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카(Pascha)

2016. 3. 27. 오전 6:5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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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3-24

[성경 ] 파스카

신은근 바오로 신부(호계본당 주임)


파스카(Pascha)의 어원은 히브리말 페사흐(Pesah)다. 직역하면 ‘건너뛰다’란 의미다. 모세를 따라 이집트를 탈출했던 ‘민족의 대이동’을 함축하는 단어다. 기원전 3세기, 히브리말 성경은 그리스말로 번역되는데 ‘70인 역’이라 한다. 이곳에서 ‘페사흐’는 ‘파스카’로 음역되었다. 기원후 5세기에 등장한 라틴말 성경인 ‘불가타’에서도 ‘파스카’라 했다. 그러니까 그리스말과 라틴말은 다같이 ‘파스카’라고 한 것이다.

파스카는 유다교의 축제다. 그리스도교의 ‘부활절’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다만 예수님께서 ‘파스카’ 다음날 부활하셨기에 축일이 겹칠 뿐이다. 영어에서도 부활절은 이스터(Easter)라 하고 ‘파스카’는 패스오버(Passover)라 한다. 영국인의 조상인 ‘앵글로색슨 족’은 봄의 여인을 ‘에오스터’(Eostre)라 했는데 ‘이스터’는 이 단어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고 있다.

유목민이었던 이스라엘은 봄이 되면 가축의 첫 새끼를 제물로 바치곤 했었다. 한 해의 무사고를 빌었던 것이다. 파스카 축제도 이 습속의 연장선상에 있다. 여기에다 ‘출애굽’의 결정적 사건이 가미된 것이다. 이집트의 모든 맏아들이 죽는 재앙에서 ‘양의 피’를 바른 집은 ‘건너뛰고’ 지나간 사건이다. 이후 파스카는 이스라엘의 가장 큰 축제로 자리 잡게 된다.

그들은 고유한 예식으로 ‘출애굽 사건’을 확실히 후손들에게 전했다. 주님의 직접적인 개입을 깨닫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토록 오랫동안 강대국의 지배를 받았지만 민족의 자긍심을 잃지 않았던 것은 이러한 종교교육 때문이다. 그러기에 유럽을 떠돌면서도 파스카 축제는 지켰다. 목숨을 걸고서도 지켜냈다. 어떤 상황에 있건 ‘출애굽 사건’은 그들에게 희망으로 다가갔던 것이다.

파스카 축제의 순서는 다음과 같다. 유다인의 새해가 시작되는 ‘니산달 10일’에 일 년짜리 숫양을 준비한다(탈출 12,1-4). 이후 ‘14일 저녁’ 해질녘에 양을 잡았고 피는 출입구 기둥에 발랐다. 고기는 전부 구워 ‘누룩 없는 빵’과 함께 먹었다. 쓴 나물도 곁들였다. 그리고 다음날부터 한 주간을 그렇게 지내야 했다. 이 한 주간을 무교절(無酵節)이라 한다.

예수님께서도 파스카를 지내셨고 성체성사를 통해 ‘인류의 파스카’로 승화시키셨다. 당신 자신을 ‘출애굽의 어린양’으로 내어 놓으신 것이다. 이집트 재앙에서 양의 피를 바른 집은 ‘죽음의 화’를 피할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부활의 주님을 모시는 이에게도 그러한 은총이 주어질 것이다. 유다인들은 나라를 잃고 멸시와 천대 속에 살아야 했다. 그들에게 파스카는 민족의 부활을 일깨워주는 희망의 축제였다.

 [2010년 4월 11일 부활 제2주일(하느님의 자비 주일) 가톨릭마산 14면]


[복음 이야기]  파스카 축제
이집트 탈출의 기쁨 나누는 7일 축제

 

 
유다인들은 이집트 탈출을 기념해 지내는 파스카 축제에 파스카 만찬을 갖는다.


 
파스카 만찬 식탁에는 이집트 살이를 상징하는 나물과 누룩없는 빵, 포도주 등이 오른다. 출처=「바이블 가이드-성경입문」
 

'파스카' 즉 과월절은 이스라엘 축제 가운데 가장 신성하고 큰 축제다. 라틴말 '파스카'는 히브리말 '페삭'에서 유래했는데 우리말로 '건너뛰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예수님께서 사용하신 아람어로는 '파스하'라 발음한다.

이 축제는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 기적적으로 탈출해 자유를 얻은 해방을 기념하기 위한 축제로, 특히 주님께서 이집트의 맏아들과 맏배를 치실 때 문설주에 발라놓은 양의 피를 보고 이스라엘 백성의 집을 건너뛴 사건을 기념하기 위해 시작됐다(탈출 12, 1-13).

이스라엘 백성은 파스카 축제를 유다력으로 니산 달 14일에 시작하는데 이날은 춘분 다음의 보름날이다. 축제는 7일간 계속되는데 첫날과 마지막 날이 가장 중요하다.

파스카 축제는 탈출기 12장에 적힌 내용대로 진행된다. 먼저 일 년 된 흠 없는 수컷 어린 양을 골라 파스카의 희생 제물로 바치고 그 피를 히솝가지로 문설주와 상인방에 바른다. 그리고 허리에 띠를 동이고 신발을 신고, 지팡이를 잡은 채 서서 누룩 없는 빵과 양 고기를 먹는다.

예수님 시대 파스카 축제는 니산달 14일 오후, 예루살렘 성전에서 시작했다. 유다인들은 율법이 정한 대로 일 년 된 흠 없는 수컷 어린양을 골라 성전으로 끌고 온다. 파스카의 어린양은 '제관들의 뜰' 입구에서 뿔나팔 소리에 따라 한 마리씩 도륙됐다. 제관은 어린양의 피를 받아 제단 앞에 부었고, 그 피는 강물처럼 키드론 골짜기로 흘러내려갔다. 유다인들은 이 과정을 '파스카 준비'라고 불렀다. 이 축제 기간 중 어린양의 내장과 지방을 태우는 연기와 냄새가 예루살렘 전역을 덮었다. 유다인들은 희생된 파스카의 어린양을 집으로 가져가 히브리말로 '세데르'라고 하는 '파스카 만찬'을 했다.

파스카 만찬 때 희생 제물로 바쳤던 어린양의 뼈는 부러뜨려서는 안 됐다. 또 삶아서도 안 되고 오로지 구워야만 했다. 유다인들은 가족 중심으로 파스카 만찬을 하지만 만찬 예식 순서는 '하가다'(유다인들의 종교적 윤리적 가르침)에 기록된 그대로 전 세계 모든 유다인들이 똑같이 지킨다. 하가다에 따르면 먼저 하소레트라는 붉은 양념에 누룩 없는 빵을 적셔 축복하고, 주님께 선택된 이스라엘 민족의 이집트 탈출을 읊은 시편 113장을 낭송하고 포도주 첫 잔을 마신다. 그리고 조상들이 흘린 눈물을 상기해 몇 방울의 소금물을 먹는다. 그다음 쓴 나물과 함께 어린양을 먹기 시작한다. 이때 포도주가 담긴 '축복의 잔'을 만찬 참여자들이 돌려가며 나눠 마신다. 세 번째 포도주 잔이 다 돌아가면 모두가 시편 114~117장 감사가를 부르며 알렐루야를 노래한다. 시편을 낭송할 때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는 찬미 받으소서'라는 귀절을 읊을 때 마지막 네 번째 포도주 잔을 돌려 마신다.

과월절 만찬에서는 아이들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전통적으로 가장 나이 어린 아이가 이 만찬 예식에 대해 질문한다. 왜 과월절 밤이 다른 보통 밤과 다른지, 왜 누룩 없는 빵을 먹어야 하는지, 왜 쓴 나물을 먹어야 하는지 등을 묻고, 가족 구성원 가운데 가장 나이 많은 남자가 이집트에서 무사히 구출됨을 기억하기 위해 이 밤이 다른 날과 다르며, 급하게 탈출해야 했기에 누룩 없는 빵을 구워야 했으며, 당시 노예 생활이 힘들었음을 상징하기 위해 쓴 나물을 먹는다고 답한다.

모든 유다인들은 이 파스카 만찬을 의무적으로 해야 했다. 가난해서 어린양이나 포도주나 나물을 살 수 없을 때는 공동체에서 받았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파스카 만찬을 나누면서 빵과 포도주를 들고 "이것이 내 몸이다" "이것은 내 피다"라고 말씀하시며 성체성사를 제정하셨다. 유다인 파스카 축제는 보통 그리스도인의 부활절과 겹치는데 이는 예수께서 파스카의 희생양이 되신 수난 사건이 바로 파스카 축제 기간에 일어났기 때문이다.

[평화신문, 2014년 3월 30일, 리
길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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