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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부산교구 초대교구장 최재선(요한)주교님께서 2008년 6월 3일(화) 오후 4시 46분경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아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리라는 희망 속에, 하느님의 품으로 돌아가신
주교님께서 영원한 안식과 평화를 누리시기를 기도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초대 교구장 최재선(요한)주교님께서 2008년 6월 3일(화) 오후 4시 46분경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故 최재선(요한)주교님의 영원한 안식을 비오며, 교구민 여러분의 많은 기도 부탁드립니다.
![]() 약 력 성 명 : 최재선(崔再善) 주교 CHOI Jae-seon 세 례 명 : 요한 John 생년월일 : 1912년 1월 7일 본 적 : 경상남도 울주군 상북면 길천리 413 현 주 소 : 부산시 금정구 부곡 3동 51-15 學 歷 1926년 대구 성유스티노 신학교 입학 1932년 9월 - 1934년 6월 대구 성유스티노 신학교 철학과 1934년 9월 - 1938년 6월 11일 대구 성유스티노 신학교 신학과 略 歷 1938년 6월 11일 사제 수품 1938년 6월 - 1942년 5월 전북 수유 성당 주임 1942년 5월 - 1943년 1월 14일 경북 영천 성당 주임 1943년 1월 15일 - 1943년 11월 12일 대구 계산 성당 보좌 1943년 11월 13일 - 1945년 5월 4일 대구 계산 성당 주임 1945년 5월 5일 - 1955년 5월 11일 김천 황금동 성당 주임 1945년 5월 5일 - 1955년 5월 11일 김천 성의 중고 교장 1946년 3월 - 1950년 3월 김천교육청 교육위원 1954년 6월 6일 - 1957년 5월 대구대교구 참사위원 1955년 5월 12일 - 1957년 4월 30일 대구 계산 성당 주임 1955년 5월 12일 - 1957년 4월 30일 대구 대건 중?고 교장 1957년 1월 26일 푸살라 명의주교와 부산대목구장 임명 1957년 5월 30일 주교 수품 1962년 3월 10일 부산교구장 임명 1962년 10월 26일 - 1972년 1월 22일 (재)천주교 부산교구 유지재단 이사장 1970년 2월 10일 - 1973년 11월 6일 학교법인 세종학숙 이사장 1973년 9월 19일 타나라무사 명의주교 임명, 부산교구장 은퇴 1973년 11월 7일 - 1976년 12월 교황청 성직자포교성성 한국지부장 1973년 11월 7일 - 1979년 4월 26일 한국외방선교회 총재 1975년 - 1982년 2월 주교회의 선교위원회 위원장 1979년 - 1982년 2월 교황청 전교회 한국지부장 1985년 5월 15일 한국외방선교수녀회 총재 2008년 6월 3일 선종 故 최재선 주교의 장례절차 등 자세한 내용은 교구 장례위원회에서 준비중이며, 빈소는 부산교구 남천주교좌 성당 소성전이다. - 가톨릭 굿뉴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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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교님과 함께] 최재선 주교, "성직자와 수도자 생명은 기도와 가난 실천" 한국교회 최고령 성직자 최재선 주교, 주교수품 50돌 맞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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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부산교구장 최재선(요한, 96) 주교는 한국교회 최고령 성직자다. 주교품을 받은 지 50년이 된다. 부산교구는 31일 교구 설정 50주년 감사미사에서 그의 주교수품 50주년을 축하하는 행사를 가질 예정이다. 백수(白壽)를 내다보는 최 주교를 만났다.
부산광역시 금정구 부곡동 한국외방선교회 수녀원. 약속시간보다 일찍 도착했더니, 수녀들이 "주교님이 조금 전까지 마당에서 기도하고 계셨는데…"하면서 여기저기 두리번 거렸다. 숙소에 내려가봐도 계시질 않았다. 수녀 몇 명이 갑자기 사라진 최재선 주교의 행방을 찾느라 안팎을 바삐 오갔다. 잠시 뒤 최 주교가 십자가의 길 14처를 빙 둘러 세운 잔디밭의 나무 뒤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따가운 햇볕을 피해 나무 그늘에 숨어(?) 기도하고 계셨다.
최 주교 숙소는 수녀원 정문에 붙어 있는 안내실이다. 6.6㎡(2평) 남짓한 서재 겸 응접실, 변기 하나 달랑 있는 화장실, 30년 전 어느 목수가 짜줬다는 침대가 놓여 있는 침실이 전부다. 책상이건 전등이건 모든 살림살이가 책장에 꽂혀 있는 서적들마냥 퇴색했다. 그 흔한 에어컨도 없다. 유난히 무더웠던 지난 여름을 선풍기 한 대로 났다. 낡은 책상 앞에 걸려 있는 작은 액자가 눈에 띈다. 사제들의 주보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1786~1859) 성화다.
요즘 활성화 된 묵주기도 몇 십만 단, 몇 백만단 봉헌운동의 원조는 최 주교다. 그는 '마리아를 통해 예수님께(Ad Jesum per Mariam)' 가기 위해 로마에서 묵주 6만 개를 사서 배로 실어와 교구민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최 주교는 "하지만 아픈 매도 많이 맞았다"고 말했다. 교구에 분열이 일어나 착좌 15년(1973년)만에 교구장직에서 물러난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최 주교는 "모두 내 부덕의 소치다. 정당한 판단은 역사에 맡기겠다"고 말했다. 김원철 기자 wckim@pbc.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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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원문 보기] [평화신문 2007.10.26] | ||||
하느님은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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