 모으시어,모든 마귀를 쫓아내고 질병을 고치는 힘과 권한을 주셨다.
2 그리고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병자들을 고쳐 주라고 보내시며,
3 그들에게 이르셨다. “길을 떠날 때에 아무것도 가져가지 마라. 지팡이도 여행 보따리도 빵도 돈도 여벌 옷도 지니지 마라.
4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그곳을 떠날 때까지 거기에 머물러라.
5 사람들이 너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 고을을 떠날 때에 그들에게 보이는 증거로 너희 발에서 먼지를 털어 버려라.”
6 제자들은 떠나가서 이 마을 저 마을 돌아다니며, 어디에서나 복음을 전하고 병을 고쳐 주었다.
연중 제25주간 수요일 제1독서 (에즈9,5-9)
"정녕 저희는 종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종살이하는 저희를 버려두지 않으시고, 페르시아 임금들 앞에서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시어 저희를 되살리셔서, 하느님의 집을 다시 세우고 그 폐허를 일으키도록 해 주셨고, 유다와 예루살렘에 다시 성벽을 쌓게 해 주셨습니다." (9)
이스라엘이 이민족의 노예가 된 것은 하느님께 대한 이스라엘의 범죄와 배반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런 그들을 하느님께서는 끝까지 버리지 않으시고 징계를 내리시는 가운데서도 보살펴 주셨다.
이같은 하느님의 불쌍히 여기심과 자비하심으로 인해 그들은 에즈라가 본문을 통해 고백하는 것처럼 페르시아 임금들 앞에서 자애를 입게 된 것이다.
이러한 의미를 더 분명하게 하는 것이 바로 '자애'에 해당하는 '헤쎄드'(hesed; mercy)란 표현이다.
'헤쎄드'(hesed)는 '친절', '애정', '호의'등의 의미를 지닌 명사로서 특별히 도움을 받을 수 없는 비참한 처지에 놓인 이들을 향해 베풀어지는 하느님의 사랑이나 자비심, 그리고 하느님 자신에게 속한 계약의 백성인 이스라엘에게 베푸시는 은혜를 표현할 때 주로 사용되는 단어이다.
이같은 용례를 감안하면, 본문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계약의 백성인 이스라엘이 아무에게도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지경에 처해 있음을 불쌍히 여기시고, 그들이 비록 당신을 배반했지만 그들에게 사랑과 자비를 베푸셨음을 나타낸다.
그런데 당신의 백성을 향한 하느님의 '헤쎄드'(hesed)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페르시아 임금들 앞에서 자애를 입게 해서 되살린 것으로 나타났다.
즉 이 모든 일들은 바로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자애를 베푸시어 진노 중에 돌아보신 결과였다.
에즈라기 저자는 이스라엘의 귀환이 표면적으로는 페르시아 임금들에 의해 베풀어진 것이었지만, 궁극적으로는 당신의 백성을 향한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로 인해 이루어진 것임을 암묵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본문에서 페르시아 임금들이 베푼 은혜에 대해 '헤쎄드'(hesed)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이다.
한편, '다시 성벽을 쌓게 해 주셨습니다'에 해당하는 '웰라테트 라누 가데르' (wellatheth lanu gader; and he has given us a wall of protection)인데, 에즈라기 저자는 역사의 주권자이신 하느님의 은혜로 페르시아 임금들 앞에서 자애를 입어 되살아난 이스라엘 공동체가 하느님의 은혜로 하느님의 집을 재건하고 그 폐허를 수리한 사실과 더불어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공동체에게 성벽을 쌓게 해 주신 사실을 회고하고 있다.
여기서 '성벽'(울)에 해당하는 '가데르'(gader)는 문자적으로 '벽'(wall)이라는 의미이다. 일차적으로 '가데르'(gader)는 성벽처럼 크고 단단한 '벽'(homa; 호마)을 나타낼 때 사용되는데, 이 경우 성벽이 가진 기능과 관련해서 '보호'(protection)라는 의미도 함축한다.
또한 '가데르'(gader)는 포도원을 둘러친 담장이나 울타리 같은 조그만 벽을 나타낼때도 사용되는데, 이 경우 '삶의 터전'이란 의미를 함축한다.
그러니까 하느님께서 '성벽'을 주셨다는 것은 적들의 침입으로부터 안전하게 보호받을 수 있는 처소를 마련해 주셨다는 의미 내지는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삶의 터전을 마련해 주셨음을 나타낸다.
이러한 보호받을 수 있는 처소와 삶의 터전을 마련해 주신 분은 물론 하느님이시다.
연중 제25주간 수요일 복음(루카9,1~6)
"길을 떠날 때에 아무 것도 가져가지 마라. 지팡이도 여행 보따리도 빵도 돈도 여벌 옷도 지니지 마라.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그곳을 떠날 때까지 거기에 머물러라. 사람들이 너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 고을을 떠날 때에 그들에게 보이는 증거로 너희 발에서 먼지를 털어 버려라." (3~5)
먹을 것과 돈을 여기서 언급하는 것은 복음을 전한 것에 대한 보답으로서 불의하게 어떤 대가를 바라거나 받아서는 안된다는 것인데, 복음 선포자가 가져야 할 청렴성과 신앙의 강직성에 대해 강조하고 있다.
또한 루카 복음 9장 3절에 기록된 지팡이나 여행 보따리나 여벌 옷은 유대인들이 여행할 때 가지고 다니던 여행 필수품인데, 이것을 지니지 말라는 명령을 내리고 있다.
'지팡이'에 해당하는 '라브도스'(rabdos; staff; stick)는 광야에서 짐승들을 만났을 때에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했다.
'여행 보따리'에 해당하는 '페라'(pera; bag for the journey)는 여행에 필요한 물건들을 넣는 도구였고, '옷'에 해당하는 '키톤'(chiton; coat; tunic)는 먼 거리를 걸어서 여행하는 자가 반드시 준비해야 할 필수품이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여행을 떠나기에 앞서 당신 백성을 이끌어 갈 복음 전파자들을 준비시키는데 있어서, 아무 소유 없이 그들을 파견하는 것은 금욕적 삶을 실천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을 통해 말씀을 듣는 이들의 환대에만 의존하여 살아가야 하는 그들의 삶의 양식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복음 전파자는 오로지 복음을 전하는 하느님의 봉사자로서 자신의 생계를 위해 일하지 않기 때문에 일정한 수입이 없기에, 다른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받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그곳을 떠날 때까지 거기에 머물러라'는 말씀은 복음 전파자가 육신의 편안을 위해 더 나은 숙식을 제공하는 집으로 옮겨 복음 전파자의 관심이 오로지 복음 전파에 있다는 사실이 희석되게 하지 말라는 당부와 더불어, 복음 전파의 가치를 바로 이해하고 복음 전파자들을 충심으로 도와줄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을 찾아 한 곳에 머물기를 명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사람들이 너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 고을을 떠날 때에 그들에게 보이는 증거로 너희 발에서 먼지를 털어 버려라'는 말씀이 나오는데, 이것은 복음을 전하는 예수님의 제자들을 영접하지 않는 이들은 이교도 취급을 하라는 말씀이다.
경건한 유대인들은 여행에서 본국으로 돌아올 때 이교도 지역의 흙을 묻혀 들어오는 것을 부정하게 여겨 신발을 터는 관습이 있었다.
'너희 발에서 먼지를 털어 버려라'에서 '털어 버려라'에 해당하는 '에크티낙사테' (ektinaksate; shake off)는 '밖으로'라는 뜻의 전치사 '에크'(ek)와 '흔들다'는 의미의 '티낫소'(tinasso)가 결합되어 '흔들어 분리시키다'는 뜻을 지니는 '에크티낫소'(ektinasso)의 부정 과거 명령형이다.
부정 과거 명령형은 단 한번의 행동으로 끝내는 경우에 사용되기에 이것은 미련을 두지 말고 단호하게 먼지를 털어 버리라는 의미이다.
그들의 거절은 단순히 복음 전파자의 숙박을 거부한 것의 뜻일 뿐만 아니라 복음을 받아들이기를 거절한 행위로서, 이러한 불신앙의 행위는 결국 하느님의 심판을 불러오게 된다는 것이다(마태10,15참조).
오늘 말씀을 통해서 복음을 전하는 봉사자들은 사심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거저 받은 복음을 대가를 바라지 않고 기쁘게 전했는지, 오로지 전할 복음의 내용에 충실하며 자신의 전존재와 미래를 온전히 생명의 절대권을 가지신 주님께 의탁하고 맡기는 신앙으로 살아왔는지를 성찰해 보아야 한다.
동시에 하느님의 자녀들은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 때문에 현세적 생계 수단과 돈벌이를 포기한 복음의 전파자들의 생계를 책임져 주기 위해서 자신이 획득한 수입의 열의 하나를 봉헌하는지도 물어 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