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것이 성령의 은사인가요?

2011. 8. 30. 오전 8:3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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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것이 성령의 은사인가요? 

고린도전서12:4-8절을 보면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또 역사는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어떤이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이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성령의 은사에 대해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은사에 대해서 우리는 좀더 성경적 접근이 필요합니다. 교회 안에 은사는 참으로 중요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말씀만 있으면 되지 무슨 은사가 필요하냐고 그래서 교회 안에서 성령의 은사에 대해서 잘 못하도록 막는 목사님들이 있습니다. 말씀만 있으면 된다고 주장하십니다. 한편에서는 말씀은 이론적인 것이고 한번 뒤집어 져야 진짜다 어떤 특별한 체험이 있어야 성령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나도 과거에는 말씀만 보았는데 실재 은사를 받고 보니까 말씀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라고 말합니다. 체험을 해야 한다 은사를 받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고 말합니다.

 

은사가 강한 사람은 오직 은사입니다. 은사만 받으면 다 되는 것으로 말을합니다. 은사가 없이 말씀만 가르치는 사람들은 은사는 필요없다 말씀만 있으면 된다고 말합니다.  말씀만 주장하는 사람들 가운데 심한 사람은 그 은사는 초대 교회에 일어났던 것이지 지금은 필요 없다, 그것은 옛날 처음 복음을 전할 때나 필요하지 지금은 말씀으로 성장해야 한다고 말을 합니다.

 은사에 대한 문제를 성경을 통해서 우리는 바로 알아야 합니다. 사실 엄밀히 말씀을 드리면 은사가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에 덕을 세우기 위해서 각자에게 은사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은사를 마치 계급적 계념으로 보거나 은사를 개인적으로 자랑하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열두 제자를 보냅니다.

 마태복음10:1절을 보면 “예수께서 그 열 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열두 사람을 보내면서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것이 귀신을 쫒아내고 병을 고치고 모든 악한 것을 고치며 권능을 행하는 것을 주셨습니다. 이것을 주신 목적은 열두 제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기 위해서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부르시고 복음을 전하기 앞서 이런 권능을 주셨습니다. 이들이 나가서 일어났던 상황들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태복음10:5-8절을 보면 “예수께서 이 열 둘을 내어 보내시며 명하여 가라사대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차라리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왔다 하고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가면서 전파하되 천국이 가까웠다는 말을 해야 합니다. 열두 제자는 천국에 대한, 구원에 대한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복음을 전하는데 천국이 가까웠다고 말하고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쫒아 내라고 말씀하십니다. 병든 자를 고치는 것과 복음을 전하는 것과의 관계가 어떤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지금도 불치병은 고칠까하여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병원도 없고 병고칠 곳이 없는데 예수님이 권능으로 병을 고치시니 금방 소문이 낫습니다.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보내면서 하신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에게 이것이 필요한가? 필요치 않은가? 예수님께서는 복음 전하는 자에게 이것이 필요하기 때문에 하라고 권능을 주셨습니다.

 “차라리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웠다 하고” 이것은 복음입니다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쫒아내되” 이것은 육신의 문제들입니다

  앞에 것은 말씀을 통해서 전해야할 복음이고 후면에 병든 자 문둥이 귀신들린 자 이것은 육신에 속한 얽매임에서 그들을 벗어나게 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이 복음을 전하는데 필요합니다.  복음은 영적인 것이요, 이런 나타나는 모습은 육적인 모습입니다. 복음은 영적인 것이기 때문에 보이지가 않습니다. 그러나 육적인 것들은 보입니다.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것을 잘 안믿으려 합니다. 보이지도 않고 만져지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고 어떤 느낌도 없으니까 안믿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병든 자를 고치는 것은 나타나는 것입니다. 귀신이 쫒겨 나가면 정신이 맑아집니다. 병이 치유되면 금방까지 아프던 사람도 벌떡 일어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것은 보이는 것입니다. 육적으로 보이는 것을 통해서 안 보이는 것을 믿도록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암 병이 걸린 사람이 있는데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는 순간에 치유된 것입니다. 진짜 하나님이 살아 계시는 구나 알지는 못하지만 신이 존재하는구나 신이라는 존재가 없으면 어떻게 기도한번으로 그것이 치유가 되냐 무엇인가 있다 그렇게 해서 복음을 받아들입니다.

 누가복음10:1-3절을 보면 “이후에 주께서 달리 칠십인을 세우사 친히 가시려는 각동 각처로 둘씩 앞서 보내시며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군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군들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 갈지어다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어린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칠십 인을 달리 세우고 그들을 보냅니다. 칠십 인이 나갈 때 열두 제자가 가졌던 그와 같은 능력들을 똑같이 주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10:17-18절을 보면 “칠십인이 기뻐 돌아와 가로되 주여 주의 이름으로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단이 하늘로서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칠십 인이 복음을 전파하러 가서 귀신들이 항복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예수님 앞에 와서 말하는 것입니다. 귀신들린 자에게서 귀신이 떠나가는 것을 보았나이다. 예수님께서 사단이 하늘에서 번개같이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나아가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권능입니다. 바로 이것이 은사적인 부분입니다.

 하나는 말씀이요 하나는 은사입니다. 말씀에 대해서 바로 알아야 합니다. 은사가 강한 집회를 보면 설교도 잘하고 귀신도 쫒아내고 병자도 고칩니다. 은사가 참 강하게 나타납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말씀도 있고 은사도 있다고 말합니다.  설교도 참 잘하고 귀신도 쫒아내고 병든 자도 고치니까 말씀도 있고 은사도 있습니다. 우리는 둘 다 가졌습니다. 그 말이 맞습니까? 말씀이 있는 것은 유창하게 설교를 잘한다고 말씀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설교를 아무리 잘하고 성경을 달달 외워서 전한다고 해서 그것이 말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이 있는 것은 복음을 바로 전하는 것을 말씀이 있는 것이라 말하는 것입니다. 복음이 있어야 합니다. 복음이 없으면 아무리 성경을 외워서 성경에 있는 것을 전한다 해도 말씀이 없는 것입니다.

  복음도 있고 은사도 있어야 합니다. 복음이 없는데도 설교는 참 잘할 수 있습니다. 복음이 있는 사람보다 더 잘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들으면 시간 가는지 모르게 설교를 잘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설교를 잘하는 것이지 말씀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이 있는 것은 반드시 복음이 들어가야 말씀이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분별하는 것도 은사입니다. 지금 이 시대 말씀의 홍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정말 분별의 은사가 없으면 그 말씀이 복음인지 아닌지를 분별하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보내실 때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 고을로도 가지 말고 차라리 이스라엘집의 잃어버린 자에게로 가라고 말씀 하십니다. 이스라엘집의 잃어버린 자들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 이었습니다. 열심히 율법을 잘 지키며 제사 절기에 잘 참석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보고 잃어버린 양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잃어버린 양에게 가서 복음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잃어버린 양은 하나님을 믿고 있는데 무슨 말씀을 전합니까? 다른 말씀이 아닌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 받는 진리를 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받는 진리가 없이 설교를 잘하는데 은사가 나타나면 둘 다 있는 것이 아니라 말씀은 없고 은사만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실 위험한 것입니다. 분명히 둘 다 있어야 합니다. 그 중에서도 말씀이 없다면 당시에 즐거움은 있을지 몰라도 구원과는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은사를 무엇 때문에 주십니까?

 히브리서2:3-4절을 보면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피하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가지 능력과 및 자기 뜻을 따라 성령의 나눠 주신 것으로써 저희와 함께 증거하셨느니라”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구원의 복음을 전하는데 처음에 예수님께로부터 들은 바요 또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하는 바니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과 자기 뜻을 따라 성령의 나눠 주신 것으로써 저희와 함께 증거 하셨느니라...

 성령이 나눠 주신 것이 무엇입니까? 은사입니다.

그들이 가서 복음을 전하니까 복음 전하는 곳에 하나님께서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과 자기 뜻을 따라 성령의 나눠주신 것으로서 저희와 함께 증거 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표적과 기사들을 하나님께서 직접 하시는 이유는 복음을 전하는데 같이 증거 하기 위해서 입니다. 믿어지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복음을 전하는데 하나님께서 능력과 기사와 기적을 행 하셨습니다. 그럼 내가 전한 복음이 그 사람들에게 믿어지도록 하나님께서 성령의 나눠주신 것으로서 저희와 함께 증거 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성령이 나눠 주신 것이 무엇입니까?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나심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 하십니다. 은사는 교회에 유익을 주기 위함입니다. 그것이 온전케 되는 것은 아님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이 성령의 나타나심은 어떤 이에게는 지혜의 말씀을 어떤 이에게는 지식의 말씀을 다른 이에게는 믿음을 어떤 이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어떤 이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이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이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이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이에게는 통역함을 주시나니...

 이런 여러 가지 방언 통역 예언 병 고침 말씀 이 모든 것들은 성령의 나타나심에 따라 주신 것입니다. 복음을 가진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이 복음이 쉽게 믿어지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같이 역사 하시는 성령이 나타나심을 주시는 것을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는데 말로만 전하면 잘 안 믿어집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역사하시면 그 말씀을 듣는 사람들이 돌아옵니다. 병자에게 가서 예수 믿으세요 하면 잘 안 믿지만 하나님께서 병을 고쳐 주신다고 하고 병을 고쳐주면 그 사람이 쉽게 믿습니다. 성령의 나타나심을 주는 것은 우리에게 유익하기 때문에 주는 것입니다. 유익하다면 써야 하는 것입니다. 과거 초대 교회는 필요 하지만 지금은 필요치 않은가에 대한 문제입니다.

 사람들이 성령의 나타나심을 대체적으로 믿습니다. 그러나 자기가 체험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배척하는 사람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너무 극단적으로 가는 것은 안 좋습니다. 너무 한쪽만을 쫒다 보면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 역사하시는 기사와 이적을 배척할 수 있습니다. 일부의 사람은 말씀만 있으면 된다고 합니다. 사실 말씀만 있으면 다 됩니다. 말씀만 있으면 구원 얻고 영생 얻고 천국을 갑니다. 말씀만 있으면 다 됩니다. 안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말씀이 믿어지도록 하는 것은 이런 성령의 외적 역사들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것 또한 부인 할 수 없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말씀은 어려서부터 몇 십 년 동안 들어오면서 신앙생활을 했는데 그렇게 하다가 한번 기도원을 가서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고 나서 말씀 듣는 것은 필요 없고 이렇게 해야 한다고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말씀은 잘 몰라도 어차피 다 알 수 없으니까 체험해야 된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진리를 정말 모르는 사람입니다. 우선 말씀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외적 은사는 믿도록 해 주는 매개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두 가지 중에 어느 것이 중요 하냐 당연히 말씀입니다. 그럼 은사는 무엇 때문에 주어지는 것입니까? 그것은 말씀이 받아 지도록 하기 위해서 주시는 것입니다.

 은사만 있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나 말씀은 은사가 없어도 됩니다. 말씀만 있으면 됩니다. 은사는 말씀을 받아들이는데 있어 가장 쉽게 받아들여지도록 해 주는 것입니다. 밭에 씨를 뿌리면 납니다. 밭을 잘 갈고 씨를 뿌린 것과 그냥 씨를 뿌린 것과의 차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밭을 잘 갈고 부드럽게 해서 씨를 뿌리면 더 잘 납니다. 그냥 뿌려도 나긴 납니다. 그냥 뿌려도 말씀만 들어가면 납니다. 그러나 밭을 갈고 뿌리면 더 효과적이라는 것입니다.

 밭가는 것이 중요합니까? 밭은 백번 갈아도 아무것도 안 납니다. 거기에 씨가 들어가야 나는 것입니다. 밭에 씨가 잘나게 하는 일입니다. 앞에 미리 부드럽게 해 주는 잡업인 것뿐이지 그것은 사실상 아무것도 아닙니다. 밭가는 것은 아무 효력이 없고 백날을 갈아 봐도 아무것도 안 납니다. 거기는 반드시 씨가 들어가야 납니다.

  무엇이 중요 하냐 씨 들어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씨 들어가는 것이 중요한데 그 씨가 잘나게 하는 것은 밭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은 씨 입니다. 말씀은 씨고 은사는 밭 갈아 주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는 다 필요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자체가 은사를 받았기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은사는 누구에게나 있고 하나님의 능력은 초월 하시는 분이기 때문에 어떤 은사라도 부정을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부탁 하신 말씀을 보겠습니다.

 마가복음16:19-20절을 보면 “주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신 후에 하늘로 올리우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니라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거하시니라)“ 예수님의 명령을 따라서 제자들이 복음을 증거합니다.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새 이것은 복음입니다.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하나님께서 같이 역사 하셨습니다.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거 하시니라... 말씀을 전할 때 표적이 따르는데 그 표적은 우리의 말씀이 확실 하다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은사는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보내실 때도 능력을 주셔서 능력을 행하게 하셨고 칠십 인을 보낼 때도 가서 귀신을 쫒아내고 능력을 행하라고 하셨고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고 제자들이 말씀을 증거 할 때 표적이 따르므로 말씀이 확실하게 증거 되었습니다. 말씀을 확실하게 증거 하게 한 것은 표적입니다 그 표적을 부인해서는 안됩니다. 그 은사들 가운데 방언, 통역, 예언 등을 받아 들여야 하는지를 보겠습니다.

고린도전서14:1절을 보면 “사랑을 따라 구하라 신령한 것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 사랑을 따라 구하라 신령한 것을 구하라 신령한 것 가운데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 성경이 가장 기본적인 예언입니다. 베드로후서1:19-21절을 보면 “또 우리에게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데 비취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가하니라 먼저 알 것은 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

  예언은 어두운데 비취는 등불과 같은 것입니다.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이것을 사모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언을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라고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성도는 먼저 성경자체의 예언을 먼저 알기를 사모해야 합니다. 그것을 모르는 상태에서 다른 예언을 받는 다는 것은 참으로 위험하기 짝이 없는 것입니다. 한국 교회는 일방통행으로 전달만 하는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구역 예배를 드리면서도 마치 구역장이 다 아는 것처럼 성경을 외곡해서 전하는 심각함을 너무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예언의 은사가 필요한 것이 바로 이런 소그룹 예배입니다. 이런 예배들을 통해서 성경을 미리 공부하고 그 공부한 것을 자연스럽게 돌아가면서 성령의 뜻을 전달하는 시간이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교회가 그것을 막고 있는 실정입니다. 목사님들도 성경의 예언을 풀기가 쉽지가 않은데 어떻게 구역장이 일방 통행식 전달을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니 순전히 율법적인 교육에 치우지고 그것은 자연스럽게 율법주의 화를 만들고 있는 실정입니다. 예언의 은사는 너무도 중요합니다. 사모하라고 했습니다. 정작 목사님들과 다른 해석을 하면 그 사람은 그 교회에서 있을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성경 예언의 해석을 마치 특정인의 전유물처럼 되어 버린 상태에서는 성령의 역사하심을 부인하는 결과를 가져오게됩니다.

 성경의 예언은 광범위 합니다. 모든 것을 다 알 수는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칼빈 같은 경우도 야고보서의 주석을 쓰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 예언을 활성화 한다면 하나님의 뜻을 좀더 알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지금 한국 교회의 시스템에서는 예언은 불가능합니다. 또한 개인적으로 예언을 받을 수 있지만 그것은 먼저 성경과 일치되는 가를 분별해야 합니다. 그런 분별이 없이 예언을 함부로 말한다면 그는 거짓 선지자에 불과합니다. 개인이나 교회에 대한 예언을 할 때는 그것이 정확해야 합니다. 만일 그것이 진실이 아니고 그렇게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그는 예언을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몇년전에도 우리나라 큰 교회중 하나 목사님이 미국에서 오신 목사님이 예언한 것을 발표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예언을 함부로 남발하고 있는 현재의 모습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도 분명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견디기 힘든 문제들이 발생합니다. 그때 예언의 은사를 받은 사람을 찾아가서 문제를 해결 받는 다면 참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지금 현재의 기독교인들의 현실은 심지어는 점쟁이를 찾아가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런 모습들이 나오는 이유는 예언자들이 잘못 예언하기 때문에 오히려 세상 점쟁이들만 못하기 때문에 성도들이 그런 곳을 찾고 있는 실정입니다.

  은사를 잘 활용하는 것은 교회를 세우고 유익하게 하는 것입니다.

은사를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에게 모든 것을 주신 것이 아닙니다. 어떤 이에게는 지혜의 말씀을 어떤 이에게는 지식의 말씀을 다른 이에게는 믿음을 어떤 이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어떤 이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이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이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이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이에게는 통역함을 주시나니... 각각 다르게 주셨습니다.

 은사가 없는 사람은 못합니다. 못하기 때문에 은사가 있는 사람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도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은사 자를 찾아가서 문제를 해결 받아야 합니다. 은사 자가 모든 것은 성경에 기초를 두고 해야 합니다. 교회에서 은사를 불신하는 이유는 그들이 성경을 벗어나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예언자들 중에는 심지어는 자기가 환상 중에 하나님을 만났는데 새 계명을 주셨다고 말하면서 그 계명을 책으로 출간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요한계시록22:18-19절을 보면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 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우리는 성경에서 더해도 안 되고 빼서도 안됩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것을 성경보다 앞세우려 한다면 그는 잘못된 사람입니다. 특히 대중 앞에서 예언을 말할 때는 성경에서 벗어난 자기 개인적인 것을 말하는 것은 온당치 않습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것을 받은 사실이 있더라도 이야기를 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자기 자랑밖에 되지 않는 것입니다. 은사는 구해야 합니다. 사랑을 따라 구하라 신령한 것을 사모하라고 말씀했습니다. 신령한 것 중에 예언하기를 사모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고린도전서12:30-31절을 보면  “다 병 고치는 은사를 가진 자겠느냐 다 방언을 말하는 자겠느냐 다 통역하는 자겠느냐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제일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다 같은 은사를 주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고 말씀 하십니다. 내가 또한 너희에게 제일 좋은 길을 보이리라... “다 병 고치는 은사를 가진 자겠느냐 다 방언을 말하는 자겠느냐 다 통역을 하는 자겠느냐” 질문 했습니다 그러므로 다 병고치고 다 방언하고 다 통역하고 다 예언하는 것이 아닙니다. 각각 은사를 주셨습니다.

 은사를 주신 것은 참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내가 병 고치는 은사를 가지고 참 병은 잘 고치는데 내가 답답한 것이 있을 때 예언하는 것이 없으면 예언하는 사람을 찾아가야 합니다. 내가 병 고치는 은사가 강해서 어떤 병자도 오기만 하면 치유가 되는데 정작 내 문제는 해결을 못하니까 찾아가야 합니다. 은사 자들 중에는 하나를 받으면 마치 다 받은 것으로 오해하는 사람이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신유의 은사를 받으면 마치 모든 것을 받은 줄 알고 말씀을 함부로 전하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내가 병을 고치니까 세상에서 제일 인 것처럼 착각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병 고칠 때는 제일인 줄 알고 있겠지만 정작 자신의 영적 문제는 아무것도 해결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하는 예언의 은사도 마찬 가지입니다. 일부의 목사님들은 자기 해석이 모두 옳다고 주장하는데 성도들이 반대 의견을 제시 하지도 못하게 하는데 성경은 너무 광범위한 것입니다. 일반 성도들에게도 그런 예언의 은사가 임할 수 있는데도 지금의 교회는 중이 싫으면 나가라는 식으로 말합니다. 하나님의 은사를 거절하는 것입니다. 한 사람에게 모든 은사를 주어 버리면 자기가 최고입니다. 스스로 하나님이 되어 버립니다. 특히 예언의 은사 부분에서는 정말 조심해야 함에도 말씀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다른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는 목사님들 중에는 이미 자기 마음에 그런 마음이 상당히 자리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이라는 것을 늘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성도들 중에도 마음에 우리 목사님이 최고라는 사상을 가지고 있으며 다른 목사님들의 말씀은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다면 그는 이미 우상을 섬기고 있는 것입니다. 각각 다르게 주는데도 절재를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더 큰 은사를 사모하라 더 큰 은사를 사모하면 하나님께서 그에게 가장 알맞게 주신다는 것입니다. 은사는 다 같은 것을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성도는 그 은사를 받으려고 사모해야 함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방언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일부에서는 방언을 별 볼일 없는 것으로 무시합니다. 내가 만약 무시하는 사람이었는데 하나님께서 내가 받으려고 하지도 않았는데 강권적으로 방언을 주셨습니다. 내 입에서 방언이 나오는 것입니다. 방언이 나온 후에도 방언을 무시합니까? 은사라는 것은 우리가 다 이해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성령을 통해서 역사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부인을 해서는 안 됩니다. 자기가 받으려 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강권적으로 주실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은사를 받은 사람은 결코 은사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뜻대로 필요에 따라서 유익을 주기 위해서 은사를 주시고 있습니다. 다만 은사를 절재하지 못할 때 문제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어떤 은사든 마찬가지입니다. 말씀의 은사를 받았는데도 그 은사를 적절하게 절재하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다른 말을 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말씀만 말씀만 주장해서도 안 되고 은사만 은사만 주장해서도 안됩니다. 성경에 있기 때문에 은사가 무엇 때문에 주어졌는가를 바로 알고 바로 사용하면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은사 가진 사람들이 말씀은 재껴 놓고 오직 은사만 외치니까 말씀 있는 사람들이 은사를 더 배척하는 것입니다. 사실은 은사 받은 사람들이 스스로 말씀 있는 사람들에게 공격을 받도록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두 부분을 인정해야 합니다. 인정하는 것뿐만 아니라 사모해야 합니다 은사는 교회를 유익하게 하는 것입니다. 은사가 없을 때는 복음을 전하면서도 그 복음이 이해가 안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은사가 강한 사람은 복음을 몇 마디 전하지 않아도 말씀이 믿어지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론적으로는 분명히 말씀을 가진 자가 많이압니다. 그러나 은사가 없으면 아무리 잘해도 잘 안 믿어 질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은사가 강하면 실재로 듣는 사람들 마음을 감동 시켜서 믿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말씀에 따르는 은사입니다. 성도는 은사를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더 큰 은사를 사모해야 합니다. 성경 일부의 말씀을 가지고 방언도 폐하고 예언도 폐하고 지식도 폐한다고 하니까 마치 은사가 모두 필요 없는 것처럼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잘못된 해석을 해서 그런 사상들이 있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의 예를 보겠습니다

 고린도전서14:17-18절을 보면 “너는 감사를 잘하였으나 그러나 다른 사람은 덕 세움을 받지 못하리라 내가 너희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더 말하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사도바울은 말씀이 확실한 사람입니다. 그는 온전한 것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 온전함이 있지만 나는 다른 사람보다 방언을 더 말함으로 하나님께 더 감사한다고 말씀합니다. 사도 바울은 모든 말씀을 다 깨달았으나 방언을 하는 것에 감사했습니다. 우리 인생은 아무리 잘 아는 것 같지만 부분적으로 밖에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 부분적으로 아는 것이 예수님께서 재림 하실 때는 다 알아 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3장을 말씀 하시면서 예수님의 사랑을 알라고 말씀 하십니다. 그 사랑이 최고의 은사입니다.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은사입니다.

 그 다음에 그 사랑에 따라 구하라 신령한 것을 사모하라 예언을 구하라고 14장에 말씀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빠진 은사는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내가 예언을 하고 방언을 하고 말씀의 지식으로 통달했다 해도 가장 중요한 은사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없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음이 중요한 것입니다. 방언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성경구절입니다.

 고린도전서14:8-11절을 보면 “만일 나팔이 분명치 못한 소리를 내면 누가 전쟁을 예비하리요 이와 같이 너희도 혀로서 알아 듣기 쉬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그말하는 것을 어찌 알리요 이는 허공에다 말하는 것이라 세상에 소리의 종류가 이같이 많되 뜻 없는 소리는 없나니 그러므로 내가 그 소리의 뜻을 알지 못하면 내가 말하는 자에게 야만이 되고 말하는 자도 내게 야만이 되리니”

 소리가 분명하지 못한 소리가 방언입니다. 이 방언에 대해서 나팔이 분명치 못한 소리를 내면 누가 전쟁을 예비 하리요 뜻을 알아듣지 못하는 소리를 하면 하는 사람도 야만이 되고 듣는 자도 야만이 된다 이것은 방언을 말씀 하시는 것입니다. 그럼 방언을 하는 자도 야만이 되고 듣는 자도 야만이 된다 이 말씀을 보고 방언을 하지 말라고 합니다. 이 말씀은 그런 말씀이 아닙니다. 방언은 남에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방언은 다른 사람에게 하는 것이 아닌데 다른 사람에게 했다면 그것은 야만이 되는 것입니다. 못 알아들으니까 야만이 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14장에 왜 이런 말씀을 쓰고 있냐면 고린도교회에 너무도 은사 때문에 혼란이 일어난 것입니다.

 고린도교회에 은사 때문에 혼란이 일어나니까 은사를 하지 말라는 소리가 아니라 은사를 하되 질서를 따라서 이렇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그것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은사가 임해서 방언을 하고 성경이 줄줄 풀어지고 환상이 보이니까 자기가 최고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무 때나 떠들어 대고 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고린도교회가 아수라장이 되는 것입니다. 질서도 없이 방언을 하고 자기가 성경이 풀어지니까 그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설교를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 그런 문제를 정리하기 위해서 이렇게 하지 말라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을 하면 야만이 되는 것이다 그런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입니까?

 고린도전서14:2절을 보면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 듣는 자가 없고 그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니라” 방언은 하나님과 나와만 하는 것이지 다른 사람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닌데 고린도 교회는 그것이 최고인 줄 알고 다른 사람 앞에서 떠들어 대니까 너희들 그렇게 하면 야만이라고 사도바울이 책망하는 것입니다. 제가 여러분 앞에 놓고 계속해서 방언만 한다면 아마 미쳤다고 그냥 다 갈 것입니다. 기분 나빠서 다 갈 것입니다 야만이라고 할 것입니다.

  방언은 다른 사람에게 하는 것이 아니니까 다른 사람에게는 떠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못 알아들으니까 듣는 자도 야만이요 하는 자도 야만이라고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방언 자체를 하지 말라고 해서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분별해야 합니다. 방언은 하나님과 나와의 비밀로 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요한 계시록을 이방 사람들이 읽으면 무슨말인지 모르게 한 것처럼 말입니다.

  군대에 가면 자기들만 알고 다른 사람들이 모르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암호입니다. 이 암호는 자기들끼리만 알아듣습니다. 적은 모르고 아군끼리만 아는 것입니다. 이 말을 못 알아듣는 일반인에게 한다면 그것은 야만입니다. 하나님과 나와 비밀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 앞에서는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람들 앞에서는 아무리 방언이 나와도 떠들지 말라 사람들 앞에서 방언으로 말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방언을 하려면 전체적으로 방언 기도를 할 때 하면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혼자 하는 것입니다 혼자 가서 방언 기도하지만 사람들 많은 곳에서는 혼자서 방언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방해가 되기 때문입니다. “내가 말하는 자에게 야만이 되고 말하는 자도 내게 야만이 되리니 그러면 너희도 신령한 것을 사모하는 자인즉 교회에 덕 세우기를 위하여 풍성하기를 구하라 그러므로 방언을 말하는 자는 통역하기를 기도할찌니” 알아듣지 못하니까 야만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통역하기를 기도 하라는 것입니다. 통역의 은사를 받으면 방언을 말하는 것을 알아들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방언으로 대화도 합니다. 다른 사람은 못 알아듣지만 통역하는 사람은 알아듣습니다. 방언은 하나님과 통하기 위해서 주신 것이고 이것을 다른 사람도 알아듣고 전달하기 위해서 통역이 필요한 것입니다.

고린도전서14:39절을 보면 “그런즉 내 형제들아 예언하기를 사모하며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

예언하기를 사모하며 방언하기를 금하지 말라고 말씀 하십니다. 방언 말하는 것을 금하지 말라... 방언을 못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방언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서 안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에게까지 그것이 필요 없으니까 하지 말라고 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금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14장에 은사를 말씀하고 방언을 금하지 말라는 것이 결론입니다 초대교회의 예배 형식을 보겠습니다.

  고린도전서14:26절을 보면 “그런즉 형제들아 어찌할꼬 너희가 모일 때에 각각 찬송시도 있으며 가르치는 말씀도 있으며 계시도 있으며 방언도 있으며 통역함도 있나니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 방언에 대한 문제들을 계속 말씀한 후 그런즉 형제들아 어찌 할꼬 말씀합니다.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 너희가 모일 때 각각 찬송시도 있고, 찬양을 부릅니다 가르치는 말씀도 있으며, 설교를 합니다. 계시도 있으며 방언도 있으며 방언에 대해 통역도 있습니다. 방언을 하면 통역해 주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것들은 모두 다 덕을 세우기 위해서 하라 이것이 덕이 세워지지 않으면 절재 해야 합니다. 예배 시간에 혼자 방언을 하면서 떠들면 안 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덕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14:27-28절을 보면 “만일 누가 방언으로 말하거든 두 사람이나 다불과 세 사람이 차서를 따라 하고 한 사람이 통역할 것이요 만일 통역하는 자가 없거든 교회에서는 잠잠하고 자기와 및 하나님께 말할 것이요”  결론을 내립니다. 만약에 방언을 하려면 통역하는 자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통역하는 자를 세우되 한꺼번에 하지 말고 한 사람씩 세워서 차례대로 하고 만약에 통역하는 사람이 없으면 교회 안에서는 방언을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통역하는 사람이 없으면 교회 안에서는 잠잠하고 자기와 하나님께 말할 것이요 기도 할 때만 하라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14장은 은사에 대한 것을 정리한 장입니다, 일부에서는 방언 자체를 부인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옛날에나 방언이 필요한 것이지 지금은 필요 없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과의 비밀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같이 필요한 것입니다. 병 고치는 것이나 모든 은사가 마찬 가지입니다. 필요 하냐 필요치 않느냐는 논할 것이 못됩니다. 만약 필요하지 않았다면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주지 않았을 것입니다. 필요하기 때문에 주는 것인데 그 필요를 모르기 때문에 판단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성경이 보편화 되어 있는 시대임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더구나 우리나라 같은 곳은 문맹자가 거의 없을 정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씀에 의지하는 것이 정상적인 모습입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동일하게 성령을 통해서 역사하고 계십니다. 다만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은사를 남발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신령한 것을 개인적인 것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기도를 해서 병자를 고쳤습니다 지금도 병이 고쳐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바울도 그렇고 디모데도 병이 치유가 안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병을 치유하기 위해서 우리는 기도를 하고 신유를 행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먼저 하나님의 뜻을 인정하는 것이 믿음의 본질이라는 것입니다.

 

 왜 은사를 못하게 하고 반대하며 거절하는 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그것은 은사 때문에 교회 안에 지금도 문제가 많이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은사가 많으면 골치가 아픕니다. 교회 안에 은사 자들이 많으면 그 사람들을 다스리기가 힘이 듭니다. 그러나 그것은 필요 없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은사는 밭 가는데 필요한 것이지 중심이 아니라는 사실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은사는 없어도 됩니다. 복음을 깨달은 사람은 없어도 됩니다. 사실 어떻게 보면 복음을 깨달은 자체가 은사입니다. 가장 중요한 예수님의 사랑의 은사 영원한 생명을 주는 은사가 임한 것입니다.  복음을 깨달은 사람은 자기 혼자만이라면 이런 외적인 은사는 없어도 됩니다. 방언을 못해도 통역을 못해도 신유가 없어도 다 됩니다. 복음을 깨달았으면 영적인 것이 살았기 때문에 그것 하나로 만족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도 씨를 뿌리고 그 씨가 잘나도록 해야 하는데 쟁기가 필요한 것입니다.  땅을 갈아엎고 개간하는 것이 바로 쟁기입니다. 은사 자에게 가서 뒤집어지고 오면 성경 말씀을 잘 듣습니다. 일단 은사를 체험한 사람은 그 밭이 갈아져 나오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좋은 것입니다.

  우리가 은사를 판단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다만 절재를 못하기 때문에 은사에 대해 조심스럽게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교회에 덕을 세우기 위해서 쓰여져야 하는데 그렇게 못하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말씀은 없고 병만 고친다면 그것은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은 없고 교인들 끼리 모여서 금이빨이니 뒤로 넘어지고 하는 것만 있으면 그것은 아무 소용없는 은사입니다. 사람들은 자랑하기를 좋아합니다.

  신발을 비싼 것을 신습니다. 요즘아이들 신발이 장난이 아닙니다. 메이커 아니면 신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그 신발을 왜 신느냐 것입니다. 운동선수들이 기록 단축하기 위해 맞춤 신발을 신습니다. 그것은 분명 목표가 있습니다. 그냥 비싼 신을 신는 것이 아닙니다. 은사도 복음전하기위해 사용되는 도구입니다. 분명한 목적도 없이 은사받은 것 자랑할려고 그런곳에 쫓아 다닙니다.

 사도바울은 은사를 사모하라 예언하기를 힘쓰라 방언하기를 구하라 통역하기를 기도 하라고 했습니다. 은사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로마서12:21절을 보면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로마서 12장도 은사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결론을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말씀 하십니다. 은사는 외적으로 보이는 것을 이기기 위해서 주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하나님의 선입니다. 그 선한 일을 도모하게 하기 위해서 은사가 필요한 것입니다. 은사는 악을 이기는데 쓰는 것이 아닙니다. 그 은사로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라고 말씀하십니다.

  신령한 것을 육적으로 사용하지 마시고 하나님의 뜻을 세우는데 사용하신다면 참으로 귀하게 사용될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를 구원하는 길로 안내 하는데 부족하지가 않습니다. 은사 자들이 성경을 외곡하고 성경에 있지도 않은 일을 하고 말들 함으로써 세대를 혼란스럽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은사를 사모해야 합니다. 더 좋은 은사를 받아서 복음도 전하고 교회를 세우고 선으로 악을 이기는데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주님께서 여러분들을 귀히 사용하실 것입니다. 더 좋은 은사를 받아서 교회에 덕을 세우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주 성령께서 예수의 날까지 인도 하실 줄 믿습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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