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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가수 만드는 건 목소리가 아니라 심장, 나나 무스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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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가수 만드는 건 목소리가 아니라 심장" 자서전 '박쥐의 딸' 출간한 나나 무스쿠리 인터뷰
◆ "전 뚱뚱했고 목소리도 불안정했어요." "언니가 노래도 더 잘하고 얼굴도 더 예뻤어요. 전 못생기고 뚱뚱한데다 목소리가 불안정했지요. 어느 날 엄마가 '둘 다 가르칠 능력이 안되니 네가 포기하라'고 했어요. 노래를 못 한다고 생각하니 죽고만 싶었지요. 그에 비해 언니는 그렇게 노래를 잘하면서도 '난 그냥 시집 가도 괜찮은데' 했고요. 사정을 들은 선생님이 '언니보다 동생이 더 좋은 가수가 될 것'이라며 제 학비를 면제해줬어요." 가난이 유일한 시련은 아니었다. 무스쿠리는 2차 대전 직후에 10대를 보냈다. 거칠고 누추한 시대였다. 미군과 함께 라디오와 LP판이 들어왔다. 그녀는 엘라 피츠제럴드, 빌리 할리데이 같은 미국 재즈 가수의 노래에 빠져들었다. 음악학교에 다니면서 남몰래 대중 가요를 부르는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들켜서 퇴학 당했다. 1959년~60년 그리스 가요제에서 2회 연속 우승하면서 그녀의 인생이 달라졌다. 가요제를 지켜본 프랑스의 거물 프로듀서가 그녀를 유럽 무대에 소개했다. 무스쿠리는 이어 미국에 진출했고 '사랑의 기쁨'(Plaisir d'amour), '오버 앤 오버'(Over and over) 등 숱한 히트곡을 불렀다. 그녀의 음반은 지금까지 2억장 이상 팔렸다. 남녀 솔로와 그룹을 통 털어 역사상 16번째, 여자 솔로 중 네 번째이다. ◆한해 100회 이상 공연, 호텔에서 일생 보내 "도시에서 도시로, 무대에서 무대로, 호텔에서 호텔로 이동하는 인생이었죠. 남들은 화려하다고 했지만 밤늦게 공연을 마치고 호텔에 돌아오면 네 벽 사이 텅 빈 공간에 앉아있는 자신이 처량하게 느껴졌어요. 그래도 다음날이 되면 또 노래하고 싶은 욕망이 치솟았지요." 무스쿠리는 "나는 평생 노래를 통해 타인을 웃기고 울리고 이해했다"고 말했다. "어떤 가수들은 '나는 클래식 가수', '나는 재즈 가수' 하고 특정 장르에 집착해요. '나는 음악성 있는 가수'라고 잘난 척 하기도 하지요. 그러나 저는 어렵게 자란 소박한 사람이에요. 관객만 있다면 그가 왕이건 행인이건, 클래식이건 대중가요건 가리지 않았어요." 그녀는 1974년 첫 남편과 이혼한 뒤 30년 가까이 아들(40), 딸(38)을 키우며 혼자 살다가 예순 아홉 살 되던 2003년에 평생지기인 음악감독 앙드레 샤펠과 결혼했다. 둘은 1960년대 초 음향기사와 신참 가수로 만났다. 오랜 세월 함께 일하며 상대방이 이혼의 좌절을 딛고 일어서도록 격려한 다음, 쉰을 넘긴 나이에 연인이 되고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부부가 된 것이다. ◆가장 좋아하는 노래는 '하얀 손수건' 무스쿠리는 스위스, 프랑스, 그리스를 오가며 산다. 가장 좋아하는 노래를 묻자 "여러 노래가 좋지만 나 혼자 있을 때 즐겨 흥얼거리는 노래는 역시 그리스 민요인 '하얀 손수건'"이라며 "그 노래를 한국 팬들이 좋아해줘서 기쁘고 신기하고 고맙다"고 말했다. 무스쿠리는 20~26일 서울·성남·대구·창원·부산을 돌며 다섯 차례 고별 내한 공연을 한다. 오는 7월 은퇴한 뒤에는 "아주 가끔, 꼭 부르고 싶은 자리에서만 한 곡씩 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이젠 느긋하게 '엄마'로 살아볼래요. 두 아이를 낳고도 공연 다니느라 다른 엄마들처럼 아이들과 부대끼며 살지 못했거든요." *** 담아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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