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 충만의 정의

2008. 12. 6. 오후 1: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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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령 충만의 정의

그리스도인의 삶은 능력과 생기와 기쁨이 넘치는 삶이다. 그리고 이 삶은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 말미암을 때 가능하다. 이것을 우리는 성령충만한 삶이라 표현할 수 있다. 그러나 성령충만이 무엇인가에 대해 논란이 있다. 성령충만을 성령세례와 동일시하여 오순절때 제자들이 체험한 것과 같은 동일한 체험이 지금도 일어나고 있고 이러한 체험을 성령충만으로 보는 견해가있고 성령세례를 성령충만과 구별하면서 성령세례는 일회적이지만 성령충만을 계속적인 과정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성령충만을 성령세례와 동일시하는 학자 중에는 토레이(R.A. Torrey)와 디기(D. Gee) 그리고 윌리암스(E.S. Williams) 등의 오순절 계통 학자와 브루스 (F.F. Bruce)와 옥켄가(H.Ockenga) 등이 있다. 이들은 성령의 세례와 충만은 동일한 사역임을 주장하면서 성령의 충만은 성령세례의 경우와 같이 불같은 세례를 부으면서 충만케 된다고 주장한다.

이들에게 있어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는 말씀은(에페 5:8) 성령의 세례을 받은 것을 전제로 한 말이다. 즉 처음으로 성령의 충만을 받은 것을 성령의 세례로 보았기에(사도행전 1:4-5, 2:1-4) 성령충만을 받으라는 말씀을 성령의 세례를 받으라는 말씀과 동일시하였다.

따라서 브루스는 "성령세례의 결과가 성령충만이며, 성령충만은 그 후 여러번 계속된 것"이라고 하였고, 옥켄가도 "성령으로 세례를 받은 경험이 성령충만이고 성령충만 이후에 비로소 능력을 행사 할수 있었다"고 하였다. 토레이 역시 "성령의 세례를 성령충만과 동일한 비상한 은혜로 보았다.

그러나 성령충만을 성령세례와 동일시 하는 데는 많은 문제가 있다. 왜냐하면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라는 표현은 성령이 믿는 자의 마음과 정신을 점유하고 있는 것을 말하기 때문이다. "충만"이라는 단어는 이 단어가 성령이 아닌 다른 단어와 함께 사용된 실례가 "심히 두려워하여"(누가 5:26)라는 문귀에 나타나 있다. 데어는 그의 헬라어 사전에서 여기에 사용된 동사를 "전체 마음을 점유하고 있는 상태"라고 표현하였다.

이 점유는 그 마음을 성령이 지배하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에베소서 5장 18절에서 그 동사도 조격을 받고 있는데, 그 조격은 그 수단에 의해서 동사 의 행동이 나타나는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동사의 행동은 신자에게 미치는 어떤 지배를 가르키는 것으로 이말은 "성령에 의해 지배를 받으라"로 해석할 수 있다. 따라서 성령충만은 성령세례와 구분되어지는 성령의 인격적 지배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이와 같은 견해에 대해서 많은 학자들이 동일한 주장을 하고 있다. 박형룡 박사는 성령세례가 오순절에 임한 것은 부인하지 않았지만 그는 "성령의 충만은 성령세례와 다르다"고 하였다. 스토트(J.S. Stott)는 "성령의 충만함은 성령세례의 결과이며, 세례는 독특하게 처음으로 얻는 경험이고 충만함은 영적생활을 계속하는 도중에 반복하여 받은 성령의 비상한 은혜"라고 하였다.

로이드 죤스도 성령의 영향 아래 있는 것, 성령께서 우리를 통제하는 것을 성령충만으로 보았다. 빌 브라잎도 "성령충만을 받는다는 것은 성령의 지배를 받으며 성령의 능력으로 충만한 것"이라고 보았다. 이 외에 R.펙손, J.월부어트, A.머레이 등이 성령의 충만을 인격적인 성령의 지배로 보고 있다.

살펴 본 바와 같이 성령충만을 성령세례와 동일시하는 오순절 계열의 학자들은 성령의 체험적인 면을 극단적으로 강조하여 체험을 말씀보다 중시하 였고 능력과 은사를 성령충만한 삶과 동일시하는 오류를 범하였다. 그러나 성령충만은 원어에 나타난 것과 같이 성령에 의한 지배로 해석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 인격적인 영에 의해서 지속적으로 지배되는 상태를 성령충만으로 보는것이 정당하다고 본다.

  

  [스크랩]성령 충만의 정의 [1] 이병렬 2007/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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