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이 아까워 도망한 엘리야
왕상 19:1-20:43
1. 유다 광야로 도피하는 엘리야
열왕기상의 귀절을 읽다보면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불이 내려서 제단을 태우는 영광스러운 승리를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세벨이 "내일 이맘때에 반드시 너를 죽일 것이다." 라는 말 한마디에 왜 유다광야로 중행랑을 쳐야 했을까? 궁금해 집니다. 과연 엘리야는 나약한 선지자인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일까? 오늘 말씀에 비추어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만나시길 바랍니다.
엘리야가 갈멜산의 영광스러운 승리를 얻고 아합과 함께 이스르엘로 간 것은 갈멜산의 승리로 인해 '여호와의 권위가 회복되었고, 이스라엘이 여호와께 돌아왔으며, 아합도 어느 정도 여호와께로 돌아섰고, 그러므로 자신도 살해의 위협으로부터 어느 정도 벗어났다' 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엘리야의 오산이었습니다. 갈멜산에서 돌아온 아합은 마치 어린 아이가 엄마에게 고자질 하듯 왕비 이세벨에게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승리하였고, 바알 예언자들을 모두 칼로 죽였다고 고자질하였습니다(왕상 9:1).
이세벨은 냉철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이 상황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를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엘리야에게 사신을 보내어 “네가 바알예언자들을 죽였으니 내일 이맘 때에 반드시 너를 죽일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신들이 내게 벌을 내리고, 더 내릴 것이다” 라고 선언합니다(왕상 19:2). 바알 예언자들의 죽음에 대한 복수를 하겠다고 통보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세벨의 행동을 가만히 관찰해 보면, 그녀가 엘리야를 죽일 생각은 하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엘리야를 정말 죽일 생각이었다면 사신을 보낼 것이 아니라 군사들을 보내어 당장 죽이든지 포박해 와서 최소한 감옥에 가두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내일 이맘 때’에 반드시 죽이겠다고 말하는 것은 엘리야에게 도망칠 시간을 주고자 함이 분명합니다. 이세벨이 원수 엘리야를 당장 죽이지 않고 그에게 도망칠 기회를 주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즉각적인 엘리야의 반응에 성경을 읽는 성도들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것 일까요?
첫째, 영적 부담감 때문입니다. 그녀는 수많은 예언자들을 죽였지만(왕상 18:4, 13), 갈멜산에서 참 하나님이 여호와인 것을 증명하고, 또한 바알 예언자 450인을 죽인 엘리야를 죽이는 것은 영적으로 부담이 되었을 것입니다. 만약 엘리야에게 해를 입힌다면 자신에게도 치명적인 타격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엘리야를 이스라엘에서 쫓아내기 위함이었을 것입니다. 엘리야를 죽일 수 없다면 최소한 엘리야를 이스라엘에서 쫓아내야만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과 바알 사이에서 오락가락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갈멜산 사건으로 인해 여호와가 참 하나님임을 고백했고, 또한 엘리야의 명령에 따라 바알 예언자들을 잡아 죽였습니다(왕상 18:39-40). 게다가 ‘아합’도 변했습니다. 그런 엘리야가 계속 이스라엘에 머문다면 지금까지 바알 종교를 위해 노력했던 모든 일들이 물거품이 되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죽일 수도 없고, 그렇다고 그냥 둘 수도 없는 엘리야에 대한 가장 현명한 처사는 추방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세벨은 매우 영특하였습니다. 반면, 엘리야는 뜻밖에도 매우 우둔해 보입니다. 그는 이세벨로부터 "내일 이맘 때에 너를 죽일 것" 이란 통보를 받자 즉시 이스라엘을 떠나 유다의 ‘브엘세바’로 도망칩니다.,(왕상 19:3). ‘브엘세바’는 유다 최남단의 성읍입니다. 그 아래로는 광야입니다. 멀리도 도망친 것입니다. 열왕기상 기자는 엘리야가 도망친 것은 ‘생명을 위함’이라고 말합니다. 즉 죽지 않으려고 도망쳤다는 말입니다. 영적 분별력이 사라진 것일까요? 분별을 못하고 도망가는 엘리야를 바라보며 무엇이라 설명이 안됩니다.
순진하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우둔하다고 해야 할지...과연 엘리야의 이와 같은 행동의 원인은 무엇일까요? 물론 외부적으로는 이세벨의 살기가 등등한 모습이 무서웠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근본적인 원인은 아마도 ‘영적 공허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그는 갈멜산에서 역사적인 업적을 남겼지만, 생명을 위협 받아야 하는 현실 앞에서 영적 피곤함과 영적 무기력감에 빠졌던 것입니다. 이 영적 공허감이 갈멜산에서 영광스러운 승리를 경험한 엘리야 임에도 불구하고 한 여인 이세벨 앞에서 무기력하게 무너지게 한것입니다.
유다의 브엘세바로 도망친 엘리야는 그 곳에 사환을 머물게 한 뒤 자신은 광야로 들어가 로뎀나무 아래서 “여호와여 살만큼 살았습니다. 내 조상들보다도 못난 사람입니다. 그러니 내 생명을 거두어 가십시오.”하고 죽음을 청합니다(왕상 19:4). 살기 위해 도망친 자가 죽여 달라고 청한다? 이는 여호와 앞에서 투정을 부리는 것이라고 보는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그런 엘리야의 투정을 받아주시면서 그를 호렙산으로 인도하십니다.(왕상 19:5-8).
2. 호렙산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다. (왕상 19:9-18)
40일간의 긴 여행을 통해 호렙산에 도착한 엘리야는 굴속으로 들어가 그 곳에 머물렀습니다. ‘머물다’(룬)란 말은 재미있는 말입니다. ‘투숙하다’, ‘묵다’, ‘밤을 지내다’란 뜻임과 동시에 ‘투덜거리다’, ‘불평하다’란 뜻으로 쓰이기도 합니다. 아브라함의 늙은 종이 리브가에게 유숙할 곳을 묻고 그녀의 집에 유숙했다는 말로 쓰였고(창 24:23-25, 54), 광야의 이스라엘이 모세와 아론 그리고 하나님에게 불평했다는 이야기로도 사용되었습니다.(출 15:24; 16:7-8).
이 두 가지의 의미를 모두 적용해 보면, 엘리야는 여호와의 인도를 받아 호렙산에 도착하였지만, 그 곳에서 여호와를 만나거나, 혹은 여호와의 뜻을 알기 위한 어떤 행동을 취하지 않고, 그저 굴속에 들어가 지금의 형편을 투덜거리고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영적 공허 상태가 계속 되고 있었던 것입니다(왕상 19:9상).
이에 여호와께서는 엘리야에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왕상 19:9하) 굴 속에 머물며 투덜거리는 엘리야의 행동이 옳지 않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영적 무력감에 빠진 엘리야를 측은히 여기시는 마음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엘리야는 다시 투정을 부립니다. “나는 여호와께 충성을 다 하였으나, 이스라엘 자손들은 여호와의 예언자들을 칼로 죽였으며, 오직 나만 남았는데 나의 생명까지도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왕상 19:10).
물론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세벨에 동조하여 여호와의 예언자들에게 해를 입혔습니다. 그러나 갈멜산의 승리로 인하여 여호와가 참 하나님인 것을 인정하기 시작했고, 아합도 역시 엘리야에게 품었던 적대적인 감정을 거두었습니다. 다만 이세벨이 엘리야의 등장으로 인해 바알 종교가 심각한 타격을 입자 엘리야를 죽이려 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미 ‘오바댜’를 통해 여호와의 예언자 100명의 남아 있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오직 자기만 남았으며, 자기도 곧 죽을 것'이라고 하소연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영적 공허상태에 빠진 것이라고 볼 수 있으며, 한편 영적 무기력 상태에 빠진 것이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이에 여호와께서는 그를 일으켜 세워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경험하게 하십니다(왕상 19:11상). 영적 공허 상태에 빠진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임재만큼 효과적인 치료약은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는 강한 바람이 불었습니다. 그러나 엘리야는 그 바람에서 여호와의 나타나심을 경험하지 못합니다. 바람 후에 땅을 뒤흔드는 지진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역시 여호와의 나타나심을 경험할 수 없었습니다(왕상 19:11하). 지진 후에 불이 났숩니다. 그러나 그 불에서도 여호와의 나타나심을 경험할 수 없었습니다(왕상 19:12상)
‘바람’과 ‘지진’과 ‘불’이 지나간 후 ‘세미한 소리’(콜 데마마 다카, 고요나 역고운 소리)가 들립니다. 엘리야는 이 소리가 여호와의 소리임을 깨닫고 겉옷으로 얼굴을 가리며 굴 어귀로 다가섭니다(왕상 19:13상). 여호와께서는 다시 한 번 엘리야에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어찌하여 여기에 있느냐?”(왕상 19:13하). 그러나 세미한 소리의 의미를 깨닫지 못한 엘리야는 처음의 답변을 반복할 뿐입니다. “나는 여호와께 충성을 다하였으나, 이스라엘 자손들은 여호와의 예언자들을 칼로 죽였으며, 오직 나만 남았는데 나의 생명까지도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왕상 19:14).
호렙산은 여호와의 산이었습니다. 과거 출애굽시절의 이스라엘은 불과 천둥 속에 임하신 여호와를 만났습니다(출 19:16-18). 엘리야도 역시 갈멜산에서 불로 응답하신 여호와를 만났습니다(왕상 18:38). 그러나 이번에는 바람과 지진과 불 속에서는 여호와를 만나지 못합니다. 대신 ‘세미한 소리’에서 여호와를 만납니다. 여호와께서는 이 사실을 통해 엘리야에게 몇 가지의 교훈을 주십니다.
첫째, 여호와께서는 바람과 지진과 불로도 역사하시지만, 조용하고 은밀한 곳에서도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장엄하게 당신을 계시하시기도 하지만, 조용하고 은밀하게 계시하시기도 한다는 사실을 교훈하신 것입니다. 둘째. 여호와의 사역은 세상 권세와 원수들을 항상 무력으로 파괴하지만은 않는다는 것입니다. 때로는 여호와의 권세가 세상 권세와 원수들에 의해 짓밟히는듯 느껴지기도 하고, 때로는 여호와께서 일을 하지 않으시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는 것을 교훈하신 것입니다.
지금의 엘리야에게 가장 적합한 교훈이었습니다. 엘리야는 갈멜산의 그 능력으로 이세벨까지 제압하고 그 기세를 몰아 이스라엘을 다시 여호와의 나라로 재건하길 바랐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히려 이세벨의 협박이 두려워 도망친 이 현실로 인해 영적 무력감에 빠졌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영광스러운 승리 뒤에 찾아오는 여호와의 침묵은 진정한 침묵이 아니라, 여호와의 사역의 한 방편임을 교훈함으로써 엘리야는 지금도 역시 사역에 매진해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 주신 것입니다.
이런 깨우침을 주신 여호와께서는 엘리야에게 다시 3가지의 사역을 주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결국 사역을 통해 영성을 회복하라는 의미일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엘리야에게 주신 3가지 사역은 ①‘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의 왕이 되게 하라는 것, ②‘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라는 것, ③그리고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엘리야를 대신한 예언자가 되게 하라는 것이었습니다(왕상 19:15-17).
그리고 엘리야가 결코 혼자가 아니란 점을 상기 시키십니다. 7,000명의 순수한 영적 동지들이 준비되어 있다고 하신 것입니다.(왕상 19:18). 여호와는 엘리야만 통해 사역하시는 것이 아니라, 엘리야의 영역 밖에서도 사역을 하시다는 의미입니다. 여호와의 사역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엘리야는 자신에게 주어진 사역을 온전히 완수하지 못합니다. ‘하사엘’이 왕이 될 것임을 선언하는 사역(왕하 8:7-15)과 ‘예후’에게 기름을 붓는 일은(왕하 9:1-14) ‘엘리사’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엘리야는 여호와를 대면한 이후에도 영적인 공허를 완전히 극복하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 시대의 교훈
은사자는 하나님이 주신 은사가 모든 것인양 보이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은사는 결코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갈멜산에서 불이 내렸고, 850명의 바알 선지자들은 죽었지만 이스라엘은 변화 되지않았습니다. 기적을 보고 병 고침을 받으면 예수그리스도를 잘 믿을 것 같아 보이지만 실상 아픈자가 병 고치고, 죽을 자가 기적을 체험하고 난 이후에는 우연히 이루어진 일처럼 말들을 하면서 교회를 떠나가기 일쑤입니다. 병 고침을 받고, 기적을 체험하고 예수그리스도를 잘 믿는 사람들은 아주 극소수에 불과하다고 봅니다
이세벨이 엘리야를 우습게 본 것은 말씀 없이 불이 내려왔다 해도 그것은 "바알도 그런일은 할 수 있으니 바알을 믿는 것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는 또다른 표현인 것입니다. 말씀을 떠난 은사주의는 결국 세상 풍속과 다를 것이 없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이세벨은 혼합주의자들의 대표입니다. 제단 불이 내리는 기적을 보았음에도 이세벨은 변하지 않았고, 여호와와 또 싸우자는 것에 엘리야는 혼비백산 하여서 도망을 하였던 것입니다.이 시대에도 여전히 능력의 은사만 구하고, 예언만 쫓아다니면서 실상은 열매없는 신앙생활을 하는 수 많은 교인들이 있습니다. 신앙생활에는 바른 말씀이 열쇠입니다. 복음적인 말씀을 버리고 신비주의와 은사에 빠져버리거나 혹은 말씀이라는 탈을 쓰고, 성경공부하자"고 속여 바른 말씀이 아닌 자기들의 생각을 가르치는 사이비 이단에 속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예수그리스도께서 주신 바른 복음을 떠나버린 많은 한국교회 교인들에게 주시는 교훈적인 말씀이라고 봐야합니다. 이시대 주께서 주시는 말씀대로만 살았는데 능력이 나타나지 않거나 문 닫는 교회가 있는지 지금부터라도 우리 모두는 성경이 주신 말씀대로 실천하면서 주께서 주신 약속의 말씀이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하며 나가기를 바라는 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