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30주간 수요일] ‘좁은 문’ (루카 13,22-30)
바오로 사도는, 자녀는 부모에게 순종하고 종도 그리스도께 순종하듯이 주인에게 순종하며, 주인도 종들을 그렇게 대하라고 한다. (에페 6,1-9)
1 자녀 여러분, 주님 안에서 부모에게 순종하십시오. 그것이 옳은 일입니다.
2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여라.” 이는 약속이 딸린 첫 계명입니다.
3 “네가 잘되고 땅에서 오래 살 것이다.” 하신 약속입니다.
4 그리고 아버지 여러분, 자녀들을 성나게 하지 말고 주님의 훈련과 훈계로 기르십시오.
5 종 여러분, 그리스도께 순종하듯이, 두려워하고 떨면서 순수한 마음으로 현세의 주인에게 순종하십시오.
6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기 좋아하는 자들처럼 눈가림으로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하느님의 뜻을 진심으로 실행하십시오.
7 사람이 아니라 주님을 섬기는 것처럼 기쁘게 섬기십시오.
8 종이든 자유인이든 저마다 좋은 일을 하면 주님께 상을 받는다는 것을 알아 두십시오.
9 그리고 주인 여러분, 여러분도 종들을 이와 같이 대해 주십시오. 겁주는 일은 그만두십시오. 그들의 주님이시며 여러분의 주님이신 분께서 하늘에 계시고 또 그분께서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알아 두십시오.
예수님께서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쓰라고 하시며, 지금은 첫째지만 꼴찌가 되는 이들이 있을 것이라고 하신다. (루카 13,22-30)
그때에 22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여행을 하시는 동안, 여러 고을과 마을을 지나며 가르치셨다.
23 그런데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주님, 구원받을 사람은 적습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24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사람이 그곳으로 들어가려고 하겠지만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25 집주인이 일어나 문을 닫아 버리면, 너희가 밖에 서서 ‘주님, 문을 열어 주십시오.’ 하며 문을 두드리기 시작하여도, 그는 ‘너희가 어디에서 온 사람들인지 나는 모른다.’ 하고 대답할 것이다.
26 그러면 너희는 이렇게 말하기 시작할 것이다. ‘저희는 주님 앞에서 먹고 마셨고, 주님께서는 저희가 사는 길거리에서 가르치셨습니다.’
27 그러나 집주인은 ‘너희가 어디에서 온 사람들인지 나는 모른다. 모두 내게서 물러가라, 불의를 일삼는 자들아!’ 하고 너희에게 말할 것이다.
28 너희는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과 모든 예언자가 하느님의 나라 안에 있는데 너희만 밖으로 쫓겨나 있는 것을 보게 되면,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29 그러나 동쪽과 서쪽, 북쪽과 남쪽에서 사람들이 와 하느님 나라의 잔칫상에 자리 잡을 것이다.
30 보라, 지금은 꼴찌지만 첫째가 되는 이들이 있고, 지금은 첫째지만 꼴찌가 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연중 제30주간 수요일 독서 (에페6,1~9)
"자녀 여러분, 주님 안에서 부모에게 순종하십시오. 그것이 옳은 일입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여라." 이는 약속이 딸린 첫 계명입니다.
"네가 잘되고 땅에서 오래 살 것이다." 하신 약속입니다." (1~3)
에페소서 6장 1~4절에서는 가족 관계에 있어서 부부와 더불어 또 하나의 중요한
구성원인 자녀와 부모사이의 상호 순종을 권면하며, 에페소서 6장 5~9절에서는
상전과 종 사이의 상호 순종을 권면하고 있다.
이러한 일관성을 지니는 에페소서 5장 22절~6장 9절에서의 권면은 '그리스도를
경외하는 마음으로 서로 순종하십시오' 라고 에페소서 5장 21절에서
밝힌 바 있는 대명제와 연결된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모든 관계가 바로 정립되기 위해서는 먼저
그리스도께 대한 경외심이 전제되어야 한다.
따라서 자녀와 부모 사이의 상호 순종을 권면하고 새로운 단락을 시작하는 본문에서도
사도 바오로는 자녀가 부모를 순종해야 한다는 사실만을 강조하지 않고,
그 순종이 '주님 안에서' 이루어져야 함을 동시에 강조하였다.
자녀의 부모에 대한 순종이 '주님 안에서'(엔 퀴리오; en kyrio; in the Lord)
이루어져야 한다는 이 구절의 의미는 먼저 부모를 순종하라는 계명을
주님께서 주셨기 때문에 순종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명령 가운데는 인간은 하느님을 순종해야 하기 때문에, 그분께서
당신의 대리인으로 주신 부모를 순종해야 한다는 의미도 내포되어 있다.
그분들을 부모로 주신 분이 하느님이시기 때문에 순종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녀들은 자신을 낳고 길러 주시는 부모에게 순종하면서 가족간의
질서를 주신 하느님께 대한 순종을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다.
하느님께서 가정의 권위를 부모에게 맡겼으니,
자녀가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은 마땅한 것이다.
한편 '주님 안에서 부모에게 순종하십시오' 라는 본문이 신앙을 갖지 않은
부모에 대한 순종을 경시하는 내용은 결코 아니다.
신앙을 갖지 않은 부모를 두었다 할지라도, 그리스도인이라면 성경이 교훈하는
부모에게 자녀로서 해야 할 도리를 다 하는 것은 물론이고, 오히려 부모의
회두를 위해 더욱 섬기는 자녀가 되어야 한다.
사도 바오로는 콜로사이서 3장 20절에서 '무슨 일에서나 부모에게
순종하십시오'라고 명하면서 그것이 '주님 마음에 드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부모에게 순종하는 사항에 예외가 없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명령과 "누구든지 나에게 오면서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자녀, 형제와 자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루카14,26)라는 주님의 말씀 및 "하느님의 나라
때문에 집이나 아내, 형제나 부모나 자녀를 버린 사람은 현세에서
여러 곱절로 되받을 것이고 내세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이다."
(루카18,29.30)라는 주님의 말씀이 상호 모순되는 것은 아니다.
루카 복음에 기록되어 있는 주님의 이 말씀들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순종이 부모에 대한 순종보다 더 우선되어야 한다는 말씀이다.
'이는 약속이 딸린 첫 계명입니다'
부모 공경 관련 계명은 탈출기 20장 12절과 신명기 5장 16절에 있는
계명으로서 십계명중에서 제4계명에 해당하는 내용이다.
'약속이 딸린 첫 계명'이란 표현에서 '약속'(에팡겔리아; epanggelia;
promise)은 구약의 기록들에 나오는 "그러면 너는 주 너의 하느님이
너에게 주는 땅에서 오래 살 것이다" 는 내용이다.
사도 바오로는 이 약속의 내용을 다음 절에서 "네가 잘되고 땅에서 오래
살 것이다" 는 내용으로 바꾸어 표현하였지만, 그 근본 의미는 동일하다.
이처럼 사도 바오로는 구약의 축복의 내용을 인용하면서
부모 공경에 대한 필요성을 효과적으로 강조하였다.
여기서 '공경하여라'에 해당하는 '티마'(tima; hono(u)r)의 원형
'티마오'(timao)는 '(어떤 일에)가치를 두다'라는 문자적 의미를 갖는다.
이것은 겉으로 드러난 행위의 차원을 넘어서는 내적 가치를 포함하는 의미이다.
이처럼 부모를 공경하는 일이 지고(至高)의 가치를 갖는 것은 부모를
공경함이 궁극적으로는 하느님을 공경하는 일과 관련되기 때문이다.
한편, '약속이 딸린 첫 계명'이란 표현은 부모 공경의 계명이
십계명 가운데 네번째 계명이라는 사실과 상충되는 듯이 보인다.
십계명 가운데 1~3계명은 하느님과 관련한 계명이고,
4~10계명은 사람과 관련한 계명이라는 점에 비추어보면,
부모 공경의 계명은 사람과 관련한 계명들 중에서는
가장 첫번째의 계명으로 설명할 수 있다.
또한 원문의 '첫'에 해당하는 '프로테'(prote; first)에는 순서적으로
'첫째'라는 뜻도 있지만, 우선 순위에 있어서 '먼저' 또는 중요도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이란 의미도 갖는다.
이 의미에 따르면, 약속이 딸린 첫 계명이란 표현은 부모 공경의 계명이
십계명 가운데 첫번째 계명이라는 의미가 아니고, 부모에 대하여
자녀들이 취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계명이라는 의미가 된다.
'네가 잘되고 땅에서 오래 살 것이다'
분문은 신명기 5장 16절을 인용한 것인데, '주 너의 하느님이
너에게 주는'이라는 내용이 생략되었다.
그런데 이 계명대로 부모를 공경하는 그리스도인이라고 해서 모두가
이 땅에서 많은 복을 받고 살아가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어려움을 겪다가
생을 마감하는 사람도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약속이 개개인에 대한 약속이라고 생각할 수 없고,
일반적으로 적용되는 약속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즉 부모를 공경하여라는 계명을 지키는 사람이 일반적으로 장수한다는 것이다.
한편 오래 산다는 상급에 대한 표현은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자는
오래 살지 못한다는 형벌의 반대 상황에 대한 표현이기도 하다.
유대인 사회에서는 부모를 공경하지 않거나 그들의 말에 불순종하여
제멋대로 사는 불효자들은 돌로 쳐죽이는 극형에 처해졌다(신명기21,18~23).
이러한 역사적 배경은 부모를 공경하며 사는 사람만이
온전한 수명을 누리며 살 수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사도 바오로는 '주 너의 하느님이 너에게 주는 (땅)'이라는 표현을 생략하고 있다.
그 이유는 주로 이방인들로 구성된 에페소 교인들이 신명기의 말씀을 그 옛날
가나안이라는 시간적, 역사적 상황과 지리적 요소에 의해 제한받지 않고,
사도 바오로 당시의 모든 그리스 세계의 땅 뿐 아니라 후대 독자들이 살아가는
모든 세계를 아우르기를 바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 이 '땅'은 장수가 지상에서의 삶에 국한된 복임을 말해준다.
한편 부모를 공경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두 가지 축복을 묘사하는
동사들의 시제가 다름을 알아야 한다.
먼저 '네가 잘 되고'에 해당하는 '유 소이 게네타이'(eu soi genetai;
it may go well with you)는 부정(不定) 과거 시제이고,
'오래 살 것이다' 에 해당하는 '에세 마크로크로니오스'(ese makrochronios;
you may enjoy long life)는 미래 시제이다.
부정 과거는 격언적 부정 과거(Gnomic Indefinite Past)로서
'잘 되고'라는 축복은 이것이 이미 일어난 일이나 다름없는
아주 확고한 진리임을 강조한다.
또한 미래 시제로 표현된 '오래 살 것이다'라는 축복은
장수의 복이 확실하게 일어날 축복임을 보여준다.
즉 서로 다른 시제를 사용하고는 있지만, 모두 약속의
확실성을 강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연중 제30주간 수요일 복음(루카13,22~30)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사람이 그곳으로 들어가려고 하겠지만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24)
본절에서 '힘써라'에 해당하는 '아고니제스테'(agonizesthe; strive; make effort to)의
기본형 '아고니조마이'(agonizomai)는 원래 경기에서 상을 얻기 위해 '경쟁하다',
'싸우다'는 뜻이지만, 여기서는 '최선을 다하다'는 상징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루카 복음 13장 25절이 문이 열려 있을 때와 닫혀버린 이후를 대비한다는 점에서,
이 동사의 의미는 '구원의 문이 열려 있을 때 어떻게든 들어가도록 노력하라'로 이해할 수 있다.
즉 '주어진 기회를 놓치지 말고 그것을 최대한 이용하라'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
이것은 바로 지금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열려진 구원의 문을 들어가도록 애쓰라는 것이다.
또한 본절에서 '문'은 '집의 문'을 가리키는 '튀라'(thyra; gate; door)로 표현된 반면에,
마태오 복음 7장 13절에서는 '성문' 또는 '성전의 문'을 가리키는 '퓔레'(pyle)로 표현되었다.
이런 차이는 13장 25절에서 문을 열고 닫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 '집주인'의 역할에 따라
이 구절의 배경을 어떤 성이나 성전이 아닌 '어떤 집'으로 맞추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여기서 문을 특별히 '좁은 문'('테스 스테네스 튀라스'; tes stenes thyras;
the strait gate; the narrow door)으로 묘사한 것은, 앞의 '힘써라'는 표현과 함께
구원받는 것이 그렇게 안일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진정으로 구원은 자신을 낮추고 예수님께 나아가는 사람만이
얻을 수 있는 것이라는 점에서 '좁은 문'이라고 할 수 있다.
'들어가려고 하겠지만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여기서 '하겠지만'에 해당하는 '제테수신'(zetesusin; will seek; will try)의
기본형 '제테오'(zeteo)는 '추구하다'는 뜻으로서 개인적인 추구와 노력을 가리킨다.
결국 이 동사는 구원에 있어 아무런 결과를 가져다 주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의 헛된 노력과 시도들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13장 25절과 관련지어 볼 때, 문이 닫혀진 후에
계속해서 두드려도 열리지 않는 것과 같은 의미를 가진다.
하느님께서는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당신께 구원을 겸손히
청하는 사람들을 결코 물리치지 않으신다.
하지만 하느님의 구원의 방법인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 자신의 노력과
인생의 헛된 수고만으로 구원을 얻기를 추구한다면, 그에게는 결코
구원이 없음을 본절에서 사용된 '제테오'(zeteo) 동사의 뜻 속에서 찾을 수 있다.
이것을 유대인들에게 적용할 때에는, 그들의 인본주의적인 전통이나 율법에
대한 추구를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는데, 구원은 인위적인 노력으로만
얻어질 수 없다는 방법적인 측면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못할 것이다'에 해당하는 '우크 이스퀴수신'(uk ischysusin;
will not be able to)은 '그들이 할 수 없을 것이다'는 뜻으로
불가능의 의미를 강하게 표현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할 수 있다'는 뜻의 기본형 '이스퀴오'(ischyo)의 미래 직설법
능동태로 사용된 '이스퀴수신'(ischysusin)은 부정어 '우크'(uk)와 더불어
그들의 구원에 대한 노력은 마지막 때에 무익한 것으로 드러날 것임을 표현해 주고 있다
예수님께서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쓰라고 말씀하신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구원받을 사람이 얼마인지 호기심을 가지고 계산하지 말고, 구원을 위한 지혜를 가지라고 요구하십니다. 인간의 욕망과 이기심은 매순간 커지고 그 판단력은 늘 그릇되기 쉽습니다. 우리가 하는 실수와 시행착오를 헤아려 보면, 우리가 얼마나 자주 허리띠를 매고 정화의 길을 가야 하는지 깨닫게 됩니다.
사람들은 안일한 마음을 가지고 하느님 나라로 들어가려다가 넘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현실과 타협하고 쾌락을 좇으며 십자가를 지지 않으려는 마음의 잡초는 수없이 자라고 있습니다. 끊임없이 깨어 있고 기도하라는 주님의 말씀은 자신을 가다듬어 엄격한 잣대를 지니는 지혜를 가지라는 것입니다. 눈이 죄를 짓게 하거든 그 눈을 빼어 버리라는 충격적인 주님의 말씀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마태 5,29 참조). 이 말씀은 극기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씀이지만, 하늘 나라에 들어가려면 그만큼 단호한 결단이 요구된다는 뜻으로 이해됩니다.
요즈음은 가족 관계에서도 많은 어려움이 생기고 있습니다. 자녀들이 부모의 말에 순종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 되고 있으며, 부모는 자녀들에게 얼마나 많은 고통과 실망을 주고 있습니까? 가족 관계의 어려움을 이겨 내는 인내와 사랑과 섬김은 우리에게 또 하나의 좁은 문이 되고 있습니다. 낮고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삶은 세속의 견지에서 꼴찌의 삶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보시기에는 최고의 삶, 첫째의 삶이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류한영 베드로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