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모든 죄를 단번에 없애신 하나님의 섭리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창 1:1-5)
오늘은 특별히 창세기 1장 3절부터 5절의 말씀에 초점을 맞춰서 우리의 모든 죄를 단번에 없애신 하나님의 섭리”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창세기 1장 3-5절의 말씀만 다시 한 번 읽겠습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창 1:3-5)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단번에 없애주셨다>라는 위대한 선포(宣布)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말씀입니까? 하나님 말씀은 영(靈)이고 생명(生命)입니다. 모든 사람들을 죄에서 구원해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에, 성경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구원을 분명히 선포하고 있습니다.
세상에 와서 비추는 참 빛인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라고 말씀하십니다. “빛이 있으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더니 <빛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 빛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모든 어두움 즉, 모든 죄에서 단번에 구원해주실 것을 말씀합니다.
빛이 오면 어두움은 단번에 물러갑니다. 지금 우리가 예배를 드리는 이 곳은 조금 전까지 깜깜했습니다. 그런데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스위치를 올리는 순간, 모든 등에 밝은 빛이 들어왔고 어두움은 단번에 물러갔습니다. 10분 있다 물러가는 것도 아니고, 하루 있다가 물러가는 것도 아니고, 점진적으로 서서히 물러가는 것도 아니고, 한 순간에 어두움은 물러가고 빛으로 가득 찼습니다.
요한 복음 1장 1절부터 5절 말씀에 말씀하신 대로 이 빛은 분명 예수그리스도입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요 1:1-5)
그러므로 창세기 1장 3절에서 말씀하시는 빛이 바로 예수그리스도인 것은 분명한 진리입니다. 고린도후서 4장 6절은, “어두운 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어두운 데에서 빛을 비추시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하신 부분은, “빛이 있으라”하신 창세기 1장 3절을 가리킵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지으셨을 때에 흑암이 온 땅을 덮고 있었는데, 그 어두운 가운데 빛이 있게 하신 그 하나님에 대해서 말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꼐서 예수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다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원래 흑암(黑巖), 깊음 위에 있었습니다. 즉 죄가 가득한 것이 우리의 마음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를 그 모든 어둠(죄)에서 단번에 구원하려고, “빛이 있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빛이 바로 예수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우리가 무엇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알 수 있습니까? 예수그리스도의 진리의 복음을 통해서 압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단번에 없애주신 진리의 복음을 성경은 “진리를 아는 지식”이라고 말씀합니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호 4: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히브리서 10장 26절에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 “진리를 아는 지식”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모든 죄를 단번 만에 온전하게 없애주신 <물과 성령의 복음>입니다.
따라서 창세기 1장 3절에서 말씀하시는 빛은, 바로 예수님을 뜻하기도 하고 예수님이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셔서 우리의 죄를 단번 만에 깨끗하게 없애주신 진리의 복음을 뜻하기도 합니다. 이 진리의 복음이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지식”입니다.
하나님께서 진리의 복음을 우리 마음에 비춰주시면 그 빛의 복음이 우리 안에 들어와서 우리 마음에 있는 모든 죄(어두움)를 단번에 깨끗하게 없애줍니다. 따라서 “빛이 있으라”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우리를 우리의 모든 죄에서 온전하게 구원해주신다는 복음의 선포입니다.
참 빛이 오기 전의 땅(우리의 마음)의 실상(實狀)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1장 2절에 땅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었고 하나님의 신이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땅은 우리의 마음을 의미합니다. 인간의 마음은 뒤죽박죽으로 혼돈되어 있고, 마음이 텅 비어서 어떤 만족도 없이 공허와 슬픔뿐이고, 흑암 즉 죄가 깊음 위에 있었습니다. 게다가 그 실상을 보이지 않게 하려고 위선(僞善)과 외식(外飾)의 <물>로 덮고 있습니다. 복음서들에 등장하는 바리새인들을 비롯해서, 거듭나지 못한 자들의 마음 상태는 하나 같이 이런 모습입니다.
모든 죄인을 온전히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섭리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와 같이 비참한 죄인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빛이 있으라”고 섭리하신 것입니다. “내가 저들을 구원해야겠다! 저들을 죄에서 깨끗이 구원해서 내 자녀로 삼아야겠다! 그래서 영원한 천국에서 영생을 누리도록 해야겠다!”고 작정을 하시고 빛을 보내주신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신 것입니다.
그 빛이 이 흑암 가운데 비취니 어두움이 단번에 물러갔습니다. 이는 우리가 모든 죄에서 단번에 구원을 받는 것을 의미하며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하나님의 섭리(攝理; God’s Providence)란 <하나님의 심오한 계획>을 말합니다. 창세기 1장 1절부터 5절은 하나님의 섭리를 요약해서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첫 사람 아담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가 되었지만, 사단 마귀의 꼬임에 빠져서 전적으로 타락하게 되었고, 그 후손인 우리 모두는 우리 조상 아담의 죄를 유전 받아 모두가 죄 덩어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깊은 죄에 빠진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하나님 편에서 구원하시려고, 당신의 외아들인 예수그리스도를 진리의 빛으로 보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처녀 마리아의 몸에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인류의 대표자인 세례 요한에게 안수의 형식으로 세례를 받으심으로 이 세상의 모든 죄를 단번에 넘겨 받고,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요 1:29)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대속의 피를 흘리심으로 하나님의 의를 다 이루었습니다(요 19:30). 이제 예수님께서 다 이루어 놓으신 하나님의 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흑암(죄)에서 완전한 구원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그 하나님의 섭리를 알고 믿는 자는 그 빛으로 말미암아 빛의 자녀가 되게 하셨습니다.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라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실제로 우리를 모든 죄에서 구원하셨다는 뜻입니다.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창 1:4)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원대한 계획을 세웠는데, 독생자 예수님은 그 섭리대로 다 순종해서 이행하셨기에, 하나님 아버지께서 참 기뻐하셨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오직 감사함으로 받으라!
이와 같은 하나님의 섭리를 감사함으로 받아들이는 자는 은혜와 축복을 받을 것이고 이것을 거부하는 자들은 영원한 형벌에 들어가게 됩니다. 누가 감히 하나님의 섭리를 거스르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를 잠시 죄 아래 갇히도록 허락해놓으셨다가, 100% 하나님의 은혜로만 그 죄에서 구원을 얻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시고 영생에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이렇게 뜻을 세우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이 이것이로구나”하고 분명히 깨닫고, 그 하나님의 섭리에 순종하는 믿음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고 요한복음은 시작합니다. 그리고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 그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그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다. 태초에 말씀으로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곧 예수님이다>라고 요한복음은 선포합니다.
태초부터 계신 제2위 성자 하나님이신 그 말씀의 하나님이, 우리와 같은 육신을 입고 우리 가운데 구세주로 오셨지만, 사람들이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흑암(죄)은 어두움 그대로 남아있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빛으로 오셔서 모든 의를 이루신 사역의 시작인 “세례”
그런데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행하신 첫 번째 사역이 무엇인 줄 아십니까?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서른 살이 되셨을 때에,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고 요단강으로 오셨습니다. 그 곳에는 여자가 낳은 자중에 가장 큰 자, 즉 인류의 대표자인 세례 요한이 세례를 베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세례를 받으려고 그 세례 요한에게 가까이 갔습니다.
그 순간 세례 요한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아보고 당황했습니다. 자기에게 저벅저벅 다가오시는 저 분이 바로 <태초부터 계신 말씀의 하나님>이란 사실에 요한은 경외함으로 당황하며 떨 수 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근본 하나님이신 것을 안다면 누군들 예수님을 만홀히 여길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머리를 조아리고 엎드려 경배해야 할 분이 바로 하나님이신 예수님입니다.
창세기복음강해의 첫날 설교에서, 예수님은 <말씀으로 온 우주를 단번에 지으신 분>이라고 저는 말씀 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우주의 크기(지름)는 약 150억 광년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미국의 저명한 우주연구소(CfA: Harvard-Smithsonian Center for Astrophysics)의 과학자들은, 최근에 그들이 발견한 <중력파>의 흔적을 근거로, 이 어마어마하게 큰 우주가 1/10-32초 동안에 생겼다고 주장합니다. 지금의 이 대우주가 1/1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초라는 찰나의 시간 동안에 존재하게 된 일이 스스로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까? 절대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 일은 전능하신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인데, 그 전능하신 역사(役事)의 주인공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그 예수님이 나와 여러분같이 정말 티끌만도 못하고 죄 덩어리인 자들을 사랑하셔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서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가 되게 하시려고 육체를 입고 이 땅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첫 번째 행하신 구원의 사역이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세례 요한의 사역은 두 가지로 요약됩니다. 첫째는 예수님에게 안수의 형식으로 세례를 베풀어서 세상의 모든 죄를 예수님에게 넘기는 일이었고, 둘째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며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임을 증거해서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하기는 일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육신으로 오셔서 이미 이스라엘 백성 중에 계시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분이 누구신지는 몰랐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자기 앞에 나오실 그때에 “바로 저 분이로구나!” 하고 알아 보았습니다. 순간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아이구 제가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어떻게 내게로 오십니까” 라고 세례 베풀기를 저어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아주 준엄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마 3:15) 하시니 이에 요한은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례 요한에게 아주 준엄하게 명령하셨습니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라! 이제 너는 내 머리에 손을 얹고 세례를 베풀어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즉 너는 내 머리에 손을 얹고 나는 너의 안수를 받아들임으로 이 세상에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고, 이것이 바로 하나님 아버지의 섭리다!” 라는 말씀입니다.
그러자 요한도 하나님이 보낸 종이기 때문에, 바로 순종해서 두렵고 떨림으로 예수님의 머리 위에 손을 얹고 예수님을 물에 푹 잠갔다가 꺼냈습니다.
예수님께서 받으신 세례는 구약의 속죄 제사에 있어서 안수와 같은 것입니다. 속죄 제사를 드릴 때에,
1) 죄인이 흠 없는 양을 끌고와서
2) 그 양의 머리에 안수(按手)하여 자기의 죄를 희생양에게 넘기고
3) 그 양을 죽여서 그 피로 자기의 죄를 대속(代贖))했습니다.
그리고 매년 한 차례씩, 제 칠월 제 십일에 드렸던 대속죄일(大贖罪日)에는 백성의 대표인 대제사장 아론이 아사셀 염소의 머리에 안수하면, 이스라엘 백성의 지난 1년치 죄가 단번에 염소에게로 넘어갔습니다 (레 16:20-22). 이렇듯 구약성경에서 <안수>는 <죄를 넘기는 하나님의 법>이었습니다.
이 세례 요한은 대제사장 아론의 후손이었고(눅 1:5) 인류의 대표자였습니다(마 11:11). 그 세례 요한이 예수님의 머리에 안수의 형식으로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이와 같이 하여” (마 3:15) 즉, 인류의 대표자가 인류의 어린 양으로 오신 예수님의 머리에 안수함으로, 전인류의 모든 죄와 허물이 예수님께 단번 만에 다 넘어갔습니다.
“이와 같이 하여”(마 3:15) 주님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요 1:29)이 되셔서 십자가로 가셨습니다. 그 십자가 위에 못 박혀서 6시간 동안 온 몸의 피를 다 쏟으심으로 당신의 세례로 담당하신 모든 죄의 값을 완전하게 지불하셨습니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시면서 “다 이루었다!”(요 19:30)고 외쳤습니다. 우리의 모든 죄를 완벽하게 없애기로 작정한 하나님의 섭리를 “다 이루었다”는 주님의 선포였습니다.
이것이 물과 성령의 복음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고후 4:6)이며, 진리의 복음입니다.
주님이 세례 받으실 때에 우리의 모든 죄가 예수님에게 다 넘어갔기 때문에 하나님 하나님께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마 3:17) 하시며 기뻐하셨습니다.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창 1:3)라고 하신 말씀이 성취된 것입니다. 참 빛의 역사가 성취되는 것을 보시고 하나님은 참으로 기뻐하셨습니다. “내가 창세 전부터 세웠던 나의 뜻이 다 이루어졌구나!” 하나님께서는 참으로 기뻐하셨습니다. 우리의 죄를 단번 만에 없애시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인데, 그 섭리가 언제 이루어졌습니까? 하나님의 구원의 섭리는 요단강에서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에 다 이루어졌습니다.
거의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이 무엇인지를 모릅니다. 다시 말하자면,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심으로 인류의 모든 죄를 단번에 담당하시고 십자가에서 그 모든 죄를 완벽하게 갚아 놓으신 진리의 말씀이 <물과 성령의 복음>인데, 기독교인들이 이 <진리의 복음>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영적 소경이 되어, “빛이 있으라” 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영적으로 무슨 뜻인지도 깨달을 수 없고, 여전히 흑암(죄) 가운데 있습니다.
창세기 1장 3절에,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그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신 말씀은 “진실로 하나님은 우리 모두를 모든 죄에서 단번 만에 온전하게 구원하셨다”는 말씀입니다. 나와 여러분도 우리 하나님의 이 진리의 복음 안에서 단번 만에, 온전하게 모든 죄에서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 편에서는 예수님의 이루신 “세례와 십자가의 구원사역”으로 말미암아 이미 우리의 모든 죄를 온전히 없애 놓았습니다. 다만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마음으로 믿느냐, 믿지 않느냐?>에 따라 여러분 각자가 하나님의 구원을 받느냐, 받지 못하느냐가 결정됩니다.
창세기 1장의 말씀은 성경 전체의 축약본(縮約本)입니다
내가 어렸을 때 우리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불로당”(不老堂)이라는 한약방이 있었습니다. 그 한의원의 딸이 나하고 한 반이어서 그 집에 자주 놀러 갔어요. 그리고 환약(丸藥)을 만드는 것도 자주 보았습니다.
한약방에서 환약을 만들 때 어떻게 합니까? 여러 가지 약재(藥材)를 한꺼번에 가마솥에 넣고 물을 한 동이 붓고 달입니다. 오랫동안 불로 달이면 약재에서 진이 다 빠져 나오는데, 이제 약재 건더기는 건져 내면 남은 국물이 탕약(湯藥)입니다. 그 탕약을 계속 끓입니다. 그러면 나중에는 국물이 다 졸아서 엿처럼 됩니다. 그것을 조금씩 떼어내고 비벼서 알약으로 만듭니다. 그것을 환약(丸藥)이라고 합니다.
만일 이 성경 전체를 탕약(湯藥)으로 만든다면 창세기 1장이 나오고, 더 축약해서 환약(丸藥)으로 만든다고 하면 <창세기 1장 1절부터 5절>의 말씀이 나온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참으로 몇 절이 안 되는 이 말씀 안에서 <하나님은 누구신지, 우리는 얼마나 쓰레기 같은 존재인지, 하나님은 그런 우리들을 사랑하셔서 어떻게 완전하게 죄에서 구원하셨는지>가 다 함축(含蓄)되어 있습니다.
시초적 복음(the Original Gospel)의 말씀
창세기 1장 1절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ㅡ이 말씀 안에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다 들어 있어요! 성경의 첫 절만 읽어도 하나님의 신성(神性)과 전능한 능력이 밝히 보입니다.
둘째로 창세기 1장 2절에,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ㅡ 이 말씀은 우리가 얼마나 허무하고 더러운 죄로 가득 찬 자들인지를 아주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셋째, 창세기 1장 3절의 말씀은 <시초적 복음; the Original Gospel>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우리들을 사랑하셔서, 당신의 외아들이신 예수님을 우리 가운데 빛으로, 즉 구원자로 보내주셨습니다. 그 아들의 “세례와 십자가”의 사역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모든 어두움에서 단번 만에 구원하셔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해주셨습니다.
의인과 죄인을 나누시는 하나님
창세기 1장 4절에, “그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빛과 어두움을 나누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하게 나누는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은 두루뭉실하게 섞지만, 하나님은 <빛은 빛이고 어두움은 어두움이다> 하고 분명하게 딱 가르십니다.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라는 말씀은 <하나님은 의인과 죄인을 나누신다>는 말씀입니다. 참 빛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구원의 복음을 주셨기에, 그 진리의 빛을 받아들인 자는 빛이 됩니다. 즉 참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믿는 자는 어둠움(죄)이 전혀 없는 의인(義人)이 되는 것이고, 그 진리의 빛을 받아들이지 않고 거부한 자의 마음은 어두움(죄)이 그대로 남아 있는 죄인(罪人)인 것입니다.
주님은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엡 5:8)라고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전에는 죄 덩어리였다. 흑암(黑巖), 즉 죄가 깊음 위에 있는 자였다. 너희 마음에 죄가 가득하지 않았더냐? 그런데 내가 육신으로 너희 가운데 임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너희의 모든 죄를 다 담당하고 십자가에서 피 흘려 다 없애 주지 않았더냐? 이제는 너희 마음에 어두움이 다 사라져서 죄가 하나도 없는 의인이 되었다!”―주님이 이렇게 선포하십니다.
하나님은 빛과 어두움을 나누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죄인과 의인을 나눕니다. 하나님은 마음에 죄가 있는 자를 절대로 의인이라고 불러주지 않습니다. “음, 네가 마음에 죄가 있어도 나를 믿는다고 하니, 하도 기특해서, 네 마음에 죄가 있어도 내가 너를 천국에 보내주마!”―하나님은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반드시 죄인은 영벌에, 의인은 영생에 들어가게 하십니다. 마태복음 25장에는 주님이 다시 오실 때에, 목자가 염소와 양을 나누듯이 의인과 죄인을 분명하게 나누고 합당한 심판과 상급을 내리겠다고 말씀합니다.
목자는 염소와 양을 분명하게 나눕니다. 우리는 어떤 것이 염소고 어떤 것이 양인지 잘 모르지만 그래도 소와 말은 구분해서 나눌 수 있습니다. 그러니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가 아니겠습니까?
우리의 목자장(牧者長)이신 예수님께서도 이 땅에 오시면, 목자가 염소와 양을 분명히 나누듯이, 의인과 죄인을 딱 갈라 놓고서 죄인은 좌편에, 의인은 우편에 세우실 것입니다. 그리고 좌편에 있는 자들, 즉 죄인은 영벌에, 영원한 지옥 불에 쳐 넣으실 것입니다.
죄인들이 “내가 예수님 당신을 믿었고, 주님의 이름으로 병자도 고쳐 주고 마귀도 좇아냈었고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내가 왜 지옥에 가야 합니까?” 하고 주님의 판결에 불복할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분명하게 판결하십니다: “너희들은 마음에 죄가 있잖아! 죄의 삯은 사망이야!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불법(不法)은 죄입니다. 그리고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단번에 없애주신 진리의 복음을 믿지 않는 그 죄가 지옥 가는 죄, 즉 사망(지옥)에 이르는 죄입니다. 양과 염소를 가르듯이 주님은 의인과 죄인을 딱 가릅니다. 그래서 죄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천국의 영생에 들여 보내십니다.
참 빛으로 오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이 땅에는 분명히 두 종류의 사람들이 나타납니다. 사람들은 인간을 황인, 백인, 흑인, 또는 남자와 여자 등 여러 종류로 나누지만, 하나님은 우리 마음에 죄가 있느냐, 없느냐를 보시고 의인과 죄인으로 나누십니다.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삼상 16:7) 하심과 같이,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에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아서 죄가 없는지, 아니면 죄가 그대로 있는지를 보시고 판결하십니다.
“네가 스스로 죄가 없다고 해서 의인(義人)이 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루어 준 <물과 성령의 복음>을 네가 마음으로 온전히 믿어서 죄 사함 받고 의인이 되었느냐? 아니면, 그 진리의 복음을 믿지 않고 여전히 반쪽 복음만 고집하다가 죄가 여전히 네 마음에 있느냐? 네가 정말 100% 순수한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지 못했으니 너는 영벌(永罰)에 처할 죄인이다!” 하고 하나님은 책망하실 것입니다.
거듭나지 못한 기독교인들이 교리적으로 알고 있는 것은 자신이 천국에 가는 데에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마음에 죄가 있느냐, 없느냐?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임한 물과 성령의 복음이 네 마음에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극소수이지만 마음의 모든 죄가 흰 눈처럼 깨끗이 씻겨진 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의인이고, 이 세상에 보석같이 존재합니다. 주님의 날이 오면, "그 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마 13:43) 고도 말씀 하셨습니다.
성경에도 수많은 의인의 역사(役事)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벨은 의인이었고, 아담도 하나님이 지어주신 가죽 옷의 복음을 입었던 의인이었습니다. 아브라함도 의인이었고, 여호와께 은혜를 입은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창 6:9)라고 말씀합니다.
시편이나 잠언서, 전도서에는 얼마나 의인이 많이 나옵니까? 신약시대에도 물과 성령의 복음으로 죄 사함 받고 거듭난 하나님 종들과 하나님의 백성들은 모두 다 의인들입니다.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약 5:16)는 말씀 은, 진리의 복음을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아서 거듭난 자가 기도하면 하나님이 응답하신다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기독교를 무능한 종교로 타락시킨 칭의교리(稱義敎理)
그런데 오늘날 이 세상의 기독교에는 의인이 없습니다. 그들은 칭의교리(稱義敎理)를 철저하게 믿기 때문입니다. “칭의”(稱義)라는 것은 “비록 마음에 죄가 있는 죄인이지만,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을 믿는다고 하니 그 믿음을 가상히 여겨서, 하나님이 의롭다고 불러준다”는 가설(假說)입니다.
그러나 이 칭의교리는 사이비 복음의 필연적 부산물에 불과합니다. “사이비” (似而非) 란 “비슷하지만 진짜가 아니 것”을 말합니다. <십자가의 피만을 믿는 복음>은 반쪽 복음이며, 사이비 복음이며, 기독교를 세속화시킨 가짜 복음입니다. <십자가의 피만을 믿는 복음>을 통해서 예수님을 믿으면, 자기들의 마음에 죄가 그대로 있기 때문에,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이 “주여, 이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하고 날마다 회개기도를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도 십자가의 피만의 복음을 믿었었습니다. 그때에는 내 마음의 죄가 절대로 깨끗이 씻겨지지 않습니다. 그런 교리적 복음 안에서는 예수님을 <죽으면 죽으리라>는 결단으로 믿어도 나는 여전히 죄인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죄 사함 받고 구원을 받는다>고 가르치지만, 교인들의 마음에는 여전히 죄가 있는 현실이 바로 기독교의 딜레마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우리가 비록 죄인이지만 <죽기까지> 열심히 성화를 이루어 나아간다면 영화 구원에 이른다”고 하는 “점진적 성화”(漸進的聖化: incremental sanctification)를 주장합니다. 그들은 이러한 “칭의교리”를 만들어서 죄가 그대로 남아 있는 자기들의 마음의 고통을 위로 하고자 한 것입니다.
그들은 구원에 대해서도, <의화(義化) 구원-성화(聖化) 구원-영화 (榮化) 구원>이라는 용어를 만들어서 교인들을 혼돈케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진리의 복음을 믿으면, 단번에 의롭게 되고, 단번에 거룩하게 되고, 단번에 영화로운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그러나 진리의 복음을 모르는 영적 소경들이 가르치는 신학은 배우면 배울수록 점점 더 어려워 집니다. 나중에는 자기도 전혀 이해 못하는 교리를 만들어서 영혼들을 지옥으로 끌고 가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신학이고 기독교입니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 다 지옥에 떨어지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이치입니다.
칭의교리(稱義敎理)라는 말에서, 칭(稱) 자는 “부를 칭”자 입니다. 죄가 마음에 있지만 의롭다고 불러준다는 교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절대로 의롭지 않은 자를 의롭다고 불러주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죄가 있으면 죄인이고 죄가 전혀 없는 자라야 의인입니다. 그리고 죄인은 영벌에, 죄가 정말 흰 눈같이 깨끗이 씻겨진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게 하신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에는 칼빈주의, 아르메니안 주의, 에큐메니아니즘, 에쿠메니칼니즘, 인본주의적 신신학(新神學) 등등 별별 희안한 노선들이 들어 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고 거짓복음이 난무합니다. 그런 가짜 복음으로는 절대로 마음의 죄가 흰 눈같이 깨끗이 씻겨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 땅에서의 신앙생활은 우리가 노력을 해서 성화에 이르는 길뿐이고, 그래도 우리가 고생 고생하며 끝까지 예수님을 믿고 좇았기 때문에, 마지막 죽는 순간에 하나님이 우리를 불쌍히 여겨서 영화에 이르게 하실 것이다. 즉 천국에 들어가게 하실 것이다”라고 자가발전식(自家發電式)으로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미련한 다섯 처녀처럼, 기름(성령)도 없이 스스로 마른 심지를 태워 빛을 내려고 합니다.
즉 그들은 인간의 생각에 성경을 꿰어 맞추어서, 의화, 성화, 영화 이렇게 구원을 세 단계로 나누고 그런 틀(framework)에 온갖 교리를 정립한 것입니다. 존 번연(John Bunyan)의 천로역정(天路歷程, Pilgrim Progress)도 그런 교리적 틀 안에서 소설로 쓰여진 것입니다. 이것들은 전부 마귀의 역사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빛으로 오셨습니다. 주님은 <물과 피와 성령의 복음으로 오셨다> (요일 5:6-13)는 것입니다. “우리가 저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이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 (요일 1:5) ㅡ예수님 안에는 어두움이, 즉 죄가 전혀 없습니다. 그 참 빛으로 오신 주님이, 우리 마음에 진리의 복음을 비춰주셨는데, 그 빛을 감사함으로 받은 자들은 모든 어두움에서 벗어나서 빛의 자녀가 됩니다. 이것이 거듭나는 것입니다.
거듭남이란 무엇인가?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수 없느니라" (요 3:3) 하셨고, 또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요 3:5)고 말씀하셨습니다.
거듭남이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은혜로 죄인이 의인되는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나 스스로는 도저히 구원을 이룰 수 없는 죄 덩어리인 것을 인정하고, “하나님 나는 죄 덩어리입니다. 나는 도저히 죄에서 헤어나올 수 없기에 지옥가야 마땅한 자입니다. 하나님 나를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나를 구원해 주세요” 라고 하나님께 항복하고 나온 자에게 주님이 베풀어 주시는 죄 사함의 축복이 바로 <거듭남>입니다. “빛이 있으라” 하신 주님께서 그런 자의 마음에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비춰주심으로 모든 죄가 없어지는 역사가 <거듭남>입니다.
“아! 그렇군요! 나는 정말 지옥에 갈 수 밖에 없는 자인데, 스스로는 도저히 구원 받을 수 없는 자인데, 하나님께서 당신의 외아들인 예수그리스도를 우리와 똑 같은 육신의 모습으로 보내주셨군요! 그리고 인류의 어린양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아주셔서 우리의 모든 죄를 친히 다 담당하시고, 십자가로 지고 가셔서 ‘다 이루었다!’ 하고 죽기까지 온전하게 죄의 값을 치러 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실질적으로 없애주셨군요! 전능하신 주님께서 인류 시작서부터 종말까지의 모든 죄를 세례로 단번 만에 다 넘겨받아서 십자가에서 깨끗하게 없애주셨군요! 맞습니다! 주님께서 행하신 일이 진리의 복음입니다!” 하고 마음으로 믿어서 죄 사함을 받는 것이 바로 거듭남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전에는 너희가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고 선포하시는 것입니다. <거듭난다>는 것은 죄인이 의인으로 “다시 나는”(being born-again) 것입니다. 죄인에서 의인으로 다시 나는 것은 분명한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굼벵이는 수년간 땅속 흑암에서 살다가 나무에 올라가 번데기가 됩니다. 그리고는 등껍질을 찢고 나와 날개를 펼쳐서 매미가 됩니다. 얼마 전에는 분명이 굼벵이였는데, 이제는 매미입니다. “그 굼벵이”가 분명히 “이 매미”로 바뀌었는데, 이 둘이 같습니까, 다릅니까? 그 놈이 이 놈인데, 희한하게도 완전히 다릅니다. 굼벵이는 땅 속 깜깜한 데서 더러운 것을 먹고 사는 데, 매미는 빛으로 충만한 창공을 날면서 하나님께서 지으신 세계를 찬양하면서 삽니다. 이렇게 거듭남은 분명한 현상이고, 죄인과 의인은 분명히 다른 것입니다.
소위 “영접기도”를 하면 거듭나는가?
요한 복음 1장 9절부터 14절 말씀입니다. “참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9-14)
위 말씀에서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란 <거듭난 자들>을 뜻합니다. 참 빛이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육신으로 오셔서, 세례와 십자가의 사역으로 우리의 흑암(죄)을 완전하게 없애 주셨습니다. 이제 주님이 우리 죄를 없애주신 진리를 말씀하는 <물과 성령의 복음>을 믿는 자는 그 마음에 어둠(죄)가 단번에 사함 받게 됩니다. 영접(迎接)이란 “기쁨으로 환영해서 받아들인다”라는 뜻입니다. 진리의 빛인 예수님을 믿음으로 <영접>한 사람은 <죄 사함>을 받아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말은 여섯 글자에 불과하지만,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은 엄청난 영광이고 특권입니다.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아들이자 삼성그룹의 부회장인 이재용씨를 보세요! 단지 삼성그룹 회장의 아들로 태어났기 때문에 엄청난 재벌왕국인 삼성을 물려받고 있습니다. 재용씨는 현재 40대 중반의 나이인데, 나이가 육십이 넘은 임원들이 재용씨 앞에서 고개를 조아리고 쩔쩔 맵니다.
이 세상의 재벌 자녀만 되도 그럴진대,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는 그에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죄를 깨끗이 없애주신 그 진리의 복음을 기쁨으로, 감사함으로, 주린 심령으로 받아들인 자는 분명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 자녀의 권세는 대단한 것입니다. 하나님 자녀는 하나님께서 친히 보호하십니다.
나에게도 자녀가 있는데, 그 자녀들이 초등학교에 다닐 때에 운동회에 간 적이 있습니다. 운동회에서 많은 애들이 달리기를 해도 나의 눈은 항상 내 자식들에게 가 있었습니다. 매스게임 순서 때에는, 그 많은 애들이 함께 하고 있어도 나의 눈에는 다른 애들이 보지고 않고 내 자식만 보였습니다.
"여호와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그들의 부르짖음에 기울이시는도다"(시 34:15) 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눈은 우리를 향하십니다. 언제든지 잘못될까 보살피시고, 당신의 자녀인 의인들을 의의 길로, 복된 길로 인도하십니다. 이제 하나님 자녀가 얼마나 영광되고 대단한 권세가 있는 줄 아시겠습니까?
그런데 요한복음 1장 12절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이 “영접”이라는 말의 뜻을 제대로 이해 하지 못해서, “예수님을 자기의 구주라고 입술로 시인하는 것”을 “영접”이라고 정의합니다. <물과 성령의 복음>을 믿지 않고 그냥 <영접기도>를 하면 죄 사함 받고 거듭납니까?
세계적인 기독교 선교단체들 중에는 소위 <사영리”(四靈理)라는 소책자>를 가지고 간단하게 복음을 설명하고서는, 그 설명한 내용을 믿겠다고 손을 드는 사람에게는, “자 나를 따라 기도하십시오” 하고는 소위 <영접기도>를 시킵니다.
“예수님 나는 죄인입니다. 나는 지옥 갈 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셔서 나의 죄를 대속하시려고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어주셨습니다. 이제 예수님이 나의 구세주이신 줄 내가 믿습니다. 주님 내 마음에 들어오셔서 나의 왕이 되어 주시옵소서. 내가 주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합니다.”ㅡ 이렇게 제대로 뜻도 모르면서, 얼떨떨한 상태로, 앵무새처럼 영접기도를 따라 하고 나면, 인도자는 “할렐루야! 이제 당신은 거듭났습니다”하고 선언하고 축하합니다.
그렇게 영접기도를 한다고 거듭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그렇게 기도한다고 마음의 죄가 흰 눈처럼 깨끗이 없어집니까? 절대로 죄는 안 없어집니다. 물론 그냥 그렇게 기도하고도 “이제 나는 죄가 없다”라고 거짓말을 하는 자들도 가끔 있지만, 그것은 자기 생각일 뿐입니다. 진리의 말씀인 <물과 성령의 복음>을 믿는 믿음을 보시고, 주님이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하고 선포하셔야 해야만 우리의 마음에서 죄가 흰 눈같이 없어집니다. 그래야만 성령이 죄 사함 받은 마음에 임하십니다.
먼저 심히 죄인이 되어야 죄 사함을 받습니다
주님을 “영접”하려면 먼저 자기가 심히 죄인인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주님, 나는 지옥에 갈 자입니다. 정말 죄 덩어리이고 구제불능입니다. 나를 이 모든 죄에서 구원해 주세요” 하고 자기가 심히 죄인인 것을 인정하는 자만이 주님이 자신의 모든 죄를 온전히 없애 놓으신 <물과 성령의 복음>을 기쁨으로 마음에 믿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주님이 내 모든 죄를 당신이 받으신 세례와 십자가의 보혈로 없애주셨군요! 고맙습니다, 주님! 정말 이와 같이 하여 나를 구원해주시지 않았다면, 나는 도저히 구원 받을 수 없는 자입니다. 주님! 이제 내가 주님이 나의 구주인 것을 믿습니다” 하고 고백하게 됩니다.
진리의 복음인 <물과 성령의 복음>을 기쁜 마음으로 믿는 자가 누구입니까? 자기가 구제불능의 죄 덩어리인 줄 아는 자만이 주린 심령으로 <물과 피로 임하신 주님>(요일 5:4-8)을 영접합니다. “그 이름을 믿는 자”란 말씀에서, <이름>이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행하신 구원의 역사>를 지칭합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마 1:21)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를 죄에서 구원한 <물과 성령의 복음>이 “그 이름”의 뜻입니다. 그러므로 <물과 성령의 복음>을 마음으로 온전하게 믿는 것이 바로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창 1:5)
저녁이 먼저이고 아침이 그 뒤를 이었습니다. 어떤 자가 하나님의 빛 안에서 생명의 첫째 날을 누리게 되느냐? 먼저 저녁을 맞은 자라야 빛의 아침을 맞습니다. 자기의 어두움을 진정으로 깨달은 자가 찬란한 아침을 맞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자기가 심히 죄인인 것을 인정하는 자만이 낮에 속할 수가 있다는 뜻입니다.
굉장히 중요한 말씀입니다. 분명히 한 번 지옥에 간 자만이, 믿음으로 서 있는 은혜의 나라에 들어가게 된다는 것입니다(롬 5:2). 저녁이 먼저 와야만 아침이 오는 것입니다. 자기 마음이 심히 죄인인 것을 인정하는 저녁도 되지 않았다면, 영의 아침이 절대로 올 수 없습니다. 파수꾼이 새벽을 기다림 같이, 간절하게 주님의 구원을 바라는 자에게만 복음의 능력이 역사되는 것입니다.
바래새인들은 왜 구원을 받지 못했습니까? 그들은 사실은 여전히 어두움 가운데 거하면서 자기들이 이미 빛이라고 착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얼마나 흑암(죄)이 깊음 위에 있는 자인지를 깨닫지 못한 자는 절대로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
여러분, 죄 사함을 받으려면 먼저 자기 “꼬락서니”를 알아야 합니다. 먼저 자신이 쓰레기 같이 얼마나 형편없는 자인지를 진실하게 인정해야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얼마나 형편없는 자인지 자신이 잘 모릅니다. “나는 그래도 너희들보다는 낫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당신도 현대판 바리새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창세기 1장 2절로 <땅에 어떤 상태인지>를 먼저 분명하게 짚어주신 것입니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고 말씀하십니다. 혼돈, 공허, 흑암ㅡ 이 3가지가 우리의 실제 모습인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실상이 드러나지 않도록 외식과 위선의 물로 가리우고 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신(神)인 성령님이 죄가 많은 땅(마음)에 들어갈래야 들어갈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수면 위를 맴돌면서, “제발 네 “꼬락서니”를 제대로 보고 네가 어두움인 줄 깨달아 빛으로 나오너라!” 하고 강청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는 창세기 1장 3절에서 5절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죄를 단번에 없애주신 하나님의 섭리가 무엇이며, 그 섭리가 얼마나 아름답고 완전한 것인지에 대해 말씀을 나눴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에 굴복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맞습니다, 주님! 주님께서 나를 이렇게 구원해주시지 않았다면 나는 절대로 죄에서 헤어나올 수 없는 자이고,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하셨는데, 지옥의 영벌에서 벗어날 수 없는 자였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나를 <이와 같이 하여> 구원해주시니 황감(惶感)할 따름입니다. 그저 저는 빛으로 오신 주님의 복음을 온 마음으로 믿습니다!” 염치없지만 그저 감사함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덥석 받을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를 모든 죄에서 단번에 구원해주신 하나님의 섭리와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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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1:3 빛으로 오신 예수님의 구원사역, 물과 성령의 복음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창 1:3)
빛이 오면 어두움은 즉시에 물러갑니다. 우리는 흑암이 깊음 위에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고 말씀하셔서 비춰주신 참 빛으로 말미암아 우리 마음의 모든 죄가 단번에 사라졌습니다.
죄로 말미암아 지옥에 갈 수 밖에 없었던 우리를 향해서,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 하셨는데, 이 말씀이 바로 우리 모두에게 복음이며 기쁜 소식입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 있고, 모든 믿는 자들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복음 안에 있습니다.
주님은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우리를 모든 조에서 해방시키는 진리의 복음, 온전한 구원의 능력이 있는 복음은 과연 무엇인가? 진정 우리 마음의 죄를 단번에 흰 눈같이 씻어주어서 우리를 죄인에서 의인으로 거듭나게 하는 복음은 무엇인가? 그 복음이 바로 우리를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게 하는 “물과 성령의 복음”입니다. 오늘 저는 물과 성령의 복음에 대해서 자세히 말씀 드리겠습니다.
물과 피와 성령으로 임하신 예수 그리스도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 5장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물과 피와 성령으로 임하신 하나님이라고 선포합니다. 그리고 “물과 피와 성령이 합하여 하나”라고도 선포합니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뇨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자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증거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증거하는 이가 셋이니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이 합하여 하나이니라” (요일 5: 5-8)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돌아가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했다는 사실은 잘 알고 믿습니다. 그런데 십자가의 피만을 믿었데도 마음의 죄가 흰 눈같이 씻겨집디까? “증거하는 이가 셋이니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이 합하여 하나이니라”고 말씀하셨으니, “물과 피와 성령”의 사역을 다 믿어야 온전한(하나인) 구원을 받습니다. 그런데 그 셋 중에서 “물”의 사역은 빼고 “피”와 “성령”의 사역만 믿으면 “하나”가 되겠습니까? 화로(火爐)의 다리는 세 개인데, 그 다리 하나를 없애면 그 화로가 제대로 반듯하게 서겠습니까?
요한복음 3장에서는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 3:5)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물과 피로 임하셔서 행하신 구원의 사역이 바로 물과 성령의 복음이며, 그 복음을 깨닫고 믿을 때에 성령의 역사로 거듭나게 되는 것입니다.
죄 사함으로 인한 구원을 받으려면 먼저 심히 죄인이 되어야 합니다
물에 빠져 있으면서도 자기는 물에 빠지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자를 건져 줄 수 없습니다. 그를 건지겠다고 설쳤다가는 핀잔만 듣습니다. 그와 같이 자기가 죄 덩어리라고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이 주시는 죄 사함을 받지 못합니다. 저는 창세기 복음설교의 둘째 편에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라는 제목으로 우리가 얼마나 죄로 철저하게 오염되어 있는지에 대해 말씀 드렸습니다.
성경은 인간을 가리켜, 범죄 곧 죄를 짓는 현상이 오래된 “행악의 종자”라고 말씀합니다. 또 “우리 스스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는 죄 덩어리들”이라고도 말씀합니다. “주께서 기쁘게 의를 행하는 자와 주의 길에서 주를 기억하는 자를 선대하시거늘 우리가 범죄하므로 주께서 진노하셨사오며 이 현상이 이미 오랬사오니 우리가 어찌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사 64:5)라고 말씀합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 사람은 그 종자 자체가 죄를 짓는 본성을 가지고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죄를 짓습니다. 죄를 짓는 현상이 아주 오래 되었다라는 말씀은 첫 사람 아담 때부터 내려온 현상이라는 말입니다. 죄를 짓는 현상은 우리 공동의 조상 아담으로부터 내려온 아주 오래된 현상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의 죄를 “너희 조상의 유전(遺傳)한 망령된 행실” (벧전 1:18)이라고 말씀합니다. 우리 모든 사람은 아담으로부터 죄의 유전자와 죄의 독성을 물려받고 태어난 자들입니다. 마치 독사가 독을 만드는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나서 다른 생명체를 물면 그 독이 그 생명을 죽이는 것과 같습니다.
주님은 “사람에게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적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흘기는 눈과 훼방과 교만과 광패니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막 7:20-23)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은 절대적으로 악하고 더러운 존재들입니다. 사람은 그 마음 자체가 더러운 죄악으로 꽉 채워져 있습니다. 그리고 마음 속의 죄들은 범죄할만한 환경을 만나면 밖으로 쏟아져 나옵니다. 우리는 죽을 때까지 부패한 죄를 짓는 자입니다.
그러면 이토록 많은 죄를, 죽는 날까지 날마다 짓는 죄를 어떻게 다 씻을 수 있습니까? 그래서 이사야서의 말씀에도 “우리가 어찌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라고 반문하지 않았습니까? 우리 스스로는 도저히 구원을 얻을 수 없는 자들입니다. 우리는 다 부정(不淨)한 자입니다. 다 더러운 자들입니다. 멸망을 받을 자들입니다. 항상 죄를 짓는 자들이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자기 힘으로는 죄에서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자기 힘으로 죄에서 해방될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죄와 인간의 번뇌에서 벗어나 보려고 석가모니도 보리수 나무 아래 앉아서 용을 써 봤지만 다 헛일이었습니다.
“구스인이 그 피부를, 표범이 그 반점을 변할 수 있느뇨 할 수 있을찐대 악에 익숙한 너희도 선을 행할 수 있으리라” (렘 13:23) 하셨고, 또 “네가 잿물로 스스로 씻으며 수다한 비누를 쓸찌라도 네 죄악이 오히려 내 앞에 그저 있으리니” (렘 2:22) 라고 말씀하십니다. 인간은 근본 더러운 죄악으로 가득 차서 태어났기 때문에 어떤 수단으로도 자신의 죄를 스스로 씻을 수가 없습니다.
죄로 오염된 우리가 죄를 지을 수 박에 없는 현상은 아주 오래된 것입니다.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롬 5:12) 라고 말씀하신 바와 같이, 정확이 말하면 이것은 첫 사람 아담의 탓입니다. 그런데 “이 현상이 이미 오랬사오니 우리가 어찌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하신 말씀대로 우리 스스로는 죄를 씻을 길도 없고 우리 혼자의 힘으로는 구원을 받을 길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천국 영생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천국의 영생에 들어갈 수가 있습니까?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천국은 죄가 없는 곳이기에 죄가 없는 자라야 천국에 들어갑니다. 그런데 죄 없는 자가 되려면 하나님이 세운 율법의 말씀을 평생 동안 온전하게 다 지켜서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인정 받아야 됩니다. 그런데 과연 인간이 그렇게 할 수가 있느냐? 율법을 다 지켜서 의인되는 길은 전혀 없고 오직 하나님께서 우리 모든 죄인들의 죄를 없애 주셔야만 의인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율법 외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롬 3:20-24)
이미 말씀 드린 대로 우리가 율법을 지켜서 스스로 의에 이르는 것은 절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율법을 지키는 것과 상관없이 우리가 의로워지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우리 모든 사람의 죄를 단번에 없애 주신 구속의 사역을 해 주셨는데, 주님의 구속사역을 믿음으로 값없이 죄 사함을 받는 길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기 되는 이 길은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율법과 선지자, 즉 구약의 모든 말씀이 다 증거하는 것은 바로 구원자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육체를 제물로 삼아 단번에 영원한 속죄의 제사를 드려 주심으로 모든 사람의 죄가 온전히 대속(代贖)되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과 인류 사이의 화목제물이 되신 예수님
사실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갈라놓는 것은 죄입니다. 죄가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갈라놓고 우리가 하나님께 다가갈 수 없게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려면 죄를 대속할 속죄제물이 드려져야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의 죄를 없애기 위해서 당신의 아들인 성자(聖子) 하나님을 화목제물로 우리에게 보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영입니다. 우리의 죄를 담당하고 대신 죽임을 당하려면 영이신 하나님이 육체를 입어야 하는데, 구약 성경에서 이미 이런 약속을 다 해 놓으셨습니다.
“보라 장차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이라 하리라”(사 7:14, 마 1:23) 하신 약속대로,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육체를 입고 구원자로 오셔서 우리의 화목제물이 되어주셨습니다.
대속(代贖)의 속죄제사
이제 화목제물로 드리는 속죄제사에 대해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그 예물이 소의 번제이면 흠 없는 수컷으로 회막 문에서 여호와 앞에 열납하시도록 드릴찌니라 그가 번제물의 머리에 안수할찌니 그리하면 열납되어 그를 위하여 속죄가 될 것이라 그는 여호와 앞에서 그 수송아지를 잡을 것이요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 피를 가져다가 회막문 앞 단 사면에 뿌릴 것이며”(레 1:3-5)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하셨듯이 자기의 죄 값을 치르려면 우리가 죽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랑의 하나님은 우리를 죽음에서, 즉 지옥의 멸망에서 구원하시려고 대속(代贖)의 길을 예비해 주셨습니다. 대속(代贖; Atonement)이란 “대신 값을 지불하고 사다”라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 편에서 대속의 제물에게 울의 모든 죄를 넘겨서 그 제물을 심판하심으로써, 우리는 값없이 죄에서 구원을 받게 하신 은혜의 법이 바로 대속(代贖)의 속죄제사입니다.
그러면 대속(代贖)의 속죄제사는 어떻게 드립니까?
첫 째, “흠 없는 제물”이 준비되어야 합니다
레위기 1장 3절에, “그 예물이 소의 번제이면 흠 없는 수컷으로 회막 문에서 여호와 앞에 열납하시도록 드릴찌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속죄의 제사를 드리려면 죄인은 첫째로 흠 없는 제물을 성막으로 끌고 나와야 합니다. 흠이 있는 제물은 “불합격 제물”입니다. 희생제물로 드려질 양이나 염소나 소는 온 몸에 상처 하나 부스럼 하나라도 있어서는 안됩니다. 몸 전체가 온전히 깨끗해야 합니다.
둘째, 죄인이 희생제물의 머리에 안수해야 합니다
“그가 번제물의 머리에 안수할찌니”라고 하셨는데, 안수’(按手)는 죄인이 희생제물인소나 양의 머리에 두 손을 얹는 것입니다. 안수는 죄인의 죄가 희생제물에게 넘어가도록 하나님이 세운 법입니다. 즉 안수는 “죄가 넘어 간다” 혹은 “죄가 전가된다”는 뜻입니다. 전가(轉嫁-옮겨서 심겨진다)라는 말의 구성을 보면, 옮길 ‘전’(轉)자에 심을 ‘가’(嫁)자로 “옮겨져서 팍 심기는 것”을 말합니다. 안수를 하면 죄가 희생제물에게로 넘어가서, 마치 산탄 총알이 박히듯이, 그 제물의 살 속에 깊이 박히게 됩니다.
하나님의 법대로, 자기의 모든 죄를 안수를 통해 그 제물에게로 옮겨 주실 것을 믿음으로 죄인이 희생제물의 머리에 안수를 하고 손을 떼었습니다. 그러면 이제 죄인의 죄는 어디에 있습니까? 그의 모든 죄는 안수를 받은 희생제물에게 넘어가 제물의 육체에 박혀 있습니다.
셋째, 이제 희생제물이 피를 흘리고 대속의 죽음을 맞이해야 합니다
죄인은 희생제물의 머리에 안수함으로 자기 마음의 죄를 희생제물에게로 다 넘긴 후에 그 제물을 제사장에게 넘깁니다. 그러면 제사장은 그 짐승의 목을 칼로 따서 피를 받습니다.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레 17:11)하신 말씀대로 죄는 생명으로 값을 치러야 속해지는데, 하나님의 공의한 법대로 이 제물이 심판을 받고 대신 죽음을 당해 줌으로 우리의 죄의 값을 치르게 했습니다.
이제 제사장은 그 피를 번제단의 뿔에 바르고 남은 것은 번제단 밑, 즉 땅에 쏟고 그 고기는 각을 떠서 번제단에 올려 놓고 하나님께서 열납(悅納-기쁘게 받음)하시도록 태워 드립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그 희생제물의 타는 냄새를 흠향하시고 “그래 좋다! 이 희생제물이 너를 구원했구나!”하고 인정하심으로 구약시대의 사람들은 죄에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 속죄 제사가 바로 화목제사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율법을 어기고 나서 자기가 죄를 지었음을 깨닫게 되면 이렇게 속죄제사를 드리곤 했습니다. 이것은 하루 하루의 죄를 사함 받는 제사였습니다. 그러나 날마다 죄를 짓는 자들이 하루도 빼지 않고 제사를 지냈겠습니까? 그리고 속죄하지 못한 죄는 마음에 쌓이게 됩니다.
대속죄일(大贖罪日)의 제사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일년 동안 지은 모든 죄를 단번에 사함 받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제7월 14일에 대제사장은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지난 1년 동안 지은 모든 죄를 단번에 사함 받도록 대속죄일의 제사를 드렸습니다.
“아론은 자기를 위한 속죄제의 수송아지를 드리되 자기와 권속을 위하여 속죄하고 또 그 두 염소를 취하여 회막문 여호와 앞에 두고 두 염소를 위하여 제비뽑되 한 제비는 여호와를 위하고 한 제비는 아사셀을 위하여 할찌며
아론은 여호와를 위하여 제비 뽑은 염소를 속죄제로 드리고 아사셀을 위하여 제비 뽑은 염소는 산대로 여호와 앞에 두었다가 그것으로 속죄하고 아사셀을 위하여 광야로 보낼찌니라” (레 16:6-10)
하루치 속죄제사는 죄인이 직접 제물의 머리에 안수하고 그 제물을 죽여서 피를 뿌리고 번제를 드리는 일을 일반 제사장이 담당하지만, 이 대속죄일의 제사는 대제사장이 홀로 주관해서 제사를 드렸습니다.
대속죄일(大贖罪日)의 제사는 몇 단계로 드려집니다.
첫째, 대제사장인 아론은 먼저 수송아지를 제물로 삼아 자기와 자기 가족의 속죄를 위해 제사를 드립니다. 아론과 그의 가족도 사람이기에 늘 죄를 짓습니다. 그러므로 아론이 자기 민족을 대표해서 하나님께 속죄제사를 드리려면 먼저 자기부터 죄 사함을 받아야 했습니다.
물론 제물로 준비할 수송아지는 흠 없어야만 합니다. 그 흠 없는 수송아지의 머리에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안수하고, 그 송아지를 잡아서 그 피를 지성소의 언약괘 위와 그 앞에 일곱 번 뿌립니다. 또 그 피를 번제단의 네 뿔에 바르고 단 위에도 일곱 번 뿌립니다.
또 따로 준비해 놓았던 두 염소 중에서 제비 뽑아 택한 한 마리 염소도 먼저 드린 수송아지와 똑같이 안수하고 잡아서 그 피를 번제단 뿔에 바르고 단 위에도 뿌리고 예식을 행합니다. 아론은 그 첫 염소의 머리에 백성의 대표자로 안수합니다. 이 안수로 백성의 1년치 “죄가 단번에 넘어”갔습니다. 그는 이제 모든 이스라엘 백성의 1년치 죄를 넘김 받은 이 염소를 회막 뜰에서 잡습니다. 그리고 그 피를 가지고 첫 번째 드렸던 수송아지의 경우처럼 지성소에 들어가서 여호와의 법궤 위에 피를 뿌립니다. 이 제사는 “이스라엘 자손의 부정과 그 범한 모든 죄를 인하여 지성소를 위하여 속죄하고 또 그들의 부정한 중에 있는 회막을 위하여” (레 16:16) 속죄하는 제사였습니다.
여기서 유념할 것은 아론이 그 피를 가지고 성막의 지성소에 들어가서 법궤 위와 그 동쪽에 뿌렸던 것은 자기의 죄의 대가를 지불한 그 피가 없이는 결코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또 그 수송아지와 염소의 피를 번제단 뿔에 바른 것은, 아론과 백성들의 죄가 하나님의 심판책에서 도말(塗抹―칠하여 지워버림)된 것을 나타냅니다. “유다의 죄는 금강석 끝 철필로 기록되되 그들의 마음 판과 그들의 단 뿔에 새겨졌거늘 “(렘 17:1)하신 말씀과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대로 심판을 받으니”(계 20:12) 말씀을 주목해 보십시오.
우리가 죄를 범하면 그 죄는 우리의 마음 판과 번제단 뿔에 새겨 집니다. 따라서 번제단 뿔은 하나님 보좌 앞에 놓인 심판책(행위록책)을 계시합니다. 그리고 두 곳에 기록된 죄를 모두 사함 받아야 합니다. 성막 안에서 수송아지와 염소로 드린 제사로 아론과 이스라엘 백성의 일 년치 죄가 하나님 앞에서는 사함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성막 밖에 있기 때문에 성막 안에서 진행된 제사에 대해 알수 없습니다. 즉, 백성들은 아직 그들의 마음에 기록된 죄가 사함을 받았다는 확신을 가질 수 없었습니다. 백성들은 마음에 가득 쌓인 1년치 죄를 품은 채 숨죽이고 대제사장이 성막의 뜰 문 밖으로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성막 안의 제사를 마친 대제사장이 성막의 뜰 문 휘장을 열고 밖으로 나옵니다. 그리고 아론은 이제 남은 한 마리 염소로 백성들을 위한 속죄의 제사를 드립니다. 아론은 남은 염소의 머리에 대표로 안수하여 백성들의 1년 치 죄를 단번에 그 염소에게 넘깁니다.
“그 지성소와 회막과 단을 위하여 속죄하기를 마친 후에 산 염소를 드리되 아론은 두 손으로 산 염소의 머리에 안수하여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불의와 그 범한 모든 죄를 고하고 그 죄를 염소의 머리에 두어 미리 정한 사람에게 맡겨 광야로 보낼찌니 염소가 그들의 모든 불의를 지고 무인지경에 이르거든 그는 그 염소를 광야에 놓을찌니라” (레 16:19-21)
아론이 이스라엘 백성의 대표로 염소의 머리에 안수해서 백성 전체의 1년치 죄가 단번에 아사셀 염소에게로 넘어갔습니다. 그리고 백성의 죄를 담당한 그 염소는 미리 정한 사람의 손에 이끌려 풀 한 포기 없는 광야의 사막에 버려집니다. 염소는 그 광야에서 죽임을 당함으로써 백성들의 죄값을 대신 지불합니다. 그렇게 속죄가 이루어졌습니다.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 (시 103:12) 라고 말씀하신 대속(代贖)의 방법으로 장차 하나님께서 전인류의 죄를 단번에 없애주실 구원의 사역을 예표(豫標)해 주셨습니다.
대속죄일의 제사는 “장차 오는 좋은 일”의 예고편입니다
그런데 이런 성막의 제사로는 사람들의 마음의 죄를 완벽하게 없애줄 수 없었습니다. 대속죄일의 제사를 드리고 마음도 홀가분하게 돌아가는 길에 벌써 죄를 짓는 것이 인간입니다. 어떤 이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예전에 자기 돈을 떼어 먹고 도망간 놈을 만나 싸움이 붙습니다. 어떤 이는 그 길에서 술에 취해 그만 사고를 칩니다. 1년치 속죄제사를 드리고 잠시 마음이 시원했던 것은 잠깐이고 곧 바로 죄가 마음에 쌓이기 시작합니다. 방금 드린 제사도 다 무효가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해마다 제칠 월 십사 일에 반복적으로 드렸던 대속죄일의 제사는 온전한 죄 사함을 주는 것이 아니었고, 그것은 단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 즉 하나님이 친히 베푸실 영원하고 완전한 제사의 예고편이었습니다.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든지 온전하게 할 수 없느니라”(히 10:1)
율법에 속한 제사들은 장차 오실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인류를 위해 드려주실 영원하고 온전한 속죄제사의 예표(豫表)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우리의 죄를 영원히 없애주실 영원한 속죄의 제사에 대해 말씀을 확인하기 전에 다시 한 번 “속죄제사의 세 가지 필수요건”을 확인해 봅시다.
하나님께서 열납(悅納)하시는 속죄제사는, 1) 흠 없는 희생제물이 준비되어야 하고, 2) 죄인이 희생제물의 머리에 안수하여 죄를 희생제물에게 넘겨야 하고, 3) 희생제물이 피 흘리고 죽음으로 담당한 죄의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도 이 세 가지 조건을 충족시키는 영원한 속죄의 제사를 드려 주심으로 모든 인류의 죄를 영원히 대속하시고 하나님과 인류를 다시 화목하게 하신 제물이 되어주셨습니다. 이제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히 10:10)하신 말씀이 우리에게 이루어졌습니다.
흠 없는 제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그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저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마 1:18-21)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고, 하나님입니다. 거룩한 영이신 제2위 성자 하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따라 우리와 같은 육신을 입고 인간 세상에 오셨습니다. 헤롯이 유다의 왕으로 있을 때에, 나사렛 마을의 목수 요셉과 약혼한 마리아에게 천사가 나타나, 그녀가 성령으로 하나님의 아들을 잉태하게 될 것이라고 알려 주었습니다.
요셉은 자기의 약혼녀 마리아가 잉태된 사실을 알고 가만히 파혼을 하기로 했었습니다. 그런데 주의 천사가 꿈에 요셉에게 나타났습니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마 1:20-21) 하셨습니다. 인류의 대속제물이 되려고 성령으로 말미암아 처녀 마리아의 몸에 잉태된 분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고 단지 처녀의 몸에서 육신만을 입고 오셨으니, 예수님은 흠이 없는 분입니다.
구약의 속죄 제사를 드리려면, 첫째로 흠 없는 제물이 있어야 했고, 둘째로 안수로 죄를 넘겨야 했고, 셋째로 그 제물이 죽어야 되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사랑으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공의한 구원의 법입니다. 자, 예수님은 흠 없는 분이므로, 이제 전인류의 속죄제물로 “합격”입니다.
예수님이 받으신 세례의 능력
그러면 속죄제사의 둘째 요건인 “안수”를, 예수님께서 어떻게 성취하셨습니까? 예수님이 받으신 세례는 안수의 형식으로 이루어졌는데, 바로 이 세례를 통해서 세상 죄가 예수님에게 다 넘어갔다고 성경은 선포합니다.
“이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로서 요단강에 이르러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 하신대 요한이 말려 가로되 내가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신대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 오실쌔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마 3:13-17)
“이때에”란 “예수님이 30살이 된 때에”라는 것입니다. 아론의 자손이 제사장으로 위임되는 나이가 30살입니다 (민수기 4장). 예수님은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어주셨습니다(히 6:20). 예수님은 하늘의 대제사장입니다.
한편 하나님께서는 전인류의 대표자로서 세상 죄를 예수님에게 넘길 이 땅의 대제사장을 준비하셨습니다. 그가 바로 세례 요한입니다. 이 세례 요한은 대제사장 아론의 후손입니다(눅 1:5). 대제사장 아론은 이스라엘 백성을 대표해서 아사셀 염소의 머리에 안수함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일년 동안 지은 죄를 단번에 염소에게 다 넘기는 사역을 했던 사람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세례 요한에 대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이가 일어남이 없도다”(마 11:11)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세례 요한이 인류의 대표자란 뜻입니다. 그러니 대제사장 아론의 후손이면서 전인류의 대표자인 세례 요한이 예수님에게 안수의 형식으로 세례를 베푼 사역은 바로 세상 죄를 예수님에게 다 넘기는 엄청난 역사였습니다.
세례 요한 앞에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러 나왔습니다. 세례 요한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오신 하나님인줄 금방 알아보고, “내가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하고 예수님 앞에 머리를 조아렸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세례 요한에게 준엄하게 명령합니다.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이제 허락하라”는 말씀은 “너는 이제 내 머리에 안수를 해서 세상 죄를 나에게 다 넘겨라”는 말씀입니다. 그리하면 이 세상에 죄가 다 없어지고 모든 의가 이루어집니다. 요한이 베푼 바로 “그 세례”(the Baptism―행 10:37)로 우리의 모든 죄가 예수님에게 단번에 넘어가 전가(轉嫁)되었습니다.
안수(按手)는 “죄가 넘어간다, 전가된다”라는 뜻입니다. 이라고 했죠? 세례 요한은 대제사장 아론의 후손이고 인류의 대표입니다. 인류의 대표자인 세례 요한이 흠 없는 제물로 오신 예수님의 머리에 안수함으로써, 아담에서부터 세상 종말까지의 인류 전체의 죄가 세례 요한의 어깨를 타고 예수님에게 단번에 다 넘어갔습니다. 할렐루야!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마3:15)하신 말씀대로, 예수님이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이 때에, 이 세상의 모든 죄가 예수님에게 다 넘어갔고, 이 세상에는 하나님의 “모든 의”가 이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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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수, 죄를 넘기는 하나님의 법> <세례로 세상 죄를 넘김받은 예수님>
그림출처: www.sickleoftruth.com ⓒSamuel Kim
아담에서부터 이 세상 종말의 날까지 인류 전체가 지었고 짓고 있고 장차 지을 모든 죄가 “세상 죄”입니다. 그 모든 “세상 죄”가 세례 요한의 안수로 예수님에게 다 넘어갔기에 이 세상에는 이제 죄가 없고 그 대신 하나님의 의가 이루어졌습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은 예수님에게 세례를 베푼 이튿날, 예수님께서 지나가시는 것을 보고 자기의 제자들에게 선포합니다.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 1:29) 이제 예수님이 세상 죄를 다 짊어 지신 것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세상 죄를 담당한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을 완성하려고 십자가로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 우리의 구원을 “다 이루었다!”(요 19:30)
속죄제사는 죄를 담당한 희생제물이 피를 흘려서 죄의 값을 대신 치르고 죽음으로 완성됩니다. 예수님도 받으신 세례(안수)로 이 세상의 모든 죄를 다 짊어지셨기에 이제 십자가에 오르셨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주님은 피 흘려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값을 대속하려고 십자가 형틀에 못 박혔습니다. 그리고 십자가 위에서 6시간 동안 대속의 피를 흘리시고 마지막에 “다 이루었다”(요 19:30)고 크게 외치신 후 돌아가셨습니다.
주님이 무엇을 “다 이루었다”고 하신 것입니까? 그것은 주님이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심으로 이 세상의 모든 죄를 당신의 육체에 넘겨받으셨는데, 주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로 그 모든 죄의 대가를 “다 갚아 주었다, 다 지불했다”는 뜻입니다.
주님께서 “다 이루었다”고 크게 외치시고 돌아가실 때에 성전의 지성소와 성소를 가로막고 있었던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큰 폭으로 쫙 갈라졌습니다. 이 지성소에는 오직 대제사장만 일년에 한 차례씩, 그것도 속죄제의 수송아지의 피와 염소의 피를 들고서야 들어갈 수가 있었습니다. 이 지성소는 하나님이 임재(臨在)하는 곳이며 하나님의 보좌를 계시합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의 모든 죄를 속량하시기 전까지는 아무나 지성소에 들어갈 길은 전혀 없었지만, 이제는 예수님이 세례로 이 세상 모든 죄를 단번에 다 담당하시고 십자가에서 피 흘리심으로 그 모든 죄의 대가를 단번에 갚아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히 10:19-20)고 선포합니다.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오셔서, 세례로 모든 죄를 당신의 육체에 담당하시고 그 몸을 찢으셔서 천국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주님이 “다 이루었다” 하는 순간에 하늘 문이 활짝 열렸습니다. 이제 누구든지 예수님이 세례 받으실 때에 이 세상 모든 죄를, 나의 모든 죄를 온전하게 담당했다라고 믿는 사람은 담대하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도록 주님이 우리의 구원을 완성해 놓으셨습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흠 없는 제물로 오셔서, 세례 요한에게 받으신 세례로 세상 죄를 다 담당하시고, 십자가에서 피 흘려 인류의 모든 죄를 온전히 대속해 주셨다는 구원의 말씀이 바로 “물과 성령의 복음”입니다. 이제는 누구든지 이 “물과 성령의 복음”을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고 의인이 되어 천국 영생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값없이, 오직 믿음으로 얻는 구원
로마서 3장 말씀을 통해서 “물과 성령의 복음”이 진리임을 확증하고 설교를 마치겠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롬 3:23-24)
모든 사람이 죄를 가지고 이 땅에 태어나서 평생에 죄를 지을 수 밖에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 곧 천국 영생에는 이르지 못하고 오히려 지옥의 심판을 피할 수 없는 운명 아래 놓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의 풍성하심이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에게 나타났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자기 아들 예수님을 화목제물로 우리에게 보내주셨고, 예수님이 행하신 “의의 한 행동”(롬 5:18)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온전히 구원하셨습니다. 주님의 행하신 “의의 한 행동”이란, 주님이 육신을 입고 흠 없는 속죄의 제물로 오셔서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시고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을 죽어주신 것을 말하며, 그것은 바로 “물과 성령의 복음”입니다. 이제 “물과 성령의 복음”을 믿는 자들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값없이 의롭다 함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믿는 자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움을 나타내려 하심이니”(롬 3:25)
여기서 “전에 지은 죄”라는 말씀은 하나님 차원에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원에서 영원까지 계신 분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눈에는 세상 종말의 때도 다 과거입니다. 그러니 아담의 시대부터 세상 종말의 때까지 한 눈에 다 보시는 하나님 앞에는, 인류 전체의 죄가 다 “전에 지은 죄”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앞으로 지을 죄를 포함해서 인류의 모든 죄가 다 “전에 지은 죄”입니다.
주님께서는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심으로 인류의 모든 죄를 다 담당하시고, 당신의 생명으로 십자가에서 그 죄의 값을 지불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이 세상에는 죄가 없습니다. “간과한다”는 말은 “보고 지나친다”는 말인데, 이제는 주님이 눈을 씻고 봐도 이 세상에 죄가 없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실제로, 또 공의롭게 전인류의 모든 죄를 다 없애주셨기 때문에, 이제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죄를 발견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 편에서도 전혀 죄를 찾아 볼 수 없기 때문에, 이제는 더 이상 죄를 발견할 수 없기 때문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누가, 왜 지옥에 가느냐? 지옥에 가는 죄는 뭐냐? 이제 모든 죄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례로 담당하시고 십자가에서 대속해 주셨기에, 오직 주님의 구원의 사랑을 거부하는 죄, 이 “물과 성령의 복음”을 믿지 아니하는 죄가 바로 지옥에 가는 죄입니다.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요 16:9)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진리의 복음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아니하는 것이 지옥에 가는 죄입니다.
“오직 믿음의 법으로”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뇨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롬 3:26-28)
아무도 율법을 다 지켜서 의롭게 될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흠 없는 제물로 오셔서, 인류의 대표자인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심으로 세상 죄를 담당하시고,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 그 모든 죄의 대가를 다 지불하셔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의가 이루어지게 하셨습니다. 이 진리가 “물과 성령의 복음”이며, 이 복음을 믿을 때에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사실은 진리의 복음인 “물과 성령의 복음”을 모른 채, 덮어놓고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례와 십자가로 우리를 모든 죄에서 온전히 구원하셨는데, 예수님의 세례는 빼 놓고 십자가의 피만을 믿기 때문에, 자기의 마음에 죄가 그대로 있는 기독교인들이 많습니다. 앞에서도 예를 들었지만, 화로의 세 다리 중에 한 다리를 짤라 버리면 그 화로가 제구실을 하겠습니까? 불이 쏟아져 집만 불태웁니다. 예수님을 그렇게 막무가내로 믿어서는 절대로 죄 사함을 얻지 못하고, 마음에 그대로 남아있는 죄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영원한 지옥에 떨어집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역사
그러나 “물과 성령의 복음”을 말씀으로 확증하고 마음에 온전히 믿으면, 누구나 거듭날 수 있습니다. 거듭남이란 죄인이 죄 사함을 받아서 의인되는 역사입니다. “물과 성령의 복음”을 진심으로 마음에 믿을 때에 성령님이 역사하셔서 그 사람의 마음의 죄가 흰 눈같이 깨끗이 씻어지는 죄 사함을 받습니다.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 3:5)고 하신 말씀에서, “물”은 “물과 피의 복음”(요일 5:6-8)을 말하고, 더 구체적으로는 “예수님이 받으신 세례”를 지칭합니다 (벧전 3:21).
“물과 성령의 복음”을 믿어서 죄 사함을 받으면, 하나님의 성령이 마음에 임합니다. 이 세상에 거짓 목자들이 교인들의 머리에 안수하면서, 마이크에 입을 대고 바람소리를 내며, “성령을 받아라!”하고 영혼들을 미혹시키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령님은 거룩한 하나님이시기에 죄가 있는 마음에는 거하실 수 없습니다.
오직 우리가 정확한 진리의 복음을 알고 믿을 때에 하나님께서, “음, 너희들이 진리의 복음을 제대로 알고 믿는구나! “너는 이제 의인이다” 하고 인정하시고 성령께서 역사해서 마음의 죄를 깨끗이 없애주시고 우리의 마음에 오셔서 성령의 인(印)을 탁 칩니다. “그래! 이제 너는 죄가 전혀 없는 의인이 되었다! 합격!” 그렇게 “물과 성령의 복음”을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은 자가 “거듭난 사람”이고 “의인”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물과 성령의 복음”을 진리의 복음으로 알고 믿어야 합니다. 믿는 자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죄 사함을 받고 거듭나서 의인되고 값없이 천국영생을 얻습니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거부한 죄로 영원토록 지옥에서 고통 받으며 이를 갈게 될 것입니다.
자! 이제 선택은 당신의 몫입니다. 오늘이라고 하는 이때에 마음을 정하고 이 진리의 복음, “물과 성령의 복음”을 믿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