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4주간 목요일]네 믿음 (루카 7,36-50)
바오로 사도는 티모테오에게, 행실에서나 믿음에서나 순결에서 믿는 이들의 본보기가 되라고 당부한다. (1티모 4,12-16)
사랑하는 그대여, 12 아무도 그대를 젊다고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십시오. 그러니 말에서나 행실에서나 사랑에서나 믿음에서나 순결에서나, 믿는 이들의 본보기가 되십시오.
13 내가 갈 때까지 성경 봉독과 권고와 가르침에 열중하십시오.
14 그대가 지닌 은사, 곧 원로단의 안수와 예언을 통하여 그대가 받은 은사를 소홀히 여기지 마십시오.
15 이 일에 관심을 기울이고 이 일에 전념하십시오. 그리하여 그대가 더욱 나아지는 모습이 모든 사람에게 드러나도록 하십시오.
16 그대 자신과 그대의 가르침에 주의를 기울이십시오. 이 일을 지속해 나아가십시오. 이렇게 하면, 그대는 그대뿐만 아니라 그대의 말을 듣는 이들도 구원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적게 용서받은 사람은 적게 사랑한다며, 당신의 발을 닦아 준 죄인인 여자에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하신다. (루카 7,36-50)
그때에 36 바리사이 가운데 어떤 이가 자기와 함께 음식을 먹자고 예수님을 초청하였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그 바리사이의 집에 들어가시어 식탁에 앉으셨다.
37 그 고을에 죄인인 여자가 하나 있었는데, 예수님께서 바리사이의 집에서 음식을 잡수시고 계시다는 것을 알고 왔다. 그 여자는 향유가 든 옥합을 들고서 38 예수님 뒤쪽 발치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분의 발을 적시기 시작하더니 자기의 머리카락으로 닦고 나서, 그 발에 입을 맞추고 향유를 부어 발랐다.
39 예수님을 초대한 바리사이가 그것을 보고, ‘저 사람이 예언자라면, 자기에게 손을 대는 여자가 누구이며 어떤 사람인지, 곧 죄인인 줄 알 터인데.’ 하고 속으로 말하였다.
40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시몬아, 너에게 할 말이 있다.” 시몬이 “스승님, 말씀하십시오.” 하였다.
41 “어떤 채권자에게 채무자가 둘 있었다. 한 사람은 오백 데나리온을 빚지고 다른 사람은 오십 데나리온을 빚졌다. 42 둘 다 갚을 길이 없으므로 채권자는 그들에게 빚을 탕감해 주었다. 그러면 그들 가운데 누가 그 채권자를 더 사랑하겠느냐?”
43 시몬이 “더 많이 탕감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옳게 판단하였다.” 하고 말씀하셨다.
44 그리고 그 여자를 돌아보시며 시몬에게 이르셨다. “이 여자를 보아라. 내가 네 집에 들어왔을 때 너는 나에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않았다. 그러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자기의 머리카락으로 닦아 주었다.
45 너는 나에게 입을 맞추지 않았지만, 이 여자는 내가 들어왔을 때부터 줄곧 내 발에 입을 맞추었다.
46 너는 내 머리에 기름을 부어 발라 주지 않았다. 그러나 이 여자는 내 발에 향유를 부어 발라 주었다.
47 그러므로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이 여자는 그 많은 죄를 용서받았다. 그래서 큰 사랑을 드러낸 것이다. 그러나 적게 용서받은 사람은 적게 사랑한다.”
48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서는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49 그러자 식탁에 함께 앉아 있던 이들이 속으로, ‘저 사람이 누구이기에 죄까지 용서해 주는가?’ 하고 말하였다.
50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여자에게 이르셨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
연중 제24주간 목요일 복음(루카7,36~50)
"너는 내 머리에 기름을 부어 발라 주지 않았다. 그러나 이 여자는 내 발에 향유를 부어 발라 주었다. (46) 그러므로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이 여자는 그 많은 죄를 용서받았다. 그래서 큰 사랑을 드러낸 것이다. 그러나 적게 용서받은 사람은 적게 사랑한다." (47)
루카 복음 7장 46절에는 이중 대구 구조가 나타난다.
즉 '기름'에 해당하는 '엘라이오'(elaio; oil)와 '향유'에 해당하는 '뮈로'(myro; ointment; perfume), '머리'에 해당하는 '텐 카팔렌"(ten kephalen; head)과 '발'에 해당하는 '투스포다스'(tus podas; feet)가 대칭되는 개념이다.
'기름'과 '향유'는 모두 기름의 일종이지만, '향유'('뮈로')는 그 앞에 종종 '값비싼'이라는 형용사가 붙는 것처럼 매우 값진 기름이다.
반면에 '기름'은 때로는 램프의 기름이나 병자를 치료하는 약, 때로는 머리와 몸에 붓거나 바르는 등 일상생활에서 흔하게 사용되는 기름이다.
이것은 당시 올리브 나무로 뒤덮였기 때문에 붙여졌던 '올리브산'이라는 명칭에서 볼 수 있듯이 쉽게 구할 수 있었던 값싼 물건이었다.
당시 '향유'를 부을 때에는 일반적으로 머리에 부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값싼 '기름'조차도 붓지 않은 바리사이 시몬과 값비싼 향유임에도 불구하고 감히 머리에 붓지 못하고 예수님의 발에 부은 여인을 비교하심으로써 그녀의 겸손과 헌신을 칭찬하시고 계신 것이다.
'그래서 큰 사랑을 드러낸 것이다'
원문은 '호티 에가페센 폴뤼'(hoti egapesen poly; for she loved much)이다. 여인의 사랑과 헌신적 행위가 죄를 용서받게 된 근거가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죄의 용서는 순전히 하느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것이지, 결코 하느님께서 사랑에 대한 보답으로 주시는 것이 아니라고 이것을 반대하는 학자들이 있어 논란이 되는 구절이다.
그래서 여기의 '호티'(hoti)를 '내가 너에게 말한다'로 번역된 '레고 소이'(lego soi; I tell you)에 걸리는 종속절로 보아서 '내가 그녀의 많은 사랑함에 대해 말하는데'로 번역하여 '호티'(hoti)이하의 절을 그녀의 많은 죄의 용서의 근거가 아니라 죄의 용서를 선포하는 근거로 보기도 한다.
루카 복음 7장 47절과 48절에 '죄를 용서받았다'는 말이 나오는데, 이것은 '용서받았다'에 해당하는 '아페온타이'(apheontai; are forgiven)라는 새로운 단어이다.
이 단어의 원형은 '아피에미(aphiemi)인데, 이것은 '보내다'라는 뜻의 '히에미'(hiemi)에 '~로 부터'를 의미하는 전치사 '아포'(apo)가 합쳐진 형태로서, '~로부터 떼어 보내다'라는 의미를 지닌다.
이것은 여인이 자신을 억누르던 죄('하마르티아이'; hamartiai; sins)와 이로 말미암아 받게 되는 주위의 비난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났음을 표현한다.
과거의 허물과 실수, 죄악이 현재나 미래에 미치는 결과까지 완전히 백지화되었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 이 '아피에미'(aphiemi)를 통해서 여인은 죄인의 신분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났고, 이러한 공적인 선포를 통해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죄의 용서의 권한과 권세를 갖고 있는 분이심을 드러내신 것이다.
오늘의 묵상
같은 회사에서 일하는 세 명의 일꾼이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일도 안 하며 미래에 사장이 되겠다는 말만 되풀이하였습니다. 또 다른 한 사람도 회사의 모든 일에 대하여 불평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한 사람은 최선을 다하여 맡은 일을 열심히 하였습니다. 수십 년이 흐른 뒤 첫째 사람은 여전히 사장이 되겠다는 똑같은 말만 되풀이하고 있었고, 둘째 사람은 원인 모를 사고를 당하여 퇴사하였습니다. 그런데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던 셋째 사람은 그 회사의 사장이 되어 있었습니다.
같은 직장을 다니더라도 어떤 사람은 일을 할 수 있음에 감사하며 맡겨진 일을 열심히 하고, 어떤 사람은 자신이 그런 일이나 하고 있을 사람이냐고 불평을 합니다. 결국 누가 더 성공할까요? 자신의 위치에서 더 감사하고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하느님 앞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같은 미사에 참여하면서도 어떤 사람은 자신처럼 비천한 죄인을 불러 주신 것에 감사하지만, 어떤 사람은 마치 덜 받은 것처럼 이것저것 청하려고만 합니다. 심지어 봉사나 봉헌을 하면서 ‘자신의 것’을 하느님께 드린다고 착각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바리사이는 예수님께 무엇인가 대접해 드린다고 착각하던 사람입니다. 반면 여인은 받은 것에 보답해 드릴 것이 없어 눈물만 흘립니다. 바리사이는 자신이 무엇인가 해 드리고 있으니 보답이 올 것을 기대하였고, 여인은 너무 받아서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만을 생각하였습니다.
우리가 가진 것은 모두 주님 것입니다. 나의 것을 드릴 수 없습니다. 모두 받은 것이니 그저 감사해야 할 뿐입니다. 무엇인가 주님께 해 드린다고 느꼈던 바리사이는 죄를 용서받지 못하였지만 여인은 용서받습니다. 우리가 주님께 드릴 수 있는 유일한 것은 ‘감사의 눈물’뿐입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